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되찾는 노력, 수련7
버나드는 그대로 다른쪽 주먹을 휘둘렀다.
쉬익!
니콜라스는 놀란 얼굴로 급하게 자신에게 날아드는 버나드의 주먹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탁!
‘빠르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위력과 움직임이었다. 타격에 맞은 손바닥이 얼얼했다.
니콜라스가 정신을 못차리는 사이 한번 더 주먹이 질풍처럼 날아들었다. 날아오는 궤도가 얼굴 방향이었다. 눈으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니콜라스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곧장 손을 들어 얼굴을 가드했다.
퍼억!
얼마나 묵직한지 니콜라스의 몸이 휘청거리며 두 발자국 옆으로 밀려났다. 즉시 로우킥을 날려 응수했다. 그러자 버나드는 로우킥이 날아올 것을 미리 노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로우킥이 날아오자 니콜라스의 발을 허공에서 낚아채며 두 팔로 끌어안았다. 니콜라스는 순간 당황했다. 정말이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단한 반응 속도로다!’
버나드는 발을 붙잡은 상태에서 힘껏 몸을 밀어부쳤다. 니콜라스의 몸이 저항하며 비틀거리다 버나드가 버팀목이 되는 발을 걸어 넘어뜨리자 뒤로 발라당 넘어가버렸다.
털썩!
승기를 잡은 버나드는 곧장 니콜라스의 배위에 올라가 앉았다.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던 데보라가 감탄하면서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클레어는 믿기지 않는듯 눈을 크게 뜨고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궁지에 내몰린 니콜라스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짧은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어째서 사람이 달라진게야!?’
잠깐 주먹을 주고 받았을 뿐이지만 방금전 버나드의 움직임은 막싸움의 것이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기술의 질이 달랐다. 체계적으로 배운게 확실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술도 훌륭하지만 더욱 놀라웠던 것은 상대의 빈틈을 정확히 파고드는 능력이다. 상대의 허를 찌를 수 있다는 것은 여유가 있다는 것이고, 여유가 있으면 시야가 넓다. 그리고 시야가 넓다는 말은 그만큼 아는 것이 많으니까 보이는게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버나드 나이대의 소년이 벌써 체술 분야의 마스터는 아닐테고 시야가 넓다는 것에 참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아이는 대체 뭐란 말인가!’
니콜라스의 머릿속은 의문투성이었다. 그러나 깊게 고민할 시간도 없이 그는 현재 위기였다. 버나드가 자신을 깔고 앉은 상태에서 씨익 웃어보였다.
“코피나는 사람이 지는게 규칙이었으니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그가 천천히 주먹을 들어올렸다.
밝은 햇살 아래 버나드의 팔 그림자가 니콜라스의 얼굴에 드리워졌다. 니콜라스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어찌 이런 망신살이 일어났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나 놀랍기는 했어도 소년따위에게 깔려 기사단장이 얼굴을 처맞는 그런 볼성 사나운 꼴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게다가 나이를 허투로 먹은게 아니다. 니콜라스는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버나드의 등 너머를 바라보았다.
“앗, 미셸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미셸님……?”
버나드가 무심코 뒤를 돌아보는 순간 니콜라스는 재빠르게 허리를 튕기며 몸을 돌렸다. 배 위에 앉아있던 버나드의 몸이 옆으로 휙 기운것을 놓치지 않고 다리로 목을 감으며 바닥을 뒹굴렀다. 버나드의 입에서 큭 하는 신음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가 뒤늦게 발버둥쳤지만 니콜라스의 근육진 다리에 목이 졸려 꼼짝을 못했다. 그도그럴것이 버나드는 니콜라스와 체중이 무려 두 배이상 차이났고 근력도 낮다보니 잡혔다기보다는 집어삼켜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숨이 턱 막혀오며 버나드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져 가는 와중에 니콜라스가 히죽 웃었다.
“빨리 패배를 선언하게. 버티면 죽을거야.”
“큭, 치, 치사……!”
“뭐라고? 잘 안들리네만.”
니콜라스는 다리에 더욱 힘을 주었다.
“으윽!”
결국 버나드는 손바닥으로 땅을 치며 항복을 선언했다.
니콜라스는 즉시 버나드를 풀어주며 홀가분한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우, 이로써 일대일 무승부로 끝났구만. 대단한 시합이었어.”
그나마 체면치레는 했다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지친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는데 문득 어디선가 자신을 노려보는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클레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방금 그건 비겁했습니다’ 라는듯한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니콜라스는 점잖게 헛기침을 하고는 바닥에 누워있는 버나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우리 아킨테 가문에 자네 같은 인재가 들어와서 천만다행이네. 그럼 또 보자고.”
그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비겁한 승리때문에 도망치듯 떠난게 아니라 당장 미셸에게 가서 묻고 싶은게 있어서였다. 대체 버나드를 어디서 데려온건지, 버나드의 정체는 무엇인지, 질문할꺼리가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저 기사단장은 체통 같은건 신경안쓰는 괴짜인가...”
버나드는 니콜라스가 떠나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며 바닥에 주저앉아 잠시 숨을 골랐다.
“버나드!”
데보라가 뛰어왔다.
“괜찮아?”
“응.”
버나드는 금세 기운을 되찾으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물은 다 캤어?”
“그 얘기할때가 아니잖아! 다친곳은 없니?”
“없어, 걱정하지마.”
버나드가 엉덩이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뻐근한 목을 좌우로 돌리며 가까이 다가온 클레어를 쳐다봤다.
“같이 연습해야지?”
클레어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가봐야해. 곧 오후 일과를 시작할 시간이야.”
“벌써 그렇게 됐어? 아쉽군.”
버나드는 아쉬운듯 얘기했지만 표정만은 밝았다. 왜냐하면 지금 그의 속마음은 클레어와의 검술 훈련보다는 우연히 떠오른 체술을 연습해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클레어에게 잘가라는 말을 남기고 혼자 공터로 가서 주먹을 내지르고 앞차기를 하며 혼자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 니콜라스와 대련을 했음에도 지치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잠깐이라도 쉬지.”
데보라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를 바라봤다. 어쩔 수 없이 버나드의 훈련이 끝날때까지 주변에서 다시 나물이나 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아직 돌아가지 않고 그 옆에 나란히 서있던 클레어는 버나드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왠지 모르게 질투심이 났다. 버나드를 볼때마다 자신은 보잘것 없는 검사 같아서 화가 일었다.
“진짜 천재는 버나드였어…”
버나드가 미웠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하는지 계속 지켜보고 싶다. 정말 묘한 심리였다.
좌우지간 그녀는 발길을 돌리기전 마지막으로 데보라를 쳐다봤다. 아까부터 머릿속에 맴도는 궁금증이 하나 있었다.
‘손으로 해준게 있는데. 흠…’
아까 니콜라스와의 대련을 지켜보면서 데보라와 나눴던 대화중에 다른건 대충이라도 이해가 갔는데 손으로 해줬다는 말은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버나드와 관련된 일이라면 하찮은 일일지라도 관심이 갔고, 불현듯 호기심이 일어 데보라에게 물어보았다. 어쩌면 그게 버나드가 천재가된 비법일 수도 있으니까.
“아, 그거요?”
데보라가 쑥스럽게 웃으며 얼굴을 붉혔다. 그러면서 그녀의 머릿속에 며칠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버나드가 몽정을 해서 계곡에 갔던날이었다. 버나드가 난데없이 관계를 갖자며 데보라를 창녀 취급하자 발끈한 그녀가 버나드의 턱을 후려쳤고, 버나드는 뒤로 나자빠지며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어머 버나드!”
데보라는 깜짝 놀라며 알몸의 버나드를 급히 물밖으로 꺼냈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그의 몸상태를 다급히 살펴보다가 여전히 발기 되어있는 성기가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저것 때문에 버나드가 심한 말을 한것이 아닐까…? 악마가 아직도 몸에 남아있는거야. 악마가 버나드를 악하게 만들어서 그만…”
심각하게 고민하던 그녀는 마침내 버나드의 몸에서 악마를 끄집어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녀가 아는 지식으로는 악마를 퇴치하려면 버나드를 사정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몽정의 악마는 남자의 정액을 노리고 접근하니까.
하지만 남자와 키스조차 해본적 없는 그녀는 사정시키는 법을 전혀 몰랐다.
“어떻게 하는거지…? 이렇게 하면 되는건가? 흐음… 그나저나 신기하게 생겼네.”
데보라는 물끄러미 귀두를 쳐다보며 단단하게 발기된 기둥을 손날로 툭툭 처보거나 손으로 잡고 주물럭 거리기도 해봤다. 그러나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뭐지… 난 남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어. 어떻게 사정시키는거야…”
한참을 고민해봐도 성기의 사용법을 모르겠다.
“이럴줄 알았으면 오라버니한테 물어보고 올걸.”
시무룩한 기분으로 마크가 있는 플랫폼에 잠시 다녀올까 고민하고 있던 와중에 불쑥 아주머니 한명이 다가왔다.
“아가씨는 벌건 대낮에 꼬추 앞에서 뭐하는겨?”
입담이 좋아보이는 그녀는 근처에서 빨래를 하다 왔는지 세탁한 빨랫감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
마치 구세주를 만난듯, 데보라가 환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방법을 물어봤다. 그랬더니 아주머니는 까르르 웃으면서 데보라의 등을 가볍게 때렸다.
“문질러야지! 아가씨는 그것도 몰랐던겨?”
아주머니가 손으로 문지르는 시늉을 해보이자 그제야 데보라가 알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버나드의 발기된 성기를 움켜쥐고 위아래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 이렇게 하는거였구나.”
“그럼 잘혀봐! 난 갈게!”
“네, 감사했습니다!”
조금 시간이 흐르자 팔이 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데보라는 버나드를 살려야한다는 일념하에 최선을 다해 성기를 문질렀다. 이윽고 손안에 든 성기가 살짝 커지는가 싶더니 이내 하얀 정액을 분출했다.
푸슉!
“꺄악!”
다량의 정액이 위로 솟구치면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성기를 내려다보고 있던 데보라의 얼굴에 흠뻑 묻어버렸다.
“세상에… 이게 뭐야…?”
희멀건 정액이 얼굴과 손에 잔뜩 묻어 끈적거렸다. 심지어 입속으로 튄것이 있는지 미끌거리며 비린 맛도 났다. 데보라는 쩝쩝거리다가 곧바로 인상을 찡그렸다.
“안돼. 악마가 몸속에 들어올지도 몰라.”
퉤퉤 침을 뱉었다. 그리고 얼른 물가로 가서 입속을 행구고 얼굴과 손을 씻은 다음 버나드를 질질 끌고 내려와 그의 하반신을 물에 담갔다. 전보다 몇배나 쪼그라든 성기를 조물딱 거리고 씻겨주면서 데보라는 보람찬 미소를 머금었다.
“이로써 됐어. 악마가 다시는 버나드를 건들지 못할거야.”
이상, 여기까지가 데보라만 아는 기억이었다.
“죄송합니다. 말씀드릴 수 없어요.”
데보라가 난처한 표정으로 정중히 양해를 구하자 클레어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렇게 말하고선 그녀는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한편, 니콜라스는 다급한 마음으로 미셸을 찾아갔다.
숙소에서 여유롭게 차를 즐기고 있던 미셸이 그의 행색을 보고는 물었다.
“무엇을 하다 온겁니까? 옷에 흙이 묻었군요.”
“예? 죄송합니다.”
니콜라스는 서둘러 옷매무새를 점검한뒤 입을 열었다.
“미셸님께 긴히 여쭙고 싶은게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는 버나드와 있었던 일을 전부 솔직히 털어놓았다.
니콜라스가 버나드한테 쩔쩔맸다는 이야기에 미셸은 아주 재미있어하며 밝게 웃었다.
“그렇게나 대단하던가요?”
“이런 말씀을 드리긴 뭐하지만 버나드는 마치… 괴물 같았습니다. 처음엔 약하다가도 싸우면 싸울수록 점점 강해지는 괴물 말입니다."
아무리 잘났어도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 그 수준에 맞는 그릇이 있을 것이다. 넘쳐나면 무게를 이기지 못해 깨지고 방황하거나, 부족하면 지능이 모자라고 어리석거나 할것이다. 그러나 버나드란 인간은 그릇이란게 아예 없는 것 같았다. 끊임없이 증식하는 미지의 생명체 같았다. 세상의 이치와 맞지 않는 상황에 혼란스러운듯 니콜라스의 눈동자가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육십 평생 이런 인간은 처음봤습니다. 도대체 그 아이는 그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해온 것입니까? 버나드의 정체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으십니까?”
미셸이 고개를 저었다.
“나 역시 버나드가 왕가에서 비밀리에 육성한 밤의 늑대들 출신이라는 것 밖에 아는게 없습니다. 그 아이가 도통 말을 안해서요. 사실, 나 몰래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고 있긴 합니다만 속을 들여다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자세히 알길이 없으니…”
말끝을 흐리던 그녀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듯 환하게 웃었다.
“그러고보니 잊고 있었네요.”
“무엇을 말입니까?”
미셸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함께 멜라니아에게 가봅시다. 왕도를 출발할때 그녀에게 부탁해둔 것이 하나 있는데, 만약 성공했다면 버나드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