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천공 신전
‘기록에 따르면 달의 핵(문스톤)이 떨어지자마자 곧장 천공대륙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검은 대륙의 북부에는 바다처럼 넓고, 바다보다 더 깊은 매우 특이한 호수 흑사해(黑死海)가 존재한다. 정확한 비교는 힘들지만… 분명 그 흑사해의 크기와 이 천공대륙의 크기는 거의 같다. 그 얘긴 결국 흑사해가 바로 이 천공대륙이 떨어져 나오며 생겨난 호수라는 얘기다.’
율은 이미 대략적인 천공대륙의 생성을 유추해 놓은 상태였다.
‘결국 문스톤은 검은 대륙 한가운데에서 천공대륙을 떼어낸 것이다. 그렇다는 얘긴… 문스톤의 힘이 둥글게 사방으로 뻗어나가 대륙을 뜯어냈다는 뜻이고, 그건 결국 약간 울퉁불퉁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땐 둥근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천공대륙의 전체 지형과 흑사해의 전체 형태와 딱 들어맞는 가설이다. 그렇다면 결국 문스톤은…….’
율은 대충 그린 천공대륙의 지도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바로 여기! 중심에 존재하는 이 도시의 중앙… 이 중앙에 존재한다.’
율이 손가락으로 짚어낸 곳은 그냥 도시를 가로지르는 중앙대로의 한가운데일 뿐이었다.
하지만 율은 이곳이야말로 문스톤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상에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율이 의심하는 곳은 바로 지하였다.
문제는 이 지하에 문스톤이 있다는 건 그곳에 천공 신전도 있다는 건데… 도대체 어떻게 천공 신전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지 감히 잡히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 근처를 아무리 살펴봐도 특별한 통로 같은 건 없었다. 그렇다면 통로는 다른 곳에 있는 걸까?”
던전 마스터 브루노의 영혼을 불러내 직접 찾아보기도 했고, 브루노의 영혼을 그림자 하인에 주입시켜 찾아보게 시키기도 했었다.
하지만 통로나 특이한 장치 같은 건 찾을 수 없었다.
율은 다시 손가락을 떼고 좀 더 넓게 영역을 그려보았다.
천공 신전의 크기를 더 크게 유추하고 어디까지 살펴볼지를 생각해보았다.
‘혹시… 이 도시 전체가 천공 신전 위에 세워진 건 아닐까?’
갑자기 문득 드는 생각.
‘그러고 보니 이 도시는 천공대륙에서 가장 먼저 생겨난 도시였다. 아! 그럼 최초의 도시는 어느 정도 크기였지?’
율은 뭔가 실마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도시의 중앙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율.
그다지 크지 않은 중앙 도서관이라 이미 모든 책들을 살펴본 후였지만 분명 그 중에서 옛 도시의 풍경 같은 걸 그려놓은 책을 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계획되어 만들어진 도시의 모양! 내가 왜 이걸 놓쳤었지? 분명해! 이 도시는 천공 신전을 감추기 위해 세워진 계획 도시였어.”
최초 도시의 모양을 알아낸 율은 곧장 입구가 있을 만한 곳을 예상해보았다.
총 12곳이 가장 의심스러웠다.
‘차례대로 살펴보면 되겠군.’
율은 12곳의 의심 지역이 현재는 어떤 곳인지 파악한 후 시계방향으로 돌며 차례대로 살펴볼 계획을 세웠다.
점점 가까워지는 천공 신전.
이제 슬슬 동료들도 천괴 사냥을 끝낼 때가 되었으니 입구만 찾는다면 바로 천공 신전 공략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12곳의 의심 지역.
그곳에 천공 신전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숨겨져 있다면 무조건 찾을 자신이 있었다.
던전 마스터 브루노의 능력이라면 이미 수많은 수련을 통해 거의 80% 이상을 낼 수 있었기에… 여차하면 거의 100%에 가깝게 낼 수 있도록 브루노의 영혼을 그림자 하인에 주입시킬 수도 있었기 때문에 분명히 찾을 수 있었다.
* * *
12곳의 의심 지역 중 정확히 9번째 의심 지역에서 묘한 장소를 하나 찾아냈다.
브루노의 힘을 빌려 찾아낸 그 장소는 바로 지하묘지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지하묘지가 보통 지하묘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숨겨진 AA급 던전 천공의 지하묘지.
이것이 그 묘지의 정확한 명칭이었다.
냄새가 아주 심하게 나고 있었다. 이곳이 입구일 가능성은 거의 90%에 가깝게 올라갔다.
율은 혹시 몰라 다른 의심 지역들도 모두 살펴봤지만 특별한 게 나온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
결국 율은 이곳을 공략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혼자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AA급 던전이라면 S급 던전의 바로 아래 등급이었다.
거기에 숨겨진 던전들은 보통 한 등급 정도 위로 쳐주는 게 정설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거의 S급 던전의 난이도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었다.
현재 검마노에서 S급 던전을 공략한 세력들은 로열패밀리가 유일했다.
비록 천공의 지하묘지가 정확히 S급은 아니었지만 거의 S급 던전과 비슷한 난이도를 지닌 최상급 던전이었다.
한마디로 극악의 난이도를 지닌 던전을 통과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고난이도 던전답지 않게 파티용 던전이라는 점이었다.
대부분의 던전들은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레이드나 파티 연합용 던전으로 규모 자체가 커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현재 발견되어 있는 S급 던전은 모두가 최고 규모인 대규모 레이드용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파티용 AA급 던전.
그것도 숨겨진 AA급 던전인 천공의 지하묘지는 매우 희귀한 던전이 틀림없었다.
물론 규모가 작다고 해서 난이도가 더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단지 한 번에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될 뿐이지 난이도는 규모가 큰 던전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어떤 의미에선 더 어려울 수도 있었다.
율과 그의 동료들.
한 파티를 구성하는 최대 숫자인 일곱에도 못 미치는 4명으로 이루어진 그들.
단순히 숫자로 봐서는 절대 이 천공의 지하묘지를 공략하지 못할 것 같았지만… 그건 정말 단순한 예상일뿐이었다.
진정한 실력은 머릿수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건 바로 율이 1대 섀도우 로드로부터 배웠던 것들 중 하나였다.
띠링, 숨겨진 비밀 던전 천공의 지하묘지에 처음으로 입장하셨습니다.
띠링, 숨겨진 비밀 던전에 처음으로 입장한 당신들에게 앞으로 일주일(게임시간)간 경험치 +20% 증가하고, 아이템 드랍 확률이 +50% 증가합니다. 또한 좀 더 고급 아이템이 드랍될 가능성이 +50% 증가됩니다.
띠링, 천공의 지하묘지 끝에 존재하는 푸른색 문을 찾는다면 당신은 꽁꽁 숨겨져 있던 천공대륙의 비밀을 알아낼 수도 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만 들어도 제대로 찾아온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희소식이 있었다.
“움직인다!”
놀랍게도 지금까지 멈춰 있던 영혼의 나침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침반의 바늘이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 방향이란 건가? 적어도 길을 찾는다고 고생할 필요는 없겠군.”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에 문스톤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는 얘기는 이 방향만 따라가면 푸른색 문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후딱 갈까?”
강풍은 벌써부터 투신창을 들어 몸을 풀고 있었다.
“잠깐. 일단 부딪쳐봐야 확실한 걸 알게 되겠지만… 일단 지하묘지라는 이름을 가진 던전인 이상, 유령이나 좀비 같은 언데드 계열의 몬스터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장비 세팅을 살짝 그쪽으로 맞춰놔.”
“흐흐, 이미 끝내 놨다.”
“저도 대 암흑용 장비 세팅 끝이요!”
강풍과 팔콘은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내놓았다. 그리고 엘리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가자!”
숨겨진 AA급 던전 천공의 지하묘지.
율 일행은 그 던전을 빠른 속도로 돌파할 생각이었다.
예상대로 던전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주로 언데드 계열의 몬스터들이었다.
그런데 좀 특이한 건 죄다 몬스터 특유의 검은 마기보단 푸르스름한 귀기(鬼氣)를 내뿜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죽음의 대륙에서 멀어지며 마기의 영향력이 약해지자 언데드 특유의 귀기가 크게 강성해진 느낌이었다.
덕분에 율 일행은 더 고생스럽게 놈들을 상대해야 했다.
마기의 영향력보다 귀기의 영향력이 더 커진 놈들은 지상의 언데드 몬스터들보다 더 물리 공격에 강한 내성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반대로 마법 공격에는 더 취약하게 되었지만 물리적인 공격 능력이 훨씬 더 강력한 율 일행에겐 조금 난감한 변화였다.
이런 변화는 율 일행을 고생스럽게 만들었지만 좌절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물리적인 공격력이 더 강력한 것뿐이지, 그들의 마법적 공격력이 약한 건 절대 아니었다.
특히 지금까지 수많은 모험을 하며 꾸준히 스킬과 아이템, 그리고 전투 경험까지 아주 높은 경지까지 끌어올린 그들은 진짜 강했다.
레벨이 350에 육박하는 일반 언데드형 몬스터들은 물론이고, 중간 중간 등장하는 350레벨의 준보스급 몬스터 역시 깔끔하게 요리했다.
거침없는 전진.
영혼의 나침반이라는 훌륭한 길 안내 도구가 있는 그들이었기에 그들의 전진에는 일말의 고민도 느껴지지 않았다.
강풍의 투신창에 갈라지는 스켈레톤 병사들.
엘리스의 주먹에 박살나는 좀비들.
팔콘의 단검에 찢겨나가는 고스트들.
율의 노래와 함께 신나게 앞으로 달려 나가는 세 사람의 움직임은 너무나 경쾌해 보였다.
맹호구연격(猛虎九連擊)!
콰드드드득!
강풍이 내뻗은 창이 아홉 개의 그림자를 만들며 동시에 아홉 마리의 호랑이를 만들어냈고, 그 호랑이들이 앞을 가로막았던 세 마리의 좀비 워리어들을 산산 조각내 버렸다.
아주 강력한 일격.
강풍이 자랑하는 맹호구연격은 거의 50%에 가까운 포스를 한 번에 소모했지만 대신 위력 하나는 확실히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강력한 기술이었다.
“끝인가?”
주변을 둘러보며 강풍이 중얼거렸다.
“그런 거 같은데요?”
팔콘도 같이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어.”
강풍과 팔콘이 끝났다고 생각한 그 순간, 엘리스가 갑자기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그녀의 손이 은빛으로 빛났다.
그녀가 착용하고 있던 ‘섬멸의 수갑’이 강한 은빛을 내뿜으며 낚아챈 것은 블랙 팬텀 한 마리였다.
키에에엑!
좀비 워리어들이 쓰러지는 동안 교묘하게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놈이었지만 엘리스의 초감각을 피할 수는 없었다.
퍼퍼퍼퍽!
이어지는 무차별적인 난타.
아무리 유령의 몸체를 지닌 블랙 팬텀이라고 해도 강력한 포스의 힘이 맺혀 있는 엘리스의 주먹엔 고스란히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얼핏 보면 엘리스가 그냥 마구 때리는 것 같지만 한 방, 한 방에 모두 피스트 오러가 맺혀 있는 매우 강력한 일격들이었다.
스르르.
결국 블랙 팬텀마저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이젠 진짜 끝이지?”
강풍의 물음에 엘리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그녀의 초감각에도 이상 징후가 포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적을 처치한 그들 앞에 놓여 있는 건 거대한 푸른색 문이었다.
그들은 천공의 지하묘지에 들어선 지 일주일(게임시간) 만에 드디어 이 푸른색 문 앞에 설 수 있었다.
“이 문이 천공 신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일까요?”
팔콘이 푸른색 문을 찬찬히 살펴보며 말했다.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지. 영혼의 나침반도 이미 이 문 안쪽을 가리키고 있는 이상, 이 문 뒤에는 천공 신전이 있을 가능성이 90% 이상이다.”
율이 품속에서 다시 한 번 영혼의 나침반을 꺼내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서 가보죠.”
“잠깐. 내가 먼저 혹시 함정 같은 게 있는지 조사해볼게.”
여기까지 와서 어이없게 당할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모를 위험에 대비하는 건 실력 있는 모험가의 기본 자세였다.
브루노의 영혼을 강림시켜 간단하게 조사를 끝낸 율은 푸른색 문에 아무런 장치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걸 확인했다.
“깨끗해.”
“흐흐~ 이거 기대되는걸. 숨겨진 AA급 던전으로 막아놓은 입구라… 절대 평범하지는 않겠군.”
“크으~ 이 떨림! 이거야말로 어떤 마약보다 중독성이 강한 거죠.”
강풍과 팔콘은 모험을 즐길 줄 알았다. 물론 율과 엘리스 역시 똑같은 감정이었다.
모험을 즐길 줄 알기에 지금까지 수많은 벽을 넘어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가자!”
율이 손을 뻗어 커다란 푸른색 문을 밀었다.
그그그긍!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는 푸른색 문.
문이 열리며 드디어 안쪽의 모습이 드러났다.
화려함의 극치!
온갖 화려한 보석들이 휘황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율 일행을 반겨주었다.
띠링, 축하드립니다. 숨겨진 AA급 던전 천공의 지하묘지를 통과해 천공대륙의 가장 비밀스럽고 신비한 장소인 천공 신전(SS급)을 찾아냈습니다.
띠링,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천공 신전의 문을 연 당신들에게 천공의 축복이라는 특별한 힘이 부여됩니다.
띠링, 단 이 힘은 천공 신전 안에서만 유효한 힘입니다.
띠링, 천공 신전은 감히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엄청난 난이도의 던전입니다. 부디 부여받은 특별한 힘을 이용해 위기를 벗어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띠링, 천공 신전에서 얻은 모든 보상은 천공 신전을 완전히 클리어해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클리어를 하지 못했을 시에는 모든 보상이 무(無)로 되돌아갑니다.
츠으으으으읏!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네 사람의 가슴에 푸른색 빛이 모여 들어 육각형과 원이 교차하는 기묘한 모양이 그려졌다.
[천공의 축복]<특수 버프>
: 신의 힘 중 일부분인 문스톤이 만들어낸 기적. 천공 신전에 들어선 파티원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 버프는 가히 사기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대단한 것이다.
소모에너지 : 없음
능력 : 생명력 7배 증가, 이능에너지 7배 증가, 모든 회복속도 5배 증가, 공격력 7배 증가, 방어력 7배 증가, 공격속도 4배 증가, 이동속도 4배 증가, 스킬 발동 시간 50% 감소, 스킬 성공 확률 4배 증가, 각종 보조 스킬 효과 4배 증가, 모든 저항력 4배 증가, 모든 친화력 3배 증가.
특이사항 : 오로지 천공 신전 안에서만 버프가 유지됨.
“이, 이게 뭐야?”
“헐… 이걸 버프라고 해야 하나요?”
“엄청나군.”
네 사람은 천공의 축복을 확인한 순간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단순한 버프가 아니었다.
이 축복 한 방이면 평범한 유저가 보스 몬스터만큼이나 강력해질 수 있었다.
이런 축복을 파티 전체에 걸어주었다.
도대체 천공 신전이 어떤 곳이기에 이런 너무나도 엄청난 파티 축복을 걸어주는 것일까?
“지금 우리가 얼마나 강해진 거지?”
“이 정도라면 진짜 전설의 드래곤도 잡을 수 있겠는데요?”
“그건 오버다. 드래곤은 최소 두 개의 레이드 팀이 연합을 해야 도전이 가능하다고 소문난 최상위급 몬스터 아니냐. 두 개의 레이드 팀이라면 그 인원만 56명이다. 우리가 아무리 이 황당한 버프를 받았다고 해도 56명이 힘을 합친 것에는 좀 부족하지.”
“그런가? 어쨌든 어지간한 놈들은 그냥 한 방에 날려버릴 수는 있을 것 같은데.”
강풍은 몸 안에서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힘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어지간한 놈들이 나온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이런 버프를 내려준 것 보니 절대 어지간한 놈들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율은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축복을 내려줬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시스템 메시지에도 분명 위기라는 말이 있었다.
그 얘긴 곧… 자신들의 상황이 결코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절대 평범한 곳이 아니다!’
율은 상황을 절대 낙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더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위험요소를 찾았다.
바로 그때!
그의 예상대로 첫 번째 위험요소가 나타났다.
띠링, 아주 먼 옛날 천공 신전에 끌려 들어와 갇혔던 몬스터 트윈 헤드 오우거 무리(20마리)가 등장합니다.
띠링, 과거 죽음의 군단에서도 돌격대장 역할을 수행했던 놈들은 아주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다 방금 깨어났습니다. 흉포한 놈들이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등장한 트윈 헤드 오우거 20마리.
트윈 헤드 오우거라면 레벨 350의 준보스급 몬스터이다. 그런데 그런 놈들이 무려 20마리나 동시에 등장했다.
“헐… 뭐냐?”
“그냥 오우거도 아니고 트윈 헤드 오우거가 20마리?”
“온다!”
놀라고 있을 틈도 없었다.
곧장 율 일행을 향해 돌진하는 20마리의 트윈 헤드 오우거!
그들의 눈에서 광기(狂氣)와 살기(殺氣)가 뒤섞여 뿜어져 나왔다.
“엘리스, 전방을 막아!”
율은 재빨리 묵현을 꺼내들었다.
진형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20마리의 트윈 헤드 오우거랑 싸우는 건 너무나 좋지 않았다.
아무리 대단한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어떤 위험이 또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최대한 피해를 줄일 필요가 있었다.
율은 가장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는 광역 메즈 효과가 있는 노래를 곧 부르기 시작했다.
주변으로 울려 퍼지는 ‘그림자를 밟으며’.
아주 짧은 노래가 빠르게 반복되며 점점 트윈 헤드 오우거들의 움직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사이 엘리스는 가장 선두에 있던 트윈 헤드 오우거와 마주쳤다.
그리고는 바로 그 오우거의 턱을 강하게 올려쳤다.
꽈광!
가뜩이나 강력한 그녀의 주먹이 천공의 축복으로 인해 거의 신화 속에 등장하는 전설의 거인 싸움꾼 헤르의 주먹과 비견될 정도로 강력해져 있었다.
물론 주먹질 한 방으로 대륙 전체를 울리게 만들었다는 헤르와 비교하기는 좀 무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만큼 엄청난 위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트윈 헤드 오우거가 그 주먹을 버텨내는 건 불가능했다.
크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떠올라 빙글 돌아버리는 트윈 헤드 오우거.
그 커다란 덩치가 너무 쉽게 공중에서 회전하고 있었다.
쿠쿠쿵!
너무나 쉽게, 그리고 너무나 처참하게 선두에 선 트윈 헤드 오우거가 쓰러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율이 부른 ‘그림자를 밟으며’의 효과가 증폭되어 빠르게 중복되었기 때문일까?
어쨌든 트윈 헤드 오우거들의 움직임이 거의 정지되다시피 느려졌다.
이건 당연히 기회였다.
그리고 강풍과 팔콘이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츠팟!
드드득!
허공을 가르는 커다란 창!
그 창이 트윈 헤드 오우거의 두 머리를 동시에 날려버렸다.
휘리릭!
퍼퍼퍽!
트윈 헤드 오우거 두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어 공중에 떠오른 그 순간 놀라운 움직임으로 또 한 마리의 트윈 헤드 오우거의 그림자로 스며든 팔콘이 단검 두 자루를 돌리며 등 뒤에 강렬한 일격을 꽂아 넣었다.
쿠쿠쿵!
깔끔하게 암살해 버린 팔콘.
준보스급 몬스터였던 트윈 헤드 오우거들은 너무나 쉽게 율 일행에게 무너지고 있었다.
“이거 진짜 완전 좋은데!”
“와우~ 뭐라도 다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온몸에 넘쳐흐르는 힘.
이 힘만 있다면 진짜 드래곤과도 싸워볼 수 있을 것 같을 정도였다.
“방심하지 마라. 이제 시작일 뿐이다.”
방심은 절대 금물이었다.
이제 그들은 겨우 천공의 신전 입구에 서 있을 뿐이었고, 트윈 헤드 오우거도 그런 그들을 맞이하는 첫 번째 상대일 뿐이었다.
* * *
“천공 신전이 열렸다고?”
유토피아의 긴급 호출을 받고 시스템 제어 공간으로 접속한 성진이 들어오자마자 황급히 물었다.
[예, 방금 전 천공 신전이 열렸습니다.]
“우리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군. 그들이 천공 신전을 여는 시기는 적어도 세 달(현실 시간)은 훨씬 후일 줄 알았는데… 흐음, 그녀의 반응은 어떤가? 정상적으로 그들을 천공 신전에 입장시켰나?”
[그녀의 반응은 매우 호의적입니다. 너무 호의적이라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그녀는 오로지 주신(主神)만 내릴 수 있는 최고 등급의 버프인 SG(Special God)급 축복을 그들에게 내렸습니다. 이 축복이라면 진짜로 천공 신전이 클리어될 수도 있습니다.]
“천공 신전이 벌써 클리어되면 문제가 생길 텐데… 왜 그녀는 그런 선택을 한 거지? 분명 밸런싱 붕괴는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일일 텐데? 그들이 천공 신전에 대한 어떤 퀘스트를 받았든지, 그건 모두 카오스 업데이트가 이루어져야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이벤트 퀘스트일 텐데.”
[아마도 그녀는 늦어지는 카오스 업데이트를 이 천공 신전 퀘스트를 이용해 완성시킬 작정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녀의 의도를 예측하지 못했지만, 방금 전 천공 신전에서의 일을 통해 확실히 그녀의 의도를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천공 신전이 클리어되고 천공대륙이 변화하여 결국 천공대륙의 존재가 모든 유저들에게 드러날 경우, 어쩔 수 없이 반강제적인 카오스 업데이트가 가능해진다는 점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강제적인 카오스 업데이트? 그게 가능한가?”
[90%의 확률로 가능합니다. 특히 천공대륙은 본래 카오스 업데이트 이후에 등장하는 메인 시나리오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 시나리오가 미리 공개된다면 모든 시스템은 자연스럽게 카오스 업데이트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크흠…….”
천공대륙 퀘스트가 생성됐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일이 꼬일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천공 신전은 절대 유저들이 클리어할 수 있는 수준의 던전이 아니었기에 설사 천공대륙에 오른 유저들이 천공 신전을 발견했다고 해도 곧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깨달을 것이라 생각했다.
천공 신전은 일종의 이벤트 던전이었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벤트로 클리어되는… 절대 정상적인 클리어가 불가능한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런 곳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클리어되려는 중이었다.
“하지만 천공 신전이라면 아무리 SG급의 버프를 받았다고 해도 유적들이 클리어하기는 무리가 있다. 그들이 천공 신전을 클리어할 가능성은 얼마나 되지?”
[현재로썬 4%입니다. 하지만 최초 버프를 받았을 땐 겨우 0.1%였던 것이 현재 3차 관문을 통과하며 확률이 급격하게 높아졌습니다.]
총 9개의 관문으로 이루어진 천공 신전.
뒤로 갈수록 어이없는 상대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절대 유저들은 이 관문을 모두 통과할 수 없었다. 아니, 없을 것이라 믿었다.
“추가적으로 그녀가 관여할 가능성은?”
[추가적인 관여는 너무나 큰 밸런싱 붕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그녀가 카오스 업데이트를 원한다고 해도 힘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4%라… 어쩔 수 없군. 일단 우리도 상황을 지켜보며 관망한다. 그녀가 추가로 개입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개입할 수 없다. 그저 천공 신전의 극악무도한 난이도를 믿을 수밖에 없다.”
[알겠습니다. 추가적인 상황 전개를 계속해서 보고하겠습니다.]
성진은 개입을 포기했다.
아니, 사실상 정상적인 플레이를 하는 그들의 모험에 개입을 하는 건 아무리 그가 검마노를 만든 장본인이라 할지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혹시라도 그녀가 추가적인 개입을 통해 정상적이지 않은 플레이를 만들어낸다면, 개입할 여지가 생길 수도 있지만 현재로썬 개일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었다.
‘처음부터 너무 AI들의 권한을 크게 만든 것일까? 아니야…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지금의 검마노가 있을 수 있던 것이지. 어쨌든 어떤 놈들인지 몰라도 엄청난 행운을 얻었군. SG버프라… 내가 만들어 놓은 것이지만 실제로 쓰일 것이라곤 생각하지도 못했거늘…….’
성진은 천천히 자리에 앉으며 웃었다.
천공대륙에 오를 때만 해도 무척 운이 좋은 녀석들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운이 좋다는 것만으로는 표현이 불가능했다.
“그저 밸런싱에 최대한 영향이 없는 것들을 얻기 바랄 수밖에 없는 건가…….”
천공 신전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들은 알까?
아니, 천공 신전이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진실을 알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진짜 사상 초유의 운을 잡은 대단한 이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본래 이벤트로 진행되었어야 할 퀘스트.
하지만 몇 가지 일이 서로 뒤엉키며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았다.
대신 더 엄청난 일이 발생했다.
“결국 이 모든 게 운명인가?”
성진은 작게 웃었다.
애초에 ‘운명’이란 단어는 검마노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다.
그렇기에 그는 이렇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