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 망한 파티라고 무시하지 마라 (19/95)

5. 망한 파티라고 무시하지 마라

블러드 우드는 다른 던전보다 통로가 넓지 않은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대신 엄청나게 많은 통로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기 때문에 길을 찾는 것 자체가 던전 공략의 한 부분이었다.

다행인 것은 파티의 리더였던 다크불이 이런 부분에선 대단히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보통의 파티 리더들은 블러드 우드의 정밀 지도를 이용해 길을 찾아갔지만, 다크불은 지도를 사용하지도 않고도 척척 잘 찾아갔다.

강한남자는 이런 다크불을 보며 늘 공략만 ‘확고’하다고 놀렸지만 사실 이러한 기본적인 것들이야말로 파티 리더가 가져야 할 필수 사항이었다.

강한남자는 공략만 확고하다고 말했지만 사실 다크불의 탱킹 능력이 많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단지 클래스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단점들이 드러나는 것뿐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젠장… 뒤에 하나 더 있다!”

몬스터의 갑작스런 습격이 있었다.

그 상황에서 다크불은 폭풍난타(暴風亂打) 스킬을 이용해 전방과 양옆에서 나타난 혈목괴(血木怪)들을 모조리 자신에게로 향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뒤늦게 후방에 나타난 혈목괴를 놓치고 말았다.

이럴 때 다른 탱커들이라면 여러 가지 도발 기술을 이용해 놓친 혈목괴를 다시 잡거나, 아니면 탱커 기술의 꽃이라고 불리는 ‘가로 막기’류 스킬을 이용해 멋지게 탱킹을 했겠지만, 아쉽게도 그는 반쪽짜리 탱커인 바바리안 가디언이었다.

도발 기술은 전무했고, ‘가로 막기’류 기술 따윈 없었다.

그렇다고 사정거리가 긴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오로지 몸으로 때우는 게 전부였다.

물론 특수능력치 맷집 덕분에 버티는 것 하나는 정말 잘했지만 확실히 안정성은 무척 떨어졌다.

어쨌든 이대로라면 자칫 후방에 위치한 이안이나 융단폭격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안이 재빨리 헌터의 고유 스킬 중 하나인 ‘긴급회피’ 스킬을 사용하며 옆으로 빠졌지만 문제는 융단폭격이었다.

오로지 폭탄을 사용하는 능력밖에 없는 그였기에 마땅히 뒤에 나타난 혈목괴를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젠장!”

위기를 느낀 융단폭격이 재빨리 밀어내기 효과가 있는 폭탄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혈목괴의 공격은 폭탄이 만들어지는 것보다 빠를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때!

율이 나섰다.

띠링!

가볍게 묵현을 연주하며 혈목괴를 향해 움직이는 율.

이 간단한 멜로디는 율이 전에 연주했던 적이 있던 ‘평온이 찾아온 숲’이었다.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효과가 발동되었다.

율은 연주와 동시에 음유시인의 고유 스킬 중 하나인 ‘바람을 따라 걷기’(소울에너지 10을 소모해 10초 동안 이동속도를 30% 상승시킨다. 단, 연주를 하고 있을 때만 사용할 수 있다. 재사용 대기시간 40초)를 사용했다.

연주의 효과로 순간 몬스터들이 동작을 멈추고 멀뚱멀뚱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 순간.

율이 곧장 뒤에 나타난 혈목괴 옆으로 다가가 들고 있던 묵현으로 혈목괴의 뒤통수를 강하게 내려쳤다.

붉은색 나뭇가지로 이루어진 괴물인 혈목괴는 율이 정성스럽게(?) 키운 스킬인 ‘악기 강타’의 효과로 4초간 기절 상태가 되어 버렸다.

무려 랭크 7까지 오른 악기 강타의 위력이었다.

“다시 어그로 잡아요!”

악기 강타를 사용하며 연주가 끊기자 다시 혈목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율이 기절시켜 놓은 놈은 움직이지 못했다.

“우어어어!”

바바리안의 외침(10의 포스 에너지를 사용해 힘과 체력을 10초 동안 20% 늘려줌. 재사용 대기시간 2분)을 사용하며 급한 대로 어그로를 잡는 다크불.

비록 바바리안의 외침이 도발 효과를 지닌 기술은 아니었지만 율의 노래에 의해 순간적으로 위협 수준이 초기화되었던 몬스터들은 곧바로 이어진 다크불의 외침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폭풍난타.

퍼퍼퍼퍽!

광역기술을 통해 가볍게 다시 위협 수준을 높인 다크불은 곧장 이제 곧 기절 효과가 끝나려고 하던, 뒤에 있는 혈목괴를 향해 몸통 박치기를 시전했다.

꽝!

아주 잠깐 위기가 있었지만 율의 조율로 무난하게 넘어갔다.

벌써 두 시간(게임시간)째… 이런 패턴이 반복되고 있었다.

율은 자신이 가진 최고의 버프 기술인 ‘달빛을 가리는 구름’과 ‘영혼의 용기’(영혼의 음유시인 고유 스킬. 레벨 100에 배울 수 있으며 10분 동안 특수능력치 용기를 생성시켜 그 수치를 30으로 올려줌), 그리고 ‘영혼의 선택’(영혼의 음유시인 고유 스킬. 레벨 100에 배울 수 있으며 10분 동안 자신이 가진 특수능력치 중 하나를 강제로 부여해 수치를 30으로 고정시킴. 특수능력치가 5개 모두 활성화된 이에겐 사용할 수 없음)을 모든 파티원에게 부여해 주었다.

특수능력치 용기는 공격력과 방어력을 올려주고 거기에 추가로 이능에너지 수치까지 올려주는 굉장히 좋은 능력이었다.

또한 율은 ‘영혼의 선택’을 통해 다크불에겐 자신이 가진 특수능력치 인내를,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에겐 집중을 올려줌으로써 그들의 능력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달빛을 가리는 구름’은 모든 능력치와 생명력을 동시에 상승시켜 주었다.

음유시인의 최고 버프라는 찬가 3종 세트를 비웃을 수 있을 만한 강력한 버프 3종 세트.

이 모든 것이 바로 율이 ‘영혼의 음유시인’을 연구하고 발전시켜서 얻은 것들이었다.

예상대로 ‘영웅들의 서사시’가 전부는 아니었다.

영혼의 음유시인은 알면 알수록 재미있고 신비한 직업이었다.

한 예로, 처음엔 그저 쓰레기라고만 생각되었던 ‘불타는 대지’도 절대 쓰레기가 아니었다.

랭크가 낮을 때는 겨우 장작불 정도의 화력만 자랑하던 불타는 대지였지만, 음악적 이해도가 높아지고 덩달아 랭크까지 높아지고 나서는 마법사들이 최고의 광역마법 중 하나로 취급하는 ‘파이어 필드’가 부럽지 않은 스킬이 되었다.

현재 율은 ‘불타는 대지’를 무려 8랭크까지 올려놓은 상태였다.

5랭크에 올랐을 때 ‘불타는 대지-화염천하(火焰天下)’라는 부제의 곡이 생성되었고, 8랭크에 오르자 ‘불타는 대지-겁화(劫火)’라는 부제의 곡이 추가로 생겨났다.

‘불타는 대지-화염천하’는 율이 지정하는 가로세로 10미터의 지역을 화염으로 뒤덮은 광역 기술이었다.

물론 노래를 시작하면 가볍게 지정된 지역이 붉게 물들고, 노래가 진행되면서 점점 온도가 올라가 15초 후에 완벽한 화염의 공간이 되며, 노래가 끝나는 30초 동안은 그 화염이 유지되었다.

‘불타는 대지-겁화’는 다소 느린 발동 시간을 가진 화염천하와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의 스킬이었다.

일단 범위 스킬이 아니었다.

목표 하나를 결정해 그 목표에만 효과가 발휘되는 타깃팅 기술이었다.

대신 위력은 훨씬 강력했다.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강력한 대인 공격용 화염마법 중 하나인 플레임스트라이크와 유사한 발동 효과를 지닌 겁화는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목표의 발밑에서 화염의 족쇄가 생성되어 목표가 움직이지 않게 사로잡았다.

일종의 바인딩(Binding) 판정을 받는 스킬이었기 때문에 그 화염의 족쇄를 풀지 못하면 10초 후에 발밑에서 치솟아 오르는 강력한 화염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효과의 지속은 정확히 20초 동안 유지되었고, 고스란히 모두 맞을 경우 상당한 데미지를 입을 수 있는 강력한 한 방 기술이었다.

이렇게 모든 스킬은 각각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율은 그것을 깨닫고 ‘영웅들의 서사시’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진 다른 모든 스킬들을 골고루 성장시켰다.

심지어 전혀 쓸모없을 것만 같았던 ‘악기 막기’나 ‘악기 강타’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효과가 있다는 걸 몸소 증명하고 있는 중이었다.

* * *

……

타오르고… 또 타올라라!

재가 되어 흩날릴 때까지!

화르륵!

한 마리의 혈목괴 발밑에서 강력한 화염이 치솟아 오르며 마지막 마무리 정리를 했다.

혈목괴는 목(木)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몬스터답게 불에 약했고, 그 결과 율이 사용한 ‘불타는 대지-겁화’의 노래에 큰 타격을 입고 쓰러졌다.

이걸로 파티를 습격한 5마리의 혈목괴는 모두 정리되었다.

“휴우~ 위험했네요.”

다크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비록 혈목괴들의 레벨이 150대밖에 되지 않긴 했지만 그래도 던전 내부의 몬스터들인지라 외부의 몬스터들보다 20~30%는 더 강력했다.

거기에 진형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기습을 당했으니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다.

“근데 진짜 우리가 이렇게 호흡이 잘 맞는 파티였나? 완전 대박인데?”

이안이 기분 좋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율님이 들어오고 밸런스가 장난 아니게 잘 맞고 있네요. 음유시인이… 원래 이렇게 좋은 직업이었나요? 이 버프들도 그렇고, 진짜 죽이네요.”

강한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안과 로이드, 그리고 다크불, 융단폭격도 동시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짜 제가 음유시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 그게 완전히 잘못된 편견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다크불은 순순히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아닙니다. 제가 잘한 것보다는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여러분의 실력이 좋은 것입니다.”

예의상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주목받는 게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발을 빼는 것이었다.

확실히 예전과 다르게 바뀌려고 노력하는 율이었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사실이 너무 어색하기만 했다.

“뭐가 됐건… 우리들이 잘하고 있는 건 사실이잖아요. 하하~ 바로 3층 공략 들어가죠. 제가 볼 땐 3층도 충분할 거 같은데.”

융단폭격이 크게 웃으며 얘기했다.

그의 말처럼 비주류 파티에게 블러드 우드 1층은 다소 쉬워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흐음… 그럴까?”

다크불도 융단폭격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블러드 우드 3층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평균 레벨은 160 중반 정도였다.

그 정도라면 평균 레벨이 150대인 1층이나 2층보다 훨씬 효율 좋은 사냥을 할 수 있었다.

“가자~!”

“GO, GO, GO!”

강한남자와 이안도 찬성했고, 로이드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두 시간 동안의 사냥을 통해 충분히 손발을 맞춘 비주류 파티.

그들은 그렇게 한 단계 위의 사냥터인 블러드 우드 3층으로 직행했다.

사냥은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보통 때라면 6~7시간 정도 연속해서 사냥하고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사냥을 했을 텐데, 오늘은 무려 10시간이 넘도록 사냥하는 중이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평소보다 훨씬 손발이 잘 맞고, 뭔가 매우 잘 돌아가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쉬자는 얘기를 하지 않고 있는 중이었다.

블러드 우드 3층에는 혈목괴의 업그레이드판 몬스터인 혈목인(血木人)이 등장했다.

혈목괴가 단순하게 붉은 나뭇가지들로 이루어진 인간 모습의 괴물이라면, 혈목인은 인간의 모습과 거의 똑같은 외형을 지닌 나무로 된 괴물이었다.

덕분에 보다 더 귀찮은 기술들을 많이 사용했는데… 특히 혈목인들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색 연기는 강력한 독성(毒性)을 지니고 있어 중독될 경우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있었다.

특히, 비주류 파티는 독에 대한 저항력을 올려주는 버프도 없었고, 거기에 해독 효과를 발휘하는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이가 이안밖에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 독연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이안의 해독 스킬이 광역 범위를 지니고 있는 ‘독소해제 산탄(散彈)’이라는 게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크아앙!”

다크불을 향해 뛰어드는 두 마리의 혈목인.

원래 세 마리의 혈목인이 있었지만 이미 한 마리는 빠른 점사로 처리해 놓은 상태였다.

“강한아!”

다크불이 오른쪽에 있던 한 마리의 공격을 맨손으로 막으며 강한남자를 불렀다.

휘리릭~ 꽝!

그 순간 강한남자는 왼쪽에 있던 혈목인을 향해 손에 들고 있던 방패를 던졌다.

상당한 데미지를 입히며 5초간 대상을 기절 상태로 만드는 기술인 ‘쉴드 캐논’이었다.

“제대로 들어갔어!”

크리티컬이 뜨면서 추가 데미지와 함께 기절 시간이 1초 더 늘어났다.

그렇게 강한남자가 타이밍을 벌자 다음은 율이 나섰다.

이미 두 마리의 혈목인이 달려드는 그 순간부터 묵현을 연주하기 시작한 율이었다.

묵현의 울림통에서 너무나 맑은 소리가 흘러나오며, 동시에 율의 입에서도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요정의 목소리 같은 청아한 음성이 쏟아져 나왔다.

이미 율의 굉장한 노래 솜씨를 알게 된 비주류 파티의 파티원들이었지만 정말 들으면 들을수록 묘하게 중독되는 율의 목소리를 듣자 그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수밖에 없었다.

‘캬아~ 죽인다.’

‘오오~ 이번엔 발라드풍인가?’

‘이거야말로 진짜 노래지!’

특별히 어떤 버프 효과를 주는 노래도 아니건만 율의 노래를 들으면 괜히 더 기운이 생겼다.

순수한 노래의 힘.

율은 그렇게 점점 단순한 스킬로서의 노래가 아닌 노래 그 자체에 숨겨진 힘을 조금씩 깨달아가는 중이었다.

‘환상의 벽’

이것이 바로 율이 부른 노래였다.

당연히 음유시인의 스킬 중 하나였다.

레벨 100에 얻을 수 있는 음유시인의 고유 스킬.

사실 이 노래는 모든 음유시인이 버리는 스킬 중 하나였다.

노래의 총 길이는 40초.

효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 10초 후부터 목표로 삼은 대상에게 환영의 벽을 보여주어 움직임에 제한을 두는 노래였다.

하지만 이 노래는 부르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어설프게 스킬로서의 노래만 부를 경우, 환영의 벽은 제대로 생성되지 않았다.

대체로 음유시인의 스킬들 중 이런 종류의 스킬이 몇 개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제대로 발동되지 않는 스킬들.

그래서 그런 스킬들은 전부 버려졌다.

하지만 율은 달랐다.

그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이 ‘환상의 벽’이란 노래를 완벽하게 재현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환상의 벽이 완벽하게 나타났다.

심지어 하나의 대상이 아닌 다수의 대상에게 적용시킬 수도 있었고, 또한 그 벽을 자유자재로 설정할 수도 있었다.

길이 10m, 높이 5m, 두께50cm의 두꺼운 돌로 된 벽을 이용해 대상이 된 몬스터들을 가두거나 몬스터들의 전진을 막을 수도 있었다.

발동 시간도 연주 시작 후 10초에서 5초로 당겨졌다.

단지 아쉬운 건 재사용 대기시간이 3분으로 고정되어 줄어들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 정도만 되어도 충분했다.

어쨌든 율의 노래로 만들어진 환상의 벽은 한 마리의 혈목인을 완벽하게 포위했고, 그 환상에 완벽하게 걸려든 혈목인은 오도가지 못하고 그 벽을 두들기고 있었다.

하지만 두께 50cm의 석벽이 그리 쉽게 부서질 리 없었다.

완벽한 메즈(Mesmerization의 줄임말. 대상을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놓는 행동을 의미한다)였다.

이것이 바로 율이 다른 평범한 음유시인들과 다른 점이었다.

다른 음유시인들이 스킬을 위한 노래를 부른다면, 율은 노래 그 자체를 위한 노래를 불렀다.

율은 처음부터 모든 노래를 스킬이란 생각을 하지 않고 불렀기 때문에 그 노래가 가진 100%의 효과를 쉽게 끌어낼 수 있었다.

물론 모든 음유시인이 스킬을 위한 노래를 부르는 건 아니었다.

간혹 노래에 대한 이해도가 높거나 원래 노래를 좋아하는 이들이 음유시인을 플레이할 경우, 그들 역시 율과 비슷한 효과를 얻었었다.

하지만 그들과 율은 또 달랐다.

율이 가진 노래에 대한 재능과 이해도는 뛰어나다는 표현조차도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그는 온갖 기계의 힘으로 만들어진 가수들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또 그 재능을 현재 검마노에서 활짝 꽃피우는 중이었다.

노래가 가진 효과를 100%, 아니 120% 끌어내는 율.

그의 가능성은 더욱 무궁무진해 보였다.

“좋아~ 묶었어! 한 놈만 조져!”

양손에 이미 만들어낸 마나 폭탄을 들고 있던 융단폭격이 잔뜩 신난 표정으로 외쳤다.

보통 파티 사냥의 원칙은 선 메즈, 후 점사였다.

괜히 무턱대고 난전(亂戰)을 하게 되면 자칫 예기치 않은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현재 비주류 파티에서 메즈가 가능한 사람은 강한남자와 율뿐이었다.

그나마 강한남자는 주로 유지 시간이 짧은 스턴 계열 기술의 메즈밖에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율이 대부분의 메즈를 담당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율이 오기 전까진 그저 버티기 하난 알아주는 다크불이 몬스터들의 시선을 전부 끌어놓고 강한남자가 짧게 메즈해 무력화시키는 놈들을 빠르게 점사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간혹 메즈가 가능한 유저들이 오면 오늘처럼 사냥할 때도 있었지만, 그때조차도 오늘처럼 이렇게 부드럽게 사냥을 하지는 못했다.

퍼퍼펑!

다크불이 목을 휘감으며 꺾기 공격을 시도해 놈을 꽉 붙잡고 있는 사이 각종 공격들이 놈에게 쏟아졌다.

순식간에 깎여나가는 혈목인의 생명력.

확실히 비주류 클래스들만 모인 파티라고 해도 화력이 떨어지는 파티는 아니었다.

대략 20초 만에 생명력이 0이 된 혈목인.

다크불은 잡고 있던 혈목인의 생명력이 0에 가까워지는 걸 확인한 순간, 목을 휘감고 있던 팔을 풀며 율이 잡아 놓고 있던 혈목인을 향해 다가갔다.

“율님!”

“네~!”

다크불의 외침과 함께 연주가 멈춰졌고, 그 순간 혈목인을 둘러싸고 있던 환영의 벽이 사라졌다.

“으랏차!”

우드득!

혈목인의 팔을 꺾으며 무릎으로 옆구리를 가격하는 다크불.

그는 광역 어그로는 몰라도 단일 어그로 만큼은 누구보다 잘 먹일 자신이 있었다.

“됐어!”

다크불의 신호와 함께 다시 한 번 화끈한 점사가 이루어졌다.

이번엔 율 역시 ‘불타는 대지-겁화’를 이용해 빠르게 공격에 참여했다.

퍼퍼펑! 화르륵!

순식간에 녹아버리는 혈목인.

스으으~

세 마리의 혈목인이 나타나서 전부 쓰러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1분 정도.

정말 깔끔하게 한 무리의 혈목인을 정리한 비주류 파티원들은 너도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들의 솜씨에 감탄하고 있었다.

“캬아~ 죽인다, 죽여.”

“와~ 진짜 벌써 10시간이 지난 거예요?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이게 진짜 파티 사냥이지!”

“자자, 감탄은 이제 그만하고 후딱 간단하게 정리하세요.”

이렇게 호흡이 잘 맞을 때일수록 자투리 시간을 줄이고 빠른 사냥을 하는 게 좋았다.

비주류 파티의 파티원들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혈목인들이 흘린 몇 가지 잡템들을 수거한 후 곧장 다음 혈목인 무리를 찾아 나섰다.

블러드 우드는 그 규모로 따지면 거의 특대형 사이즈를 자랑했다.

그렇기 때문에 비주류 파티는 10시간 동안 던전 사냥을 하며 단 7번 정도만 다른 파티와 마주쳤었다.

워낙 던전이 넓다보니 자리 가지고 특별히 다툴 일도 없었다.

그저 마주치면 간단히 인사하고 서로 지나치는 게 대부분이었다.

블러드 우드는 PK제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쌍방이 동의하지 않으면 전투가 일어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래도 분쟁이 적었고 유저들은 나름대로의 기본 예의를 지켰다.

하지만 모든 유저가 그런 건 아니었다.

워낙 많은 숫자의 유저들이 존재하는 곳이 검마노이다 보니 다른 이들과 다른 것을 추구하는 이들이 반드시 존재했다.

특히, 그들은 그런 자신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고, 또한 다른 평범한 유저들을 무시하는 게 보통이었다.

현재 12시간째 열심히 달리고 있는 비주류 파티.

지금 그들이 만난 파티가 바로 그런 전형적인 파티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까부터 찜해놨던 놈이라고요.”

뻣뻣한 자세로 서서 얘기하는 남자.

그와 그의 파티원들 6명은 마치 비주류 파티를 포위하듯 둘러싼 채 강압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저놈은 방금 리스폰되었다고요. 보통 던전에서 리스폰된 히든 네임드는 먼저 타깃팅한 파티가 우선권을 갖는다는 것도 모르나요?”

“아~ 진짜 답답하네. 이놈을 잡으려고 벌써 한 시간 전부터 이 근처를 순찰했다고요. 던전 규칙 같은 건 모르겠고… 시간 투자를 이 만큼이나 했는데, 당신 같으면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무작정 우기는 남자.

도르한이란 이름을 가진 그는 레벨 190대의 유저였다.

한때 다른 게임에서 같이 어울리던 사람들과 새로운 마음으로 검마노를 시작한 그는 여전히 예전의 게임에서 하던 행동 패턴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와~ 진짜 말이 안 통하네.”

다크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단 자유 PK지역이 아니라 이들이 비주류 파티를 공격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지만,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고 먼저 히든 네임드 공략을 시작하면 어떤 짓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당신들은 힘들어. 저놈은 레벨 180대의 히든 네임드라고. 적어도 평균 레벨이 190은 돼야 손쉽게 잡는다는 거 몰라? 괜히 쓸데없이 욕심내지 말고 그만 좀 가지?”

노골적으로 비주류 파티를 무시하는 도르한.

일단 평균 레벨에서도 190대로 도르한 쪽이 훨씬 높았고, 비주류 파티는 거기에 풀 파티도 아니었다.

[어쩌죠? 이 녀석들 완전 개념 상실인데… 아우~ 짜증나.]

다크불이 인상을 잔뜩 구기며 파티 채널로 얘기했다.

[뭐 이런 놈들이 다 있어? 근데… 저놈들, 꼴을 보니 끝까지 버틸 거 같다. 좀 짜증나지만 일단 버리자. 히든 네임드가 희귀하긴 하다지만 이렇게 계속 시간을 보낼 순 없잖아.]

강한남자는 이곳이 프리 PK지역이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들었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정말… 이건 포럼에 올려야겠는걸.]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안.

확실히 이 상황은 비주류 파티가 짜증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근데 저놈들이 저걸 잡을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조용히 도르한 파티를 꼼꼼히 살펴보던 율이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쟤들, 뭔가 구성 자체가 엉망이네요. 거대 혈목(血木)을 잡으러 왔다는 놈들이 마법 딜러를 한 명도 안 데리고 왔어요. 그냥 탱커 힐러 딜러 구성만 맞춘 거 같네요.]

[어라? 진짜네? 저놈들 바보네. 거대 혈목이라면 물리 데미지 70% 감소 효과가 있는 놈인데. 화염 마법을 사용하는 딜러가 없으면 제대로 공략이 힘든 네임드건만… 진짜 개삽질하려고 작정을 했구나.]

[푸핫~ 와, 정말이네. 너무 기본적인 거라 그 부분은 아예 신경도 안 썼는데… 설마 이런 무개념 놈들일 줄이야.]

[대단한데! 그렇다고 화염 인첸트가 되는 버퍼를 데려온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요즘 잘나간다는 전투 도적 스타일 유저 둘에 전문 헌터로 보이는 한 놈… 그리고 양손검 들고 있는 한 놈까지… 얘들 진짜 병신이네.]

율의 지적은 정확했다.

아무리 파티 사냥용 히든 네임드라고 해도 구성이 저렇게 개판이면 사냥이 불가능했다.

다른 몇몇 게임들에선 그저 레벨과 장비로 밀어붙이면 사냥이 가능할지 몰라도 검마노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얘들, 그냥 놔두고 뒤에서 구경하죠. 제가 장담하는데 100% 못 잡습니다.]

융단폭격이 확신하듯 말했다. 물론 다른 파티원들도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저희가 양보하죠.”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나는 다크불.

비주류 파티원들은 다크불과 함께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그들이 물러나자 마치 자신들이 뭐라도 되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웃는 도르한과 그의 동료들.

그들의 표정은 ‘그럴 거면서 왜 까불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진즉에 그러면 좋았잖아요. 후후.”

마지막까지 싸가지 없는 말을 날리며 파티원들과 앞으로 나서는 도르한.

여기까지만 봐서는 거의 히든 네임드를 다 잡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그들의 생각일 뿐이었다.

당연히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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