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검은 용의 날개
“혈마대? 그런 녀석들도 있었나?”
황금색 갑옷을 입고 황금색 검을 차고 있는 남자.
유달리 황금을 좋아해 아예 자신의 길드 이름도 황금성(黃金城)이라고 정했다.
그 황금성을 주축으로 만든 하나의 라인.
그 라인의 이름이 골든라인이었다.
검마노에 존재하는 최강의 10대 길드인 로열패밀리.
골든라인은 그 중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골든라인의 총수 황금공자가 자신의 오른팔이자 현실에서도 총괄 비서 역할을 하고 있는 레르디에게 물었다.
“전에 길드 재정을 두 배로 늘리기로 결정하고 잡아서 개 목걸이를 채운 양아치 길드 중 하나예요.”
“아~ 그때 양아치들 중 하나였군. 근데 걔들이 왜? 상납금을 안 내기라도 해?”
“아니요, 그래도 양아치치고는 제법 수완이 좋아서 상납금을 잘 바쳐왔는데… 이번에 어떤 뜨내기들한테 당했나 봐요. 우리한테 걔들 좀 찾아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풉, 완전 병신들 아냐? 뜨내기들한테 당할 정도의 병신들을 굳이 데리고 있어야 해? 그냥 쓸어버리고 끝내지.”
“저도 처음엔 그러려고 했는데 살짝 궁금해서 알아보니까 당한 방법이 제법 체계적이더라고요. 그래서 이것저것 더 자세히 알아보았더니 애초에 양아치들이 상대할 이들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호오~ 그래? 그럼 그놈들이 지금 우리를 건드렸다고 해석해야 하는 건가?”
“아무래도 다른 양아치들이 보는 시선도 있고 하니 이번엔 우리가 좀 나서서 해결해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아직 양아치들한테서 뜯어내야 할 돈이 많으니까 당근을 던져 준다고 생각하죠.”
“흐흐흐, 당근이 아주 중요하긴 하지. 뭐 이런 건 굳이 보고하지 말고 네 선에서 알아서 처리해라. 난 요즘 ‘태양의 미궁’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네, 적당한 애들을 골라서 놈들을 처리하라고 하겠습니다.”
“그래, 그 문제는 그렇게 네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고… 도대체 고대 문자를 해석할 수 있는 전문가는 언제 구해지는 거야? 가뜩이나 진도도 못 나가는데 기껏 발견한 힌트도 해석을 못하니까 이거 분위기가 영~ 다운되잖아.”
황금공자가 잔뜩 짜증난 표정을 지었다.
“지금 해석할 사람을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 문자가 고대에 쓰이던 룬어의 일종이라고 알려져 있긴 한데… 거의 5천 년 전에나 쓰이던 문자라서 제대로 알고 있는 이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 현자라고 불리는 NPC들 많잖아. 전부 찾아서 의뢰해봐.”
“현자들도 정확하게 아는 이들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일단 현자라고 불리는 이들한테는 전부 의뢰하고 있는 중입니다.”
레르디가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황금공자의 스타일이 원래 모든 일을 일사천리로 빠르게 진행시키는 경향이 있었기에 이렇게 막히는 부분이 지속되면 정말 크게 화를 낼 수도 있었다.
“빨리 해야 한다. 정 안 되면 그냥 힌트 같은 건 무시하고 지금까지 했던 방식으로라도 뚫어야 해. 천외천(天外天) 쪽 놈들이 얼음의 미궁을 완전히 정복하고 거들먹거렸던 걸 생각하면 내가 아주 이가 갈린다. 이 황금공자가 그깟 S급 던전 하나 공략 못할 거 같아?”
황금공자가 로열패밀리 중에서도 가장 싫어하는 곳이 바로 천외천이었다.
천외천의 천주 검신과 황금공자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특히 그들은 로열패밀리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잦은 충돌을 해왔던 이들이다.
천외천의 중심이 되는 천검맹과 골든라인의 중심이 되는 황금성은 같은 대륙에서 서로 영역이 맞닿아 있었기에 당연히 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그 충돌이 계속되다 보니 사이는 완전히 나빠진 상태였다.
견원지간(犬猿之間)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그들.
그렇기 때문에 황금공자는 천외천에는 절대 질 수 없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 마음가짐은 천외천의 검신도 가지고 있었다.
“더 열심히 알아보겠습니다.”
“그래, 확실히 좀 알아봐라. 내가 체면도 생각하지 않고 양아치들을 끌어들였던 이유 자체가 이 ‘태양의 미궁’ 때문이란 걸 알잖아. 검마노의 난공불락이라 불리는 S급 던전… 그걸 검마노에서 네 번째로 우리가 공략하면 되는 거야. 알았지?”
지금까지 단 세 개의 S급 던전만 공략되었다.
수많은 S급 던전이 있었건만 그 엄청난 난이도는 유저들의 접근을 불허했다.
S급 던전 위에는 SS급도 있었는데… 그건 아예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던전이었다.
어쨌든 황금공자는 경쟁심 때문이라도 네 번째 S급 던전 공략의 영광은 자신이 가져갈 생각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깊숙이 고개를 숙이는 레르디.
그는 다소 골치가 아팠지만 일단 황금공자의 스타일대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결국 돈이다. 골드로 밀어붙이면 안 되는 건 없다!”
검마노 상권의 50%를 장악하고 있는 골든라인.
그들의 힘은 그들이 가진 골드에서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번에도 역시 당연히 그 골드로 모든 일을 해결할 생각이었다.
* * *
율과 엘리스, 그리고 강풍과 팔콘.
이 네 명은 현재 검은 용의 날개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검은 용의 날개는 검은 대륙 남단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 지역 자체는 유명했지만 등급이 상당히 높은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곳이라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었다.
“근데 검은 용의 날개는 너무 넓은데 정확히 어디쯤인지 어떻게 찾지?”
거인의 흉터나 불사조의 무덤은 넓이가 그리 넓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장소만 찾고 나면 그 다음 일은 수월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검은 용의 날개는 강풍의 말처럼 너무 넓어서 문제가 되었다.
“일단 전체적으로 한 바퀴 돌면서 영혼의 나침반이 작동하는지 살펴봐야겠다.”
정확한 답을 모르면 일단 부딪쳐 보는 게 맞았다.
“흐음, 이 지역에 검은 와이번이 종종 나타난다는데 몸 한 번 제대로 풀겠네.”
강풍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검은 와이번은 상당히 강력한 최상급 몬스터였다.
평균레벨도 350정도였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공격하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굉장히 힘든 놈이었다.
검은 용의 날개는 사냥터로만 봤을 땐 꽤 괜찮은 곳이었으나 유저들이 잘 찾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검은 와이번 때문이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분명 이 지역에 출몰을 했고, 자칫 좋지 않은 타이밍에 놈이 나타나면 아무리 잘 짜인 만 레벨 파티라고 해도 한 방에 훅~ 갈 수가 있었다.
“검은 와이번은 최대한 조심해야지.”
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오오~ 검은 와이번! 캬아, 또 형들하고 엘리스 누나가 제대로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겠네요. 이번엔 진짜 동영상 좀 찍어서 올리면 안 돼요? 전 강풍 형이 그 소문의 투신이라는 것도 저번에 알았는데… 투신의 필드 사냥 동영상이라면 아주 난리가 날 거예요.”
“뭐, 난 상관없는데… 저기 저 녀석들이 너무 싫어하잖아. 나만 나오게 찍기는 힘들지 않냐?”
강풍은 동영상에 찍히는 것에 아무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율과 엘리스였다.
“그건 편집을 하…….”
“팔콘아, 그만해라. 그 문제는 안 된다고 내가 분명히 말했지. 나중에 강풍이랑 둘 이성 동영상 찍어라.”
“크으… 네… 형.”
팔콘이 울상을 지으며 대답했지만 율은 어쩔 수가 없었다. 자신도 자신이었고 엘리스도 동영상에 찍히는 걸 너무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일단 검은 용의 날개에 가기 전에 있는 마을에 들러서 라이프 스톤에 등록도 하고, 이런저런 준비도 끝내고 가도록 하자.”
검은 용의 날개 안에도 개척마을이 몇 개 정도는 있었지만 라이프 스톤이 존재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기에 그나마 조금 큰 마을에 들렀다가 가야 했다.
“이번에도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는 여정이니까 모두 힘내서 한번 가보자.”
불사조의 무덤 때를 생각해보면 일단 대강이라도 위치를 아는 게 얼마나 큰 건지 잘 알고 있었다.
범위가 넓으면 어떤가?
율 일행들은 아예 어딘지 모르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은 현재까지의 생각일 뿐이었다.
율 일행은 마을에 들러 준비를 끝내고 검은 용의 날개에 진입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수색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그저 이렇게 찾다보면 금방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영혼의 나침반을 어느 정도 믿고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 큰 착각이었다.
15일(게임시간).
무려 보름 동안 검은 용의 날개 지역을 전부 돌았건만 영혼의 나침반은 작동하지 않았다.
이쯤 되자 또다시 불사조의 무덤 때가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그때처럼 뭔가 소울 스톤의 조각을 봉인하고 있어서 나침반이 작동하지 않는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번엔 아예 어디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차라리 불사조의 무덤은 불사조의 무덤이란 한 가지 키워드가 존재했기에 그걸 찾기가 힘들어서 그랬지 찾았을 때는 어느 정도 답이 보인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힌트도 없었다.
그저 검은 용의 날개란 말뿐이었는데 그곳은 지금 전부 뒤져본 상태였다.
갑자기 길을 가다가 큰 벽에 부딪친 것 같은 상황이었다.
“우리가 뭘 놓치고 있는 걸까?”
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한 번 퀘스트 내용을 살펴보았지만 아무리 봐도 특별한 무언가가 보이지는 않았다.
“혹시 저번처럼 어떤 곳에 숨겨져 있는 거 아냐?”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중요한 건 그렇다고 해도 그게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찾기가 힘들다는 게 문제지.”
“형, 그럼 좀 특이한 지형 같은 곳을 다시 한 번 세밀하게 살펴볼까요?”
“내 생각도 그 방법밖에 없는 것 같은데… 어이없게도 이 검은 용의 날개 지역엔 특이한 지형이나 특별한 구조물 같은 게 전혀 없어. 그냥 밋밋한 들판이 전부야. 직접 돌아봐서 잘 알잖아. 우리가 돌 때도 그저 들판이 전부였어. 가끔 있는 바위들? 그건 특별하다고 말하기도 힘든 것들이었잖아.”
율의 말은 사실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넓은 지역에 특이한 지형이 하나도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검은 용의 날개는 너무나 평범했다.
“휴우~ 어렵다, 어려워.”
강풍이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일단 뭔가 좋은 생각이 날 때까지는 이 근처에서 머물며 기다려보자.”
무작정 움직인다고 방법이 나올 것 같지 않았기에 우선 근처에 베이스캠프부터 만들고 차분히 생각을 정리할 의도였다.
“팔콘아, 우린 검은 오크나 잡으러 가자.”
“네, 형님.”
검은 오크는 레벨 280~290 수준의 몬스터였다. 오크치고는 상당히 높은 레벨이었기에 당연히 어느 정도 강했지만 강풍과 팔콘이라면 손쉽게 잡을 수 있는 몬스터였다.
유저의 레벨과 몬스터의 레벨을 같은 수준으로 보면 안 된다.
유저는 몬스터처럼 레벨로 힘이 한정되는 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동 레벨이라면 유저가 더 강한 게 사실이었다.
어쨌든 검은 오크는 그 레벨 만큼이나 쓸 만한 아이템을 많이 떨어트렸기 때문에 강풍과 팔콘은 몸도 풀면서 돈도 벌 생각이었다.
물론 거기에 동영상 욕심도 포함되어 있었다.
강풍도 은근히 팔콘의 동영상 촬영을 즐기고 있었다.
율도 그렇게 둘이 동영상을 찍는 건 굳이 말릴 생각이 없었다.
강풍과 팔콘이 자리에서 일어나 검은 오크를 사냥하러 간 사이에도 율은 제자리에서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 이 지역에 우리가 찾는 답이 있다. 그걸… 알아내야 해.’
퀘스트 내용이 틀렸을 리는 없다. 그렇단 얘기는 이 지역 어딘가에 소울 스톤의 조각이 있는 게 확실했다.
‘검은 용의 날개… 이곳 지형이 어떻게 생겼지?’
율은 일단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기 시작했다.
지도를 펼치고 살펴보는 율.
지형은 마치 거대한 날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딱 그 부분만 들판이었고 나머지는 강과 바다 또는 숲이었다. 하지만 날개 모양 어디서도 특별하게 튀어 보이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 지형을 벗어날 리는 없어.’
검은 용의 날개 지역을 벗어난 곳에 존재할 가능성은 0%였기 때문에 강이나 숲, 바다 같은 건 모두 배제시켰다.
‘남은 건 결국 이 커다란 날개 모양의 들판인데… 흐음, 중앙에 뭐가 있지?’
이번엔 중앙을 살펴보았다.
중앙은 그저 넓은 들판에 큰 바위 몇 개가 듬성듬성 있었을 뿐이다.
당연히 이미 중앙에 대한 조사는 자세하게 한 상태였다.
‘없어. 너무나 평범해… 정말 너무 평범해…….’
율은 지도를 뚫어져라 보다가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넓은 지역에 이렇게 평범하게 이루어진 것 자체가 특별한 거다. 여긴 왜 이토록 평범한 거지?’
율은 생각을 전환했다.
평범한 게 문제가 아니라 평범한 게 힌트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뭘까? 뭐가 숨겨져 있는 걸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율은 그렇게 자신의 상상 속에 몰입했다.
그렇게 율이 몰입하고 있던 그 순간, 엘리스가 주변을 정리하며 지도를 보다가 지나가듯 작게 혼잣말을 했다.
“근데 검은 와이번들은 어디서 오는 거지?”
평소엔 말을 거의 하지 않던 그녀였지만 이것만큼은 정말 궁금했던 것이다.
율 일행도 두 번 정도 검은 와이번을 만났지만 놈들은 정말 갑자기 하늘에서 나타났다.
그녀가 보기엔 아무리 검은 와이번이 최상급 몬스터라고 해도 그렇게 느닷없이 나타나는 건 너무 이상했다.
가뜩이나 검은 와이번이 출몰한다고 해서 시야를 넓게 멀리 보며 주변을 꾸준히 살펴보았던 그녀였기에,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하늘에서 나타난 검은 와이번들은 의문투성이의 몬스터들이었다.
‘검은 와이번?’
그녀의 혼잣말을 들은 율은 순간 머릿속이 번쩍하고 빛났다.
‘그렇다. 이 근처에는 녀석들이 살 만한 곳이 없다.’
와이번들은 주로 높은 곳에 둥지를 틀고 살아간다. 그런데 분명 이 근처에는 높은 지형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와이번이 싫어하는 물이나 숲이 전부였다.
“검은 와이번… 놈들이 답이었나?”
율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응?”
엘리스는 갑자기 율이 검은 와이번 얘기를 하자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엘리스, 고맙다.”
“으음?”
“네 말대로 검은 와이번 놈들이 어디서 오는 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아…….”
그때서야 그녀도 율이 뭔가 답을 찾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애들 부르자. 오늘부터는 검은 와이번을 전문적으로 잡아본다.”
일단 작은 실마리는 찾았다. 이제는 이 실마리를 조심스럽게 당기며 더 큰 실마리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 * *
나른한 오전.
특히나 밤새 무리를 한 이들한테는 더 나른할 수밖에 없는 오전이었다.
율은 오프라인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에 앉아 있었다.
오늘 수업은 ‘현실과 가상현실의 관계’였다.
재미있는 건 이 수업을 ‘검마노의 역사’ 시간에 같은 조가 된 4명이 전부 듣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또 다른 수업인 ‘가상현실의 구조’도 같이 듣고 있었다.
같은 조가 되고 나서야 서로 비슷한 수업을 듣는다는 걸 알게 된 그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슷한 곳에 앉게 되었고 또 그러다 보니 서로 어느 정도 얘기도 하며 친해지게 되었다.
친구?
아직은 친구라고 말하긴 좀 어려울지 몰라도 적어도 서로 말을 놓고 편하게 지내는 건 사실이었다.
“은주, 쟤는 도대체 밤에 무슨 일을 하기에 저리 계속 자는 걸까?”
손에서 게임기를 놓지 않아 게임 중독자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는 종우가 오늘도 역시 강의실에 들어오자마자 자리에 엎어져 자고 있는 구은주를 보며 얘기했다.
“야간 알바라도 하는 거 아냐?”
열심히 아령을 들며 몸의 근육을 키우던 호태가 아는 척을 했다.
호태는 큰 덩치와 우락부락한 근육으로 유명했다. 물론 너무 과도하게 키운 근육 때문에 호감보다 비호감으로 분류되었지만 어쨌든 몸은 정말 대단히 좋았다.
“아르바이트는 아닐걸. 밤새 검마노에 접속 중인 걸로 봐서는 게임을 너무 열심히 해서 그런 거 같아.”
강희가 안경을 추켜세우며 얘기했다.
율은 강희의 말에 한 표를 던졌다. 율이 보기에도 은주는 과도한 게임 플레이로 인한 피로감 때문에 현실에서 계속 잠을 자는 듯했다.
물론 율이나 강희, 종우, 호태도 은주만큼이나 게임을 플레이하는 건 사실이었지만 아무래도 은주는 다른 사람보다 잠이 좀 더 많은 것 같았다.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다들 진짜 열혈 게이머던데? 내가 접속했을 때 접속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더라. 근데 다들 레벨은 어느 정도야? 강희는 당연히 만 레벨일 것이고… 호태랑 율도 만 레벨이야?”
“만 레벨쯤이야~ 당연히 찍었지.”
호태가 슬쩍 웃으며 대답했다.
“아, 나도 간신히 만 레벨은 만들었다.”
엄살을 잔뜩 부리며 대답하는 율. 그는 굳이 모든 걸 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은주도 만 레벨일 가능성이 높네. 캬아~ 생각보다 우리 파티 대단하겠는데?”
진정한 검마노는 만 레벨부터였건만 종우는 마치 만 레벨이 끝인 것처럼 얘기했다.
‘적어도 상급 유저는 아니겠군.’
종우의 말을 들으며 율은 대충 종우의 수준을 유추할 수 있었다.
“우리 언제 한번 만나자. 다들 온라인에서도 수업을 들을 거 아냐? 쥬신대에서 만나면 딱 되겠네.”
“난 지금 온라인 쪽은 휴학 중인데.”
강희의 경우는 휴학이라기보다는 조기에 모든 수업 과정을 끝내고 졸업식만 유보한 상태라고 보는 게 옳았다.
“하긴 나도 지금 쥬신대 있는데… 생각난 김에 우리는 오늘밤에 만날까?”
호태는 쥬신대에 있었다. 호태와 종우는 당장이라도 만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도 지금은 휴학 중이라…….”
율은 휴학 얘기를 하며 잠시 자신의 휴학 기간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조만간 학교에도 다시 들러 시험을 보고 휴학을 연장하든지, 아니면… 오프라인 수업으로 대체하겠다고 하든지 해야겠네.’
오프라인 수업을 들으며 가장 놀란 점은 온라인 수업보다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오히려 지장을 덜 준다는 것이었다.
특히 학교에서도 오프라인 수업을 적극 권장하며 보너스 학점까지 주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진지하게 오프라인 쪽으로 수업을 몰아서 듣는 걸 고려하고 있었다.
“다들 겁나 바쁘네. 이래서 우리 과제 퀘스트는 하겠어?”
“아직 많이 남았잖아. 그리고 우리에겐 최고의 흑마법사 흑월이 있지 않냐! 강희만 믿고 따라가자고~ 그럼 A+는 우리 것이니까.”
호태가 강희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즐겁게 얘기했다.
“맞아, 우리의 희망 강희가 있었지. 잘 부탁한다. 저번에 얘기했던 그 동생이 너를 꼭 만나고 싶다고 하더라. 네가 우상이래. 나중에 그 동생을 소개시켜줄 테니 잘 좀 부탁해.”
“어, 어어…….”
강희는 호태와 종우가 너무 자신을 띄워주자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율은 그런 호태와 종우를 보며 속으로 웃었다.
‘과제 내용을 보긴 한 걸까? 조원들의 협동심도 점수에 반영된다고 했는데… 저래서야 점수가 좋게 나오긴 글렀군.’
애초에 강희가 흑월이란 걸 알게 되면서 어느 정도 예상했던 문제였다.
딱히 해결 방법은 없었다. 그저 점수가 너무 낮게만 나오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