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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비주류들의 위기 (49/95)

9. 비주류들의 위기

퀘스트하러 갔다가 팔콘이란 혹을 달고 온 율.

물론 팔콘은 스스로를 혹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돌아오는 내내 시끄럽게 떠들며 율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그의 나이는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

적어도 20대 중반은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건만 고작 19세였다.

이번에 대학교에 올라간다는 그는 율에게 중학교 때부터 검마노와 동영상 편집에 푹 빠져 있었다고 했다.

그는 거침없이 율을 형이라 부르며 넉살 좋게 다가왔다.

강풍과는 또 다른 성격.

율은 이런 성격의 인물과 가까이 지내본 적이 없었기에 돌아오는 내내 계속 당황스럽기만 했다.

당황스러워도 일단 자신이 동행을 허락한 이상 떨쳐버릴 수도 없었다.

그나마 레논에 들어와 잠깐 쉬기로 하면서 간신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나저나 걱정이네. 언제까지 같이 다녀야 하는 거지?”

그동안 계속 팔콘의 얘기를 들어주다 보니 팔콘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확실히 나쁜 녀석은 아니었다.

조금(?) 수다스러운 게 문제였지 실력으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동료가 되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진짜 동료로 대하긴 좀 힘들었다. 마치 예전에 강풍이 처음에 억지를 부리며 따라왔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래, 풍이 때랑 똑같이 생각하자.”

강풍이 따라왔을 때 율과 엘리스는 그가 떨어져나가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결국 그들은 강풍을 동료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팔콘도 그런 식으로 대할 생각이었다.

떨어져나가면 나가는 거고 아니면 또 아닌 거고… 단지 그놈의 동영상은 좀 어떻게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

율은 일단 그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팔콘의 눈치를 보느라 한 번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혼돈의 결정을 꺼내 살펴보았다.

모습은 여전히 묵현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분명 뭔가 달라진 게 있었다.

혼돈의 결정-[섀도우 문]

: 신은 인간의 탐욕은 자신이 직접 신력(神力)을 담아 내린 신의 조각들을 어둠으로 물들이고 있다고 판단했다. 해서… 신은 혼돈의 힘을 빌려 자신이 세상에 내린 모든 조각을 회수하기로 결정했다.

등급 : 등급 외

능력 : 내구도[무한] 스킬성공률+40%, 이동속도+25%, 비전투 시 소울회복속도+100%.

추가능력 : 현존하는 모든 종류의 무기로 변형이 가능함.

특수능력 : 없음

상태 : 현악기

귀속상태 : 선율 아폴론에게 귀속됨.

특이사항 : 총 네 가지의 봉인(封印)을 해제할 수 있다. 봉인 해제 시 특별한 힘이 추가된다.[해제된 봉인 1]

조각파괴 : 무(無)

조각일 때보다 스킬성공률이 +20% 더 오르고 이동속도도 +10%로 늘어났다.

거기에 추가로 비전투 시 소울회복 속도도 두 배로 증가되었다.

옵션은 분명 좋아졌다.

이 정도라면 거의 엘리트급 중에서도 최상급에 해당되는 옵션이었다.

“그러니까 다른 조각을 흡수하면 점점 발전한다는 그 얘기인가?”

대충은 이해되었다.

또한 조각들은 조각끼리 서로 만났을 때 서로를 끌어당기며 운다는 것도 알았다.

특히 혼돈의 조각[밤의 비수]를 흡수하며 생긴 퀘스트는 그를 매우 놀라게 했다.

Quest[혼돈의 열쇠]

: 혼돈의 조각을 가진 당신은 당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합니다. 신이 내린 그 혼돈의 권능을 이용해 다른 신의 조각을 모아라! 종류를 무관하고 신의 조각을 5개 모으는 자는 혼돈의 열쇠를 만들어 세상을 바꿀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보상 : ?????

진행 과정 : 1차 봉인 해제

기간 : 무기한

퀘스트 생성 조건 : 혼돈의 조각 소유, 레벨 250이상, 다른 조각을 1개 이상 흡수

무려 스페셜 메인 퀘스트였다.

그냥 메인 퀘스트만 해도 대단한데 스페셜 메인이었으니… 한마디로 세상을 바꾸는 퀘스트라는 뜻이었다.

“신의 조각이라…….”

신의 조각이라면 이미 세상에 많이 퍼져 있었다.

영혼의 조각, 도전의 조각, 정복의 조각.

총 18개의 조각.

정확히 누가, 어떤 조각을 가졌는지는 모른다. 단지 서로 이 조각을 차지하기 위해 엄청난 경쟁이 있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결국 이건 정체된 물을 흐르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퀘스트였어.”

이제야 율은 왜 이런 퀘스트가 생겨난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도전의 조각 때부터 조금씩 정체되기 시작했던 흐름이 결국 정복의 조각에 와서는 완전히 막혀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 막힌 흐름을 뚫기 위해 다시 투입된 것이 혼돈의 조각이었다.

이걸 생각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조금만 생각해도 혼돈의 조각이 세상에 등장한 이유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나쁘지 않네.”

오히려 좋았다.

스페셜 메인 퀘스트의 보상이 뭔지는 모르지만 세상을 바꿀 힘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으니, 율의 입장에선 전혀 손해 볼 게 없었다.

단지 혹시라도 자신이 오히려 빼앗기기라도 하면 그게 좀 큰일이었다.

“뭐, 지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

요즘 들어 부쩍, 특히 스콜피온 킹을 혼자 잡아내며 큰 자신감을 얻은 율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누구든지 이길 수 있다고 자랑하고 다닐 생각은 없었지만 적어도 어디 가서 지고 다닐 생각도 없는 그였다.

“그나저나 중요 퀘스트가 하나 더 늘었네.”

정말 어지간한 서브 퀘스트들은 전부 무시했음에도 율의 퀘스트 창은 늘 복잡했다.

소울 시티를 찾는 히든 퀘스트와 세계수를 부활시키는 히든 퀘스트. 그리고 이번에 받은 혼돈의 열쇠를 만드는 스페셜 메인 퀘스트까지…….

남들은 한 개라도 받고 싶어 하는 퀘스트를 무려 3개나 가지고, 또 동시에 해결해 가고 있는 율은 분명 보통 유저가 아니었다.

“어차피 이건 뭘 특별히 찾아가야 하는 게 아니니까 차분히 생각하자.”

당장 조각의 소유자를 찾아가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조각의 소유자를 정확히 아는 것도 불가능했고, 설사 재수가 좋아 어떻게 알아낸다고 해도 조각 자체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능력이 좋은지 알 수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덤빌 수가 없었다.

즉, 그냥 마음 편하게 먹고 때를 기다리는 게 훨씬 좋았다.

“바뀌는 건 없다.”

비록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고 그 일로 인해 뭔가 해야 할 일이 생겼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계획대로 검은 대륙에 갈 것이고, 그곳에서 검은 용의 날개를 찾아갈 것이다.

율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이 결정이 단 10분도 되지 않아 번복될 것이란 것을…….

벌떡.

율이 자리를 박차며 일어났다.

객잔의 한쪽 구석에 앉아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오랜 지인들인 비주류 파티원들이 보낸 편지를 읽고 있던 그가 갑자기 두 눈을 크게 뜨며 일어난 이유는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바로 편지 내용.

율을 그토록 놀라게 한 편지의 내용은 의외로 간단했다. 비주류 파티가 검은 대륙의 어둠의 숲이란 곳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있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은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적어놨지만 율이 보기엔 전혀 괜찮은 상황이 아니었다.

비주류 파티는 어둠의 숲 한가운데 있는 여명의 마을에 갇혀 아예 숲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같은 유저들이었다.

일명 무한PK라고도 불리는 더러운 PK에 휘말려 다른 몇몇 유저들과 함께 여명의 마을에 완전히 갇혀 버린 것이었다.

어둠의 숲은 자유PK지역이었다. 그리고 근처에 라이프 스톤이 있는 곳은 오로지 폐허가 되어 거의 마을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숲 중앙에 있는 여명의 마을뿐이었다.

몇몇 악질 유저들은 그걸 이용해 유저들을 어둠의 숲에 가두어놓고 계속 PK를 하곤 했다.

그렇게 계속 죽이고 또 죽이면 결국 모든 장비를 다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기에, 무한PK에 한번 제대로 걸리면 진짜 게임을 접는 게 더 나을 정도로 시달릴 수 있었다.

그곳에서 빠져나올 유일한 방법은 아예 오랜 시간동안 접속을 안 하고 버티는 것뿐이었다.

물론 보통 무한PK는 최소 세 달(게임시간) 가까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현실 시간으로 한 달 정도는 잠수를 타야 한다는 얘기였다.

더 결정적인 건 무한PK를 하는 악질적인 놈들은 보통의 유저들을 무한PK가 이루어지고 있는 장소로 유인한 다음, 여명의 마을에 그들을 가두어 놓고 일을 시작하기 때문에 사실상 한 달을 기다린다고 해서 무한PK에서 자유로워지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나마 기대할 만한 것은 주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유저들의 자정 활동뿐이었다.

특히, 대형 길드를 위주로 이루어지는 이 자정 활동은 무한PK에 대한 제보를 받고 그걸 막기 위해 많은 유저들이 연합한 후 그 지역을 점령해 피해 유저들을 풀어주는 행동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특히 요즘은 무한PK를 하는 무리들도 보다 조직적이고 대형화되었기 때문에 더욱 유저들의 자정 활동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이것만으로도 비주류 파티가 상당한 위기에 빠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 이 편지를 쓰는 시간에도 생명의 위협을 받았으리라.

“…가야겠네.”

율이 편지를 조용히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뭘 생각하고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친구라고… 동료라고 생각했던 이들이었다.

당연히 도우러가는 게 맞았다.

율은 일단 엘리스와 강풍을 기다렸다. 덤으로 팔콘도 기다렸다.

굳이 그들과 같이 그곳으로 갈 생각은 없었다.

어떤 위험이 기다릴지 모르는 곳이었기에 그들을 제외하고 혼자 가는 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율의 생각일 뿐이었다.

늘 그렇듯 율의 이런 종류의 생각은 아주 높은 확률로 잘 빗나갔다.

“어딜 혼자가! 당연히 같이 가야지.”

“나도 간다.”

“어어, 전 무조건 갑니다. 율 형님이 가시는 곳이라면 설사 그곳이 지옥이라고 해도 따라갑니다. 아시잖아요.”

강풍과 엘리스, 그리고 팔콘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럴 필요 없다. 내가 나중에 합류…….”

“그만! 더 얘기할 필요 없다. 친구의 친구는 당연히 친구다. 그리고 동료의 동료도 당연히 동료고. 절대 혼자 못 보낸다.”

“캬아~ 풍 형님이 말씀하난 기가 막히게 잘하시네.”

풍의 선언과 팔콘의 추임새.

만난 지 겨우 10분밖에 안됐으면서 둘은 쿵짝이 제법 잘 맞았다.

강풍이 그렇게까지 얘기하자 율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얘기해주는 그들이 고마워졌다.

“알았다. 그럼 사양하지 않으마.”

이럴 땐 말없이 받아주는 게 옳다는 걸 느낀 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좋아~ 바로 출발하자!”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고, 사안이 사안인지라 곧장 출발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결국 그들은 곧 검은 대륙을 향해 출발했다.

* * *

“하아~ 저기가 캠퍼스인가?”

학교가 멀리 보이자 율이 작게 중얼거렸다.

원래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던 그였지만 이번 오프라인 수업은 빠질 수가 없었다.

사실 예전의 그라면 어쩜 학교를 포기하면 포기했지 오프라인 수업 따위에는 참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변했다.

더 이상 사람을 만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물론 아직도 약간은 낯을 가리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스스로 음지를 찾아 숨어 들어가지는 않았다.

단지 그냥 평범한 사람들처럼 쑥스러움을 좀 탈 뿐이었다.

학교에 도착한 그는 일단 오리엔테이션이 열리고 있는 대강당에 들어가 앉았다.

시대에 안 맞게 구식 오리엔테이션까지 치러가며 이렇게 요란하게 학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들이었다.

덕분에 율은 아주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겨운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후 율은 자신이 속한 D-4 그룹의 학생들과 함께 한 강의실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간단하게 앞으로 오프라인 수업이 어떻게 진행될지 들은 후 곧바로 자신의 수업 시간표를 받을 수 있었다.

율은 다행히 수강신청을 했던 대로 ‘현실과 가상현실의 관계’와 ‘검마노(검과 마법의 노래)의 역사’ 그리고 ‘가상현실의 구조’까지 세 과목을 듣게 되었다.

수업이 있는 날은 수, 목, 금 이렇게 3일이었다.

하지만 짜증나는 게 하나 더 추가되었다.

‘가상현실 게임 소양교육’이라는 어이없는 과목이 강제로 1시간 추가되었다.

정부에서 압박이 들어와 필수 수업으로 추가되었다고 하는 그 과목은 일종의 안전 교육 같은 것이었다.

모든 학생들이 같이 듣는 간단한 안전 교육.

덕분에 율은 금요일에 ‘가상현실의 구조’와 함께 5시간이나 수업을 들어야 했다.

‘휴~ 그래도 이 정도로 끝나는 게 어디야.’

율은 너무 안 좋게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더 안 좋아질 수 있었던 것을 그나마 선방했다고 느꼈다.

들리는 소문엔 원래는 최소 수강 시간이 16시간으로 늘어날 수도 있었다고 했는데… 아주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니 이걸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대충 등교 첫날을 이렇게 마무리한 율은 곧장 다시 집을 향해 출발했다.

그가 지나가는 길에 벌써 몇몇 동아리들이 만들어져 오가는 학생들에게 가입을 권하고 있었다.

아마도 기존에 존재하는 쥬신대 소속의 각종 길드들이 오프라인에서도 가입 활동을 벌이는 것 같았다.

율은 당연히 자신을 잡아끄는 이들을 가뿐히 무시하고 집으로 곧장 돌아왔다.

그리고는 급하게 검마노에 접속했다.

시간이 없어서 밥도 오는 길에 대충 때웠다. 그가 이토록 서두르는 건 벌써 30분, 게임 시간으로는 90분 전에 동료들과 만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길어진 학교에서의 일정 때문에 약속시간에 늦은 율은 황급히 접속을 했다.

다행히 동료들은 율을 기다리며 주변의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왔냐?]

[형님, 오셨습니까.]

[왔네.]

동료들은 율이 접속을 하자마자 기존에 유지되고 있던 파티의 대화를 통해 말했다.

[어, 미안하다. 생각보다 길어졌다.]

[괜찮다. 얼마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뭐~]

[그래, 시간 없으니까 바로 출발하자.]

율은 빠르게 동료들과 합류한 후 다시 어둠의 숲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붉은 대륙의 레논을 출발한 지 10일(게임시간).

돈이 많이 들어갔지만 과감히 탈것까지 이용하며 열심히 달려온 결과 바로 어제 붉은 대륙의 끝자락에 위치한 소노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소노마에서 또 한 번 눈을 질끈 감고 거금을 썼다. 붉은 대륙에서 검은 대륙으로 가는 유일한 대륙 간 이동 포탈을 단체로 이용했던 것이다.

덕분에 그들은 바로 검은 대륙으로 넘어올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골드까지 써가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건 조금이라도 빨리 친구와 동료를 돕기 위해서였다.

다소 엉뚱하게 율 일행에 휘말린 팔콘은 이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누가 게임 속에서 이렇게 친구를 챙기고 동료를 챙긴단 말인가?

팔콘이 지금까지 보아온 게임 속의 모습은 너무나 추악한 면이 많았다.

아이템 하나를 위해 친구의 등에 칼을 꽂고 퀘스트 보상을 독차지하려고 동료들을 배신하는 일이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검마노의 세상.

그런 세상에서 율 일행과 같은 이들은 정말 천연기념물처럼 희귀했다. 물론 의리로 뭉쳐서 플레이를 잘하는 유저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이들보다 그렇지 않은 이들이 훨씬 많았기에 희귀하다는 말을 사용할 수 있었다.

동료를 위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간다?

분명 대단히 드문 일이었다.

덕분에 팔콘은 오랜만에 가슴 속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참 좋았다.

검은 대륙으로 넘어온 그들은 어둠의 숲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렸다.

중간에 쉬는 것도 최대한 줄여가며 4일(게임시간) 동안 열심히 달린 끝에 드디어 어둠의 숲 근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까지 달려오며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어둠의 숲에서 이루어지는 무한PK에서 대해 알아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건 그냥 작은 규모의 무한PK가 아니었다. 무려 100여 명의 유저가 어둠의 숲에서 그들에게 당하고 있었다.

그나마 당하는 쪽도 숫자가 많다 보니 초반엔 어느 정도 저항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결국 대규모로 뭉친 악질 무한PK유저들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그들이 갇힌 지 벌써 네 달(게임시간).

초반엔 끈질기게 저항하던 그들도 점점 지쳐서 포기하는 이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었다.

“소문엔 거의 500명의 PK유저들이 뭉쳤다는 거 같아요. PK유저 특성상 한 명, 한 명이 모두 정예다 보니 쉽게 다른 길드들이 척살령도 내리지 못하는 거라고 하네요.”

팔콘은 여기 있는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곳의 상황을 아주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었다.

“음, 그래도 진짜 대형 길드들에겐 그리 많지 않은 숫자일 텐데 왜 움직이지 않는 거지?”

“그게… 정확한 건 아닌데 저 PK유저들이 어떤 초대형 길드의 비호를 받는다는 소문이 있어요. 어떤 곳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보통 길드가 아닌 건 분명한 것 같아요. 그리고 저놈들이 진짜 악질적인 게 애초에 유인할 때부터 대형 길드와 전혀 연관이 없는 유저들만 골라서 데리고 왔다고 하네요. 그러다 보니 안에 갇혀 있는 유저들도 특별히 구원 요청을 할 곳이 없었던 것 같아요.”

“치밀하네.”

강풍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형님, 원래 전문적으로 악질전인 PK를 하는 유저들은 진짜 치밀한 놈들입니다. 별의별 수법을 다 동원해서 PK짓을 하는데 오죽하면 한 가지 방법이 오늘 하이퍼넷에 떠서 다들 그걸 조심하면 또 다른 방법이 바로 내일 생겨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아주 징그러운 놈들입니다.”

검마노의 플레이어들 중 가장 PK를 즐기는 이들은 아주 많았다. 물론 그중 대다수는 정당하게 PK를 즐기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세상엔 정당한 이들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교묘하게 다른 유저를 함정에 빠트려 PK를 했고, 또 어떤 이들은 아예 대놓고 살인자까지 되어가며 미친 듯이 PK를 했다.

보통, 전자는 양아치라고 불렸고 후자는 살인마라고 불렸다.

둘 다 보통 유저들에겐 아주 짜증나는 놈들이었다.

물론 전자가 당하고 나면 훨씬 더 짜증났지만 어쨌든 피할 수만 있다면 둘 다 피하고 싶은 게 일반 유저의 마음이었다.

지금 어둠의 숲에서 무한PK를 하고 있는 이들은 전자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물론 그들 중에는 후자의 속하는 이들도 껴있겠지만 어쨌든 하는 짓은 양아치 짓이 확실했다.

“그나저나 너무 많은 거 아냐? 자칫 도와주러 왔다가 오히려 민폐가 될 수도 있겠는데.”

확실히 생각보다 너무 규모가 큰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율은 그렇다고 해서 물러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일단 정확한 상황을 파악해보고 그 다음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자. 팔콘!”

“네?”

“너 어둠의 숲에서라면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지?”

“당연하죠! 이래 뵈도 섀도우 마스터라고 불리는 접니다. 그런 게 바로 제 전문 분야죠.”

“그래, 그럼 네가 한 바퀴 싹 돌면서 정확한 상황을 파악해봐라. 놈들이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마을 상황은 또 어떤지 모든 걸 파악해줘.”

“넵!”

율은 아주 자연스럽게 팔콘을 부려먹었다.

강풍 때도 그랬다. 같이 동행하는 이상 제 몫은 당연히 해줘야 했다.

“엘리스는 혹시 모르니까 어둠의 숲으로 통하는 길이 몇 개나 있는지 알아봐줘. 뭐… 길로 다닐 놈들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알아두는 게 좋겠지.”

끄덕끄덕.

엘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풍이 너는 러셀요새에 좀 갔다 와라.”

러셀요새는 어둠의 숲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었다. 물론 그래봤자 적어도 3시간(게임시간)은 가야 있는 곳이었지만 그래도 탈것의 유효 시간도 아직 남아 있었기에 충분히 빠르게 갔다 올 수 있었다.

“거긴 왜?”

“러셀요새에 가서 지금 어둠의 숲을 토벌하기 위해 토벌대가 만들어져 이동 중이라는 소문을 내. 유저건 NPC건 가리지 말고 다 소문을 내버려.”

“오호~ 그것만 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 골드를 좀 써서 하급 용병 NPC들을 고용한 다음, 그들을 끌고 진짜 어둠의 숲 근처로 이동해.”

“어둠의 숲으로는 들어가지 말고?”

“응, 아예 단기 계약만 해서 어둠의 숲 근처에 와서는 고용이 종료되는 걸로 하면 최대한 많은 용병을 확보할 수 있을 거야. 어차피 유저와 싸우는 임무 따위를 받을 하급 용병 NPC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임무 자체를 어둠의 숲 근처까지 호위하는 것 정도로 하면 되겠네.”

“오케이~ 접수 완료.”

“됐다. 그럼 모두 12시간 후에 다시 여기서 만나자.”

세 사람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떠났다. 이제 남은 건 율뿐이었다.

‘난 12시간 동안 작업을 좀 해놔야겠네.’

율은 바닥에 깔아놓은 어둠의 숲 지도를 살펴보며 군데군데 동그라미를 쳤다.

“여기, 여기, 여기…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대략 10개의 동그라미를 숲 외곽 군데군데에 그려 놓았다.

“시간이 없다. 후딱후딱 해치우자.”

율이 지도를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만 기다려라.”

율이 어둠의 숲 안쪽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비주류 파티의 위기… 그리고 그를 구원하기 위해 달려온 율 일행.

어둠의 숲에는 점점 전운(戰雲)이 깃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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