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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화 〉되찾는 노력, 수련11 (44/200)



〈 44화 〉되찾는 노력, 수련11


“얘들은 또 어딜 싸돌아다니길래 늦는거야.”

해가 저물어 주변이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다. 마크는 텐트 앞에서 주변 풍경을 스케치 하던 일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고프구만. 찾으러 가야하나…”

그림 도구들을 대충 정리하며 버나드와 데보라를 찾으러 갈까말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그에게 낯선이들이 찾아왔다.

“자네가 마크 라일리인가?”
“그런데요? 누구십니까?”

마크는 어리둥절한 눈길로 세 명의 사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가운데에 있던 사람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우리는 윙블 영지를 다스리는 도만 영주님께서 보낸 사람들이네. 자네를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았어.”
“예? 저를요? 왜요?”
“오늘밤 우리 윙블 가문은 성대한 연회를 열 계획이네. 도만 영주님께서는 자네가 참석하여 연회장의 그림을 그려주기를 바라고 계셔.”
“허, 헉! 정말요!? 저를 어찌아시고…?”
“우리 가문의 은인인 버나드의 추천을 받았다네.”
“버, 버나드요!?”

깜짝 놀란 마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즉시, 자초지종이야 어찌 되었든 서둘러 도구를 챙기고 세 사람을 따라나섰다. 그림을 그리게 해주겠다는데 마크에게 그만큼 신나는 일이  어디있을까.
이윽고 야영지를 빠져나와 영주의 관저에 도착하자 옥외는 벌써 연회가 시작되어 시끌벅적했다. 윙블 가문 사람들과 마을 주민들이 한데 어울려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우와…”

마크는 쇠꼬챙이에 매달린 거대한 통돼지가 불에 구워지는 모습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오랜만에 보는 먹음직스런 음식이었다.
얼마뒤, 집사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에 도만 영주가 있었다. 그리고 버나드와 데보라도 만났다.

“오호, 자네가 마크인가? 그림을  그린다지?”
“마,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도만 영주와 인사를 나누며, 그에게서 연회장 그림을 그려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마크는 꿈인가 생시인가 믿겨지지 않았다. 영주 가족들과 나란히 당당히 앉아있는 버나드에게 후다닥 달려가 속삭이며 물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일이야? 나 무지 당황스럽다.”
“떨  없어. 그림 그려주고 돈 받는것뿐. 익숙하잖아.”
“야야, 창녀나 평민 따위가 아니라 귀족이라고! 실수라도 하면 감옥가!”
“오라버니, 기회라구요 기회. 유명해질 기회.”
“드, 드디어 나도 음지를 벗어나 양지로 가는거냐? 요번 건 대박나면 앞으로 귀족들이 찾아주는거지? 어허허, 떨린다 떨려.”
“저러다 실수해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면 재밌겠다.”
“데보라 너! 이 오빠를 응원해주지는 못할망정 그걸 말이라고 하냐!”

마크는 옥외 연회장 안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곳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그림을 그리기직전 그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다시 버나드를 찾아갔다. 그리고 쑥스러운 얼굴로 나지막이 말했다.

“…일 소개시켜줘서 고맙다.”

마크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잊지 않을게. 그리고 원하는거 있으면 당장 말해. 뭐든 해줄테니까.”

버나드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간날때…”

반짝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그가 말을 이었다.

“내가 말하는 어떤 여자를 그려줘. 그거면 돼.”

***

버나드는 연회 내내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건배를 나눴다.
누구도 그를 소년이라 생각지 않았고, 영부인을 구해준 영웅으로만 보았다. 옆자리에 사람이 바뀌며 계속 술을 권했다. 그리고 버나드 또한 그동안 밤의 늑대들 수장이라는 점때문에 일부러 술을 삼갔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마음껏 마실 생각이었다. 하지만 몇 번째인가 잔을 받았을때, 버나드는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꼈다. 본래 그의 주량대로라면 더 마실 수 있었으나 체격이 작아진 것이 원인인지 단 몇 잔만으로도 몸에 무리가 갔다. 그런 까닭에 적당히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이만 들어가보겠습니다. 취해서 피곤하네요.”
“알겠다, 푹 쉬려무나. 버나드를 방으로 안내해주거라.”

버나드가 쉬고 싶다고 하자 마렐 부인이 직접 신경을 써줬다. 그녀는 사람을 시켜 저택에서 제일 좋은 방을 버나드에게 내줬다. 관저를 방문한 귀족들이 묵는 방이었다. 반면에 버나드가 일어나자 같이 따라나선 데보라에게는 하인들이 묵는 방을 내주었다. 데보라의 신분이 신분이니만큼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데보라도 별 불만없이 받아들였으나 그녀는 오늘밤 윙블 가문의 하녀들과 자고 싶지 않았다. 버나드와 함께 자고 싶은 욕심이 솟구쳤다.

‘몰래 버나드한테 갈거야.’

연회장을 나온 버나드와 데보라는 서로 잘자라는 인사를 나누고 각자 다른 사람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버나드는 2층의 방으로 향했다. 얼마뒤 방안에 들어서자 실내는 캄캄했다. 하녀  명이 얼른 창문으로 다가가 커튼을 젖히고 촛불을 켰다. 순간 어둡던 방이 환해졌다. 하녀들은 빠르게 침대 정리까지 마치며 버나드를 귀엽게 바라봤다.

“잘 자렴. 누나들 갈게.”
“마님을 구해줘서 고마웠어. 좋은 꿈꿔.”

버나드가 주인들의 은인이긴 하지만 그녀들 입장에서 버나드는 그저 다른 가문의 종자에 불과했다. 버나드도 그걸 알고 약간 취기가 오른 마당에 착한 소년처럼 밝게 손을 흔들며 그녀들을 내보냈다.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침대에 뛰어들며 털썩 드러누웠다.

“하아, 편하다.”

이게 얼마만인가. 실로 오랜만에 푹신한 침대에 누워본다. 줄곧 차고 딱딱한 땅바닥에서만 자다가 부드러운 시트에 몸을 눕히니 천국이 따로 없다. 침대에 누워있는게 너무 좋은 나머지 아무 생각도 안들었다. 눈이 스르르 감기며 잠이 솔솔 왔다. 저택의 벽은 돌로 되어 두꺼웠지만, 정원에서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소리는 막아주지 못했다. 연회의 주인공이 빠졌는데도 불구하고 윙블 가문 사람들은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인 것 같았다. 남자와 여자들이 한데 뒤섞여 무슨 짓궂은 장난들을 하는 것인지, 바깥에서는 계속 여자들의 꺄악 꺄악 거리는 즐거운 비명소리가 자주 들려왔다.

“쿠울……”

사람들이 술마시고 노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자장가 삼아 잘 수 있을 정도로 버나드는 긴 여독으로 몸이 피곤했고 아늑한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잠깐 코를 골며 잠든 사이, 갑자기 창밖에서 똑똑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잠귀가 밝았던 버나드는 단숨에 눈을 떴다.
똑똑.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곧장 창가로 가보니, 창밖에 위태롭게 매달린 인물을 보고 버나드는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질뻔했다.

“데보라!”

그는 서둘러 창문을 위로 들어올리고 황당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왜 거깄어?”
“보고 싶어서 왔단다?”

데보라가 양팔로 힘겹게 매달린  해맑게 웃는다. 예쁘게 자랐던 그녀의 손톱이 깨지고 긁히고 말도 아니었다. 그녀가 어떤 고생을 해가며 벽을 올라왔는지 고스란히 말해주었다.
버나드는 기가 막혔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그렇지 건물 2층을 기어올라온다는게 말이나 되는가. 그녀가 이렇게까지 대책없는 짓을 벌일줄은 꿈에도 몰랐다. 버나드는 황급히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도와주었다.

“방문으로 오면 되잖아.”
“나 같이 천한 것들은 관저 안으로 들어오면 안된다고 경비병들이 막는거 있지.”
“아까 나한테 말하지 그랬어.”
“놀래켜 주고 싶었어.”
“위험했다고.”

버나드가 혼내듯 말했지만 그녀는 듣지도 않고 누가 보든 말든 상관없이 입고 있던 드레스를 훌러덩 벗어던지더니, 신발을 벗고 가느다란 어깨끈이 달린 나시 원피스 잠옷을 입은 채 침대위로 훌쩍 뛰어들었다.
침대가 푹신하다면서 방방 몸을 튕기며 즐겁게 웃던 그녀는 갑자기 버나드를 쳐다보면서 누운 채로 양팔을 활짝 벌렸다.

“자, 버나드 이리온~ 누나한테 안기렴.”

 모습을 보며 버나드는 별다른 생각이 안들었다.

“앞으로 절대 창문으로 들어오지마. 위험하다고.”

데보라한테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침대 위로 올라가 그녀의 옆자리에 드러누웠다. 그러자 데보라가 기다렸다는듯이 그를 꼬옥 껴안았다.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에 버나드의 얼굴이 파묻혔지만 늘 그렇게 지내왔기에 버나드는 무덤덤했다.

“우리 맨날, 난 좁은 텐트에서 자고 넌 차가운 바닥에서만 잤잖아. 남매처럼 친한 사이인데 항상 따로 자니까 서운한거 있지. 그래서 오늘 같은날 기념으로 같이 자보고 싶었어. 누나의 소원이니까 너무 뭐라고 하지 말아줘. 알았지?”
“따로 자나 같이 자나 똑같은걸 뭐.”
“아니야, 달라.”

데보라가 서운하다는듯 얼굴을 찡그렸다.
사실 버나드도 데보라와 함께 있는 것이 싫지 않았다. 그녀의 보드랍고 포근한 젖가슴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으면 마치 구름 위에 누워있는듯한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의 탐스러운 젖가슴은 남성의 본능을 자극하는 기분 좋은 향기를 풍겼다.

“기왕 왔으니 어쩔 수 없지. 데보라도 피곤할텐데 푹 자.”
“먼저 자. 누나는 버나드가 잠든거 보고 잘게. 자는 동안 내가 지켜줄테니까 걱정말고 편히 잠들으렴.”
“응……”

버나드는 졸린 목소리로 대답하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데보라의 따뜻한 가슴은  달전 품에 안았던 창녀의 맨살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얼굴에 맞닿은 데보라의 살결이 그를 간지럽혔고, 그는 살며시 얼굴을 비비며 그 감촉을 감미롭게 음미했다.

“라라라~♪”

문득 귓가에 조용하고 평화로운 노래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데보라가 등을 토닥이며 자장가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를 정말 잘불렀다. 마음을 울리는 그 노래소리 때문에 버나드는 더욱 여자가 그리워졌다. 마음껏 성욕을 채우고 정액이 바닥날때까지 사정하고 싶었다.
그렇게 졸렸던 정신이 점점 흥분으로 달아오르면서 버나드는 부풀기 시작하는 자신의 성기를 느꼈다. 결국 그는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겼다. 데보라의 어깨끈을 내리고 유두를 찾아 덥썩 입에 물었다. 그리고 이빨로 희롱하며 강하게 빨아당기자 데보라는 당황하던 와중에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토해내며 몸을 떨었다.

“하읍. 흐응…!”

어째서인지 데보라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녀는 온몸에 퍼지는 쾌감에 몸둘바를 몰라하면서도 버나드에게 순순히 젖을 내주었고, 침대 위에서 이리저리 몸을 흔들어대며 계속해서 흐느꼈다.

“으응, 하아, 흐읍…!”

버나드는 그녀의 가슴을 짧게 유린하고는 칼로 자르듯이 단칼에 멈췄다. 분홍빛 유두가 그의 침으로 번들거렸다.

“미안해.”

버나드는 자신이 벌인 행동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담담히 사과했다.

“갑자기 야한 기분이 들었어. 근데…, 데보라한테 이러면 안될  같아.”

버나드는 데보라를 사랑해서 성욕이 들끓은게 아니라 단지 하룻밤 상대가 필요했을뿐이다. 만약 데보라도 관계를 원한다면 모르겠지만, 예전에 데보라한테 처맞은 것도 있고 창녀 취급을 하면 그녀가 싫어한다는 것을 알기에 즉시 자제했다.

“아직도 몸안에 악마가 있는 거야?”

잠깐의 애무로 인해 데보라도 흥분했는지 그녀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아울러 그녀의 두 뺨이 살며시 홍조로 달아올라 있었다.

“못 자겠니?”

데보라가 갑자기 이불밑으로 손을 뻗어 버나드의 페니스를 만졌다. 바지채로  차례 가볍게 움켜쥐며 크기를 확인하더니 굵고 단단해진 것을 깨닫고 그녀가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악마한테 물든 정액을 빼야 잘 수 있는거지? 안그럼 몽정하는거지?”
“데보라?”

제 집 드나들듯이 자신의 성기를 거리낌없이 만져대는 그녀를 보고 버나드가 의아해 하던 참이었다.
그때 밖에서 불쑥 연회를 즐기던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별똥별이다!”
“와아! 저게 몇개야!”

버나드는 무심코 침대를 걸어나와 창가로 걸어갔다.
때마침 저 멀리 밤하늘에서 별똥별  개가 곡선을 그리며 대지에 떨어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뒤를 이어  개의 별똥별이 긴 꼬리를 남기면서 떨어지는 중이었다.

“어머, 아름다워!”

데보라도 창가로 와서 별똥별을 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즐거워했다.
버나드 역시 별똥별이 떨어지는 장관을 보며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울러 경이로운 밤하늘을 잠시동안 넋놓고 보고 있으려니 언젠가 초 겨울밤, 멋진 장관을 선사하던 밤하늘의 별똥별을 봤던 때가 떠올랐다. 당시 레아와 단 둘이 구경했었다.

‘레아가 무척 좋아했었지.’

만약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오늘밤 저 별똥별을 보고 필시 기뻐했으리라.

‘아니야 어쩌면… 그녀가 내게 보여준 것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데보라를 향해 품었던 욕망을 환기시켜줄 생각에 하늘에 있는 레아가 자신을 떠올리라며 일부러 밤하늘에 멋진 경관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하고.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레아, 설마 질투 하는거냐?”

뭐, 덕분에 머리가  맑아지며 음란한 생각이 사라졌지만.
버나드는 별똥별을 보고 즐거워하던 레아를 떠올리며 편히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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