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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화 〉되찾는 노력, 수련23 (56/200)



〈 56화 〉되찾는 노력, 수련23

“클레어가 부상을 당하다뇨?”

뭔소리냐는듯한 눈으로 샤를이 클레어를 돌아보자, 클레어가 고개를 떨궜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일주일전 검기 발현을 연습하다 손목에 내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거짓말!”

샤를이 황급히 클레어의 양 손목을 붙잡고 확인하려 들자 클레어가 고통에 신음하며 몸을 움찔거렸다.
놀란 샤를이 붙잡았던 손목을 놓았다.

“왜 말을 안한거야! 그동안 뭐했어!”
“죄송합니다……”

사정을 알게된 귀족들이 주변에 몰려들었다.
특히 영애들은 샤를이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던 클레어가 부상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위로하기는 커녕 샤를을 향해 빈정댔다.

“주인이 얼마나 신경을 안썼으면 호위기사가 아픈지도 모르나요?”
“먼저 내기를 제안한건 샤를님인데 참 안됐네요. 무슨 게임이든 늘 튀는 사람이 제일 먼저 죽더라.”
“그렇담, 샤를님은 기권인가요?”

샤를은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어깨를 부들부들 거리면서 영애들의 비웃음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누군가 그녀를 툭 건들기라도 하면 즉시 폭발할 것 같았다. 그런 그녀에게 니콜라스가 다가왔다.

“버나드를 내보내시죠.”
“저 형편없는 녀석을요?”

샤를의 시선이 버나드에게 꽂혔다. 현재 그는 벽을 등지고 서서 샤를의 명령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주변에 나란히 서 있는 다른 영애들의 호위기사들은 키가 크고 체격도 좋고 성인처럼 보이는 반면에 그 사이에 껴 있는 버나드는 정말이지 애가 따로 없다. 키 작고 덩치도 그들에 비해 왜소하고…… 좋게 봐주고 싶어도  없어 보이는 소년으로 밖에 안보이는게 사실이다.

“차라리 내가 나가는게 낫겠어요.”

니콜라스가 껄껄 웃었다.

“그러다 큰일납니다. 아무튼 버나드 경이 형편없는지는 두고보면 알겠지요. 게다가 버나드 경이라도 안내보내면 그대로 기권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될바에야 꼴찌를 하든 말든 일단 도전해보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하아.”

샤를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버나드를 내보내나 안내보내나 기권 아니면 꼴찌일뿐이다. 그냥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참가하는데만 의의를 두기로 했다.
그렇게하기로 결정하자, 샤를은 버나드에게 성큼성큼 걸어가서 눈에 힘을 주고 강조했다.

“당신도 남자라면 꼴찌를 할땐 하더라도 한놈은 이기고 죽는 근성을 보이세요!”
“가능하면요.”
“뭐요? 가능하면? 정말 버르장머리 없어!”

샤를은 씩씩거리면서 그를 노려보더니 몸을 홱 돌려서 자리로 돌아가버렸다.

영주 가족과 미셸이 앉아있던 자리가 중앙으로 옮겨지고, 그들이 앉았던 상단에는 호위기사들의 시합 공간이 마련되었다.
시합의 룰은 참가자 수가 여섯명 밖에 안되는만큼 이긴 사람이 계속 싸우고 지는 쪽이 교체되는 방식으로 결정이 났다.

“꼬마야 살살 해줄게.”

호위기사들은 버나드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버나드와 그들의 키 차이가 무려 머리 두개나 차이났다.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관중들 또한 훤칠한 호위기사들 사이에 껴있는 버나드를 귀엽게만 바라볼뿐 그가  해내리라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견습기사 정도로 밖에 안보였다.

“그렇잖아도 자네에게 보여주고 싶은 아이가 있었는데 마침 잘됐군.”

술병이 놓인 탁자에 앉아있던 니콜라스가 옆자리에 앉은 노기사 세레딕에게 말했다.

“저기 저 아이 보이는가?”
“샤를리나님이 내세운 호위기사 말인가?”
“그 아이를 눈여겨 보도록 하게. 아주 재밌는 아이니까.”
“흠. 지금은 딱히 느껴지는게 없네만, 자네가 보라니 함 지켜보지.”

영애들과 앉아있던 샤를은  망신당할걸 생각하며 혼자 꿍한 얼굴로 술만 퍼마시는 중이었다.

‘그냥 내보내지 말걸!’

그녀는 차라리 기권하는게 나았다며 버나드를 내보낸걸 뒤늦게 후회하고 있었다.
아울러 다른곳에 앉아있던 미셸은 편안한 마음으로 버나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아이에게 좋은 경험이 될거야. 이번 기회에 실력이 더 늘길 바라마.”

한쪽에 우두커니 서있던 클레어는 이 시합이 그의 진짜 실력을 확실히 가늠할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그녀는 버나드에게서 시선을 떼지못했다.

“왠지 전부 이겨버릴  같아…”

바들레인 가문 소속 상급기사가 상단 위로 올라갔다. 그가 심판이었고, 첫번째 시합을 벌일 선수로 버나드와 도르얀손을 호명했다. 시합 순서는 아까 영애들이 제비뽑기를 한 결과였다. 샤를은 제비뽑기 운도 없었다.
버나드와 도르얀손이 상단으로 올라가서 서로 마주보고 서자, 두 사람의 체격 차이를 보고 관객들이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애니까 좀 봐줘라~”
“도르얀손이 가볍게 올라가겠군.”
“샤를님의 호위기사는 왜 소년이지? 너무 어리고 미숙한거 아닌가?”

도르얀손은 버나드를 향해 상대가 소년이라서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적당히 해줄게.”

버나드는 태연하게 웃어보였다.

“부디 전력을 다해주십시오.”
“마음 가짐은 좋구나. 어디 네가 가진 실력을 마음껏 펼쳐보렴.”

버나드와 도르얀손은 서로 인사하고 검을 들었다. 실감나는 시합을 위해 목검이 아닌 실제 검이다. 만약을 위해 사제가 대기중이었다.
상급기사가 뒤로 빠지며 크게 외쳤다.

“시작!”

시합이 시작되자 도르얀손은 여유를 부리며 들어올테면 들어와 보라는듯이 손을 까닥거렸다. 상대가 방심하며 빈틈을 허용한 이상 버나드가 그것을 놓칠리 없었다. ‘날 잡아먹어줍쇼’하고 나오는데 그걸 가만히 내버려둘 맹수가 어딨을까. 버나드는 번개같이 달려들어 칼을 휘둘렀다. 도르얀손은 이때다 싶어 즉시 반격에 나섰지만 그는 이내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빠르게 치고 들어오는 버나드의 몸놀림이 예상외로 그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빨랐던 것이다. 버나드는 그의 품에 안기듯이 깊숙이 들어간 다음, 도르얀손의 가슴을 팔꿈치로 가격하고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콰당!
순식간에 바닥에 나자빠진 도르얀손의 가슴을 향해 칼을 꽂는 시늉을 하며 그 자세 그대로 멈췄다.
그러자 심판이었던 상급기사가 즉시 소리쳤다.

“그만! 버나드 경 승!”

놀라우면서도 싱거운 결과였다.
믿기지 않은 결과를 목격한 샤를이 마시고 있던 술을 푸웁하고 뿜었다.
눈을 휘둥그레떴다.

“내, 내가 뭘 본거야……?”

놀란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다.
짧은 순간 정적이 장내를 휩싼뒤 힘찬 박수가 쏟아졌다.

“이야, 대단해!”
“도르얀손이 질줄이야!”
“방금 봤나!? 엄청 빨랐어!”

미셸도 흐뭇한 웃음을 짓고 박수를 쳤다.

“역시 다르구나 버나드……”

니콜라스와 함께 있던 세레딕도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매우 깔끔했네. 저 나이대에 저런 동작이 나오다니 오오.”

상단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던 클레어는 주먹을 꽈악 움켜쥐었다.

“정말 천재……”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버나드를 향한 질투심이 자꾸만 솟구친다.
한편, 영애들이 모여앉은 식탁에서는 도르얀손의 주인이었던 로지나가 예쁘장한 지갑에서 금화 열냥을 꺼내 샤를에게 스윽 내밀었다.

“받으세요. 축하드립니다.”

말과는 달리 그녀의 표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분함이 가득했다.
반면에 샤를은 자신한테 내밀어진 금화 열냥을 눈앞에 두고도 꿈을 꾸고 있는게 아닐까 싶어 손을 들어 볼을 살짝 꼬집었다. 분명 따끔거리는 것을 보니 꿈은 아니었다.
그럼 버나드가 대체 어떻게 이긴거지? 저런 근본 없는 기사가 무슨 힘으로?

“운으로……?”

현재로선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자! 다음 리얀데르손 경 올라오시오!”

자신의 남동생을 쓰러뜨린 버나드를 주시하며 리얀데르손이 무게감 있게 상단 위에 올라왔다.

“네 실력은 잘 봤다. 남동생이 방심한 까닭에 우연히 이겼을 뿐이야. 하지만 난 다르다. 최선을 다해 싸워주지. 상대가 비록 어린애일지라도.”

그가 스르륵 칼을 뽑아들었다.
버나드가 가볍게 묵례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표정을 보아하니 긴장조차 안하는군.”
“한수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올라온거라서요.”
“건방 떨지마라. 우린 네 선생이 아니다.”

곧바로 시합 개시 소리가 울려퍼졌다.
리얀데르손은 사납게 생긴 외모답게 시작부터 맹렬하게 치고 들어왔다. 그는 도르얀손과 달리 방심하지도 않았으며 어린애라고 봐주지도 않았다. 게다가 체격이 크고 힘도 좋았기에 버나드는 그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면서 순식간에 구석으로 내몰렸다.
 상태에서 몇 차례인가 공방을 주고 받았고  끝이 보이는듯 했다. 누가봐도 신체조건부터 월등한 리얀데르손의 압도적 승리가 예정되어 있었다.
관객들은 막다른 곳에서 간신히 버티는 버나드를 보면서 저마다 당연하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줄 알았지.”
“아깐 그냥 운이였나봐. 금방 끝나겠는걸.”

즐거운 마음으로 시합을 구경하고 있던 세레딕이 니콜라스의 무릎을 탁치며 껄껄 웃었다.

“안타깝게됐구만 그래.”
“뭐가 말인가?”

느긋하게 관전중이던 니콜라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세레딕이 술잔을 들어 가볍게 목을 적셨다.

“검술이 괜찮아 보이나 아직 배우는 단계로구만. 자네는  아이의 어느 부분을 주목한겐가?
“허허, 자네. 시합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질문이 섣부르고만.”
“음?”
“버나드 경이 밀리는 것처럼 보이는가?”

니콜라스가 손가락질을 하며 자넨 아직 멀었다는듯이 쯔쯔 혀를 찼다.

“저 아이는 괴물일세.”

그러고는 세레딕을 마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싸우면 싸울수록 강해지는 괴물말일세. 즉, 시합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지.”
“뭐?”

의문을 담은 세레딕의 시선이 버나드를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이 있었다.

“저럴수가…!”

버나드는 밀렸으나 아직 벼랑 끝에 선 것이 아니었다. 그는 상대의 움직임을 침착하게 관찰하면서 몸의 균형을 유지하고 칼 관리를 신중하게 잘하고 있었다. 무리하게 공격하겠답시고 함부로 나가는 칼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가끔씩 내지르는 칼마다 전부 실속있고 현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데 매우 유용한 수단으로 작용했다.

세레딕의 표정에 곧바로 놀라움이 떠올랐다.
동시에 그는 깨달았다.
현재 버나드는 밀리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떠올리고 고민하고 연구하는 중이라는 것을. 싸우면서 새로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터득한다? 그것은 검술의 고수들에게서나 볼법한 장면이었다.
아울러 그 모습은 마치  높게 뛰기 위해 낮게 웅크린 짐승처럼 보였기에 세레딕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누구의 제자인가! 누구의 제자이길래 벌써부터 저런 재주를 부린단 말인가!”

니콜라스가 점잖게 폼을 잡으며 헛기침을 했다.

“그야 물론 내……”
“자네는 분명 아닐거야! 그건 확실해!”
“크흠!”

그 순간 버나드의 입가에 소리없이 미소가 피어올랐다.

‘맞아, 여기선 이렇게 하는거였어.’

언젠가 2만 병사를 이끌던 적 장군과 싸울때가 그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장군은 지금처럼 파괴적이었고 무자비했고 잔기술 따위 없이 오직 힘으로만 밀어부쳤었다.
그 당시 버나드는 강압적인 기세로 나오는 적 장군을 쓰러뜨릴 파훼법을 하반신에서 찾았다. 적의 다리를 집중적으로 공격해 몸의 균형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말이 쉽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리얀데르손은 강하지 않다. 그는 현재 이십대 초반인 덜여문 기사에 불과하니까.
더구나 지금 버나드의 머릿속에는  장군과 싸울때 썼던 기술들이 엄청난 기세로 파르르 떠올랐다. 그때와는 힘과 속도면에서 크게 차이가 나겠지만, 그렇다쳐도 따라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위력은 줄어들었으나 시전자는 그때  사람이니까!

“크읏!”

난데없이 버나드의 기세가 살아나면서 공격이 매서워졌다. 변칙적인 방향으로 휘둘러진 그의 공격을 간신히 막은 리얀데르손이 뒷걸음질을 쳤다.
리얀데르손이 후퇴하는 장면은 싸움이 시작된 이후로 모두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관중석에서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어떻게 된거지?”
“저거 뭐야?”

그것은 반격의 서막에 불과했다.
한번 밀리기 시작하자 그 뒤로 정신없이 밀리기 시작하면서 리얀데르손은 도저히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버나드는 한순간 틈을 노려 그의 허벅지를 찌른뒤, 리얀데르손이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몸을 수그리자, 뒤로 돌면서 칼자루로 그의 머리를 쳐버렸다. 참가자 모두 투구 따윈 쓰지 않았기에, 칼자루에 옆머리를 찍힌 리얀데르손은 커다란 충격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잠깐 비틀대다가 곧바로 이어진 버나드의 일격을 맞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만! 승자 버나드 경!”

상급기사가 버나드를 가리키며 손을 들어올리자 샤를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듯 눈을 계속 껌뻑거렸다.

“뭐, 뭐야……?”

자신의 호위기사가 당하자 올가가 뚱한 표정으로 그녀 앞으로 금화 열냥을 들이밀었다.

“자요, 약속대로 열냥입니다. 이기셔서 좋겠어요. 칫.”
“또, 또 이긴거야…?”

샤를은 눈앞에 쌓여있는 금화 스무냥을 홀린듯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가 그러고 있는 동안 버나드는 또다시 새로운 적을 맞이하며 계속해서 승을 쌓아갔다.
 샤를이 앉은 식탁 위에는 불빛에 반사되어 반들거리는 금화들이 잔뜩 쌓여 눈이 부셨다.

“이, 이게 전부 내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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