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4차 전직의 마지막 관문
한동안 유저들의 큰 관심을 끌던 음유시인 가온이 갑자기 모습을 감추었다.
너무나 신선하게 등장해 신비로움만 남긴 채 사라져서일까?
유저들은 그러한 가온을 두고 그가 특별한 이벤트 NPC였고, 그를 통해 히든 퀘스트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몇몇 사람들은 실제로 히든 퀘스트를 받았다고 떠벌렸지만 확인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어쨌든 가온은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문화적 충격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음유시인 유저의 증가와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음유시인들의 활약… 확실히 가온은 많은 변화를 만들어 놓았다.
가온의 정체가 뭐건 간에 그 변화는 그동안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대단한 것이었다.
음유시인의 전성시대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음유시인 유저가 전에 비해 몇 배나 늘어난 건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누가 이런 변화를 예상했던가?
그저 버림받은 직업으로 인식되어 영원히 잊히고만 있을 것 같던 음유시인이 당당하게 하나의 직업임을 과시하고 있었다.
가온, 어떤 의미에서 그는 진짜 위대한 음유시인이 분명해 보였다.
* * *
다른 이들이 음유시인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든 말든 율은 오로지 S급 창작 노래를 만들어내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신은 율에게 엄청난 노래 실력을 주었지만, 반면 작곡 능력까지 선물한 건 아니었기에 율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다른 사람의 노래를 계속 부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노래로는 아무리 해도 AA급 이상의 창작 노래를 만들어낼 수 없었다.
마치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노래가 검마노에 저장이라도 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결국 내가 노래를 직접 만들지 않으면 S급 노래를 절대 구경할 수 없다는 건가?”
율은 어느 정도 검마노의 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었다.
노래를 직접 새로 만든다고 해도 그 노래 자체의 완성도가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아마도 절대 S급 노래가 탄생하지는 않을 게 분명해 보였다.
노래 실력에 비해 작곡 능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율로서는 난감한 부분이었다.
‘뭐 이리 현실적으로 만들어 놓은 건지…….’
율은 너무나 현실적인 검마노의 시스템에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감한 상황.
작곡을 하자니 자신이 없었고, 그렇다고 안 하자니 S급 창작 노래를 만들어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잘나가다가 벽을 만난 율은 일단 마음을 정리한 후 차근차근 이 난국을 어떻게 해쳐나갈 것인지를 고민해 보기로 했다.
율은 며칠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해결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고민이 깊어지니 다른 일들도 더 안 되는 느낌이었다.
결국 율은 일단 S급 창작 노래 만들기를 잠깐 쉬기로 결정했다.
4차 전직을 위해선 꼭 넘어야 할 산이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길이 보이지 않는 산을 무작정 넘으려고만 하는 건 미련한 짓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단 쉬기로 결정한 율은 다시 친구들이 있는 천공 대륙으로 돌아왔다.
천공 대륙에 돌아온 율은 약간 침울한 기분 때문에 한동안 조용히 자신의 문제점을 혼자 고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음악을 그토록 좋아했던 그는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벽에 막히자 약간 좌절감마저 느꼈다.
당연히 율의 동료들은 그런 율의 좋지 않은 상태를 누구보다 빨리 눈치 챘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율을 신경 쓰는 건 엘리스였다.
“무슨 문제 있어?”
엘리스는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을 통해 율의 고민을 물어보았다.
빙빙 돌려서 말하는 건 그녀의 성격과 맞지 않았다.
“문제가… 있어 보여?”
“바보가 아니라면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있어 보인다.”
“그랬어? 아~ 조금 답답해서.”
“왜?”
율은 자신을 향해 직설적으로 물어오는 엘리스를 보며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떨 땐 이런 엘리스의 직설적인 면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더 편하게 생각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음… 사실은 내 능력에 대한 회의감이 좀 있어서 그래.”
율은 솔직하게 말했다.
어찌 보면 엘리스만큼 편안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도 드물었다.
그녀라면 왠지 쉽게 얘기할 수 있었다.
“회의감?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노래를… 음악을… 누구보다 좋아하고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반쪽짜리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작곡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내가 기껏 노래를 조금 잘 부른다고 너무 자만했었나봐.”
율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순간 엘리스가 고개를 강하게 가로저으며 율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말도 안 돼! 설마 그런 사치스러운 고민 때문에 이러고 있었던 거야?”
뭔가 흥분한 것 같은 엘리스.
그녀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설마 노래를 잘 부르면 작곡도 잘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 거야? 그럼 반대로 작곡을 잘하면 노래도 잘 부를 수 있을 것 같아? 착각하지 마. 신이 너에게 그 아름다운 목소리를 선물한 건 많은 사람들에게 노래를 듣는 즐거움을 선사하라고 한 거지, 음악의 천재가 되라고 한 게 아니야.”
“……!”
율은 쏟아지는 엘리스의 말에 뭔가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너는 훌륭한 뮤지션이 될 소질이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훌륭한 작곡가도 될 수 있는 건 아니야. 두 개는 별개라고… 사람들이 너무나 잘 착각하는 게, 그 두 개가 다 충족되는 이야말로 진짜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건 수학을 잘한다고 공부를 잘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과 비슷한 거야. 두 개는 별개라고!”
엘리스는 그녀답지 않게 아주 길게 말을 쏟아내었다. 마치 오랫동안 생각했던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느낌이었다.
“…….”
“투정부리지 마. 넌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
‘투정이었던 건가?’
율은 큰 망치로 머리를 아주 강하게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맙다.”
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엘리스의 호된 질책 덕분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는 분명 복에 겨운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이제라도 알았으면 된 거야. 그런데… 혹시 작곡 능력이 필요한 것이라면… 새로운 노래가 필요한 거야?”
“아~ 응, 지금까지 발표되었던 노래가 아닌 새로운 노래가 필요해. 하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새로운 노래를 내가 만들 수 없다면 새로운 노래를 만들 수 있는 이를 찾아보면 되는 거잖아?”
율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머리가 굳었던 건가? 아니면 진짜 투정을 부리기에 바빠 잊었던 건가?
굳이 자기 자신이 노래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새로운 노래를 받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되었다. 이젠 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게 아니라 노래를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럼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
엘리스는 뭔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응? 뭐라고?”
“내가 도와줄 수 있다고.”
“정말? 아는 사람 중에 작곡가라도 있는 거야?”
“으음… 그건 아닌데… 어쨌든 새로운 노래가 몇 곡 있어. 내가 바로 보내줄 테니까 한번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곡을 골라봐.”
엘리스는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뭔가를 숨기는 표정이었지만 굳이 캐물을 사안은 아니었다.
“오! 고마워!”
율은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었다.
자신에 왜 고민을 했었는지 그것조차 한심해지는 순간이었다.
엘리스는 얘기가 끝나자마자 곧장 접속을 종료한 후 율에게 노래를 보내주었다.
율 역시 같이 접속을 종료해 엘리스가 보내준 노래를 받아보았다.
그녀가 보낸 노래는 총 3곡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 곡의 완성도가 정말 엄청나다는 점이었다.
특히 곡 하나하나가 모두 율의 목소리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마치 율이 부를 것을 감안해 만들어진 노래 같았다.
덕분에 율은 그 노래들을 모두 불러보며 감탄에 감탄을 연속할 수밖에 없었다.
‘이 노래들… 너무 익숙해.’
율은 곡의 완성도와 함께 이 곡들이 너무나 익숙하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전에 불러본 적이 있던 것 같은 곡들이었다.
물론 곡 자체는 전혀 새로운 곡이 분명했지만, 곡이 풍기는 분위기? 느낌? 그런 것이 매우 익숙하다는 뜻이었다.
그래서일까? 율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3곡의 노래를 계속 불러보았다.
그렇게 네 번쯤 반복했을까?
율은 이 곡들의 분위기가 어떤 노래와 닮아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Nothing!’
놀랍게도 3곡 모두 Nothing의 노래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가 담겨 있었다.
‘이건 진짜 대단한데. 단순히 Nothing을 좋아한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이렇게까지 깊게 이해까지 하고 있을 줄을 몰랐네.’
율은 새삼 그녀의 능력에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녀는 3곡 중 마음에 드는 곡을 하나 선택하라고 했지만 율은 3곡 모두 마음에 들었다.
가능만 하다면 이 3곡 모두를 불러보고 싶었다.
율은 당장 엘리스에게 연락을 했다.
엘리스의 연락처는 오로지 하이퍼넷 메신저뿐이었지만 마침 엘리스는 접속해 있었다.
[엘리스!]
[아~ 들어봤어?]
[응, 이거 완전 대박이다. 진짜 네가 만든 곡들이야?]
[으응…….]
[캬~ 진짜 넌 Nothing의 열혈 팬이다. 내가 인정한다.]
[고, 고마워.]
[근데… 혹시 이 3곡 모두 내가 불러도 괜찮을까? 난 진짜 이 3곡 중 하나를 고르는 건 못하겠다. 셋 다 너무 마음에 들어.]
[아, 괜찮아.]
[진짜? 나중에 무르기 없다.]
[그래, 그러니까 잘 불러봐.]
[오케이~ 땡큐!]
율은 기분 좋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당장에 검마노에 접속해 이 노래들을 부르고 싶어졌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곧장 게임에 접속했다.
* * *
띠링, 모든 존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엄청난 노래를 불렀습니다.
띠링, 당신이 부른 노래가 ‘불후의 명곡’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이곡은 특별한 힘을 지니게 됩니다.
띠링, ‘불후의 명곡’으로 기록된 이 노래는 당신의 고유 스킬로 등록됩니다. 노래 이름을 기록하세요.
띠링, 숨겨져 있던 4차 전직 조건 S+급 창작 노래 등록하기가 완료됩니다.
띠링, 음악이해도Ⅶ(패시브) 스킬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띠링, 노래하기(SS) 스킬 숙련도가 0.016상승합니다.
띠링, 기타연주(SS) 스킬 숙련도가 0.016상승합니다.
띠링, 특수 능력치 예술이 16올랐습니다.
띠링, 특수 능력치 절대음감이 16올랐습니다.
……
……
[-------][000.000]
: 신비로운 당신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세상의 모든 근심을 잊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잠재되어 있던 강력한 힘이 솟아오른다.
소모에너지 : 소울에너지 400
능력 : 파티원이 이 연주를 끝까지 다 들으면 그 순간 즉시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하고 가장 유용한 능력치 하나는 30% 상승한다. 이 효과는 5분간 지속된다.
특이사항 : 연주시간[10초]. 재사용 대기시간[30분]
“오오! S+!”
율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외쳤다.
3곡 중 첫 번째 노래는 아쉽게도 AA급이었지만, 두 번째 노래는 S급을 찍어 드디어 S급 창작 노래 만들기 조건을 만족시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른 세 번째 노래… 그 노래가 무려 S+급을 찍었다.
효과도 대박이었다.
버프 중 최고라는 모든 능력치 버프에 주력 능력치는 30%나 더 올려주는 대박 버프였다.
[-------][000.000]
: 흥이 난다! 신난다! 당신의 노래가 모두를 즐겁게 만든다. 그 흥겨움이 모두의 피곤함을 날려준다. 이것이야말로 천국에서 들려오는 천상의 노래가 분명하다.
소모에너지 : 소울에너지 300
능력 : 정신을 집중해 천상의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듣는 모든 파티원은 30초 동안 1초에 1%씩 체력과 마력을 동시에 회복한다. 단, 정신 집중이 깨질 경우 지금까지 회복된 체력과 마력의 절반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다.
특이사항 : 연주시간[30초]. 재사용 대기시간[10분]
[-------][000.000]
: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그리움. 당신의 노래를 듣는 순간 그 그리움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그리고 그 그리움은 현실에서도 구체화되어 강력한 억제력을 발휘한다.
소모에너지 : 소울에너지 500
능력 : 반경 50m 안에 당신을 적대시하는 모든 존재는 당신의 노래를 듣고 있는 순간엔 울렁거림을 느끼며 이동속도가 30% 줄어들고 모든 스킬의 시전 속도가 30% 증가된다.
특이사항 : 연주시간[40초]. 재사용 대기시간[30분]
AA급 노래는 그냥저냥 쓸 만한 버프였지만 S급 노래는 굉장히 좋은 회복용 스킬이었다.
비록 정신 집중을 유지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지만, 모든 파티원이 동시에 30초에 30%에 가까운 마력과 체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것이었다.
어쨌든 율은 4차 전직의 가장 큰 난관이었던 S급 창작 노래 만들기 조건을 만족시켰다.
그리고 예상대로 나와 있던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자 숨겨져 있던 두 가지 조건이 나타났다.
1. 레벨 500달성.[완료]
2. S급 이상의 호칭 한 개 이상 얻기.[완료]
3. 스스로 창작한 노래 관련 스킬 5개 이상 등록하기.[완료]
4. 여섯 번째 특별한 노래 찾아내기.[완료]
5. 4가지 이상의 특별한 노래들을 랭크 12까지 올리기.[완료]
6. 특수 능력치 슬롯 5개를 모두 개방.[5/5 완료]
7. S급 이상의 창작 노래 스킬 등록하기.[1/1 완료]
8. 4만 명 이상의 유저들에게 순수 음유시인으로서 노래 들려주기.[40000/40000 완료.](단, 한 유저당 한 번의 카운트만 허용된다.)
9. S+급 이상의 창작 노래 스킬 등록하기.[1/1 완료]
10. 음유시인의 능력 증명하기[음유시인으로서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업적을 남겨야 한다. 이 업적에 대한 기준은 음악의 신이자 영원히 방랑하는 방랑자 신인 모티오가 결정한다. 0/1 진행 중]
재수가 아주 좋은 건지 9번째 조건은 너무나 쉽게 클리어했다.
하지만 문제는 10번째 조건이었다. 갑자기 어이가 없을 정도의 조건이 등장했다.
음악의 신 모티오가 누군데 그의 기준에 맞는 업적을 세우란 건가?
분명 등급이 높은 게임 속 AI 중 하나겠지만… 어쨌든 그녀석이 어떤 기준을 세웠는지도 알려주지 않고 무작정 업적을 세우라고 하는 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건 뭐…….’
율은 이제 4차 전직이라고 하면 이가 갈릴 것 같았다.
“후우, 어떻게 해야 하지?”
S급 창작 노래에 이어 또 한 번의 벽이 등장했다.
진짜 이걸 다 뚫고 4차 전직을 이룬 이들이 있다면 너무나 존경스러워질 것만 같았다.
“업적이라…….”
율은 어떤 업적이 가장 불가능해 보이는 것일지 생각해보았다.
물론 잘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불가능할 것 같은 업적이라고 무턱대고 도전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 괜히 헛수고만 할 수도 있었기에 최대한 신중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뭘 해야 될까?”
일단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몇 가지 업적이 있었다.
모두 하나같이 불가능해 보이는 업적들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음유시인의 입장에서 가장 불가능해 보이는 업적을 찾아야 하는 것이었다.
“만인 베기?”
나쁘지 않은 업적이었다.
특히 PvP에 별로 강한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는 음유시인으로서 이 만인 베기 업적을 달성한다면 상당한 이슈가 될 만했다.
하지만 왠지 몇% 부족해보였다.
어설픈 업적을 했다가 괜히 시간과 심력만 낭비하면 그것보다 더 큰 낭비가 없었다.
한번 결정할 때 아주 신중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었다.
‘뭔가 더 획기적인 게…….’
율은 한동안 골똘히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불가능한 업적.
특히 음유시인의 입장에선 절대 이룰 수 없는 업적… 그게 무엇일지 계속해서 고민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율의 머릿속에 기가 막힌 업적이 하나 스치고 지나갔다.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업적.
아무도 이룬 적이 없는 업적.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직업으로 몇 개가 꼽혔지만 그들도 아예 도전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업적.
당연히 음유시인이 그 업적을 달성할 확률은… 아니, 아예 음유시인이 그 업적에 도전할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없었기 때문에 확률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 그거라면!’
율은 음악의 신 모티오가 얼마나 까다로울지는 모르지만 이 업적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건 진짜 말도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현존하는 업적 중 가히 최고의 난이도를 지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업적.
그것은 바로 S급 던전 일인(一人) 클리어였다.
물론 S급 던전도 최소 1명부터 최대 14명까지 두 파티가 입장 가능한 파티용 S급 던전과, 최소 16명 이상부터 최대 35명까지 입장 가능한 레이드용 S급 던전이 있었다.
율은 그 중 파티용 S급 던전 일인 클리어에 도전할 생각이었다.
율이 아무리 노력해도 레이드용 S급 던전을 일인 클리어하는 건 무리였다. 아니, 거기엔 업적이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하지만 파티용 S급 던전을 일인 클리어할 경우 분명 업적이 있었다.
이건 개발진에서 공개한 10대 지옥 업적 중 하나였다.
2년(현실 시간) 전 공개된 이 10대 지옥 업적 중 2개는 이미 클리어되었다.
하지만 나머지 8개는 아직도 전인미답의 경지로 남아 있었다.
그 남은 8개 중에서도 S급 던전 일인 클리어는 상당히 상위에 속하는 업적이었다.
이 업적보다 윗선에 있는 업적들은 ‘드래곤’ 또는 ‘거인’ 일인 사냥이나 PvP 1 : 1000 승리하기 같은 것들뿐이었다.
위의 업적들은 대놓고 하지 못하게 만들어놓은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나마 가능성 있는 것들 중엔 S급 던전 솔로 클리어가 최고였다.
율은 마침 적절한 S급 던전 하나도 알고 있었다.
그것도 아직 공개되지 않는 미공개 S급 던전!
죽음의 대륙 깊숙한 곳에서 레벨을 올리다 우연히 발견해 꽁꽁 숨겨놨던 곳이 하나 있었다.
나중에 ‘위대한 던전 헌터’ 호칭의 스킬을 이용해 쏠쏠하게 골드를 벌어볼 목적으로 남겨두었던 곳이다.
아직 제대로 연구한 것이 아니라 그곳의 난이도가 어느 정도 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한 파티 이상의 최상급 유저들이나 공략해볼 만한 곳이었다.
그런 곳을 율은 혼자 공략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공략하려는 건 아니었다.
충분한 준비와 계획, 그리고 적절한 운.
율은 이 셋이 동반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공략이 가능하이 가생각했다.
“지긋지긋한 이 4차 전직… 확실히 끝내주마!”
더 이상 4차 전직 때문에 고민하는 것도 지겨운 율이었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4차 전직을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이 되고 싶은 게 그의 심정이었다.
4차 전직을 향한 율의 도전.
그 도전은 이제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 * *
무려 무게를 1/500으로 낮춰주고 총 한계 무게도 4천Kg이나 되는, 굉장히 비싼 가방 두 개에 각종 생존을 위한 소모성 아이템을 가득 채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율은 자신이 소환할 수 있는 모든 영웅들에 관련된 모든 종류의 장비 아이템도 구비했다.
율은 괜히 비싼 돈을 주고 최고의 가방을 산 게 아니었다.
워낙 많은 것들을 준비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제일 좋은 종류의 가방을 고른 것이었다.
아이템 준비는 모두 끝났다.
예상 기간은 대략 한 달(게임시간).
어쩌면 더 길어질 수도 있었다.
특히 율은 구하기 힘들다는 연금술의 마스터라 불리는 약물중독의 각종 회복 물약과 특수 물약들을 대량으로 구매했다.
이번 이 도전을 위해 율은 그동안 모아두었던 골드를 정말 아낌없이 써버렸다.
남들이 보면 오버한다고 할 정도로 과감하게 투자했다.
율은 어차피 골드는 또 벌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설프게 골드를 아끼려다 죽으면 그게 더 손해였다.
아낄 땐 아끼고, 쓸 땐 과감히 쓸 줄 알아야 진정한 고수라 할 수 있었다.
준비는 며칠에 걸쳐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어차피 던전 입장은 이미 호칭 스킬로 던전 입구에 포탈 생성 등록을 해놓은 상태라 한 방에 이동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마지막 점검뿐.
율은 가볍게 천공 대륙에 존재하는 A급 던전 하나를 선택해 솔로 플레이를 도전해 보았다.
그냥 무지막지하게 들이대는 것보다 이렇게 시뮬레이션 플레이를 해보는 게 더 좋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 길지 않은 던전이었기에 대략 일주일(게임시간) 정도 만에 드디어 율은 A급 던전의 마지막 보스를 클리어할 수 있었다.
율은 이 시뮬레이션을 통해 큰 자신감을 얻었다.
비록 S급 던전은 이 A급 던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곳이었지만… 그 역시 모든 힘을 다 쓴 건 아니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게 율이 이번 연습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소득이었다.
이로써 모든 준비는 완벽하게 끝났다.
준비를 끝낸 율은 곧장 동료들에게 간략하게나마 계획을 얘기했다.
앞으로 최소 한 달(게임시간) 이상은 폐관 수련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던전에 들어가 있어야 했기 때문에 미리 소식을 전하고 가는 게 옳았다.
동료들에게 마지막 말을 전하고 율은 곧장 S급 던전으로 향하는 포탈을 열었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율.
그 도전은 묘하게 율을 설레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