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 충돌 (63/95)

9. 충돌

두 달(게임시간)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죽음의 대륙에는 많은 수의 유저들이 유입되었다.

대략 보름(게임시간) 전에 갑자기 공개된 그림자 도시는 죽음의 대륙에 유저들이 유입되는 속도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해서 만들어진 그곳은 유저들이 유입되기도 전에 많은 것들이 갖춰져 있었다.

지리적으로 산호 항구보다 훨씬 좋은 위치에 있을 뿐만 아니라 산호 항구에는 없는 많은 편의시설이 존재했다.

그뿐인가?

그림자 상단이 설치한 순간이동 장치는 기존의 이동수단들을 한 번에 눌러버렸다.

많은 유저들이 이제 대세는 산호 항구가 아닌 그림자 도시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그림자 도시에 유저들이 몰려든 건 당연한 일이었다.

불과 보름 만에 그림자 도시는 산호 항구만큼이나 활기가 넘치는 곳으로 변했고, 그곳에서 발생되는 모든 이득은 그림자 상단, 아니 섀도우 로드로 귀결되었다.

그림자 도시의 기반을 홀로 만들어낸 율은 그림자 도시가 활성화되기 전 이미 그곳을 떠났다.

그는 더 강한 사냥감을 찾아 죽음의 대륙 중앙 부근에 있는 어둠의 산맥으로 들어갔다.

어둠의 산맥은 지금까지 그 어떤 유저도 탐험에 성공하지 못한 극악의 난이도를 지닌 지역이었다.

소문엔 로열패밀리 몇 군데에서 그곳을 정복하기 위해 꾸준히 공략을 시도하고 있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결과를 내놓은 곳은 한곳도 없었다.

율은 그런 무시무시한 곳에 혼자 진입했다.

다른 이들이 보면 미친 짓이라고 할 만한 행동이었지만 율은 나름 자신이 있었다.

그동안의 노력으로 레벨은 420대에 올라 있었다.

최상급 유저들이라고 떠드는 이들이 겨우 390~410대의 레벨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율은 이제 수많은 이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삼는 탑 랭커들의 수준과 거의 같은 상태였다.

공식적인 레벨 랭킹은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누가 최고 레벨을 달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들리는 소문엔 섀도우 송이라는 길드의 길드마스터인 아독이 430대의 레벨을 찍어 가장 높은 레벨을 고수하고 있다고 했다.

섀도우 송은 로열패밀리의 중 하나로 검마노에선 최고의 PvP 능력을 가진 강력한 길드였다.

율은 그러한 아독의 레벨에도 별로 꿀리지 않는 레벨이었다.

한계 레벨인 500에 가까워질수록 레벨 상승이 매우 느려졌기 때문에 율은 한 번 더 모험을 선택했다.

어둠의 산맥.

사냥터라기보다는 공략이 더 필요한 미지의 구역에서 남들과 차별화된 레벨 업을 할 생각이었다.

성공만 한다면 최고 레벨이라는 아독도 따라잡을 수 있다. 물론 성공이 결코 쉬워 보이지는 않지만 율은 전혀 겁먹지 않았다.

레벨도 올랐지만 그와 함께 그의 실력도 급상승했기 때문에 두려움보단 기대감이 더 큰 게 사실이었다.

특히 율은 이제 서열 20위 이하의 영웅들의 영혼들은 아주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영웅들이 육체를 얻었다고 하여 율의 통제를 벗어날 일은 이제 없었다.

그들은 살아생전의 능력을 거의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그래도 결국 율의 레벨에 따른 능력 제한은 어쩔 수 없었지만 율의 레벨도 계속 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능력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졌다.

아쉬운 건 서열 1위부터 서열 19위까지의 영웅들의 영혼은 아직까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이었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아예 소환이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서열 1위와 2위, 그리고 4위의 영혼을 제외한 나머지 16명은 모두 소환할 수 있었다.

단지 소환을 해도 그들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일 뿐이었다.

이 문제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기에 율은 성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아가 강한 만큼 적응시키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뿐이었다.

지금은 서열 20위 이하의 영웅들만으로 충분했다.

어둠의 산맥에 어떤 강적들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율은 그 강적들을 상대한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 * *

어둠의 산맥에서 가장 약한 몬스터는 검은 뿔 고블린이였다.

하지만 이놈도 레벨이 400을 넘는 고레벨이고, 결정적으로 무리를 지어 다니는 무리형 몬스터였다.

그런 의미에서 어둠의 산맥에서 가장 상대하기 쉬운 몬스터는 다크 베어라고 불리는 레벨 450의 동물형 몬스터였다. 물론 보통의 유저들에겐 이놈도 공포의 대상이겠지만 적어도 이 어둠의 산맥 안에서는 가장 상대하기 쉬운 놈이 확실했다.

특히 어둠의 산맥은 죽음의 대륙 전체에 깔려 있는 암흑 마력의 효력이 두 배 이상 강하게 적용되는 지역이었기에 몬스터들의 레벨은 실제보다 훨씬 높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곳에서 율은 무려 한 달(게임시간) 동안 살아남았다.

그냥 근근이 살아남은 게 아니라 나름대로의 영역까지 구축했다.

현재 율의 레벨은 467.

율은 원래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어둠의 산맥은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만큼 그에 따른 보상도 아주 대단했다.

그 결과 율은 한 달이란 비교적 짧은 시간 만에 무려 40레벨 이상을 올렸다.

그것도 400레벨 중후반 대에서… 공식적인 확인은 불가능했지만 아마도 현재 검마노에서 가장 레벨이 높은 이는 율일 가능성이 높았다.

원래 목표는 레벨 450이었지만 율은 어둠의 산맥에서의 생활에 푹 빠져들어 있었다.

특히 한 달이 지났음에도 정작 어둠의 산맥의 가장 핵심적인 지역인 ‘검은 칼날 산’ 안쪽으로 접근하지 못했다는 게 그의 도전의 의식을 계속해서 자극했다.

이제 목표는 검은 칼날 산의 진입으로 바뀌었다.

율은 500레벨을 훌쩍 넘는 무시무시한 몬스터들이 돌아다니는 그곳을 조금이라도 구경해봐야 직성이 풀릴 것만 같았다.

“크어엉!”

크게 울부짖으며 달려드는 흑안혈호(黑眼血虎).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놈은 커다란 입을 벌려 율을 한 입에 삼켜버릴 기세였다.

하지만 그건 놈의 생각일 뿐이었다.

꽈광!

놈의 입을 정면에서 막아버린 거대한 방패.

신의 방패 아론은 능숙하게 흑안혈호의 공격을 저지했다. 아론의 공격 저지와 거의 동시에 강력한 뇌전이 흑안혈호의 몸을 관통했다.

파지지직!

벽력왕(霹靂王)이라 불리는 아투칸의 솜씨였다.

뇌전의 힘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술법사였던 그는 고대의 원시종족을 이끄는 족장이자 제사장이었다.

그가 만들어낸 뇌전은 흑안혈호의 생명력을 바닥까지 떨어트렸다.

순간 뇌전의 영향으로 살짝 쇼크 상태에 빠진 흑안혈호, 그놈을 마무리하는 것은 한 자루의 거대한 도끼였다.

샤크차토라는 호칭을 지닌 드워프들의 영웅 슈크딘 날린 도끼였다.

샤크차토라는 말은 드워프 말로 ‘쓰러지지 않는 위대한 전사’라는 뜻이었다.

아론의 방어 아투칸의 반격, 그리고 슈크딘의 마무리. 그들을 도와 각종 버프를 쏟아낸 우보.

율이 굳이 나설 필요도 없이 이 넷이 모든 걸 마무리했다.

자연의 신관 히미네스도 소환되어 있었지만 큰 데미지를 입은 이가 없었기 때문에 회복시켜줄 대상도 없었다.

어차피 흑안혈호는 검은 칼날 산맥 외곽에서 나오는 상대하기 별로 어렵지 않은 몬스터 중 한 마리일 뿐이었다.

당연히 율 파티에겐 식후 디저트 정도도 되지 않는 놈이었다.

깔끔하게 흑안혈호를 쓰러트린 율은 곧장 모든 영웅들을 역소환시켰다.

벌써 두 시간이 넘게 소환을 해놓고 싸웠기 때문에 소울 에너지를 관리하기 위해 조금 쉴 필요가 있었다.

천공대륙에 들려 팔콘과 얘기한 후 죽음의 대륙으로 온 지 벌써 4개월(게임시간)이 흘렀다.

4개월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죽음의 대륙은 유저들의 적극적인 공세로 인해 벌써 30%에 가까운 지역이 정복되었다.

현재 죽음의 대륙은 검마노의 모든 힘이 집중되어 있었다. 로열패밀리라 불리는 이들은 전부 죽음의 대륙에서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설사 로열패밀리가 아니라 할지라도 능력이 되는 길드들은 죄다 죽음의 대륙으로 진출했다.

그 결과 죽음의 대륙은 기회의 땅이면서 한편으로 온갖 충돌을 야기하는 분쟁의 땅이 되었다.

현재 공식적으로 확인된 로열패밀리끼리의 분쟁만 다섯 건이고, 그밖에 중대형 길드들끼리의 충돌들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만큼 많은 것이 걸린 곳이었기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견제했다.

그리고 그 여파는 이곳 어둠의 산맥까지 미치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쉰다!”

별로 크지 않은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율은 그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또 왔군.’

요즘 들어 자주 이곳에 나타나는 한 무리의 유저들.

율이 살펴본 결과 그들은 로열패밀리 중 하나인 골든라인의 유저들이었다.

그들은 어둠의 산맥, 정확히는 검은 칼날 산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희귀광물 광산을 개발하기 위한 개척조로 보였다.

골든라인의 주수입이 바로 광산개발 수입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들은 어둠의 산맥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려고 했다.

누가 먼저 가로채기 전에 선점하기 위해 다소 무리를 해서 개척조를 구성한 것이었다.

율은 요즘 이 개척조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일단은 개척조와의 충돌을 피하고 있었지만 계속 피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검은 칼날 산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을 장악하려고 하는 중이었기에 그들과 조우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선발대로 온 개척조만 대략 백여 명이었지.’

율이 파악한 바로는 선발대로 온 이들만 벌써 백 명이 넘었다.

워낙 규모가 큰 대형 길드인지라 백 명이라 해봤자 별것 아니겠지만 율의 입장에선 그들 한 명, 한 명이 상당한 실력을 지닌 유저들이어서 쉽게 생각할 상대가 아니었다.

‘굳이 억지로 충돌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조금만 더 이곳에 있다가 조만간 빠져나가야 하니… 그때까지는 최대한 피하는 걸로 하자.’

율은 아무런 득도 되지 않을 무모한 행동을 즐기는 이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 시끄러운 문제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조용히 충돌을 피하려는 율.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의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시작은 정말 사소한 오해로부터였다.

그날따라 하필이면 개척조 중 일부가 한 몬스터 무리에게 습격을 당해 전멸했고, 또 하필 그날따라 율은 검은 칼날 산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사냥 중이었다.

그 두 개의 일이 겹쳐지며 골든라인의 개척조가 대규모로 펼친 추적 작업에 율이 노출되었다.

그때부터 골든라인은 율을 집요하게 추적했다.

상황을 종합해보면 자신들을 습격한 존재가 유저가 아닌 몬스터란 것을 뻔히 알 수 있음에도… 그들은 마치 뭔가 건수라도 잡은 것처럼 아주 열심히 율을 추적했다.

처음에는 율이 그들의 추적을 따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율을 쫓았고, 결국 율은 참지 못하고 자신을 추적하는 유저들에게 역습을 했다.

역습 결과 선봉에 섰던 한 파티가 율에게 전멸하고 말았다.

죽음의 대륙은 거의 대부분의 지역이 자유 PK구역이었기 때문에 무법 지대라고 봐야 했다.

생각지도 못한 일격을 당한 개척조는 상대가 만만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전력을 다해 율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상대방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적대 길드에서 보낸 강력한 정예 파티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율의 입장에선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그걸 해명할 입장도 아니었다.

충돌을 피하고 싶었지만 일이 이렇게까지 된 이상 무조건 피할 수만은 없었다.

어차피 개척조는 율을 잡기 위해 온힘을 다할 것이고 율은 그걸 견뎌내야 했다.

‘크으… 진짜 귀찮게 하네.’

율은 새삼 왜 로열패밀리를 대단하다고 말하는 건지 간접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정말 끈질겼다.

자신들의 이익에 방해가 될 것이라 생각되는 존재가 나타나자 진짜 미친 듯이 추적을 해서 척살하려 했다.

어지간한 길드였다면 율이 가뿐하게 추적을 따돌렸겠지만 골든라인의 개척조는 어지간하지가 않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계속 피할 수만은 없다. 한번 제대로 지르고… 여길 뜨자.’

개척조를 상대로 이긴다고 해도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한번 제대로 싸우고 여길 떠나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아직까진 섀도우 로드가 골든라인과 정면으로 싸울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신의 소속이 밝혀져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짧고 강하게 한번 싸우고 빨리 사라지는 게 제일 좋았다.

‘선공필승! 난전을 유도해 최대한 피해를 많이 주고 빠져나가자.’

조용히 빠져나가는 방법도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건 자존심 때문에라도 싫었다.

이곳에 먼저 자리를 잡은 건 율이었고, 골든라인의 개척조는 나중에 온 이들이었다.

굴러온 돌을 피해 도망가는 모습은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

‘오늘밤… 어둠의 산맥이 어떤 곳인지 똑똑히 보여주마.’

율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서서히 지고 있는 태양.

이제 곧 전쟁이 시작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예상 평균 레벨 380~390.

상당한 경험을 쌓은 올드비 유저들.

골든라인에서도 그 경험을 인정받아 개척의 선봉에 설 자격을 얻은 실력자들.

이 몇 마디 말만 보아도 골든라인이 보낸 개척조의 유저들은 평범한 유저들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당연히 경험이 많은 만큼 위기상황에서의 대처 능력도 뛰어났다.

하지만 오늘… 그들의 위기 대처 능력이 크게 의심받고 있었다.

“도, 도대체 몇 놈이야!”

“일단 어둠을 밝혀!”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

그는 한밤중에 개척조의 베이스캠프를 습격했다.

그의 습격과 동시에 베이스캠프를 밝히고 있던 수많은 불빛들이 전부 사라졌다.

어둠의 산맥의 밤은 그 어떤 곳의 밤보다 어두웠다.

그런 상황에서 불빛이 전부 사라지자 사람들은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들은 재빨리 불빛을 다시 확보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불빛이 켜짐과 동시에 강력한 공격이 그 불빛을 들고 있는 유저에게 쏟아졌다.

대충 봐도 넷 이상의 습격자가 한 번에 쏟아낸 공격이었다.

호흡은 또 왜 그렇게 잘 맞는지… 거의 동시에 연달아 들어오는 공격이라 맞고 견뎌낼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골든라인 개척조가 평생 잊을 수 없는 공포의 밤이 시작되었다.

개척조의 노련한 유저들은 동시에 불빛을 확보해 공격을 분산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습격자들은 교묘하게 불빛이 가장 확보되지 않은 곳을 쳐서 유저들을 쓰러트리고 그걸 방어하려 하면 다시 불빛을 든 이들을 저격해 쓰러트렸다.

어둠은 습격자들의 편이었고, 습격자들은 그 어둠을 너무나 교묘하게 잘 이용했다.

[12시 방향]

율은 12시 방향에서 살짝 켜졌다 꺼진 불빛을 놓치지 않았다.

건 마스터 바우어의 영혼을 받아들인 그에게 찰나의 순간 보인 목표물은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철컥!

타아앙!

한 발의 총성이 울려 퍼지고 그와 함께 그 총성을 따라 두 발의 원거리 공격이 그곳을 향해 쏟아졌다.

현재 율은 개척조가 만들어 놓은 중앙 감시탑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율이 소환한 다섯의 영웅들은 감시탑 아래쪽에서 열심히 율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율이 이번 기습 작전에 소환한 다섯 영웅은 모두 원거리 공격에 특화된 영웅들이었다.

신궁(神弓) 콴들, 비도무적 류, 마법 저격수 라이지, 정령 궁사 카림, 저주의 케라미스.

모두 최대 사거리가 아주 긴 전형적인 원거리 딜러였다.

그들은 율의 명령에 따라 정확하게 목표를 공격했다.

몸은 여섯이었지만 명령을 내리는 두뇌는 하나였다. 당연히 기가 막힌 타이밍에 공격을 꽂아 넣을 수 있었다.

이게 율이 만든 파티의 장점이었다.

아무리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파티라고 할지라도 같이 플레이를 하다 보면 서로 생각의 차이가 생겨 완벽하게 공격과 수비를 맞출 수 없었다.

하지만 율이 만든 율만의 파티는 모든 명령을 율이 내리기 때문에 모든 걸 완벽하게 조율할 수 있었다.

물론 그만큼 율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 많아져 보통의 집중력과 컨트롤로는 제대로 전투도 하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였지만, 율은 그 문제를 끝없는 노력으로 해결한 상태였다.

적어도 율이 자신 있게 소환하는 몇몇 영웅들에 한해서는 마치 한 파티가 단 한 명인 것처럼 움직이게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율의 파티가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라이지 후방 교란, 케라미스는 외곽으로 빠져서 전 방위에 저주 난사… 난전을 유도해!]

율은 영웅들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벌써 30분째 이곳을 장악하며 적을 괴롭히고 있었다.

해치운 유저만 벌써 20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워낙 갑자기 너무 큰 타격을 입어서일까?

개척조는 아직도 제대로 정비를 못하고 있었다.

다수가 모여 있다 보니 어둠의 산맥에서 밤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동안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조금만 더 괴롭히고 빠져나가자.’

개척조를 전멸시키는 건 무리였다.

이들이 비록 지금은 당황해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지만, 결국 언젠간 제대로 대처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율도 상대하기가 꽤 힘들어지게 되어 있었다.

율은 그전에 먼저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빠질 때 빠지더라도… 개척조의 대빵은 잡고 가야지.’

율이 미리 정찰한 결과 이번 개척조를 이끄는 이는 골든라인 소속 랭커로 유명한 마그모스였다.

상당히 유능한 방어형 전사였던 그는 골든라인의 중요한 레이드나 탐험에선 늘 선봉에 서곤 했다.

율은 그런 그를 노리고 있었다.

이대로 그냥 빠지기엔 뭔가 아쉬운 게 많았기에 전리품으로 마그모스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조심스럽군. 그렇다면 내가 모습을 드러내도록 하게 해주지.’

상대가 나오지 않는다면 나오게 만들면 그만이었다.

[콴들, 남쪽 방향에 난사모드로 마구 갈겨. 류는 북쪽으로 이동한 후 내가 신호하면 바로 모습을 드러내.]

미끼를 던질 생각이었다.

콴들로 하여금 남쪽을 뒤흔들고, 류를 노출시켜 북쪽으로 시선을 끌면 마그모스가 어떤 식으로도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언제까지 이 흔들기에 계속 당하고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콴들과 류는 율의 명령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을 움직이게 한 율은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목표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카림과 라이지는 한 방 몰아치기를 대비해 준비해 놓았고, 케라미스는 떨거지들의 시선을 잠깐 동안 잡아놓을 준비를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드디어 목표가 미끼를 물었다.

마그모스는 남아 있는 개척조들을 진정시킨 후 은밀히 한곳에 모이게 했다.

남쪽에 적의 거센 공격이 집중되자 적들이 남쪽에 다수 모여 있는 것으로 판단한 마그모스는 반대 방향인 북쪽에 개척조를 집결시켰다.

하지만 율은 마그모스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었다.

그는 이미 마그모스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류를 그곳으로 이동시켜 놓았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류의 모습을 드러내게 했다.

마그모스는 갑자기 나타난 류를 보곤 어쩔 수 없이 공격을 개시했다.

한꺼번에 불빛을 밝히며 시야를 확보한 개척조들이 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렇지만 이 공격은 이미 율이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것이었다.

율이 굳이 류를 북쪽으로 이동시켰던 것도 류가 비도의 달인인 동시에 최고 수준의 도적이었기 때문이다.

현란한 움직임을 보여주며 빠르게 도주하는 류.

류가 너무나 완벽하게 반응하자 다급해진 건 마그모스였다.

기껏 모습을 드러냈는데 적을 한 명도 못 잡는다는 건 용납이 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더욱 무리를 해서라도 류를 잡으려 했다.

바로 이때… 틈이 생겨났다.

마그모스의 틈을 발견한 율은 그대로 공격명령을 내렸다.

멀리서 쏟아지는 강력한 원거리 공격들.

이미 개척조의 유저들이 서 있는 곳에 광범위한 저주마법 몇 가지가 겹쳐서 발동되었기 때문에 그 원거리 공격은 더욱 위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마그모스는 순간 위기를 느끼며 공격들을 방어하려 했다.

쩌저정!

마나캐논이란 마법으로 발사된 강력한 몇 발의 마력탄환이 마그모스의 방패에 막혔다.

그리고 화염의 기운을 담은 화살과 바람의 기운을 담은 화살은 마그모스가 오른팔을 희생시키며 간신히 저지했다.

창졸간에 이루어진 방어치고는 매우 훌륭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신궁 콴들이 아주 먼 거리에서 쏘아올린 뇌전시(雷電矢)는 마그모스의 어깨를 관통했다.

뇌전시에 담겨 있던 강력한 뇌의 기운은 순간 마그모스의 움직임을 멈추게 했고… 그런 마그모스의 미간을 향해 아주 강력한 최후의 일격이 날아들었다.

율이 쏘아낸 총알 한 발.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이게 건 마스터가 자랑하는 일격필살의 한 방이었다.

쾅!

그 총알이 마그모스의 머리를 관통했다.

원래 생명력이 상당이 높은 마그모스였지만 두 번의 공격을 방어하며 생각보다 큰 타격을 입었고, 이어진 뇌전시에 의해 상당한 데미지를 입었다.

그리고 뇌전시의 추가 효과로 몸이 굳어지며 율의 공격을 퍼펙트 크리티컬 판정을 받았다.

퍼펙트 크리티컬은 보통 치명타의 5배 데미지를 입혔기 때문에 가뜩이나 강력한 이 일격필살의 한 방 공격을 버텨낼 수가 없었다.

털썩.

쓰러지는 마그모스.

골든라인이 자랑하던 랭커 치고는 너무 허무한 죽음이었다.

“크으…….”

건 마스터의 일격필살 공격의 위력은 강했지만 그 반작용도 상당히 강해 단지 공격하는 것만으로 율도 생명력의 30%를 한 번에 잃었다.

진짜 아무 때나 함부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었다.

[모두 철수한다.]

율은 영웅들을 전부 역소환시키며 자신 역시 어둠의 산맥이 만들어낸 아주 진한 어둠 속으로 조심스럽게 스며들었다.

이걸로 끝이었다.

골든라인은 죽었다 깨어나도 도대체 누가 자신들을 공격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죽음의 대륙에서 일어난 작은 충돌.

율은 이걸로 골든라인과의 악연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율의 생각일 뿐이었다.

골든라인과 섀도우 로드… 그 두 세력의 악연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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