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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화 〉유일하게 남은 재주, 정보력2 (31/200)



〈 31화 〉유일하게 남은 재주, 정보력2

그러나 미셸은 선뜻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부드럽지만 강해보이는 그녀의 눈빛이 무언가를 고민하며 망설이고 있었다. 답답함이 느껴질 정도로 꽤 신중한 모습이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다 그녀의 입술에서 불쑥 엉뚱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만약 네가 첩자라면?”
“네?”

버나드가 황당한 미소를 지었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밤의 늑대들이 해체됐다는게 거짓이고, 전하가 날 궁지에 몰 작정으로  보낸거라면?”

버나드는 순간 발끈했다. 프레드릭과 자신을 엮는게 불쾌할 정도로 너무나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간신히 억눌렀다. 이성을 잃고 소리치기보다는 이를  깨물며 미셸에게만 들리도록 대뜸 프레드릭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프레드릭 XXXX XXXX XXXX XX XXX XXXXXX !”
“오, 세상에……!”

미셸이 화들짝 놀라며 눈을 휘둥그레 뜨고 버나드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도대체 내가 뭘 들은거지?”

방금 버나드는 세상에서 가장 심한 욕으로 프레드릭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욕설 수준이 매우 천박하고 상스러우며 극악스럽고 미셸은 절대 입에 담을 수 없는 강렬하고 충격적인 표현력을 담고 있었다.

“우리 언어로 그런 표현이 가능하다니 처음 듣는 신선한 욕들이야! 대, 대단하구나! 혹시 밤의 늑대들에서 욕설도 가르쳐주니?”
“임무에 가끔 필요할때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임무라도 충성을 맹세한 자신의 주군을 욕하지는 않겠죠. 신이 지켜보고 계시니까요. 아무튼 어떻습니까?  진정성을 느끼셨습니까?”
“……”

미셸은 욕설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지 멍하니 버나드를 바라봤다.

“나도 프레드릭을 자주 욕하지만…… 너 정도는 아니야. 귀가 얼얼해. 네가 얼마나 전하를 싫어하는지 잘 알겠다. 알았어. 조금전 첩자라고 했던 말을 취소하마.”
“저도 이런식으로 제 진정성을 인정 받긴 처음입니다. 하지만 문제를 간단히 해결했으니 아주 좋은 선택이었던  같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미셸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의 미간에는 여전히 주름이 잡혀있다.

“우리 아킨테 가문의 배너맨인 도머 가문을 건드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만일 저베이스의 막사를 수색해서 아무 증거도 나오지 않는다면 영주들의 반발을 사게 될 것이고 그들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란다. 그동안 굳건했던 그들과 나의 믿음이 깨지기 시작하겠지.”

버나드의 표정은 담담했다.

“겨우 한번의 사건으로 군신관계에 균열이 간다면 그건 유대감이 존재하는게 아닙니다. 가장의 실수도 보듬어 줄  있는게 가족 아닙니까? 미안하다고 사과한뒤 다시는 안그러면 되죠. 아이들은 그저 어머니의 술주정이었다고 생각할겁니다. 당분간 투덜거리긴 하겠지만요.”
“큭큭.”

버나드의 말에 미셸이 실소를 터뜨렸다.

“말을 아주 잘하는데?  대체 뭐니? 아이 같지 않아.”
“소년입니다.”
“그래, 소년 같지 않다고. 몇마디만 놔눠봤을 뿐인데 애늙은이인지 껍데기만 소년 같아.”
“……”

버나드는 무표정으로 눈만 껌뻑 거렸다.

“얼른 시작하시죠. 가신들이 우리를 보며 궁시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미셸은 입술을  다물고 가신들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헛기침을 한뒤 모두에게 말했다.

“잠시 의논을 하느라 오래 기다리게 했습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오늘 여러분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것은 아주 심각한 소식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심각한 소식이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가신들의 시선이 그녀의 입술에 집중됐다.
그러자 미셸은 잠깐 뜸을 들이다 굳은 표정으로 진중하게 말했다.

“충격적이게도, 우리 내부에 첩자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가신들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허허, 그런 일이!”
“믿을 수 없습니다!”
“누가 배신자라는겐가? 누가!”

가신들이 저마다 한마디씩하며 펄쩍 뛰었다.

“배신자가 누군지 말씀해주십시오! 신이 결단코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정보는 확실한 것입니까? 사실인지 확인해보셨는지요?”
“출처가 어디입니까!”

가신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자 미셸이 손을 들어 그들의 말을 막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믿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만약이라는게 있으니 일단 확인을 해보려고 합니다.”

미셸은 고개를 돌려 주요 가신 그룹에 서 있던 저베이스를 쳐다보았다.

“저베이스공. 유감스럽게도 당신이 첩자로 의심 받고 있습니다. 오해를 풀기 위해 지금부터 적극 협조를 바랍니다.”
“예!?”

저베이스가 움찔하며 놀라더니 억울한듯 크게 소리쳤다.

“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과거  어떤 가문보다 용맹했으며 아킨테 영지의 수호자이자 혈맹이었던 도머 가문의 장남 저베이스가 지목되자 가신들은 다들 의외란 반응들이다. 그로인해 장내가 다시금 소란스러워졌다.

“이건 분명 모함일겁니다!”
“어떤 놈이 찌른겁니까! 그놈을 불러주십시오!”
“말도 안돼. 도머 가문이 첩자라니 명백히 잘못된 정보일거야. 미셸님께서 큰 실수를 하셨어. 쯔쯔.”
“어쩌면 첩자일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일단 확인해보자는거잖아!”
“뭐 인마!  나한테 소리쳐! 내가 첩자야!? 내가 첩자냐고!”

가신들끼리 저베이스가 첩자다 아니다는 식으로 나뉘어 싸우면서 실내는 더욱 왁자지껄 소란스러워졌다.

“자자, 조용하세요!”

짝!
미셸이 지휘봉을 내려치자 단숨에 조용해졌다.

“저베이스공. 지금부터 내 기사들이 당신의 숙소를 수색하려합니다.”
“동의할 수 없습니다!  벌써 배신자로 낙인찍으신겁니까?”
“당신의 결백을 증명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누가 거짓말을 퍼뜨렸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도머 가문이 당신께 그리도 믿음직스럽지 못했었나 보군요! 무덤에 누워계신 제 아버지가 크게 분노하실 일입니다!”
“귀공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어차피 시작된 일이니 전 일단 끝을  생각입니다.”

저베이스가 계속 그녀에게 따졌지만, 미셸은 버나드를 믿고 과감하게 밀고 나갔다.

“니콜라스.”
“예, 대영주님.”

기사들속에 섞여있던 기사단장 니콜라스가 앞으로 걸어나왔다.

“지금 즉시 기사들을 데리고 가서 저베이스공의 숙소를 철저히 수색하도록 하세요.”
“누가 멋대로 수색하라고 했습니까!  동의 안했습니다! 숙소를 마음대로 뒤졌다간 내 기사들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미셸은 저베이스를 한번 돌아봤다가 다시 니콜라스를 쳐다봤다.

“야영지내에서의 전투를 허가합니다. 도머 가문의 기사들이 저항을 하면 그들을 모두 체포하세요.”
“예.”
“소란이 더욱 커지기 전에 신속하고 빠르게 처리해야합니다. 저베이스공이 첩자였음을 입증하는 증거품을 압수하는 즉시 곧바로 내게 와서 보고하세요.”
“예, 속히 달려오겠습니다.”

니콜라스가 기사  명을 데리고 막사를 떠나자 가신들이 재차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저베이스공의 숙소에서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으면 미셸님의 위상만 추락하고 말게야. 과연 어찌 될련지……”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미셸은 저베이스에게 항변의 기회를 줬다. 그리하여 저베이스는 중앙으로 나와 가신들을 둘러보며 ‘억울하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내가 첩자라면 자결하겠다’는 등의 발언을 하며 완곡하게 결백을 주장했다.

“아킨테 가문에 대대로 충성을 받쳐온 우리 도머 가문이 의심받는다면 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습니다! 무죄가 입증되는대로 아킨테 가문의 속령에서 빠지겠습니다!”

저베이스가 항변을 하는 동안 미셸은 버나드를 바라보았다. 버나드는 저베이스가 뭐라 그러든 태연하게 가신들을 훑어보며 묵묵히 딴짓을 하고 있었다.

“긴장되지 않느냐?”

미셸의 물음에 버나드의 시선이 그녀를 마주했다.

“긴장할 이유가 없습니다.”
“저베이스가 첩자라고 치자, 그런데 그의 숙소에서 첩자임을 입증할만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으면 어찌할테냐? 우리 영지의 기밀을 빼돌린 증거가 여기 말고 영지에 있는 그의 자택에 보관되어 있다면?”
“아까 떠난 기사단장이 제대로 일을 한다면 증거는 틀림없이 여기서 발견될겁니다.”
“어째서 자신있지?”
“여긴 아킨테가 아닌 왕도니까요. 저베이스와 비밀리에 접촉한 세력들의 본부가 왕도에 있는데, 미셸님께서 왕도에 머무르는 동안 저베이스나 적들이나 남의  신경쓰지 않고 만나기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서로 접촉하기 편한 최적의 시기였을 겁니다. 평소에는 서로 거리가 멀어 만나기가 힘들었을테니까요. 방금 저베이스의 숙소로 간 미셸님의 기사들이 꼼꼼히 수색만 한다면야 기밀 자료를 적에게 건넨뒤 새로운 지령을 받은 정황이 여실히 드러나겠지요.”

미셸이 흥미로운 눈길로 버나드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피식 웃었다.

“마치 해본것처럼 말하는구나.”
“당연히 비슷한 경험을 해봤습니다. 이전 밤의 늑대들 소속으로서 저 같으면, 저베이스가 왕도에 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서둘러 비밀리에 만남을 가졌을 겁니다. 굳이  걸음을 안해도 양질의 정보를 수집할  있는 좋은 기회니까요.”

니콜라스가 떠난지 한시간이 지났을 무렵, 마침내 돌아왔다는 경비병의 외침이 들렸다.

“어찌 되었소이까!”
“결과는? 결과는 뭐요?! 증거를 찾았소!?”

니콜라스가 안으로 들어서자 가신들이 그를 에워싸고 대답을 재촉했으나, 니콜라스는 그들을 뚫고 미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서 코앞에서 멈춰섰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고생 많았네. 결과는 어찌 되었나?”

니콜라스는 말하기에 앞서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후우…”
“세상   사람처럼 왜 갑자기 한숨을 내쉬는가?”
“대영주님…… 죄송합니다.”
“설마 증거를 못 찾은겐가?”

니콜라스가 허리를 굽히며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흉갑 밑으로 가슴에 손을 넣어 돌돌말린 양피지 두루마리를 꺼내서 미셸에게 내밀었다.

“이게 뭔가?”

미셸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것을 받자 니콜라스가 자책을 하듯 착잡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소신, 그동안 영지의 보안을 빈틈없이 잘 지키고 있다 생각하였는데 그것은 저의 자만이었습니다. 제게 부여하신 막중한 책임을 다하지 못해 실로 송구스럽습니다. 대영주님의 말씀대로 영지의 기밀 자료를 유출하는 미꾸라지가 한마리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베이스공입니다.”
“역시나 그랬던가…!”

미셸은 환희에 찬 표정으로 양피지 두루마리를 서둘러 펼쳐보았다.
 안에 적힌 내용들을 다급히 읽어내려갔다.
아킨테의 여러 현황과 각종 실태를 파악하라는 자잘한 임무들이 보이는 가운데 그 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아킨테 영지의 재정을 탕진시킬 방법을 찾아내고 실행에 옮기시오.

이는 명백히 간첩이 아닌가!
미셸은 기뻐하는 웃음을 짓고 급히 버나드를 돌아보았다.

“네 말이 맞았다!”

가신들은 믿기지 않는 소식에 놀라며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들의 고함으로 장내가 뒤집어졌다.

“저베이스가 배신자였다니! 저 빌어먹을 놈이 제 아버지 명성에 똥칠을 했어!”
“내가 직접 목을 자를거야! 당장 저놈을 체포하라!”

니콜라스가 증거를 찾아낼지 모르고 조금전까지 결백을 주장하던 저베이스는, 첩자짓을 했던 사실이 발각되자 크게 당황하며 헐레벌떡 몸을 내뺐다.

“우리를 배신하다니 이 배신자 새끼 어디 갔어!”
“저, 저깄다! 저놈 도망간다! 잡아라!”

가신들이 쏜살같이 달려가서 천막 밑으로 기어나가려던 저베이스의 양다리를 붙잡고 안쪽으로 끌어당긴 다음 바닥에 패대기쳤다.

“이, 이보게들! 지, 진정하게!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어!”
“웃기지마! 배신자 새끼는 용서 못해!”

퍽!
한명이 걷어차자 다른 가신들도 머리끝까지 치민 화를 못이겨 그를 밟기 시작했다.
저베이스가 신나게 발길질을 당하는 동안 미셸은 흐뭇한 눈길로 버나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충심은 확인했다. 하지만 완벽히 믿는건 아니야. 내 마음속의 양으로 치자면 3분의 1정도 찼다.”

버나드는 짓밟히고 있는 저베이스를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족한 부분은 차차 채워나갈 수 있겠죠.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입니다.”

저베이스는 곧장 밖으로 끌려나가서 참수당했다. 간첩질에 버금가는 죗값을 치르려면 원래는 잔인한 방법으로 사형을 당해야 마땅했지만, 그의 아버지가 생전 아킨테 영지를 위해 노력했던 점을 참작하여 참수로 깔끔히 마무리 지었다.

이후 미셸은 버나드를 데리고 숙소로 가서 자신의 전담 재단사를 호출했다.
얼마뒤 중년 여자가 나타나서 버나드에게 마음에 드는 옷감과 색상을 물어봤고 뒤이어 신체 치수를 빠르게 쟀다.

“옷을 해주신다니 갑자기 왜……”

버나드는 양팔을 벌리고 치수를 재는 내내 얼떨떨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미셸의 갑작스러운 호의가 뜬금없이 느껴졌고, 무엇보다 군주 앞에서 치수를 재는 상황이 처음인지라 어색하고 뻣뻣했다.
미셸은 미소 띤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부담 갖지 말거라. 오늘 나와 영지를 지켜준 것에 대한 선물이다.”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해야할 일을 했으니까 주는거야. 그렇잖아도 지금 입고 다니는 옷을 보아하니 전부 버려야겠더구나. 옷이 가장 급해보였어.”

얼떨떨한 버나드의 표정이 순진무구해서 웃긴 나머지 미셸은 그를 귀엽게 쳐다봤다.

“앞으로도 날 기쁘게 할때마다 네게 선물을 챙겨주겠다. 약속하지.”
“…감사합니다.”

버나드는 전신 거울속에 비친 자신을 멍하니 바라봤다. 소년의 모습이 아직 적응 안되는건 둘째치고, 군주의 숙소에서 치수를 재는 이 상황이 무척 낯설었다. 프레드릭과는 단 한번도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프레드릭왕은 진상품으로 들어온 귀하지만 치수가 맞지 않는 고급옷들을 선물해 주는게 전부였다.
이윽고 재단사가 떠나자 미셸은 버나드를 향해 말했다.

“자, 이제 네 칼솜씨를 볼 차례다. 음, 상대는 누가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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