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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새로운 인연 (48/95)

8. 새로운 인연

“여기서 며칠만 더 묵으면 안 되냐?”

지난밤 레논의 밤거리를 제대로 경험한 강풍은 이미 밤의 문화에 푹 빠져 있었다.

“좋냐?”

율은 그런 강풍을 보며 웃었다.

어쩌면 강풍의 저런 모습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밤 문화에 관심이 없는 자신이 비정상일 뿐이었다.

“좋더라. 너도 같이 가보자. 엘리스한테는 적당히 둘러대고 딱 하루만 나랑 같이 가보자.”

강풍은 아예 율까지 데리고 제대로 놀아볼 생각인 것 같았다.

“아니다, 난 됐다. 어차피 엘리스한테 연락이 왔는데 급한 일이 생겨서 한 일주일(현실시간) 정도 접속을 못한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너도 여기서 질릴 때까지 놀아도 돼.”

“어? 그럼 너는?”

“나는 붉은 대륙까지 온 김에 퀘스트 하나만 더 해결해 놓으려고. 그다지 어려운 퀘스트도 아니니까 혼자해도 충분하다.”

“진짜 그래도 되는 거야?”

“후후, 그래 된다. 나중에 후회 안 하게 이번 기회를 제대로 살려봐.”

“크하하하, 오케이~ 진짜 제대로 놀아봐야겠다.”

강풍은 신난다는 표정으로 크게 웃었다.

“그럼 난 좀 쉬다가 다시 접속할게. 어제 접속도 안 끊고 밤새도록 놀았더니 피곤하네. 일 잘 끝내고~ 일주일(현실시간) 후에 보자고!”

“그래, 쉬어라.”

강풍은 피곤한 표정으로 접속을 끊었다. 이걸로 정말 오랜만에 혼자가 되었다.

막상 혼자가 되니 살짝 허전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걱정되거나 겁이 나는 건 아니었다.

단지 질릴 정도로 오랜 시간을 혼자 지내다 처음으로 동료가 생긴 것이었기에 그 빈자리가 조금 더 크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럼 나도 가볼까.”

율이 기지개를 크게 펴며 중얼거렸다.

목적지는 태양 사막.

뜨거운 태양이 하루 종일 내려쬐는 사막 한가운데에 율이 찾는 것이 있었다.

일명 쓰러진 거대고목이라 불리는 그것, 바로 세계수의 흔적이었다.

* * *

붉은 대륙 한가운데 있는 태양 사막은 아홉 개의 화산이 한꺼번에 뭉쳐 있는 지옥산맥과 함께 붉은 대륙에서 활동하는 여행자들이 가장 가고 싶지 않아하는 장소 중 한 군데였다.

특히, 태양 사막은 인기 있는 던전이나 사냥터가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거기다 쓸데없이 너무 덥기까지 해서 유저들이 가장 싫어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태양 사막은 그 열기가 얼마나 강한지 화 속성 저항력이 0이하인 사람들은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 무조건 시간이 지날 때마다 계속해서 생명력이 주기적으로 깎여나갔다.

그나마 사막에서 견디려면 적어도 화 속성 저항력이 50은 되어야 했다.

맥스(MAX)가 250이라고 해도 50이란 수치는 그냥 손쉽게 맞출 수 있는 수치가 아니었다.

만 레벨의 랭커들이 평균적으로 속성 저항력을 70~100을 맞추는 걸 감안하면 50이 결코 만만한 수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행히 율은 화 속성 저항력이 60정도였다.

특히 가방에 잔뜩 쌓여 있는 얼음 메기의 내단은 그에게 아주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열기를 견디기 힘들 때마다 시원한 느낌을 주는 얼음 메기의 내단을 복용하며 버틴 율.

그는 대략 8일(게임시간)만에 드디어 쓰러진 거대고목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해 붉은 대륙의 주력 탈것 중 하나인 보름(게임시간)짜리 쌍봉낙타를 대여해 사용했기 때문에 그 정도가 걸린 것이지, 만약 평소처럼 이동했다면 보름(게임시간)도 넘게 걸릴 거리였다.

물론 탈것을 대여하는 건 상당히 많은 골드가 필요했기 때문에 마음대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이럴 때면 전용 탈것이 거의 공짜로 생긴다는 테이머 계열이나 소환계열 직업 유저들이 부러워지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또 그들은 그만큼 다른 곳에서 손해를 보는 게 있었다.

띠링, 붉은 대륙에 존재하는 고대의 비밀을 발견했습니다.

띠링, 세계수의 흔적(붉은 대륙)을 발견했습니다.

띠링, 자동으로 퀘스트가 업데이트됩니다.

Quest[세계수의 부활]

: 세상을 지탱하던 힘 중 한 축을 담당했던 세계수. 하지만 이젠 전설과도 같은 먼 옛날 얘기가 되어버렸다. 세계수 중 가장 중심이 되는 빛의 세계수는 죽음의 대륙 깊숙한 곳에 봉인되어 버렸고… 나머지 세계수들은 힘을 잃고 세상에서 잊혀졌다. 심지어 어둠에 물들어 던전으로 변하기까지 했다. 한때 세계수의 부활을 꿈꿨던 이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실마리는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당신이라면… 그 실마리를 찾아 세계수의 부활을 위해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보상 : ?????

진행 과정 : [세계수의 흔적][얼음대륙 완(完)] [붉은 대륙 완(完)] 퀘스트 진행 중.

기간 : 무기한

퀘스트 생성 조건 : 블러드 우드의 비밀 열쇠 획득, 히든 네임드 블러디 섀도우 처치, 비밀의 방에서 검붉은 색 방 입장

이 퀘스트는 별로 어려울 게 없었다.

오히려 얼음 대륙 때보다 더 쉬운 느낌이었다.

물론 태양 사막이라는 오지를 가로지르는 게 보통 사람들한테는 전혀 쉽지 않았지만 적어도 율에겐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단지 조금 귀찮을 뿐이었다.

“다음은 검은 대륙인가?”

얼음 대륙과 붉은 대륙에선 흔적을 찾았으니 남은 건 검은 대륙과 죽음의 대륙뿐이었다.

검은 대륙 역시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문제는 마지막… 바로 죽음의 대륙이었다.

지금도 거의 개발되지 않은 곳이었다.

그나마 최근에 로열패밀리들을 중심으로 죽음의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전진 기지 비슷한 곳이 만들어지긴 했다고 전해졌지만, 여전히 일반 유저들에겐 존재하지만 갈 수는 없는 곳이었다.

“뭐, 그 문제는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는 것이고… 일단은 다시 돌아가기나 하자.”

돌아가는 길 역시 쌍봉낙타를 이용할 생각이었기에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 않았다.

돈이 충분하다면 이런 고급 탈것들을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단지 탈것에 탄 상태에서 공격을 받으면 평소보다 몇 배의 데미지가 들어오기 때문에 위험지역에서 함부로 탈것을 타는 건 좋지 않았다.

율이 쌍봉낙타를 타고 태양 사막을 가로지를 수 있었던 이유는 태양 사막에 등장하는 몬스터들 자체가 그리 대단한 놈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일을 끝내고 레논으로 돌아가는 율의 발걸음은 매우 가벼웠다.

적어도 예상치 못한 만남이 있었던 그때까지는 그러했다.

“괜찮아요?”

율이 갖고 있던 물을 얼굴에 부어주며 물었다.

율이 그를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사막 한구석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던 한 남자.

처음엔 그냥 시체인 줄 알고 지나가려고 했지만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다가가 살펴보니 놀랍게도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NPC가 아닌 유저였다.

결국 율은 어쩔 수 없이 낙타에서 내려 그에게 물을 부어주었다.

“으으…….”

“이봐요? 괜찮아요?”

상태로 보아하니 사막의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탈진한 게 분명했다.

“…도… 마… 아…….”

“예? 무슨 소리에요?”

남자가 뭐라고 작게 중얼거렸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오… 고… 있…….”

“뭐가 와요? 이봐요, 일단 정신 좀 차려보세요.”

율은 조금 아까웠지만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며 고급 회복 물약을 꺼내 남자의 입에 흘려 넣었다.

이 정도라면 기력을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 정신은 차릴 수 있었다.

예상대로 고급 회복 물약 한 병을 전부 다 삼킨 남자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며 흐리멍덩했던 눈빛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정상으로 돌아오자마자 곧장 얼굴을 굳히며 율에게 소리를 질렀다.

“도망가요! 놈이 옵니다!”

“네? 놈이 오다니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에요.”

갑작스러운 남자의 외침에 당황해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런데 무엇이 온다는 건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남자가 율의 허리를 붙잡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

콰과과광!

그와 동시에 율과 남자가 서 있던 바닥이 폭발하며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거대한 전갈 한 마리가 천천히 기어 나오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보는 것만으로도 질려버릴 것 같은 거대한 크기의 집게발. 그 집게발의 주인은 그동안 소문으로만 듣던 사막의 지배자… 스콜피온 킹이었다.

“젠장… 끝까지 따라오는군.”

남자는 거의 절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떨쳐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건만 큰 착각이었다. 특히 이미 지쳐버린 상태에서 태양 사막 쪽으로 진로를 선택한 건 너무나 큰 실수였다.

율의 배려로 약간의 기력을 회복하긴 했지만 말 그대로 약간일 뿐이었다.

“스콜피온 킹… 이놈이 왜 여기에 있지?”

율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스콜피온 킹을 바라보았다.

스콜피온 킹은 붉은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던전이었던 검은 모래 사막동굴의 가장 마지막 방에 있는 최종 보스몬스터였다.

등급은 파티용 레이드 몬스터였지만 워낙 강력해 지금까지 놈을 잡은 파티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렇다고 파티가 아닌 파티연합이나 레이드 팀으로 놈을 잡으면 놈은 아무 보상도, 경험치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공략하는 게 전혀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더 대단하다고 소문났던 스콜피온 킹이다. 그런 놈이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율은 이해할 수 없었다.

“저를 따라왔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이걸 따라온 거죠.”

사막에 쓰러져 있던 남자가 자신의 가상 가방 속에서 단검 한 자루를 꺼냈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율의 묵현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마치 단검을 끌어당기듯 계속 울기 시작한 묵현.

묵현이 이런 반응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떨리는 건 묵현뿐만이 아니었다.

단검 역시 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원래 주인을 만났다고 시위라도 하는 거냐? 크으… 아무리 내가 정당한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가져온 거라지만 어쩜 이렇게 매몰차냐.”

남자는 단검이 떨리는 게 스콜피온 킹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단검을 정당하게 스콜피온 킹을 쓰러트려서 얻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콜피온 킹이 보호하는 기이한 단검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오래전부터 준비에 준비를 한 끝에 스콜피온 킹을 공략하는 파티들이 치열하게 전투할 때 그는 그만의 특기라 할 수 있는 기술을 발휘해 단검을 훔쳐가지고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뒤는 너무나 간단했다.

크게 분노한 스콜피온 킹의 추격.

놈의 거센 추격에 결국 그는 이 태양 사막에서 지쳐 쓰러지고 말았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살린 게 율이었다.

율은 일단 혼자 착각하고 있는 그를 그냥 놔두었다.

묵현과 단검이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뭔가 비밀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자! 가져가라! 나를 살려준 이분까지 이 일에 휘말리게 할 순 없다. 이걸 가져가고 나를 죽이는 걸로 깔끔하게 끝내자!”

푸욱!

그는 자신의 발 앞으로 단검을 던지며 외쳤다.

적어도 은혜를 모르는 사람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스콜피온 킹은 이미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놈은 눈앞에 보이는 두 적을 모두 제거하고 자신의 보물을 찾아가는 것에만 집중했다.

강하긴 하지만 한낱 보물의 수호자 역할만 하고 있는 스콜피온 킹이 협상을 한다는 게 더 웃긴 일이었다.

“크으, 말이 안 통하네. 이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괜히 저 때문에 어이없는 놈하고 엮여버렸네요.”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보는 남자.

율은 그런 그를 보며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뭐 다 인연이고 운명이겠죠. 그나저나 이렇게 된 김에 그냥 쉽게 죽어줄 수는 없겠죠?”

“그렇겠죠. 근데 전… 거의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네요. 아! 이거라도 들고 계셔보세요. 적어도 놈은 이걸 맹목적으로 쫓으니까 움직임을 예측하기 더 좋을 겁니다.”

남자가 단검을 뽑아 율에게 던져 주었다.

바로 그 순간, 스콜피온 킹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며 곧장 단검을 향해 달려들었다.

누가 더 빨리 단검을 낚아채느냐?

율의 손과 스콜피온 킹의 커다란 집게발이 동시에 뻗어졌다. 그리고 승자는 바로 율이었다.

띠링, 숨겨져 있던 또 하나의 혼돈의 조각[밤의 비수]를 손에 넣었습니다. 이미 가지고 있던 혼돈의 조각[섀도우웨폰]과 서로 공명하며 하나로 합쳐집니다. 혼돈의 조각의 1차 봉인이 풀립니다.

띠링, 두 개의 혼돈의 조각이 합쳐지며 혼돈의 결정[섀도우 문(Shadow Moon)]이 만들어졌습니다.

띠링, 특수 메인 퀘스트 ‘혼돈의 열쇠’가 생성되었습니다.

띠링, 자신의 보물을 잃은 스콜피온 킹이 크게 분노합니다. 스콜피온 킹의 분노를 이겨내지 못하면 혼돈의 결정은 스콜피온 킹에게 빼앗길 수밖에 없습니다.

띠링, 현재 스콜피온 킹은 본래의 둥지를 떠나 30%정도 힘이 감소된 상태입니다.

띠링, 힘이 감소된 스콜피온 킹은 아이템을 떨어트리지 않습니다.

“헛!”

율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얼떨결에 붙잡은 단검이 혼돈의 조각이었고, 그 조각을 자신이 이렇게 손쉽게 흡수할 줄은 정말 몰랐었다.

사실 이건 진짜 엄청난 운이 따른 것이었다.

율이 얻은 혼돈의 조각은 유일하게 나타나지 않았던 8번째 조각이었다. 즉, 소유자가 없는 혼돈의 조각이었다.

앞서 그것을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빼내온 남자는 그 과정에서 페널티를 얻었기 때문에 자격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소유권을 인정받지 못했었지만 율의 경우는 달랐다.

율은 아무런 페널티도 없었고 거기에 다른 혼돈의 조각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 혼돈의 조각은 또 다른 혼돈의 조각을 흡수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단검이 소유권이 있는 혼돈의 조각이었다면 그 소유권자의 소유권을 말소시키고 흡수할 수 있었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아예 소유권자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나 운이 좋게도 그 조각을 간단히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행운이 겹치며 얻은 혼돈의 결정.

하지만 그 복에 겨운 행운 뒤에는 엄청난 절망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콜피온 킹.

애초에 자신이 살린 남자는 거의 전력에 1%도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 결국 스콜피온 킹을 혼자 상대해 쓰러트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물론 30%정도 힘이 감소되었다는 건 그나마 희망적인 소식 중 하나였다.

‘이건 참…….’

율은 자신을 향해 엄청난 분노의 감정을 쏘아내고 있는 스콜피온 킹을 바라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저 웃음만 나왔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진짜 스콜피온 킹을 이겨버리는 수밖에 답이 없었다.

“…그래 해보자.”

지금까지 한 파티도 잡은 적이 없다는 난공불락의 파티 레이드 보스 몬스터 스콜피온 킹.

율은 그놈을 진지하게 잡아볼 생각이었다.

* * *

이걸 아이템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율의 능력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율은 스콜피온 킹과 길고긴 전투 끝에 드디어 믿기 힘든 결과를 만들어냈다.

쿠쿠쿠쿵!

스콜피온 킹의 거대한 육체가 바닥으로 완전히 쓰러지며 사막의 모래들이 동시에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헉… 헉…….”

재미있는 건 그런 스콜피온 킹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총 5명이라는 것이었다.

한 명은 애초에 스콜피온 킹을 여기까지 끌고 온 남자였다.

그는 전투에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하고 기력이 다해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남아 있는 4명.

그들 중 한 명은 율이었다. 그럼 나마저 세 명은 누구일까?

그들은 바로 불사인과 그림자 하인의 몸을 빌려 등장한 영웅들이었다.

불꽃의 나르엘.

폭풍검 베논.

치유의 빛 안느.

세 명의 영웅은 율을 도와 스콜피온 킹을 쓰러트렸다. 거의 두 시간이 넘을 동안 계속 율을 도와 싸웠다.

그들을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자신을 돕게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대현자의 증표 덕분이었다.

모든 스킬의 소울에너지 소모도가 30%로 줄어드는 바람에 세 영웅의 영혼을 두 시간 내내 불사인과 그림자 하인 둘 에게 주입시켜 줄 수 있었다.

자신 역시 파멸왕의 영혼을 강림시켜 열심히 싸웠다.

실전에서 써보는 건 처음이라 이래저래 안 맞는 것도 꽤 많았지만 결과만 놓고 본다면 아주 대만족이었다.

특히 전투가 계속될수록 몸에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한 영웅들이 상당한 힘을 발휘해 주었다.

이번 전투를 통해 율은 싸우고 있지 않을 때도 종종 영웅들에게 몸을 내어줘 그 몸에 적응시키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그건 그거고, 율은 확실히 스콜피온 킹을 쓰러트렸다.

그것도 오로지 자신의 혼자 힘만으로(소환수는 율의 것이었으니까.) 해낸 쾌거였다.

띠링, 스콜피온 킹을 쓰러트렸습니다.

띠링, A급 호칭 ‘첫 번째 스콜피온 킹 사냥꾼’을 얻었습니다.

띠링, 지정된 던전이 아닌 다른 곳에서 스콜피온 킹을 잡았기 때문에 스콜피온 킹이 모은 보물을 획득할 권리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단지, 스콜피온 킹의 시체를 분해하여 재료 아템을 얻을 수는 있습니다.

……

……

“이거 진짜 죽을 뻔했네.”

생명력이 10%까지 떨어졌던 율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율을 도왔던 영웅들 역시 상당히 지친 표정을 지으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 자리에서 가장 멀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는 최초에 율이 살려준 남자뿐이었다.

물론 기력이 다해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지만 표정만은 매우 상기되어 있었다.

그의 시선은 율에게 고정되어 있고… 눈빛은 마치 레이저라도 나갈 것만 같아 보였다.

“엑설런트(Excellent)!”

크게 흥분하며 엑설런트를 외치는 남자.

마치 그가 율에게 반하기라도 한 표정을 지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정말 대단해요! 당신, 어떻게 그렇게 강할 수 있는 거죠? 당신은 제가 본 최고의 플레이어에요.”

“네?”

“이건 정말 동영상으로 찍어 올렸어야 하는 거였는데… 제가 너무 넋을 놓고 구경하다가 그걸 깜빡했네요.”

“도, 동영상이라뇨. 절대 그러지 마세요.”

율은 동영상이란 말에 깜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지만 아직까지 동영상을 찍어 하이퍼넷에 올릴 정도로 좋아진 건 아니었다.

“아닙니다. 당신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매일매일 하이퍼넷에 올라오는 쓰레기 동영상들 따위는 당신의 손가락에 낀 때만큼도 못합니다.”

“으음…….”

당황한 율.

그는 스콜피온 킹이 나타났을 때보다 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제가 보증할 수 있습니다. 섀도우 마스터 팔콘이면서 동시에 워 아티스트 더블K의 이름을 걸고 보장합니다. 당신은 최고입니다.”

두 개의 이름이 나왔다.

섀도우 마스터 팔콘과 워 아티스트 더블K.

두 이름 모두 굉장히 유명한 이름이었다.

섀도우 마스터 팔콘은 검마노의 랭커 중 한 명이었다.

특히 도적 계열 유저들 사이에선 거의 최고의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전투 능력은 둘째로 치더라도 그보다 더 완벽하게 도적 계열 직업을 이해하고 있는 유저는 없다고 얘기할 정도였다.

그리고 워 아티스트 더블K는 검마노가 아닌 하이퍼넷에서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가 올리는 동영상은 모두가 검마노의 전투 동영상이었는데… 하나같이 그 영상의 완성도가 대단했다.

하이퍼넷의 검마노 동영상들 중 최고만 모아놓은 명예의 전당 같은 곳에는 거의 그의 동영상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였다.

어쨌든 그 두 인물이 동일인물인 것도 놀라운데, 그 사람이 자신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율은 속으로 굉장히 놀랐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었다.

“어쨌든 동영상은 안 됩니다.”

“이런 실력을 숨기는 건 정말 죄악입니다.”

“숨길 수 있는 실력도 되지 않습니다.”

율은 재빨리 영웅들이 쓸데없는 말을 하기 전에 모두 역소환시키며 애써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행동했다.

하지만 이미 팔콘은 율에게 제대로 꽂힌 상태였다.

“그것들은 어떤 소환수죠? 직업이 소환사입니까? 근데 아까 보니 대검을 두 자루 쓰던데… 아, 그전에 불렀던 노래는 또 뭐였죠? 제발 간단하게라도 알려주세요.”

“진짜 별것 아닙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율은 점점 난감해졌다.

팔콘은 이미 포기할 표정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팔콘에게 모든 걸 사실대로 말해주기는 힘들었다.

“숨기고 싶으신 건가요? 알겠습니다. 굳이 알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동영상도 원하시지 않으면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따라만 다닐 수 있게 해주세요. 개인 소장용으로 동영상을 몇 편만 찍게 해주시면 됩니다.”

팔콘의 눈빛에서 강한 열망이 느껴졌다.

그는 섀도우 마스터가 된 이유 자체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전투 동영상을 찍고 싶어서였다.

최고의 전투가 벌어진다는 소문이 나면 그곳이 어디라도 당장 달려가곤 했었다.

궁극의 강함을 소유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 강함을 직접 목격하는 게 목적인 팔콘에게 율은 굉장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준 율.

덕분에 팔콘은 율에게 완전히 반하고 말았다.

“…후, 절대 공개는 안 됩니다.”

팔콘의 열망을 느낀 율은 말린다고 될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개인 소장용으로 보관하겠다는데 그것까지 말리면 몰래 따라다니며 귀찮게 할 것 같았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고맙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전 팔콘이라고 합니다.”

팔콘이 손을 내밀며 반갑게 인사하자 율이 손을 맞잡아 주었다.

“전 선율이라고 합니다. 그냥 율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율님이셨군요. 정말~ 정말 반갑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다 죽어가던 팔콘이건만 지금은 거의 다 회복된 듯한 모습이었다.

그만큼 그의 열망이 강했던 것이다.

율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다. 좀 이러다 떨어지겠지.’

어차피 엘리스와 강풍이 함께할 때는 100% 모든 능력을 발휘해 메인이 되어 싸우기보단 보조 역할을 하는 걸로 만족하는 율이었기에 팔콘도 금방 흥미를 잃고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건 율의 생각일 뿐이었다.

당연히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그 누구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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