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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다크문 vs 크로우즈 (78/95)

11. 다크문 vs 크로우즈

다크문과 크로우즈는 상의 끝에 각기 대표를 10명씩 선발해 1 vs 1 대결 5번, 2 : 2 경기 한 번, 3 : 3경기 한 번을 하기로 결정했다.

혹시 이렇게 해서도 결판이 나지 않고 승패가 같아질 경우, 서로 각기 살아남은 이들 중 마지막 최후의 1 vs 1 경기를 할 대표를 내보내 승패경기로 승패를 가르기로 했다.

대표전의 날짜는 보름(게임시간) 뒤로 하기로 했고 장소는 중립지역이라 할 수 있는 동방대륙의 리프에 있는 공식 결투장을 이용하기로 했다.

모든 게 결정되자 율은 오히려 더 홀가분해졌다.

벌써부터 다크문과 크로우즈가 한판 제대로 붙는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에서 들여오고 그와 함께 크로우즈가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었지만 정작 율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비록 좀 힘든 시기가 찾아오겠지만 이 시기만 잘 넘기면 율이 원했던 섀도우 로드가 탄생할 수도 있었다.

어차피 한번은 찾아올 것이었기에 율은 담담히 그것을 받아들였다.

재미있는 건 이번 소문이 나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숨어 있던 상급 유저들이 대거 크로우즈에 가입 신청을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드디어 자신들이 기다리던 길드가 탄생했다며 최하 등급의 길드원이라도 좋으니 끼워만 달라고 했다.

요즘 팔콘은 길드 신청을 한 다수의 상급 유저들에 대한 명확한 정보 조사를 하느라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조사 결과 확실히 섀도우 로드의 일원이 될 만한 이들이라고 결정되면 모두 길드에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러면서 골든 라인에 대한 동향도 잊지 않고 계속 체크했다.

이대로 조용히 넘어갈 골든 라인이 아니었기에 언제, 어떻게 움직이는지 계속 신경써줘야 했다.

이번 다크문과의 대표전에 나가는 대표들은 이번에도 역시 강풍과 엘리스, 그리고 팔콘, 흑월, 사악마녀가 들어갔고 거기에 율이 들어갔다.

남은 4명은 크로우즈에서 회색늑대와 그가 선발한 3명의 유저가 나서기로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번에도 역시 율과 그 동료들은 크로우즈 소속으로 출전하게 됐다.

크로우즈는 이미 섀도우 로드와 연합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들이 크로우즈와의 길드전에 참가하는 건 아무 문제가 없었다.

크로우즈의 비멸 병기로서 테러를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얼굴을 가려주는 검은색 복면까지 준비해둔 상태였다.

이 복면은 생각보다 비싼 제작 아이템이었다.

그냥 아무 거나 두른다고 복면처럼 착용할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머리에 장착하는 아이템을 포기하고 대신 이 복면을 착용하는 것이었기에 살짝 손해 보는 감은 좀 있었지만 정체를 숨길 때는 이만한 아이템이 없었다.

모든 준비를 끝냈으니 이제는 기다리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보름 후에 결정되는 길드 전쟁의 승패.

‘다크문은 자신들의 승리를 일찌감치 예상하고 있겠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다크문에서 대표로 선정한 10명의 유저는 다크문을 세운 그 10인이었다.

현재 그들의 PvP랭킹은 모두 100위권 안쪽에 포진하고 있었다.

특히 길드마스터였던 검은달은 무려 랭킹 2위였다.

그밖에도 10위권 안에 1명이 더 있었고 50위권 안에도 4명이 더 포진하고 있었다.

괜히 최강의 PvP길드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율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별로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실력도 믿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동료들이 가진 실력도 믿었다.

그렇기에 그의 머릿속에 절대 패배란 말이 떠오를 수가 없었다.

* * *

결전의 날.

리프의 결투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다크문이 의도적으로 이번 대표전에 대한 정보를 여기저기 흘렸기 때문에 각종 게임 방송사의 중계진부터 경기를 관전하기 위한 관객들까지 들어와 있었다.

물론 결투장의 특성상 대결을 펼치는 유저들 이외의 유저들은 그 어떤 스킬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결투의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건 전혀 없었지만, 이렇게 많은 관객들이 있으면 좀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회색늑대, 오랜만이야.”

검은달이 크게 미소 지으며 회색늑대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마치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라도 만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회색늑대는 그런 그의 표정이 더 짜증났다.

“쓸데없는 이빨은 자제하자.”

“워~ 말이 좀 험하네. 왜 그래. 쿨(Cool)하기로 소문난 남자께서.”

검은달은 슬슬 회색늑대를 자극하고 있었다.

회색늑대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억지로 참았다.

이런 도발에 넘어가봤자 오히려 손해는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회색늑대는 참았건만 율은 참지 않았다.

“쫑알쫑알 말 진짜 많네.”

역으로 도발하는 율.

순간 검은달이 이채로운 눈빛을 띠며 복면을 쓰고 있는 율을 바라보았다.

“뭐, 어디서 강도짓이라도 하는 놈들을 데리고 온 거야?”

“허셀 떨긴. 주절주절 그만 떠들고 여기서 하려고 했던 것이나 빨리 시작하자.”

“허~ 입이 좀 거친 녀석이군. 아가야~ 그러다 큰일 나는 수가 있다.”

“아 진짜 그만 좀 주절거리면 안 될까?”

물러서지 않고 도발하는 율.

검은달이 지금의 명성을 쌓고 나서부터는 그 누구도 그 앞에 이렇게 대놓고 그를 도발한 적이 없었다.

“오빠, 그만해. 다들 바쁜 사람들일 테니 빠르게 경기 규칙을 간단히 설명하고 시작할게요. 일단 먼저 3 : 3 경기와 2 : 2 경기부터 하도록 해요. 당연한 것이지만 선수는 중복 출전이 불가능해요. 어떤 선수가 경기에 출전할지는 굳이 미리 통보하지 않는 걸로 할게요. 경기가 시작될 때 동시에 서로에게 통보하는 방식으로 갈 테니 미리미리 생각해 두세요.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아라는 대충 상황을 정리했다.

“꼬마야, 까부는 건 상대를 봐가면서 해라.”

검은달은 마지막까지 한마디를 하고 뒤돌아섰다. 하지만 율 역시 이에 꿀리지 않았다.

“PvP랭킹을 입으로 땄나? 더럽게 시끄럽네.”

순간 검은달은 오랜만에 살짝 화가 치솟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랜만에충분히 그 정도 화만에다스릴 줄 아는 이였다.

첫 경기는 3 vs 3 경기.

율은 이 경기는 회색늑대에게 맡겨 두었다.

애초에 회색늑대도 이 경기에 가장 적합한 크로우즈의 유저 셋을 데리고 온 상태였다.

하지만 상대는 다크문에서도 3 vs 3 팀플을 전문적으로 호흡을 맞췄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실제 사설 투기장에서 아주 오랫동안 랭킹 1위 자리를 지키기도 했었다.

그런 그들이 상대라는 걸 대충 알고 있었기에 크로우즈의 세 유저는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힘들겠군.’

율은 그들의 표정을 보는 순간 첫 번째 대결은 이기기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에선 뭔가 조언을 한다고 결과가 바뀔 가능성은 없었다.

그저 긴장 풀고 후회 없이 싸워보라고 말하는 게 전부였다.

어쨌든 그렇게 3 vs 3 경기를 시작으로 다크문과 크로우즈의 길드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쉽게도 율의 예상은 완벽하게 적중했다.

크로우즈의 세 유저는 나름 열심히 싸워보려고 노력했지만 다크문에서 내보낸 3명의 호흡은 거의 완벽했다.

결국 단 5분 만에 크로우즈 쪽 세 유저는 모두 쓰러졌다.

다소 싱거운 한 판이었다.

대결을 지켜보던 관객들도 역시 아무리 새롭게 떠오르는 크로우즈라고 해도 다크문은 무리였다고 수군거렸다.

첫 경기가 끝나고 쉬는 시간 같은 건 갖지 않고 곧장 두 번째 경기를 시작했다.

두 번째 경기에는 흑월과 사악마녀가 팀을 이루어 올라갔다.

율은 둘의 실력을 믿었지만 다크문 쪽도 만만치 않은 이들이었기에 경기의 승패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흑월과 사악마녀는 복면을 했음에도 경기가 시작되고 단 몇 분 만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의 정체를 알아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흑월의 경우는 워낙 오래전부터 유명한 랭커였고 사악마녀 역시 그녀가 사용하는 기술 자체가 매우 독특해 여기저기 소문이 많이 퍼져 있었다.

크로우즈에서 흑월과 사악마녀가 출전하자 점점 관객들은 대결이 흥미진진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다크문에서 출전한 상대도 만만한 이들은 아니었다.

흑월만큼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 PK로 이름을 오랫동안 날려 왔던 그들은 상당한 실력자였다.

특히 그들은 쌍둥이로서 처음 검마노를 시작하고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따로 활동해 본 적이 없는 이들이었다. 그들의 특기는 당연히 2 vs 2 대결이었다.

개개인을 놓고 보면 흑월과 사악마녀 쪽이 조금 더 앞서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흑백쌍검이라 불리는 이 쌍둥이들이 너무나 완벽한 팀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마치 정말 서로 텔레파시라도 통하는 듯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흑월과 사악마녀는 이번 2 vs 2 경기를 위해 나름 보름(게임시간) 정도 연습을 했었지만 그 걸로는 부족한 감이 좀 많았다.

치고 빠지고… 막아주고 공격하고…….

흑백쌍검은 마치 톱니바퀴 두 개가 계속 맞물려 돌아가듯 완벽하고 기계적인 호흡을 완성시켜 놓은 것 같았다.

‘이거야말로 최강의 조합이군.’

율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짜 저 둘을 이기기 위해선 비슷한 실력을 가진 이들 둘 로는 안 됐다.

무조건 저들을 찍어 누를 정도의 실력을 지닌 이들이 있어야 했다.

결국 20분에 걸쳐 계속되었던 대결은 흑백쌍검의 승리로 끝났다.

흑월과 사악마녀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흑백쌍검의 팀플레이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현재 스코어 2 : 0.

두 번째 경기가 끝나자 관객들은 이제 크로우즈는 끝났다고 단언하듯 얘기했다.

그들은 크로우즈가 낸 회심의 비밀 카드도 막혔으니 더 이상 크로우즈에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율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솔직히 단체전은 크게 기대를 안 했던 게 사실이었다.

흑월과 사악마녀 정도라면 1승 정도는 따낼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예상보다 다크문의 실력이 더 강력했다.

이제 남은 건 개인전 5번뿐이었다.

“자~ 첫 번째 개인전에 나가실 용자는 누가 되고 싶나요?”

율은 첫 번째 결투에 나갈 사람을 자원 받아 내보낼 생각이었다.

“내가 갈까?”

강풍은 결투장에 왔을 때부터 싸우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다.

투기장에서 아주 오랫동안 살아왔던 그였기에 오랜만에 관객들 앞에서 하는 이런 대결을 너무나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양해를 해준다면 내가 나가고 싶은데… 괜찮을까?”

의외로 회색늑대가 나가고 싶다고 얘기했다.

“음, 형님은 대장전에 나가셔야죠. 검은달 놈이 대장으로 나올 게 분명한데 그놈과 싸울 상대는 형님뿐이에요.”

율은 이미 검은달의 상대는 회색늑대로 마음을 굳혀 놓은 상태였다.

“아니다. 난 검은달과 싸우지 않을 생각이다. 날 생각해 대장 자리를 양보해 준 너희의 마음은 알지만… 난 율, 너에게 패배한 그때 이후로 많은 걸 깨달았다. 그 와중에 검은달을 향한 내 마음 자체가 집착이란 것도 알게 되었지. 검은달 따위는 이제 내 안중에 없다. 난 그저 섀도우 로드 연합의 일원으로서 당당히 싸우고 싶을 뿐이다.”

“으음…….”

회색늑대는 이미 의지를 확고하게 세운 것 같았다.

그런 그에게 더 이상 대장전을 양보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휴~ 형님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개인전 첫 결투는 형님이 나가세요. 대신 꼭 형님의 그 굳은 의지를 보여주셔야 합니다.”

“걱정 마라. 내가 왜 회색늑대라 불리는지 확실히 보여주마.”

“형 파이팅이요~!”

“형님, 힘내세요.”

동생들은 회색늑대를 응원해주었다.

그렇게 결정된 회색늑대의 출전.

선수가 결정되자 곧장 3번째 경기이자 첫 번째 개인전이 시작되었다.

다크문에서 3번째 경기에 내보낸 이는 공식 PvP랭킹 41위를 기록하고 있던 수리수리였다.

수리수리는 정령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 유저였는데 당연히 회색늑대와는 좋지 않은 악연으로 얽혀 있는 이였다.

특히 오래전 회색늑대에게 가장 많이 죽었던 이가 바로 이 수리수리였다.

다크문에서도 독하기로 소문난 이라 오래전에 계속해서 회색늑대에게 덤벼들다가 정말 많이 쓰러졌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훗날 다크문이 힘을 얻자 누구보다 먼저 회색늑대를 척살하기 위해 날뛰었던 인물이다.

그런 그는 기대도 안 했던 타이밍에 회색늑대가 자신의 상대로 결정되자 아주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이거 복권에 내가 당첨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수리수리는 복권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즐거워했다.

회색늑대는 수리수리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하지 않고 조용히 몸을 풀었다.

율에게 패배한 후 그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율에게 많은 걸 배웠다.

율뿐만이 아니었다. 강풍, 엘리스… 배움을 청할 수 있는 이들에겐 모두 배웠다.

그래서일까?

왠지 모르게 괜히 마음이 편안해졌다.

‘후회하지 않을 정도만 싸워보자.’

회색늑대는 수리수리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율은 그런 회색늑대의 등을 보며 왠지 그의 등 뒤에서 불꽃이 타오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며 승부에 임하는 회색늑대.

그의 얼굴에선 비장한 각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 *

푸욱!

수리수리의 심장을 파고다는 회색늑대의 검.

콰광!

그와 동시에 회색늑대의 머리에 꽂히는 강력한 폭발.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크악!”

“커억!”

수리수리와 회색늑대는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허물어져 내렸다.

털썩! 털썩!

더블 KO!

완벽하게 서로 공격을 교차시켜 마지막 일격을 동시에 꽂아 넣었다.

누가 이겼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이건 완벽한 무승부였다.

경기 자체는 수리수리가 지배했었다.

분명 수리수리의 실력이 회색늑대보다 더 뛰어났다. 그건 결투를 지켜본 모든 이들이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회색늑대의 근성은 부족한 실력을 메울 만큼 대단했다.

회색늑대는 20분간의 혈투를 펼치며 결국 근성으로 기가 막힌 무승부를 만들어냈다.

이건 승리보다 더 값진 무승부였다.

회색늑대의 근성에 완전히 반한 관객들은 알게 모르게 조금씩 크로우즈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아직 스코어는 2 : 0으로 크로우즈가 상당히 밀리고 있었지만 회색늑대는 크로우즈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란 것을 몸으로 말해주었다.

율은 다음 네 번째 결투에는 팔콘을 내보냈다.

하지만 이번 승부 역시 확실히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팔콘의 실력은 상당히 뛰어났지만 아무래도 전투에 완벽하게 특화된 클래스가 아닌지라 조금 불안한 감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하필 다크문이 내보낸 선수가 예상과 다른 이였다.

검은달 다음으로 다크문에서 실력자로 손꼽히는 공식 PvP랭킹 7위의 참마도였다.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마법사 계열 직업을 지니고 있는 참마도는 랭킹에서 볼 수 있듯이 상당한 실력을 지닌 PVP유저였다.

상대가 상대인지라 팔콘은 살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섀도우 마스터라 불리며 나름 실력 있는 도적 계열 유저로 불린다고 해도 적어도 PvP에선 참마도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다.

참마도는 유저들 사이에서 광랑(狂狼)이라 불리고 있었다.

마법사이면서도 너무나 치열한 전투를 즐기는 유저.

그는 적을 처참하게 박살내는 걸 즐기는, 약간은 광기를 지니고 있는 이였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역시나 참마도는 특유의 근접 거리에서의 마법 실력을 선보이며 팔콘을 압도했다.

하지만 팔콘도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팔콘은 끈질기게 참마도의 마법을 끊으며 한 방 몰아치기 기회를 노렸다.

일진일퇴(一進一退)의 공방전.

그들의 그 치열한 전투는 무려 30분 넘게 계속되었다.

이쯤 되면 보는 사람도 지칠 만한 시간이었다. 보는 사람도 지칠 정도였으니 직접 싸우는 이들은 더할 수도 있었다.

바로 거기서 차이가 나타났다.

사실 팔콘은 PvP 경험이 아주 많은 편은 아니었다. 반면 참마도는 밥 먹고 PvP만 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수많은 경험이 있었다.

그렇다 보니 경기가 이렇게 장기전으로 흘러가자 조금씩 참마도가 우위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팔콘은 치명적인 실수를 하며 참마도의 연계마법을 고스란히 맞고 쓰러졌다.

예상 밖의 팔콘의 패배.

이건 율도 예상하지 못한 패배였다.

율은 팔콘이라면 아무리 다크문이라고 해도 승리를 따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예상보다 더 뛰어난 것 같은 다크문의 실력.

경기 스코어는 어느새 3 : 0의 일방적인 수치로 바뀌었다.

모두가 이제는 끝났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다크문에는 검은달이 있었다.

사람들은 공식 PvP랭킹 2위이자 학살자라는 별명까지 얻고 있는 그가 있는 이상 크로우즈는 절대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율과 강풍, 그리고 엘리스의 표정은 변함없이 여유가 있었다.

물론 셋 모두 복면을 하고 있었기에 그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어쨌든 그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있었다.

“이제 내가 나가도 되지?”

“그래, 나가서 마음껏 놀다 와라.”

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흐흐, 이런 결투장에 서는 게 오랜만이라 너무 기분 좋아지는데.”

“철저히 눌러버려. 저들에게 힘의 차이가 뭔지 보여줘.”

율은 강풍에게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주문했다.

그런 율의 주문에 강풍은 고개를 끄덕이며 결투장 위로 올라갔다.

강풍의 상대는 PvP랭킹 22위의 파천권왕 돌주먹이었다.

맨손으로 적을 때려잡는 게 특기라는 돌주먹.

하지만 강풍은 상대를 확인한 순간 그저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미 강풍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주먹과 아주 많이 싸워봤었다.

그건 돌주먹 따윈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무시무시한 주먹이었다.

엘리스.

그녀와 수도 없이 많은 대련을 경험한 강풍에게 돌주먹은 그저 별것 아닌 상대일 뿐이었다.

“에이, 이거 귀찮네.”

쫘악!

강풍은 복면을 벗어던졌다.

율은 그런 강풍을 보며 골치 아프단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그렇다고 말리지는 않았다.

비록 강풍다운 돌발적인 행동이었지만 문제될 건 없었다. 오히려 강풍의 정체가 밝혀지면 몇 가지 좋은 점도 있을 수 있었다.

철컥!

복면을 벗어던진 강풍은 자신이 소중히 아끼는 그 영운건을 머리에 둘렀다.

그리고 또 하나 아끼는 물건인 투신창을 조립해 어깨에 걸쳤다.

전투 준비는 끝났다.

강풍은 최대한 빠르게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주어 결투 끝낼 생각이었다.

“저거… 투신 아냐?”

“정말 투신 맞는 거 같은데.”

“맞네, 저 창은 투신창이잖아!”

“투신?”

“뭐야? 정말 투신이야?”

“그 투기장의 전설 투신?”

“투신 강풍 출현이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투신의 등장은 그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투기장의 전설로 군림하다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사라진 투신 강풍.

그가 정말 오랜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돌주먹도 나름 유명한 유저인 건 맞았지만 아무리 그라고 해도 투신의 명성을 능가할 수는 없었다.

투신은 투기장의 No.1이었다.

돌주먹은 기껏해야 다른 콘텐츠인 PvP의 No.22일 뿐이었다.

그 급이 달랐다.

스윽.

강풍은 오른손을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손가락 하나를 들고 앞뒤로 움직였다.

까닥까닥.

“와라.”

명백한 도발이었다.

순간 돌주먹은 울컥하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곧장 강풍을 향해 달려 나갔다.

파파파팟!

흥분한 상태에서도 돌진 계열 스킬을 완벽하게 사용한 돌주먹.

그는 이걸로 거리를 좁힌 후 저 건방진 강풍의 턱에 승천권을 꽂아 넣을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생각일 뿐이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를 좁혔건만 눈앞에서 강풍이 사라졌다.

승천권을 꽂아 넣을 대상이 없다는 뜻이었다.

‘어디지?’

순간 돌주먹이 당황하며 재빨리 몸을 비틀었다.

상대방을 놓친 건 그의 실수였지만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정도로 어리석은 이는 아니었다.

돌주먹의 회피 동작.

하지만 아쉽게도 강풍은 그의 이런 회피마저 모두 머릿속에 계산하고 있었다.

“왔냐?”

촤아아아악!

한마디 말과 함께 갑자기 등 뒤에서 나타난 강풍.

그가 들고 있던 투신창은 이미 돌주먹의 등 뒤에 닿아 있었다.

꽈과광!

투신창의 올려치기에 당한 돌주먹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커어억!”

등에 강력한 데미지를 입으며 중심을 잃고 하늘로 떠오른 돌주먹은 어떻게 해서라도 강풍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럴 때 돌주먹이 가장 자주 쓰는 기술은 삼단 도약이었다.

중심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공중이라 삼단 도약이 정확히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았지만 적어도 강풍의 연속 공격에서는 피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파파파팟!

재빨리 몸을 웅크리며 공중에서 앞으로 튀어나간 돌주먹. 그는 자신이 간신히 연속 공격은 피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또 그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또 왔냐?”

츠리리릿!

두려운 목소리.

강풍은 어느새 다시 그의 옆에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투신창은 돌주먹의 옆구리에 꽂혔다.

퍼퍼퍼퍽!

“크아악!”

옆으로 주르륵 밀려나며 정신이 몽롱해지는 돌주먹.

그는 오늘 여기서 악마를 만난 느낌이었다.

“워워, 아직 끝나긴 이르잖아.”

몽롱한 정신에 들려온 강풍의 목소리… 그건 진짜 악마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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