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화 〉충성의 대가, 몰락2 (2/200)



〈 2화 〉충성의 대가, 몰락2

“그녀를 이용하겠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 그리고 날 상관으로써 존경하고 동경할지는 몰라도, 내게 연심을 품지는 않았어. 오해하지마라.”

말을 마치는 순간 마차가 덜컹거리며 멈춰섰다.
줄리안이 즉시 창문을 가린 작은 커튼을 젖히고 밖을 내다봤다.
노점상들이 즐비한 길거리 한복판이었다.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멀었는데…, 무슨 일이냐?”

마부석에서 뜻밖의 대답이 들려왔다.

“마녀입니다, 줄리안님. 빌어먹을 마귀할멈이 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왕실마녀 멜라니아?”
“낄낄낄, 이 늑대놈들아. 이 길로 지나갈줄 알았지!”

앞쪽에서 쇳소리를 닮은 늙은 마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낄낄, 버나드야 버나드야. 네놈은 곧 죽을 것이다. 쌤통이다 쌤통! 내 아들을 죽게만든 죄다!”
“이 개같은 할멈아! 꺼져! 당장 꺼지라고!”
“예끼 이놈아. 이거나 처먹어라!”

휘익!
촤악!

“아윽! 퉷퉷! 이 망할 할매가 돌았나!”

마녀가 마부와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줄리안이 밖으로 나가 상황을 살펴보았다.
마녀는 잘게 토막낸 죽은 늑대의 시체를 마차에 흩뿌리듯 던져놓았다. 마부와 말들은 늑대의 피를 흠뻑 뒤집어 썼고 길거리는 썩은 늑대 시체의 냄새로 말도 아니었다.

“힘도 없는 할매가 늑대 시체는 또 어디서 구했데?”

줄리안이 피식거리는 사이에도 허리가 굽은 마녀는 바닥에 떨어진 살점을 주워들어 버나드가 타고 있는 마차를 향해 집어던졌다.

“네게 저주가 내려질 것이다!”
“이봐 할매, 오늘 죽은 영감 만나기 전에 그만하시지.”

줄리안이 다가가 그녀 앞에 섰다.

“왕실 마녀라고 해서 우리는 봐주고 그러는 것 없으니까.”
“네놈들에게 곧 종말이 찾아올게야! 낄낄!”
“알았으니까 빨리 가시라고 할매. 길거리에서 꼬부랑 할머니를 후드려 패는 패륜짓은 하고 싶지 않다니깐?”

마녀는 아랑곳 하지 않고  개 없는 이빨을 내보이며 마차에 타고 있는 버나드를 향해 계속해서 크게 비웃었다. 그때 늑대 시체의 피를 흥건히 뒤집어쓴 마부가 씩씩거리며 몽둥이를 들고 나타났다.

“꺼져 이 년아!”

퍽!

“아구구! 늙은이를 때리지마라 이놈들아! 니들도 저주를 퍼부어줄거야!”
“별 미친년을 다보겠네! 어서 꺼지라구!”

마부는 처음 홧김에 마녀의 엉덩이를 한대 친것말고는 위협만 가하는 식으로 마녀를 쫓아냈다.
마녀는 구부정한 몸으로 한쪽발을 절뚝거리며 이내 골목길로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그녀의 웃음 소리는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하이구, 노망난 마녀한테 아침부터 욕도 먹고 참 오래사시겠습니다.”

줄리안이 올라타자 마차가 곧바로 출발했다.

“저 마녀와는 언제 원수지간이 된겁니까?”
“…3년전엔가, 이웃왕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사탄의 제자로 내몰린 아들을 구해달라고  찾아왔었지.”

차분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버나드가 그렇게 운을 뗐다.

“난 거절했어. 왕의 명령이 아니었으니까. 내게 임무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프레드릭 전하 한 사람 뿐이다.”
“단장님의 존재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답니까? 왕실에서 단장님과 우리의 존재를 아는 이는 정말 극소수에 불과할텐데요.”
“레아. 레아가 저 마녀와 친했다.”
“뭐 레아라면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친절한 여자니까 마녀랑도 친했겠네요. 그래서 아들은 이웃왕국에서 죽었습니까?”
“레아가  명령을 무시하고 독단으로 이웃왕국에 잠입했지만 아들은 이미 사형당한 상태였다. 그녀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지.”
“단장님만 얻은게 있군요.”

줄리안이 킥킥 웃어댔다.

“늙은 마녀의 원한.”
“맞아, 아들의 죽음이 순전히  책임이라며 저주를 퍼붓더군.”
“그러니까 저 할멈이 혼자 미쳐서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하는 거네요.  그건 그렇고, 저는 왜  얘길 이제야 알았을까요? 같은 밤의 늑대들인데 처음 듣습니다.”
“레아와 나,  마녀할멈까지 셋만의 문제였으니까. 다른 단원들이 굳이 알필요는 없잖나.”
“하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처럼 동료조차 모를 정도로 은밀히 일을 진행하는 것이 우리 밤의 늑대들의 방식이니까요. 단장님은 알아도 단원 모두가 알 필요는 없죠.”
“알릴 가치도 없는 헤프닝 같은 일이었다.”

버나드가 말을 마쳤을때, 돌연 마차가 급정거를 하며 멈춰섰다.
히이잉! 푸드득!
 때문에 좌석에 앉아있다가 앞으로 튕겨나가 코를 찍을뻔했던 줄리안이 인상을 쓰며 냅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오늘따라 찾아주는 이들이 많구만. 이번엔 또 어떤 미친놈이야?”
“줄리안님 병사들입니다!”

마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렀다.
그 순간 줄리안 역시 마차의 앞을 가로막은 한무리의 병사들을 발견하고 지그시 노려보았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그는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뒤쪽을 응시했다.
마차의 뒤쪽 또한 어느샌가 몰려온 병사들에 의해 퇴로가 막혀 있었다.

“아침부터 독약을 잡수셨나  녀석들이…”
“놀라지말게, 줄리안!”

앞길을 가로막은 병사들이 길을 터주며 그속에서 낯익은 인물이 말을 타고 걸어나왔다.
갑옷을 입은 채 하얀망토를 걸친 그가 이 도발적인 상황의 주모자임을  수 있었다.

“블라쉬…”
“오랜만이군, 친구여. 평민으로 위장한 채 어디로 가고 있었나? 물론 본부겠지? 하하. 밤의 늑대들의 존재를 아는 이들은 극히 적지. 우리 주변에 있는듯 없는듯 살아가는 변신의 귀재들이니까. 하지만 오늘은 운이 없었나보군! 나한테 발각됐구만. 이를 어쩌나.”
“한때 자네가  담고 있던 곳일세. 기밀 누설이 이적행위가 될 수 있음을 자각하고 있을텐데? 오로지 왕을 위해 헌신하는 우리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순간 피해를 보는 것은 바로 자네야. 혹시 간밤에 마신 술이 잘못돼서 미친것 아닌가?”

그 말에 블라쉬가 싱긋 웃으며 대꾸했다.

“어제까지는 자네 말이 맞네. 그리고 오늘부터는 내 말이 옳지. 밤의 늑대들, 너희를 왕비님과 왕세자를 시해한 혐의로 체포하겠다.”
“뭐? 시해? 내가 지금 꿈을 꾸나? 어디서 말도 안되는 혐의를 뒤집어 씌우려 하는가? 왕비님과 왕세자가 죽다니?”
“못 믿겠는가? 그래, 못 믿겠지. 전하의 비밀부대로서 귀여움을 받는답시고 안하무인처럼 굴던 너희들이니까.  봐라. 여기 너희 전원을 체포하라는 전하의 인장이 찍힌 체포영장이 있다.”

블라쉬가  손으로 양피지 두루마리로된 체포영장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버나드가 마차밖으로 걸어나왔다.
블라쉬는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쳐다봤다.

“오우 이게 누구신가. 우리 왕국의 진정한 영웅 마스터 울프가 아니신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21년전 벌어진 ‘걷는 사자 전쟁’에서 수많은 왕족을 살해한 왕족살해자이자 전하께 총애를 받는 애완늑대를 만나게 되다니 실로 영광이 아닐  없구만!”
“버나드님 앞에서 입조심하는게 좋을 것이다 블라쉬. 주둥이를 잘라주는 수가 있어.”
“어디 한번 해보시지, 줄리안. 오늘부터 니들은 끝났다니까.”

블라쉬는 경멸하는 시선으로 버나드를 노려봤다.

“잘난척 하더니  좋다, 왕족살해자. 넌 사형이다.”
“……”
“단장님을 모욕하다니 갈땐 가더라도 네놈 목부터 자르고 가야겠군.”

줄리안이 끼어들며 그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가 잽싸게 칼을 뽑아들자 버나드가 진정하라는듯이 손으로 제지했다.
그리고 버나드는 말위에 탄 블라쉬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블라쉬.
 나가는 용병 출신으로 한때 밤의 늑대들에 속해 있던 자.
그를 뽑은 것은 6년전 버나드 자신이었다.
무예에 출중한 그의 실력을 믿고 뽑았으나 기대와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점점 변해갔다.
언제부턴가 공무 수행중 얻은 정보를 사적으로 이용하여 귀족들과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그간 저지른 범죄행위가 들통나며 무거운 징계를 받았고, 동시에 밤의 늑대들에서 쫓겨나 왕도의 치안을 담당하는 치안대의 말단 병사로 보직 변경이 되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갑옷과 망토를 걸친 대장격이라……
예전 그 일로 자신에게 앙심을 품고 있는 블라쉬는 밤의 늑대들을 사냥하기에 더할나위없이 좋은 사냥개다.
한때 직접 몸 담았던만큼 밤의 늑대들의 생리를 누구보다  안다고 할 수 있었다.
이는 늑대를 토벌하고자 하는 왕의 뜻인가?
버나드는 일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왕비님과 왕세자께서 언제 돌아가셨지?”

블라쉬가 히죽거리며 대답한다.

“오늘 새벽이다. 동이틀 무렵이었다지.  모르는척 하는거야? 네가 시켰으면서.”
“우리가 왕비님과 왕세자를 시해한 증거가 있나?”
“뭐야, 꼬리자르기인가? 그런거야?”

블라쉬가 황당하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평소 끔찍이도 아끼던 오른팔이 현장에서 즉시 체포되었다. 이래도 모른척할테야?”

줄리안이 흠칫하며 눈을 크게 떴다.

“레아가?”
“그래,  계집이다 줄리안. 왕족살해자한테만 매일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어대던  계집 말이지. 정말 고맙게도 그 계집은 혐의를 부인하지도 않고 본인이 직접 왕비님과 왕세자를 시해했다고 자백했다.”

버나드는 충격을 금치못했다.

“그럴리가 없다! 레아가 어째서……?”

줄리안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큭큭, 단장. 저놈 말이 맞다면 레아는 뼈속까지 밤의 늑대들이군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근데 그 말을 너무  지킨 나머지 단장한테까지 상의 한번 안할줄이야. 완전 똥멍청이네요. 제기랄. 죽일거면 우리랑 의논이라도 하고 실행에 옮길것이지  녀석. 완전 제멋대로…”

줄리안의 음성이 떨리는 것으로 보아 그가 심히 낙담하고 있음을 알  있었다. 그리고 분노하고 있다. 최근 수상한 낌새를 보인 레아라면 그랬을지도 모른다라고. 그는 순순히 블라쉬의 말을 믿는 것 같았다.
버나드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바닥에 던졌다.

“저항하지 않겠다. 얌전히 끌려가줄테니 전하를 만나뵐 수 있게 해줬으면 한다.”

줄리안이 재빨리 귓가에 속삭였다.

“끌려가는 순간 모든게 끝날지도 모릅니다. 우선 다른곳으로 피하십시오. 좌천되었던 블라쉬가 복직되어 우리를 체포하려는 것으로 보아  상황에선 우리가 결백하다 주장한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나와 전하의 관계는 핏줄보다 각별하다. 우린 오래전 전장을 함께 누볐고, 전하를 위협하던 누이동생과 매제를 쓰러뜨리고 무너지려던 레온 왕조를 재건했어. 그 시절 피를 나눈 우정이 자리잡고 있는 한 전하는 나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실거야.”

줄리안은 속으로 혀를 찼다.
버나드와 프레드릭왕이 매우 각별한 사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곁에서  버나드를 지켜보면서, 왕이 버나드를 아끼고 또 버나드가 왕을 존경한다는 것을 절실히 실감한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예전에나 그랬고, 지금은 아니다.

“아직 진위여부가 확실치 않아 단장님께 보고드리지 않았습니다만, 최근 전하의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는 소문이 돌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터무니 없는 소리. 만약 전하께서 정신병에 걸리셨다면 왕국에서 내가 제일 먼저 알았을 것이다.”

오직 왕을 위해 일했고, 오직 왕을 위해 살아온, 본인 인생이 거의 없다싶을 정도로 늘 왕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희생해온 버나드를 지금  자리에서 갑자기 설득할 수 있을리 만무했다.
프레드릭왕을 향한 그의 우직한 충심은 하루아침에 모래성처럼 무너질 것이 아니었다.

“날 전하께 안내해라 블라쉬. 단지 그것뿐이다. 내 뜻을 받아들여 준다면 저항하지 않겠다.”

블라쉬는 잠시 진지하게 고민해보더니 픽 웃으며 대답했다.

“좋소이다. 한때  상관이었고 옛정을 생각해 기회를 드리지. 하지만 전하께서 독대를 거부하시면 그땐 나도 어쩔 수 없다고 마스터 울프.”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여러명의 병사들이 달려들어 버나드와 줄리안을 밧줄로 포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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