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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화 〉되찾는 노력, 수련29 (62/200)



〈 62화 〉되찾는 노력, 수련29

사람들을 뒤로하고 버나드와 세레딕은 빠르게 말을 몰았다. 해가 지기전까지 최대한 갈 수 있을만큼  생각이었다.

“보니파시오 공의 이빨 4개는 다시 돌려줬대. 왜 돌려줬을까?”

버나드의 뒤에 타고 있던 데보라는 금화가 가득 담긴 주머니를 품에 안은 채 버나드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녀의 물음에 버나드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갖고 있어봤자 필요없나보지.”
“그럼 내기를 한 의미가 없어지잖아.”
“테로의 이빨을 되찾았잖아. 그리고 보니파시오도 이빨을 빼는 고통을 겪고 뭔가 깨달은게 있을거야.”
“다시는 함부로 내기를 걸지 못하겠지?”

데보라는 밝게 웃으며 금화 주머니를 흔들었다.
찰랑거리는 금화소리가 그녀와 버나드의 귀를 즐겁게했다.

“버나드, 받은 돈으로 뭐할거야?”
“기사 장비 사는데 보태야지.”

애당초 남일에 적극적으로 달려든 이유가 돈 때문이었다.
앞서 버나드는 내기에 참가하는 조건으로 튀사라 가에게 돈을 요구했었다.
빼앗긴 테로의 치아 하나당 금화 50개씩 요구했고, 내기에서 이김으로써 금화 200닢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말을 타고 달리는 동안 어느덧 날이 완전히 저물었다.
버나드와 세레딕은 어쩔  없이 달리는 것을 멈추고 야영을 하기로 했다.
세레딕은 소지품에서 부싯돌을 꺼내 능숙한 솜씨로 모닥불을 피웠고, 버나드는 말 두 마리의 안장을 풀고 물과 풀을 먹였다. 간식을 준비하던 데보라는 잠깐 소변을 보고 온다고 하면서 숲속으로 사라졌다.

“혹시 저 아가씨를 처로 맞이할 생각인가?”

일을 마친 버나드가 모닥불에 다가와 앉자 세레딕이 대뜸 그렇게 물었다.
속삭이는듯한 모양새로 보아 데보라가 사라지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같다.

“오해십니다.  아직 아무생각도 없습니다.”
“잠자리를 같이 한다며?”
“예, 그렇긴 합니다만 연인 사이는 아닙니다.”
“그럼 첩인가? 그리고 저 아가씨의 집안 배경은 어떠한가? 자랑할만한 구석이 있는 집안인가?”

세레딕이 사적인 부분을 집요하게 캐묻는게 조금은 거슬렸다.
버나드가 되물었다.

“저와 데보라의 관계를 궁금해 하시는 이유가……?”

세레딕이 미소를 짓는다.

“중매쟁이의 본능이 꿈틀대서 말이야. 직업병이 도졌어.”
“예?”
“내 아무리 생각해도 안되겠지 뭐야. 자네처럼 귀한 보석을 그냥 놔둘 수가 없단 말이지. 좋은 신랑감을 발견했는데 놓쳐서야 되겠는가.”

그가 들뜬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자네처럼 장래가 촉망한 젊은이는 저런 무명 가문의 여식보다는 훌륭한 배경을 가진 아가씨를 만나야 더욱 대성할 수 있어.  그런 집안 처자를 소개시켜주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 하단 말이지.”

버나드가 잘라 말했다.

“저는 결혼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그럴싸한 아가씨를 소개시켜주면 마음이 달라질걸? 내 그라나딘 왕국으로 돌아가거든 자네의 미래에 도움이 될만한 처자를 물색해볼테니 그때까지 기다려주게. 데보라양과는 적당히 지내도록 하고 임신만큼은 절대 시켜선 안돼. 사생아가 생기면 곤란하니까.”

때마침 데보라가 돌아왔다.

“무슨 얘기들을 하시길래 둘이 찰싹 붙어있어요?
“아아, 버나드 경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네. 별말 아니야.”

세레딕은 마른 나뭇가지를 모닥불에 던져넣으며 버나드를 향해 찡긋 윙크를 날렸다.
버나드는 그 모습을 보고 아무 생각도 안들었다. 현재 그의 머릿속에는 데보라 라든지, 세레딕의 혼인 주선 얘기는 딱히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오직 레아와 복수만 생각하고 있었기에 먼나라 일처럼 느껴졌다. 따라서 방금전 얘기는 한 귀로 흘려버렸다.

이후 데보라가 해준 간식을 먹은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


“헉헉!”

심각한 부상을 입은 버나드가 깊은 산속을 헤매고 있었다.
프레드릭왕과 전쟁을 벌이는 이블린의 남편 필립을 암살한뒤 극적으로 성을 탈출해 도주하는 중이었다.

추격자들을 피해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었으나 출혈이 심해 얼마안가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혹여 그 전에  냄새를 맡은 산짐승  괴물들에게 잡아먹힐지도 모를일이었다.

털썩!
몇 시간동안이나 도망치려 안간 힘을 쓰다가 결국 힘이 다해 쓰러지고 말았다.
다시 일어설 기운도, 도망칠 자신도 없었다.
현 상황이 너무 암담했다.

“여기서 끝인가……”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쓰러진 버나드는 고독감과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불현듯, 근처에 제발 추격자들이 있길 바라며 나 여기 있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이대로 산속에서 죽는  보다는 차라리 추격자들에게 붙잡히는게 살아날 가망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재판을 받는 기간동안은 적어도 살아있을테니까.

하지만 맹렬히 포효해도 누구 하나 응답하는 이가 없었다.
도망쳐도 너무  도망쳤는지 이 깊은 산속에 존재하는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신이시여, 제발 절 도와주소서……!’

간절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버나드의 눈빛은 점점 빛을 잃어갔다.

‘이만하면 됐어. 이만하면…… 혼자서 열심히 잘 살아온거야……’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포자기한 그때,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꺼풀이 닫히려던 버나드의 눈이 다시 크게 떠졌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산짐승인가? 혹시 괴물? 뜯어먹히는건 싫어!’

차라리 죽고 나서 올것이지!
버나드는 사색이 되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그의 시야에 짐승 가죽을 몸에 걸친 엘프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발목까지 닿는 금색 긴 머리와 더불어 쭉 빠진 몸매에 첫 눈에 반할 정도로 예쁜 얼굴. 그녀의 품안에서 죽으면 소원이 없을 정도로 무척이나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엘프였다.
그런 그녀가 한손에 창을 쥔 채 자신을 멀뚱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와뤼아러뭄?”

알 수 없는 언어였다.
표정으로 보아 그녀 역시 자신을 신기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쉽게 다가오지 못하며 경계하는 기색이 있었다.

‘사람을 처음 보는건가……?’

버나드는 마른 침을 삼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적이 아니오……”
“마카?”
“도와줘……”
“룽?”
“내 손을……”

힘겹게 팔을 뻗으며 손을 잡아달라고 하는 찰나였다.
갑자기 짐승의 포효소리가 그의 고막을 찢었다.

“쿠어어어어어어!”

피 냄새를 맡고 나타난 곰이었다.
울부 짖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산 전체가 쩌렁쩌렁 흔들렸다. 덩치가 보통 곰보다 커서 곰이라기보다는 곰의 탈을 쓴 마물에 가까웠다.
그런 녀석의 입가에 침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버나드의 피 냄새 때문에 강한 굶주림을 느낀다는 증거였다.

‘끝장이야……’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워있던 버나드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여엘프를 돌아봤다.

‘당신이라도 빨리 도망쳐……’

근데 이게 왠걸?
절망에 빠진 자신과 달리 그녀의 눈빛이 살아있었다. 두려움이 없는 그 눈빛에 강렬한 투지가 엿보였다. 그건 전사의 눈빛이었다.

“크아아!”

곰이 크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드는 순간 여엘프 역시 창을 쥐고 뛰기 시작했다.
이내 곰과의 거리가 좁혀지자 그녀는 땅을 박차며 단숨에 높이 도약했다.
길다란 창을 쥔  허공을 빙글빙글 도는 그녀의 모습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롭고 완벽했다.
버나드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자아냈다.

“아름다워……!”

꿈은 여기까지였다.

***


“버나드?”

눈을 뜨자  가슴을 앞세우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데보라가 보였다.

“응……?”
“잘 잤어? 세레딕님이 일어나래. 이제 출발한다고.”
“어, 알았어.”

‘맞아, 야영중이었지’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급히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잠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푸르스름한 새벽이었다.
방금전 꾼 꿈의 여운 때문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잠시나마 곱씹었다.

‘레아와 처음 만났을 때가 꿈에 나올줄이야……’

좋았던 시절이었고, 기분 좋은 꿈이었다. 깨버린 것이 아쉬울 정도로.

“근데 레아가 그 곰을 어떻게 잡았더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아가 곰을 잡긴했는데 어떤식으로 싸웠는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방금전 꿈의 마지막 부분처럼, 분명 공중 높이 뛰어올랐던 것 까지는 기억난다.
하지만  뒤가 생각나지 않았다.
레아가 그대로 창을 찔렀는지 피했는지 뭐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텐데 검의 기억들처럼 그 한부분만 쏙 사라져 있다.

“나중에 떠오르겠지 뭐.”

혀를 끌끌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가롭게 다른 생각을 할때가 아니다.
오늘 아킨테군이 바들레인성을 떠나는 날이었기에 늦지않게 바들레인성으로 돌아가는 것이 먼저였다.
이윽고 정리를 마친 세 사람은 즉시 말 위에 올라타 다시 길을 떠났다.


***


“버나드, 어제 세레딕님이 내 얘기 안했어?”
“안했어.”
“정말?”
“응.”

여자의 감은 좋다더니ㅡ, 말을 타고 가는내내 데보라가 어젯밤 세레딕과 주고 받은 대화가 무엇이었냐고 자꾸 캐물어왔다.
버나드는 불안해 하는 그녀를 안심시키려 적당히 둘러댔다.
그러면서 산길을 내려가는 도중,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어떤 무리와 우연히 마주쳤다.
모두  사람이었는데 전부 갑옷을 입고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거만스러운 자세로 길을 막았다.

“이 길은 위험하니 다른 길로 돌아가시오. 앞에서 우리 용병단이 괴물을 사냥하고 있소이다.”
“호오, 어떤 괴물이오까?”

세레딕이 흥미 어린 눈길로 묻자 대장 사내가 가볍게 대꾸했다.

“인간으로 만들어진 키메라요. 성격이 아주 흉포하기 그지 없으니 최대한 멀리 돌아가시오.”
“흐음.”

세레딕이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 고생들 하시오.”

지름길을 놔두고 돌아가야해서 아쉽다는 표정이 그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지만, 어째서인지 순순히 물러섰다.
그들과 멀어지며 다른 길로 향하는 와중에 세레딕이 버나드에게 말했다.

“갑옷에 새겨진 문장을 천으로 가렸더구만.”

버나드도  점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른채했다.

“그랬던가요?”
“세 놈 다 문장을 가리고 있었어. 자랑스레 내보여야할 문장을 가린다는건 무슨 뜻인지 아나?”
“글쎄요.”
“나쁜짓을 벌이고 있다는 뜻이지.”

세레딕이 껄껄 웃었다.

“자네도 빨리 바들레인성에 가야하고, 나도 일이 있어 그냥 모르는척 해주었네. 젊은 시절에는 닥치고 달려들었겠지만, 나이가 드니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것이 피곤하지 뭐야. 우리는 마음 편히  길이나 갑세.  지역에서 소란이 일면 그건 저지 영주가 해결할 일이니까.”

 말에 버나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얌전히 말을 몰았다.
그러나 그의 낯빛에는 불안한 기색과 더불어 의문이 떠올라 있었다.

‘그 대장 녀석, 내가 아는 얼굴이었어.’

용병단인척 위장한 세 명의 사내 중에 대장이라는 자는 꽤나 익숙한 인물이었다.
왜냐하면 왕궁에서 자주 봤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프레드릭왕의 남동생인 겁쟁이 클리프의 가신이었다.

‘그 자가 왜 여기있지? 그것도 용병으로 위장까지 해가며?’

이 의문에, 자신이 알고 있는 한가지 사실을 더하면 대충 예상이 가능해진다.

‘설마, 겁쟁이 클리프도 2차 걷는 사자 전쟁에 참가한것인가?’

또 여기에 밤의 늑대들 시절 기존에 파악한 정보까지 덧붙이면 그럴듯한 추측이 성립된다.

‘클리프는 미셸을 아주 싫어했었지. 설마 미셸과 샤를을 노리고 쫓아온 것인가…?’

자칫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질지도 모르는 의문을 방치해둬서 좋을게 없다.
그래서 버나드는 주변을 살펴보기로 결심했다.
이 숲 어딘가에 클리프군이 주둔중이라면, 그들의 행동을 보고 단순히 지나가는 길인지 아니면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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