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 삼인(三人) 레이드 (39/95)

12. 삼인(三人) 레이드

아이스 웜.

레벨은 대략 350대로 추정.

당연히 보스 몬스터였고, 중소규모의 레이드 팀이 공략하는 레이드 팀용 보스 몬스터였다.

크기는 전체 길이만 대략 17~20m는 되는 초대형 몬스터.

생긴 건 지네처럼 생겼고, 가장 무서운 공격은 입에서 내뿜는 브레스였다.

브레스에 맞으면 순간적으로 그 부위가 얼어붙고 강력한 독까지 몸에 퍼지기 때문에 굉장히 큰 데미지를 입게 된다.

제대로 맞으면 단 한 방에 체력이 높은 탱커 유저들도 게임 아웃이 될 정도다.

물론 특수 공격이기 때문에 마구 남발하지는 않지만 중간중간 랜덤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늘 주의를 할 필요가 있었다.

어쨌든 아이스 웜은 파티로 잡는 보스 몬스터가 아니었다.

적어도 14명(두 파티) 정도의 파티 연합이 잡는 그런 몬스터였다.

그런데 여기 단 세 명으로 아이스 웜에 도전하는 겁 없는 이들이 있었다.

삼인 레이드.

과거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찾아보기 힘든 다소 무모한 도전이 지금 시작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놈의 시선은 엘리스가 끄는 걸로 하고, 강풍이 넌 무조건 뒤를 잡아라.”

율은 기본적인 진형을 이야기하며 묵현을 튕겼다.

빠르게 완성되는 버프들.

율이 버프를 돌릴 동안 엘리스는 충격파를 쏘며 아이스 웜을 자신 쪽으로 끌어들였다.

“엘리스, 무리하지 말고 원거리 공격 위주로 놈의 힘을 빼자. 어차피 단기간에 잡을 수 없는 놈이니까 최대한 우리가 공격을 피하며 생명력 관리를 해야 해.”

레이드용 보스 몬스터였기에 당연히 생명력이 굉장히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셋이 강하게 몰아붙여도 짧게 끝낼 수가 없었다.

결국 답은 장기전밖에 없는데… 중요한 건 힐러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유저들은 보통 이런 경우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단기전으로 가려고 한다.

하지만 율은 발상을 바꿨다.

힐러가 없지만 장기전으로 간다.

대신 힐러가 없는 만큼 최대한 맞지 않으며 버티고, 조금씩 떨어지는 생명력은 포션과 자신의 아주 미약한 노래 효과로 커버한다.

이건 자신의 실력은 물론이고 엘리스와 강풍의 실력을 믿었기에 가능한 전법이었다.

아이스 웜이 전체 몸의 반쯤을 거의 밖으로 드러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위압감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크어엉!

날카로운 주둥이로 엘리스를 노리는 아이스 웜.

꽈광!

하지만 애꿎은 땅바닥만 깊숙이 파이며 공격에 실패했다.

당연히 엘리스가 아이스 웜의 공격에 쉽게 맞아줄 리가 없었다.

그녀가 갑옷을 벗어던지며 스피드를 더욱 업(UP)시켰다. 어차피 이놈에게 방어력은 별로 의미가 없었다.

투구마저 벗어버린 엘리스.

오랜만에 그녀의 몽환적인 긴 은발이 허공에 흩날리며 아름다운 얼굴을 드러냈다.

평소라면 잠깐이라도 그 얼굴을 감상(?)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대략 몇 분에 걸쳐 기본적인 버프들을 다 부여한 율은 곧장 불타는 대지로 공격을 시작했다.

율이 불타는 대지를 쓰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순수하게 공격을 지원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불길을 만들어 최대한 주변 온도를 올리려는 것이었다.

장기전으로 갔을 때 또 한 가지 위험한 것은 너무나 추운 이 기온이었다.

기온이 너무 낮으면 가만히 있어도 생명력이 조금씩 떨어지기 때문에 율은 강제로 그 기온을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화르르륵!

율의 연주와 함께 아이스 웜 주변에 화염이 솟아올랐다.

확실히 공격적인 측면에서도 불타는 대지는 매우 좋았다.

아이스 웜 자체가 불 속성에 약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데미지가 쏠쏠하게 들어갔다.

크앙!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스 웜은 점점 더 난폭해졌다.

특히 놈은 등 뒤에서 집요하게 한 지점을 노리고 공격하는 강풍에게 가장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물론 그래봤자 게임 시스템의 한계로 인해 잔뜩 위협 수준을 높여놓은 엘리스만 바라보고 있었지만, 가끔 지하에 박혀 있던 꼬리를 들어 올려 휘두를 땐 꼭 강풍을 노렸다.

꽈광!

날카로운 송곳처럼 생긴 아이스 웜의 꼬리를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강풍.

그는 이 추운 곳에서 땀까지 흘려가며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얼마나 남은 거 같아?”

강풍이 들고 있던 창을 고쳐 잡으며 율에게 물었다.

“글쎄, 지금 거의 한 시간 정도를 싸웠으니 한 30%는 깎지 않았을까?”

“그것밖에 안 돼?”

“명색이 보스 몬스터다. 그것도 레이드용 보스 몬스터… 우리가 아무리 강력한 공격을 꽂아 넣는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법이야.”

“하지만 이러다간 우리가 먼저 지칠 거 같은데…….”

이건 생명력의 문제가 아닌 기력의 문제였다.

기력이란 수치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능력이었다.

물론 생명력이 떨어지면 기력도 떨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둘이 같은 능력이란 뜻은 아니었다.

서로 연관이 있을 뿐, 기본적으로는 다른 능력들이었다. 기력은 배가 고프거나, 크게 다쳤거나, 정신적인 피로가 쌓이거나, 과한 움직임이 계속되면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지금 같은 경우는 정신적인 피로에 과한 움직임이 겹쳐지면서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이들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이 정도인 것이지,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이미 이 추운 날씨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기력이 급격히 떨어졌을 것이다.

“조금만 더 버텨라! 놈의 생명력이 20% 이하로 떨어지면 승부를 건다.”

율도 이대로 계속 끝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

이대로 놈을 말려 죽이려고 하다간 자신들이 먼저 쓰러질 것이란 사실을 율도 잘 알고 있었다.

율은 마지막 한수를 가지고 그걸 쓸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그 한수를 쓰는 타이밍을 잡느냐, 아니면 그전에 먼저 지쳐서 쓰러지느냐… 이게 이번 전투의 승부수가 될 것 같았다.

“브레스!”

엘리스의 외침.

그녀는 아이스 웜의 작은 준비 동작만으로도 브레스 타이밍을 정확하게 예측해냈다.

놀라운 집중력.

확실히 전투의 집중력은 율도 강풍도 그녀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파파팟!

아이스 웜의 전방에 위치했던 엘리스와 율이 동시에 좌우로 갈라지며 브레스를 피했다.

커어어엉!

콰과과과과과!

아이스 웜의 입에서 폭풍처럼 쏟아지는 흰색의 한기(寒氣).

이걸 맞으면 너무나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피하는 게 맞았다.

쩌저저저적!

그 한기가 지나간 지역이 모두 얼어버렸다.

심지어 율이 펼쳐놓았던 불타는 대지도 한순간에 얼어버렸다.

엄청난 위력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위력이 좋아도 맞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압!”

퍼퍼퍼펑!

엘리스가 빠르고 간결하게 용권파를 쏟아냈다.

아이스 웜의 옆구리를 강타라는 네 발의 용권파.

아이스 웜의 전체 체력에 비교하면 그다지 많지 않은 데미지였겠지만, 이미 수백 번의 공격을 성공시켰기 때문에 용권파로 인해 누적된 데미지는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엘리스는 틈만 나면 용권파를 찔러 넣었기 때문에 이젠 아이스 웜도 용권파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휘이잉!

아이스 웜의 오른쪽 180도 방향에 모두 영향을 미치는 꼬리치기 공격.

율은 다소 패턴적인 이 공격을 뒤로 점프하며 어렵지 않게 피해냈다.

꽈광!

당연히 엘리스 역시 더 왼쪽으로 몸을 돌리며 움직이는 것만으로 이 공격을 피했다.

이미 한 시간 동안의 전투로 아이스 웜의 대략적인 스킬 패턴은 다 읽힌 상태였다.

가장 무서운 공격인 브레스부터 브레스 이후 80% 이상의 확률로 사용하는 꼬리치기.

강풍의 공격이 제대로 적중하면 70% 확률로 사용하는 꼬리 꿰뚫기.

주로 엘리스에게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주둥이 찍기.

브레스 만큼이나 위력적이지만 빈번하게 사용하지는 않는 몸통 공격.

이 정도가 아이스 웜이 사용하는 기술들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브레스와 몸통 공격은 절대 맞으면 안 되는 것들이었다.

특히 몸통 공격은 갑자기 몸을 동그랗게 만 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마구 굴러다니는 공격이었기 때문에 가장 피하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자주는 사용하지 않고 한 시간 동안 단, 두 번만 사용했기 때문에 버텨낼 수 있었다.

그그긍!

갑자기 요동치는 아이스 웜.

이건 세 사람이 가장 경계하는 움직임 중 하나였다.

“몸통 공격이다!”

강풍이 혈창으로 땅을 찍으며 빠른 속도로 뒤로 튕겨져 나갔다.

몸통 공격은 일단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게 좋았기 때문에 무조건 거리를 벌렸다.

엘리스도 땅바닥에 충격파를 쏘아내며 그 반동력을 이용해 빠른 속도로 뒤로 빠졌고, 율은 묵현을 연주하며 ‘바람 따라 걷기’ 스킬을 사용했다.

모두가 나름의 방법으로 거리를 벌리는 그 순간!

아이스 웜이 몸을 동그랗게 말고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꽝!

콰과광!

이리저리 굴러다니기 시작하는 아이스 웜.

이 공격이 무서운 건 공격 방향을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율!”

강풍의 외침!

이번에는 율이 위험해졌다.

앞선 두 번의 경우는 전부 강풍 쪽으로 집중되었던 몸통 공격이 이번엔 율 쪽으로 집중되었다.

율도 강풍이 외치기 전에 이미 자신에게 공격이 집중되는 걸 알아차렸다.

그는 최대한 정신을 집중해 아이스 웜의 그 예측할 수 없는 몸통 공격의 모든 경우의 수를 가상으로 그려보았다.

호접몽의 능력으로 실제로 그 경우의 수가 마구 그려졌다.

그리고 그 경우의 수들 가운데 빈틈이 보였다.

‘저기다!’

그 짧은 순간에 찾아낸 교묘한 공간.

그곳은 아이스 웜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든지 피해를 입지 않는 안전지대였다.

율은 뒤로 물러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아이스 웜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한 지점에서 딱 멈춰 섰다.

꽈광! 꽈과광!

율의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아이스 웜.

한 발자국만 옆에 서 있었어도 아이스 웜의 거대한 몸통에 직격으로 맞았을 상황이었건만 율은 전혀 당황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정말 놀라운 상상력과 집중력이었다.

율은 날이 갈수록 이 호접몽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실감하고 있었다.

물론 율이 스스로 노력해서 얻어내고 개발한 것들이었지만 어쨌든 대단한 능력인 것만은 사실이었다.

율은 계속해서 아이스 웜을 주시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모두 사용해 안전지대를 찾았다.

단, 몇 발자국의 걸음.

그것만으로 율은 아이스 웜의 강력한 몸통 공격을 모두 피해버렸다.

강풍이 미친 듯이 달리고 달려서 공격을 피한 것과 비교하면 너무나 깔끔한 회피였다.

“쳇, 너무 쉽게 피하는 거 아냐?”

강풍은 괜히 심술을 부렸다. 물론 진짜로 심술을 부리는 건 아니었다.

“억울하면 너도 이렇게 피해.”

농담에 농담으로 대답하는 율.

이 와중에 서로 농담을 한다는 건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쿠쿠쿠쿵!

약 30초간의 몸통 공격이 끝나자 아이스 웜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계속 이어지는 세 사람과 아이스 웜의 전투.

아무래도 이 전투는 좀 더 시간이 지나봐야 그 결과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세 시간(게임시간).

율과 엘리스, 그리고 강풍이 삼인 레이드를 시작하고 세 시간이 흘렀다.

세 시간이란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아무리 그들이 강하다고 해도 세 시간 동안 계속 움직이고 또 움직이는 건 대단히 힘든 일이었다.

“헉… 헉…….”

가쁜 숨을 내쉬는 강풍.

가장 활발하게 공격하고 또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 덕분에 세 사람 중 가장 많이 지친 그였다.

기력이 떨어지면서 생명력까지 영향을 미쳐 이제는 20%도 되지 않는 생명력으로 간신히 버티는 중이었다.

물론 율과 엘리스라고 해서 별반 다를 건 없었다.

강풍보다 조금 더 나을 뿐이지 그들도 거의 30%대까지 생명력이 떨어진 상태였다.

“앞으로 20분도 버티기 힘들다.”

이미 30분 전부터 생명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 강풍은 20분이란 한계 시간을 얘기했다.

강풍이 무너지면 끝이었다.

‘승부를 걸어야 하나?’

하지만 아직 뭔가 아슬아슬해 보였다.

아이스 웜의 생명력은 아직 20% 이하로 떨어진 것 같지 않았다.

20% 이하로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승부수를 띄웠다간 자칫 몇 %의 생명력을 남긴 채 아쉽게 먼저 쓰러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대로 시간을 보내다가는 답이 안 나온다!’

분명 지금 승부수를 띄우는 건 다소 모험적이었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마지막까지 온 상태였다.

지금이 아니면 이후엔 아예 승부수를 띄울 기회마저 없을 게 분명했다.

“좋아, 바로 승부다!”

“오오~ 자, 그럼 마지막을 불태워볼까?”

“준비됐어.”

이미 엘리스와 강풍은 율의 승부수가 뭔지 알고 있었다.

율이 가진 가장 강력한 스킬.

바로 ‘진정한 영웅들의 서사시’였다.

율에게 남은 소울에너지는 약 30%.

그는 두 사람에게 각각 영웅들의 영혼을 하나씩 넣어주고 자기 자신도 파멸왕 슈나이더의 영혼을 강림시킬 생각이었다.

강풍에게는 아주 멋 옛날 신창(神槍)이라고 불렸던 미트라의 영혼을, 엘리스에겐 권왕(拳王) 독고천의 영혼을 넣어주었다.

이미 엘리스와 강풍은 종종 이 영혼들을 주입받았었기 때문에 상당히 익숙하게 영혼의 힘들을 사용할 수 있었다.

엘리스 같은 경우는 상성이 잘 맞아 거의 100%의 능력을 이끌어냈고, 강풍 역시 80~90% 정도의 능력은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걸로 그들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훌쩍 뛰어넘는 괴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신창 미트라의 영혼을 얻은 강풍은 미트라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연환창법(連環槍法)을 이용해 자신의 섬멸창이 가지는 파괴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다.

아쉬운 건 신창 미트라가 가진 기술들이 대부분 동(動)적인 게 아니라 정(靜)적인 기술들이라 활발하게 움직이며 기술을 날리는 강풍과는 살짝 맞지가 않았다.

그래도 강풍은 나름 신창의 기술을 재해석해 자신에게 맞게 만들었다.

또 한 사람, 권왕 독고천의 영혼을 얻은 엘리스는 권왕이 가진 기술 중 금강철신(金剛鐵身)과 일월강기(日月罡氣)를 주로 사용했다.

금강철신은 포스를 이용해 몸 자체를 금강처럼 단단하게 만드는 기술이었는데, 유지 시간은 짧지만 적어도 기술이 유지되는 시간만큼은 거의 모든 종류의 데미지에 피해를 입지 않았다.

또한 일월강기는 해와 달의 힘을 양 주먹에 맺히기에 강한 파괴력을 만들어내는 강력한 기술이었다.

엘리스의 실전 감각에 이 위력적인 기술 두 개가 합쳐지자 엘리스는 엄청난 괴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타이밍을 맞춰 금강철신을 사용해 방어하고 일월강기를 통해 치명적인 일격을 넣는 그녀의 전법은 당하는 입장에선 너무나 두려운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 파멸왕 슈나이더의 영혼을 강림시킨 율도 추가되었다.

이렇게 되자 세 사람은 정말 어지간한 레이드 팀을 능가하는 화력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으아아아!”

촤아아아!

허공을 가르는, 아니 공간을 가르는 혈창.

퍼펑! 펑!

퍼퍼펑!

혈창이 어지러운 그림자를 만들며 아이스 웜의 몸통을 마구 때렸다.

섬멸창의 기운이 어린 혈창이 신창의 연환창법을 기반으로 움직이며 아이스 웜을 공격하자 마치 아홉 마리의 호랑이가 아이스 웜을 물어뜯는 것 같은 느낌이 났다.

나중 얘기지만 이 기술은 훗날 맹호구연격(猛虎九連擊)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이 공격이 끝이 아니었다.

강풍이 움직이는 순간 같이 움직이는 엘리스.

지금까지 그녀는 외곽으로 돌며 적극적인 근접전을 절대 피했었는데 이제는 아예 대놓고 아이스 웜 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움직이는 그녀의 손과 발.

놀랍게도 손과 발 모두에 일월강기가 생성되어 있었다.

꽝! 꽈광!

꽈과광!

아이스 웜의 몸을 두들기는 일월강기.

한 대, 한 대가 굉장히 강력하게 아이스 웜의 몸을 파고들었다.

강풍과 엘리스가 전면 공격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율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어느새 꺼내든 빙룡과 화룡.

율은 시작부터 비기라 할 수 있는 멸천을 발동시켰다.

츠츠츠츳!

하늘 높이 치솟는 검은색 포스 블레이드.

율이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아이스 웜의 머리를 향해 멸천을 휘둘렀다.

크어어어어어엉!

갑작스러운 세 사람의 총공세에 아이스 웜이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쉴 틈 없이 쏟아지는 공격들.

아이스 웜은 이 공격에 맞서 반격해야 했지만 워낙 공격들이 거세고 강력하다 보니 일단 움츠려들며 공격을 막으려고 할 수밖에 없었다.

파상 공세가 이어졌다.

영혼의 유지 시간은 20분.

그 안에 승부를 봐야 했다.

어차피 영혼의 효과 시간이 끝나면 영혼의 힘으로 버티던 그들은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아!”

율은 빙룡과 화룡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아이스 웜을 양단(兩斷)할 기세로 달려들었다.

공격 또 공격.

삼인 레이드의 마지막은 광기마저 느껴지는 파상 공세가 장식했다.

모든 걸 쏟아냈다.

엘리스도 강풍도… 그리고 율도.

그들은 대략 20분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공격을 퍼부었다.

이제 영혼의 효과가 취소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1분.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아이스 웜은 쓰러지지 않았다.

“진 건가?”

강풍이 꽤 지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직 포기하긴 일러.”

강풍과 달리 율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단 1초가 남더라도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는 율이 다시 검을 휘둘렀다.

꽈광!

검을 아예 몸으로 막는 아이스 웜.

아이스 웜도 거의 한계까지 다다른 상태였다.

크어어!

아이스 웜의 주둥이 공격!

율은 공격을 피해야 하건만 몸이 생각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젠장!’

이걸 제대로 맞으면 바로 게임 아웃이었다.

율은 옆으로 몸을 굴렸다.

파파팟!

꽈광!

율의 왼쪽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아이스 웜의 주둥이.

“크으!”

율이 상당한 데미지를 입고 바닥으로 뒹굴었다.

그 순간 엘리스가 아이스 웜의 머리 아래로 파고들었다.

“으합!”

그리곤 곧장 강기가 어려 있는 주먹으로 아이스 웜의 머리 아랫부분을 쳐올렸다.

정말 훌륭한 승룡권이었다.

꽈과광!

크어어어엉!

강력한 승룡권 공격에 공중으로 살짝 떠버린 아이스 웜.

그 순간 엘리스가 뒤로 텀블링을 하며 두 다리로 아이스 웜을 다시 한 번 강하게 차올렸다.

엘리스가 가진 모든 힘을 집중시킨 반달차기였다.

꽈과과광!

더 큰 충격파가 생성되며 아이스 웜의 몸이 공중으로 상당히 떠올랐다.

쾅!

엘리스는 거의 모든 힘을 소진하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정말 이제는 마지막 한 방만 성공시키면 될 것 같은 상황이었다.

“강풍!”

엘리스가 그 마지막 한 방을 강풍에게 넘겼다.

엘리스가 외치기 전부터 이미 혈창을 고쳐 잡고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아이스 웜을 향해 돌진하는 강풍.

한 방, 단 한 방만 제대로 넣으면 이 징글징글한 전투를 끝낼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아이스 웜 역시 마지막 남은 모든 힘을 짜내 반격을 시도했다.

스으으으!

“브레스!”

엘리스가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으로 외쳤다.

아이스 웜의 마지막 반격.

그것은 바로 브레스였다.

이대로라면 세 사람 모두 브레스 공격에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강풍의 한 방보다 아이스 웜의 브레스가 더 빠를 것 같은 그 절체절명의 순간, 강풍은 자신을 가로막는 두 사람의 그림자를 보았다.

먼저 앞장선 것은 엘리스.

엘리스가 양손을 교차시키며 아이스 웜의 머리와 일직선이 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섰다.

그리고 율은 움직일 수 있는 남은 오른손을 이용해 화룡을 들어 넓은 도면을 앞으로 향하게 한 후 강풍을 가로막았다.

크어엉!

콰과과과과!

쏟아지는 하얀색 한기.

그 한기가 먼저 엘리스에게 도달했다.

쩌저정!

온몸으로 한기를 막았지만 그 결과 그대로 얼어버린 엘리스.

엘리스를 얼려버린 한기는 율마저 삼켜버렸다.

화르륵!

화룡의 기운을 극대화시키며 버티는 율.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온 ‘세계수의 보호’ 스킬도 사용하고, 남은 모든 소울에너지 역시 모두 화룡에 쏟아 부었다.

치이이이익!

기화하는 브레스!

결국 율은 버텨냈다.

아이스 웜의 그 강력한 브레스를 온몸으로 버텨낸 것이었다.

물론 그 덕분에 엘리스는 곧장 게임 아웃되었고, 율 역시 파멸왕의 영혼이 사리지는 그 즉시 게임 아웃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버텨냈다는 사실이었다.

“으아아아!”

강풍은 두 사람의 희생을 헛되게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곧장 이어지는 혈창의 비상(飛上)!

퍼퍼펑!

혈창이 아이스 웜의 머리를 꿰뚫었다.

예상대로 이 공격은 마지막 한 방이 되었다.

아이스 웜은 그대로 쓰러졌고… 세 사람은 기적같이 삼인 레이드를 성공시켰다.

띠링, 레이드용 보스 몬스터 아이스 웜을 해치웠습니다.

띠링, 아이스 웜 슬레이어(AA)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띠링, 아이스 웜이 뚫어놓은 터널을 통해 거인의 흉터 안쪽에 존재하는 비밀 공간을 찾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띠링, 아이스 웜이 삼켰던 소울 스톤의 조각을 찾았습니다.

띠링, ‘진정한 영웅들의 서사시’의 숙련도가 0.04 상승했습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