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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화 〉아킨테의 미셸, 눈치채다1 (21/200)



〈 21화 〉아킨테의 미셸, 눈치채다1

그녀의 말에 블라쉬는 내심 당황한 눈치였다. 그는 사실 황금사슴 기사단장으로 부임한지 고작 한달만에 아킨테의 미셸과 쓸데없이 충돌을 일으켜 프레드릭왕이나 안소니 후작에게 폐를 끼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게다가 일반 영주도 아니고 공국과 비견되는 힘을 가진 그 유명한 아킨테의 미셸이다. 이 여자와 문제가 생기면 전하조차 입장이 껄끄러울테고  화는 당연히 자신에게 돌아올것이다.

‘일처리를 제대로 못한다며 꾸짖음을 당하겠지.’

저돌적으로 덤벼드는 미셸의 태도로 인해 한풀 기세가 꺾인 블라쉬는 손등으로 입술을 닦으며 분한 한숨을 내쉬었다.

“…좋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지요.”
“날 체포한다면서요?”
“그리 들으셨다면 유감입니다. 저는 다만, 전하의 명을 받들어 어떤 도망자와 마녀를 쫓고 있었을뿐입니다. 왕국을 위해서 말이지요. 그럼 이만.”

블라쉬는 정중히 묵례를 한뒤 말에 올라타 그대로 부하들과 함께 떠났다.
미셸은 플랫폼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잠시 남아 주위를 돌아보더니 가신들에게 한마디 던졌다.

“왕궁에 있는 것들은 전부다 괘씸해. 튀겨 먹어도 시원찮을 놈들.”

주위의 가신들이 그 말에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총장 사만다가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그래도 전하의 대리인이라는데  부드럽게 대화하시지 그랬어요. 지금 시기에는 왕가를 적으로 만들면 곤란합니다.”

사만다의 지적에 미셸이 싱긋 웃었다.

“난 레온 왕가가 싫어. 왕궁의 공기를 마시는 것조차 독약을 마시는 기분이지.  집안 핏줄을 물려받은 사람중에 유일하게 좋아하는 사람은  딸 샤를 뿐이야. 그 외에는 전부 싫어. 고위 대신부터 말단 병사까지도.”
“어련하시겠습니까…”

사만다는 포기했다는 듯이 머리를 도리도리 저으며 먼저 플랫폼 안으로 들어갔다.
미셸도 안으로 들어가면서 함께 나와있던 기사단장 니콜라스를 돌아봤다.

“니콜라스 경, 전하의 일당들을 쫓아내긴 했지만 그들이 남긴 말을 우리도 유념할 필요가 있어요.”
“예, 말씀하십시오.”
“아까 그자가 도망자 한 명과 마녀 멜라니아  명이라고 했어요. 나중에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르니 야영지 안에 머무는 외부인들을 철저히 검사해서 그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봐요. 출발전까지 반드시 찾아내야합니다.”
“인상착의라든지  사람에 대한 정보가 있으면 도움이 될텐데 아쉽군요.”
“제가 알기로 마녀 멜라니아는 지금즈음 일흔이 넘었을겁니다. 우선 할머니를 데리고 다니는 외부인들부터 조사해보세요.”
“예.”

니콜라스가 가볍게 묵례를 한뒤 먼저 앞서갔다.
그 순간 미셸의 머리를 번뜩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아 니콜라스 경, 잠시만요.”
“또 하실 말씀이라도?”
“어제 그 소년 말이에요, 버나드라는 소년.  아이의 누나에게 듣기로는 피가 이어지지 않은 소년과 할머니를 자신과 오빠가 돌보는 중이라고 했던게 기억나네요. 먼저 그 사람들부터 조사해보세요. 아니야, 내가 직접 만나보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있는 곳을 서둘러 파악해보세요.”
“그들은 아무 문제 없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게 말이에요.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왜인지… 떠오르는군요.”
“마음에 걸리십니까?”
“확실히 확인해서 나쁠 것도 없죠.”
“하긴 맞는 말씀입니다. 대영주님의 감은 언제나 좋으니까요.”

니콜라스의 말에 미셸이 미소지었다.

“언제나 좋은건 아닙니다. 가끔씩 실패할때도 있어요. 프레드릭 전하 같은 사람을 만난 것처럼 인생의 실수를 저지를때도 있죠.”
“전하를 정말 미워하시는군요.”
“지금 이 자리에서 매우 심한 말도 뱉을 수 있어요. 쌍스러운 욕으로 전하에게 모욕을   있죠.”
“오, 제발. 제 앞에서 전하를 모욕하는 발언만은 삼가주십시오. 전 간덩이가 크지 않아 전하의 욕을 듣는 것만으로도 반역죄를 저지르는 기분일겁니다. 송구스럽지만 얼른 자리를 떠야겠습니다.”

미셸이 웃었다.

“그래요, 얼른 가보세요.”

한편, 미셸과 블라쉬의 만남을 목격한 버나드는 다급해졌다.

“데보라, 플랫폼 안에 들어가면 곧바로 짐싸. 당장 여길 벗어나자.”
“블라쉬란 사람 순순히 돌아갔잖아. 이제 괜찮아진 것 아니야?”

고개를 갸우뚱하는 데보라의 물음에 버나드는 무척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절대 아니야. 놈은 반드시 돌아올거야. 그렇게 배웠으니까.”
“어떻게 배웠는데?”
“막히면 돌아가라. 들어갈 수 없으면 구멍을 파거나 넘어가라. 또는 변장으로 침투하라.”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게 있어. 데보라는 몰라도 돼. 아무튼 가자.”

플랫폼 입구에 서 있던 미셸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버나드는 숨어있던 장소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앞으로 몇 발자국인가 걷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뒤를 돌아보았다.

“데보라랑 마크는 아킨테에 가서 살거라고 했지?”
“응, 그랬지.”
“음…”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데보라는 일반인이니까 블라쉬에게 걸려도 대충 둘러대면 괜찮을거야. 그러니 데보라랑 마크는 남아있어. 나랑 할머니만 떠날게.”
“어머, 서운하게 무슨 소리니?”

늘 미소만 짓던 데보라가 처음으로 미간을 찡그렸다.

“안돼. 버나드도 꼭 같이 가야한다?”
“블라쉬가 돌아올거야. 그는 암살에 특화된 특수 훈련을 받았어. 함께 있다가는 모두가 죽어. 그러니 말다툼할 시간이 없어. 그런줄 알고 서두르자.”

버나드는 냉정하게 등을 돌리며 다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뒤에 남겨진 데보라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서운함을 금치 못하면서도 그의 말대로 헤어져야할지 아니면 마크를 설득해 그를 따라갈지 고민했다.
데보라는 자신의 오른손바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대로 헤어지기에는 억울한게, 누나가 큰일을 저지른 것 같은데……”

그녀는 무심코 쥐었다피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여운이 아직 남아있었다.

***

블라쉬가 미셸과 막 헤어졌을때였다.
체더와 와빈이 좌우에서 나란히 말을 몰며 걷고 있었다.

“소득도 없이 돌아가실 겁니까? 버나드를 놓치면 후작님께서 크게 노하실겁니다.”
“오늘부터 전하의 부름으로 왕도를 방문했던 왕족들이 속속 이곳을 떠날겁니다. 가장 먼저 출발 예정인 아킨테의 미셸부터 철저히 수색하지 않으면 우리의 포위망에 구멍이 뚫릴거라고요. 나중에 다른 왕족들의 야영지를 모두 수색해봤더니 버나드가 발견되지 않는다고 쳐봐요. 먼저 떠난 아킨테의 미셸을 수색하지 않은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할지 누가 압니까. 일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반드시 미셸의 야영지도 수색해야만 합니다.”
“알아.”

블라쉬가 말했다.

“너희보다 내가 더  안다. 그러니 우리의 허락없이 단 한명도 이곳을 벗어날  없어. 제 아무리 왕족들이라고 해도 말이야. 체더, 와빈. 너희는 다른 왕족들의 야영지를 수색해봐라. 나는 미셸의 야영지에 잠입해서 버나드를 찾아보겠다.”

블라쉬가 말을 마치며 히죽 웃었다.

“놈은 결코  손아귀를 벗어날  없어. 시체를  두 눈으로 확인할때까지 우리의 일은 계속된다.”

그는 즉시 말머리를 돌려 아킨테군의 야영지로 향했다.

***

“오라버니?”
“멜라니아!”

버나드와 데보라가 텐트에 도착하자 마크와 멜라니아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텅  장소에 사람은 없고 짐만 그대로 남아있었다.
누가 훔쳤거나 부순 흔적은 없다.
오후에 떠날 것을 대비해 말끔하게 정리된 짐들과 아침식사를 위해 만들던 콩수프가 보였다. 모닥불 위에 걸린 냄비안에 담긴 콩수프는 바짝 졸여져 타기 일보직전이었다. 데보라는 서둘러 냄비부터 다른곳으로 옮겼다.

“오라버니는 도대체 어디간거지? 할머니가 도와달래서 같이 화장실에 갔나…?”
“뭔가 이상해.”

멜라니아의 짐이 그대로 있는 것을 확인한 버나드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그는 기분 나쁘게 한적하고 적막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치 짜여진 각본처럼 텅 비어진 장소.
버나드는 시선을 내려 바닥을 유심히 쳐다봤다. 그는 금세 평소와 다른 수십개의 발자국들을 발견했다.

‘발자국이다. 행인들의 발자국 따위가 아니야. 깊이를 보면 갑옷을 착용한 기사들의 것이다. 수는 최소 열명? 아니 족히 서른명 이상이야. 제기랄. 역시 들통난건가.’

귀신도  말하면 온다더니 갑자기 주위에서 금속 소리와 함께 숨어있던 기사들이 나타났다.
모두 아킨테의 기사들이다.
최대한 거리를 두고 주변 사물 뒤에 숨어 있던 그들은 원형으로 버나드와 데보라를 포위한 상태였다.
데보라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둘러싼 기사들을 쳐다보았다.

“버나드?  분들은 대체 뭘까?  여기에 계신걸까? 우리가  잘못이라도 한걸까? 아니면 아침식사를 얻어먹기 위해 오신 분들일까?”
“의문형이 많은걸 보니 당황한거지?”
“응. 누나 너무 당황스럽네.”
“데보라는 괜찮을거야. 이 분들은 나한테만 볼일이 있을테니깐.”
“그 말이 맞다.”

불쑥 여성의 목소리가 들렀다.
곧 기사들속에서 금으로 치장된 하얀 숄을 어깨에 걸치고 있는 아킨테의 미셸이 모습을 드러냈다.

“버나드. 널 내성적인 꼬마로만 치부했던 내 짧은 안목을 자책하고 있는 중이란다.”
“……”

버나드는 미간을 찡그리며 그녀의 주변을 바라봤다.
총장 사만다에게 부축 받고 있는 멜라니아와 뻘쭘한 기색으로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마크가 보였다. 멜라니아나 마크나 붙잡힌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몸이 자유로웠다.
어째서 일까? 아킨테의 미셸은 우리와 대화를 하고 싶다는 뜻일까?

“오라버니! 거기서 뭐하시나요!”

데보라가 탓하듯 마크를 부르자, 마크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데, 데보라, 그, 그러니까 이 분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버나드가 올때까지 기다리자고, 하하, 하하…”
“버나드와 저를 위험에 빠뜨려놓고 좋다고 쪼개는 건가요!”

마크가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야! 이 분들은 우리한테 해를 입히려는게 아니라 버나드랑 대화만 하고 싶다고 했어! 진짜야!”

이야기의 전말은 이렇다.
조금전 버나드를 찾으라는 미셸의 명령을 받은 니콜라스는 순식간에 마크가 있는 텐트를 찾아냈고, 즉시 미셸에게 보고 했다.

“벌써요? 일처리가 빨라서 좋군요.”

미셸은 자신의 숙소로 돌아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급히 마크의 텐트로 향했다. 그리고 아침 식사를 만들고 있던 마크와 텐트 안에 있던 멜라니아를 발견한 그녀는 기막힌 웃음을 터뜨렸다.

“반신반의 했는데 실제로 우리 야영지에 계셨을줄이야… 오랜만이군요, 멜라니아님.”

멜라니아는 그녀를 보고 놀라지 않았다. 계속 만나오던 사람처럼 친숙하게 말했다.

“낄낄, 미셸인가. 청초하고 가녀렸던 새댁이 어느새 어엿한 여인이 되었구나.”
“저도 나이를 먹은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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