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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화 〉되찾는 노력, 수련19 (52/200)



〈 52화 〉되찾는 노력, 수련19

“이 망할 할망구 같으니!”

버나드가 난데없이 발끈하며 멜라니아의 멱살을 붙잡았다.

“그럼 데보라를 데려오지 말았어야지!”
“케, 켁! 나 죽어!”
“버나드 그만해!”

데보라가 다급히 말렸지만 버나드는 꼼짝도 않고 멜라니아에게 험악하게 소리쳤다.

“무슨 생각으로 데보라를 데려온거야 이 마귀할멈아! 마녀들이 모이는 장소였으면 오지 못하게 막았어야지!”
“놔! 놓으란 말이다! 케켁!”

멜라니아가 발버둥치면서 지팡이로 계속 그의 등을 때렸다.

“제발 진정해 버나드!”

데보라가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멱살을 부여잡고 있는 버나드의 손을 억지로 떼어놓았다.
멜라니아는 옷깃을 여미며 버나드를 향해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은혜도 모르는 놈! 나가 죽어!”

데보라는 버나드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그를  끌어안은 다음에 멜라니아에게서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버나드, 왜 그렇게 화를 내는거야? 누나는 버나드랑 같이 와서 좋단다?”
“여긴 위험해! 발푸르기스의 밤에 마녀들은 지들이 믿는 신에게 인간 처녀를 제물로 바친다고! 보나마나 데보라를 제물로 바칠 생각인거야!”
“뭐어!?”

데보라가 화들짝 놀라며 멜라니아를 돌아봤다.

“할머니! 버나드가  말이 사실인가요?  제물로 쓰려고 데려온거……?”
“둘이 짝짝꿍 지랄들하고 처자빠졌네.”

멜라니아가 황당하다는듯이 낄낄 웃음을 흘렸다.

“이년아 너 처녀였어?”
“네, 네?”

데보라가 깜짝 놀라더니 이내 시선을 내리며 수줍게 대답했다.

“저 처녀인데요……”
“난 니가 처녀인줄도 몰랐어 이년아. 저 늑대새끼가 벌써 따먹고 데리고 사는줄 알았다.”
“말 조심해 멜라니아!”
“네놈이나 조심해!  주술을 걸어서 개구리로 만들어버릴까 보다! 밟아 죽여도 시원찮을 늑대새끼 같으니!”

 사람의 언성이 다시금 높아지자 데보라가 얼른 버나드를 말렸다.

“참아, 버나드. 할머니는 누나가 처녀인줄 몰랐대.”
“처녀든 아니든 데보라가 가긴 위험해. 그만 내려가자.”

멜라니아가 투덜거렸다.

“발푸르기스의 밤에 처녀를 제물로 바친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다. 한심한 인간들이 제멋대로 지어낸 얘기만 믿고 꼴갑 떠는 것 좀 봐라. 마녀가 무슨 악마인줄 알아? 우리도 다 선하고 평범한 사람들이야.”
“할머니, 정말 연회만 하는거죠?”
“만나서 수다 떠는 것 밖에 없어.”
“버나드 들었어? 제물을 바친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래.”

버나드가 멜라니아를 노려보았다.

“그 말, 사실이야?”
“내 말이 거짓이면 내가  딸이다 이 못난놈아!”

그렇게 잠깐의 소동 이후 세 사람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도중에 말을 나무 기둥에 묶어놓고 계속 등산을 이어갔다.

얼마 후, 산 정상쯤에 이르자 등산을 하던 세 사람의 눈에 안개가 자욱한 넓은 분지가 눈에 들어왔다.
허나 멜라니아의 말대로라면 성대한 연회가 벌어지고 있어야 하건만, 분명히 있어야할 마녀들의 모습이 코 빼기도 안비쳤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훵하니 트인 분지뿐이다.
버나드가 의아하게 생각하며 멜라니아를 돌아보았다.

“잘못 온거 아니야?”
“여기 맞다. 근데 아무도 없구만 그래. 오랜만에 인사나 하고 갈랬더니 아무도 없어……”

안개가 깔린 텅  분지를 바라보는 멜라니아의 모습이 아쉬움을 넘어 사뭇 쓸쓸해보이기까지 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짙은 안개 너머에서 짐승의 소리 같은게 들렸다.

“그르르르르……”
“이런!”

멜라니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황급히 버나드의 손을 붙잡았다.

“이리와라! 빨리!”
“뭔데?”
“닥치고 숨어!”
“버나드! 누나도 같이가!”

멜라니아는 다리가 불편했던 사람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전에 없이 재빠르게 행동했다.
세 사람은 근처에 있던 바위 뒤로 서둘러 몸을 숨겼다.

“그르르르르……”

쿠웅!
쿵!
안개 너머에서 무언가가 움직일때마다 지면이 미세하게 떨렸다.

“버나드, 괴물이 나타난거야…?”
“아마도.”

세사람이 숨을 죽인 채 조용히 지켜보고 있자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Cyclops)가 자욱한 안개를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녀석은, 거대한 돌망치를 한쪽 어깨에 올려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르르……”

한동안 주변을 살피던 녀석은 아무것도 눈에 띄질 않자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러고는 도로 안개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저 녀석 때문이었군.”

멜라니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 괴물 때문에 발푸르기스의 밤이 열리지 않았던게야.”
“마녀들의 힘으로 못 이기나요? 마법으로  죽이면 되잖아요.”

데보라의 천진난만한 질문에 멜라니아가 어이없다는듯이 픽 웃었다.

“저 괴물 녀석한테는 우리 마녀들의 주문이 안통한단다.”

버나드가 끼어들면서 이어 말했다.

“키클롭스의 또 다른 이름은 ‘마녀먹보’야.”
“마녀… 먹보?”
“마녀를 잡아먹고 산다는 얘기지.  녀석한테 마녀는 별미야.”
“진짜?”
“마녀들은 키클롭스와 마주치면 도망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게 없어. 그들이 가진 힘이 통하지 않으니까.”
“아… 그랬구나. 불쌍한 마녀님들……”

버나드가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자. 여기 더 있어봐야 위험해.”

멜라니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만하면 됐지? 약속 지킨거야. 나중에 딴말 하지마.”
“간만에 개떡 같은 괴물놈을 봤더니 다리가 후들거리는구나.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어서 내려가기 싫다.”

멜라니아는 자리에 주저앉은 채 종아리를 주먹으로 두드리며 움직일 생각을 안했다.

“그럼 여기서 쉬다와. 우린 먼저 내려가 있을게. 내일 아침에 봐.”
“지랄하고 자빠졌네.”

멜라니아가 지팡이로 머리를 때리려는 것을 버나드가 잽싸게 피했다.

“괘씸한 늑대놈. 이 못된 늑대야, 날 업고 내려가면 좋은걸 알려주마.”
“편하게 내려갈 생각으로 수작 부리는거면 그만둬. 빨리 일어나.”
“들어보면 솔깃할걸?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냐?”
“뭐……?”

버나드가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멜라니아를 쳐다보자 그녀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결국 그녀를 업고 산을 내려갔다.
하산하는 도중, 험한 산길을 헤쳐나가느라 힘들어보이는 버나드를 위해 돌아가면서 업자고 데보라가 말했으나 멜라니아가 벌컥 화를 내며 계집한테 업히기 싫다고 고집을 피웠다.

"계집한테 업히면 재수없어!"

하지만 그건 핑계고 버나드한테 업히니까 기분이 좋아보였다.

이윽고 말을 묶어둔 곳에 도착하자 버나드는 체력이 방전됐는지 바닥에 털썩 드러누웠다. 멜라니아가 낄낄 거리며 지팡이를 짚고 다가왔다. 두 번째 거래에 대한 보상이라며 그녀가 말했다.

“빠르게 성장하고 싶으면 키클롭스의 심장을 먹거라. 그 괴물의 심장이 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해줄 것이다.”

바닥에 누워 있던 버나드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거짓말인줄 아느냐?”

멜라니아는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나 혼자 키클롭스를 어떻게 잡으라는거야?”
“내가 아냐? 니가 알아서  일이지.”
“심장 하나면 돼?”
“글쎄다. 대략 다섯개 정도 먹으면 본래의 모습을 찾을  같지 싶은데.”
“미쳤군.”

어마무시한 괴력을 가진 키클롭스를 소년의 몸으로 혼자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검술 실력도 형편없는 상황이건만. 심지어 마나조차 다룰줄 모른다.
어느 세월에 놈을 사냥한단 말인가.
한 20년 후에?
버나드는 낙담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원상태로 돌아갈 방법이 정말 그것 하나뿐인가? 다른건 없어?”
“없다.”

마녀가 단정지으며 말을 이었다.

“마녀를 많이 잡아먹은 키클롭스의 심장일수록 효력이 강할게다. 사실……”

그녀가 동이 트기 시작한 하늘을 올려다 보며 고백했다.

“넌 마녀의 저주에 걸린거야. 사지가 잘린 널 다시 팔 다리 성한 몸으로 만들려면 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마녀의 저주를 풀려면 마녀먹보인 키클롭스의 심장이 필요한게다. 놈은 마녀의 힘을 무력화 시키는 재주가 있으니까.”

***

레아, 드디어 몸이 원상태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냈어.
허나 아쉽게도 그 방법은 지금의 내게 너무나 큰 시련처럼 느껴져.
하지만 널 죽게한 죄의 대가라면, 속죄하는 심정으로 기꺼이 시련을 받아들이겠어.

***


산에 다녀온 그날 아침.
버나드는 밤을 샜음에도 불구하고 잠을 안자고 검술 수련에 매진했다.
키클롭스 사냥이 힘들지언정, 저 앞에 자신이 가야할 목표가 뚜렷이 보이니 의욕이 무한정으로 샘솟았다.

“레아의 시체도 찾으러 가야 하고, 키클롭스도 잡아야 하고, 세상 편하게 자고 있을때가 아니야!”

좌우지간 그는 기사 신분이 되었기에 기사단장인 니콜라스의 통제에 따르며 다른 기사들과 함께 집단 생활을 해야했으나 미셸의 선처로 당분간 자유를 보장 받을 수 있었다.
아킨테군이 다음 목적지인 바들레인 성으로 이동하는 동안, 버나드는 그들과 함께 움직이면서 시간이 날때마다 틈틈히 공터를 찾아 목검을 휘두르거나 근력운동 및 달리기로 체력을 단련해 나아갔다.

그리하여 수련을 시작한지 겨우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버나드는 아킨테군이 행군을 멈추고 잠시 쉬는 틈을 타 또다시 숲속 공터를 찾아 목검을 휘둘렀다.
데보라도 따라와서 근처에서 나물을 뜯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녀가 해맑게 외쳤다.

“버나드 여기봐! 커다란 메뚜기야!”

버나드는 칼질을 멈추고 잠시 데보라를 돌아보았다. 수풀속에 쪼그려 앉아있던 그녀가 손에 쥔 메뚜기를 높이 흔들어보이는 광경을 보고 그가 피식 웃으며 밝게 소리쳤다.

“크네! 버려!”
“응!”

데보라가 메뚜기를 놔주는 모습을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저럴땐 누나가 아니라 아이 같다니까. 아니지, 나보다 열살 넘게 어리니까 아이 맞나?”

어쨌든 두 손으로 목검을 쥐고 다시 휘두르려는 찰나 어떤 하녀가 불쑥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버나드 경, 사만다님의 시중을 드는 하녀입니다.”

또 사만다인가.
버나드는 속으로 귀찮게 생각했다.

“날 찾으시는가?”
“아뇨, 이것만 전해주라고 하셨습니다.”

하녀가 바구니를 들어보이며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 신선한 과일과 갓 구운 빵, 와인, 양고기 등등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한가득이었다. 오전 내내 행군하느라 도구도 마땅치 않았을텐데 언제 이런 요리를 준비했단 말인가. 놀라웠다.

“혹여나 행군으로 버나드 경이 건강을 해칠까 우려하시며, 잠시 쉬는 동안 좋은 음식으로 원기를 회복하길 바란다며 사만다님께서 보낸 선물입니다.”

버나드는 바구니에 담긴 음식들을 보며 입안에 침이 고였다. 그동안 간절히 먹고 싶었던 고급요리도 보였다. 그러나 정색을 하며 하녀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대가는? 이걸 받는대신 뭔가 요구한게 있으신가?”
“특별히 전하라 하신 말씀은 없고, 그저 마음껏 맛있게 드셔달라고만 하셨습니다.”
“흐음.”

‘설마 맛좋은 음식으로  마음을 얻겠다는 수작인가?’

사만다의 꿍꿍이가 수상했으나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의 호의를 거절하기도 어려운 일이고 일단 공짜라니 받았다.
받고서 데보라와 마크, 멜라니아와 함께 맛있게 나눠먹었다.
모두에게 사만다의 선물이 아니라 기사에게만 특별히 지급되는 음식이라고 대충 둘러댔다.

그리고 다음날.
수련을 하는 중에 또 하녀가 찾아왔다.
오늘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새 장갑을 들고 왔다.

“맨손으로 목검을 다루면 손에 물집이 잡히거나 피부가 찢겨져 나가는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니, 안전하게 장갑을 끼고 훈련을 하시라며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섬세하시군.”

이번에도 거절할  없어서 받았다.

“사만다님의 각별한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해주게.”
“네.”

하녀가 떠난뒤 착용해보니 손에 꼭 맞는 검은색 가죽 장갑이었다.
확실히 장갑을 끼고 하니 손에 땀은 나지만 편하고 좋았다.
아울러 사만다의 의도를 대충 눈치챌 수 있었다.

“선물 공세인가……”

장갑을 바라보던 버나드는 돌연 나태에 빠진 이 나라 귀족들에게 환멸을 느꼈다.

“왕국이 혼란스러운 이때 한가하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사만다는 귀족으로서 명예와 자긍심조차 없단 말인가! 그저 쾌락에 환장해서는 사내에게 매달리는 꼴이라니! 참으로 추태가 아닐 수 없다!”

귀족으로서 백성들의 모범이 되어야한다는 원칙과 왕국을 지켜야 한다는 정의감을 지니고 있던 버나드는 분노했다.

그런데 갑자기……
외골수처럼 케케묵은 생각을 하던 그에게 문득 오래전 레아의 말이 떠올랐다.
두 사람이 나란히 길을 걷다, 우연히 어떤 남자가 여자에게 청혼을 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왜 저런짓을 하지?”

버나드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저럴 시간에 나라를 지킬 생각이나 하지 어리석은 녀석.”
“구애하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아요? 상대방의 사랑을 얻기 위해 용기있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건데 비난 받을 일이 아니에요. 저러기까지 얼마나 밤잠을 설쳤겠어요?”

레아는 어렸을때부터 동굴에서 홀로 지내며 사회와 단절된 사람을 살아왔지만, 버나드에게 구조된 이후로 놀라울 정도로 감성과 공감능력이 발달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게 두각을 나타냈다.

“단장님은 여자한테 구애해본적 없으세요?”
“없어.  오로지 왕을 위해서만 살뿐이다.”
“재미없는 사람. 오늘부터 연습삼아 저한테라도 구애해봐요.”
“싫다.”

버나드는 장갑을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것도 레아가 말한 구애행위인가. 사만다는 용기있게 내게 구애를 하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전 사만다를 비난하던 자신이 왠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식으로 남녀가 만나 연애를 하고 가정을 꾸리고 결국엔 인구가 늘어 왕국에 보탬이 되는걸까……”

하지만 그는 지금 연애를 할 입장이 아니다.
생각하던 것을 그만두고 목검을 쳐다봤다.

“난 오직 복수와 레아만을 생각하겠다.”

하지만 사만다가 보낸 하녀는 다음날 또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말 한 필에 버금가는 값비싼 선물을 들고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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