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현자 아플란
4일간 상당히 많은 대화를 하며 촌장과 친해진 율은 그의 이름이 톰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비록 직접 아플란의 이름을 언급한 건 아니었지만 그의 모험담을 들으며 그가 아플란의 시종이었다는 것도 대략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현자 아플란에 대한 정보와 그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만 알아내면 끝이었다.
율은 일단 슬슬 톰의 과거를 계속 띄워주며 조금씩 현자 아플란에 대해 얘기하게 만들었다.
톰은 율이 장단을 맞춰주자 신나서 아플란에 대해 얘기했다.
그에게 아플란의 시종으로 일했던 20년은 인생의 황금기이자 절정기였다.
그렇기에 할 말도 많았고 자랑하고 싶었던 것도 많았다.
얘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때 율은 살며시 본론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현자 아플란에 대한 자세한 정보들.
율은 아플란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만큼이나 그에 대한 정보를 듣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톰은 자꾸 은근슬쩍 그 부분에 대해서는 빼고 계속 얘기했다.
처음 몇 번은 그러려니 했던 율도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톰이 고의로 얘기를 회피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쯤 되자 율도 슬슬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기껏 며칠 동안 친밀도를 올리고 열심히 톰과 얘기한 건 다 현자 아플란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서였는데… 정작 톰은 현자 아플란에 대해서는 전혀 얘기하지 않으려고 했다.
율은 어쩔 수 없이 정공법으로 나갔다.
친밀도는 올릴 수 있을 만큼 올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공법으로 나가도 톰이 한순간에 자신을 내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톰 할아버지, 왜 현자 아플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 하시는 거죠? 그와 함께 세상을 떠돌았던 게 아니었나요?”
율의 직접적인 질문.
톰은 율이 이렇게 정공법으로 나올지 몰랐는지 크게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그게…….”
“현자 아플란이란 사람에 대해 궁금합니다. 그게 제 솔직한 마음이에요. 그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가 싫은 건가요?”
“아, 아니다. 난 자네에게 그에 대해 말해주고 싶다.”
“그런데 왜 자꾸 그에 대한 얘기는 피하시는 거죠?”
“으음… 내가 일부러 피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난 그에 대해서 얘기할 수가 없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말해주고 싶으시다면서요.”
“그래, 말해주고 싶다. 사실 자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모두에게 다 얘기해주고 싶다. 하지만 난 할 수가 없어. 그 망할 놈이 나에게 저주를 걸어놔… 난 그와 관련된 얘기를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다. 심지어 그의 이름조차도 부를 수가 없다. 기껏해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와 지내며 있었던 그와 관계없던 추억들만 얘기하는 것이었다. 벌써 30년째 이 저주가 나를 괴롭힌다. 난 사람이 답답해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자주하곤 했다. 그 답답함은 정말 아무도 모를 거야… 후우…….”
길게 한탄하듯 얘기한 후 큰 한숨을 내쉬는 톰.
그는 정말로 너무 답답해 가슴이 터질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띠링, ‘현자의 저주’ 퀘스트가 활성화되었습니다.
띠링, 본 퀘스트는 히든 퀘스트 소울시티를 찾아서의 하위 퀘스트입니다.
Quest [현자의 저주]<하위 연계 퀘스트>
: 과거 현자 아플란의 충실한 시종이었던 톰. 그는 정작 아플란에게 금제를 당해 30년 간 괴로운 삶을 살아왔다. 현자가 그에게 내린 저주는 상당히 강력했다. 하지만 그는 30년 동안 노력한 끝에 그 저주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알아냈다.
보상 : 현자 아플란에 대한 상세한 정보
진행 과정 : 진행 중
기간 : 한 달(게임시간)
퀘스트 생성 조건 : 톰과의 친밀도 친밀함 이상. 히든 퀘스트 소울시티를 찾아서 진행 중. 낚시 기술 익스퍼트 이상
“혹시 자네라면… 날 도울 수도 있을지 모르겠어.”
띠링, 톰이 지난 5년 간 낚시에 빠져들었던 이유는 자신의 저주를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큐어 피시’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보라색의 투명한 크리스털 몸을 가지고 있는 ‘큐어 피시’는 엄청 희귀한 물고기로 최고의 낚시꾼들만 낚을 수 있다.
띠링, 톰을 도와 ‘큐어 피시’를 낚는다면 당신은 현자 아플란에 대한 모든 정보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쉽게는 안 된다는 건가?’
쉽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새삼 히든 퀘스트가 왜 히든 퀘스트인지 다시 한 번 깨달은 율.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무조건 끝을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종류의 독과 저주를 치료할 수 있다고 알려진 큐어 피시 눈동자.
당연히 그 값어치는 상당했다.
전문 낚시꾼들도 거의 구경하지 못한다고 소문난 희귀한 물고기였기에 쉽게 구할 수도 없었다.
이곳에 경매장이라도 있었다면 어떻게 골드를 이용해서라도 구해봤겠지만 당연히 땅 끝 마을에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사실 경매장이 있었다고 해도 퀘스트로 큐어 피시를 구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경매장에서 사와 해결될 게 아닐지도 몰랐다.
어쨌든 이래저래 율은 결국 낚시로 큐어 피시를 낚아야 했다.
현재 율의 낚시 숙련도는 익스퍼트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낮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큐어 피시를 쉽게 낚을 수 있는 경지도 아니었다.
‘이 기회에 낚시 숙련도도 좀 올리고… 좋은 게 좋은 거겠지.’
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현자 아플란이 당장 어디로 도망가는 것도 아니었고… 가뜩이나 생각을 정리할 게 많았기 때문에 여기서 조용히 낚시를 하는 것도 나쁜 건 아닌 듯했다.
“도와드리죠.”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율.
톰은 그런 율의 손을 잡으며 연신 고맙다는 말을 계속했다.
* * *
낚시는 흔히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불린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그렇게 계속 기다리다 기회가 찾아오면 절대 놓치지 않고 단번에 물고기를 낚는 게 낚시의 기본이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큐어 피시는 그리 쉽게 낚이지 않았다.
톰과 함께 본격적으로 낚싯대를 기울인 지 벌써 보름(게임시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큐어 피시는 그 지느러미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율은 자신이 배운 대로 마음을 비우고 머릿속으로 큐어 피시를 상상하며 마음의 낚시법을 구사했다.
하지만 아직 율의 배움이 낮아서일까?
큐어 피시는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다.
분명 이 정도면 조급한 마음이 나타날 법도 했다.
보름 동안 애꿎게 놓아준 물고기만 수백 마리였다.
톰은 역시나 옆에서 계속 불안해했지만 정작 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마음을 비우고 기다렸다.
그렇게 계속 마음을 비우다보니 그는 자신이 무엇을 낚기 위해 낚싯대를 바닷가에 드리웠는지도 잊게 되었다.
무심(無心).
언젠가 그의 스승이 그에게 말했던 낚시 기술의 최고봉인 무심의 단계에 자연스럽게 접어들게 되었던 것이다.
꿈틀.
그렇게 무심의 단계에 접어든 지 몇 분 만에 드디어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낚싯줄과 낚싯대를 타고 율에게 전해졌다.
‘음!’
눈을 감고 있던 율은 낚싯대에 거의 얹어놓듯이 하며 힘을 주지 않았던 오른손에 순간적으로 힘을 집중시키며 낚싯대를 재빨리 채어 올렸다.
핑!
한순간에 팽팽해지는 낚싯줄.
뭔가 걸렸다.
오른손에 느껴지는 감각으로 봐서는 절대 평범한 놈이 아니었다.
드드드!
순식간에 거의 반원에 가깝게 휘어지는 대나무 낚싯대.
줄은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미친 듯이 팽팽하게 당겨졌고, 낚싯대마저 바로 두 동강나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을 정도로 휘어졌다.
‘놈이다!’
큐어 피시와 같은 레어 물고기들은 그 힘이 엄청나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설사 재수 좋게 초보 낚시꾼에게 걸리더라도 유유히 낚싯대와 줄을 망가트리고 도망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상대는 초보가 아니었다.
율은 이미 마스터에 가까운 실력을 지닌 전문 낚시꾼이었다.
그리고 그가 지니고 있던 낚싯대는 마음으로 물고기를 낚는 이들만 사용이 가능하다는 레어 등급의, 정말 귀한 낚싯대였다.
즉, 쉽게 망가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놓치지 않는다.’
일단 율은 놈이 원하는 대로 줄을 풀어주며 기회를 엿봤다.
밀고 당기기.
이걸 잘해야 대어를 쉽게 낚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놈을 풀어줬다고 생각한 율은 곧장 다시 힘을 줘 줄을 끌어당겼다.
피잉!
다시 낚싯줄은 끊어질 것처럼 팽팽해졌지만 율은 아랑곳하지 않고 줄을 계속 감았다.
지지지직!
뭔가 찢어지는 소리까지 났다.
하지만 율의 표정은 굉장히 편안했다.
그렇게 몇 번에 걸쳐 줄을 풀어주고 다시 감기를 반복한 끝에 드디어 놈이 수면 근처까지 끌려왔다.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는 놈.
보라색의 투명한 몸체를 지닌 그놈은 분명 큐어 피시였다.
“헛!”
옆에서 처음부터 계속 초조하게 기다리던 톰은 큐어 피시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하자 땀까지 뻘뻘 흘리며 율보다 더 긴장하기 시작했다.
거의 30분에 걸친 율과 큐어 피시 간의 혈투는 결국 율의 승리로 끝이 났다.
힘이 모두 바닥난 큐어 피시가 마지막엔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밖으로 끌려나오려 하자, 톰이 재빨리 갈고리를 이용해 그 거대한(몸길이 2m) 놈을 밖으로 끌어냈다.
“허… 진짜 이놈을 잡다니…….”
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띠링, 큐어 피시를 잡아 ‘현자의 저주’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띠링, A+ 등급의 희귀 물고기 큐어 피시를 잡아 낚시 숙련도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띠링, 타이틀 ‘전문 낚시꾼(A)’을 얻었습니다.
‘됐어!’
생각보다 상당히 어려운 퀘스트였다.
특히, 마지막 큐어 피시와의 혈전은 어지간한 상급 몬스터와의 전투만큼이나 힘들었다.
“고맙네! 진짜… 이제야 난 내 진정한 삶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네.”
몇 번이고 고마워하는 톰.
그는 기쁨의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율은 그런 톰을 보자 괜히 마음이 찡해졌다.
기껏해야 NPC의 눈물일 뿐이었건만, 정말 30년 동안의 답답함이 살짝 느껴지는 눈물이었다.
누군가를… 설사 그것이 NPC일지라도 진심으로 도울 수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라는 걸 깨달은 율.
그는 그렇게 한 사람에게 채워졌던 너무나 무거웠던 족쇄를 풀어주었다.
큐어 피시의 눈동자를 먹은 톰은 거짓말처럼 현자 아플란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율은 눈동자 두 개를 모두 사용하지 않았다.
하나는 당연히 자신의 가방에 챙겨놓고, 나머지 하나를 이용해 톰의 저주를 풀었다.
저주가 풀린 톰은 정말 쉴 새 없이 떠들기 시작했다. 굳이 율이 질문할 필요도 없었다.
무려 30년 동안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현자 아플란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한 톰.
그는 정말 시시콜콜한 얘기부터 자신이 30년 동안 나름대로 분석했던 것들까지 모두 쏟아냈다.
당연히 아플란이 30년 전 어디로 향했다는 정보도 있었다. 그리고는 아마도 지금 어디에 있을 것 같다는 친절한 예상 정보도 추가되었다.
무려 네 시간 동안 오로지 아플란에 대해서만 계속 떠들어댄 톰이 얘기를 대충 끝내고는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율은 혹시라도 잊을까봐 노트를 꺼내 톰의 얘기를 대충 정리해 적어두었다.
그 정도로 톰은 많은 얘기를 했고, 그 중에는 정말 좋은 정보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30년의 한이 묻어나오는 필사적인 톰의 이야기.
율은 그의 억울함과 답답함을 알기에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끝까지 그 얘기를 전부 들어주었다.
어쨌든 장장 4시간에 걸친 얘기가 어느 정도 끝나자 톰도 이제는 좀 진정된 모습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율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이제 남은 건 이곳을 떠나 톰이 예상한 현자 아플란이 있을 만한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왠지 율은 곧장 떠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분명 할 얘긴 다한 것 같은 톰이었지만 왠지 며칠 정도는 더 있으면서 아직 남아 있는 약간의 억울함을 들어주어야 할 것 같았다.
‘뭐… 하루 이틀 늦어진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니까.’
율은 결국 며칠 더 남기로 결정했다.
톰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건 자신뿐이었고… 이참에 그렇게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율은 이틀을 더 땅 끝 마을에서 지내며 톰의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계속 경청해주었다.
* * *
톰도 아플란과 헤어진 지 30년이 넘었기 때문에 정확히 현재 그가 어디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단지 그가 30년 전 톰과 헤어지며 은거를 하겠다고 말했고, 그 장소가 동방 대륙의 최북단에 있는 푸른 산맥 부근이라는 사실이 율에게 희망적인 정보였다.
거기에 톰은 평소 아플란이 그 넓은 푸른 산맥에서도 가장 높은 산으로 알려진 청백산(靑白山)을 상당히 좋아했다고 얘기해줘 수색 범위가 더욱 좁아졌다.
물론 청백산만 해도 엄청 큰 산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넓은 지역을 찾아다녀야 하지만 막연하게 전 대륙을 돌아다니거나 푸른 산맥을 전부 뒤지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당연한 것이지만 현자 아플란에 대한 정보는 톰에게 들은 것을 제외하곤 전무했다.
율은 이미 오래전 각종 정보길드와 오프라인에서의 검색으로 현자 아플란에 대한 정보를 찾았었다.
하지만 나온 정보는 무(無).
정말 단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건도 나오지 않은 게 더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어쨌든 분명 아플란은 쉽게 찾을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웬만한 유저였다면 이쯤에서 이 퀘스트를 과연 계속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봤을 것이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실제로 이제 겨우 하위 퀘스트의 하위 퀘스트를 하나 해결한 게 전부인… 막막한 상황.
아마 보통의 평범한 유저들이었다면 포기해도 벌써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율은 보통 유저가 아니었다.
그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끈기를 지녔고, 포기보단 도전을 더 즐기는 이였다.
거기에 그는 최근 몇 번의 깨달음을 통해 성취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 히든 퀘스트를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남쪽의 땅 끝 마을에서 북쪽 끝에 있는 푸른 산맥까지 꿋꿋이 이동한 율.
현자 아플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청백산 근처에 오자 일단 그는 혹시 모르는 마음에 근처에서 가장 큰 마을을 찾았다.
정확히 현자 아플란에 대한 정보는 없을지 몰라도 청백산에 사는 특이한 사람에 대한 정보는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푸른 산맥 근처에서 가장 큰 마을은 키타루라고 불리는 자유 도시였다.
쥬신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크기였지만 나름 많은 유저가 왕래하는 그곳은 푸른 산맥을 탐험하는 모든 유저들의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었다.
동방 대륙에서 가장 험난한 지형을 자랑하는 푸른 산맥.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상급의 몬스터들이 즐비했고, 덕분에 키타루는 한계 레벨인 250을 찍은 이들이 주로 찾는 도시가 되었다.
율은 이곳 키타루까지 오며 레벨을 10이나 더 올려 225가 되었다.
아직 한계 레벨에 도달한 건 아니었지만 율의 실력은 이미 어지간한 한계 레벨 유저들을 능가하고 있었다.
어설프게 레벨을 주력으로 올린 유저들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성장한 율.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당연히 강했고 또한 노련했다.
특히, 섀도우 로드의 1대 유저들이 전부 은퇴하고 자신이 2대를 책임지는 자리를 맡게 된 후로 조금씩 기질마저 바뀌어가고 있었다.
가츠는 이런 걸 미리 예상이라도 했던 것일까?
아니면 정말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걸까?
율은 조금씩 천천히 변해갔다.
오히려 빠르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변화를 눈치 채기란 쉽지 않았지만… 그는 분명 리더에 걸맞은 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스스로 그것을 인지하고 있지는 않았다.
자신의 변화는 자신이 가장 모르는 게 당연했고, 율은 스스로 이것을 변화라기보다는 자신의 성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다르게 느껴졌다.
어쨌든 율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것은 겉모습에서도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
키타루를 둘러보며 천천히 걷는 율.
비록 낡은 후드망토를 눌러쓰고 걷는 그의 모습은 전형적인 보통 여행자였지만, 그 후드 안에서 빛나고 있는 눈빛은 키타루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는 것 같았다.
‘푸른 산맥이 고레벨 사냥터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곳이라고 하더니, 정말 쭉정이들은 잘 보이지 않네.’
키타루에 돌아다니는 이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유저들이었다.
푸른 산맥은 동방 대륙에서도 알아주는 고난이도 지역이었기에 어설픈 이들이 왔다간 곧장 털리고 도망가게 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남는 건 실력자들뿐이었고, 그 결과 키타루는 상대적으로 다른 도시보다 조금 조용한 곳이 되었다.
쓸데없이 말로 떠드는 이들은 거의 실력이 모자라는 것들인 경우가 많았다.
진짜 실력자들은 말로 떠들기보단 일단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는 걸 선호했다.
율은 이런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조용히 자신의 할 일만 하는 유저들… 이들이야말로 검마노의 핵심 유저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쨌든 키타루의 분위기를 대충 파악한 율은 천천히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청백산을 중심으로 그 근처에 있는 특이사항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율.
물론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애초에 청백산에 현자 아플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그저 예상이었기 때문에 100%의 확신을 가지고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조사하길 한 시간.
율은 예상외의 정보를 몇 개 얻을 수 있었다.
청백산 꼭대기에 괴물들이 득실거린다. 그런데 한 모험가가 그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곳 근처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늙은 마법사를 보았다고 한다.
청백산의 괴물들 중 90%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키메라들이 대부분이다.
청백산에는 무수히 많은 동굴들이 존재하는데 그 동굴들은 미로처럼 얽혀 있다.
어떤 여행자들은 길만 찾을 수 있다면 그 동굴들을 통해 청백산 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
냄새가 났다.
처음에 현자 아플란을 찾으라고 했을 땐 그저 진짜 현자를 찾으려고 했었지만, 지금은 그 현자가 결코 평범한 다른 현자들과 같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미 톰에게 그런 저주를 건 것만 보아도 그 현자가 보통의 평범한 현자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키메라… 늙은 마법사… 미로 같은 동굴. 이건 전형적인 마법사의 던전이 보여주는 패턴이다. 아플란은 이미 30년 전 굉장한 실력의 마법사였고, 톰의 말에 따르면 불사(不死)의 비법을 찾기 위해 반쯤은 미쳐 있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청백산에 그가 있을 수도 있다.’
율은 대충 결론을 냈다.
비록 청백산에 살고 있는 정체 모를 마법사가 아플란이 아닐 가능성도 상당히 높은 건 사실이었지만, 만약 그렇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면 그만이었다.
정체 모를 늙은 마법사를 찾는 것도 나름 모험이라면 모험.
그 자체를 즐기면 그만이었다.
물론 쉽지는 않아 보였다.
이미 많은 모험가들이 소문을 듣고 청백산에 올랐지만 꼭대기까지 완벽한 공략에 성공한 이는 없었다.
동굴을 이용했던 이들도, 동굴 대신 산을 타고 올라갔던 이들도 모두 실패했다.
한마디로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율은 일단 정확히 어떤 곳인지 파악하기 위해 간단히 준비를 끝낸 후 청백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진짜로 난이도가 그렇게 높아 혼자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라면 어떻게 팀이라도 구해 공략해야 할 것이고… 소문보다 할 만한 곳이라면 그대로 혼자 공략해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