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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화 〉되찾는 노력, 수련15 (48/200)



〈 48화 〉되찾는 노력, 수련15

“그들과 마주치면 우린 전멸할겁니다.”

버나드가 다시 한번 강조했다.

“남자들은 모두 목이 잘린 시체가 되어 숲의 자양분이 될테고 여자들은 그들의 성노예가 되어 오크의 새끼를 임신하겠죠.”
“어른들 앞에서 대담한 소리를 지껄이는구나, 꼬마.”

르건이 어처구니 없는 웃음을 터뜨렸고, 사만다는 불쾌한듯 미간을 찌푸렸다.

“넌 항상 우리와 생각이 다르더구나. 샤를의 형제자매들과 전쟁을 하자고 하질 않나 지금은 오크로드가 이곳을 지나간다며 도망가자질 않나.”
“총장님, 솔직히 저는 오크로드의 아쉬르 기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10년전 한 영주와 그의 가신 300명이 이 바들레인 지역에서 하룻밤만에 몰살 당한 사건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두려워하고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네 말대로 우리가 물러선다고 해도 하룻밤만에 바들레인 지역을 벗어나기는 어려워.”
“최대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합니다.”
“그런 다음엔? 꽁무니 빠지게 도망쳤더니 정작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좋은일 아닌가요?"

사만다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콧방귀를 꼈다.

“선발대가 앞에서 어영부영하면 본대의 일정이 차질을 빚게 돼. 그 말이 무슨 뜻인줄 알아? 돈이 더 들어간다는 소리야. 우리 아킨테군이 한번 움직이는데 하루에 얼마씩 쓰는줄 아니?”
“여비를 감당하기 위해 플랫폼을 운영하잖습니까.”
“말은 쉽네.”

버나드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본대의 위험을 감지하는게 선발대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수행해야합니다.”
“이대로 미셸님께 돌아갔다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내게 실망하실거야. 그리고 아킨테의 영주들은 꼬마말만 믿고 선발대를 후퇴시켰다고 나를 비웃겠지.”

사만다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대화를 끝내려했다.

“선발대장은 나고 내가 모든 책임을 진다. 버나드. 나는 널 참모로 데려온게 아니야.  역할은 짐꾼이란다. 나는  일을 할테니 너는 가서 짐꾼의 역할을 수행해.”

그녀는 말을 마치자 곧바로 자리를 떠나버렸다.
르건이 다가와서 말했다.

“왜 오크로드를 들먹이며 문제를 일으키는 거냐. 나타날지 안나타날지 확실히 아는 것도 아니면서.”
“운명은  인간을 저울질 합니다. 자신의 운명을 예측할  있다면 모든 인간이 승승장구 하겠죠. 모르니까 각자의 선택에 의해 누구는 행운을 얻고 누군가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는 겁니다.”

르건이 피식 웃었다.

“애늙은이 같은놈.”

그 한마디만 남기고 그도 떠났다.
홀로 남겨진 버나드는 그제야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난 이 집단에서 한없이 초라하고 작은 존재일뿐인가……”

시선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붉게 물든 하늘속에 구름이 떼지어 흐르고 있었다. 멍하니 쳐다보고 있자니 약간 붉은빛이 감돌던 레아의 눈동자가 생각난다.

“레아, 내가 주제 넘은 짓을 한 것일까? 작고 힘 없는 존재로 전락한 나는 예전과 달리 집단내에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 그리고 분명, 위기가 닥쳤을때 저들 모두를 살릴 수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버나드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잠시 침묵을 지키다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하루라도 빨리 프레드릭왕에게 다가가려면, 미셸의 세력이 약해지는 것을 막아야 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편, 버나드와 헤어진 사만다는 모닥불 근처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뭐해?”

르건이 다가오며 묻자 사만다가 펜대로 코를 긁적거렸다.

“버나드가 한 말, 일단 미셸님께 보고 해야할 것 같아서.”
“오크로드가 여길 지나간다는 어처구니 없는 얘기?”
“만약 버나드의 말대로 우리가 전멸당하면 우리가  죽었는지 자세한 정황을 알려줄 사람이 없어지잖아.”
“설마 꼬마의 허황된 상상을 믿는거야?”
“난 대장으로서 부대 내에서 벌어진 일을 기록으로 남길 의무가 있어. 그것이 유의미하든 무의미하든 간에 시간이 지나고 나면 무의미한 자료가 유의미해질 수도 있는 일이니까. 물론 나도 버나드의 말을 신용하지는 않아. 어디까지나 모든 상황을 넓은 시각에서 공평하게 바라보려는 대장의 책무를 다 하고 있을 뿐이지.”

르건이 피식 웃었다.

“내가 대장이었다면 가장 먼저 했을 일이,  꼬마를 찾아가 다시는 헛소리를 못하도록 목구멍을 찢는 일이었을 거야.”


***


그 후로 아무런 대책없이 시간만 무정하게 흘러갔다.
어느덧 세상에 어둠이 가라앉았고 물기를 머금은 대지는 뿌연 안개를 일으키며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야영지를 벗어난 버나드는 조용히 주위를 살피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오른손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이럴때 세븐 로얄이 있었다면…”

오크들을 물리치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도움은 될 것이다.
검술의 일부분과 체술에 대한 기억을 찾은 것처럼 봉인된 세븐로얄의 힘을 되찾았으면 하는 마음에 혼자 이곳에 왔다.
유유히 흐르는 계곡물을 향해 오른손을  뻗으며 정신을 집중시켰다.

“합!”

기합을 넣으며 온몸의 힘을 뇌에 집중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괜스레 뻘쭘했으나 어차피 처음부터 잘 안될줄 알았다.
고개를 흔들며 다시 한번 정신을 집중했다.

“합! 합! 하압!”

여러차례 힘을 쓰려 노력했으나 정작 세븐로얄은 깜깜 무소식.
 어떤 힘도 느껴지지 않는다.
짧게 한숨을 내쉬며 이번에는 땅바닥을 쳐다봤다.

“흡!”

바닥에 깔린 흙들을 허공으로 들어올리는 상상을 해봤으나 여전히 통하지 않는다. 땅바닥은 그를 비웃듯 잠잠하기만 했다.
버나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양손을 털었다. 그러면서 다시 도전해보자고 각오를 다졌다.

“하앗! 헙!”

그리하여 깜깜한 밤중 계곡가에서 혼자 뻘짓아닌 뻘짓을 하길 수십차례.
그는 결국 허탈한 심정으로 맨바닥에 드러누웠다.

‘왜 안되는 거지?’

기억을 되살리려 노력해보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세븐로얄을 어떤식으로 터득했는지, 어떻게 힘을 발휘할 수 있었는지, 전혀 모르겠다. 딱 그 부분만 새하얗게 지워져 있다.

“지쳤다……”

이내 포기하고 땅바닥에 누운 채로 눈을 감았다.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차라리 꿈에서라도, 세븐로얄에 관한 것을 꿈으로라도 꾸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잠들 수 없었다.
갑자기 어두웠던 숲에 포탈이 활짝 열리며 다수의 오크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

“습격이다! 모두 일어나!”

불침번을 서고 있던 기사가 뿔나팔을 불며 서둘러 사람들을 깨웠다.
금속장비로 완전무장한 오크들은 숲에서 인간을 발견하자 일절 주저하지 않고 야영지를 덮쳤다. 그 숫자는 선발대의 인원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았다. 그들은 특유의 호전성을 앞세워 개떼같이 달려들었다.

“오, 오크라니!?”

사만다는 크게 당황하며 허겁지겁 칼을 뽑아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주위를 둘러보고 전의를 상실했다. 오크가 무려 한 두 놈이 아니었다. 어딘가에서 줄기차게 튀어나와 무리지어 덤벼들었다. 놈들이 착용한 장비 또한 보통의 오크들이 입는 것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질 좋고 단단해보였다.
불현듯 한쪽에서 비명이 들렸다.

“저, 저리가!”

그곳에는 미처 갑옷을 다 입지 못한 밀라르네가 한무리의 오크들과 대치중이었다. 한밤의 습격을 예상치 못하고 마음 편히 갑옷을 벗고 있던게 실수였다. 그녀는 두려운 눈빛으로 자신을 에워싼 오크들을 예의주시하며 칼을 겨누고만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한 녀석이 그녀에게 달려들자 즉각 반응하며 민첩하게 칼을 휘둘렀다. 이래봬도 그녀는 고위기사였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당황해 덜컥 겁먹었지만 실력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곧 안정을 되찾아 눈부신 실력을 발휘할만한 기량을 갖고 있었다. 더불어 눈앞에 오크가  마리 있든 거뜬히 처리할  있는 자신감까지 몇 배로 솟구쳐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그녀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아울러 적은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칼을 휘둘러 한 녀석을 부상입혔다고 생각하는 순간, 뒤에서 무언가가 불쑥 그녀의 양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그녀를 끌어안았다.

“어!?”

꼼짝없이 붙잡히자 밀라르네는 본능적으로 발버둥치며 발악하고 저항했다.
그러나 오크들은 오히려 그 상황을 즐기며, 여럿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그녀의 갑옷을 부수고 옷을 찢고 돌아가면서 범하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악! 시, 싫어! 살려줘!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어요! 꺄아아악!”

밀라르네가 당하는 자리에서 연이어 비통한 절규가 메아리쳤지만 동료들중 그 누구도 그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못했다.
선발대 모두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감당하기도 벅찼다.

“이 개자식들이 감히 어디서 인간한테!”

젠더웬 역시 오크들에게 둘러싸여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하필이면 그가 있던 자리에 오크 군단을 지휘하는 사령관이 나타났다.

“갸르쿠.”

오크 사령관이 손짓하자 젠더웬을 에워쌌던 오크들이 전부 뒤로 물러났다. 뒤이어 오크 사령관은 젠더웬을 향해 덤비라는 손짓을 했다. 일대일 승부를 바라는 것 같았다. 젠더웬은 히죽 웃으며 그 승부를 받아들였다.

“오호라, 네놈이 두목인가 보구나.  만난걸 후회하게 해주지.”

그는 즉시 창을 꼬나 쥐고 달려들었다.
오크 사령관은 그의 일격을 재빠르게 피하며 단 두 번의 공격으로 젠더웬을 깔끔하게 죽여버렸다. 처음 칼을 내려치자 젠더웬의 양손목이 잘렸고, 두 번째 칼을 휘두르자 그의 목이 날아갔다.
소만한 크기의 늑대를  오크들이 금세 젠더웬의 시체 주위로 몰려들었다. 이내 여러마리의 늑대가 머리를 맞대며 살점을 뜯어먹었다.

다른곳에서는 르건이 오크 무리속에 뛰어들어 한창 칼을 휘두르는 중이었다.
숨이 차오르긴 했지만 그는 아직 건재했다. 번개 같이 빠르고 예리한 칼날이 오크 한 마리의 목을 꿰뚫고, 이어 피를 흩뿌리며 뒤로 쓰러지는 상대를 밀쳐내고 돌아서면서 재차 칼을 휘둘렀다. 그 다음 그는 근처에서 고전중인 사만다를 향해 소리쳤다.

“이쪽으로 와!”

푹!
어이없게도, 갑자기 먼 곳에서 날아온 화살이 르건의 이마에 정확히 박혔다.

“큭…!”

그는 죽음을 직감하면서 두려운 기분이 솟구쳤고,  순간 버나드를 떠올렸다.

“젠장할……!’

동시에 그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르건이 이마에 화살이 박힌  뒤로 털썩 나자빠지자 오크들은 기다렸다는듯이 그를 덮쳤다.
값비싼 갑옷을 벗겨내고, 목을 자르고, 가슴을 갈라 아직 살아있는 생간과 심장을 파먹었다. 어떤 오크는 그의 음경과 고환을 잘라 보란듯이 목에 걸고 좋아했다.

“우카챠!”

오크들의 공격은 매서웠고 잔인했다. 31명이었던 선발대 인원들은 어느새 다섯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만큼 줄어들었다. 노는 오크들은 공격에 가담하기 보다는 여유롭게 인간들의 짐과 소지품을 뒤지는데 열중하거나 오크로드가 지나갈 길을 반듯하게 닦아 놓기 위해 벌써부터 길 청소를 하는 놈들도 더러 있었다.

“어, 어쩌다 이런 일이…”

공포를 느낀 사만다의 입술이 부들거리며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 오크들에게 대항했지만  숫자는 압도적이었고 자신들의 힘으로 무리였다. 조금 전 오크에게 맞아 바닥에 쓰러진 그녀의 시선은 주변에 쓰러진 동료의 시체에 향해 있었다. 누구 하나 제대로 서 있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무너졌고, 모두가 죽었다. 그나마 산 사람은 전부 여자들이었고, 그들은 지금 모두 강간을 당하고 있었다. 그녀는 충격에 빠진 채 망연자실했다.

사만다의 몸을 짓누르고 있는 오크들은, 전의를 상실해 넋나간 사람처럼 누워있는 그녀의 옷을 벗기느라 혈안이 되어있었다. 놈들에게 자비란 없었다. 한 녀석이 힘껏 튜닉을 찢자 흰 피부를 가진 그녀의 젖가슴이 출렁거리며 밖으로 드러났다.

‘버나드의 말을 들었다면…! 들었더라면!’

그의 경고를 무시한 것이 이처럼 크나큰 절망을 가져올줄이야.
그러나 이제와서 후회해봐야 늦었다.
오크에게 붙잡힌 인간 여성이 어떻게 될지  알았다.
그녀는 비참하고 잔인하게 짓뭉게질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며 자살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크들은 경험이 많은듯 그녀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그녀는 애타게 신을 부르짖었다.

‘신이시여 저희를 구원해주소서! 제발!’

그에 응답하듯, 버나드가 거짓말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버나드……?”

사만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와 동시에 울려퍼지는 오크들의 비명소리.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 버나드의 힘으로 그들을 죽이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사만다를 짓누르느라 방심하고 있던 오크들에게 한번씩 칼을 휘둘러 부상을 입힌뒤 놈들이 고통에 아우성치는 동안 황급히 그녀를 부축했다.
버나드의 어깨에 의지한 사만다가 힘없이 고개를 떨구며 울먹였다.

“어린 너라도 나타나준게 이처럼 반가울줄이야...”
“쉿, 빨리 여길 벗어납시다.”

두 사람이 현장을 이탈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크들은 도망자가 있다는 것을 사령관에게 알렸다.
오크사령관은 즉시 늑대를 잡아타며 오른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쫓아라! 로드께서 행차한다는 사실을 인간들이 결코 알아서는 아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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