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반격 그리고 칠흑의 협곡
현재 많은 이들은 ‘크로우즈’가 골든 라인과 다크문을 차례대로 쓰러트렸다고 알고 있었다.
골든 라인과 다크문 역시 뭔가 뒤에 더 숨겨져 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결국 중심은 크로우즈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이번 일 덕분에 크로우즈의 세는 상당히 늘어났다.
율의 조언을 받아들여 크로우즈의 규모를 조금 더 키운 회색늑대.
그렇기 때문에 이젠 크로우즈도 명실상부한 잘나가는 대형 길드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이젠 검은 까마귀가 새겨진 망토를 두르고 있는 이들은 그 누구도 함부로 무시하지 못했다.
이러한 크로우즈의 성장은 다른 중소 규모의 길드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주었다.
나도, 우리도 할 수 있다!
이게 바로 그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런 그들의 생각이 처참하게 깨질 것만 같았다.
바로 얼마 전 굴욕이라 할 수 있는 일들을 차례대로 당한 그들에 의해서…….
“명심해라. 다른 이들은 건드릴 필요 없다. 무조건 검은 까마귀를 새기고 있는 이들만 철저히 망가트려라. 혹시 그 과정에서 다른 이들이 그들에게 힘을 보태면 그들도 다 쓸어버려라. 이번 작전의 목적은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크로우즈 따위가 감히 로열패밀리를 넘볼 수 없다는 걸 세상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주면 된다.”
다크문의 37번 척살조의 조장이었던 돌도끼는 이름과 잘 어울리는 목소리로 명령을 전달했다.
“네!”
“네엡~!”
30명으로 이루어진 37번 척살조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런 30명 규모의 척살조가 무려 100번까지 만들어졌다. 그리고 거기에 학살조라고 이름 붙여진 500명 규모의 대규모 섬멸부대가 10개나 만들어졌다.
이번 임무에 동원된 다크문의 최정예 유저 8,000여 명은 엄청난 기세를 내뿜으며 크로우즈의 세력권 전역에 퍼져 있었다.
여기에 골든 라인에서 뽑은 최정예 10,000명이 합쳐지면… 무려 2만에 가까운 최정예 유저들이 크로우즈를 잡기 위해 몰려든 것이었다.
크로우즈가 최근 들어 세를 급격하게 늘렸다지만 그래봤자 총인원은 겨우 1만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 중 80%에 가까운 이들 대부분이 크로우즈의 명성만 보고 찾아온 중, 저 레벨 유저들이었다.
다크문과 골든 라인이 동원한 최정예 유저들은 평균 레벨이 무려 390이었다. 대부분 400레벨에 가까운 이들이란 뜻이었다.
그에 반면, 크로우즈엔 400레벨을 넘은 이들이 겨우 천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100레벨 이하의 완전 뉴비 유저들도 1,000명 가까이 되었다.
이래저래 크로우즈는 다크문과 골든 라인의 기습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처참하게 학살당하는 크로우즈의 길드원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크로우즈 길드원의 50%가 넘는 인원이 처참하게 게임아웃 당했다.
반면, 다크문과 골든 라인은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 그들의 기습이 빠르고 강했기 때문이다.
그건 크로우즈 아니, 섀도우 로드에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율은 당연히 조각 아이템을 얻기 전까진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특히, 여러 가지 내부 문제가 지적된 그들이 이렇게 빨리 공격을 감행할 것이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었다.
정확하게 뒤통수를 맞은 상황.
회색늑대는 율에게 황급히 지원을 요청했지만 이미 율에게 연락이 닿았을 땐 크로우즈 길드가 거의 괴멸 상태에 빠진 후였다.
율은 섀도우 로드의 집행위원들을 급하게 소집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반격이라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현재 크로우즈의 피해는 어떻게 복구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현재까지 입은 피해가 어느 정도야?”
얼굴이 잔뜩 굳은 율이 옆에 있던 팔콘에게 물었다.
“크로우즈는 정예 유저 몇몇을 제외한 90%에 가까운 길드원들이 모두 당했어요. 그리고 그 유저들 중 절반 이상이 다시 게임에 접속하면 길드를 탈퇴할 것만 같아요.”
“…어차피 보여주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끌어 모았던 세력이니까 그들 전부가 빠져나가도 상관은 없어. 문제는 크로우즈의 정예들과 그림자 상단이야.”
“크로우즈의 정예들은 현재 전부 흩어져서 개개인의 힘으로 다크문과 골든 라인의 포위망을 뚫고 있어요. 포위망을 뚫은 이들에겐 모두 이곳으로 모여 달라고 이미 연락을 취해 놨어요.”
“그림자 상단은?”
“거긴… 그냥 모든 이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다시 되찾으려면 힘으로 맞서서 빼앗아야 하는데 당장 그건 힘들 것 같고요.”
“후우… 생각보다 피해가 크군.”
“어쩔 수가 없었어요. 놈들이 설마 그렇게 연합을 해서 덤빌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어요. 연합만 하지 않았어도 대충 생각했던 대로 크로우즈의 신규 길드원들이 어느 정도 피해를 저지해 주면, 그사이 우리가 정예들을 끌어 모아 역습을 가할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되면 역습을 하기도 힘든 상황이에요.”
팔콘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얘기했다.
“다른 사람들 생각은 어때?”
이곳에 모인 다른 집행위원들을 바라보며 율이 물었다.
워낙 급했던 터라 모든 집행위원들이 모이진 못했지만 그래도 많은 숫자였다.
4차 전직이 코앞이었던 강풍과 엘리스는 없었지만 대신 다크불, 강한남자, 이안, 로이드, 융단폭격 등등 대략 20명가량의 집행위원들이 모여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지금은 차라리 철저하게 꼬리를 끊고 일단 지하로 숨는 게 맞는 것 같다. 어차피 그 녀석들… 우리의 존재는 잘 모르잖아.”
“정확한 정체나 규모는 모르고 있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을걸.”
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어느 정도 예상하는 걸로는 우리를 찾지 못할 거예요.”
팔콘은 이미 다방면으로 조사를 끝내놨기 때문에 거의 확신하듯 얘기할 수 있었다.
“흐음… 하지만 이렇게 피해만 입고 물러나는 건 좋지 않을 듯싶은데.”
크로우즈도 명색이 섀도우 로드의 일원이었다.
그들이 처참하게 깨진 상황에서 자신들만 지하로 숨을 순 없었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이번엔 가만히 듣고 있던 이안이 나섰다.
“어떻게요?”
“일단 섀도우 로드의 거의 모든 전력은 방금 말한 것처럼 조용히 지하로 숨어드는 거예요. 대신… 이미 노출된 최고 정예들은 크로우즈의 몰락을 최대한 저지하는 거죠. 이렇게 하면 아마 다크문이나 골든 라인도 더 이상은 아무 의심도 하지 않을 것이고, 거기에 우린 명분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오~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거기에 아예 크로우즈의 이번 패배를 말도 안 되는 로열패밀리의 횡포 쪽으로 몰고 가며 언론 플레이까지 하죠. 로열패밀리씩이나 되는 것들이 치사하게 연합까지 한 사실을 낱낱이 공개하면서, 그들은 결국 이 검마노의 세상을 영원히 장악하려는 것이라고 얘기하면 아마 효과가 꽤 있을 것 같아요.”
팔콘이 이안의 의견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괜찮을 듯싶은데, 다른 사람들 생각은 어때?”
“나도 괜찮은 거 같다.”
“저도요~!”
“나도 찬성.”
모든 집행위원들이 이 의견에 찬성했다.
“그럼 좋아. 일단 나와 팔콘, 그리고 불형 파티와 쥬신대 파티를 포함한 저번 작전에 나섰던 사람들이 전부 나서는 걸로 하자. 강풍이랑 엘리스는 일단 제외하고, 혹시 전직을 끝냈다고 연락이 오면 그때 합류시키자.”
대충 마지막까지 저항할 멤버들이 결정되었다.
“다른 분들은 모두 흩어져서 다른 섀도우 로드의 멤버들에게 철저하게 잠수를 타라고 전해주면 될 것 같네요. 제가 따로 소집 명령을 내릴 때까진 모두 개인 활동을 하며 힘을 기르는 걸로 하죠.”
율이 모든 걸 대충 정리해서 얘기했다.
“비록 그들에게 뒤통수를 제대로 한 방 맞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닙니다. 일단은 앞으로의 전진을 위해 한 발자국만 물러났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율은 비록 지금은 당했지만 다음엔 다를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의 그런 자신감의 원천은 바로 정예 중의 정예들이 모여 있는 이 섀도우 로드의 힘에서 나왔다.
거의 2,000명에 가까운 진짜 정예 유저들이 모여 있는 길드… 여기서의 2,000은 단순한 2,000이 아니었다.
그것은 로열패밀리들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최고의 힘이었다.
* * *
크로우즈의 엄청난 피해는 또다시 검마노의 세상에서 이슈가 되었다.
골든 라인과 다크문을 차례차례 격파할 때는 정말 크로우즈가 새로운 로열패밀리가 될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그들은 다크문과 골든 라인의 역습에 처참하게 당하고 말았다.
물론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다크문과 골든 라인의 연합에 대한 말들은 대부분 좋지 않았다.
특히, 누군가 언급한 검마노의 세상을 지배하려는 로열패밀리의 욕심이 절정에 다다랐다는 말은 마치 마른 들판에서 불길이 퍼져나가듯 많은 유저들에게 빠르게 퍼져나갔다.
아무리 로열패밀리가 대단하다지만 그들은 결코 검마노의 모든 부분을 장악하진 못했다.
여전히 로열패밀리를 제외한 유저의 숫자가 검마노 세상의 70% 이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자 점점 로열패밀리에 대한 인식은 더욱 안 좋아졌다.
로열패밀리의 인식이 나빠지자 반대로 크로우즈를 동정하는 이들도 많이 늘어났다.
그와 동시에 제2의 크로우즈가 나와서는 안 된다고 선동하는 이들까지 등장했다.
이래저래 다크문과 골든 라인으로서는 그다지 좋지 않은 분위기로 일이 흘러가고 있었다.
특히 크로우즈를 완전히 박살냈다고 생각했을 때 등장한 크로우즈의 비밀 세력이 생각보다 훨씬 큰 저항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중이라 골치가 아팠다.
그들은 4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극소수의 인원이었지만 많으면 한 파티에서, 적으면 두세 명으로 분산되어 여기저기에서 게릴라전을 펼쳤기 때문에 완전히 진압하는 게 쉽지 않았다.
특히 다크문의 검은달과 골든 라인의 황금공자가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는 율과 같은 경우는 혼자 다니면서도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현재 다크문과 골든 라인의 정예 유저들 사이에선 ‘명왕(冥王)’ 또는 ‘데스로드(Death Lord)’라고 불리며 공포의 대상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이미 검은달과 황금공자는 그 율을 잡기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심지어 크로우즈의 다른 잔당들은 전부 놓치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오로지 율만 쫓기에 열심이었다.
덕분에 율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더 수월하게 다크문과 골든 라인을 괴롭힐 수 있었다.
율 역시 이 사실을 최대한 활용하는 중이었다.
그 누구보다 현재 검은달과 황금공자의 심정을 잘 알고 있던 그였기에 그는 계속 그들을 몰고 다니며 다른 길드원들이 더 활동할 수 있게 도왔다.
“동쪽은 확실히 틀어막았지?”
검은달이 다시 한 번 확인하듯 물었다.
“네, 동쪽은 저희가 확실히 막았습니다. 남은 북쪽과 서쪽은 골든 라인 측에서 완전히 막았으니까, 남은 건 여기 남쪽뿐입니다.”
“좋아, 이제 놈도 독 안에 든 쥐다.”
현재 검은달은 자신의 조각 아이템을 가져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 신비의 사나이를 한 협곡에 몰아넣은 상태였다.
그들이 신비의 사나이, 즉 율을 이곳으로 몰아넣기까지는 무척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자신들을 미친 듯이 괴롭히던 율이 갑자기 일주일 정도 모습을 감추자 검은달과 황금공자는 순간 율이 잠수라도 탄 줄 알고 깜짝 놀랐었다.
다행히 율의 행적을 우연히 발견하고 추적까지 성공해내 결국 그를 이곳에 몰아넣을 수 있었다.
이미 길드끼리의 전투 상황이 펼쳐졌기 때문에 어차피 서로 귀환 주문서를 사용할 순 없었다.
그렇다는 얘긴 곧 이 협곡이 그 신비의 사나이, 즉 율의 무덤이 될 것이란 뜻과 같았다.
물론 그건 검은달의 생각일 뿐이었지만 실제로도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보였다.
특히 이번 작전을 위해 검은달이 이천, 그리고 황금공자가 삼천. 합쳐서 총 오천에 가까운 정예 유저들을 동원했기 때문에 말 그대로 협곡 주변엔 완벽한 천라지망(天羅之網)이 펼쳐져 있었다.
“일단 정찰조가 먼저 협곡으로 침투한다. 놈의 반항이 만만치 않을 테니 힘을 빼놓을 필요가 있어.”
검은달은 율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자신과 황금공자의 조각 아이템마저 강탈해 갔으니 더욱 강해졌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함부로 먼저 나서지 않았다.
일단 부하들을 희생시켜 힘을 빼놓고 자신은 결정적인 순간에만 등장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황금공자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검은달에서 대략 30명 정도의 정찰조를 내보냈고, 황금공자는 40명 정도를 내보냈다.
둘이 합쳐 70명.
그들은 이 정도 숫자라면 충분히 율의 힘을 빼놓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협곡 안은 완벽한 어둠이었다.
율은 이곳에 포위된 게 아니었다. 일부러 이곳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 어둠은 설사 내일 아침이 되어 해가 떠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지금보다 살짝 밝아지는 느낌만 날 것이었다.
그래서 이곳의 이름이 ‘칠흑의 협곡’이었다.
율은 어둠 속에 몸을 감추고 사냥감들이 몰려오길 기다렸다.
그가 이렇게 무리를 해서까지 골든 라인과 다크문의 정예를 이곳으로 끌어들인 건 조금이라도 크로우즈의 중심이 되는 유저들을 구출하고, 자신과 동시에 노출된 다른 섀도우 로드의 동료들을 보다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한마디로 모두를 위해 미끼를 자청한 것이었다.
당연히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무려 두 개의 로열패밀리에서 뽑혀온 정예 유저들이었다. 한두 명도 아닌 수천 명의 유저들이었다.
그런 엄청난 숫자의 유저들에게 포위된다는 건 그냥 죽는다는 뜻과 같아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율은 망설이지 않았다.
주변의 동료들이 죽으러 가는 거냐고 물을 때도 그는 오히려 살기 위해 미끼가 된다고 얘기했다.
즉, 율은 이 자리에 죽으러 온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왔다는 뜻이었다.
‘얼마나 온 거지?’
이 지역은 대규모 길드 전장으로 설정되었기에 율은 당연히 귓속말이나 길드 채팅 같은 걸 할 수 없었다.
결국 정보를 얻을 방법은 오프라인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지금은 힘들었다.
일단 쌍방 간에 길드전이 선포된 상황에서 서로 가까운 곳에서 대치하고 있는 경우, 로그아웃에 필요한 시간이 10배로 늘어났기 때문에 무방비 상태에서 끝장날 위험성이 너무 높아졌다.
즉, 지금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능력으로 모든 걸 헤쳐 나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마지막으로 들은 정보가 두 세력의 모든 정예가 이곳으로 집결 중이라고 했으니 대략 5천 정도는 되겠군.’
정예 유저 5천은 만만한 수치가 결코 아니었다.
특히 로열패밀리였던 다크문과 골든 라인이 고르고 고른 정예 유저 5천이었다. 당연히 일반 길드 수준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들 5천이라면 정말 어지간한 길드는 순식간에 전멸시킬 수도 있을 정도였다.
율은 그런 엄청난 전력에게 포위당했음에도 여전히 여유로웠다.
실력에서 오는 자신감이었다.
율은 그동안 자신이 각고의 노력을 해서 얻은 그 ‘능력’을 믿었다.
‘일단 놈들에게 내가 확실히 여기에 있다는 걸 확인시켜 줘야겠군.’
율은 자신을 포위한 다크문과 골든 라인의 정예 유저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대략 예측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는 이 협곡 안으로 돌진할 놈들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정찰대를 보낼 게 분명해 보였다.
우선은 그 정찰대를 상대해야 했다.
그냥 상대하는 게 아니라 철저히 그들을 박살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이 이곳에 마구 진입하는 걸 억제시킬 필요가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을 결전의 장소로 생각해 두었던 율은 여기에 많은 준비를 해놨었다.
율을 포위한 이들은 이곳이 그의 무덤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겠지만, 율은 반대로 이곳이 그들의 무덤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부나방들에겐 이게 제일 좋지.’
츠츠츳!
율은 섀도우를 커다란 라이플로 변형시켰다.
혼돈의 조각-[섀도우]
: 신은 인간의 탐욕은 자신이 직접 신력(神力)을 담아 내린 신의 조각들을 어둠으로 물들이고 있다고 판단했다. 해서… 신은 혼돈의 힘을 빌려 자신이 세상에 내린 모든 조각을 회수하기로 결정했다.
등급 : 등급 외.
능력 : 내구도[무한] 원거리공격력+40%, 원거리적중률+40%, 치명타성공률+20%, 치명타데미지+30%, 사거리+30% 근접공격력-50% [레벨 500]
추가능력 : 현존하는 모든 종류의 무기로 변형이 가능함.
특수능력 : 없음.
상태 : 저격용 라이플.
귀속상태 : 선율 아폴론에게 귀속됨.
특이사항 : 총 네 가지의 봉인(封印)을 해제할 수 있다. 봉인 해제 시 특별한 힘이 추가된다.[해제된 봉인 1]
조각파괴 : 무(無).
사기적인 능력을 지닌 섀도우 덕분에 율은 압도적인 저격 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물론 율은 미리 건 마스터 바우어의 영혼을 불러내 그 힘을 사용하는 중이었다.
“자, 어떤 놈부터 처리해줄까?”
율은 바우어가 가진 특유의 장거리 기감(氣感) 느끼기 스킬을 이용해 적들을 찾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율의 쇼타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타앙!
한 발의 총성, 그리고…….
“커억!”
단말마 외침.
“위치를 찾아!”
“동쪽인 것 같다!”
“아냐, 북쪽이다!!”
우왕좌왕.
골든 라인과 다크문의 정찰조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몇 시간째 계속된 장거리 저격은 벌써 열 명의 정찰조원을 쓰러트렸다.
저격이 어디서, 어떻게 날아왔는지조차 알아내지 못했던 그들은 그저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율은 그 순간에 이미 저격을 성공시키고 저격 위치에서 조용히 물러나 있었다.
그들은 절대 율을 찾을 수 없었다.
칠흑의 협곡은 그 특성상 절대 일정 수준 이상 밝아지지 않았다.
다른 평범한 곳과 비교하면 최고로 밝을 때가 대략 만월(滿月)이 되었을 때의 밝기와 같았다.
즉, 이곳은 거의 365일 내내 어둠이 내려앉은 곳이란 뜻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율의 은신은 완벽해졌다.
특히 미리 모든 지형지물을 숙지하고 그 중간중간에 엄폐물까지 만들어놓은 율이었기에 더욱 정찰조는 율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율은 이런 것들을 이용해 최대한 은밀하고 빠르게 이동하며 두 갈래로 협곡에 진입한 다크문과 골든 라인의 정찰조를 각각 상대하고 있었다.
벌써 양쪽에 대략 10명씩 총 20명에 가까운 이들을 제거한 상태였다.
하지만 율은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
그의 목표는 협곡에 들어온 70명가량의 정찰조 유저들 중 40명 이상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될 경우, 당연히 다크문과 골든 라인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혹시 다른 유저들도 함정을 파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다.
여러모로 그들의 생각을 복잡하게 만드는 게 율의 목적이었다.
‘아침이 오기 전에 정찰조를 괴멸시킨다!’
칠흑의 협곡에 아침이 찾아오려면 적어도 두 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했다.
율은 그전에 정찰조를 완전히 괴멸시켜 더 이상 정찰 임무를 할 수 없게 만들 작정이었다.
일단 적들의 눈이라 할 수 있는 정찰조를 제압하고 나면 적들은 그 눈의 기능을 다시 회복하기 전까진 또다시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궁극적으로 율이 원하는 건 따로 있었다. 하지만 무조건 그들을 그쪽으로 유도할 수는 없었다.
일단은 그들을 겁먹게 한 후… 어쩔 수 없이 그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그쪽으로 향하게 만드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