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음유시인 가온
검마노에선 늘 크고 작은 이슈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지간한 국가 규모를 넘어서는 숫자의 유저들이 즐기는 게임답게 당연히 이슈들은 넘쳐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자면, 드디어 골든 라인이 검마노에서 8번째로 S급 던전을 공략한 소식이나 붉은 대륙에서 일어난 대규모 유저 학살 사건 같은 게 최근의 가장 큰 이슈라 할 수 있었다.
그러한 많은 이슈들 중엔 율의 소식도 끼어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유시인의 등장.’
‘천상의 목소리를 지닌 음유시인.’
‘엄청난 실력을 지닌 음유시인 과연 유저인가? NPC인가?’
‘온라인에 팬클럽까지 생긴 음유시인.’
……
40일(게임시간).
이게 모두 율이 40일 동안 전 대륙을 횡단하며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율은 당연히 목표로 했던 4만 명의 관객 숫자를 모두 채웠다.
실질적으로 율의 공연을 본 이들은 그보다 더 많았지만 중복 관람객들이 워낙 많아 간신히 40일 만에 그 수치를 다 채울 수 있었다.
40일 동안 율이 들른 대도시만 해도 140곳 정도였다.
중간, 중간 작은 도시나 마을 같은 곳도 150곳 정도 들렸던 걸 감안하면 거의 300개에 이르는 곳에서 공연을 했다.
이동 중 간간히 연주한 경우는 뺀 것이 이 정도였다.
당연히 동방 대륙, 얼음 대륙, 붉은 대륙, 검은 대륙은 물론이고 천공 대륙과 죽음의 대륙까지 모두 섭렵했다.
40일(게임시간)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어중간한 기간이었지만 율은, 아니 가온은 수많은 유저들에게 아주 확실한 인상을 남겼다.
이제 음유시인 가온이란 이름은 검마노를 즐기는 대부분의 유저들에게 별로 낯설지 않았다.
비록 직접 그의 공연을 보지 못한 유저라 할지라도 이미 하이퍼넷에 범람하고 있는 가온의 공연 동영상을 한번 이상은 본 상태인지라 그가 누구인지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방랑하는 음유시인 또는 바람의 음유시인이라 불리고 있는 가온.
수많은 이들이 그 가온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노력했지만 정작 그가 유저인지 NPC인지도 확실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유저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어쩌면 세계적인 기획사에서 대놓고 키우는 월드 스타일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었다.
이래저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가온.
이미 그는 어지간한 연예인들보다 더 인지도 있는 인물로 부각되고 있었다.
특히 그가 부른 여러 노래들은 각양각색의 버전으로 편집되어 여기저기에 올라와 있었다.
요즘 인기 있는 노래도 아닌 그저 게임 속에서 부른 가벼운 노래일 뿐이건만 사람들은 굉장히 열광했다.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되었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온라인에 가온의 팬클럽이 마구 생겨나고 이슈를 쫓는 기자들은 그에 대한 온갖 추측과 예상을 기사로 써냈다.
이쯤 되면 진짜 스타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관심이었다.
물론 본인 스스로는 그걸 잘 인식하지 못했다.
율은 그저 사람들이 ‘조금 관심이 있구나.’하는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하이퍼넷에서 본인에 대해 좀 더 찾아봤다면 조금의 관심이 아니란 것을 알 수도 있었지만, 그가 하이퍼넷을 통해 하는 일이라곤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얻는 게 전부였다.
다른 유저들처럼 팬 사이트나 포럼에서 활동을 한다거나 다른 유저들의 플레이 동영상을 감상한다거나 하지를 않았다.
그런 곳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굳이 찾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워낙 오랫동안 혼자만의 세상 속에서 살아왔던 율이기에 아직 그런 것들은 익숙하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덕분에 율은 본인도 모르는 팬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물론 그 팬들도 율이 아닌 가온을 좋아하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가온이 결국 율인 이상 그 팬들도 결국 율의 팬들이었다.
재미있는 건 가온의 동영상이 올라오면서부터 갑자기 검마노의 신규 유저들 중 직업을 음유시인으로 선택하는 이들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율은 어느새 음유시인의 선구자가 되어 있었다.
물론 아직도 음유시인은 가장 인기 없는 직업이었지만 가온의 활약 덕분에 분명 전보다는 좀 더 인기가 생겨났다.
가온의 동영상에 매료되어 검마노에 접속한 이들은 미련 없이 음유시인을 직업으로 선택했다.
모두에게 버림받았던 13월.
그 잊혔던 마지막 계절이 조금씩 다시 기억되기 시작했다.
* * *
1. 레벨 500달성.[완료]
2. S급 이상의 호칭 한 개 이상 얻기.[완료]
3. 스스로 창작한 노래 관련 스킬 5개 이상 등록하기.[완료]
4. 여섯 번째 특별한 노래 찾아내기.[완료.]
5. 4가지 이상의 특별한 노래들을 랭크 12까지 올리기.[완료]
6. 특수 능력치 슬롯 5개를 모두 개방.[5/5 완료]
7. S급 이상의 창작 노래 스킬 등록하기.[0/1 진행 중]
8. 4만 명 이상의 유저들에게 순수 음유시인으로서 노래 들려주기.[40000/40000 완료](단, 한 유저당 한 번의 카운트만 허용된다.)
9. ????
10. ????
율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전직 조건 창을 바라보았다.
40일 간의 강행군을 통해 그는 단지 8번째 조건만 만족시킨 게 아니었다.
고대로부터 전해지던 여러 음유시인들의 노래를 다시 부르며 놀랍게도 그는 두 가지 조건을 더 만족시켰다.
‘영혼의 음유시인’
: 과거를 노래하는 음유시인, 사랑을 노래하는 음유시인, 세상을 노래하는 음유시인… 음유시인은 많은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그 노래는 그저 노래로써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당신은 혹시 아는가? 진짜 음유시인의 노래는 그 자체가 강력한 힘이 되었다는 것을… 노래로 축복을 내리고 저주를 내리는 것은 물론이고 궁극적으로는 노래로 영혼을 불러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음유시인! 당신은 이제부터 그 진짜 음유시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기본능력 : 모든 종류의 악보를 연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이사항 : 7가지의 특별한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1] 불타는 대지[랭크 12].
[2] 영웅들의 서사시[랭크 12].
[3] 영혼의 ‘용기’, ‘선택’[랭크 12]
[4] 진정한 영웅들의 서사시[랭크 12]
[5] 영혼의 ‘각성’[랭크 7]
[6] 천지조화(天地造化)[랭크 1]
[7] ????
특수능력 : 연주 시 모든 공격을 회피할 확률이 30% 증가합니다.
스킬 목록 : -악기 강타(들고 있는 악기로 후려쳐 대상에게 데미지를 입히고 최대 5초간 기절시킬 수 있음)<재사용 대기시간 : 40초> [랭크 11]
-악기 막기(악기로 공격을 막아 데미지를 60% 감소시킬 수 있음. 단, 악기가 파손될 확률이 매우 높아짐)<재사용 대기시간 : 70초> [랭크 10]
-괴성지르기(큰소리를 질러 잠깐(최대 5초) 동안 10m 반경 내의 모든 사람들을 멍하게 만들 수 있음)<재사용 대기시간 : 70초> [랭크 11]
-음유시인의 여유(순간적으로 위협 수준이 거의 제로(0)에 가깝게 되며 모든 몬스터들이 적대 행동을 멈춘다. 단, 지속시간인 30초가 지나면 원래 위협 수준의 60%로 다시 돌아온다. 재사용 대기시간 5분.) [랭크 6]
-영혼 교체(생명력을 소울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다. 1초에 1%씩 총 99초 동안 99%를 전환할 수 있다. 생명력이 1% 이하로 남았을 땐 사용이 불가능하다. 단, 전환 시 기절 상태가 되며 모든 공격에 매우 취약해지게 된다. 재사용 대기시간 40분.) [랭크 9]
-기억된 노래(최대 6곡의 노래를 미리 불러 기억시킬 수 있다. 기억된 노래는 그 즉시 효과가 먼저 발동되고 노래는 자동으로 울려 퍼진다. 단, 매일 저녁 시간에만 기억시킬 수 있고 같은 종류의 노래를 연속해서 저장시킬 수는 없다.) [랭크 7]
-영혼 합체(영웅들의 서사시로 불러낸 두 영혼을 한꺼번에 몸에 받아드릴 수 있다. 단, 소울 에너지 소모는 3배로 늘어나고 상성이 맞지 않는 영혼을 무리하게 합체하려다간 오히려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랭크 1]
현 상태 : 3차 전직 완료.
바로 이틀 전 드디어 여섯 번째 특별한 노래를 얻었다.
이름도 거창한 천지조화.
그런데 거창한 건 이름뿐만이 아니었다.
천지조화는 총 다섯 곡의 특별한 노래를 한꺼번에 지칭하는 노래였다.
첫 번째, 지옥염화(地獄炎火)[30초 연주에 1초에 2m씩 30초가 되면 반경 60m까지 연주자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불의 벽이 생성된다. 강력한 화염 데미지를 입히는 이 불의 벽은 연주자를 보호하는 강력한 보호막의 역할도 겸한다.]
두 번째, 북풍한설(北風寒雪)[20초 연주가 시작되고 5초부터 연주가 끝나는 20초까지 연주자를 중심으로 반경 30m 안에 있는 모든 적들의 이동 속도를 최소 30%에서 최대 80%까지 감소시키고, 부분 저항에 완전히 실패한 적은 15초 동안 이동 속도를 80% 감소시키며, 마지막 5초간은 아예 얼려서 기절시켜 버리는 강력한 얼음 폭풍을 만들어냄.]
세 번째, 뇌성벽력(雷聲霹靂)[10초 연주에 일순간 천지를 울리는 천둥소리와 함께 연주자를 중심으로 반경 10m 안에 강력한 뇌우(雷雨)가 몰아친다. 천둥소리는 반경 10m 안의 모든 적들을 3초간 멍해짐 상태에 빠지게 만들고, 그 상태에서 몰아치는 뇌우에 적중될 경우 큰 데미지를 입으며 추가로 5초 동안 기절 상태에 빠진다.]
네 번째, 몽환화향(夢幻花香)[40초 연주하는 동안 연주자를 중심으로 반경 100m 안에 존재하는 모든 적들이 꽃의 향기에 취해 환상의 꿈에 빠져든다. 최대 30초부터 최소 5초까지 적들은 환상이 진짜라고 믿는다. 단, 환상을 진짜라 믿는 이들은 공격을 받을 경우 환상에서 깨어난다.]
다섯 번째, 천지번복(天地飜覆)[60초 연주를 아무 방해 없이 완벽하게 끝낸 순간 연주자를 중심으로 반경 40m 안에 하늘과 땅이 뒤집히며 아주 강력한 충격파를 만들어낸다. 그 충격파는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적들에게 아주 큰 데미지를 주며 동시에 최대 15초부터 최소 5초까지 절대 풀리지 않는 기절 상태에 빠진다.]
다섯 가지의 특별한 노래들.
이 노래들은 정말 대단한 것들이었다.
아직까진 랭크가 낮아 그 효과가 제대로 전부 발휘되지는 않았지만 랭크만 높아진다면 엄청난 위력을 보여줄 것 같았다.
천지조화라는 이름처럼 노래로 자연의 힘을 다룰 수 있게 해주는 이 노래는, 스킬로 따지면 거의 S+급 이상은 될 것 같았다.
정말 대박 기술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박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여섯 번째 특별한 노래에 이어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한 가지 특수 능력치도 개발할 수 있었다.
특수능력치 [절대음감(絶對音感)]
: 당신은 음악에 관한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능력은 당신의 모든 음악적 활동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 능력을 더욱 개발할 경우 당신은 더 완벽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됩니다.
이 절대음감이라는 특수능력치는 율도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처음엔 이 특수능력치가 도대체 어디에 쓰이는 건지 도통 감을 잡지 못했던 율.
하지만 이내 이 능력치가 모든 음악적 활동, 예를 들자면 한 노래의 연주 시간이 줄어든다거나 그 노래의 완성도가 올라간다거나 또는 노래의 효과가 증폭되게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 이 능력치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이로써 율은 예술, 인내, 집중, 상상력, 절대음감.
이렇게 5개의 특수능력치를 모두 개발했다.
5개의 특수능력치를 모두 개발한 유저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랭킹 100위권 안에 드는 랭커들도 3개에서 4개 정도의 특수능력치를 개발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5개를 모두 개발했다고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남보다 더 특별한 건 분명했다.
4차 전직을 위해 공개된 8개의 조건 중 무려 7개를 완료한 율.
전직을 위한 그의 전진은 거침이 없었다.
이제 남은 1개를 마저 완료하고 숨겨져 있던 두 개의 조건을 알아내기만 한다면 4차 전직도 그저 먼 것만은 아닐 것 같았다.
“S급 이상의 창작노래라…….”
현재 S급 바로 아랫단계라고 할 수 있는 AA급의 창작 노래는 몇 개 가지고 있었기에, 이 부분도 결국 열심히 부딪치다 보면 해결될 것 같았다.
‘결국 이건 내가 새로운 노래를 계속 불러보는 방법밖에 없겠네.’
노래를 잘 부른다고 작곡까지 잘하는 건 아니었다.
율은 스스로의 작곡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되도록 기존에 현실에서 알고 있던 곡들을 게임 내에서 부르며 새로운 창작 노래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율은 다른 유저들이 4차 전직에 얼마나 가까운지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자신이 거의 탑을 다투는 위치쯤에 있다는 건 직감하고 있었다.
검마노 최초의 4차 전직을 이루어 낸다면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비춰봤을 때 뭔가 특별한 걸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욱 힘을 내고 있는 것인지 몰랐다.
“어차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 노래 부르는 거잖아.”
율은 밝게 웃으며 섀도우 문을 고쳐 잡았다.
노래 부르기야말로 율이 제일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취미이자 삶의 활력소였다.
* * *
“그러니까 그 어떤 기획사와도 관련이 없다는 게 확실한 거죠?”
“네, 동원 가능한 모든 정보망을 이용해 알아본 결과 그 어떤 기획사도 그런 방식으로 신인을 키우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신유라.
한때 세계 최고의 스타였고, 지금은 세계 최고의 연예 기획사인 ‘TOP’의 최고 경영자인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앞에 서 있던 남자를 바라보았다.
“진짜입니까? 그럼 정말 순수하게 우연히 등장한 인물이란 말이에요?”
“네,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황당하군요. 그럼 우리가 오랜 세월 준비했던 비밀 프로젝트가 이렇게 한순간의 우연으로 인해 무산된 거라고 믿어야 하는 건가요?”
“우연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절묘한 것도 사실이지만 아무리 여기저기 정보를 캐내어 봐도 우연이 아닌 다른 외부적인 요인이 개입된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신유라의 오른팔이자 TOP의 기획실장이기도 했던 이재준은 자신이 알아낸 모든 정보를 토대로 이 모든 일이 너무나 기막힌 우연이 만들어낸 일이라고 결정내린 상태였다.
“후우~ 이번 비밀 프로젝트에 들어간 돈이 얼마인지는 이 실장님이 더 잘 아시겠죠. 이번 계획을 위해 비밀 오디션만 수십 번 했건만… 일이 마지막에 이렇게 틀어질 거라곤 예상도 하지 못했네요.”
신유라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모니터링 팀에서 조금만 더 일찍 그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원활한 대응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제 불찰입니다.”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얘기하는 이재준 실장.
하지만 신유라는 이번 일이 그의 잘못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아니에요. 이건 이 실장님이 잘못한 게 아니라… 재수가 없었다고 말하는 게 맞겠죠.”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일단 프로젝트는 모든 진행을 취소시켰지만 이대로 완전 백지화시키기엔 그동안 들어갔던 각종 물밑 투자들이 너무 아깝습니다.”
“…아깝죠. 들어간 돈만 얼만데… 하지만 그렇다고 프로젝트를 다시 진행시키기엔 우리가 안고 가야 할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그 무엇보다 TOP의 이름은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니까요.”
그들이 다시 프로젝트를 진행시킨다면 당장에 표절이니 따라 하기니 하는 말이 수도 없이 나올 게 분명했다.
그럴 경우 괜히 TOP의 좋은 이미지를 한순간에 망가트릴 수도 있었다.
신유라는 그것만큼은 절대 사양이었다.
“프로젝트는 포기합니다. 하지만 그냥 포기할 수는 없죠! 이 일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우연이 겹쳐서 이렇게 된 거라면 그 우연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게 옳겠죠. 지금 당장… 그 사람을 찾으세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사람을 찾은 후 그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겁니다.”
신유라는 과감하게 기존의 프로젝트에 관한 모든 것을 포기했다.
대신 그녀는 기존의 프로젝트를 대신할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어차피 기존의 프로젝트와 달라지는 건 단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이 말은 곧 그동안의 투자가 결코 헛되지만은 않는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무조건 우리는 그… 가온이란 유저를 찾아야 합니다. 오로지 그를 찾아 우리와 손잡게 하는 것만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기사회생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는 유저가 맞는지도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를 어떻게…….”
“‘어떻게’라는 말은 하지 마세요. 그리고 제 감이 맞는다면 그는 무조건 유저입니다. 유저가 아닌 NPC가 그런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했다고 해도 그건 절대 무리입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찾으세요. 가온, 앞으로 그가 우리 TOP의 메인이 될 겁니다.”
신유라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얘기했다.
가뜩이나 대형 신인 가수를 발굴하기가 힘든 시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수많은 기획사들은 마치 공장에서 가수를 찍어내듯 각종 첨단 기술을 이용해 고만고만한 신인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TOP는 기존의 획일화된 신인이 아닌, 정말 기계의 힘이 아닌 인간의 힘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신인을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왔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선택한 그 신인의 데뷔무대는 현실이 아닌 바로 검마노의 세상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계획이 음유시인 가온의 등장으로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이미 많은 투자를 했던 TOP로서는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신유라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과감한 변화를 추구했다.
검마노의 인기인 가온을 가수로!
과연 과거 수없는 역경을 헤치고 여왕으로 군림했던 그녀의 역량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래저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가온.
하지만 정작 가온(율) 본인은 주변이 어떤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그저 새로운 노래를 개발해 숨겨져 있던 두 개의 4차 전직 조건이 어떤 것인지 알아내는데 모든 정신이 팔려 있었다.
* * *
띠링, 사람들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특별한 곡을 연주하였습니다.
띠링, 당신이 부른 노래가 ‘가슴 떨리는 명곡’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이곡은 특별한 힘을 지니게 됩니다.
띠링, ‘가슴 떨리는 명곡’으로 기록된 이 노래는 당신의 고유 스킬로 등록됩니다. 노래의 이름을 기록하세요.
띠링, 음악이해도Ⅶ(패시브) 스킬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띠링, 노래하기(SS) 스킬 숙련도가 0.004상승합니다.
띠링, 기타연주(SS) 스킬 숙련도가 0.004상승합니다.
띠링, 특수 능력치 예술이 4올랐습니다.
띠링, 특수 능력치 절대음감이 4올랐습니다.
……
……
[-------][000.000]
: 온 세상을 빛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밝은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노래. 특히 당신에 의해 재해석된 이 노래는 듣는 이들에게 아주 큰 힘이 될 수 있다.
소모에너지 : 소울에너지 100
능력 : 연주를 듣는 15초 동안 모든 방어력이 300% 증가한다.(연주를 듣는 모든 파티원에게 적용. 단, 본인의 방어력은 50% 감소한다.)
특이사항 : 연주시간[15초]. 재사용 대기시간[30분]
“크으… 또 AA네.”
율이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벌써 세 번째 AA등급의 곡이었다. 그밖에도 A+등급 두 곡과 A급 등급 세 곡이 더 있었다.
총 8개의 새로운 창작곡을 만들어냈지만, 정작 S급 창작곡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안 되는 건가?’
율은 자신이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쉽게 생성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생성이 되었어도 되었을 S급 창작 노래였다.
지금까지 자신이 생성을 못했다는 건 그만큼 뭔가 특별하다는 뜻일 수 있었다.
율은 지금에서야 그걸 깨달았다.
‘너무 멍청했다. 괜히 S급이 아닌 건데… 그걸 그렇게 쉽게 생각하다니.’
첫 단추를 너무 쉽게 끼워 넣어서 살짝 방심한 게 잘못이었다.
4차 전직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다시 집중하자.”
8개의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냈지만 그 노래들 중 그렇게 쓸모 있어 보이는 건 별로 없었다.
어차피 같은 종류의 버프는 중복되어 적용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이 기존의 비슷한 종류의 노래를 가지고 있었다.
율은 일단 마음가짐부터 다르게 먹었다.
S급 창작 노래를 생성하기 위해서가 아닌 진심으로 자신의 마음을 담은 노래를 부르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최초 영혼의 음유시인이라는 직업을 얻을 때부터 늘 중요한 걸 얻거나 위기를 넘길 때는 모두 ‘진심’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걸 알기에 그는 다시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해보자!’
힘든 도전이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