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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화 〉모든 것의 시초, 그날2 (28/200)



〈 28화 〉모든 것의 시초, 그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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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밖을 빠져나온 버나드가 연회장으로 가는 아치형 돌다리를 건너려할때였다.
한무리의 기사들이 돌다리 건너편에서 뛰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가슴에는 붉은 단풍잎을 바라보는 걷는 사자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아말리아 왕비 휘하의 부대였다. 왕비의 결혼전 가문 문장은 붉은 단풍잎이었으나 걷는 사자 문장을 가진 프레드릭왕과 결혼하면서 붉은 단풍잎에 걷는 사자 문양을 합쳤다.

“왕비가 신속히 움직였군.”

버나드는 돌다리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섰다. 기사들 역시 건너편에서 걸음을 멈추며 소리쳤다.

“왕궁이 연회로 소란스러운 것을 틈타 몰래 왕비님의 침소에 침입한게 너로구나! 어느 가문 소속이더냐! ”

제일 앞에 서 있던 기사의 말에 버나드는 기가찼다.

“침입? 내가 왕비의 침소에 침입했단 말이냐?”
“그렇다 이놈! 잡아라!”

신호와 동시에 기사들이 우르르 돌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버나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왕비가 제정신이 아니군. 날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텐데 말이지.”

버나드는 즉시 정신을 집중해 세븐로얄의 힘을 사용했다.
그 중 하나, 케스케이드.
버나드가 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고는 체내의 마나를 활성화 시키며 양손으로 무언가를 둘둘 감는 몸짓을 빠르게 구사했다. 아치형 돌다리 밑을 졸졸 흐르던 시냇물이 갑자기 허공으로 치솟더니 아주 빠른속도로 뭉쳐졌다. 이내 거대한  모양이 되었다. 다리를 건너던 기사들에게 그것을 던졌다. 구체는 파도소리처럼 철썩이며 폭발했으며 기사들은 사방으로 날아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크악! 내 발! 발목이 부러졌어!”
“으윽! 허리야!”

조금전까지 막혀있던 돌다리는 시원하게 길이 트였다.
기사들을 가볍게 물리친 버나드는 곧장 돌다리를 뚜벅뚜벅 건너갔다.

“내 앞에서 얄팍한 수작 부리지 마라 왕비…”

동이 트기 직전의 왕궁은 곳곳에 듬성듬성 횃불이 타고 있었고, 버나드는 파란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며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곧 그의 앞길을 궁수들이 둘러쌌다. 그들의 가슴에는 뛰는 사자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왕세자 존의 병사들이었다.

“발악을 하는군.”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라!”

방금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자신을 침입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비밀 조직의 수장으로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적이 없으니 당연했다. 그동안 왕의 그림자 역할을 자처한 버나드는 왕궁에서 존재감 없이 지내왔었다. 그의 존재를 아는 귀족들은 전부 안소니 후작 같은 중신들뿐, 극소수에 불과했다.

“멈추지 않으면 쏘겠다!”

궁수들이 시위를 메긴 채 눈앞에서 포진하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나드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저, 저 겁없는 놈!”

당황한 궁수장이 발사 명령을 내렸다.

“쏴라!”

수십발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버나드는 가소롭게 여기며 세븐로얄의 힘을 사용했다.
그가 사용한 두 번째 힘은 바리케이드.
마나를 활성화 시키자 버나드의 주위로 붉게 물결치는 방벽이 순식간에 형성됐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온 수십개의 화살들이 일제히 방벽에 부딪히며 힘없이 땅에 떨어졌다.
팅! 팅!
팅!
지켜보고 있던 궁수장이 눈을 휘둥그레떴다.

“저, 저놈 정체가 뭐야?”

 와중에도 버나드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속해서 직진했다. 궁수들을 쓰러뜨리기로 마음 먹은 순간 세번째 세븐로얄의 힘으로서, 그는 육체강화를 떠올렸다. 버나드의 몸은 금세 강철처럼 단단해지며 그 어떤 무기로도 뚫을  없는 강인한 육체를 갖게 되었다. 동시에 타격하는 힘도 놀라울 정도로 상승했다. 버나드의 주먹에 한대 얻어맞으면 커다란 망치로 얻어 맞는듯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 결과 궁수들은 맥없이 무너졌다.

“아악! 살려줘!”

 몇초만에, 질풍처럼 적들을 해치운 버나드는 바닥에 쓰러진 궁수들을 뒤로하고 유유히 떠났다.
이후로도 아말리아와 존의 병력들이 버나드를 세 차례나 더 방해했다. 그러나 버나드가 가진 세븐로얄의 강력한 힘 앞에서 백명에 달하는 병사들은 그저 개미떼에 불과했다. 20년전 발발한 걷는 사자 전쟁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전장을 헤쳐온 역전의 버나드는 성장형 인간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완전체였다. 왕국마다 최소 한 명에서  세 명씩 존재한다는 걸출한 영걸이 레온 왕국에서는 그였다. 다만 세상 모든 영걸에 비해 그가 크게 부족했던 점은 바로 대중적인 유명세, 명성이었다. 그것은 어쩔  없는 선택이었다. 버나드는 프레드릭왕을 위해 헌신하며 외로움도 달갑게 받기로 맹세하나니, 왕국의 밝은 미래와 왕을 위해 영원히 그림자속에서 지내기로 본인이 선택한 길이었다.

술에 취한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연회장에 다다르자 밤의 늑대들 소속원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십명의 부하들이 알게 모르게 연회장에 투입되어 일반 귀족 행세를 하는 중이었다. 따라서 이제부터 안전지역이었다.
버나드를 알아보고 줄리안이 재빠르게 다가왔다.

“어디 갔다오시는 길이기에 오래걸리셨습니까? 설마……?”

그가 여자랑 있던  아니냐는듯이 헛소리를 하려기에 버나드가 당장 주의를 줬다.

“장난칠때가 아니다. 본부에 연락해서 대기중인 병력들 전부 소집시켜. 집합 장소는 이곳이다.”
“어라? 비상상황입니까?”
“이 시간부로 왕비와 왕세자의 부대가 연회장에 단 한발짝도 들이지 못하게 벽을 쳐라. 그쪽 인간들은 내 허락없이 통과시키지마.”
“그 전에 어떤 일인지 알고 싶은데요? 꽤 심각한 일인가보죠?”
“……”

버나드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짧게 고민하다 말했다.

“왕실에서 공식 발표하기 전까지 비밀이다.”

 말을 남겨 놓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왕비와 왕세자가 근친상간을 벌였다는 사실은, 버나드의 생각으로는 대내외적으로 정말 역겹고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왕의 명예와 체면을 보호하기 위해 그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부하에게조차 말을 아껴야만 했다.

버나드가 왕이 귀부인들과 어울리던 장소에 도착했을때, 그곳에 프레드릭왕은 없었다. 귀부인들은 훌륭하게 잘 생긴 젊은 남작을 에워싸고 있었고 왕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빨리 왕을 만나 사실을 보고하고 싶었던 버나드는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기분을 한층 더 가중시켰던 것은, 왕이 먼저 사람을 보내 자신을 부른 것이다.

“연회장 2층의 응접실로 오시랍니다.”
“전하께선 혼자 계신가?”
“네. 안에 전하만 계십니다.”

버나드는 일단 안심하고 2층의 응접실로 향했다. 잠시 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프레드릭왕은  끝에 있는 푹신하고 커다란 의자에 앉아 코를 골며 자는 중이었다.

“드르렁, 쿠울……”

가까이 다가가 왕의 어깨를 흔들었다.

“전하, 전하. 버나드입니다.”
“으음, 음……?”

프레드릭왕이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버나드를 돌아봤다.

“저를 부르셨다고요.”
“어, 자네인가 버나드. 그래, 자네를 불렀네. 깜빡 잠들었구만. 거기 주전자에 물  갖다주게.”
“예.”

버나드가 투명한 물컵에 물을 따라 갖다주자 프레드릭왕이 쭈욱 들이켰다.
물한컵을 다 비우고 손등으로 입술을 닦았다. 그러고는 정신이 드는지 한결 나은 표정으로 버나드를 바라봤다.

“나한테 할 말 있지 않은가?”
“예?”

버나드는 불쑥 안좋은 예감이 들어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혹시 제가 오기 전에 누군가 찾아왔었습니까?”
“껄껄, 표정 풀게.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심각한가 이 사람아. 별 일도 아닌걸 갖고.”

프레드릭왕은 흐뭇하게 웃으면서 버나드의 한손을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창가의 붉은 벨벳 커튼이 활짝 젖혀지면서 뜬금없이 아말리아 왕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별 일이 아니라니요! 전하! 어찌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전 저자에게 겁탈을 당할뻔했다고요!”

버나드는 차갑게 그녀를 응시했다.

‘병사들을 동원해 내 길을 방해한 이유가 이것이었던가. 나보다 먼저 왕에게 당도하기 위해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왕비를 지그시 노려봤다. 아말리아의 꼴이 기가막혔다. 그녀는 누구한테 잡아뜯긴 것인지 군데군데 거칠게 찢어진 실크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그녀의 의도가 무엇인지 단숨에 간파한 버나드가 곧장 눈살을 찌푸렸다.

“제가 왕비님을 겁탈했단 말입니까?”
“내가 강력히 저항했기에 실패로 끝났죠.”
“전 단언코 그런 기억이 없습니다. 본인의 파렴치한 죄를 감추기 위해 전하께 거짓을 고하고 있는게 아닙니까?”
“정말 뻔뻔하시군요 버나드 경! 당신은 아까 불꺼진 침실로 몰래 들어와서 내 옷을 험하게 찢고 강제로 다리를 벌렸어요! 그리고 당신 하반신에 달려있는 그 흉측한 물건이 내 안으로 들어올뻔했다고요! 만약 우리 아들 존이 제때 나타나서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수치심에 자결했을거예요!”

버나드가 큰 소리로 반박했다.

“그 존이랑 당신이랑 전하 몰래 침대 위에서 뒹굴다가 내게 들켰잖습니까!”
“오늘 대체 뭔 날인지 기절초풍할 얘기들이 쏟아지는군.”

프레드릭왕은 잠자코 들으면서 껄껄 웃었지만 이내 얼굴이 굳어졌다.

“전하! 왕비는 지금 존과 벌인 근친상간 짓을 숨기기 위해 전하께 거짓을 아뢴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아말리아가 격렬히 부정했다. 심지어 그녀는 눈물까지 글썽였다. 한달음에 프레드릭왕에게 달려가  앞에서 주저앉으며 왕의 허벅지에 매달리듯 마구 흔들어댔다.

“겁탈당할뻔한 것도 억울한데 버나드 경은 저를 아들과 패륜짓을 하는 나쁜 아내로 모함하고 있어요! 전하 억울합니다! 억울하다고요! 흑흑……!”

버나드가 고함을 지르듯 소리쳤다.

“전하! 실체적 증거로서 증명해보이겠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왕비는 서두르느라 몸을 씻지 않았을테고, 왕비의 질안에 아직 존의 체액이 묻어있을 것입니다! 당장 마녀 멜라니아를 불러다 왕비의 성기를 확인해보십시오!”
“닥치세요!   나라의 왕비입니다! 내게 수치심을 준 것도 모자라 치욕까지 줄 작정인가요!”

버나드가 맞받아쳤다.

“실체적 증거를 통해 진실을 규명해보자는 겁니다! 만약 당신의 몸에서 아무것도 검출되지 않는다면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반대로 존의 체액이 나온다면 당신을 당장 이 자리에서 체포하겠습니다!”
“둘 다 그만해!”

프레드릭왕이 발로 탁자를 걷어차며 소리쳤다. 그는 황소가 거친 콧김을 내뿜는것처럼 씩씩거리며 화가나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문쪽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왕이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들어와!”

하필이면 버나드에게 하등 도움이 안되는 불청객들이 나타났다.
왕세자 존과 안소니 후작이었다.
잠시 후 이뤄진 프레드릭왕의 대질심문에 당연하게도 두 사람은 왕비편을 들며 버나드를 궁지로 몰아세웠다.

“버나드 경이 왕비님의 침실로 들어가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답니다.”

안소니 후작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버나드를 향해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이어 버나드가 강력히 부인하며 결백을 주장했지만 이미 형세는 기울어져 있었다. 버나드는 혼자였고 왕비에겐 든든한 지원군이 많았다. 깊게 고민하던 프레드릭왕은 결국 한쪽을 잃기 보다는 양쪽을 두둔하는 결정을 내렸다.

“버나드가 우리 왕국에 해준게 얼마인데 술 취해서 왕비 엉덩이쯤 만지고 다닐 수 있지. 껄껄 농담이고, 아무튼 실수였을테니 그냥 넘어가자고. 그리고 내가 남자라서 아는데, 남자라면 절대 늙은 왕비의 엉덩이는 안만져. 여자가 생각나면 차라리 젊은 창녀를 사고 말지. 안그런가 버나드? 그땐 자네의 본심이 아니었지? 그리고 버나드. 자네가 본 것은 아마 왕비가 아니라 다른 여자였을걸세. 왕궁에 여자가 왕비만 있는줄 아는가? 깜깜해서 잘못봤을게야. 방을 착각하고 들어가 다른 잡것들이 침대에서 오입질을 하고 있는걸 왕비와 존으로 착각했을게 확실해. 그렇지? 껄껄.”

그러나 양쪽을 모두 챙기려 했던 프레드릭왕의 우유부단함이 오히려 양쪽을 모두 잃는 파국의 도화선에 불을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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