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 아플란 (30/95)

3. 아플란

그것은 몬스터였다.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몬스터.

화려한 로브를 두르고 있는 해골, 바로 리치였다.

율도 엘리스도 그 리치를 보는 순간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모두 제대로 찾아왔다는 표정이었다.

-제법이군. 이곳에 내가 허락하지 않은 존재가 찾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허공에 울려 퍼지는 리치의 말.

리치답게 마법을 이용해 자신의 의념을 허공에 울려 퍼지게 만들었다.

“덕분에 고생 좀 했지.”

율이 가볍게 웃으며 얘기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율이 찾는 건 현자 아플란이었지 몬스터 리치가 아니었다.

엘리스야 그렇다 치더라도 원래대로라면 율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율의 표정은 전혀 일그러지지 않았다.

그는 마치 현자 아플란을 찾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현자 아플란, 저 리치는 아플란이 틀림없다. 세월이… 인간의 욕심이 현자를 리치로 만든 게 분명해.’

율은 지금까지 얻은 여러 정보를 통해 현자 아플란이 더 이상 현자가 아니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특히 엘리스에게 그녀의 퀘스트 내용을 들으며 아플란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와중에 만난 리치.

율은 본능적으로 이 리치가 아플란이라고 확신했다.

“그나저나 현자라고까지 불렸던 당신이 이렇게 추악한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렇지 않나, 아플란?”

일단 한번 찔러보기.

율은 그저 한번 찔러봤을 뿐인데 그 반응은 매우 격하게 왔다.

-놈! 말을 함부로 하는구나.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오랜 세월 동안 연구했고, 그 결과 난 이 몸을 얻었다. 리치? 난 그따위 몬스터가 아니다. 불사인(不死人)! 인간으로서 불사의 몸을 지닌 나에게 감히 리치라는 말을 사용하다니!

그그긍!

리치 아플란, 아니 불사인 아플란이 크게 분노하며 외치자 지하 광장 내부가 심하게 요동쳤다.

“풉, 불사인이나 리치나.”

율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불사인이나 리치나 결국 거기서 거기 같아 보였는데 굳이 리치가 아니라고 우기는 아플란이 왠지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어쨌든 쓸데없이 말이 길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율과 엘리스 모두 필요한 건 저 괴물을 제압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퀘스트 NPC였으니 일단 싸워서 이겨보면 뭔가 답이 나올 게 분명해 보였다.

“가자.”

엘리스가 먼저 앞으로 움직였다.

그녀 역시 말보단 행동이 앞서는 행동파였다.

파팟!

엘리스는 놀라운 속도로 아플란과의 거리를 좁혔다.

이미 율은 엘리스에게 자신이 걸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버프를 다 걸어준 상태였기 때문에 그녀의 능력은 굉장히 강력했다.

하지만 아플란도 확실히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마법사였다. 거기에 불사의 몸까지 얻었다.

그것들은 당연히 그가 보스급 몬스터일 수밖에 없다는 걸 증명해 주었다.

추정 레벨은 약 250~300.

보스급 또는 준 보스급 몬스터.

당연히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아무리 한계 레벨인 250레벨을 찍은 이들이라고 해도 절대 두 사람으로는 덤비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율과 엘리스는 평범함을 거부한 이들.

당연히 그들은 아무 걱정 없이 아플란에게 달려들었다.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그런 게 아니었다.

그저… 그 둘은 자신을 믿고 자신의 파트너를 믿을 뿐이었다.

-크하하하하, 가소로운 것들!

번쩍!

아플란은 엘리스가 자신을 향해 달려들자 크게 웃으며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플란의 오른손에 뭉쳐지는 강력한 마나 덩어리.

누가 봐도 상당히 위험한 마법 공격을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파지직!

아플란의 오른손에서 강력한 뇌전이 뿜어져 나왔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거의 5클래스 마법인 뇌전의 창과 비슷한 종류의 마법 같아 보였다.

엘리스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뇌전을 피하지 않았다. 그녀가 가진 직업은 베틀머신.

그 직업의 특징 중 하나가 각종 방어력이 상당히 높다는 점이었다.

대신 그 어떤 무기도 사용할 수 없고, 모든 스킬이 자동 발동이 불가능한 난이도 있는 스킬이라는 점이 단점이었지만, 엘리스는 오히려 그 단점을 장점처럼 활용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뇌전에 대한 속성 방어력도 상당히 높았다.

거기에 순간적으로 원하는 속성 방어력을 두 배로 올려주는 스킬까지 있었기에 그녀는 이 공격을 몸으로 버텨내고 곧장 아플란에게 붙어버릴 생각이었다.

빠지지직!

엘리스의 몸을 관통하는 뇌전.

하지만 엘리스는 그 순간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곧장 아플란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플란도 예상하지 못한 엘리스의 터프한 공격.

파팟!

아플란의 얼굴을 향해 빠르고 강력하게 뻗은 엘리스의 오른팔.

제대로 맞으면 기절 효과까지 발휘하는 엘리스의 전매특허 스트레이트 쇼크펀치였다.

하지만 아플란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스스슷!

갑자기 사라지는 아플란의 몸.

무려 7클래스 마법이었던 블링크였다.

‘허… 불사인이라더니 진짜 보통 리치가 아닌가 보네.’

보통 리치들은 4~5클래스 마법을 자유자대로 사용한다. 그런데 아플란은 7클래스 마법인 블링크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했다.

이 얘긴 적어도 아플란이 평범한 리치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리치 중 가장 특별한 리치인 리치 로드는 9클래스 마법까지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하지만 그놈은 레이드용 보스 몬스터였다.

아플란은 아무리 봐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략 리치 위자드 정도는 된다고 보는 게 옳았다.

6~7클래스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리치 위자드.

리치 로드만큼은 아니지만 어지간한 이들은 덤빌 생각도 못하는 보스 몬스터였다.

‘리치 위자드 정도의 힘이라면… 초반부터 강하게 나가야 한다.’

자칫 방심하다 카운터라도 맞으면 그때부터 상당히 힘겨운 전투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거 힘을 아낄 여유가 없겠네.’

율은 묵현을 들고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 제목은 당연히 ‘진정한 영웅들의 서사시’.

그리고 고른 영웅은 ‘오른’.

오른은 주술사였다.

그것도 그냥 주술사가 아닌 모든 자연의 힘을 몸 안에 받아들인 자연의 주술사였다.

그는 몸 안에 받아들인 자연의 힘을 이용해 수많은 주술을 만들어냈고, 아주 먼 옛날 그런 그에게 진정한 자연의 초월자라는 별칭이 주어졌다.

율이 이 오른을 선택한 건 엘리스에게 주술 능력을 부여해 주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엘리스의 입장에선 처음 영혼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영혼의 힘을 모두 이용해 주길 바라면 안 되었다.

율이 바라는 것은 오로지 하나.

바로 오른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높은 속성 친화력과 강력한 자연 회복력이었다.

어차피 스킬을 추가해 주는 것보다 이렇게 도움이 될 만한 패시브 능력을 부여해 주는 것이 엘리스에겐 훨씬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율은 어쨌든 그렇게 오른의 영혼을 불러냈다.

소환된 오른의 영혼은 빠르게 엘리스의 몸에 빙의되었다.

츠츠츳!

엘리스는 노래와 함께 갑자기 요상한 힘이 자신의 몸 안으로 흘러들어오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금방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이 정도로 놀라거나 허둥댈 엘리스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율이 뭔가 새로운 버프를 해주었다고 인지할 뿐이었다.

“타핫!”

아플란을 향해 주먹을 내뻗는 엘리스.

분명 주먹은 허공을 때렸지만 그 주먹에서 튀어나온 한줄기의 기운은 허공을 가르며 아플란의 가슴에 적중되었다.

퍼퍼펑!

-크으!

2클래스 마법인 매직 쉴드와 3클래스 마법인 마나 쉴드를 늘 몸에 두르고 있는 아플란인지라 크게 충격 받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갑작스러운 공격에 깜짝 놀란 듯했다.

격공장의 원리를 적용해 엘리스가 직접 만들어난 허공권(虛空拳).

전력을 다해 사용한 게 아니라 거의 견제하듯이 가볍게 사용한 것이라 이 정도였지, 전력을 다하면 상당한 위력을 보이는 기술이었다.

-귀찮구나!

아플란은 계속되는 엘리스의 추격을 연속 블링크로 따돌리며 율의 앞에 나타났다.

확실히 보스 몬스터들의 인공지능은 뛰어났다.

특히 뭔가 특별한 사연을 지니고 있는 NPC이기도 했던 아플란은 더 뛰어난 인공지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 두 사람 중 진짜 핵심은 율이라는 걸 단번에 눈치 챘다.

율이 존재하기에 엘리스가 더욱 귀찮게 자신을 괴롭힌다는 것을 안 아플란은 일단 율부터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죽어라!

화르르륵!

율의 코앞에서 갑자기 치솟은 거대한 화염.

만약 율이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면 그는 아마 순식간에 통구이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당해줄 율이 아니었다.

아플란이 자신의 앞에 나타나자마자 곧장 바람을 따라 걷기를 이용해 빠르게 옆으로 움직인 율.

그와 동시에 그는 ‘괴성지르기’를 시전했다.

“으아아아!”

8랭크의 괴성지르기가 완벽하게 성공하며 순간 아플란의 움직임이 멈췄다.

물론 아플란은 보스 몬스터였기 때문에 4초 기절 효과가 고스란히 적용되지 않았다. 그저 아주 잠깐 멈칫하는 게 전부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이미 율은 빠르게 아플란에게서 멀어졌고, 아플란의 기습은 실패했다.

아플란과 거리를 벌린 율은 다시 묵현을 튕기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번 노래는 ‘영웅들의 서사시.’

그가 불러내려는 영웅은 바로 파멸왕 슈나이더였다.

그동안 수없이 불러내며 몸에 완전히 익힌 슈나이더의 영혼.

아예 본격적으로 엘리스와 함께 아플란의 기선을 제압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리치와 같은 몬스터들은 생명력이 낮다.’

리치가 무서운 이유는 마법뿐이었다.

강력한 공격과 동시에 튼튼한 방어까지 가능해지는 마법.

이 마법만 뚫을 수 있다면 본체의 생명력은 그리 높지 않았다.

오히려 키메라들 쪽이 더 높을지도 몰랐다.

마법 공격을 피하고 마법 방어만 뚫는다면 아플란은 생각보다 쉬운 상대가 될 수 있었다.

물론 말이 쉽지, 6~7클래스의 마법을 피하고 뚫는다는 게 실전에선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파파팟!

어쨌든 파멸왕 슈나이더의 영혼은 익숙하게 율의 몸에 강림되었다.

그동안 꽤 많이 수련했지만 아직도 파멸왕 슈나이더의 영혼이 완벽하게 컨트롤되는 건 아니었다.

확실히 좀 많이 잘나갔던(?) 영웅들의 영혼은 영혼 자체에 각인되어 있는 자아(自我)가 너무 강해서 영혼을 강림시키는 것만으로 그 영혼의 감정에 휩쓸릴 수도 있었다.

처음에 율이 파멸왕 슈나이더의 영혼을 소환했을 때가 딱 그랬다.

그는 파멸왕의 영혼에 취해 미친 듯이 몬스터들을 학살해 버리고 결국 이능 에너지가 바닥나 쓰러져 버렸다.

그 뒤로 그는 최대한 자신의 의지 아래 파멸왕의 영혼을 두려고 노력했다.

수련을 거듭할수록 익숙해졌지만 아직도 여전히 파멸왕 슈나이더의 영혼은 광폭하고 파괴적이었다.

스으~ 번쩍!

율의 눈빛이 살짝 붉게 물들었다.

파멸왕 슈나이더를 소환하면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저 눈빛이 완전히 붉게 물들면 율이 파멸왕의 영혼에게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될 생각은 없었다.

이미 수많은 수련을 통해 어느 정도 파멸왕의 영혼을 다루는 요령을 터득한 율이었기에 그렇게 될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스르릉! 챙!

율의 양손에 대검과 대도가 잡혔다.

가츠가 남겨준 그것.

빙룡과 화룡!

가츠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빙화쌍룡이 오랜만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화끈하게 가자. 차앗!”

츠츠츳!

대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한기.

그것이 곧장 아플란의 발쪽을 향해 뿜어졌다.

흐릿!

아플란은 다시 블링크를 이용해 율의 공격을 피했다. 아니 피하려고 했다.

“어딜!”

화르륵!

그 순간 화룡이 불을 뿜었다.

강력한 불길은 아니었지만 아플란의 주변을 뒤덮는 작은 불덩어리들이 쏘아져나갔다.

쾅! 콰광!

불덩어리들 때문에 순간적으로 블링크의 수식이 흩어지며 아플란이 예상과 다르게 아주 조금 옆으로 움직이는 것만으로 블링크 효과가 끝났다.

촤아아!

바로 그때 먼저 쏘아냈던 한기가 효과를 발휘했다.

한기로 인해 바닥이 얼어붙으며 순간 아플란이 중심을 잃었다.

물론 아플란이 중심을 잃는 순간은 아주 짧을 것이다.

그에겐 중심을 되찾을 수 있는 여러 종류의 마법이 있었고, 여차하면 다시 블링크를 사용하면 되었다.

블링크는 몬스터, 특히 보스 몬스터가 사용하면 사기 마법 이 되는 이유가 바로 거의 딜레이 타임이 없어 보일 정도로 짧다는 점이었다.

2초.

이게 블링크의 딜레이 타임이었다.

캐스팅 시간이 약 0.5초였으니 이론상 2.5초에 한 번씩 블링크를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유저들이 블링크를 사용할 때는 무려 20초의 딜레이가 있는 것과는 정말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물론 블링크 마법은 고급 마법이었기 때문에 마나의 소비가 컸고, 자신이 갈 위치를 지정할 수 있는 게 아닌지라 탈출 용도로 더 많이 사용되었지만 일단 다수의 강력한 원거리 마법을 지니고 있고, 거기에 마나마저 엄청난 양을 지니고 있는 아플란에겐 최고의 기술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율이 날린 이 아이스필드는 아주 잠깐 아플란의 정신을 뺏는 것만 성공했다.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엘리스는 그 정도만의 틈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앗!”

어느새 엘리스는 아플란의 코앞까지 와 있었다.

그녀의 오른발은 완벽한 반원을 그리며 마치 섬전같이 빠른 속도로 아플란을 향해 휘둘러졌다.

빠각!

-큭!

아플란의 왼쪽 허리에 적중하는 그녀의 오른발.

매직 쉴드와 마나 쉴드는 힘으로 깨버렸다.

그 과정에서 많은 충격이 흡수되었기 때문에 정작 아플란 본체에 입힌 데미지는 평범했지만, 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엘리스의 전매특허인 연환 공격의 첫 번째 공격.

당연히 그 뒤를 잇는 두 번째 공격이 바로 이어졌다.

휘릭~ 파팟!

엘리스의 몸이 빠르게 회전하며 동시에 왼발이 거의 원을 그리며 돌았다.

이번에도 역시 왼쪽 허리가 목표였다.

꽝!

매직 쉴드와 마나 쉴드가 제대로 복구되지도 못했건만 또다시 강력한 충격이 그곳에 가해졌다.

-크악!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더 큰 데미지가 들어갔다.

그리고 또다시 이어지는 세 번째 공격.

이번엔 왼손이었다.

왼발과 거의 동시에 쭉 펴진 상태로 아플란의 왼쪽 머리를 때리는 왼손.

이것 역시 아플란은 제대로 방어해 내지 못했다.

쩌정!

그나마 머리 쪽에는 방어마법이 좀 더 강력하게 펼쳐져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었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세 번째 공격이 끝났지만 아직 엘리스의 공격은 더 남아 있었다.

하지만 아플란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흐릿!

충격을 견디며 블링크를 완성시킨 그가 재빨리 엘리스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덕분에 엘리스의 네 번째 공격은 허공을 가르며 실패했다.

아플란의 위기 탈출.

그렇지만 그건 아주 잠깐일 뿐이었다.

“여기도 있다!”

블링크를 이용해 다른 곳으로 이동한 아플란을 반기는 건 율이었다.

어느새 아플란의 등 뒤로 접근한 율이 빙룡과 화룡을 동시에 아플란의 목과 복부에 찔러 넣었다.

1초의 차이로 또 한 번의 블링크가 불가능했다.

아플란은 어쩔 수 없이 아껴 두었던 비장의 기술을 사용했다.

촤아아아!

아플란의 몸 주변으로 빠르게 모여드는 마나.

그 마나들이 아플란의 몸을 감싸며 두터운 방어막을 형성했다.

7클래스 마법 중 하나인 ‘마나 디펜스’였다.

마나를 이용해 고밀도의 마나 쉴드를 몸 전체에 두르는 기술.

자신이 입은 데미지를 최대 70%까지 흡수해 주는 당연히 고급 기술이었기 때문에 재사용 대기 시간도 무려 40분짜리였다.

물론 유저들이 사용할 땐 4시간에 한번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되었지만, 어쨌든 40분이란 시간은 아플란에게도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쩌저정!

율의 공격은 마나 디펜스와 그 밖의 몇 가지 방어 마법에 완전히 막혔다.

하지만 율은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어차피 한두 번의 공격으로 아플란을 끝낼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이렇게 공격이 막힐 것을 충분히 예상했다는 뜻이었다.

“쳇!”

물론 아무리 예상했다고 해도 나름 회심의 일격이 실패하자 아쉬운 표정이 나타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흐릿!

또다시 블링크를 이용해 자리를 이탈하는 아플란.

아플란의 전투 패턴은 마법 공격 후 블링크 또는 방어 후 블링크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보스 몬스터 치고는 매우 단순한 패턴.

하지만 이 패턴이 계속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보통 일반 몬스터들도 수시로 패턴이 바뀌는 게 대부분이었다.

보스 몬스터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보스 몬스터들의 패턴은 거의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다양하고 많았다.

어쩌면 그래서 검마노가 더 대단한 것인지 몰랐다.

‘패턴이 바뀌기 전에 제대로 된 한 방 데미지를 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율은 이 패턴을 유지하고 있을 때 큰 타격을 줘서 생명력을 상당량 깎아놓을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엘리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같은 생각을 하는 두 사람.

그래서일까?

두 사람의 움직임은 마치 미리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굉장히 잘 맞아떨어졌다.

“합! 합!”

엘리스가 내지른 두 번의 정권.

정권이 만들어낸 묘한 와류는 그대로 하나의 기운이 되어 앞으로 쏘아져나갔다.

그런데 그 기운 중 하나가 놀랍게도 블링크를 해서 나타난 아플란을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엘리스의 감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녀는 그 놀라온 감으로 아플란이 블링크한 지역을 대략 두 군데로 예측했고, 그 두 군데 모두에 용권파(龍卷波)를 쏘아냈다.

어떻게 보면 아플란의 약점은 바로 블링크를 한 직후였다. 블링크가 대단한 마법인 건 사실이었지만 이렇게 빈틈도 분명히 존재했다.

너무나 기가 막힌 타이밍에 들어간 용권파라 아플란은 기본 방어 마법만으로 그 공격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콰과광!

-크악!

용권파는 엘리스가 사용하는 기술들 중에서도 파괴력이 상당히 높은 공격 중 하나였기에 기본 방어 마법만으로는 당연히 막을 수 없었다.

몇 번의 연속 공격으로 아플란의 방어 마법이 상당히 약해진 상태인지라 더욱 큰 데미지를 입었다.

하지만 진짜는 용권파 다음이었다.

엘리스가 대충 예상을 해서 용권파를 날렸다면, 율 역시 비슷한 감각으로 아플란의 다음 블링크를 예상해서 움직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아플란이 나타나자마자 단 1~2초 만에 그의 등 뒤로 접근할 수 있었다.

“하압!”

빙룡과 화룡을 수평으로 들고 몸을 회전시키는 율.

파멸쌍대검술의 강력한 회전 회오리 베기가 발동되었다.

파파파팟!

한기와 열기가 뒤섞여 강력한 와류가 만들어지며 아플란을 휘감았다.

처음 엘리스가 오른발 차기를 시도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이 율과 엘리스가 의도한 대로 이루어졌다.

아플란은 그저 ‘어어’하다가 완벽하게 당한 것처럼 되었다.

-크아악!

회전 회오리 베기에 완벽하게 당한 아플란이 황급히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방어 마법을 시전했지만 이미 데미지는 들어간 후였다.

‘됐다!’

율은 용권파와 회전 회오리 베기로 대략 30% 이상의 생명력을 깎았다고 생각했다.

단, 두 방이었지만 치명타로 정확하게 적중했고, 앞서 조금이나마 데미지를 누적시켰을 뿐만 아니라 생명력 자체가 워낙 낮았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수치였다.

“이대로 몰아치…….”

율은 엘리스를 보며 이대로 끝장을 내자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플란도 이렇게 계속 당하기만 할 몬스터는 아니었다.

나름 보스 몬스터.

그것도 특별한 보스 몬스터인 아플란이었다.

당연히 반격의 한 수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으아아!

“헛!”

아플란의 몸에서 360도 전 방위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마력의 파동.

그것은 그 자체로도 상당한 위력을 지닌 마나의 덩어리였다.

일명 마나웨이브!

6클래스 마법으로써 제대로 적중당할 경우 기절까지 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위험을 느끼고 재빨리 뒤로 물러나는 엘리스와 율.

하지만 분노로 인해 광폭화된 것 같은 아플란의 공격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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