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비상을 시작하는 비주류들
“피, 피해!”
당황한 표정으로 다급하게 외치는 도르한.
하지만 그의 외침은 그저 허공에 울려 퍼질 뿐이었다.
퍼퍼퍽!
“커어억!”
하나밖에 없던 힐러가 결국 갑자기 나타나 보이지 않던 거대 혈목의 날카로운 나뭇가지들에게 관통당하며 쓰러졌다.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
20분 동안 거대 혈목을 상대하며 간신히 버티고는 있었지만… 결국 거대 혈목의 생명력을 깎지 못한 도르한의 파티는 이렇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명밖에 없던 힐러가 사망했으니, 도르한 파티의 미래는 완벽하게 결정되었다.
이럴 때 보조 힐이 가능한 힐러나 전투 부활이 가능한 클래스라도 있었다면 어찌어찌 다시 도전해볼 수도 있겠지만 도르한 파티에는 그런 클래스 자체가 없었다.
혹시 ‘불사조의 피’라도 있었다면 힐러를 부활시켰겠지만 불사조의 피는 최고 레벨 유저들마저 거의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값비싼 아이템이었기에 당연히 도르한 같은 허접한 놈들이 사용할 물건이 아니었다.
[끝났다.]
강한남자가 단 한마디로 현재 도르한 파티의 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했다.
율과 그의 파티원들은 뒤로 빠져 근처의 다른 몬스터들을 사냥했다.
그 와중에 강한남자는 사냥에서 살짝 빠진 후 멀리서 도르한 파티의 사냥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그가 딱 20분 만에 상황이 종료되었음을 알려왔다.
힐러가 사망한 후 단 몇 분 만에 줄줄이 바닥에 쓰러진 도르한 파티.
도르한은 탱커답게 마지막까지 버텼지만 결국 그도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차가운 바닥에 입을 맞췄다.
[오케이~ 이것만 마무리하고 그쪽으로 바로 이동할게.]
20분 동안 주변의 몬스터들을 적당히 정리하고 있던 비주류 파티는 강한남자의 말을 듣자마자 곧장 사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히든 네임드 보스를 잡을 경우 상당한 보상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놓치지 않는 게 좋았다.
특히, 비주류 파티는 도르한의 파티처럼 준비가 전혀 안 된 파티가 아닌지라 거대 혈목 공략이 크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론은 언제나 확고한 다크불은, 알고 있는 이론만큼 준비성도 철저해 블러드 우드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몬스터(네임드, 보스몬스터 포함)들의 정보를 숙지하고 그에 맞는 준비를 다하고 다녔다.
덕분에 자신은 잡템들을 줍지 못할 정도로 가방에 여유가 없었지만 그는 그런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뭐, 구성 자체가 나쁘지 않아 공략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놈한테 물리 공격은 거의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화염 속성에 관련된 인첸트를 받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그러니 로이드는 무조건 플레임 블레이드만 사용하고, 강한남자 너는 내가 준 ‘불타는 오일’을 쿨마다 방패에 뿌리면서 싸워라.]
[흐~ 장사 하루 이틀 하냐? 이미 준비 완료다.]
[아~ 그리고 혹시 거대 혈목의 가지들이 전부 동시에 마구 흔들리면 꼭 강한남자 네가 앞에 나서서 방어모드 켜고 방패로 막고 버텨라. 모든 가지를 이용해 전방을 향해 피어싱(꿰뚫기) 공격을 하는 건데, 이걸 방어하지 못하면 근처에 있는 다른 파티원 중 한 명이 그 데미지의 10배에 해당되는 충격을 받으며 눈에 보이지 않던 가지가 나타나 한 방에 관통 당한다. 히든 스킬이라 상당히 드물게 사용하겠지만 일단 이거에 당하면 답이 없으니까 주의해라. 그밖에 다른 특이점들은 아까 간단히 설명한 게 답니다. 특별히 어려운 건 없으니 후딱 잡아버리도록 하자고!]
[오케이~]
[알았어.]
[네에~]
[알겠습니다.]
모든 파티원이 다크불의 얘기를 듣고 확인을 끝냈다.
이제 남은 건 히든 네임드인 거대 혈목을 잡는 일뿐이었다.
* * *
피가 튀는 치열한 전투와 노래.
이 두 개는 언뜻 어울릴 것 같지 않았지만 그건 단순한 편견일 뿐이었다.
거대한 붉은색 나무와 싸우는 6명의 유저들.
그리고 그 유저들의 귓가에 연속해서 울려 퍼지는 다양한 노래들.
때론 신나게.
때론 아름답게.
때론 잔잔하게.
때론 광폭하게.
여러 종류의 멜로디였다.
강력한 화염을 만들어내는 노래.
파티원들의 공격 능력을 상승시켜 주는 노래.
파티원들의 방어 능력을 상승시켜 주는 노래.
……
……
정말 다양한 효과를 지닌 여러 노래들이었다.
하지만 율의 노래가 단순히 버프로써의 의미만 지닌 건 아니었다.
율은 노래를 통해 사냥의 호흡을 조절하고 파티원들 간의 유기적인 협력을 이끌어냈다.
그는 이미 음유시인의 노래가 가지는 진정한 의미를 어렴풋이 깨달아가는 중이었기에 버프 스킬로써의 노래가 아닌 진정한 노래로써의 노래를 부르는 중이었다.
그래서일까?
율의 노래는 특별했다.
예를 들자면… 탱커인 다크불이 순간적으로 거대 혈목이 내뿜은 독에 노출되어 이동속도가 느려졌는데, 하필 건 프리스트 이안이 독 해제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일 때, 율이 재빨리 화염을 불러내는 노래(불타는 대지)를 끝내고 곧장 이동속도를 순간적으로 상승시켜 주는 노래(깃털처럼 가볍게)를 불러 다크불의 이동속도를 정상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 결과 이동속도가 정상으로 돌아온 다크불은 침착하게 뒤로 물러날 수 있었고, 뒤를 이어 빠르게 준비를 끝낸 이안은 다크불의 중독을 풀었다.
이런 식으로 율은 파티원들 간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렇게 비주류 파티원 전원이 뭉쳐서 거대 혈목의 생명력을 조금씩 깎아갔고, 약 15분이 지나자 슬슬 거대 혈목이 마지막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모두 떨어져요. 마무리는 원거리 딜로 잡아야 합니다!”
다크불이 거대 혈목을 어깨로 강하게 들이받아 밀어낸 후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거대 혈목은 생명력이 5% 이하로 내려가면 모든 위협 수준을 무시하고 미친 듯이 주변에 초당 천의 데미지를 주는 광역 공격을 하게 되어 있었다.
이 경우엔 딜러들이나 탱커가 미리 모두 뒤로 빠져야 한다.
“이거나 먹어라!”
융단폭격이 미리 준비해 두었던 두 개의 강력한 화염폭탄을 거대 혈목에게 던졌다.
꽈과과광!
그와 동시에 율의 ‘불타는 대지-겁화’도 거대 혈목의 발밑에서 치솟았다.
화르륵!
퍼퍼퍼펑!
5%밖에 남지 않았던 거대 혈목의 생명력이 순식간에 깎여 나가기 시작했다.
“잡았구나~~!”
강한남자의 기분 좋은 외침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즐거운 기분은 오래 가지 못했다.
원래는 쓰러졌어야 할 거대 혈목.
하지만 검게 변한 거대 혈목은 쓰러지지 않았다.
분명 생기(生氣)가 거의 사라졌지만… 완벽하게 죽지는 않았다.
스스스스.
갑자기 거대 혈목을 둘러싸고 있던 주변의 마나가 거대 혈목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으음!?”
“뭐, 뭐야?”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하는 비주류 파티.
원래대로라면 쓰러졌어야 할 거대 혈목이 쓰러지지 않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변화는…….”
그 순간 다크불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이론 하나는 철저하게 연구한 그의 머릿속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한 가지 이야기.
“설마!”
다크불은 언젠가 소문처럼 들었던 한 가지 현상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물론 그 현상을 두고 많은 유저들은 누군가 지어낸 거짓말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다크불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재미로 읽어봤을 뿐이었다.
블러드 우드에서 아주… 매우… 드물게 일어난다는 ‘블러드 게이트’ 현상.
히든 네임드를 잡았을 때 극악의 확률로 일어나는 이 현상은, 히든 네임드의 희생을 제물 삼아 블러드 우드에서 가장 특별하고 신비한 네임드인 ‘블러디 섀도우(血影)’.
블러디 섀도우는 매우 특이한 네임드였다.
일단 블러드 우드의 최종 네임드라고 알려진 ‘블러드 웜’과는 개념 자체가 완전히 다른 네임드였다.
블러드 웜은 레벨이 300인 거대 네임드였다.
당연히 지금까지 공략한 팀은 한 개도 없었다.
블러드 웜과 달리 블러디 섀도우는 정해진 레벨이 존재하지 않았다.
블러디 섀도우는 자신을 불러낸 유저들의 평균 레벨에 +20을 한 레벨을 지니게 되었다.
즉, 지금 비주류 파티의 평균 레벨은 170대 후반이었다.
블러드 우드에 들어올 때만 해도 율을 제외한 나머지 파티원들이 170대 레벨이었고, 율이 140대 레벨이었지만 블러드 우드에서의 치열한 사냥 덕분에 율은 160대 레벨에 올랐고 나머지는 180대에 올랐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나타난 블러디 섀도우의 레벨은 190대 후반으로 고정되었다.
점점 모습을 드러내는 커다란 붉은색 그림자는 비주류 파티 전원을 압박했다.
현재까지 제대로 된 공략법조차 나오지 않은 매우 희귀한 네임드답게 그 생김새마저 굉장히 독특해 보였다.
“이런 망할…….”
다크불이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블러디 섀도우에 대해 알려진 내용이라곤 동 레벨의 다른 네임드들보다 훨씬 공략하기가 힘들고, 블러드 우드의 큰 비밀 중 하나를 가지고 있는 네임드라는 점뿐이었다.
당연히 이것 역시 공략이 된 네임드는 아니었다.
워낙 등장하지 않는 희귀한 네임드였고 막상 등장했을 때는 대부분 어리바리한 유저들이 맞이했기 때문에 전혀 공략이 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크불은 일단 인상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극악의 확률을 뚫고 이 블러드 섀도우를 불러내게 된 건 행운이라 할 수도 있었지만… 평소에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하는 변수 자체를 즐기지 않는 안전제일주의 원칙을 가지고 있는 다크불에겐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는 진행이었다.
“뭐야? 이놈, 다시 살아나는 스킬도 있는 거야?”
아직까지 상황파악이 정확하게 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크불을 향해 물었다.
“아니, 거대 혈목은 확실히 소멸되었어. 이놈은… 블러드 섀도우. 전설처럼 소문으로만 알려진 초특급 레어 히든 네임드야.”
다크불이 천천히 형태를 갖추어가는 붉은색 그림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엥!? 또 네임드?”
“그냥 네임드가 아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공략이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놈이야. 정확한 스킬 패턴도… 아니, 어떤 스킬을 사용하는지도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는 놈이지. 일단 모두 집중해보자. 썅… 이렇게 된 거 한번 잡아보자.”
공략법도 모른다. 아니 아예 어떤 종류의 네임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작도 안 해보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띠링~
율이 가볍게 웃으며 묵현을 튕겼다.
애초에 네임드에 대한 두려움 따위가 존재하지 않았던 율이었기에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율의 잔잔한 연주가 잔뜩 흥분된 동료들의 감정을 가라앉게 만들어 주었다.
이 멜로디는 특별한 음유시인의 스킬 같은 것이 아닌 그저 율이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즉흥적으로 만든 것치고는 대단히 효과가 좋았다.
마음이 차분하게 변하며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용기까지 생겨났다.
띠링, 사람들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감미로운 멜로디를 연주했습니다.
띠링, 당신이 만든 이 멜로디는 ‘감정을 움직이는 연주’로 기록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이 연주는 특별한 힘을 지니게 됩니다.
띠링, ‘감정을 움직이는 연주’로 기록된 이 멜로디는 당신의 고유 스킬로 등록됩니다. 멜로디의 이름을 기록하세요.
띠링, 음악이해도Ⅲ(패시브) 스킬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띠링, 기타연주(SS) 스킬 숙련도가 0.004상승합니다.
띠링, 특수능력치 예술이 4올랐습니다.
……
……
[-------][000.000]
: 듣는 순간 안정되는 멜로디. 그와 동시에 가슴속 한구석에서 묘한 열정을 끌어올리는 멜로디. 이 연주는 아마 전설이 될 것이다.
소모에너지 : 소울에너지 50
능력 : 연주를 듣는 모든 동료들에게 특수 능력치 용기(+60)를 부여함(15분 유지).
특이사항 : 연주시간[30초]. 재사용 대기시간[15분]
갑작스럽게 생겨난 또 하나의 스킬.
하지만 율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묵현을 연주했다.
“좋아! 해보자!”
“히든 네임드가 뭐 별거냐?”
“크크크, 승리란 도전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었지.”
율의 연주로 힘을 얻은 비주류 파티의 파티원들이 힘차게 외치며 전투 준비를 했다.
“일단 이놈에 대해 어느 정도 정보를 습득하는 게 먼저니까… 최대한 몸을 사리면서 외곽으로 돌게요. 모두 힘을 아끼면서 살짝 견제만 해주세요.”
이왕 이렇게 된 것, 싸우며 공략법을 연구하기로 결론을 내린 다크불은 일단 탐색전을 통해 정보를 얻을 생각이었다.
그그그그.
그 순간 드디어 커다란 붉은색 그림자가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희미하게 보이는 붉은색 그림자 괴물.
이것이 바로 블러디 섀도우의 실체였다.
“자, 시작합니다.”
다크불이 두 주먹을 꽉 쥐며 블러디 섀도우를 향해 몸을 날렸다.
비주류 파티의 블러디 섀도우 공략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 *
히든 네임드 블러디 섀도우.
암흑 속성과 악마 속성, 그리고 그림자 속성을 가지고 있는 마법형 네임드.
모든 물리형 데미지는 70% 감소되었고, 성(聖)속성과 화(火)속성 공격에 약한 면을 보였다.
주력 스킬로는 주변에 광역 데미지를 주는 암(暗)속성의 오라 공격과 제일 위협 수준이 높은 한 사람을 대상으로 사용하는 그림자 송곳(피어싱 데미지), 그리고 가끔가다 한 번씩 랜덤하게 세 명의 대상을 지정하여 사용하는 ‘붉은 그림자의 저주’를 거는데, 이 저주가 걸린 대상은 무조건 한 점으로 뭉쳐야 했다.
이렇게 세 가지 기술만 놓고 보면 그다지 어려운 네임드 몬스터가 아닐지도 몰랐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블러디 섀도우가 굉장한 난이도를 지닌 네임드 몬스터가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블러디 섀도우가 지니고 있는 두 가지 버프.
‘피의 축복’과 ‘어둠의 망토’.
피의 축복은 주기적으로 주변 100m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의 피를 흡수하는 버프였다.
각각의 대상으로부터 전체 생명력의 30%를 흡수하는데 흡수한 양의 5배 정도 되는 생명력을 회복했기 때문에 이 버프를 막지 못하면 거의 딜을 해도 소용이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리고 어둠의 망토는 공격하는 대상에게 반사 데미지를 주는 버프였다.
데미지의 30%를 반사하기 때문에 파티원의 생명력은 계속해서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비주류 파티도 처음엔 이 두 가지 버프 때문에 엄청 고생을 했었다.
하지만 두드리면 열린다는 말처럼 그들은 계속해서 끈질기게 버티며 공략 방법을 알아냈다.
일단 앞선 세 가지 공격 패턴을 완벽하게 몸에 숙지시켜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았고, 동시에 ‘피의 축복’과 ‘어둠의 망토’에 대한 대비도 끝냈다.
피의 축복과 같은 경우는 전체 생명력의 50%가 넘지 않으면 흡수되지 않는 것을 알아낸 후… 탱커를 제외한 모든 파티원들이 50%이상의 생명력을 회복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되면서 어둠의 망토가 더욱 까다롭게 변했지만, 비주류 파티의 힐러는 일반 힐러가 아닌 건 프리스트라는 특수한 직업이라는 점이 적어도 여기서만큼은 큰 장점으로 작용되었다.
다른 홀리파워를 사용하는 힐러였다면 어쩌면 아무리 효율이 좋은 홀리파워라고 해도 벌써 이능 에너지가 바닥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건 프리스트는 정신집중 하나만으로 계속 힐이 가능했고, 충분히 예상 가능한 어둠의 망토로 인한 반사 데미지 힐은 확실하게 힐이 가능했다.
건 프리스트는 예상이 불가능한 불규칙적인 데미지에 취약한 대신, 이러한 예상이 가능한 데미지에는 강력함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비주류 파티는 생각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며 블러디 섀도우와 굉장한 장기전을 펼치는 중이었다.
벌써 두 시간을 넘기고 있는 전투 시간.
보통의 파티였다면 벌써 전멸을 해도 충분했을 시간이었지만 비주류 파티는 끈질기게 버티는 중이었다.
그들이 이렇게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동안 블러드 우드에 들어와 손발을 거의 완벽하게 맞춰놓았기 때문이었다.
건 프리스트 이안의 끈질긴 힐과 다크불의 치밀한 분석, 그리고 모든 파티원을 조율하는 율의 연주가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며 블러디 섀도우와의 전투를 지금까지 이끌고 왔다.
하지만 아무리 비주류 파티의 호흡이 좋고 상성이 좋아도 그들 역시 무한정 전투를 계속 이어갈 수는 없었다.
특히, 율과 융단폭격은 소울과 마나를 관리하는데 아주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나마 융단폭격은 조금씩 딜량을 줄이며 마나 명상을 통해 계속 마나를 회복했지만, 율은 그저 자신의 감으로 소울을 조절하며 줄타기와 같은 전투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제일 나은 건 블레이드 위자드 로이드였는데, 사실 그의 공격도 어느 정도의 물리 데미지를 포함하고 있는 공격이었기에 딜링이 폭발적으로 되지는 않았다.
강한남자는 당연히 딜링보단 파티의 생존을 도와주는 쪽으로 플레이를 하고 있었고, 결국 주력 딜은 융단폭격과 율이 책임질 수밖에 없었다.
2시간의 혈투 끝에 남은 결과물은 블러디 섀도우의 생명력이 50%까지 떨어졌다는 사실과 비주류 파티가 거의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사실, 이 둘뿐이었다.
“헉… 헉…….”
블러디 섀도우의 그림자 송곳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다크불이 온몸에 땀을 흘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블러디 섀도우의 생명력은 조금씩 빠지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블러디 섀도우 생명력보다 비주류 파티의 힘이 더 빨리 빠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대로는 우리가 먼저 쓰러지겠는 걸?”
“크으… 하지만 딱히 좋은 방법이 없잖아.”
딱히 해법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뭔가 공략이 잘못된 것이라면 그걸 바꾸면 되겠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공략이 잘못된 게 아니라 그저 블러디 섀도우가 강한 것뿐이었다.
‘…이대로 끝나는 건가?’
율은 약간 동요하는 다른 동료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매우 생소한 감정을 느꼈다.
아련한 안타까움.
같이 이겨내고 싶은 마음.
친구, 동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존재를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율이었기에 이런 감정은 정말 낯설었다.
하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이런 감정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사실 자체가 즐거운 율이었다.
‘정말 방법이 없는 건가?’
율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해 이 위기를 이겨낼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일단 현재 다른 파티원들에게 뭔가를 바라는 건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
바로 자신이 뭔가를 하는 것이었다.
‘뭐가 있지? 영웅들의 서사시? 하지만 그래봤자 변신 시간도 짧고, 쓰고 나면 말 그대로 바보가 되기 때문에 이 상황에선 사용할 수 없어.’
수많은 생각들이 빠른 속도로 율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딱히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율은 이미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활용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고, 여기서 더 힘을 내기 위해선 그가 가진 능력을 뛰어넘는 뭔가가 필요했다.
‘새로운… 전혀 새로운 노래가 필요해!’
결론은 금방 나왔다.
어차피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선 그가 제일 잘하는 노래밖에 없었다.
새로운 노래.
그것도 지금까지 불렀던 것들보다 훨씬 더 대단한 노래가 필요했다.
‘지금은 진짜 영웅이 필요할 때야!’
그 순간 왜 영웅들의 서사시가 다시 떠올랐을까?
그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단지 율은 스킬로써 배운 영웅들의 서사시가 아닌 진정한 자신만의 영웅들의 서사시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진짜 영웅이란…….’
지잉!
허공으로 무겁게 퍼져나가는 떨림.
그 떨림과 함께 율의 입에서 환상과도 같은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단순히 영웅에 대한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노래 자체가 영웅을 표현하고 있었다.
아니, 아예 노래를 듣는 순간 한 영웅이 눈앞에 등장했다.
커다란 덩치에 수백 가지 문신을 몸에 새긴 근육질의 남자.
그는 바바리안의 전설이라 불리는 타이온이었다.
모든 바바리안들의 정점에 섰던 인물로, 고대의 초월적인 존재들에게 인정받아 그들이 직접 새겨준 네 가지 특별한 문신은 그를 반쯤은 초월적인 존재로 만들어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율은 자신의 노래에 심취하여 타이온에 대한 서사시… 정확히 말하면 그 나름대로 생각한 진정한 타이온에 대한 서사시를 완성시켜 나갔다.
그의 노래와 함께 허공에 푸른색 안개 같은 것이 은근히 깔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갈수록 그것은 점점 진해졌다.
짧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은 율의 노래가 끝났을 땐 모든 이들이… 심지어 비주류 파티가 잡고 있던 블러디 섀도우마저 아주 잠시 공격을 멈췄을 정도다.
띠링, 모든 존재에게 진실보다 더 진실 같은 환상을 보여주는 ‘위대한 명곡’을 노래했습니다.
띠링, 당신이 만든 이 노래는 ‘위대한 명곡’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이 연주는 특별한 힘을 지니게 됩니다.
띠링, ‘위대한 명곡’으로 기록된 이 노래는 당신의 고유 스킬로 등록됩니다.
띠링, 영혼의 음유시인에게 숨겨져 있던 4번째 특별한 노래가 등장하며 당신의 모든 전직 조건(레벨 150이상, 4번째 특별한 노래 습득, 예술 능력치 200이상)이 만족되며 2차 전직을 완료합니다.
띠링, 2차 전직으로 인해 몇몇 능력치가 크게 올랐습니다.
띠링, 2차 전직으로 인해 새로운 스킬이 등록되었습니다.
띠링, 음악이해도Ⅲ(패시브) 스킬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띠링, 노래하기(SS) 스킬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띠링, 기타연주(SS) 스킬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띠링, 특수능력치 예술이 16올랐습니다.
……
……
[진정한 영웅들의 서사시-바바리안의 전설 타이온 ][000.000]
: 그 옛날 모든 바바리안의 우상이었던 영웅 타이온을 연상시키는 한 편의 서사시. 이 노래는 매우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다.
소모에너지 : 최대 소울에너지의 10%.
능력 : 동료 중 한 명에게 영웅 타이온의 영혼을 주입시켜 줄 수 있다. 영웅의 영혼을 주입받은 동료는 그 영웅이 가진 각종 특수한 힘을 레벨에 맞게 얻게 된다.
특이사항 : 유지 시간[20분], 연주시간[40초], 재사용 대기시간[20분]. 동시에 6명까지만 이 효과를 유지시킬 수 있다.
완성된 노래.
그리고 완성된 영웅들의 서사시.
영웅들의 서사시가 진짜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몸에 영웅들의 영혼을 강림시키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에게 각각 어울리는 영웅들의 영혼을 강림시킬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영웅들이 서사시가 가진 진정한 힘이었다.
띠링, ‘바바리안의 전설 타이온’의 영혼을 누구에게 주입 시키겠습니까?
“대상 다크불.”
율이 다크불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상을 지정했다.
고오오오!
율의 노래와 함께 허공에 흐릿하게 생겨난 푸른색 기운들이 한꺼번에 다크불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헉!”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이상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느낀 다크불이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크게 놀랐다.
타이온이 가진 특별한 힘은 다양했지만 그 중에서도 모든 데미지를 최대 60%까지 감소시켜 주는 문신 능력이 다크불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능력이었다.
물론 레벨에 맞게 능력이 다운되어 대략 20~30% 정도의 데미지 감소 효과만 가지게 되었지만 그것만 해도 굉장한 능력이었다.
그밖에도 다른 괜찮은 특수 능력이 있었기에 순간적으로 다크불은 굉장한 힘을 지닌 진짜 탱커가 되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율은 ‘진정한 영웅들의 서사시-바바리안의 전설 타이온’을 끝내자마자 곧장 다른 영웅들의 서사시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남은 소울에너지는 총 에너지의 약 50%.
원래는 대략 30%대의 소울에너지밖에 없었지만 2차 전직이 완료되며 소울에너지의 총량이 늘어나 순간적으로 남아 있던 소울에너지가 50%까지 올라갔다.
율은 이 소울에너지를 거의 전부 다 사용해 동료들의 능력을 순간적으로 모두 극대화시킬 작정이었다.
‘끝까지… 한번 해보자!’
율의 오기가 발동되었다.
이 오기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현재로썬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