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 비기(秘技) 개발 (44/95)

4. 비기(秘技) 개발

추정 레벨 300~320.

보스급 몬스터로 예상됨.

다행히 레이드용 보스가 아닌 파티용 보스라고 판단됨.

하지만 레벨이 높아 어지간한 레이드용 보스 몬스터만큼 강력함.

주력 공격은 망령 분출, 전방 베기, 발 구르기, 왕의 안광.

망령 분출은 전방으로 망령들이 뭉쳐 있는 덩어리를 뿜어내 강력한 데미지를 주는 기술.

방어 불가능. 무조건 피해야 하는 공격임.

전방 베기는 등에 메고 있던 검으로 전방 180도 방면에 강력한 물리 공격을 함.

방어 가능. 하지만 모션 딜레이가 크기 때문에 피하는 게 좋음.

발 구르기는 주기적으로 발을 굴러 자신의 주변에 지진파를 형성시킴.

피하지 못할 경우 약간의 데미지와 함께 20초 동안 방어력과 이동속도가 50% 낮아짐. 무조건 피해야 함.

왕의 안광은 랜덤하게 위협 수준이 가장 높은 대상을 제외한 나머지 적에게 붉은색 안광을 쏘아냄.

방어는 가능하지만 조금이라도 안광에 데미지를 입으면 이동 속도가 90% 감소하기 때문에 무조건 피하는 게 좋음.

특수 공격은 모래 폭풍.

일정한 시간을 두고 지하 광장 전체를 휩쓰는 모래 폭풍을 소환함.

모래 폭풍을 소환할 경우엔 다른 공격을 하지 않고 광장 중앙에서 검을 높이 들고 가만히 서 있지만, 모래 폭풍 자체가 워낙 강력하고 광범위한 공격이라 그걸 피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벅참.

그리고 기본적으로 사막의 왕의 몸은 모래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물리 데미지가 30% 감소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이게 지금가지 율 일행이 파악한 사막의 왕에 대한 내용이었다.

한 시간(게임시간) 동안 사막의 왕을 상대했던 그들은 지금까지 다른 보스 몬스터를 상대했던 것처럼 일단 정보를 모으고 그에 따라 대처했다.

사막의 왕은 거의 아이스 웜만큼이나 까다로운 보스 몬스터였다.

물론 정확하게 비교하자면 분명 아이스 웜보단 약했지만 물리 데미지를 감소시키는 특성 때문에 율 일행에겐 까다로운 상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휘이잉!

전방을 향해 거대한 검을 휘두르는 사막의 왕.

하지만 엘리스와 강풍은 이미 모션을 예측하며 곧장 뒤로 물러났다.

꽈광!

전방 베기에 이은 발 구르기.

이건 사막의 왕이 꽤 자주 사용하는 콤보였기 때문에 율 일행은 거의 당하지 않았다.

“안광 조심해!”

이 콤보 이후에 안광을 사용하는 것도 아주 자주 사용하는 패턴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곧장 엘리스를 향해 망령 분출을 사용했다.

파파파팟!

광장을 가르며 날아오는 망령들의 덩어리.

엘리스는 옆으로 구르며 그 덩어리를 피했다.

꽈과광!

늘 그렇듯 엘리스가 메인 탱커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막의 왕은 대부분의 공격을 엘리스에게 퍼부었다.

덕분에 엘리스는 열심히 움직이고 또 움직이면서 최대한 데미지를 입지 않고 사막의 왕을 공격했다.

“합!”

퍼펑!

그녀가 중간중간 쏘아내는 충격파는 정확히 사막의 왕에게 적중되었다.

엘리스는 이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완벽하게 충격파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충격파 자체가 워낙 위협 수준을 많이 높일 수 있는 기술이었기 때문에 엘리스는 어렵지 않게 사막의 왕의 시선을 잡아둘 수 있었다.

엘리스가 잔 공격으로 사막의 왕을 괴롭힌다면 강풍은 한 방, 한 방이 센 큰 공격으로 사막의 왕을 괴롭혔다.

촤아아아아!

꽈과광!

-크윽!

사막의 왕의 빈틈을 파고든 섬멸창.

섬멸창은 기본적으로 포스를 기반으로 한 기술이었기에 물리 데미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막의 왕이 입는 데미지는 결코 적지 않았다.

엘리스와 강풍이 그렇게 공격에 집중한다면 율은 오히려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했다.

그는 자신이 가진 각종 방어 기술과 버프 기술을 이용해 엘리스와 강풍이 입을 수 있는 데미지를 최소화하며 소울 에너지를 최대한 아꼈다.

이미 위험한 순간에 진정한 영웅들의 서사시를 두 번 사용해 20%의 소울 에너지를 날려버렸기 때문에 앞으로의 전투를 생각해서라도 최대한 소울 에너지를 잘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율의 이러한 전법이 지금까지는 매우 성공적으로 먹혀들고 있었다.

특히 사막의 왕 자체가 한 방이 위험한 스타일이 아니라 여러 가지 특수 기술들이 무서운 스타일을 지닌 네임드 몬스터였기 때문에 이렇게 방어적으로 플레이하는 게 맞았다.

사막의 왕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율 일행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들은 단지 세 명뿐이었지만 이미 숫자의 한계를 넘은 지 오래였다.

레이드 팀?

필요 없었다. 그들은 단 세 명으로도 이미 훌륭한 팀이었다.

* * *

띠링, 사막의 왕 렘카브의 저주를 풀어냈습니다.

띠링, 사막의 왕 렘카브는 자신에게 영원의 안식을 안겨준 당신들을 은인(恩人)으로 생각합니다.

띠링, 렘카브가 남긴 4가지 왕의 보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습니다.

띠링, A급 타이틀 ‘망령을 극복한 자’를 획득했습니다.

……

……

“후아~ 끝났다!”

두 시간을 살짝 넘기고 나서야 겨우 왕의 망령을 쓰러트릴 수 있었다.

이로써 왕은 완전히 자유가 되었고 율 일행은 그 왕의 보은을 받을 자격을 얻었다.

[고맙다. 너희들이야말로 나의 은인이다!]

왕이 흐릿하게 빛나는 영혼 상태로 감사를 표시했다.

“당연한 걸 했을 뿐이죠.”

강풍은 능숙하게 왕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었다.

예전의 그는 오로지 싸우는 것밖에 모르는 이였지만 이제는 달랐다.

투기장이란 우물에 갇혀 있던 그가 세상 밖으로 나오며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 자신이 싸우는 재능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아니다. 분명 너희들은 나를 구원했다. 그렇기에 너희들은 내가 가졌던… 그리고 빼앗겼던 능력들을 나눠 가질 자격이 있다. 자, 무엇을 선택하겠느냐?]

[태양의 빛]

: 사막의 뜨거운 태양은 너의 피를 달아오르게 한다. 피가 끓는 느낌을 아는가? 그것은 너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 뜨거운 피의 힘을 아는 이야말로 진정한 강자다.

소모에너지 : 없음

능력 : 태양의 힘을 이용해 순간적으로 공격력과 공격속도, 그리고 이동속도를 30% 상승시킨다. 유지시간 [20초], 재사용 대기시간 [4분].

특이사항 : 태양이 없는 곳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email protected]

[그림자 하인]

: 그림자로 만들어진 하인을 아는가? 비록 강한 능력을 지니지는 않았지만 하인이 존재한다는 게 얼마나 편한지는 부려본 이만 알 수 있다. 그림자 하인도 없는 것들은 감히 왕이라고 칭할 수도 없을 것이다.

소모에너지 : 없음

능력 : 그림자 하인을 최대 4명까지 부릴 수 있다. 그림자 하인의 능력은 레벨 10의 평범한 성인 NPC의 능력과 동일하다. 유지시간 [무한대]. 단,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 공격당할 경우 강제로 소환이 해지될 수 있다. 소환 해지 후 재소환을 위해서는 10분의 대기시간이 필요함.

특이사항 : 그림자 하인에게 전투 능력을 기대하긴 힘들다.

[모래소환]

: 모래는 부서지지 않는다. 단지 흩어질 뿐이다. 이 모래를 소환해 몸을 보호한다면 어떻게 될까? 말도 안 된다고? 그럴 리가 있나! 내가 그렇게 해봤거늘.

소모에너지 : 없음

능력 : 몸을 일시적으로 모래로 바꿔 모든 종류의 물리 데미지를 90% 감소시킬 수 있다. 유지시간 10초, 재사용 대기시간 [4분].

특이사항 : 몸이 모래로 바뀌면 자신이 가진 모든 종류의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

[폭풍갑옷]

: 사막의 폭군, 용권풍. 그 용권풍을 이용해 갑옷을 만들어 봤는가? 나는 할 수 있다. 그리고 난 그 폭풍갑옷으로 나를 부정하는 모든 것들을 튕겨낼 수 있었다.

소모에너지 : 없음

능력 : 강력한 폭풍이 몸 주변에 생겨나며 거의 모든 종류의 공격을 막아냄. 유지시간 [4초], 재사용 대기시간 [1시간].

특이사항 : 정해진 일정 수준의 데미지를 넘어가는 강력한 공격은 막아내지 못함.

“오오오~!”

“호오.”

율 일행은 놀란 표정으로 왕의 보은 목록을 살펴보았다. 급수는 AA급으로 되어 있지만 이건 거의 S급에 맞먹는 특별한 기술들이었다.

특수라고 적혀 있는 게 괜히 그렇게 적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선 모두 가지고 싶었지만 이 중 한 가지만 골라야 한다는 게 아쉬웠다. 하지만 강풍과 엘리스는 의외로 쉽게 스킬을 골랐다.

강풍은 태양의 빛, 그리고 엘리스는 모래소환을 골랐다. 언뜻 보기엔 엘리스가 고른 모래소환보다 폭풍갑옷이 훨씬 좋아 보였지만 엘리스는 한계가 존재하는 폭풍갑옷보단 한계가 없는 모래소환이 더 마음에 든 것 같았다.

강풍이 태양의 빛을 고른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가뜩이나 공격력이 좋은 그가 태양의 빛까지 잘 조합해서 사용하면 순간 공격력이 무지막지하게 치솟을 수 있었다.

가장 고민하는 사람은 율이었다.

어차피 중복해서 선택해도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율도 처음엔 모래소환이나 태양의 빛을 고르려고 했다.

그런데 가만히 멈춰 서서 골똘히 생각하던 율은 전혀 의외의 것을 골랐다.

그림자 하인.

사실 그 옵션만 봐서는 율에게 그다지 필요 없는 스킬이었다.

사막의 왕 같은 이들에겐 수족처럼 부릴 하인이 필요할지 몰라도 율에겐 아니었다.

레벨 10의 평범한 성인 NPC라면 율 정도의 고수들이 가볍게 한 방만 넣어도 쓰러질 수 있는 존재였다.

즉, 전투에는 아무 도움도 안 되고 결국 도움이 되는 건 일상생활뿐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대도 율은 그림자 하인을 골랐다.

그가 그림자 하인을 고른 건 분명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당장 그것을 결과로 보여줄 생각은 없었다. 아직 머릿속에서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것… 그렇기에 좀 더 생각하고 확실하게 정립시킬 필요가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세 명 모두 왕의 보은을 골랐다.

사막의 왕 렘카브는 왕의 보은을 모두 나누어 준 후, 이제 진짜 영원한 안식을 취하려 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생각일 뿐, 강풍은 아직 그를 놔줄 생각이 없었다.

“잠깐만요.”

[음? 왜 그러느냐?]

“으음… 그게… 에이, 모르겠다. 혹시 불사조의 무덤이라는 곳을 아시나요?”

강풍이 살짝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결국 그냥 질러버렸다.

어차피 한번 물어보는 것쯤은 크게 상관없을 것 같았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물었던 것이다.

[불사조의 무덤? 그곳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지.]

물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른 질문 하나에 월척이 걸렸다.

“헛, 진짜요? 그럼 그곳이 정확히 어디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강풍이 깜짝 놀라며 다시 물었다.

율과 엘리스 역시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갑자기 불사조의 무덤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자 크게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불사조와 맺은 맹약 때문에 그들의 무덤을 알려줄 순 없다.]

“큭.”

월척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어쩐지 일이 쉽게 풀린다 했더니… 뭔가 비밀코드로 막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음!?”

다시 입질이 왔다. 율 일행을 계속 들었다 놨다 하는 렘카브였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 사막에 전해져 내려오는 격언을 알려줄 수 있다.]

“격언이요?”

[그렇다. 이 격언이 아마 너희들의 궁금증을 푸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겁화(劫火)는 불사조를 탄생시킨다. 그리고 불사조는 죽으며 다시 겁화를 일으킨다.

그렇게 불사조는 영원히 다시 살아난다. 영원불멸(永遠不滅)… 끊임없이 자신을 태워 또 다른 생(生)을 시작하는 불사조처럼 포기보단 도전을 즐겨라. 불사조처럼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내라.

“흐음…….”

아리송했다.

특별히 지명이 언급된 것도 아니고 지명을 알 수 있을 만한 힌트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렘카브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건 좀 더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진짜 이만 가봐야겠군. 너희들의 앞날에 불과 빛의 신 이그니아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기원하겠다.]

스스스~

렘카브의 영혼이 흩어지며 사라졌다.

그리고 그가 서 있던 곳에는 밖으로 통하는 포탈이 만들어졌다.

이로써 이 던전은 완전히 클리어한 것이다.

“휴~ 일단은 레논으로 가봐야겠지?”

강풍이 율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래야겠지. 렘카브가 알려준 힌트만으로는 아직 감이 안 온다.”

“오케이~ 그럼 다시 출발하자고.”

강풍이 고개를 끄덕이며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밀어두었던 레논을 향한 여정.

그것이 다시 시작되었다.

* * *

대략 20일(게임시간) 정도를 부지런히 이동한 율 일행은 드디어 레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이 레논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 늦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붉은 대륙 최고의 볼거리라고 소문난 레논의 밤거리를 유감없이 볼 수 있었다.

화려함의 극치.

성인 인증이 된 사람만 출입 가능한 유흥업소가 성황리에 영업 중이었다.

물론 유흥업소라고 해서 일반적인 현실에서의 그것과 같은 건 아니었다.

굳이 현실에서 예를 찾는다면 건전한 바(Bar) 정도?

물론 바텐더들이 하나같이 현실에서는 감히 찾기도 힘든 엄청난 미인들이라는 게 달랐지만 어쨌든 수위는 그 정도일 뿐이었다.

율 일행은 일단 오랜 여정으로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가까운 객점으로 향했다.

여행 내내 요리 스킬이 거의 마스터 경지에 가깝게 오른 특급 요리사 율이 맛있는(?) 음식을 제공했지만 율의 요리는 뭔가 좀 특별했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스와 강풍은 제발 평범한 음식을 먹어보고 싶었다.

레논에는 유명한 객점이 많았기에 그들의 그런 소원은 별로 어렵지 않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가볍게 식사를 끝낸 그들은 일단 두어 시간 정도 개인 정비를 하기로 했다.

그동안 마을을 들르지 않아 온갖 잡템이 가방에 넘쳐났고 또한 소모성 아이템들도 거의 다 쓴 상태였다.

이래저래 팔고 보충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어차피 정보를 얻을 때까진 계속 레논에 있어야 할 것 같았으니 여유 있게 휴식과 개인 정비를 병행했다.

경매장과 상점에 팔 물건들을 구분해 다 팔아치우고 필요한 물건들도 샀다.

물건을 사며 혹시 경매장에 살 만한 물건이 있는지도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미 전에 거금을 투자해 제대로 쇼핑을 했기 때문에 살 만한 물건은 거의 없었다.

대충 정비를 끝낸 율은 골드를 내고 빌릴 수 있는 별도의 연습실을 대여했다.

이 연습실은 일종의 인스턴트 공간이었다.

엘리스와 강풍이 접속을 종료하고 쉬러 간 반면, 율은 아직 쉴 생각이 없었다.

그는 여행 내내 머릿속으로 연구하고 상상했던 어떤 것을 본격적으로 실험해 볼 생각이었다.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데… 과연 성공할지 모르겠네.”

성공도 성공이지만 성공하고 나서도 효율이 좋지 않으면 지금까지 준비한 것들이 모두 헛짓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일단 소환을 하고…….”

율은 품속에서 아플란의 생명석을 꺼내들고 그 생명석에 묶여 있는 불사인을 소환했다.

껍데기만 남아 있는 불사인.

아플란의 영혼이 사라진 불사인은 그저 튼튼한 몸을 지닌 인형일 뿐이었다.

이 불사인으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심지어 그림자 하인보다 더 쓸모없는 놈이었다. 하지만 율은 개의치 않고 일단 소환부터 했다.

불사인을 소환해 낸 율은 다시 정신을 집중해 또 하나의 인형들을 소환했다.

그림자 하인들… 아직 화후가 부족해 두 명밖에 소환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분명 소환이 되었다.

불사인 하나와 그림자 하인 둘.

그렇게 율의 말을 잘 듣는 인형 셋이 소환되었다.

‘여기부터가 중요하다.’

인형들을 소환한 율은 묵현을 꺼내들고 천천히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부르는 곡은 ‘달빛을 가리는 구름’이었다.

일단 가벼운 버프 노래를 부르며 인형들의 상태를 살피는 율.

그림자 하인과 불사인은 율의 소환수 판정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버프 노래는 그들에게도 분명 적용되었다.

‘오케이~ 버프는 된다. 그렇다면…….’

일단 버프는 먹히는 걸 확인했다. 이제 남은 건 하나.

바로 자신이 가진 가장 특별한 노래인 ‘진정한 영혼들의 서사시’였다.

껍데기만 가진 인형들에게 영혼을 넣어준다.

율은 아플란의 생명석을 얻고 난 후부터 이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얼마 전 사막의 왕으로부터 특수 스킬인 그림자 하인을 얻고 제대로 연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이것이 통하기만 한다면 율은 졸지에 강력한 소환수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활동 시간이 한정적인 소환수이겠지만 그래도 영웅들의 영혼이 가진 능력을 생각해봤을 때, 50%만 발휘할 수 있어도 굉장히 강력한 소환수가 될 게 분명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묵현의 현을 튕기는 율.

그는 일단 불사인에게 먼저 영혼을 주입해 보았다.

그가 선택한 영혼은 전설적인 화염마법사였던 불꽃의 나르엘이었다.

아무래도 불사인이 리치와 유사한 존재이기 때문에 마법사가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에 고른 영혼이었다.

“대상 불사인!”

대상이 선택되고 드디어 율이 불러낸 영혼이 불사인에게로 스며들었다.

‘성공인가?’

확실히 영혼은 주입되었다.

이제 남은 건 불사인이 영혼의 능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소환수는 주인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는 게 보통이었기 때문에 율은 일단 간단한 파이어 볼을 쏴보라고 마음속으로 명령했다.

하지만 불사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요지부동(搖之不動).

아무리 명령을 내려도 그대로 서 있었다.

‘뭐지? 왜 움직이지도 않는 거지?’

영혼 주입이 실패했다고 해서 소환수와의 관계까지 해지된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소환수는 움직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드디어 불사인이 움직였다.

아니, 소리쳤다.

“크하하하하! 이게 무슨 일이지? 도대체 내가 어떻게 육신을 얻어서 부활한 거지?”

말을 하는 불사인.

율은 갑자기 일어난 이 기사(奇事)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음음, 그래, 너밖에 없겠구나. 네가 나를 부활시켰느냐? 그동안 너에게 종종 힘을 빌려주긴 했었지만… 이렇게 부활까지 시켜 줄지는 몰랐다. 어쨌든 고맙다. 크하하하하하.”

불사인이 살아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불사인의 몸을 빌려 나르엘이 살아났다.

“…불꽃의 나르엘?”

“나르엘이 아니라 나르엘님이시다. 전지전능한 대마법사 나르엘님이라 부르면 된다. 너에겐 특별히 대마법사를 빼고 나르엘님이라고만 불러도 되는 특권을 주지. 크크크.”

황당하지만 사실이었다. 나르엘이 확실했다. 나르엘의 성격이 이럴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지만 어쨌든 분명 나르엘이었다.

“나르엘님이라…….”

율은 이게 과연 성공을 한 건지, 아니면 실패를 한 건지 종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단 확실히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불꽃의 나르엘님이라면 화염마법 정도는 우습겠죠? 한번 시범을 보여줄 수 있나요?”

“화염마법? 크크, 뭘 보여줄까? 파이어 볼? 아니야, 이건 너무 흔해빠졌지. 왕년에 내가 특기로 사용했던 플레임데몰리션을 보여주지!”

파앗!

나르엘이 전방으로 손을 뻗으며 룬어를 중얼거렸다.

약간의 캐스팅, 그리고 곧장 그의 앞쪽에 강력한… 아니 그냥 평범한 폭발이 일직선으로 뻗어나갔다.

퍼퍼퍼펑!

“커헉!”

그와 동시에 크게 휘청거리는 나르엘.

“왜, 왜 이러지? 마나가 부족한 건가?”

머릿속의 이론은 산꼭대기에 올라 있었지만 그걸 발현하는 몸은 아직 미숙하기에 일어난 마나 부족 현상이었다.

덕분에 나르엘은 8클래스의 대마법인 플레임데몰리션을 사용하고도 겨우 3클래스의 화염마법 같은 효과밖에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크으, 아무래도 이 몸을 좀 더 내 방식대로 바꿔놔야겠군.”

혼자 중얼거리며 고개를 흔드는 나르엘.

하지만 이건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이미 대충 모든 확인을 끝낸 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르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슬쩍 웃었다.

“나르엘.”

“나르엘님이라고! 아무리 너라고 해도 자꾸 그렇게 말을 짧게 하면 혼내줄 수밖에 없다.”

“혼? 후훗, 누가 누구한테?”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나르엘을 향해 묻는 율.

순간 나르엘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뭐, 뭐냐? 가,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누구긴 불꽃의 나르엘이지… 그리고 언제라도 내 의지로 소환을 취소할 수 있는 불쌍한 영혼이기도 하고.”

“헛!”

그제야 나르엘은 자신의 현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르엘님? 아직도 그렇게 불러주길 원해?”

“그, 그게 아니라…….”

갑자기 작아지는 나르엘.

율은 이로써 대략 자신이 만들려고 했던 자신만의 비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비록 자신이 원했던 방향으로 결론이 나진 않았지만 어떻게 보면 오히려 더 좋을지도 몰랐다.

물론 아직 비기라고 말할 정도로 완전하지는 않았다.

44명의 영혼들이 전부 나르엘과 같은 반응을 보일 리도 없었고, 당장 나르엘이 보여준 능력만으로는 뭔가 많이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가능성은 충분히 보였다.

이 정도면 분명 만족이었다.

이제 남은 건 이것을 계속 연구하고 분석해 조금이라도 더 완벽하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잘하면 진짜 물건 하나 건질 수도 있겠는데?’

물건뿐일까?

잘해서 제대로 성공만 하면 이건 진짜 검마노의 근간을 뒤흔들 수도 있었다.

소환수가 그저 소환수가 아닌 동료가 될 수도 있는 최후의 비기!

율은 그것을 만들어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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