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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화 〉유일하게 남은 재주, 정보력1 (30/200)



〈 30화 〉유일하게 남은 재주, 정보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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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깨어난 데보라를 침대에 더 누워있게 하고, 버나드는 미셸과 대화하기 위해 그녀의 집무공간으로 장소를 옮겼다.

“밤의 늑대들이 해체된건 사실이냐?”

미셸이 의자에 앉자마자 한 첫질문은 밤의 늑대들에 관한 것이었다. 버나드는 앉아있는 그녀를 마주보며 선 채 차분히 대답했다.

“예, 사실입니다.”
“전하가  일이야?”
“네. 전하가 했습니다.”
“왜 없앴지? 그토록 아끼던 부대였는데.”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건 누구나 추측 가능해.”

미셸은 미소지으며 진실을 얘기하라는 눈빛으로 보챘다.

“아직 날 군주로 섬기기에는 어색하겠지. 버나드. 군주와 신하 사이에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것이 뭔줄 아니?”

버나드는 가만히 생각하다 대답했다.

“신의입니다.”
“틀렸어.”

그녀가 말했다.

“군주와 신하 사이에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유대감이란다. 가족 같이 편안한 기분 말이다. 편안한 느낌이 들면 대화가 어떻겠니? 굳이 묻지 않아도 알아서 술술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들겠지? 편한 친구한테 말하듯이 말이야. 가끔 말실수도 하고 또 농담도 하고, 그리고 흥분하기도 하고. 만약 너와 나의 대화가 그렇게 진행되면 어떻겠니? 재밌겠지? 수다쟁이처럼 계속 말하고 싶어지겠지?”

그녀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버나드가 눈치를 채고 바로 물었다.

“단답식 대답은 피하라는 명령이십니까?”

미셸이 기특하게 쳐다봤다.

“영리하구나. 하지만 명령은 아니란다. 아까 데보라가 포근하다고 했지? 앞으로는  엄마처럼 포근하게 여겨주렴. 어깨에 힘 빼고 편히 말해줬으면 해.”

그녀는 상당히 다정하고 부드럽게 말을 했으나 버나드는 속으로 내키지 않았다. 서로의 관계가 어색한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버나드는 그녀의 나이를 잘 안다. 자신보다  살 더 많은 34살.
엄마는 무슨…

“앞으로 단답식 대답을 피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하신 질문을 다시 물어봐 주십시오.”
“확실히 넌 또래 아이들과 다른것 같아.”

미셸이 갑자기 엉뚱한 말을 꺼내며 미소 띤 표정으로 버나드를 흡족하게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에 버나드를 향한 사랑스러움이 가득 묻어나 있었다. 이성을 향한 감정이 아니라 값비싼 보물을 쳐다보는, 그러니까 귀한 것이  것이 되어 즐거운 표정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어른처럼 의젓하구나. 긴장을 하는 성격이 아닌 것 같은데 원래 그렇게 담담하니?”
“주변 사람들은 절보고 우직하고 무뚝뚝하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 말이 맞는 것도 같아. 일단은. 뭐, 앞으로 알아가다 보면 너에 관해 잘 알게 되겠지.”

그녀는 빙긋 웃어보인 다음 화제를 전환했다.

“밤의 늑대들 해체 이후 너희 우두머리는 어떻게 되었느냐?”

버나드는 일초도 고민 않고 즉시 대답했다.

“그는 죽었습니다. 어제  죽이려한 블라쉬에게 살해당했거든요.”
“그래? 그거 아쉽게 되었구나.”

미셸은 어째서인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근처에 있던 포도주를 따라마셨다.

“10년전에 너희 우두머리와 우연히 만났었지. 그때 참 인상적이었는데 말이야. 뭔가 큰 일을 해낼 사내처럼 멋지게 보였는데 의외로 쉽게 갔구나. 사람 인생은 정말 모른다니까.”
“……”
“그의 이름은 뭐였지?”
“이름은 모릅니다. 부하들에게 마스터울프 라고만 불렸습니다.”
“음… 그렇구나.”

그녀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긴 그럴만도 하지. 비밀 조직의 수장이 본명을 쓸리가.”

사실 버나드도 10년전 왕의 침소에서 그녀와 마주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프레드릭왕이 술에 취해 난데없이 밤의 늑대들을 그녀에게 구경시켜줬었고, 지금처럼 위엄있고  있는 여자가 아닌 청순하고 내성적이었던 여자로 기억한다. 마음씨도 착하고. 아울러 그날밤 미셸과 프레드릭왕이 날이 샐때까지 사랑을 나눈 것도 떠올랐다. 벽 너머로   없이 들려오던 그녀의 신음 소리가 뚜렷이 기억난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밤의 늑대들의 수장이었다고 밝히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미셸을 아직 신뢰하지 않았다. 둘째, 철썩같이 믿었던 프레드릭왕에게 배신을 당한 경험이 있어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군주란 것들을 절대 신임하지 못하는 의심병이 생겼다. 언제 버림을 당할지 모르는 불안감. 따라서 자신의 모든 것을 공개하기가 싫었다.

“버나드. 널 가신으로 받아들인 것은 네가 밤의 늑대들 출신이라 이용해먹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 딸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야. 너라면 잘 지켜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서. 너도 소식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곧 왕국에 피의 폭풍이 몰아칠거란다. 그리고…”

미셸이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버나드가 끼어들었다.

“영애님의 호위를 제게 맡기실 겁니까?”
“너로 점찍어 놨어. 영광스럽지?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란다. 우선 나나 너나 서로가 신뢰를 쌓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좌우간 내 딸 샤를의 호위를 맡고 싶어하는 기사들이 한 둘이 아니란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여기서부터 저 먼 이웃왕국까지 줄을 섰어. 넌 정말 특혜를 받은 것이란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버나드는 정중히 말을 이었다.

“저는 영애님의 호위를 맡을 자격이 못됩니다.”

미셸이 뜻밖의 소리란 듯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왜 자격이 안된다는 거지?”
“폐가 안된다면 제가 먼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제 실력을 평가해보신적이 없으시면서 영애의 호위를 맡기시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넌 밤의 늑대들이잖아.  집단이 대단하다는 것은 그들과 처음 만났을때 첫눈에 알 수 있었다. 너 같은 소년이 그런 곳에 들어갔다면 뻔한거야. 실력이 출중하고 장래가 유망하다는 거지.”
“저는 칼을 쥐는 법조차 모릅니다. 주방에 있는 하녀가 오히려 저보다 칼을 잘 쓸것입니다.”
“그렇게까지 말하는 이유가 뭐지? 흐음……”

미셸은 의심의 눈길을 보내며 버나드의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네게 봉급을 주고 돌봐주는 사람은 나야. 프레드릭이 아니다. 너의 모든걸 내게 다 바칠 수 있어야 해. 그리하면 난 보답으로 네게 아낌없이 베풀어 준단다. 전하처럼 쪼잔하지 않지.”
“어제부터 제 주군은 미셸님 입니다.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도 했습니다. 따라서 거짓말이 절대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네가 블라쉬의 갑옷을 파괴하는 것을 봤는데도?”

그녀의 말에 버나드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했습니다. 그런 실력으로는 결코 영애님을 지킬 수 없습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암살자들은 블라쉬보다 훨씬 뛰어날 것입니다.”
“블라쉬는 왜 죽였느냐? 난 그를 사로잡으려고 했다.”

미셸은 어제일까지 들먹이며 계속 의문을 품었다.

“네 과거를 숨길 작정으로 그를 처리한 것이 아니더냐?”

목소리가 조금 쌀쌀해졌다.
그에 버나드는 당당했다.

“그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습니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그가 미웠죠. 그게 이유입니다.”
“정말? 진심이냐?”

미셸은 물끄러미 버나드를 응시했다.

“예, 진심입니다.”

버나드가 진지한 음성으로 또박또박 대답하자 미셸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여전히 찡그린 미간을 풀지 않는다.

“내, 멜라니아에게 가서 직접 물어봐야겠다. 네가 진실을 말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워.”

당장 만나려는 것인지 미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멜라니아가 쓸데없이 이것저것 나불댈까봐 버나드가 급하게 입을 열었다.

“가족처럼 편히 말하라 하셨잖습니까. 설마 절 의심하시는 겁니까?  당신의 가신입니다. 우리  사람 사이에 신의가 없으면 여기서 어떻게 지내란 말씀이십니까?”

버나드가 그렇게 따지자 미셸은 그를 당돌하다고 생각하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제법이구나. 네 말이 맞아.”

그녀가 가볍게 응수했다.

“그런데 신의와 유대감은 하루 아침에 형성되는게 아니다. 게다가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첫인상이란게 가장 중요하지. 벌써 잊은 것이냐? 넌 어제 내게서 도망쳤고, 블라쉬가 나타난 후에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며 가신으로 받아달라고 부탁했지.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는데 이러니 내가 너를 어찌 믿겠느냐. 당분간 서로 신뢰가 쌓일때까지 서운해 말거라.”
“좋습니다 그럼.”

버나드는 자신이 가진 재주를 통해 그녀에게 믿음을 심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미셸의 밑에서 보호 받으며 그녀를 위해 일할 생각은 진심이었고, 또 혼자서 하루종일 검 쓰는 법을 훈련할  있도록 그녀에게 개인시간을 보장 받고 싶었다.

“미셸님을 향한 제 충심과 칼솜씨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귀찮게 멜라니아에게 가실 필요없습니다.”
“입을 꾹 다문 내성적인 꼬마짓거리를 했을때처럼 또 거짓의 가면을 쓸 생각이냐?”
“보시면 가짜인지 진짜인지 대번 알아채실 겁니다. 이놈이  거짓말을 한다 싶으면 그 자리에서 목을 치십시오.”
“재미있군.”

미셸이 나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서 팔짱을 꼈다.

“칼솜씨야 상대를 불러다 대련을 시켜보면 될테고, 나를 향한 충심은 어떻게 확인시켜줄 생각인데?”

기다렸다는듯이 버나드의 눈빛이 빛났다.

“모든 가신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주십시오. 그 자리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이해가 안되는 요청을 하는구나.”
“보시면 압니다.”

잠시뒤 넓고 커다란 막사 안으로 가신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소영주들을 비롯해 행정 관리와 기사들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모였다. 갑작스럽게 호출된 사람들은 저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웅성웅성 떠들어댔다.

“무슨 일이래? 미셸님께서 특별히 공지할게 있으신가?”
“그런가봄세. 기다려보자고.”
“근디 희한하구먼. 이처럼 다 모이긴 처음이여. 여태까진 몇 사람만 불러다 지시내렸잖여.”
“혹시 누구 상줄 사람있나?”

얼마뒤 버나드와 함께 미셸이 나타나자 술렁거리던 실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이동 준비로 바쁜 와중에 모두 잘 와주었습니다. 잠시 확인할게 있어 부른  뿐이니 그리 시간을 잡아먹지는 않을 겁니다.”

미셸이 고풍스럽고 강렬한 붉은 드레스를 바닥에 질질 끌며 상석으로 가서 앉자 가운데에만  공간을 남겨놓고 주위에  둘러 서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의 입술로 향했다. 다들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무척 궁금해하는 표정이다. 일부는 그녀의 곁에 찰싹 붙어있는 버나드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소년은 누구야?”
“피에르 짤리고 새로운 녀석이 들어온거 아녀?”
“방금 기사들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엊그저께 라인형제들이 나타난걸 신고한게 저 소년이라더구만. 그래서 미셸님께서 기특하다며 거두어들이셨나 봐.”
“오호, 그랬구만.”

미셸은 주위에 모인 가신들을 한번 둘러본뒤 버나드를 쳐다봤다.

“자, 네 말대로 모두 불러모았다. 이젠  차례다. 나에게 어떤식으로 네 충심을 확인시켜줄테냐?”
“3분만 기다려주십시오.”
“3분? 뭣하게?”
“아무튼 3분이면 됩니다. 잠시만……”

버나드는 한동안 말없이 막사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무언가 깊게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미셸을 돌아보며 물었다.

“도머 가문의 장남 저베이스가 누굽니까?”
“저베이스라면 저깄다.”

미셸은 아무 생각없이 근처 주요 가신 그룹에 섞여있는  남성을 가리켰다. 대머리에 콧수염을 기른 중년 사내였다.

“저베이스는 왜?”

그녀가 묻자 버나드의 입에서 돌연 저베이스의 과거 행적들이 막힘없이 술술 흘러나왔다.

“3년전 2월 13일. 밤의 늑대들과 비밀리에 접촉. 아킨테 영지의 군사 기밀 제공. 이어 2년전 3월 1일과 8월 7일. 두 차례에 걸쳐 아말리아 왕비의 적2남 브랜든 휘하 가신과 접촉. 영지민들의 생활실태 및 주변 영지와의 관계, 경비 상황 등에 관한 자료 유출. 1년전 5월 20일. 밤의 늑대들과 접촉 후 아킨테 가문의 미셸님 포함 가신들의 사생활에 관한 풍문 및 첩과 정부들의 신상정보를 제공.”
“뭐라고?”

미셸은 믿지 못하겠다는듯이 버나드가 말하는 중간에 불쑥 끼어들며 눈을 크게 떴다.

“그럴리가 없다.”
“말씀드린 것은 모두 사실입니다. 이외에도 더 있습니다. 마저 들으시겠습니까?”
“도머 가문은 우리 아킨테 영지의 소중한 배너맨(Bannerman) 가문이야. 아킨테를 위해 전장에서 제일 선두에 서는 배너맨 가문이 우리를 배신할리가 없다. 게다가 우리 아버지와 저베이스의 부친은 생전에 각별했던 사이였단 말이다.”

상당히 놀라고 당황한듯한 미셸의 표정을 보며 버나드는 각별이고 자시고 그런 것  부질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순진한 그녀를 비웃는 것이었다.

“제 말을 못 믿으시겠다면 당장 그의 막사를 뒤져보십시오. 그는 최근까지 왕실에 정보를 팔아넘겼으니까요. 믿음직한 기사를 보내 신속히 처리하셔야 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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