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연승(連勝)
투기장은 기본적으로 독립된 하나의 인스턴트 던전과도 같은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경기를 관전할 관중이 입장하고 그 관중들이 앉은 관중석 앞으로 반투명한 막이 생기며 커다한 경기장이 형성된다.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은 관중을 볼 수 없다.
반투명한 막이 선수들에겐 강력한 차단막이 되기 때문이었다.
관중들은 경기장 안의 모든 사물을 반투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에 관전하는데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선수들 역시 관중들이 자신들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않기 때문에 전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투기장은 거의 모든 종류의 싸움이 허용되는 무한 배틀 필드였다.
치사하거나 얍삽하다고 손가락질할 필요도 없었다.
무조건 이기는 자가 모든 영광을 차지하는 곳.
당연히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많은 이들은 투기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을 세 가지로 꼽았다.
첫 번째, 적.
투기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다.
상대방이 어떤 클래스인지? 어떤 전략으로 움직이는지? 어떤 장비들을 가지고 있는지? 이 모든 걸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처를 할 필요가 있었다.
상대방이 마법사인데 무턱대고 돌진하면 순식간에 마법 공격에 녹아버릴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힘에 대한 무모한 과신은 패배와 직결되었다.
두 번째, 소모성 아이템.
모든 것이 사용 가능한 투기장에서 그 모든 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당연히 남에게 뒤처지게 되어 있었다.
각종 회복 물약은 물론이고 여러 가지 전문기술로 만들어진 1회성 아이템들은 PvP에서 엄청난 역할을 하는 게 사실이었다.
당연히 사용하는 게 기본이었고, 준비를 못한 이는 그 자체로 투사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세 번째, 거점.
모든 경기장에는 거점이 있다.
거점의 숫자는 1, 3, 5, 7, 9까지 홀수로 만들어졌다.
거점을 장악하면 각종 특수버프를 얻을 수 있고, 기본적으로 생명력과 이능 에너지의 회복 속도가 상당히 증가한다.
그리고 혹시 제한시간(1시간~2시간) 안에 승부를 내지 못할 경우, 거점을 많이 먹은 이가 승리하게 되어 있었다.
적과 소모성 아이템, 그리고 거점.
이 세 가지야말로 투기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중요한 요소들이었다.
율은 나름대로 투기장에 대해 알아보았었다.
그리고 나름 준비도 했다.
대책 없는 엘리스를 위해 은근슬쩍 소모성 아이템을 대신 구입해서 주기도 했다.
어쨌든 준비는 모두 끝났고, 남은 건 실전뿐이었다.
율의 첫 경기는 오전에 있었다.
경기장은 7-81.
그곳은 일반 경기장이었다.
규모는 대략 가로, 세로 500m의 정사각형 가상공간.
율의 상대는 7급 투사 랭킹 27위를 차지하고 있는 유저였다.
나름 팬도 확보하고 있던 그녀는 일본인 유저로서 빠른 몸놀림이 특징인 도적 계열로 알려져 있었다.
이름은 미야.
현재 5연승 중인 그녀는 투사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유망주로 알려져 있는 상태였다.
그런 그녀의 상대로 결정된 율.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야의 낙승을 예상했다.
처음 투사가 된 사람들은 아무리 밖에서 잘 나갔었어도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법.
당연히 율도 그런 시간을 거칠 거란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이 잘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적응 기간도 결국 비슷한 수준의 유저가 만났을 때나 적용된다는 법… 그들은 그 간단한 힘의 법칙을 몰랐다.
* * *
삐이! 거점을 확보했습니다.
율은 자신이 서 있던 거점이 붉은색으로 바뀌는 걸 확인하곤 곧장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점을 빼앗겼으니 바로 반격이 들어올 만도 했지만 아직까지는 잠잠했다.
‘은신 후 기습인가?’
미야의 직업 특성상 그냥 기습하는 것보다 은신 상태에서 기습을 하는 게 보너스 데미지를 훨씬 많이 얻을 수 있었기에 은신 후 기습의 가능이 매우 높았다.
‘그렇다면!’
이럴 경우 타이밍이 매우 중요했다.
‘하나, 둘, 셋… 지금!’
율은 타이밍을 예측한 후 곧바로 양손에 들고 있던 대검과 대도를 허공에 휘둘렀다.
파멸쌍대검술의 토네이도 블레이드.
파파파팟!
그 결과 순간적으로 율의 몸 주변에 강력한 검기의 토네이도가 형성되었고, 그 토네이도는 은신해서 접근을 하던 미야를 공격했다.
까강!
“크윽!”
타이밍 싸움에서 져버린 미야.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뒤로 텀블링을 뛰며 물러났다.
미야가 드러나자 율은 곧장 미야를 향해 달려 나갔다.
현재 거점의 숫자는 2 : 1로 율이 하나를 앞서고 있었다.
처음 경기를 시작했을 때는 거점을 3개 모두 빼앗기고 일방적으로 밀렸던 율이었지만, 단 30분 만에 다시 2개를 빼앗아오고 오히려 반대로 미야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처음엔 투기장이란 곳이 낯설어 긴장했던 율이 실수를 많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차 빠르게 적응했고, 그 결과 율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율은 경기를 시작할 때부터 아예 파멸왕 슈나이더의 영혼을 강림시켜 놓고 싸우는 중이었다.
어차피 슈나이더의 영혼을 경기 내내 강림시키는 건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었기에 아예 율은 투기장에선 파멸왕 슈나이더가 될 생각이었다.
단지 아쉬운 건 가츠가 남겨준 빙룡과 화룡을 사용하기가 힘들다는 점이었다.
가츠가 워낙 유명한 유저이다 보니 당연히 그의 독문병기를 알아볼 수 있는 이들이 많았고… 그러면 귀찮아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율은 적당한 매직 급의 양손대검과 양손대도를 구해서 사용하는 중이었다.
파멸쌍대검술 더블 윙(Double Wing)!
파파팟!
오른손에 들고 있던 대검과 왼손에 들고 있던 대도에서 검은색 기운이 솟아오르며 마치 양팔에 날개가 달린 것 같은 모습이 되었다.
적을 섬멸하는 파멸의 날개.
그 날개들이 미야의 머리 위로 내리쳐졌다.
스스슷!
미야는 본능적으로 막을 수 없는 공격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곧장 자신이 가진 최고의 회피 기술을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그런 의도를 율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어딜!”
더블 윙을 좌우로 퍼트리며 퇴로를 차단하고 곧장 오른발을 미야를 향해 뻗었다.
특별한 기술은 아니었지만 엘리스에게 배운 빠르고 강력한 오른발 앞차기였다.
꽝!
“악!”
좌우를 완벽하게 막아버린 더블 윙 때문에 순간적으로 회피 기술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미야.
그녀는 그 바람에 율의 오른발 공격에 아무 방어도 할 수 없었고, 결국 복부에 율의 오른발이 정확하게 꽂혔다.
중심이 흐트러지며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미야.
율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파멸쌍대검술 파멸의 창!
대검과 대도가 한 점에서 만나며 두 장의 검은 날개가 하나로 겹쳐졌다.
그리곤 곧 거대한 검은색 창이 되었다.
“으아아아!”
꽈과광!
미야의 몸을 관통하는 파멸의 창.
오른발차기에 맞아 순간적으로 반기절 상태가 되어버려 모든 방어 자세가 풀렸고, 그 때문에 파멸의 창은 완벽하게 치명타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가뜩이나 조금씩 데미지를 입어 생명력이 50%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던 미야에게 이번 공격은 정말 치명적이었다.
발동 시간이 길고 정확도가 떨어져 그렇지 위력으론 파멸쌍대검술의 기술 중 순위권 안에 들어가는 파멸의 창이었다.
그런 파멸의 창을 그냥 맞은 것도 아닌 치명타로 맞았기 때문에 미야의 생명력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커억!”
미야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색 빛 가루는 그녀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무리.
휘리릭!
촤아아아아~!
미야의 가슴과 등을 훑고 지나가는 대검과 대도의 움직임으로 미야의 생명력은 1이 되었다.
투기장에선 절대 죽지 않는다.
단, 생명력이 1이 되면 그 유저는 기절 상태가 되어 바닥에 쓰러진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후 의무실에서 조치를 해줄 때까지 그 기절 상태는 유지된다.
삐이! 적(赤)색 유저가 승리했습니다.
승리의 메시지가 울려 퍼지며 경기가 끝났다.
이로써 율의 첫 번째 투기장 경기는 승리로 끝이 났다.
총 전투 시간은 대략 35분.
남아 있는 율의 생명력은 대략 21%.
완승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깔끔한 승리였다.
특히 율은 이번 경기를 통해 대략 투기장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익힐 수 있어서 좋았다.
‘초반에 거점을 빼앗기고 당황해서 기습을 몇 번 허용한 게 가장 큰 문제였어. 앞으로 은신 계열 적에겐 절대 은신할 틈을 주면 안 되겠군.’
전투 중에 은신을 하는 건 상당히 힘들었다.
이 얘긴 틈을 주지 않으면 은신이라는 큰 장점을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어쨌든 생각보다 재미있는데?’
율은 누군가와 대결을 한다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건지 몰랐다.
특히 이겼을 때의 기쁨은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아… 몇 시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율은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는지 가상현실 속의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1시 18분.
‘엘리스의 경기가 1시 20분 시작이었지?’
율은 승리 배당금을 받으러 가던 걸음을 멈추고 다시 뒤돌아 투기장을 향해 달려갔다.
엘리스의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투사들에겐 모든 경기 관전이 무료였다.
시간도 남는데 엘리스의 경기를 관전하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너무 튀지는 말아야 할 텐데.’
율이 걱정하는 건 엘리스의 패배 따위가 아니었다.
그녀의 실력이라면 이기는 건 당연했다.
단지 걱정스러운 건 너무 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옛 속담을 철저히 믿는 율은 너무 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이곳 투기장에선 꽤 오랫동안 조용히 지내며 영혼의 힘을 모아야 했기에 괜히 시끄러운 일을 만들고 싶지 않은 게 그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엘리스는 그런 율의 마음을 헤아려줄 정도로 섬세한 여인이 아니었다.
우드득!
“커억!”
털썩.
단, 5분.
거점도 먹지 않았다.
그저 5분 동안 미친 듯이 상대방을 두들겼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목이 꺾기며 기절해 버린 유저.
그를 이렇게 만든 건 바로 엘리스였다.
폭풍과도 같은 공격으로 단 5분 만에 7급 투사들 중에서 중간 서열 정도를 차지하고 있던 한 남성 유저를 완전히 정리해 버렸다.
‘크으… 역시…….’
율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경기는 보통 나중에 게임 방송사에서 특별히 오늘의 경기라는 이름으로 여러 번 보여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렇다는 얘기는 엘리스가 단 한 경기만으로 상당한 주목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이제 와서 수습할 수도 없었다. 그저 그러려니 하는 수밖엔.
“와아아아아!”
“최고다!”
“죽인다~!”
“캬아~ 거물 신인 등장이네.”
관중석 여기저기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이런 화끈한 경기에 감탄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이 반응만 보아도 엘리스가 얼마나 주목을 받을지 충분히 예상되었다.
* * *
폭풍철권 엘리스.
정확히 세 달하고도 보름 전에 투기장에 나타난 그녀는 지금까지 정확히 개인전 35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2 : 2 경기도 무려 14연승 중이었다.
패배를 모르는 엘리스.
특히 엘리스는 승리를 해도 그냥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더 빠르고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방을 압살해 버렸다.
그렇기에 그녀는 더욱 큰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 그녀에게 가려서 그렇지, 또 한 명의 신인도 어느 정도 관심을 받고 있었다.
30승 3무 2패.
현재 25연승 중.
상당한 승률을 보여주며 엘리스와 더불어 또 한 명의 거물급 신인이라고 평가받는 유저.
듀얼블레이드 선율.
평소라면 굉장한 관심을 가질 만한 신인의 등장이었지만 율은 완벽하게 엘리스에게 묻혔다.
거물 신인은 결코 괴물 신인을 능가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은 엘리스에 대해 얘기했다. 율에 대한 얘기는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율은 오히려 그게 좋았다.
처음엔 대충해서 승률도 한 70% 정도로 맞추려고 했던 율이었지만 승리하는 것이 패배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영혼의 힘을 모을 수 있다는 걸 안 후로는 무조건 이기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Quest[소울시티를 찾아서]
: 음유시인들의 공동묘지라 불러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음유시인들의 위대한 기적이 만들어진 곳이라 불러야 할까? 어쨌든 당신이 음유시인이라면 ‘소울시티’를 찾는 것은 의무일지 모른다. 하지만… ‘소울시티’를 찾기 위해선 수많은 과정이 필요할 것만 같다.
보상 : ?????
진행 과정 : [영혼의 힘 모으기] 퀘스트 진행 중. [24.213%]
기간 : 무기한.
주의 사항 : 퀘스트 중이라도 퀘스트 생성 조건에서 한 가지라도 충족되지 않는 경우 자동으로 퀘스트 소멸.
퀘스트 생성 조건 : 예술 능력치 200 이상, 음유시인 계열 스페셜 클래스, 혼돈의 조각 소유, 음유시인의 길(114연계 퀘스트) 클리어, 도리안과의 친밀도 ‘매우 친밀한’ 이상. 현자 아플란과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