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2대 섀도우 로드
죽음의 숲에서 벗어난 율은 곧장 천공대륙으로 이동했다.
현재 레벨은 468.
검마노 최고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수치였다.
천공대륙은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아니,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죽음의 대륙과 함께 현재 검마노를 이끌어가는 2대 대륙이라 불리는 곳다운 모습이었다.
팔콘과 엘리스, 그리고 강풍은 여전히 이곳에 있었다.
비록 죽음의 대륙과 비교하면 최상위권 유저들이 레벨 업 하기에는 조금 떨어지는 곳이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들은 이곳에서 최고 등급의 사냥터를 차지하고 열심히 달렸다.
그들의 현재 레벨은 강풍이 421, 엘리스가 429, 팔콘이 404였다.
그렇게 떨어지는 레벨은 아니었다.
어차피 그들은 결국 한계 레벨인 500에서 모두 만나게 된다는 생각으로 느긋하게 레벨을 올리는 중이었다.
율 역시 길드 마스터로서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누구보다 높은 레벨을 먼저 만들려고 했기에 그렇게 혼자 먼저 치고 나갔던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도 느긋하게 레벨 업을 했을 게 분명했다.
지난 4개월 동안 변한 건 그들의 레벨뿐만이 아니었다.
섀도우 로드는 벌써 길드원이 천 명에 가까워져 있었고, 섀도우 로드의 자금줄이라 할 수 있는 그림자 상단은 검마노 5대 상단 중 한곳이 되었다.
아직까진 그림자 상단 뒤에 섀도우 로드가 있다는 건 길드에서도 핵심 인사들밖에 모르는 특급 비밀이었지만, 어쨌든 그 그림자 상단의 자금력 덕분에 섀도우 로드는 아주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형, 이따가 시간되죠?”
율은 팔콘의 말이 이렇게 무섭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또… 뭐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 거냐?”
“아, 별건 아니고… 길드원 추천이 몇 명 들어와서요. 형이 돌아왔으니 직접 만나보는 게 더 좋잖아요.”
“으음, 그냥 하던 대로 너나 강풍이가 만나보면 안 될까?”
“이런~ 길드 마스터로서의 의무를 저버리시려고 하는 겁니까!”
뭐가 그리 즐거운지 팔콘이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얘기했다.
그동안 과중한 업무와 싸워왔던 팔콘은 쌓였던 스트레스를 이런 식으로 풀고 있었다.
“아… 알았다.”
지은 죄(?)가 있으니 율도 할 말은 없었다.
율은 천공대륙에 돌아와 지금까지 정말 바쁘게 돌아다녔다.
새롭게 가입했던 길드원들을 일일이 다 만나보고, 그림자 상단의 각종 지출과 수입도 확인하고… 거기에 4개월 동안 잔뜩 화가 나버린 엘리스의 심기도 풀어주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뿐인가?
현실에선 이제 일주일(현실시간) 앞으로 다가온 축제 공연 준비로 너무나 바빴다.
현실이건 가상현실이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를 것 같은 생활의 연속이었다.
“근데 이 서류들은 언제까지 계속 봐야 해? 그냥 네 선에서 결제한 걸로 끝내면 안 돼?”
“헐~ 형, 모든 건 원칙이란 게 있어요. 전 그저 형의 부재를 대신해 임시 결제를 했을 뿐이라고요. 그러니까 형이 무조건 전부 정식 결제를 해야 해요.”
팔콘은 의외로 이런 면에선 아주 정확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마치 진짜 기업이라도 운영해본 듯 팔콘은 아주 철저하게 그림자 상단을 운영했다.
덕분에 죽어나가는 건 율이었다.
‘차라리 레이드 보스 몬스터랑 1 : 1로 싸우는 게 더 속 편하겠다.’
율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확실히 실내보단 실외가 몸에 잘 맞았다.
* * *
가상현실 속에서 각종 일거리에 치여 산다면 현실에선 노래 연습에 치여 살았다.
처음엔 그저 대충 부르면 될 것이라 생각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꾸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특히 친구들이 생각보다 더 훌륭한 무대를 계획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시간이 날 때마다 노래 연습을 했다.
그가 부를 곡은 총 네 곡.
그 중 세 곡은 Noting의 노래로 골랐다.
엘리스가 워낙 좋아해 그녀와 함께 다니며 자주 부르다 보니 가장 익숙한 가수가 되어 있었다.
물론 율도 원래부터 좋아했던 가수였기에 별 상관은 없었다.
남은 한 곡은 최근에 가장 유행하고 있는 강유의 ‘꿈속의 꿈’을 부르기로 했다.
Noting의 노래는 워낙 자주 불렀던 곡들이라 쉽게 부를 수 있었지만, 강유의 노래는 이번 공연을 위해 특별히 연습한 것이라 쉽지만은 않았다.
이럴 경우 계속 반복해서 노래를 불러보는 게 제일 좋았다.
“휴~ 이거 진짜 이러다 과로로 쓰러지지.”
죽음의 대륙에서 완전 집중해서 사냥할 때보다 더 피곤한 하루하루가 계속되자 율도 피곤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지겹거나 귀찮은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이 피곤함 자체가 율에겐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생생한 느낌을 느낄 수 있기에… 진짜 삶다운 삶을 살 수 있기에 그것 자체로 기뻤다.
“자, 연습하자.”
율은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꿈속의 꿈을 부르기 시작했다.
힘들더라도 그걸 즐길 줄 알게 된 율.
이제 율은 진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율은 그렇게 팔콘에게 보름(게임시간) 정도를 더 시달린 끝에 간신히 밀려 있던 모든 일을 끝낼 수 있었다.
일은 끝났지만 그렇다고 한가해지지는 않았다.
친목 길드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의 작은 규모였던 섀도우 로드가 엄청난 고속 성장을 한 끝에 그 어느 길드에도 뒤쳐지지 않는 대형 길드가 되었기에, 길드 마스터로서 할 일은 어디에도 있었다.
그나마 섀도우 로드의 특성상 길드원 개개인의 자유를 확실히 보장하기 때문에 길드원들을 통제하거나 그들에게 지시를 내릴 필요가 없어 다른 대형 길드보단 일이 작았지만 분명 규모가 커진 만큼 할 일도 많아졌다.
“대형 길드들은 다 이래?”
율이 지친 표정으로 팔콘을 바라보며 물었다.
“더하죠. 로열패밀리는 아예 하나의 기업이라고 보셔도 될 걸요?”
팔콘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한 게임이 아니란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옆에 앉아 있던 강풍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이 정도로 지치면 안 돼요. 형이 말씀하신 로열패밀리에 들어가려면 아마 앞으로 10배는 더 바빠질 걸요?”
“크으… 포기할까?”
율은 진심으로 포기하고 싶어졌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는 건 남자가 할 짓이 아니죠.”
율이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팔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웃으며 대답할 수 있었다.
“일을 너무 크게 벌렸어. 하지만… 덕분에 좀 크게 놀 수 있게 돼서 즐겁긴 하다.”
강풍이 잔뜩 기지개를 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앞으로 뭘 해야 할까?”
율이 진지하게 강풍과 팔콘, 그리고 엘리스를 둘러보며 물었다.
“전 일단 길드 규모를 더 키우는 것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팔콘은 아직도 길드 규모가 너무 작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생각이 틀린 게 아니었기에 율도 진지하게 길드를 더 키울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난 길드 차원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으면 한다. 예를 들자면… 예전에 내가 말했던 ‘대규모 배틀 필드’ 같은 곳을 만들어서 투기장처럼 리그로 운영하는 거지. 이거 돈 좀 될 거 같은데…….”
강풍은 투기장 토박이답게 새로운 PvP 콘텐츠를 개발하고 싶어 했다.
그의 구상은 나쁘지 않았다
분명 가능성이 있었고, 율 역시 그 부분을 좀 더 세밀하게 구성해볼 의향이 있었다.
“조각… 앞으로의 포인트는 조각이 될 거야.”
엘리스가 오랜만에 입을 열어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 조각이 뭔지는 여기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여기에 있는 이들은 유일하게 율이 두 개의 조각을 하나로 융합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엘리스는 이 조각 아이템이 앞으로 검마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의 의견을 경청한 율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일리 있는 의견들이었다.
길드 규모가 커지며 강풍과 팔콘은 부 길드마스터가 되었고, 엘리스는 정식 직책은 그녀 스스로 극구 거부했지만 사실상 섀도우 로드의 돌격대장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좋아~ 다 좋은 생각들이다. 어차피 당장에 뭔가를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차근차근하게 하나씩 해결해 나가보자.”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 2대 섀도우 로드.
확실히 2대는 1대와 또 다른 느낌이었다.
가츠가 율에게 길드 마스터 자리를 물려주며 ‘너의 섀도우 로드를 만들라.’고 했던 그 말이 지금의 2대 섀도우 로드를 만들어냈다.
그림자가 언제까지 그림자이기만 할 이유는 없다.
그림자가 스스로 그 한계를 벗어나 양지로 나오는 순간… 2대 섀도우 로드가 완성될 수 있었다.
“힘내자.”
동료들의 어깨를 두드리는 율.
이들이 있어 율은 한계를 벗어난 그림자를 꿈꿀 수 있었다.
* * *
“준비됐어?”
“후우~ 왜 이렇게 긴장이 되냐?”
율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이제 곧 그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한다.
의외로 축제는 대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학생들만의 작은 축제일 것이라 예상했던 사람들은 전부 입을 다물어야 했다.
학교 측에서 투자를 많이 한 덕에 많은 사람들이 축제를 구경 왔다.
특히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남성 솔로 가수 강유와 몇 년째 아이돌 그룹의 탑을 유지하고 있는 여성 삼인조 그룹 펑키가 공연을 하며 축제를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그 덕분에 율은 졸지에 백 명에 가까운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그나마 강유가 공연을 하고 있는 시간 때라 좀 적었던 거지, 안 그랬으면 백 명을 넘어 이백 명에도 가까울 수 있을 정도였다.
어쨌든 몇 명이 됐건 현실에서 누군가의 앞에 서서 정식으로 노래를 부르는 건 처음이었기에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거듭 말하지만, 여기가 그냥 현실이 아니라 가상현실이라고 생각해. 넌 충분히 잘할 수 있어.”
종우가 율의 어깨를 두들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친구들이 마련해준 무대… 비록 그리 크지 않은 무대였지만 나름 갖출 건 다 갖춘 멋진 무대였다.
율은 이런 무대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후우~~!”
율은 다시 한 번 숨을 크게 내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할 수 있어!’
사실상 현실과 가상현실의 차이는 거의 없다.
가상현실에서 가능하다면 현실에서도 가능한 것이 맞았다.
“자, 5분 후 시작한다.”
종우가 손바닥을 활짝 펼치며 남은 시간이 5분이란 걸 알려주었다.
5분 후.
율의 첫 공연은 그렇게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와아아~ 강유 오빠!”
“강유!”
“강유!!”
강유가 세 번째 노래를 부르며 관객들을 향해 윙크하자 축제에 몰려들었던 강유 팬들이 거의 반쯤은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크게 외쳐댔다.
그들이 그렇게 강유의 공연에 완전히 넋이 나가 있을 때… 축제의 한쪽 편에선 또 다른 의미로 넋이 나간 이들이 있었다.
첫 곡을 끝냈을 때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랍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연히 자리를 뜨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지나가던 이들이 걸음을 멈추고 노래를 듣다 보니 관객은 훨씬 더 많이 늘어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시작된 두 번째 노래.
첫 번째 곡은 아직 분위기를 잘 파악하지 못한 율이 조심스럽게 부른 노래였다면, 두 번째 곡은 본격적으로 율이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노래였다.
사람들은 전부 율의 노래에 빠져들었다.
Nothing의 노래를 부르지만 이 노래가 Nothing의 노래인지, 아니면 지금 노래를 부르는 율의 자작곡인지 모를 것 같은 모호한 느낌이 들었다.
멀리서 들려오던 강유의 노랫소리 따윈 들리지 않았다. 모두 오로지 율의 목소리에만 집중했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이토록 많은 이들을 집중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치명적인 마력이라 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끌어들이는 치명적인 마력… 율의 목소리에는 그 마력이 담겨 있었다.
점점 더 빠져드는 관객들.
지나가던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율의 노랫소리에 이끌려 무대로 다가왔고… 그렇게 단지 두 곡의 노래를 불렀을 뿐인데 벌써 관객은 두 배로 늘어나 있었다.
율 역시 노래를 부르며 점점 그 노래에 빠져들고 있었다. 종우의 말처럼 이곳을 현실이 아닌 가상현실이라고 계속 되놰서일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이 마치 환상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 앞에 모여드는 수많은 사람들이 부담스럽다는 느낌도 별로 들지 않았다.
신이 난 율은 두 번째 노래가 끝나자마자 곧장 세 번째 노래를 시작했다.
이번에도 역시 Nothing의 노래였다.
Nothing의 노래 중에서도 엘리스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 ‘Dream Of Love’였다.
첫 번째 노래는 흥을 돋우는 신나는 노래였고, 두 번째 노래는 심금을 울리는 서글픈 노래였다.
율의 노래는 실제로 사람들의 감정을 교묘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너무나도 달콤한 사랑노래인 ‘Dream Of Love’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행복이 가득한 표정으로 웃기 시작했다.
적어도 이곳에 모인 이들에겐 강유의 공연 따윈 잊혀졌다. 실제로 강유의 공연을 보기 위에 달려가던 사람들도 율의 노래를 듣고 난 후엔 하나같이 모두 이 무대 앞에 멈춰서 있었다.
율과 그의 친구들이 만든 이 작은 무대 앞에는 어느새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관객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관객들이 늘어나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백 명이 약간 모자라는 정도로 시작했던 공연이 단 10분 만에 세 배를 넘어 네 배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멀리 강유가 공연하고 있던 곳에서 관람하고 있던 관객들도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 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눈치 빠른 몇몇 관객들은 재빨리 율이 공연하고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율의 무대에서 이탈하는 관객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강유의 무대에서 이탈하는 관객은 점점 늘어만 갔다.
처음엔 별로 신경 쓰지 않던 강유도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빠져나가자 뭔가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는 원래 네 곡의 노래를 부르기로 계약되어 있었지만 보통 이런 축제에 와서는 팬서비스 차원에서 한두 곡 정도 더 불러주었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는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강유는 마지막 네 번째 노래가 끝나자마자 곧장 무대를 내려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뭐야? 왜 사람들이 갑자기 빠져나가?”
무대 뒤로 내려온 강유는 자신의 매니저에게 짜증이 잔뜩 난 표정으로 물었다.
“그, 그게…….”
“뭔데? 누가 왔어? 오늘 초대 가수가 나랑 펑키 말고 또 있었어?”
“아뇨. 초대 가수는 아니고요… 그냥 여기 학생이 노래를 부르는…….”
매니저는 차마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말을 제대로 하지 않아도 이 정도라면 강유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뭐라고? 지금 내 노래를 듣다가 일어난 애들이 여기 학생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러 갔단 말이야?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란 말이야?”
강유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잔뜩 흥분했다.
“이 학교 자체가 게임에 미친놈들이 다니는 곳이니까 노래를 듣는 귀도 엉터리인…….”
매니저는 어떻게 해서라도 흥분한 강유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강유는 뚜껑이 날아간 상태였다.
“어디야? 내가 직접 들어봐야겠어. 당장 앞장서!”
강유의 평소 성격을 알고 있던 매니저는 어쩔 수 없이 강유를 율의 공연장으로 안내할 수밖에 없었다.
대충 모자를 눌러쓴 강유가 율의 공연장에 도착했을 땐 마침 율이 네 번째 노래로 강유의 곡을 부르고 있었다.
공연장에 있는 관객들은 모두 율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유는 그런 관객들의 반응이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라는 자신조차 팬들에게 이런 반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뭐, 뭐야…….’
강유는 깜짝 놀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반응이었다.
심지어 강유가 모자를 좀 올려 써도 강유를 알아보고 놀라는 이들조차 없을 듯했다.
그리고 강유의 귓가에 들려오는 율의 노랫소리.
강유는 율의 노래를 듣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 자신의 노래이건만, 자신이 엄청난 히트를 친 그 노래건만… 놀랍게도 자신의 노래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가 이상해서?
아니었다.
노래는 너무나 완벽했다.
자신이 불렀던 노래가 오히려 짝퉁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게 어떻게…….’
강유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자신의 가창력이 다른 누군가에 비해 떨어진다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강유였건만… 이번엔 달랐다.
이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 아니, 거대한 산 같은 느낌이었다.
‘도대체 이런 녀석이 왜 여기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야!’
강유는 너무 놀라 가슴속으로 크게 소리쳤다.
더 이상 이 노래를 듣고 있다간 더 큰 상처를 입을 것 같았던 강유는 재빨리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그는 무서웠다.
이렇게까지 노래에 호소력이 담길 수도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절대… 절대 저런 녀석이 가수가 되어서는 안 돼.’
이건 결코 자신만을 위해 하는 생각이 아니었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가수들이… 극단적인 좌절을 경험할 수도 있었다.
그건 재앙이었다.
강유는 당장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 재앙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율이 부른 노래가 가진 힘.
이 힘은 생각보다 너무 대단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