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되찾는 노력, 수련24
어느새 버나드는 도르얀손, 리얀데르손에 이어 다른 영애들의 호위기사인 라이런스, 루퍼트까지 연달아 쓰러뜨리고 마지막 상대로 에녹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버나드의 체력은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소년의 체구로 자신보다 큰 사람들을 상대한다는게 여간 쉬운일이 아닌데다 무엇보다 네 명을 연달아 상대하는 일은 성인조차도 버거운 일일 것이다.
“헉, 헉!”
하지만 그는 마지막 시합에 온힘을 쏟아부을 각오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지금까지 레퍼드의 제자로 보이는 이들이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한명, 에녹이 바로 레퍼드의 제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가 진짜 레퍼드의 가르침을 받았는지는 칼을 맞대봐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버나드는 제발 그가 레퍼드의 제자이기를 바랐다. 그리고 무언가를 보여주길 원했다.
버나드가 익힌 검술 기술 대부분은 레퍼드의 가르침으로 얻은 것이다. 따라서 에녹이 하는 동작을 보면 잊혀진 기술들을 떠올리는데 있어 약간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꼬마야, 네가 보통 꼬마가 아니란걸 깨달았다. 험하게 다뤄도 뭐라하지 마라.”
시합이 시작되고 나서 서로를 탐색하는 느낌으로 몇 차례 그와 검을 주고 받았다. 그 후 점점 현란하게 칼을 휘두르게 되면서, 버나드는 에녹이 지금까지 상대했던 호위기사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그가 레퍼드의 제자임을 확신했다. 기술이 정갈하고 담백한 맛이 났다. 그것은…… 무척 버거우면서도 매우 익숙한 맛이었다.
‘과연!’
아아! 이 반가움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버나드는 막기에만 급급하며 식은땀을 흘렸지만,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에녹의 칼을 받을때마다 레퍼드한테 잔소리를 들어가며 검술을 수련했던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가슴이 찌릿찌릿 요동쳤다.
어서 가져가라고, 너도 아는 기술이라고, 에녹의 칼질이 속삭이고 있었다. 칼이 말을 걸 수 있다는 것을 버나드는 새삼 느꼈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으나 오랜만에 떠오른 깨달음이다.
“또다 또! 지는것 같다가 또 이기고 있어! 그야말로 역전의 명수가 아닌가!”
“저 꼬마는 대체 누구야? 어느 가문의 누구길래 훌륭한 용병왕 레퍼드한테 검술을 전수받은 에녹까지 이긴단 말이냐!”
줄곧 막기만 하던 버나드가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서면서 에녹이 점점 뒤로 밀리자 관객들이 탄성을 지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울러 사람들은 에녹이 레퍼드의 제자로 알고 있었지만, 버나드는 직접 칼을 맞대보니 진실을 알 수 있었다. 에녹이 알고 있는 레퍼드의 검술은 그저 반년치에 불과했다. 이는 겨우 맛보기 수준이란 뜻이다. 에녹이 레퍼드를 만난 것은 분명하나 그의 곁을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는 것을 칼질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버나드는 쉽게 에녹을 몰아부칠 수 있었다. 그에게서 필요한 것만 쏙 빼먹고 이제 볼일 없으니 꺼져 하며 곧장 내동댕이를 쳐버리듯 매섭게 칼을 휘둘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빈틈을 노린 버나드의 칼이 에녹의 옆구리를 베었을때, 상급기사가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재빨리 외쳤다.
“그만! 버나드 경 승! 사제님은 즉시 에녹 경을 치료하십시오!”
버나드는 지친 한숨을 몰아내쉬며 칼을 거뒀고, 사제가 민첩하게 상단으로 올라왔다.
옆구리를 베인 에녹은 피를 흘리며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가 버나드를 올려다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제법이다 꼬마야. 놀랐어.”
버나드가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며 미소지었다.
“좋은 승부였습니다.”
“세상에 너 같은 천재도 있다는 것을 알게된 명승부였지.”
에녹이 악수를 하자는듯이 손을 뻗었다. 버나드가 그 손을 마주잡자 객석에서 관중들의 환호와 함께 열렬한 박수 소리가 들렸다.
“내 생에 손에 꼽을 정도로 멋진 시합이었네!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던 버나드 경이 승리할줄이야 대단한 반전이었어!”
저지 영주가 신난 얼굴로 상단으로 뛰어 올라오더니 버나드의 오른손을 붙잡고 높이 들어올렸다.
“샤를리나 양의 호위기사 버나드 경이 시합의 우승자임을 나 바들레인의 저지가 인정한다!”
그 모습을 보며 미셸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 또한 상단으로 걸어올라와 버나드를 가볍게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버나드, 네가 내 가신이라 참 뿌듯하단다. 오늘은 정말 기쁜날이구나.”
많은 사람들이 버나드를 축하해주는 와중에 식탁에 앉아있던 세레딕은 턱에 자란 수염을 매만지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버나드를 향한 그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여보게, 니콜라스.”
왠지 모를 갈증이나 술잔을 깨끗이 비운 니콜라스가 그를 쳐다봤다.
“왜?”
“저 아이, 내일 함 만나보고 싶네.”
니콜라스가 피식 웃었다.
“흥미가 생겼나?”
“흥미야 있지. 장차 세상에 널리 이름을 알리게될 아이를 발견했는데 당연히 흥미를 가져야 하지 않겠어?”
세레딕이 씨익 웃었다.
“내일 오전에 우리 두 늙은이들한테 시간 좀 내달라고 하게.”
영애들이 앉아있는 자리에서는 에녹의 주인인 영애가 금화 열냥을 샤를의 눈앞에 내밀었다.
“내기에서 이기셨네요. 축하해요 샤를.”
내기가 끝나자 영애들은 아쉬워하면서도 샤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그녀들의 박수를 받은 샤를은 눈앞에 쌓여있는 금화를 멍하니 바라보며 얼떨떨했다. 그리고 날아갈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기대도 안했는데……’
그녀의 시선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를 받고 있는 버나드에게 향했다.
샤를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상단으로 걸어 올라갔다.
술에 취해 비틀비틀 걸어오는 그녀를 보고 사람들이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길을 내주었다.
이윽고 버나드의 코앞에 이르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놀란 눈으로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버나드 당신……!”
“샤를리나님?”
버나드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린 순간, 샤를은 갑자기 머리가 핑 돌면서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며 정신을 잃었다.
“샤를리나님!”
놀란 사람들이 주위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평소 미셸의 주치의이기도 했던 사만다가 다급히 뛰어와서 샤를의 상태를 살펴보더니, 이내 그녀의 안색에 안도감이 깃들었다.
그녀가 웃는 얼굴로 옆에 있던 미셸에게 말했다.
“취해서 곯아떨어진 것뿐입니다. 얼른 방으로 데려가죠.”
“그래?”
미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못난 딸을 내려다봤다.
다들 걱정하고 있는 마당에 아주 평온하게 잠든 모습이다.
“쿠울, 쿨……”
***
똑똑.
버나드가 문을 두드리자 방문해주길 기다렸다는듯 곧바로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가자 실내가 살짝 뿌연가운데 상큼한 민트향이 진하게 풍겼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중앙의 탁자에는 아무렇게나 벗어 던져진 드레스와 검붉은 빛깔의 속옷이 놓여 있었다. 속옷 한 가운데만 눈에 띄게 젖어 있었다.
버나드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우뚝 발걸음을 멈췄다.
순간 뒤돌아 나가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하지만 이대로 나가버린다면 걷는 사자 전쟁에 참가하고 싶은 그의 목적을 달성하기가 어려워진다. 버나드는 레아의 시신을 찾는 것 및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샤를을 꼭 이복형제자매들과의 싸움에서 이기게 해주고 싶었고, 그럴려면 아킨테 가문의 권력 서열 2위인 총장 사만다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녀의 힘과 인맥을 바탕으로 미셸을 포함 다른 가신들을 설득해야 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바닥에 까펫이 깔려 있는 침실이 나왔고, 문득 구석쪽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창가쪽에 나무로된 목욕통이 놓여 있었고 사만다가 알몸으로 그 안에 들어가 홀로 목욕을 하는 중이었다.
머리카락이 흠뻑 젖은 그녀가 자신을 보자 싱긋 웃는다.
“수고했어. 오늘 정말 멋지더라.”
손바닥만큼이나 크고 거무스름한 유륜이 물에 잠기지 않은 채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녀의 것은 과하게 컸다. 자신이 본것중에 제일 커다란 유륜이었다. 여자 거인의 젖꼭지에 달려 있었으면 매우 자연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버나드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대화를 나누러 왔습니다.”
“알아. 누가 뭐래?”
“왜 그러고 계시죠?”
“하루종일 땀 흘리며 다니다가 이제야 시간이 나서 씻는 것 뿐이야. 잘못된거라도?”
“……”
버나드는 잠시 말이 없다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언제 끝나십니까?”
“흐음, 좀 오래 걸릴 것 같아. 여자들은 원래 목욕을 오래하거든. 정 기다리기 지루하면 너도 목욕통 안으로 들어올래? 들어와서 얘기하면 되잖아.”
“그냥 이대로 대화하겠습니다. 씻으면서 말씀하십시오.”
그녀가 젖가슴을 가볍게 움켜쥐며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너도 아까 땀을 많이 흘렸을텐데 끈적끈적한 기분으로 자고 싶어? 넌 신분이 낮아서 방에 목욕물이 제공되지 않잖아. 설마 이 깜깜한 오밤중에 멀리 나가서 씻을 생각인건 아니겠지? 지금 기회 있을때 미리 씻는게 좋을걸?”
언제나 깨끗한 옷을 입으며, 깨끗한 곳에서 살고, 늘 몸을 청결히 했던 버나드로서는 오랜만에 방에서 목욕을 하고 싶은 기분이 솟구쳤다. 그게 비록 주인이 있는 목욕통이라할지라도 더러워진 몸을 씻고 싶은 욕구는 간절했다. 매일 남의 눈치나 보며 계곡가, 시냇가, 연못 등에서 씻는건 이제 지겨웠다.
버나드는 혁대를 풀고 지체 없이 바지를 내렸다. 거추장스러운 윗도리도 벗어던졌다. 아래로 축 늘어진 그의 성기가 눈에 들어오자 사만다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알몸을 흐뭇하게 감상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네 모습이 아름다워. 알몸을 본 여자는 내가 처음이겠지?”
“……”
사만다는 한 손을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가져가며 계속해서 그의 몸을 관찰했다.
버나드는 그녀의 노골적인 시선을 개의치 않고 목욕통 안으로 들어갔다. 목욕통은 마치 연인들을 위해 만들어진듯 두 명이 마주보고 앉기에 적합한 크기였다. 엉덩이를 내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에 목까지 몸을 담갔다. 상대적으로 체격이 큰 사만다는 젖가슴의 3분의 1밖에 잠기지 않았지만 버나드는 자리에 앉으니 목까지 잠겼다.
“후우.”
목욕통 밖에 있을땐 꺼림직했지만 막상 들어와 앉고 보니 목욕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온몸 구석구석까지 묵은 피로가 씻겨나가며 시원한 기분이 밀려들어왔다. 버나드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좋군요.”
“더 좋은 기분이 들게 눈요기도 시켜줄까?”
마주보고 앉아있던 사만다는 방금전까지 은밀한 부위를 문지르던 손을 치우고 가랑이를 한껏 벌려보였다. 민트잎이 둥둥 떠다니는 물밑으로 그녀의 두툼한 조갯살이 슬쩍 벌어진 채 무방비로 드러났다. 그곳을 힐끔 쳐다본 버나드는 다리 사이에 달린 그의 물건이 금세 묵직해지는 것을 느꼈다.
육체는 혈기왕성한 까닭에 통제가 안됐으나 머리는 차가웠다.
버나드는 자신을 유혹하는 그녀를 향해 싸늘하게 말을 뱉었다.
“당신꺼엔 관심없습니다.”
“그럼 누구 것이 좋은데?”
“없어요, 아무도.”
“여자 거긴 처음 봤을거 아냐? 감상 소감은?”
“걷는 사자 전쟁에 관한 얘기나 하죠.”
“얘는 벌써 오크처럼 미쳐날뛰기 시작했는데?”
출렁이는 물밑으로 버나드의 성기가 부풀어 오른 것을 보고 사만다가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
욕망에 충실한 성기는 가리지도 못할 정도로 빳빳하게 서버렸다.
버나드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말을 돌렸다.
“샤를리나님께서 아케르니아 제국까지 무사히 당도할 수 있도록 세 가지 루트를 짜봤습니다.”
“계획까지 세운거야? 그것도 무려 세개씩이나? 와, 대단해.”
다행히도 사만다는 포도주를 마시며 버나드의 의도대로 따라와줬다.
“첫 번째 루트는 양동작전입니다. 샤를리나님이 먼저 별동대와 함께 아케르니아 제국으로 출발하고 미셸님이 그 뒤를 받쳐주는……”
본격적인 의논을 시작하려는 찰나 난데없이 머리위에서 여성의 숨 넘어가는 교성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마스터울프님…! 더, 더 세게 박아줘요! 하윽! 이걸로는 부족해! 좀 더 깊이! 아아, 거기야! 거길 긁듯이 찔러줘!”
윗층에서 나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