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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 (95/95)

15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

무슨 짓을 해도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는 세월.

율은 어느새 한국종합게임대학교, 일명 쥬신대의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우여곡절도 참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율은 쥬신대에 입학하면서 전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마 그건 단지 율뿐만의 얘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검마노가 서비스를 시작한 지 벌써 7년(현실시간)이 흘렀다.

그 7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검마노에서 많은 걸 얻었다. 어떤 이는 사랑스러운 아내를 얻었고, 또 어떤 이는 소중한 친구를 얻었다.

물론 좋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그래도 검마노는 역기능보단 순기능을 많이 만들어냈다.

한 아버지가 딸을 위해 만들었던 검마노는 그렇게 전 세상의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율도 벌써 게임을 시작한 지는 4년 정도가 되어갔다.

반강제로 게임을 시작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4년이 되어 있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현재 율은 4년 전과는 정말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그것들을 전부 나열하긴 힘들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를 꼽으라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선율! 내가 저거 치우라고 했잖아~!”

율을 향해 소리치는 명선.

최명선, 그녀가 바로 엘리스였다.

“으음, 미안해. 잠깐 다시 한 번 노래 좀 확인하느라고…….”

“으휴~! 뭘 또 확인해. 진짜 잘됐다니까 그러네. 내말 못 믿어? 자꾸 내 말 못 믿고 그러면 앞으로 너 곡 안 만들어 준다!”

협박하듯 말하는 엘리스.

“아, 아냐! 맘에 들어.”

율은 여전히 엘리스에게 꼼짝도 못했다.

“그럼, 어서 저거나 치워. 넌 다 좋은데 청소를 너무 싫어하는 게 문제야.”

“헤헤, 대신 네가 좋아하잖아.”

“으이씨~ 청소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냥 보기 싫으니까 치우는 거지.”

“어쨌든 난 자기만 있으면 돼.”

슬쩍 애교까지 부리는 율.

진짜 예전의 율에게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모습이다.

“으휴~ 이 화상.”

말은 그렇게 해도 엘리스 역시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라 있었다.

“참, 어제 유라 언니한테 연락 왔었어?”

엘리스가 말하는 유라 언니는 바로 TOP의 대표이사 신유라였다.

“응, 왔었어.”

“뭐라셔?”

“…그냥 한마디로 압축하시던데.”

“한마디?”

“응?”

“무슨 한마디.”

“대~~~박!”

“어? 진짜?”

“대박이래. 일단 제대로 공개한 게 아니라 비공개를 조건으로 몇몇 폐쇄적인 골수 음악팬 사이트에만 공개했는데, 난리가 났데.”

“…진짜야?”

“내가 너한테 왜 거짓말을 해.”

“휴~ 다행이다.”

“흐흐, 이게 다~ 자기가 만들어준 곡이 워낙 좋아서야. 진짜 자기 덕분이야.”

“무슨 소리야. 내 곡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네 노래가 좋아서 그런 거야. 진짜… 넌 가끔 보면 너의 그 재능을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더라.”

“에이~ 몰라. 난 그저 노래만 불렀을 뿐이야. 다른 건 자기가 다했잖아? 그러니까 난 영원히 자기 곡 아니면 절대 노래를 부르지 않을 거야.”

“히히, 그렇게 말해주니까 고맙긴 하네.”

“헤헤헤~ 얼마나 고마운데?”

“아주 많이~~~~!”

율과 엘리스는 진짜 기분 좋게 웃으며 서로를 너무나 사랑스럽게 쳐다보았다.

“아, 근데 언제 공개하신데?”

“대략 보름 정도 후로 잡고 계시던데. 아주 화끈하게 하이퍼넷에서 알아준다는 음악 사이트에는 전부 공개한데.”

“이야, 진짜 이제 그쪽 세계도 새로운 바람이 불겠다.”

“제2의 Nothing의 탄생이지!”

“푸하하하, 그건 오버야. Nothing은 감히 전설을 넘어 레전드라고!”

엘리스는 밝게 웃으며 평소엔 잘 하지도 않는 농담까지 했다.

“쳇, 알았어. Nothing보다는 살짝 떨어지는 Zero의 등장이라고 할게.”

“히히, 그나저나 그 이름 마음에 들어? 난 그냥 농담으로 한 얘기였는데…….”

“아우~ 너무 좋아. Zero! 얼마나 멋져~!!”

제로(Zero)는 엘리스가 농담처럼 만든 예명이었다.

그녀가 예전 하이퍼넷의 가수 Nothing으로 활동했던 것에서 힌트를 얻어 아무것도 없는… 제로.

이렇게 만든 것이었는데 율이 너무 마음에 들어 하며 진짜 예명으로 써버렸다.

대략 1년 전 TOP과 정식으로 계약을 하고 하이퍼넷 가수로 활동하기로 한 율.

1년 동안 율은 계약한 대로 오로지 자신과 엘리스 둘만이 곡을 만들고 불렀다.

TOP은 그저 마케팅 쪽만 책임지는 걸로 계약되어 있었다.

그렇게 1년 동안 열심히 만든 노래를 이번에 발표하게 되었다.

율도, 그리고 엘리스도 기대되는 상황.

물론 그 와중에도 그들은 게임을 열심히 즐겼다.

섀도우 로드는 그동안 많은 개편을 통해 이제는 초반에 활동했던 1~5기 정도의 그림자들은 거의 길드 활동을 잘 하지 않고, 새로 들어온 그림자들이 열심히 길드를 이어가고 있었다.

율 역시 길드 마스터 자리를 팔콘에게 내어주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물론 섀도우 로드의 일선에서만 물러난 것이지 게임을 접은 건 아니었다.

섀도우 로드는 팔콘을 중심으로 다시 3대 섀도우 로드가 되었고… 3대 역시 2대와 마찬가지로 검마노의 정점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강풍은 다시 투기장에 컴백해서 무려 341연승이란 엄청난 대기록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이제 투신을 넘어 ‘무적자’라고 불리며 검마노에서 가장 뛰어난 투사가 되어 있었다.

한편, 다크불과 그 일행들은 여전히 섀도우 로드에서 활약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게임을 즐기며 제2의 인생을 게임 속에서 만들어가고 있었다.

쥬신대의 친구들 역시 여전히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율과 마찬가지로 이번에 졸업을 하게 된 그들은 과거 다소 부족했던 모습과 달리, 이제는 어디 가서도 인정받는 최상위권 랭커가 되어 있었다.

특히 흑월과 사악마녀는 대략 1년(현실시간) 전부터 사귀기 시작해 현재 뜨겁게 연애를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섀도우 로드와 연합 체제를 유지하던 크로우즈는 5년(게임시간) 전부터 다시 하나의 길드로 분리되었다.

이건 크로우즈의 뜻이라기보다는 율의 뜻이었다.

섀도우 로드가 비록 정점에 올랐지만 크로우즈 역시 얼마든지 정점에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길드라며 율은 검은늑대에게 분리를 권유했다.

물론 분리를 했다고 해서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크로우즈와 섀도우 로드는 굉장히 친밀한 관계였고… 그림자들 역시 크로우즈의 까마귀들과 상당히 두터운 친분을 쌓고 있었다.

세월은 흘러 변한 것도,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게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웃음, 그들의 행복.

그들이 웃는 이유는 행복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즐길 줄 아는 이들.

그들이 바로 율과 그의 친구들이었다.

* * *

누가 요즘 가요계의 대세를 묻는다면 100명 중 적어도 80명 정도는 똑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바로 하이퍼넷 가수 ZERO.

그가 바로 요즘 가요계의 대세였다.

1년 전 하이퍼넷에 갑자기 등장한 그는 현재 엄청난 팬층을 확보하고 있었다.

단순히 국내 팬들뿐만 아니라 해외 팬들도 엄청 많았다.

오히려 숫자로 비교한다면 해외 팬이 훨씬 많다고 할 수 있었다.

그가 하이퍼넷에 공개한 곡은 총 7곡.

그런데 그 7곡 모두 각종 하이퍼넷 음악 기록을 다 갈아치워 버렸다.

한 평론가는 ZERO를 언젠가부터 시작되었던 기계 음악(또는 컴퓨터 뮤직)의 시대를 끝낸 종결자라고 말했다.

단, 1년 만에 그는 진짜 월드스타가 되었다.

적어도 음악을 좋아하는 이라면 ZERO의 이름 정도는 다 알고 있었다.

ZERO가 다시 음악을 컴퓨터로부터 빼앗아오자 음악 시장도 많은 것이 변했다.

가수의 목이 아닌 컴퓨터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던 노래들이 이제 진짜 가수의 목으로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진짜 가수는 단순히 얼굴로 노래를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실력을 가지고 노래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이건 사실 바뀐 게 아니라 원래대로 돌아간 것이었다.

아무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얘기했던 이 회귀를 만들어낸 게 바로 ZERO였다.

물론 여전히 ZERO의 얼굴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ZERO는 단순히 노래만 공개하고 다른 것은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인터뷰조차도 하이퍼넷으로만 할 정도로 철저하게 개인 정보가 감춰져 있었다.

어쩌면 그런 신비주의 전략이 더 성공을 거둔 것인지도 몰랐다.

이제는 대중 음악계의 원탑(One Top)이라 불리는 ZERO.

많은 사람들은 그의 노래를 들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ZERO가 원했던 그대로…….

<7권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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