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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화 〉되찾는 노력, 수련8 (41/200)



〈 41화 〉되찾는 노력, 수련8

미셸은 니콜라스를 데리고 멜라니아가 있는 연구막사를 찾았다.
연구막사는 자신의 부탁을 받아들인 멜라니아의 주술을 돕기위해 미셸이 임시로 마련해준 것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멜라니아는 의자에 앉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미셸은 흐뭇하게 웃으며 자연스럽게 다가갔지만 니콜라스는 입구에서 걸음을 멈추고 실내를 물끄러미 살폈다. 그에게 있어 마녀는 어디서나 환영받지 못하는 꺼림칙한 존재였다. 사악하고 불길하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멜라니아님.”

미셸이 마녀의 이름을 두 번 더 부르자 그제야 멜라니아가 눈을 떴다.

“오… 너구나.”
“어디 아프신건 아니죠?”
“나이 먹고 어딜 돌아다니는게 쉬운게 아니야.”
“하긴, 계속 이동하려니 피곤하시겠네요. 불편한게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주세요.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늑대가  몰래 도망치지 못하도록 감시나 잘해줘. 내가 바라는건 그것 하나뿐이야.”
“명심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네크로맨시 의식은 성공했나요?”

멜라니아는 대답없이 지팡이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절뚝거리며 길다란 보라색 천이 덮여 있는 곳으로 걸어가더니 지팡이로 천을 벗겨냈다.
천을 치우자 드러난 시체를 보고 니콜라스가 눈을 크게 떴다.

“오, 맙소사.”
“낄낄.”

멜라니아는 놀라는 그를 비웃듯 한번 쳐다보고는 미셸을 돌아봤다.

“실패다.”

 말에 미셸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탄식부터 흘러나왔다.

“안타깝군요.”

그녀는 아쉬운 표정으로 검게 변해버린 시체가 누워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멜라니아는 지팡이로 시체에 붙어있는 파리를 쫓았다. 십여마리의 파리가 허공을 윙윙 맴돌았다. 미셸은 발걸음을 멈추고 시체를 내려다 보았다. 심장에 칼이 찔린 자국이 있는 그것은 블라쉬의 시체였다.

“의식을 행함에 있어서 뭔가가 부족했나요?”
“주술의 대가는 비싸지. 뭔가가 부족했던게야. 실체가 있는 재료가 아닌 무형의 무언가가.”
“사람의 생명이라도 받쳤어야 했나요?”
“생전에 버나드를 증오했으니 버나드의 피를 바쳤어야했을지도 모르지 낄낄.”
“그건 안돼요.”

애당초 미셸은 네크로맨시 의식을 통해 죽은 블라쉬와 잠깐이나마 대화를  생각이었다. 대화를 통해 버나드의 정체를 캐묻고 현재 왕실의 상황에 대해서도 물어볼 계획이었다. 그러나 의식이 실패했으니 기대했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미셸님, 시체에 너무 가까이 계시면 몹쓸병이 옮을지도 모릅니다. 멀리 떨어져 계시기를 간곡히 청합니다.”

니콜라스의 근심 어린 조언에 미셸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멜라니아를 쳐다봤다.

“버나드가 밤의 늑대들 출신이라는 것 말고, 그에 관해서 더 아는게 있으신가요? 무엇이든 좋으니 말씀해주세요.”
“몰라 난 그런놈. 징그러워.”

미셸의 요청을 멜라니아는 말을 돌리며 뿌리쳤다. 버나드에 대한 이야기는 절대 하고 싶지 않다는듯이 괜히 짜증을 내며 욕설을 내뱉었다.

“입에 담기도 싫어. 저주 받을 놈.”
“마녀도 싫어하는게 있나보군요.”

니콜라스가 지그시 쳐다보며 그런 말을 꺼내자 멜라니아가 낄낄 웃었다.

“저 못된 놈, 날 의심하는거 봐라. 네 몸에 자궁을 심어주랴?”

귀가 썩어들어갈 것 같은 모욕을 듣고 니콜라스는 질색을 하며 미간을 찡그렸다.

“입조심하십시오. 그리고 버나드도 버나드지만 당신 역시 왜 왕궁을 떠났는지 수상합니다.”
“그만해요, 니콜라스.”

미셸이 끼어들며 니콜라스에게 나가있으라는 손짓을 했다. 니콜라스는 가볍게 고개를 숙인  밖으로 나갔다.

“죄송합니다, 멜라니아님. 니콜라스는 주술을 달가워하지 않아서 그래요.”
“기사들이 뭐 그렇지. 쯔쯔. 어쨌든  시체는 더 이상 쓸모 없다. 너무 썩어서 약재로도 못쓸게야.”

멜라니아가 죽은 블라쉬의 마른 성기를 지팡이로 툭툭 쳐댔다.

“알겠어요. 치우라고 하겠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하루만  갖고 놀아보마. 사람은 내일 보내거라.”
“네.”

미셸이 떠난 후, 해질 무렵 버나드가 데보라와 함께 연구 막사를 찾았다.
버나드는 훈련을 마치고 온 상태라 온몸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손등으로 얼굴에 묻은 땀을 훔치며 물었다.

“미셸이 왔다갔나?”
“그렇다 이놈아.”
“그럼 시작해도 되겠군.”
“약속 잊지말거라.  속인거면 네놈을 씹어먹을거야.”
“해준다니까.”

일찍이 버나드는 미셸이 블라쉬에게 네크로맨시 주술을 걸려 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멜라니아와 은밀히 거래를 했다. 그의 제안은, 미셸의 요청을 거절하면 멜라니아의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블라쉬와 대화를 하고 싶었다.
그에 멜라니아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레아 때문에 들어주는게다.”

멜라니아는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시체를 덮었던 천을 치웠다. 그러자 검게 변한 시체를 본 데보라가 기겁을 하며 버나드의 뒤로 냉큼 숨었다.

“무, 무서워…!”
“진정해. 그냥 시체일뿐이야.”
“그냥 시체도 누나는 무섭단다? 어머 저것봐! 방금 손이 꿈틀 거렸어!”
“시끄러워 이년아.”

멜라니아가 짜증을 냈다.

“부정타게시리 꼴깝을 떨고 있어.”

마녀가 벌컥 화를 내자 데보라는 울상을 지으며 말을 삼켰다.
멜라니아는 블라쉬의 머리맡으로 가서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며 두 눈을 감고 있는 시체의 얼굴에 짐승의 피를 뿌렸다. 그러자 시체가 상체를 벌떡 일으키더니 눈을 떴다.

“꺄악!”

데보라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반면에 버나드는 블라쉬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그를 유심히 살폈다.

“내가 누군지 아나?”

블라쉬의 시선이 천천히 버나드를 돌아봤다.

“…버나드.”
“넌?”
“난…… 블라쉬.”

그의 목소리는 아무런 감정이 안담긴 무미건조한 톤이었다. 버나드를 봐도 어떠한 반응이 없었다.

“네게 묻고 싶은게 있다.”

버나드는 일절 두려워하는 기색없이 블라쉬의 눈을 마주보고 말을 이었다.

“레아는 처형 당했나?”

블라쉬가 멍하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레아를 발견했을 당시, 그녀는 왕비를 살해한 현장에서 독약을 먹고 자살한 상태였다.”

버나드가 미간을 좁혔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말이었다.
뒤에 앉아있던 멜라니아가 끼어들었다.

“처형 당했다는건 거짓말이다. 왕비와 왕세자를 죽인 범인이 자살했다고 공표하는 것보다 왕실기사들이 잡아서 잔인하게 처형했다고 알리는게 더 낫다는 판단하에서 왕실 놈들이 거짓말을 퍼뜨린게지.”
“그런가…”
“또 하나 알려줄까?”

멜라니아는 신이 난듯 떠벌렸다.

“레아가 일을 벌이기전 나를 찾아와서 하는 말이, 네가 체포되지 않도록 도와주라고 했어. 하지만 난 널 돕지 않았지! 늑대가 감옥에 가서 고통을 받길 바랐으니까! 낄낄!”

버나드는 체포되는 날 아침을 떠올렸다.

“아침에 갑자기 나타나서 마차에다가 늑대의 피를 뿌렸을때 말인가? 그때 미리 귀띔해줬다면 내가 감옥에 안갔을지도 모르겠군.”
“낄낄, 샘통이다!”
“망할 할망구 같으니.”

버나드는 내심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고 두번째 질문을 담담히 이어갔다.

“레아의 시체는 어떻게 되었나?”

블라쉬는 또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영혼이 악마에게 먹히는 저주를 걸고, 기사들을 시켜 시간을 한뒤, 사지를 토막내 똥에 뿌리고 돼지에게 먹일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체는 뭘 해보기도 전에 돌연 사라졌다.”
“뭐?”

버나드는 더욱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사라지다니? 어디로?”
“모른다. 결국 못찾았다.”
“낄낄.”

멜라니아가 갑자기 자지러질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숨겼지. 내가 숨겼다고! 낄낄낄!”
“당신이?”
“저놈들이 시체에 저주를 걸어달라고 가져온걸 내가 빼돌렸지.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꼴이지. 낄낄! 콜록콜록!”

멜라니아는 웃다가 사레에 걸려 연신 기침을 토해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뭘 어떻게 하느냐. 왕궁에 있는 내 방을 통해서만 갈  있는 아공간에 숨겨두었지.”
“시체가 온전하다는거야?”

버나드의 표정이 급 밝아졌다.
하지만 멜라니아는 전부 알려주기 싫다는듯 정색을 하며 튕겼다.

“말 안해줄거야! 난 늑대가 싫으니까!”
“속좁게 굴다 오래 못살아.”
“듣고 싶거든 내가 시키는걸 해!”
“해주기로 약속했잖아.”
“그것 말고 다른걸 또 하란 말이다! 난 명령하고  내 부탁을 들어주는 종이 되는거야! 앞으로 계속계속!”

버나드는 헛소리를 하는 그녀를 무시하고 다시 블라쉬를 쳐다봤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한없이 진지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프레드릭왕이 정말로  죽이라고 지시했나?”
“프레드릭왕이 지시했고, 안소니 후작이 내게 명령했다.”
“알았다.”

버나드는 길게 한숨을 내쉰뒤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가차없이 검을 휘둘러 블라쉬의 목을 쳐냈다. 잘린 머리가 바닥에 툭하고 떨어지며 데구르르 굴러갔다.
그때까지 놀란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데보라가 멍하니 말문을 열었다.

“누나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나가서 설명해줄게.”

곧이어 버나드가 데보라를 데리고 나가려 하자 멜라니아가 소매속에서 편지를 하나 꺼냈다.

“주기 싫었는데 내 부탁을 들어준다고 하니까 주는거야.”

버나드는 편지를 낚아채며 멜라니아에게 말했다.

“언젠가 레아의 시체를 찾으러 갈거야. 그러니 당신, 그때까지 죽지마.”

멜라니아가 몇 개 없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낄낄 웃었다.

“난 끄덕없으니 네놈이나 죽지마라.”

***

발신인을 보니 멜라니아가 건네준 편지는 레아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쓴 편지였다.
버나드는 야영지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가 조심스레 편지를 뜯어보았다. 데보라가 뒤에서 멀찌감치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전 단장님께 나쁜짓을 하려 하고 있어요. 당신이 새로운 삶을 살게되면 그때도 왕을 위해 희생하며 살건지, 아니면 본인을 위한 삶을 개척할지, 그것도 아니라면 절망하며 모든 것을 포기할지, 무척 궁금하지만 당신을 구하려면 이러는게 최선 같아요. 미안해요.


레아가 남긴 마지막 말은 슬플 정도로 간단했다. 그래서 매우 아쉬웠다.

“레아……”

하지만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버나드는 바로 알  있었다. 짧기에 더욱 와닿았다. 뭉클한 시선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붉게 물든 노을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데보라.”
“응?”

뒤에 있던 데보라가 가까이 다가오자 버나드는 먼 곳에 시선을 고정한  솔직히 고백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난 고위 귀족이었어.”
“믿어.”

버나드를 애틋하게 쳐다보는 데보라의 눈빛에는 신뢰가 가득했다.

“그리고 왕을 위해 왕의 정적들을 암살하는 비밀 집단의 수장이었어. 왕을 위해 모든걸 헌신했지. 평생 그게 옳은 길이라고 믿었어. 하지만 틀렸던거야. 말도 안되는 착각이었지. 그들은 날 감옥에 가둬놓고 명예, 자유, 권리를 박탈하고 사람의 구실조차 못하게끔 사지를 잘랐어.”
“끔찍해……”

묵묵히 듣고 있던 데보라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러던 와중에 먼저 세상을 떠난 레아 라는 여자가 멜라니아를 시켜  구해줬어. 그 후유증으로 내 몸이 이렇게 소년처럼 작아졌지.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어리석은 삶을 계속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몰라.”

데보라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고마운 사람이구나.”
“데보라.”
“응.”

버나드는 노을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프레드릭왕을 죽이기로 결심했어. 그는 위대하고 강하지만 그렇다고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언젠가 반드시 기회가 올거야.”

오른손을 앞으로 뻗어 저물고 있는 태양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그리고 태양을 움켜쥐듯 주먹을 꽉 쥐었다.

“우선은 힘을 되찾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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