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천공 신전에서의 마지막 시련
트윈 헤드 오우거 20마리를 간단히 처리하자, 거의 바로 블랙오크로드가 튀어나왔다.
추정 레벨 350의 보스 몬스터.
하지만 블랙오크로드는 율 일행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놈 역시 가볍게 처리하는 율 일행.
블랙오크로드를 처리하자 역시나 세 번째 적이 등장했다.
세 번째 적은 오우거 킹이었다.
추정 레벨이 무려 370~380인 보스급 몬스터였다.
점점 강해지는 상대.
율 일행은 이제야 자신들이 엄청난 일에 휘말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지만 동시에 흥분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필드에서도 단 열 번밖에 잡히지 않았다는 오우거 킹마저 생각보다 쉽게 잡았다.
아주 잠깐의 쉴 틈만 주며 연속해서 등장하는 각종 보스 몬스터들.
율과 엘리스, 그리고 강풍과 팔콘은 졸지에 지금까지 한 번도 보미 못했던 각종 보스 몬스터들과 싸울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너무나 강력한 힘을 등에 업고!
네 번째로 등장한 레인보우 와이번은 필드에서 목격하기조차 힘든 보스 몬스터였고, 다섯 번째로 등장한 스톤 자이언트는 현재까지 딱 세 번만 쓰러진 최상급 레이드 보스 몬스터였다.
그뿐인가?
여섯 번째로 등장한 리치 로드는 단 한 번만 잡혔던 엄청나게 희귀한 레이드 보스 몬스터였다.
이 모든 놈들을 잡았다.
쏟아지는 각종 아이템과 호칭… 뭐가 나왔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싸우고 잠깐 쉬고 또 싸우고를 반복할 뿐이었다.
일곱 번째로 등장한 자이언트 드레이크 겉모습만으론 거의 드래곤 수준이었다.
실제로 마법 능력이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육체적인 능력은 거의 드래곤과 유사했다.
몇 번의 위기를 넘기며 율 일행은 아주 간신히 놈을 쓰러트렸다.
벌써 일곱 번이나 연속해서 이루어진 전투 때문에 율 일행은 꽤 많이 지쳐 있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휴식이었다.
하지만 휴식은 그들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자이언트 드레이크가 쓰러진 지 5분도 되지 않아 다시 여덟 번째 보스 몬스터가 등장했다.
이번엔 절망의 언데드 몬스터라 불리는 데스 나이트… 그 중에서 가장 특별하다는 데스 나이트 로드였다.
일반 유저들보다 대략 3배 정도 큰 덩치를 지닌 그의 추정 레벨은 무려 500.
거기에 그는 레이드용 보스 몬스터였다.
지칠 대로 지친 율 일행이 상대하긴 너무나 강한 상대였다.
‘여기까지인가?’
율은 마지막을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긴 너무 아까웠다.
쉴 수만 있다면… 몸을 회복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 싸워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율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천공의 축복은 파티용 버프였다!’
지금까지 왜 그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자기 자신이 너무 강해져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율은 재빨리 ‘진정한 영웅들의 서사시’를 부르며 동시에 그림자 하인 둘을 소환해 냈다.
그가 불러낸 영혼은 둘.
바바리안의 전설 타이온과 신의 방패 아론이었다.
둘 다 공격보단 방어의 능력이 뛰어난 이들이었다.
예전에도 충분히 소환해서 수련을 해놓았던 영웅들이었기에 그들은 빠르게 그림자 하인의 몸을 차지했다.
육체를 얻은 그들은 자연스럽게 율의 소환수 취급을 받게 되었다.
즉, 율과 같은 파티가 되었다는 뜻이다.
츠츠츳!
“이, 이게 뭐지?”
“이건 신의 힘!”
타이온과 아론은 갑자기 몸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강력한 힘을 느끼고 깜짝 놀랐다.
역시 예상대로 그들 역시 천공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
율의 의도는 간단했다.
강력한 방어 능력을 지닌 그들로 하여금 최대한 데스 나이트 로드를 막으며 버티게 하려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들이 그렇게 버티는 시간 동안 자신과 자신의 일행들은 본래의 힘을 회복할 생각이었다.
“무조건 놈을 막고 버텨!”
율은 타이온과 아론에게 절대 명령을 내리고 곧장 몸을 회복하는데 모든 신경을 쏟아 부었다.
율이 두 영웅의 영혼을 소환하는 동안 데스 나이트 로드를 힘겹게 막고 있던 강풍과 엘리스, 팔콘도 뒤로 물러나며 타이온과 아론에게 놈을 넘겨주었다.
그들 역시 이미 율의 계획을 눈치 챘기 때문에 뒤로 물러나 회복에 전념할 생각이었다.
“오오! 좋아! 아주 좋아!”
타이온은 가슴을 마구 두드리며 넘치는 힘을 과시했다.
그에 반면 성기사 출신인 신의 방패 아론은 자신에게 주어진 이 힘이 신의 힘이란 걸 알고 경건한 표정으로 침착하게 데스 나이트 로드의 검을 막았다.
특히 아론은 성기사였기에 데스 나이트 로드를 너무나도 증오했다.
증오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킬 자체도 데스 나이트 로드가 가진 스킬들에 상성인 것들이 많았다.
즉, 아론이야말로 데스 나이트 로드와 같은 언데드 몬스터에게 딱 어울리는 상대라는 뜻이었다.
율이 황급히 한 선택치고는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다.
그래서일까?
타이온과 아론은 아주 훌륭하게 데스 나이트 로드를 막아내었다.
물론 그들만으로 데스 나이트 로드를 쓰러트리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
그저 힘겹게 방어해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율과 엘리스, 그리고 강풍과 팔콘은 빠르게 몸을 회복하는 중이었다.
만약 그들이 몸 상태를 100% 회복할 수만 있다면… 데스 나이트 로드라 할지라도 그들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 * *
데스 나이트 로드의 가장 큰 무기는 가로막는 모든 것을 갈라버리는 검은색의 강력한 포스 블레이드였다.
하지만 그것은 번번이 아론이 들고 있던 방패에 막혔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어떤 것이라도 방어할 수 있다는 아론의 포스 쉴드에 막힌 것이다.
가장 큰 무기가 그렇게 막혀버리자 데스 나이트 로드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자신의 강력한 포스 에리어를 너무나 쉽게 찢고 들어와 꽂히는 공격들이 꽤 많은 지금의 상황에선 더욱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언제 그가 이런 위기를 겪어봤는가?
모든 언데드 몬스터의 정점에 서 있던 그였기에 이런 위기에 더욱 적응하지 못했다.
물론 그는 언데드 특유의 매우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레이드용 보스 몬스터답게 강력한 방어력과 회복력으로 어지간해서는 쓰러지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그라 해도 계속해서 강력한 데미지들이 누적되자 결국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언데드의 왕이라 불리던 데스 나이트 로드의 최후였다.
쿠쿠쿵!
커다란 덩치를 바닥에 눕히는 데스 나이트 로드.
이번 전투만 거의 3시간이 넘게 싸웠다. 하지만 의외로 율 일행의 몸 상태는 좋았다.
거의 한 시간 반이 넘는 시간을 아론과 타이온이 버텨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대부분의 힘을 회복한 상태였다.
“끝일까?”
강풍이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끝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모두 동시에 했지만 그건 그저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아닐 거 같은데…….”
율은 이게 절대 끝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뭔가가 더 남은 느낌이었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며 기다리고 있을 때… 드디어 마지막인 9번째 관문을 지키는 보스 몬스터가 등장했다.
띠링, 매우 훌륭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천공 신전의 마지막 관문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부디 이 관문을 통과하길 기원합니다.
“마지막!”
“오오오오오!”
마지막이란 소리에 불타오르는 그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9번째로 등장한 보스 몬스터를 보는 순간 그들은 얼음이 되었다.
쿵! 쿵!
땅을 울리는 거대한 발걸음.
거의 15m는 되어 보이는 엄청난 덩치!
아주 먼 옛날… 과거 신화시대에 존재했다는 거인족.
바로 그 거인족의 강력한 전사 중 하나가 바로 9번째 관문을 지키는 보스 몬스터였다.
과거 드래곤들과 함께 최강의 종족이라 불렸던 그 거인족이었다.
그 중에서도 강력한 전투력을 지닌 거인이었다.
대략 레벨 800대의 레이드용 보스 몬스터.
레벨 800은 웜급 드래곤의 레벨과 똑같은 것이었다.
‘전설의 청동 거인’
그 무시무시한 존재가 율 일행을 가로막았다.
애초에 유토피아가 클리어 가능성을 0.1%라 말한 건 이 청동 거인 때문이었다.
아주 먼 옛날 드래곤들을 사냥하러 다녔던 청동 거인.
그 전설 속의 존재가 처음으로 유저들 앞에 등장했다.
“허어!”
“거인족이라니…….”
“죽겠군.”
“으음.”
이건 사실상 드래곤을 상대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드래곤과 함께 유저가 극복하기 힘든 몬스터로 손꼽히는 이들이 바로 거인족이었다.
아직까지 제대로 등장을 한 적도 없는 신비한 종족이었다.
‘절대 천공 신전을 클리어하게 놔두지 않겠다는 의지인가?’
율은 고개를 흔들며 다시 한 번 청동 괴인을 올려다보았다.
절망스러운 상황.
하지만 그는 진짜로 절망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결국 이놈도 몬스터일 뿐이다!’
아무리 강해도 몬스터는 몬스터일 뿐… 율은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 쓰러트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미리 포기하지 말자. 지금의 우리라면… 무조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거야!”
당장이라도 자신들을 밟아죽일 것 같은 거대한 거인의 모습에 살짝 위축되었던 그들은 율의 외침과 함께 어느 정도 평정심을 되찾았다.
평정심을 되찾은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불행히도 여전히 눈앞의 이 거대한 청동 거인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드드득.
막막함 때문에 잠깐 멍해져 있던 그 순간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청동 거인이 먼저 움직였다.
그 큰 다리를 들어 올려 율 일행을 그대로 찍어 누를 기세였다.
“일단 산개해!”
율이 재빨리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꽈과광!
거인은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아주 빠른 공격을 해왔다.
다행히 이미 율 일행은 사방으로 산개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의 발 찍기 공격에 피해를 입은 이는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피해는 모면했을지 몰라도 어떻게 상대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진형까지 무너져버려 율 일행에겐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이 계속됐다.
“일단 버티자. 아무리 청동 거인이라고 해도 분명 틈이 있을 거다.”
율이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지금 당장은 버티고 또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어그로를 먹을게.”
버티기로 결정 내리자 엘리스가 가장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새로운 영혼을 주입한 율의 강력한 소환 영웅을 전면에 내세우고 싶었지만 단 한 대만 제대로 맞아도 그대로 쓰러질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현재는 회피 탱킹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는 엘리스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엘리스가 본격적으로 탱킹을 시작하자 청동 거인은 계속해서 엘리스를 향해 발과 주먹을 휘둘렀다.
의외로 청동 거인의 패턴은 간단했다.
하지만 간단하다는 게 결코 쉽다는 뜻은 아니었다.
워낙 덩치가 큰 청동 거인이었기 때문에 단순한 주먹질과 발길질 한번이라도 엄청난 압박으로 느껴졌다.
이런 녀석을 천공의 축복이 없이 상대했다면 아마 만나는 즉시 사망했을 것만 같았다.
엘리스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런 청동 거인의 공격을 피해내며 계속해서 청동 거인을 공격하고 있었다.
일단 엘리스가 충분히 어그로를 먹을 때까지 큰 공격을 자제하며 조금씩 청동 거인을 공격하는 나머지 일행들… 하지만 청동 거인의 방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정확히 어느 정도의 데미지가 들어가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정상적인 데미지에서 거의 99% 이상은 감소된 데미지가 적용되는 기분이었다.
당연히 큰 덩치에 걸맞은 엄청난 생명력을 지녔을 것이라 예상되는 청동 거인이었기에 이대로는 자신들이 먼저 지칠 것만 같았다.
‘방어력이 너무 높아… 아무리 엘리스가 잘 버티고 있다고 해도 결국 엘리스도 지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엘리스가 지치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할 텐데…….’
천공의 축복을 받은 엘리스가 청동 거인을 탱킹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은 대략 2시간(게임시간) 정도일 것 같았다.
그렇다면 2시간 동안 청동 거인의 생명력을 최소 80% 이상 깎아놔야 어떻게 가능성이 좀 있을 것이란 뜻이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80%는 고사하고 5%도 못 깎을 것 같았다.
“젠장. 어떤 공격을 해도 소용없다. 이건 완전히 부서지지 않는 벽에다 공격하는 느낌이야.”
강풍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들고 있던 창을 크게 회전시켰다.
최선을 다해 공격을 꽂아 넣었건만 청동 거인은 마치 간지러운 것처럼 반응할 뿐이었다.
막강한 공격력과 방어력, 그리고 무지막지한 생명력. 이게 청동 거인의 무서운 점이었다.
특수 공격?
아직까지는 특수 공격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온몸이 무시무시한 흉기일 뿐이었다.
“형, 이대로 계속 공격해요? 이건 완전 기력 낭비밖에 되지 않을 것 같은데요?”
팔콘의 말처럼 이대로 계속 공격하는 건 오히려 때리다 지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뭔가 획기적인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으~ 짜증나. 저건 도대체 뭐로 만들어진 갑옷을 입고 있는 거야? 확 벗겨버리고 싶네.”
잔뜩 짜증이 난 강풍이 청동 거인을 올려다보며 투덜거렸다.
그의 말처럼 청동 거인은 정말 갑옷을 입고 있는 듯이 보였다.
물론 그 갑옷이 통으로 연결된 단단한 갑옷 같아 보인다는 게 문제였지만… 충분히 그렇게 보일 만도 했다.
‘갑옷?’
강풍의 농담 같은 투덜거림을 들은 율은 순간 뭔가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당연히 청동 거인이 갑옷을 입고 있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청동 거인의 이 설명이 불가능한 엄청난 방어력은 뭔가 이유가 있을 게 분명했다.
개발사가 미치지 않은 이상 이런 식으로 무지막지하게 보스 몬스터를 디자인했을 리가 없었다.
이 청동 거인이 만약 아무 이유 없이 그저 패시브 효과처럼 이 엄청난 방어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면 만 레벨 유저 천 명… 아니, 만 명이 와도 놈을 잡을 순 없었다.
‘분명 놈의 피부를 덮고 있는 저 푸른색 갑옷 같은 게 모든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거다!’
율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예상이 틀리다면 애초에 청동 거인을 잡으라고 만들어놓은 몬스터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저걸 부숴야 한다!’
대충 길을 찾은 율.
하지만 길을 찾았다고 해서 모든 게 수월하게 풀린다는 뜻은 아니었다.
길은 어렴풋이 찾았지만 정작 그 길로 가는 방법을 완전히 알아내지는 못했다.
‘이제부터 알아내야겠지!’
어차피 놈을 한 번에 쓰러트릴 것이라 기대한 건 아니었다.
율은 놈의 약점을 차근차근히 찾아서 노린다면 언젠간 저 거대한 청동 거인도 자신의 발밑에 눕힐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놈의 관절 부근을 노려! 최대한 저 갑옷 같은 외피의 약해보이는 부분을 집중 공격해! 내 예상이 맞는다면… 저 외피는 분명히 깨트릴 수 있다.”
이렇게 해도 깨지지 않는다면 그때 깔끔하게 포기하면 되었다.
일단은 시도해 보는 게 중요했다.
“오~ 좋아! 한번 해보자!”
“오케이! 접수 완료!”
강풍과 팔콘이 고개를 끄덕이며 본격적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율은 그림자 하인 둘을 소환했다.
그리고 그 둘에게 각각 한 명씩 영웅들의 영혼을 소환해 불어넣어 주었다.
율이 소환한 영혼은 율이 소환할 수 있는 44가지 영혼 중 서열 8위와 9위를 차지하고 있는 강력한 영혼이었다.
당연히 그 강한 능력만큼이나 자아가 강한 영혼들이었기 때문에 율의 의도대로 완전히 컨트롤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지금은 율이 세세한 컨트롤을 할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청동 거인의 저 두터운 방어력을 깨트릴 만한 공격을 퍼붓게 명령 내리면 그만이었다.
서열 9위, 피의 마검사 소린.
서열 8위, 달의 술사 이라인.
현재로썬 율이 육체를 부여할 수 있는 최강의 영혼들이었다.
사실상 서열 1위, 2위 그리고 4위의 영혼은 강림 자체를 못 시키고 있었다.
그나마 간신히 강림시킬 수 있는 영혼이 서열 3위의 파멸왕 슈나이더의 영혼이었다.
파멸왕의 영혼은 당연히 육체를 부여하지 못하고 있었다.
문제는 아직까지 율의 능력으로 그들을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소환한 두 영웅의 영혼 역시 완벽한 제어가 불가능 했기에 거의 소환하지 않는 대상들이었다.
“오… 이 힘… 대단하군.”
“호호, 신의 힘을 이렇게 직접 받는 건 처음인데?”
육체를 얻어 세상에 새롭게 나타난 그 두 영웅은 신기롭다는 듯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다른 건 바라지도 않는다. 저 괴물 같은 거인의 틈을 공격해서 무지막지한 방어력을 지닌 외피를 제거하게 도와줘.”
율은 간단하게 명령했다. 아니, 부탁했다.
이들에겐 명령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기에 이렇게 우호적인 부탁을 하는 게 좋았다.
“쯧쯧, 멍청하긴. 거인족… 그것도 불멸의 전사라 불리는 청동 거인에게 무작정 공격을 하는 거냐? 그저 틈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오랜만에 세상 구경을 시켜줬으니까 아주 간단하게 알려주지. 청동 거인의 방어를 무력화시키려면 단 한 점을 노려야 한다. 드래곤들에게 역린(逆鱗)이 있다면 거인족에겐 시크리트 포인트가 있지. 그곳은 바로…….”
피의 마검사 소린이 자신 손을 들어 한 점을 가리켰다.
“호호, 청동 거인의 목젖. 그곳을 노리세요.”
소린의 말을 완성한 건 이라인이었다.
그녀 역시 청동 거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 왜 이들이 그 어떤 존재보다 거인족에 대해 잘 알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못했지?’
율은 머리를 한 대 강하게 맞은 느낌이었다.
영웅들은 아득히 먼 과거의 존재들이었다.
특히 서열이 위로 올라갈수록 더 먼 과거에서 활동한 경우가 많았다.
과거의 정보는 현재의 정보보다 더 많은 것이 공개되어 있었다.
이들 역시 과거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던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일반적인 NPC들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율은 그걸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게 너무나 창피했다.
어쨌든 소린과 이라인의 합류로 청동 거인 공략은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소린과 이라인도 오랜만에 육체를 얻은 즐거움 때문인지 적극적으로 청동 거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서도 엘리스는 꾸준히 청동 거인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있었다.
특히 그녀는 목젖이 청동 거인의 약점이란 걸 알게 된 후 적극적으로 그곳을 향해 권강(拳罡)을 뿌렸다.
그녀의 주먹에서 뻗어나가는 강력한 권강은 대부분 청동 거인의 손짓에 가로막혔지만 아주 간혹 목젖 부근을 때리기도 했다.
그 결과, 청동 거인은 더욱 크게 분노하며 그녀만을 노리게 되었고 덕분에 나머지 사람들은 보다 안정적으로 청동 거인의 목젖을 향해 공격을 쏟아 부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차곡차곡 청동 거인의 목젖에 데미지가 쌓여갔다.
계속해서 누적되는 데미지.
40분(게임시간)쯤 흘렀을까?
드디어,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청동 거인의 목젖에서 조금씩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그 균열이 점점 몸 전체로 퍼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본격적으로 변화가 감지되자 율 일행은 더욱 힘차게 공격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대략 20분 정도가 더 지났다.
쩌저저적!
온몸에 균열이 번진 청동 거인.
미친 듯이 목젖 부근을 향해 공격을 날리던 율 일행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 청동 거인을 바라보며 순간적으로 공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물러나는 게 좋을 것 같군.”
청동 거인을 바라보던 소린이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얘기했다.
소린의 말 때문이 아니라도 본능적으로 뭔가 큰 변화를 느낀 율 일행 역시 지금은 물러날 때란 걸 알 수 있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율 일행 모두가 뒤로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청동 거인의 몸에서 강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정확히는 온몸에 생긴 균열의 틈 사이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었다.
빛과 함께 벗겨지는 청동 거인의 외피!
그 갑옷처럼 생긴 외피가 벗겨지며 청동 거인의 원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