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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화 〉되찾는 노력, 수련3 (36/200)



〈 36화 〉되찾는 노력, 수련3

“정신나간 소리 그만해요! 당신 많이 취했어요!”

미셸은 부끄러운 나머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에게 소리치는걸 괘씸하게 여긴 프레드릭왕의 낯빛에 노여움이 깃들었다. 한낱 계집 따위가 남편의 말에 복종하지 않는다는듯이 눈을 부릅 뜨고 그녀를 쳐다봤다.

“이……!”

왕이 고함을 지르기 전에 버나드가 눈치껏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탑까지 호위해 드리겠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네?”

당황한 미셸은 반사적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그때 처음으로 버나드와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 바다속처럼 맑고 투명한 그의 푸른색 눈동자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안에 어떤 더러움도 어떤 악의도 없었다. 오직,  모셔다 드리겠다는 배려와 정직함만이 존재했다.

“알, 알겠어요. 가죠.”

미셸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챙겨 몸에 걸쳤다. 그녀가 순순히 자신의 말에 따르자 프레드릭왕은 다시금 껄껄 웃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시원하게 싸고 오라고!”

민망했던 미셸은 버나드와 함께 밖으로 나오자마자 황급히 방문을 닫았다. 너무 빨리 닫아 쾅 소리가 나며 문이 부서질 것 같았다.

“제가 앞장 서겠습니다.”
“네, 고마워요.”

미셸은 버나드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앞장서면 오줌이 마려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이게 될테니 그가 눈치껏 행동해준 것이다. 그 때문인지 앞서 걷는 버나드의 발걸음도 신속하고 빨랐다.
두 사람은 아치형 창문이 줄지어 나있는 긴 복도를 지나 화장실탑으로 향했다. 본성에는 화장실이 존재하지 않았다. 화장실은 탑 형태로 지어진 별채에 있었고, 본성 3층과 돌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화장실탑까지 가려면 거리가 좀 있었다.

그런데 버나드를 얌전히 뒤따라가던 미셸은 어느샌가 오줌 마려웠던 기분이 사라졌다. 그녀는 버나드의 널따란 등을 보며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걸을때마다 가볍게 휘날리는 그의 금발 머리카락은 실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가까이서  그는 깊은 쓸쓸함을 풍기며 외로워보였으나  외로움마저 그와  어울렸고 남자답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미셸은 손을 내밀어 그의 얼굴을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그의 외로움을 상냥하고 다정하게 달래주고 싶었다. 그녀가 입술을 연건 그래서 였을까?

“…전하께서 마스터울프라고만 부르던데 진짜 이름은 뭐예요?”

기대와 달리 그에게서 들려온 대답은 무안할 정도로 차가웠다.

“전하 이외의 분과는 대화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화장실까지 안전히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단칼에 자르는 그를 보고 미셸은 용기를 잃었다. 그 후 두 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걷기만 했다. 이윽고 화장실탑과 연결된 복도에 이르자 버나드는 그곳에 준비된 횃대를 집어들고 불을 밝혔다. 돌다리의 길이는 대략 20미터가 넘었고 다리를 밝히는 불이 없어 어둡고 깜깜했다.

버나드는 뒤를 돌아보며 미셸과 눈을 맞추더니 잘 따라오라는듯 앞장서 갔다. 미셸은  뒤에 바짝 붙어 따라갔다. 돌다리에서 무심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몸을 움츠렸다. 오늘따라 밤공기가 싸늘했다. 마치 누군가 노려보고 있는 것처럼.

“누구냐.”

버나드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춰섰다.

“나와라.”

미셸은 덜컥 긴장을 하며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깜깜할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버나드는 대체 무엇을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에 어둠속에서 사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미셸의 목을 가지러왔다.”

 말에 미셸은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그러면서 버나드의 등에 달라붙듯이 몸을 밀착했다.

“누가 보냈느냐?”
“글쎄, 누굴까.”
“아말리아님인가?”
“어차피 죽으실분들이니 말해도 상관없겠지. 남의 치정싸움에 관심없지만 돈을 준다잖아.”

어둠속에 숨어 있던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명이었다. 두 명은 화장실탑 입구에 서 있었고, 다른 두 명은 방금 지나왔던 돌다리 입구를 막고 서 있었다. 버나드와 미셸은 꼼짝없이 돌다리에 갇히게 되었다. 밑은 떨어지면 죽는 낭떠러지였다.
미셸은 두려웠으나 버나드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며 미셸을 안심시켰다.

“아무 문제 없으니 마음 놓으십시오. 저는 이러한 상황에 익숙한 전문가입니다. 제자리에 가만히 계시기만 하면 됩니다. 위를 올려다 보려 하지 말고 밑을 내려다 보지도 말고 저들을 쳐다보지도 마십시오. 지금처럼 침착하게 계시기만 하면 금방 끝날 것입니다.”
“알았어요…”

미셸은 심호흡을 하며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버나드는 한번 더 확인하듯 그녀에게 안심이 되는 말을 건넸다.

“괜찮습니다, 저를 믿으십시오.”

그는 말을 마친뒤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들었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어쩜 이리도 태연하고 강해보이는가. 미셸은 동경 가득한 눈으로 버나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벌어진 싸움에서 그의 놀라운 실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돌다리 위에 자객들의 비명소리가 애처롭게 울려퍼졌다. 이윽고 싸움이 끝나자 목이 잘린 시체들의 몸뚱이가 돌다리 밑으로 떨어졌다. 버나드는 머리만 주워다 돌다리 한편에 모아두었다. 모두  개였다.

“가시지요.”

먼저 가라는듯이 버나드가 정중히 손으로 권했다. 미셸은 수줍게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고, 고마워요.”

정말로 듬직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를 부하로 두고 있는 프레드릭왕이 부러웠다.
잠시뒤 화장실탑에 들어가 볼 일을 끝마친 미셸이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쑥스럽게 미소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횃불을 버나드에게 건넸다.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네요.”
“제 임무는 왕비님을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는 일입니다. 해야될 일을 하고 있을뿐입니다.”

버나드는 무뚝뚝하게 대답한 후 다시 길을 앞장섰다. 돌다리 위를 걷는데 문득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현재 미셸의 마음처럼 버나드가 쥐고 있는 횃불의 불빛이 심하게 요동쳤다. 돌다리를 지나 왕의 침실로 가는 동안 두 사람의 침묵은 계속 되었다. 침묵이 계속 될수록 미셸의 마음은 초조해져갔다. 왕이 기다리는 방에 들어가기 전에 무슨 말이라도 나눠보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해 답답했다. 버나드는 그야말로 벽이었다. 벽처럼 그녀의 관심 화살을 팅팅 튕겨내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뒤 왕의 침실문이 시야에 들어오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굳게 마음을 먹고 입을 열었다.

“칼솜씨가 정말로 멋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저도 만약을 대비해 칼을 배워보고 싶은데 좋은 스승님이 없을까요……?”

겨우 대화의 물꼬를 텄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생뚱맞은 화제를 꺼냈다.

“샤를리나님이 감기몸살에 걸리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어떻게 아셨어요?”
“전하의 가족분들의 건강상태를 살피는 것도 제 일입니다.”

그는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작은 약봉투를 꺼냈다.

“샤를리나님의 감기증상이 사제의 신성치료로 통하지 않는다고 들어서 제가 직접 약을 제조했습니다. 감기약입니다.”
“직접 제조를요?”
“저희 밤의 늑대들은 각종 위기 상황을 대비해 개개인이 응급처치 기술을 습득하고 있습니다. 감기약 제조술도  중 하나죠. 라그다오 라는 원시부족에게 배운 제조술인데 효험이 신통하여 드리는 겁니다.”
“그, 그렇군요. 신경써줘서 고마워요.”

미셸이 얼떨떨한 얼굴로 약을 건네받자 버나드는 즉시 뒤돌아섰다.

“저기, 샤를리나님께 완쾌를 바…… 아닙니다.”

그는 어떤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이내 말을 삼키고 걷기 시작했다.
미셸은 점점 멀어지는 그를 붙잡고 싶었으나 왕의 침실 앞이라 대화가 어렵다는걸 알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포기하며 손에 쥔 약봉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입가에 금세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내 딸을 신경써주다니… 따뜻한 사람이야.”

곧이어 미셸은 왕의 침실문 앞에서 정중히 감사를 표했다.

“당신 덕분에 편안하게 다녀왔습니다, 마스터울프.”

버나드는 대답대신 가볍게 묵례하며 그녀를 위해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아까 같이 술을 마시던 줄리안과 로토는 보이지 않았고, 탁자 위에 술병들이 어지러이 널브러진 가운데 프레드릭왕만 홀로 눈이 풀린 채 앉아있었다. 미셸은  모습이 무서웠다. 술 취하면 꼭 나오는 표정이다. 그래서 그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그녀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버나드가 지켜보는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그의 요구를 들어주기가 싫었다. 그렇기에 일부러 그의 곁으로 가지 않고 화장대로 가서 거울을 보는척 했다.

“두 사람은 어디 갔습니까?”

버나드의 물음에 프레드릭왕이 음산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돌려보냈네. 술 자리가 끝났거든.”
“그렇습니까? 그럼 저도 이만 들어가보겠습니다.”
“아니야. 자네는 거기 가만히 있어. 내 재밌는걸 보여주겠네.”

프레드릭왕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화장대 앞에서 딴짓 하는척을 하던 미셸의 팔을 거칠게 붙잡고 침대쪽으로 끌고 갔다.

“히히히, 기다렸다구!”
“전하! 일단 마스터울프를 돌려보내시고……!”

프레드릭왕은 그녀의 간절한 요청을 전혀 듣지 않았다. 그는 미셸을 침대에 강제로 엎드리게 한뒤, 그녀의 외투를 위로 말아올리고 엉덩이를 가린 속옷을 다리 밑으로 끌어내렸다.

“이봐 형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조개가 뭔줄 아는가?”
“멈추세요 전하! 싫어요! 싫다구요!”

미셸의 머리를 한손으로 짓누르며 프레드릭왕은 바지를 풀고 두툼하게 부푼 성기를 꺼냈다.
그가 즐겁게 소리쳤다.

“그건 바로 방금 오줌 싸고온 조개야!”

말을 마치며 자신의 성기를 주저없이 삽입해버렸다.

“꺄악!”
“으아 좋다! 기분 째져! 그래, 이거야!”

프레드릭왕은 미셸의 허리를 붙잡고 미친듯이 허리를 흔들었다. 둘은 부부사이지만 미셸은 수치심에 몸둘바를 몰랐다. 프레드릭왕에게 범해지는 모습을 버나드에게 보여주기가 싫었다.

“전하! 전하아… 아흑!”

미셸은 몸이 흔들리면서도 계속해서 프레드릭왕에게 그만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에는 신음이 섞여있었다. 프레드릭왕의 성기가 오늘따라 너무나도 강렬했다. 짜르르 울리는 강한 자극이 몸안에서 퍼져 나가며 그녀를 일순 쾌감에 젖게 만들었다.

“전하, 흑, 으읏, 그, 그만! 하앙, 흐윽!”

파도처럼 몰아치는 쾌감이 기분 나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모든 원인은 버나드탓이었다. 그의 멋진 모습에 반해 가뜩이나 달라올라있었던 몸과 마음이 그만 프레드릭왕의 침입에 녹아내리고 만것이다.
버나드는 문앞에  있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 그래! 자네도 가다가 아무 계집 하나 붙잡고 떡이나 치라고! 왕궁 안의 누굴 건드려도 내 오늘은 용서해주지! 왕비의 엉덩이를 보고 눈이 뒤집혔을테니까 말일세! 하하하!”
“……”

버나드는  말을 무시하고 묵묵히 밖으로 나가버렸다. 미셸은 그가 떠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다. 조금전 그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있던 것으로 보아 눈앞에서 벌어진 프레드릭왕의 기행에 그 역시 불쾌한 것 같았다.
곧, 연신 신음을 토해내는 미셸의 귓가에 뚜벅뚜벅 복도를 걷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점점 멀어지다 이내 들리지 않았다.
미셸은 시트에 얼굴을 파묻고 눈을 꾹 감았다.


다시 현재.

“후우…”

10년전 일을 회상한 미셸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버나드를  사람처럼 만들수 있을까. 듬직하고 멋있게.”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피식 웃었다.

“같은 사람이 아니니 어렵겠지. 마스터울프는 마스터울프고 버나드는 버나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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