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섀도우 로드 vs 그림자의 전설
루딘이 이끄는 ‘그림자의 전설’ 길드의 정예들이 속속 얼음 대륙으로 집결했다.
대략 3,000여 명.
길드원의 총원이 3만 명이 넘었던 ‘그림자의 전설’.
그 3만 명 중 추리고 추린 인원이 바로 이들이었다.
당연히 모두 한계 레벨이 250레벨이었고, 직업 밸런스도 적당히 맞춰 정말 어지간한 길드는 한 방에 밀어버릴 수도 있을 정도의 강력한 전력이었다.
루딘은 이 정도의 전력이라면 설사 섀도우 로드가 정상 상태라고 해도 이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 어쨌든 그만큼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들은 루딘의 지휘 아래 곧장 섀도우 로드의 길드 하우스가 있는 망각의 계곡을 향해 이동했다.
망각의 계곡 안쪽에 위치한 섀도우 로드의 전투 요새.
그 요새를 공략하고 궁극적으로 섀도우 로드의 길드 스톤을 부숴버리는 게 이번 전투의 목적이었다.
“얼마나 모였지?”
섀도우 로드의 길드 하우스로 이동하던 중 루딘이 자신의 심복인 불꽃쌍칼에게 물었다.
“대략 300여 명이 모인 것 같습니다.”
“300명? 생각보다 많군.”
“저희가 파악한 것보다 더 많은 숫자의 길드원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 크크, 하지만 그래봤자 마지막 발악일 뿐이지… 300명으로 뭘 어떻게 하려고? 후후훗.”
“어차피 주요 멤버들은 전부 제거했으니, 남은 건 별것 아닌 쭉정이들일 겁니다.”
이미 섀도우 로드의 주요 전력을 완전히 무력화시킨 그들은 현재 모인 300명이란 숫자가 마지막 발악을 위해 꾸역꾸역 모은 별것 아닌 전력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들은 섀도우 로드의 저력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쉽게 생각할 수 있었다.
비록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에 휘청거린 건 사실이었지만 섀도우 로드는 여전히 섀도우 로드였다.
얼음 대륙으로 모여든 그림자들.
그들은 루딘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이들이었다.
* * *
“잠시 쉬고 있던 사람들도 전부 모였다. 총원 311명… 마지막 결전을 펼칠 수는 있을 것 같다.”
카인이 최종 인원 보고를 했다.
원래는 100여 명이 모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여기저기에서 섀도우 로드의 위기 소식을 듣고 잠시 게임을 접고 쉬고 있던 유저들마저 모두 달려온 상황이었다.
“다 와준 건가…….”
가츠가 조용히 감고 있던 눈을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겠어? 언론에선 연일 시끄럽게 떠들던데…….”
“상관없어. 그들이 뭐라고 떠들어도 이번 전투에서 빠질 수는 없지. 비록 당분간 떠나있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번 전투는 절대 빠질 생각이 없다.”
가츠는 현실에서의 정체가 노출되면서 언론의 여러 추측성 보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무결점의 파이터라고 불릴 정도로 모든 게 완벽했던 가츠였기에 언론은 더 극성스럽게 가츠의 사생활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들이 그렇게 작정하고 기사를 쓰기 시작하자, 정말 없던 얘기가 만들어지고 순식간에 가츠에게 좋지 않은 소문들이 돌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질이 안 좋은 건 가츠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그 파괴 본능을 가상현실에서 풀고 있다는 괴상한 보도였다.
정말 한 사람을 정신병자로 만들고 있는 그 기사는 그동안 가츠가 쌓아 놓은 무결점의 이미지를 완전히 산산 조각내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심하잖아.”
“괜찮아.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스스로 떳떳하면 그만이야. 너무 시끄럽기 때문에 이번 전투를 끝으로 잠시 쉬어야 할 것 같긴 하지만… 적어도 이번 일만큼은 꼭 마무리 짓고 싶다.”
가츠에게 섀도우 로드는 또 하나의 인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다.
“워~ 철혈, 냉혈의 카인이 그렇게 울상을 짓고 있으면 남들이 놀린다. 얼굴 좀 펴. 다시 한 번 예전처럼 우리 같이 달려보자.”
가츠와 카인은 게임을 하기 전부터 친구였다.
아주 오래전 가츠가 모든 걸 포기하고 폐인처럼 지낼 때 그를 다시 달리게 만들어 준 것도 카인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서로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썅… 달려보자.”
카인은 애써 웃으려고 노력했다.
비록 상황은 최악이었지만 적어도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건 그에게 큰 힘이 되었다.
“놈들을 섬멸한다. 진짜 강함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자.”
스윽.
가츠는 천천히 섀도우 로드의 길드원들이 모여 있던 광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최후의 일전.
가츠는 그 일전에 자신의 모든 걸 불태울 생각이었다.
‘많네…….’
율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신의 동료라고 할 수 있는 섀도우 로드의 길드원들을 쳐다보았다.
우연히 가츠와 만나 가입하게 된 길드였지만 처음엔 그저 가츠만 보고 가입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동료의 의미를 알게 된 율은 이번 일에 빠질 수가 없었다.
동료를 위해 싸운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율이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로지 가츠와 카인만 알고 있을 뿐 다른 길드원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동료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자의에 의해 어딘가에 소속되었던 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약간은 어색했지만, 그래도 그들을 동료로 받아들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위기에 더욱 강해진다는 말이 사실이었네.’
위기가 찾아오면 더욱 강해지는 길드가 바로 섀도우 로드였다.
비록 100%의 전력은 아니었지만 그 큰 위기 속에서도 어느 정도의 전력을 갖추는 걸 보면 섀도우 로드가 보통 길드가 아닌 건 확실했다.
어쨌든 율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드디어 가츠와 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여 있는 길드원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온 가츠가 미리 준비해 놓은 단상 위로 올라갔다.
“휴우~ 다들 오랜만이네요.”
웃음과 함께 얘기를 시작한 가츠.
그는 큰 위기에 빠진 길드의 마스터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표정이 좋았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싸워야 할 이유를 알고 싸웠습니까? 그냥… 덤비는 놈들을 박살내면 그만인 것이죠.”
간결하게 결론을 내고 있는 가츠.
그는 억울함을 하소연하지도, 루딘의 치졸한 수법을 얘기하지도 않았다.
그저 싸우자고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 망할 놈들이 어떻게 나오든 그저 밀어버리면 끝이지.”
“그럼~ 그게 바로 섀도우 로드지!”
가츠의 말에 크게 공감하는 길드원들.
확실히 그의 말은 간결했지만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적들은 우리보다 많습니다. 대략… 열 배 정도입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한 사람 앞에 열 명… 모자라는 건 제가 더 썰어버리겠습니다.”
“흐~ 열 명으로 되겠어? 난 스무 명을 목표로 달린다.”
“어라, 네가 스무 명이면 난 서른 명이다!”
“좋습니다. 그러한 자세면 충분합니다. 단지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우리들의 긍지! 부러지고 밟히고 박살이 날지언정 굴복당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 그것이 바로 우리 섀도우 로드의 긍지입니다. 놈들은 우리를 철저하게 무너트리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이 붉은 십자가를 등 뒤에 짊어지고 있는 이상, 그 긍지를 포기하실 분은 없을 겁니다.”
“크크, 누가 와도 바뀌지 않는 것이지.”
“붉은 십자가를 포기하는 것보단 게임을 포기하는 게 더 쉬울 것 같은데…….”
“이거 오랜만에 불타오르는데?”
가츠의 말을 듣고 있던 섀도우 로드 길드원들의 가슴이 서서히 뜨겁게 달궈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저놈들에게 우리들의 긍지가 무엇인지 똑똑히 알려주겠습니다. 이 검과 도로 그들의 가슴에 확실하게 새겨줄 생각입니다.”
스릉! 챙!
가츠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거대한 검과 도를 양손에 뽑아들었다.
“섀도우 로드를 위하여!”
큰소리로 마지막 한마디를 외치는 가츠.
그 순간 그곳에 모여 있던 모든 섀도우 로드의 길드원들도 똑같이 큰소리로 외쳤다.
“섀도우 로드를 위하여!”
“섀도우 로드를 위하여!!”
“섀도우 로드를 위하여!!!”
……
……
율 역시 어느새 주먹을 불끈 쥐며 큰소리로 똑같은 말을 외치고 있었다.
율은 이게 바로 끈끈한 동료애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같은 길드라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회색 망토에 새겨져 있는 붉은 십자가.
환영인 건가?
아니면 그들의 굳은 의지가 표현된 것일까?
지금 이 순간 마치 그 붉은 십자가가 붉은빛을 뿜어내며 밝게 빛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 * *
그림자의 전설은 정공법을 선택했다.
이미 수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그들이었기에 아예 정면으로 쓸어버리면 금방 끝날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3,000 vs 300.
얼핏 상대가 안 될 것 같은 전력이었지만 놀랍게도 섀도우 로드는 2시간이 넘게 외성 벽을 지켜내고 있었다.
그 선봉에 선 남자는 가츠.
외성 벽 앞에서 두 자루의 검과 도를 들고 미친 듯이 적을 공격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 한 마리의 야수 그 자체였다.
외성 벽 앞에서 이루어진 전면전.
물론 섀도우 로드는 무작정 전면전을 펼치지 않았다.
그들은 망각의 계곡 지형이 매우 험난한 바위산 지형이란 것을 이용해 외성 벽에 설치되어 있던 각종 공성병기를 사용하여 힐러진과 원거리 딜러진을 최대한 괴롭히면서 근접 딜러진과 탱커진을 그들과 분리시켰다.
그렇게 벌어진 틈을 파고든 가츠와 별동대가 그들 진형 전체를 뒤흔들었고, 카인이 조직한 로그나 헌터 계열 두 파티의 암살 부대는 은밀하게 후방을 교란시키며 힐러들을 전문적으로 암살했다.
거기에 섀도우 로드의 탱커 유저들은 진을 구성한 후 외성 벽의 문을 틀어막고 그림자의 전설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비록 숫자는 적었지만 섀도우 로드의 진형은 완벽했다.
오히려 그림자의 전설은 숫자가 너무 많다 보니 서로 엉키고 밀리면서 제대로 진형을 잡지 못하고 계속 섀도우 로드에게 끌려만 다니고 있었다.
“뭐해! 뒤에 힐러들이 다 당하잖아! 애들 뽑아 빨리 뒤로 돌려!”
300명인 섀도우 로드는 가츠가 메인 오더를 내렸고, 나머지는 카인과 탱커들 중 리더인 흑곰과 성벽 위 공격조의 리더인 플래쉬, 힐러들을 이끌고 있는 빛의사제. 이렇게 4명이 그 오더를 받아 중간에 명령을 내리는 콜러 역할을 수행했다.
단 5명으로 이루어진 명령체계는 매우 빠르고 정확했다.
반면, 그림자의 전설은 메인 오더인 루딘 혼자 내렸지만 그 오더를 받는 콜러가 무려 40명이 넘었기 때문에 명령체계가 너무 난잡했다.
대규모 전쟁을 해본 경험이 없던 루딘과 그 일당의 한계가 나타난 부분이었다.
“크! 미련한 놈들! 친위대는 다 날 따라와! 내가 직접 가츠를 처리하겠다.”
루딘은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벌써 3천여 명 중 200명에 가까운 길드원들이 당한 상태였다.
그런데 섀도우 로드를 잡은 건 채 10명도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이대로라면 아무리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아도 결국엔 자신들이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은 루딘은 점점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각 콜러들은 자기 조를 잘 관리하고 흩어지지 마라! 놈들에게 틈을 제공하지 말란 말이야!”
소리를 지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지만 루딘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명령을 내리는 것밖에 없었다.
“으아아아!”
화르륵!
“크아악!”
가츠의 붉은색 도가 한 유저의 옆구리를 훑고 지나가자 그 유저의 몸 전체에 불이 붙었다.
“율! 뛰어오는 놈들을 차단해!”
그렇게 한 명의 적을 해치운 가츠가 옆에 있는 율에게 소리치며 다시 검을 휘둘러 남아 있던 또 한 명의 적을 베어갔다.
“네!”
율은 현재 가츠와 함께 별동대에서 활약하는 중이었다.
가츠의 명령이 떨어지자 곧장 좁은 길목으로 달리며 묵현을 연주하는 율.
율의 연주와 함께 지원을 하기 위해 달려오던 그림자의 전설 길드원들 앞에 넓은 화염의 장막이 만들어졌다.
불타는 대지를 이용해 만든 일시적인 바리게이트.
이걸 통과하려면 적들도 상당한 데미지를 입을 수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뛰어들지 못했다.
그리고 그 틈을 이용해 가츠와 별동대 딜러들이 빠르게 남은 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 끝! 모두 절벽 아래로 달려!”
가츠는 빠르게 정리를 끝낸 후 곧장 별동대를 끌고 미리 확보해 놓은 퇴각로로 달려 나갔다.
율은 파티원들의 이동을 돕기 위해 이동속도를 올려주는 노래를 부르며 함께 달렸다.
빠르고 깔끔한 처리와 함께 뒤로 빠지는 것 역시 나무랄 데가 하나 없었다.
결국 율이 펼친 불타는 대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금 늦게 현장에 도착한 그림자의 전설 지원부대는 결국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듯, 쓰러진 자신들의 동료들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가츠는 두 파티가 조금 넘는 16명 인원을 별동대로 조직해 돌아다니며 끊임없이 그림자의 전설을 괴롭혔다.
그와 함께 카인 역시 두 파티, 14명으로 이루어진 암살조를 따로 운영하고 있었으니 일단 별동대는 두 개라고 할 수 있었다.
30명밖에 되지 않는 이 인원은 무려 3천 명에 다다르는 그림자의 전설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되었다.
잡고 싶지만 쉽사리 잡지 못하는… 오히려 잡으려다가 더 큰 피해를 입게 되는 그런 상황이 계속 되풀이되자 루딘이 아예 직접 나섰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뀌는 건 없었다.
망각의 계곡 지형을 섀도우 로드의 일원들보다 잘 아는 이들은 없었다.
험준한 바위산 지형은 얼핏 처음 온 이들에겐 미로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복잡했기 때문에 그림자의 전설은 정말 큰 고역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정면도 뚫리지 않고 오히려 게릴라 전술에 피해만 누적되어 가는 상황.
이 상황은 정말 그림자의 전설에겐 최악이었다.
* * *
“추적 완료. 30m 앞에 21명이 이동 중이야. 아마도 암살조를 잡으러 가는 지원 부대인 것 같은데?”
추적술의 달인이라고도 불리는 섀도우 로드의 헌터 유저 시즈는 정확하게 그림자의 전설 유저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의 추적술은 그를 중심으로 반경 1Km 안의 모든 유저들을 추적할 정도로 대단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가츠와 별동대는 신출귀몰한 모습을 보여주며 그림자의 전설을 유린하고 있었다.
“흐음… 근처에 다른 유저는 없고?”
“한 1Km 언저리에 살짝 걸린 애들이 있는데, 이동 방향이나 클래스 구성으로 볼 땐 미끼로 던진 애들 같은데?”
“후후, 이제야 미끼 그룹을 던지네. 늦어도 너무 늦었어. 그리고 너무 뻔히 보이잖아.”
“좋아, 그럼 잡아먹는다. 모두 준비하고, 시즈를 따라 은밀하게 이동하자.”
루딘의 수작을 읽은 가츠가 재빨리 결정을 내렸다.
가츠의 명령이 떨어지자 시즈는 곧장 정밀 추적 모드를 발동시키고 천천히 21명의 적을 향해 이동했다.
그 뒤를 따르는 가츠와 별동대.
적절한 습격 위치에 도달하면 한 번에 덮쳐서 전멸시키는 게 보통의 전술이었다.
그렇게 시즈가 추적하길 몇 분… 시즈가 정확하게 예측한, 그들이 곧 도착할 길목에 은밀하게 숨은 별동대는 그들이 오길 기다렸다.
별동대가 숨은 지 정확히 1분이 지났을 때 드디어 적들이 나타났다.
나름 구성을 제대로 갖춘 두 파티.
탱커가 4명에 힐러가 6명, 그리고 나머지 11명이 딜러였다.
[일단 힐러 4명을 전부 녹인다. 일시 무적 계열 스킬은 조심하고 메져들은 딜러들 위주로 메즈한다.]
사실 이런 말도 할 필요가 없었지만 가츠는 늘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것은 일종의 준비하라는 신호였다.
14명의 적이 가츠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지역에 들어온 순간, 곧장 습격 명령을 내렸다.
“지금!”
화악!
전투 시 가장 훌륭한 전법인 매복 후 기습.
이 전법이라면 설사 적이 두 배나 많다고 해도 필승을 자신할 수 있었다.
“힐러를 녹여!”
파파팟!
콰과과광!
거대한 도와 검을 전방을 향해 힘차게 휘두르며 외치는 가츠.
마침 힐러들이 예쁘게 모여 있어줬기에 녹이는 것도 한결 더 수월했다.
그 순간 메져들은 딜러들을 꽁꽁 묶어버렸다.
발 묶기, 기절, 쓰러트리기, 공포 등등 다양한 메즈 기술을 이용해 딜러들을 완전히 무력화시킨 메져들.
율은 메져들과 함께 뒤에서 백업 역할을 맞고 있었다. 물론 그가 메즈를 위해 이곳에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거의 버퍼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했다.
그와 동시에 훌륭한 딜러이기도 했고, 또한 급할 땐 메져의 역할까지 맡았다.
전천후란 말이 딱 어울리는 율.
가츠는 애초에 이런 율의 가능성을 보았던 걸까?
율이 길드 하우스에 찾아왔을 때도 가장 반겼던 건 가츠였다.
그리고 그는 율을 직접 데리고 다니며 율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율의 변화를 누구보다 즐거워했고 율의 능력을 누구보다 많이 칭찬했던 가츠.
그렇기에 율은 100%, 아니 120%의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우어어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율의 영혼의 용기.
단순히 용기 능력치를 추가해 주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어주는 노래였기에 별동대의 유저들은 자신의 모든 힘을 끌어내며 전력으로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
단 10분.
16명이 21명을 정리하는데 불과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아군의 피해는 제로(0).
21명을 정리하며 위기란 존재하지 않았었다.
“시즈! 놈들의 위치는?”
“100m까지 접근! 빨리 빠져야 해!”
“모두 전속으로 이탈하자!”
가츠는 별동대를 이끌고 다시 바위산 틈으로 사라졌다.
“뭐, 뭐? 또 당했다고?”
순간 루딘의 눈에 핏대가 섰다. 그토록 조심했는데 또 당했다.
아예 습격에 당하지 말라고 3파티로 한 조를 구성했는데도 당했다.
정말 이건 루딘에겐 굴욕적인 일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형님…….”
“이이이… 당장 가츠를 찾아내! 3파티로 부족하면 4파티, 5파티로 수색대를 구성해. 놈을 찾아서 뼈까지 전부 발라버리지 않으면 도저히 화가 풀릴 것 같지 않다. 모든 길드원을 동원해서라도 찾아! 당장!”
루딘의 분노가 극에 달았다.
3천 명을 끌고 왔건만 300명에게 농락당하고 있는 이 현실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루딘.
그는 그래서 아예 섀도우 로드의 길드 요새를 공략하는 것보다 밖에 빠져 있는 별동대들을 섬멸하는 걸 우선적으로 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선택은 감정에 치우친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사실 길드 요새만 무너트린다면 별동대에게 입는 피해는 완전히 무시해도 그만이었다.
가츠는 혹시라도 루딘이 그렇게 별동대를 무시하는 작전을 쓸까봐 걱정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별동대의 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루딘은 처음부터 가츠의 이런 의도에 제대로 낚여 주었다.
병력을 뒤로 빼고… 심지어 정예들도 별동대를 잡기 위해 뺐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요새 쪽은 더욱 여유가 생겼다.
카인과 가츠가 생각해낸 게릴라 전술.
루딘은 이 전술에 제대로 걸려들었고, 결국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점점 더 큰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다.
섀도우 로드와 그림자의 전설.
이 두 길드의 전쟁은 이렇게 점점 더 치열하게 변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