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권-1.개척촌 No.16449번 (41/95)

1.개척촌 No.16449번

거인들의 안식처에 자리를 잡은 율과 엘리스, 그리고 강풍은 일단 안식처를 개척 마을로 등록했다.

넘버 16449번.

16449번째 개척 마을이란 뜻이다.

일단 개척촌으로 등록되면 개척 마을의 소유자가 직접 마을을 개발해 개척촌을 타운(Town) 급으로 업그레이드시켜야 했다.

적어도 타운 급은 되어야 정식 마을의 이름을 얻을 수 있었고, 그전에는 그저 개척촌과 등록 번호로만 불리게 되어 있었다.

마을을 개발하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단지 돈이 들어가고 시간이 들어간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었다.

특히 돈은… 일개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개척촌을 개발하는 건 무조건 길드나 연합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그런 걸 따지면 율 일행의 개척촌 개발은 쉽지 않아 보였다.

일단, 단 3명밖에 없는 길드였기 때문에 다른 길드들과 큰 차이가 있었다.

보통 길드가 최소 500여 명 이상의 길드원들을 보유하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였다.

하지만 의외로 돈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투신 강풍.

그가 가진 골드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는 투기장에서 아주 오랫동안 넘버1의 자리를 지키며 일반 유저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의 골드를 모아놨었다.

그리고 그 골드를 전부 개척 마을 개발 비용으로 내놓았다.

별로 아까워하지도 않았다.

그는 골드에 큰 미련을 두지 않는 대인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것만 보아도 강풍은 확실히 평범한 이가 아니었다.

어쨌든 강풍 덕분에 골드 문제가 대부분 해결되었다.

물론 강풍의 골드가 무한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겨우 타운 급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기본 사항들만 해결할 정도였다.

앞으로 섀도우 로드가 제대로 개척 마을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선 일단 길드 자체가 클 필요가 있었다.

율 역시 그것을 알기에 일단은 기초만 다지고 천천히 문제를 해결해 나갈 생각이었다.

일단 강풍이 내놓은 골드로 기본적인 개척 마을의 시설물들을 지을 수 있게 준비했다.

이제는 NPC들이 이주할 수 있게 작업하면 되었다.

사실 NPC의 이주는 그저 시간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다.

단지 그냥 아무 작업도 하지 않고 기다리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뿐이었다.

하지만 율 일행은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NPC들이 들어오길 기다릴 수 없었다.

당장 대충 기반만 잡아 놓고 다음 모험을 위해 떠나야 했기 때문에 그들은 흔히 말하는 이주 작업을 실시했다.

근처 마을에다 자신들이 만든 개척 마을에 대한 소문을 내고 골드를 이용해 그 소문을 계속 퍼트렸다.

솔직히 만만한 작업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발로 뛰지 않으면 NPC들의 이주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대략 보름(게임시간)을 작업하자 슬슬 NPC들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오지를 마다하지 않는 용병들이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거인의 흉터 안쪽에 새로운 마을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곤 꼭 한 번 들러보겠다고 얘기했다.

다음으로 관심을 보인 이들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대륙을 떠도는 NPC들이었다.

어딜 가도 그 지역의 기득권 세력은 있는 법이었다.

그건 NPC들의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리를 잡지 못한 이들은 개척 마을이란 소리를 들으면 귀가 솔깃해지는 게 당연했다.

또한 용병들이 움직인다는 소식은 또 한 무리의 NPC들을 움직이게 했다.

NPC를 상대로 장사하는 NPC들.

검마노는 완벽한 세상이었기에 당연히 NPC들끼리도 거래를 했다. 심지어 서로 싸워 죽이기까지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용병 NPC들이 움직이면 그들에게 이런저런 물건을 팔던 보부상(褓負商)들도 같이 움직였다.

거처를 정하지 않고 떠돌며 장사하는 그들에게 오지에 생긴 개척 마을은 아주 좋은 상권이었다.

이렇게 점점 더 많은 NPC들이 거인의 흉터 안쪽에 생겼다는 개척 마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건 이제 슬슬 작업을 끝내도 된다는 뜻이었다.

어차피 이제부터는 소문이 소문을 부르는 단계가 되었기 때문에 그냥 놔둬도 자연스럽게 개척 마을로 많은 NPC들이 모여들게 되어 있었다.

이제 남은 건 그런 NPC들에게 땅을 임대해 주거나 마을의 공식 관리직들을 맡기는 것뿐이었다.

일단 율 일행은 마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마을 회관을 건설하기 위해 NPC인부들과 건축 기술자를 고용했다.

검마노에 존재하는 모든 건물들은 실시간으로 지어졌다.

물론 NPC들은 현실에서의 인부들은 감히 따라올 수도 없는 기술로 빠르게 건물을 완성시켰기에, 작은 집 하나를 30분도 안 걸려 만들 정도였다.

4층 높이의 비교적 넓은 마을 회관도 하루면 충분했다.

그렇게 마을 회관을 만들면 그때부터 비로소 마을 관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마을의 관리를 NPC에게 위임할 수도 있었다.

대신 NPC의 능력에 따라 마을의 발전 속도가 차이날 수는 있었다.

한마디로 능력 좋은 NPC를 고용하는 것도 유저의 역량이라는 뜻이었다.

거인의 안식처를 발견하고 길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을 개척 마을로 등록한 후 NPC들을 끌어 모았다.

그 뒤 NPC들을 고용해 마을회관과 몇 개의 상점 건물, 그리고 여관 역할까지 겸할 수 있는 작은 선술집도 만들었다.

협곡으로부터 들어오는 길목에 가장 중요한 시설물이라 할 수 있는 나무목책도 설치했고, 마을을 지킬 용병NPC들도 고용했다.

그나마 협곡이 점점 좁아지는 형태라 방어하기가 아주 용이하다는 게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용병은 고사하고 목책을 설치할 비용도 모자랄 뻔했다.

기본적인 건물들은 전부 올렸다.

마음 같아서는 몬스터를 근본적으로 차단시켜 주고 부활지점 역할도 하는 라이프 스톤도 설치하고 싶었지만, 현재의 재정 상태로는 절대 무리였다.

라이프 스톤만 무려 50만 골드를 호가했고 거기다 그것을 설치하려면 전문 기술자들도 필요했기에 아무 곳이나 설치할 수가 없었다.

일단, 라이프 스톤은 없지만 그래도 귀환 설정이 가능하도록 귀환 마법진을 설치했다.

이것도 무려 5만 골드가 들어간 고가의 시설물이었다.

그렇게 강풍이 준 20만 골드를 개척 마을에 탈탈 털어 넣었다.

들어간 돈을 생각하면 상당히 아쉬웠지만 그래도 나중을 생각하면 이 정도 투자는 할 가치가 있었다.

지금이야 워낙 인적이 드물어 세금이 한 달에 백 골드도 안 들어오겠지만 제대로 활성화만 되면 상당한 양의 세금을 얻을 수 있었다.

좀 오버한다면 세율을 높여 이득을 극대화시킬 수도 있었다.

물론 그랬다간 당장 마을을 이용하는 이들이 확 줄겠지만 어쨌든 마을이란 건 잘만 키우면 초대박을 쳐줄 수도 있는 존재였다.

그렇다 해서 율 일행이 대박을 노리고 개척 마을을 만든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운이 좋아 대박을 치는 건 그들도 적극 환영이었다.

20만 골드와 한 달(게임시간)이란 시간.

그렇게 그들은 개척 마을을 위해 상당한 정성을 쏟았고 그 결과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개척 마을이 진짜 활성화되기 위해선 유저들을 잡아야 했는데 의외로 상당수의 유저들이 개척 마을에 귀환 설정을 하고 근처를 사냥했다.

그동안 너무나 오지라 사냥하기를 꺼려했던 유저들이 완벽한 안전지라고 할 수 있는 개척 마을이 생기자 그곳을 베이스캠프 삼아 적극적으로 거인들의 흉터를 공략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지역에 등장하는 설인(雪人), 설호(雪虎), 설웅(雪熊), 설표(雪豹) 등등은 모두 상당히 인기 있는 몬스터였기 때문에 꽤 많은 유저들이 개척 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특히 마을 안쪽 깊숙한 곳에 있는 거대한 나무는 유저들에게 이 마을을 어필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유저들은 벌써 이 개척 마을을 큰 나무 마을이라 부르기 시작했을 정도다.

개척촌 No.16449번은 이렇게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율과 엘리스, 그리고 강풍이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녔다.

그들의 마을.

그들의 거점.

섀도우 로드의 심장이 될 이곳은 확실히 많은 가능성을 지닌 것이 분명했다.

“휴~ 이제 떠나도 되겠지?”

어렵게 고르고 또 골라 마을의 촌장 역할을 할 NPC를 고용한 율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한 달(게임시간) 동안 바쁘게 뛰어다니느라고 제대로 쉬지도 못한 그는 열심히 사냥하는 것보다 이게 더 힘들다고 느끼는 중이었다.

“다 끝난 건가? 확실히 이제 기본적인 작업은 다 끝낸 거 같죠?”

강풍 역시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엘리스가 조용히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피곤한 표정이었다.

세 사람 모두 차라리 한 달 내내 고레벨 몬스터 사냥을 하면 했지 이 짓은 또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바로 떠나자.”

그들은 이미 어디로 갈지 결정해 놓은 상태였다.

“근데 붉은 대륙에 가본 사람 있어?”

율이 엘리스와 강풍을 돌아보며 물었다.

“가본 적 없어.”

“나도.”

당연히 엘리스와 강풍은 붉은 대륙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건 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일단 붉은 대륙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레논으로 가볼까?”

“오~ 레논! 검마노의 도시들 중 가장 화려한 도시라던데… 일명 불야성(不夜城)이라 불린다지 아마?”

강풍이 재미있겠다는 표정으로 얘기했다.

“레논은 검마노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도시이니까 분명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율 일행이 가야 하는 곳은 ‘불사조의 무덤’이었다.

하지만 그곳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율이 열심히 여기저기에서 정보를 구하려 애써봤지만 그 어디에도 불사조의 무덤이란 곳은 없었다.

일단 붉은 대륙의 한 지역이란 것은 거의 확실해 보였지만 그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그곳을 찾기 위해서는 직접 붉은 대륙으로 넘어가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휴~ 그나저나 얼음 대륙하고 붉은 대륙은 이동 포탈이 제대로 안 갖춰져 있어서 이동하기가 상당히 불편하다던데… 레논까지 가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

동대륙이 가장 발전했고, 그 다음으로 붉은 대륙과 검은 대륙 그리고 마지막으로 얼음 대륙이었다.

그나마 최근 얼음 대륙의 개척에 속도가 붙으며 붉은 대륙과 검은 대륙을 상당히 따라잡은 상태였다.

하지만 동대륙을 제외한 다른 대륙들은 대부분 이동 포탈이 제대로 깔려 있지 않았다.

동대륙의 개척 마을들은 대형 길드들이 선점해 100만 골드나 하는 이동 포탈을 어렵지 않게 설치했지만, 나머지 대륙들은 대형 길드보단 중소형 길드들이 개척 마을을 개발하고 있는 입장이라 이동 포탈이 있는 마을을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거기에 동대륙에서 유행하고 있는 개인 운송 서비스도 다른 대륙에선 아직 상용화가 되지 않았기에 결국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직접 발품을 팔아 이동하는 것!

당연히 선택의 여지는 전혀 없었다.

“그래도 두 달(게임시간)이면 충분할 거다.”

율은 적극적으로 탈것을 대여하고 최대한 이동에 중점을 둔다면 두 달 안에 레논에 도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단 떠나자. 어차피 여기 소식은 촌장이 알아서 우편으로 보내줄 테니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다시 우편으로 지시 내리면 될 것이고… 우린 그저 레논을 향해 열심히 가면 된다.”

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동시에 엘리스와 강풍도 일어났다.

개척 마을을 떠나는 율 일행.

그들은 그렇게 또 하나의 소울 스톤 조각을 찾아 붉은 대륙으로 향했다.

* * *

레벨 250.

이것이 현재 검마노에서 올릴 수 있는 최대 레벨이었다.

더 이상 레벨을 올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검마노는 사실상 레벨을 250까지 올린 후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스킬.

특수능력치.

아이템.

호칭.

명성.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경험.

이 모든 것들은 레벨처럼 끝이 존재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해도 절대 끝을 보여주지 않는 그런 것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율과 엘리스, 강풍은 레벨을 뛰어넘는 능력을 지닌 이들이었다.

붉은 대륙으로의 여정.

그들은 굳이 길을 따라가지 않았다.

자신들이 길을 만들었다.

다른 유저들이 밟아보지 못한 미지의 땅을 직접 개척해 최단 거리의 길을 찾아내며 나아갔다.

이것은 모두 그들에게 대단한 경험이 되었다.

전혀 새로운 몬스터를 만나고, 전혀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며 그들은 점점 더 성장해 나갔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를 정도로 뜨거운 햇살.

땅바닥에서 올라오는 지열(地熱)은 발바닥을 익혀버릴 것처럼 강렬했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온몸을 얼려버릴 것 같은 추위와 싸우던 율 일행은 너무 급격하게 바뀌어버린 날씨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후우~ 이렇게 갑자기 기후가 바뀌어도 되는 거야?”

아까부터 계속 투덜거리고 있던 강풍.

그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설정상 이 붉은 대륙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불을 다스리는 불의 신 이그니아가 잠들어 있는 곳이니 어쩔 수 없지.”

검마노에 존재하는 다섯 개의 대륙.

먼 옛날 다른 차원의 악신(惡神) 뮤온으로 인해 갈라진 이 다섯 개의 대륙은 각각 그 대륙을 죽음의 땅에서 떼어낸 신들의 성향에 따라 제각각의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당연히 불의 신 이그니아가 떼어낸 이 붉은 대륙은 어딜 가도 몸이 타버릴 것 같은 더위를 느껴야 했고, 지형 자체도 사막이 꽤 많았다.

얼음 대륙이 어딜 가도 눈보라가 몰아치는 혹한의 날씨를 자랑했던 것처럼 이곳 역시 그러했다.

아직 가보지는 않았지만 검은 대륙은 낮보다 밤이 훨씬 길고, 전체적으로 서늘한 기온을 지닌 대륙이라고 했다.

즉, 이 더위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젠장, 난 차라리 추운 게 더 나은 거 같다.”

추위보다 더위가 더 싫은 강풍.

그는 확실히 다른 사람들보다 땀을 더 흘렸다.

“사람마다 이런 것도 다른 건가?”

그런 강풍을 보던 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가끔은 현실과 너무나 똑같은 가상현실을 재현한 이 검마노의 세상에 너무 깜짝 놀랐는데, 이런 게 딱 그런 상황이었다.

유저들마다 더위를 느끼거나 추위를 느끼는 성향마저도 각각 다르게 만드는 섬세한 설정.

이건 정말 도저히 게임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확실히 대단하긴 하네.’

인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아쉬운 대로 이거라도 먹어라.”

율이 가방에서 시원한 마나 물약을 하나 꺼내주었다.

가방 안에 들어가 있는 아이템들은 신선도를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에 물약은 살 때 그대로의 시원함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포스 유저인 강풍은 마나 물약을 먹어도 아무 효과가 없었다.

그냥 물 같은 작용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 물약은 시원한 청량음료만큼이나 상쾌한 맛을 지니고 있었기에 적어도 갈증을 해소할 순 있었다.

퐁~

꿀꺽꿀꺽!

마나 물약을 받아 단번에 다 마셔버리는 강풍.

확실히 그는 상당히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캬아~ 이제 좀 살 것 같네.”

입을 훔치며 고개를 흔드는 강풍.

마나 물약 한 병으로 어느 정도 갈증을 해소한 그는 약간이나마 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

“갈 길이 멀다. 일단 이 앞에 오아시스 개척 마을이 있는 것 같으니까 그쪽으로 가자.”

원래는 어지간하면 마을에 들르지 않고 곧장 레논으로 향할 생각이었으나… 예상을 뛰어넘는 폭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간중간에 있는 오아시스에 들러야 할 상황이었다.

“근데 이 더위는 그렇다 치고, 이놈의 사막 전갈들은 죄다 거지인 거야? 이거 잡는 맛이 전혀 없네.”

강풍이 주변을 둘러보며 투덜거렸다.

그들 주변에 널려 있는 사막 전갈들의 시체.

거의 20여 마리의 사막 전갈들이 산산 조각이 나 흩어져 있었다.

강풍의 말대로 그렇게나 많은 사막 전갈들이 쓰러졌지만 놈들이 떨어뜨린 아이템은 전무했다.

독을 제조할 때 쓰이는 재료 아이템인 전갈의 독주머니 같은 잡템만 몇 개 떨어졌을 뿐이다.

그나마 워낙 공급이 많아 별로 비싸지도 않은 아이템이었다.

거의 1m 정도의 크기를 자랑하는 200레벨의 몬스터답지 않게 너무나 거지 몬스터였던 사막 전갈.

가뜩이나 더운데, 거지 몬스터로 소문난 사막 전갈을 계속 잡으려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어쩌겠냐. 붉은 대륙에서 사막 전갈은 피할 수 없는 놈들 인 것을… 그냥 스킬 연습이나 한다고 생각해라.”

짜증나는 건 율도 마찬가지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붉은 대륙 사막에는 거의 90%의 사막 전갈이 살고 있었고, 이 사막을 관통하려면 필히 사막 전갈들을 해치우며 전진해야 했다.

“쩝, 그런가? 그나마 사막 마적단을 안 만난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겠네.”

사막 마적단은 사막에 등장하는 도적무리들이었다.

전부 200레벨대의 무법자 NPC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략 40명가량이 몰려다녔기 때문에 어설픈 파티는 상대하기가 쉽지 않은 놈들이었다.

특히 놈들은 단순히 유저를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유저의 아이템을 강탈해갔기 때문에 유저들 입장에선 가장 만나기 싫은 것들이었다.

“근데 마적단을 잡으면 굉장히 짭짤하다고 하더라. 마적단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강탈한 아이템들을 전부 들고 다닌데… 그래서 잡기만 하면 대박이라던데.”

율은 하이퍼넷의 어느 곳에서 읽었던 정보가 떠올랐다.

사막 마적단의 비밀이라던 그 정보.

물론 사막 마적단은 워낙 신출귀몰한 놈들이었고, 자신들이 조금이라도 불리할 것 같으면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버리는 놈들이었기에 사냥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 그럼 차라리 만나면 좋은 건가?”

“글쎄, 근데 쉬운 상대는 아닐걸?”

무법자 NPC들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그들은 NPC답게 보통의 몬스터보다 더 영리했고, 그 영리함은 결국 그들을 더욱 까다로운 상대로 만들어 주었다.

당연히 단 세 명으로만 이루어진 파티로 상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적단…….”

율과 강풍의 대화를 듣다 조용히 중얼거리는 엘리스.

순간 그녀의 눈빛이 빛났다.

“노노~ 엘리스, 마적단은 안 돼.”

엘리스의 저 눈빛은 싸워보고 싶은 상대가 생기거나 도전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주로 보이는 것이었다.

그것을 눈치 챈 율이 손사래를 치며 엘리스에게 얘기했지만 이미 엘리스는 마적단에 꽂힌 상태였다.

‘하긴, 뭐 거의 만나기 불가능한 놈들이니까 크게 상관은 없겠지.’

마적단을 만나는 건 무척 재수 없는 일이었지만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일까지 걱정하면서 여행을 할 수는 없었다.

“가자! 한 10분만 더 가면 오아시스에 도착할 수 있을 거다.”

사막 전갈과 싸우다 묻은 모래를 털며 앞으로 걸어 나가는 율. 엘리스와 강풍도 모래를 털며 따라나섰다.

그들의 사막 여행.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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