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망한 파티에서 만난 인연들
율이 초대받아 파티에 들어갔을 때 이미 파티에는 5명의 유저들이 있었다.
파티의 한계 인원이 7명인 것을 감안하면 율이 참여함으로써 거의 풀 파티에 가까운 인원이 채워진 것이었다.
처음 파티에 들어갔을 때 율은 그래도 뭔가 제대로 구색이 맞춰진 파티라는 느낌을 받았다.
커다란 방패를 들고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등 뒤에도 메고 있는 탱커.
방어구는 거의 착용하지 않았지만 온몸의 문신과 근육만으로도 상당히 강력함이 느껴지는 바바리안 계열로 보이는 전사였다.
양 허리에 쌍권총을 차고 등에 커다란 라이플까지 메고 있는 레인저.
검은색 로브를 입고 있는 위저드.
쌍검을 차고 가죽갑옷을 입고 있는 근접 쌍수 딜러.
이렇게 5명은 조합이 꽤 좋아 보였다.
비록 버퍼와 힐러가 보이지 않았지만 버퍼는 율 자신이 왔고, 힐러는 또 구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율의 이러한 예상은 정말 혼자만의 큰 착각이었다.
더불어 율이 그것이 착각이라는 걸 알기까지도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네, 네?”
율은 당황한 표정으로 말까지 더듬었다.
“설마가 아니라 제가 탱커 맞습니다.”
“으음…….”
“휴~ 좀 당황스럽죠. 근데… 저희 파티가 좀 그래요. 마음에 걸리시면 파티 탈퇴하셔도 돼요. 뭐, 이미 파티에 들어왔다 나가는 분들한테 아무런 감정도 안 갖게 된 지 오래됐어요.”
다크불이 정말 괜찮다는 표정으로 얘기했다.
그는 파티의 리더이자 탱커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방어구를 입지 않은 바바리안 계열의 전사가 바로 그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광전사 계열 중 바바리안 스타일의 직업인 스페셜클래스 ‘바바리안 가디언’이었다.
제대로 된 방어구를 입을 수도 없고, 방패를 들 수도 없으며, 무기마저 들 수 없는 탱커.
생명력은 조금 높은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탱커들보다 월등히 높지는 않았다.
오직 믿을 수 있는 것은 몸에 새겨져 있는 각종 문신들과 맷집이라는 특수능력치뿐이었다.
당연히 정상적인 유저라면 저런 탱커와 같이 파티 사냥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효율성 문제를 떠나서 모든 공격을 있는 그대로 몸으로 맞으며 버티는 탱킹 스타일은 여러모로 단점이 많은 게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커다란 방패를 두 개나 들고 있는 유저는 뭐였을까?
놀랍게도 그는 딜러였다.
기사 계열의 직업 중 수많은 메인 탱커들이 선택하는 트리인 ‘수호기사’ 트리를 탄 그가 얻은 직업은 스페셜클래스 ‘쉴드어태커(Shield Attacker)’.
무려 방패를 이용해 공격하는 직업이었다.
왠지 두터운 판금 방어구를 입고 방패를 두 개나 들고 있기 때문에 공격력과 함께 방어력도 뛰어나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큰 오산이었다.
쉴드어태커는 방어도 페널티를 받기 때문에 방어도가 무려 -90%가 되었다.
물론 쉴드어태커가 가진 특별한 스킬 중 하나인 방어모드(20초 유지에 5분 쿨)를 활성화하면 방어도 페널티가 없어지면서 오히려 방어도가 10% 증가하게 되어 엄청난 방어력을 자랑하게 되지만 그래봤자 잠깐 유지되는 것뿐이었다.
방어도를 빼앗기는 대신 얻은 건 방패를 이용한 각종 공격 기술이었다.
하지만 공격력이 굉장히 좋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각종 특수 공격들이 많아 다양한 콤보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물론 어지간한 컨트롤로는 제대로 싸우지도 못한다는 건 장점을 가리는 큰 단점이 되었다.
탱커인 줄 알았던 이가 딜러였고 딜러인 줄 알았던 이는 탱커였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지금 이 파티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런 식의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양 허리에 쌍권총을 차고 등 뒤에 라이플을 메고 있던 레인저로 보이던 유저는 무려… 힐러였다.
헌터 계열의 직업이었지만 치료 능력에 특화된 스페셜클래스 ‘건 프리스트’
건 프리스트는 분명 헌터 계열의 직업이기 때문에 스피릿 에너지를 기반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스피릿 에너지는 최대 150까지밖에 오르지 않는다.
대신 스피릿 에너지는 유저의 정신 집중을 통해 계속해서 조금씩 차오른다.
즉, 스피릿 에너지는 말 그대로 정신력이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겨우 150밖에 되지 않는 스피릿 에너지로 어떻게 치료 스킬을 사용하는 것일까?
공격이야 정신 집중을 통해 계속하는 게 정상이지만 치료 스킬마저 그렇게 사용하게 된다면 그건 정말 사기 클래스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건 프리스트는 결코 사기 직업이 아니었다.
사실 건 프리스트는 힐러이면서 동시에 딜러이기도한 클래스였다.
물론 딜링 능력은 매우 미약하지만 그 딜링이 없다면 치료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스킬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총을 이용해 몬스터를 공격하고, 그 공격을 통해 건 프리스트는 라이프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이 라이프 에너지를 이용해 각종 치료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
당연히 치료 스킬도 모두 총을 이용해 사용했다.
즉, 적이건 아군이건 일단 총으로 쏘는 건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황당한 치료 기술.
효과는 나쁘지 않았지만 힐러의 생명인 타이밍 힐을 놓칠 경우가 많아 위험 순간이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 힐러인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율이 마법사라고 생각한 유저도 역시 정통 마법사가 아니었다.
네크로멘서 계열의 직업 중 연금술사의 특징을 지닌 스페셜클래스 ‘폭탄 연금술사(TNT Alchemist)’
이것은 단순한 연금술사가 아니었다.
다른 마법 능력은 전무(全無).
암흑의 마나를 조합해 여러 가지 종류의 폭탄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녔지만, 그 폭탄은 오로지 자신만이 사용할 수 있고, 만들고 20초 안에 사용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즉, 마법사지만 사실상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폭탄을 만들어 던지는 게 전부였다.
전혀 마법사답지 않는 마법사.
하지만 그나마 여기에 모인 유저들 중에는 가장 무난한 스페셜클래스였다.
물론 이 파티에서 가장 무난하다는 것이었지 결코 평범한 직업은 아니었다.
장기적으로 데미지를 누적시키는 스타일이 아니라 한 번에 마나를 몰아서 사용하면 순간 데미지를 집중시키는 스타일이라 가끔 PvP에서 괜찮은 직업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그래봤자 비주류 직업인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쌍검을 차고 있어 근접 딜러라고 생각한 그 유저.
그는 근접 딜러가 아닌 위저드 계열 직업을 지닌 유저였다.
위저드 계열을 지녔지만 마법 능력은 오로지 ‘플레임 블레이드’와 ‘아쿠아 블레이드’, 그리고 ‘썬더 소드’와 ‘윈드 소드’만 사용할 수 있는 스페셜클래스 ‘블레이드 위저드’.
이것은 일종의 마검사라고 할 수 있는 직업이었는데, 사실 마검사를 할 거라면 인첸터나 정령검사 계열을 하는 것이 몇 배는 더 좋았다.
‘블레이드 위저드’가 사용하는 네 가지 마법은 그 자체로 상당히 고급 마법이었기 때문에 높은 지능과 지혜를 필요로 했고, 결과적으로 마검사라면 필수로 가져야 할 높은 힘과 민첩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이도저도 아닌 직업이 되어버린 ‘블레이드 위저드’.
그나마 네 가지 마법 자체가 상당히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 하나로 간신히 버틸 수 있는 직업이었다.
결국 파티에 있던 다섯 명 모두가 스페셜클래스였다.
그것도 보통 스페셜클래스가 아닌, 망한 클래스로 소문난 것들만 골라서 가지고 있었다.
‘…정말 망캐들이 총집합했네.’
물론 자신을 포함해서 하는 얘기였다.
사실 음유시인 역시 이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단하군요.”
어떤 의미에선 정말 대단할 수도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파티를 구성하게 된 것일까? 율은 그게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대답은 너무나 간단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죠… 잘난 유저들이 그들끼리 모이는 것처럼 저희도 어쩌다보니 이렇게 모이더군요. 사실 저희 다섯이 모두 모인 지는 한 1년(게임시간) 정도… 그리고 저랑 저기 저 방패 든 놈하고 같이 게임을 시작한 지는 한 3년(게임시간) 정도 됐네요.”
“그럼, 그동안 계속 같이 다니신 건가요?”
“네, 1년 전부터 쭉 이 파티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중이에요. 당연히 같이 다녔고요.”
“그렇군요. 그 마음 이해합니다.”
“크… 감사합니다. 역시 음유시인이라서 그런지 이해를 해주시는군요.”
조금만 더 얘기하면 정말 울 것 같은 표정의 다크불.
그가 파티를 책임지는 리더로서 얼마나 고생했을지는 그냥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느낌이 좋았다.
비록 망한 파티처럼 보였지만… 적어도 율은 이 파티에 계속 있고 싶었다.
어차피 정상적인 파티에 들어가려고 고생하는 것보다 그냥 이 파티에 있는 게 훨씬 좋아보였다.
‘동질감도 느껴지고 좋네.’
망한 파티면 어떤가?
율은 그저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 하나만으로 모든 걸 만족했다.
* * *
파티에 합류한 율은 나머지 한 명의 유저를 구하며 파티원들끼리 파티 채널에서 하는 얘기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일단 파티의 리더인 다크불과 쉴드어태커였던 강한남자와는 현실에서도 친구였다.
재미있는 건 원래 둘의 계획은 다크불이 광전사 계열의 딜러가 되고, 강한남자가 기사 계열의 탱커가 되어 멋진 파티를 구성해 검마노의 네임드 유저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계획은 시작부터 어긋났다.
문제는 서로… 서로의 떡이 더 크다고 느끼면서부터였다.
다크불은 강한남자의 든든한 방어 능력이 너무나 부러웠고, 강한남자는 다크불의 현란한 공격이 너무 부러웠다.
그래서 그들은 점점 상대방의 기술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레벨 40대에 올라 둘 다 거의 동시에 스페셜클래스를 얻게 되었고, 그 직업에 크게 만족한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직업을 바꾸게 되었다.
바바리안 가디언과 쉴드어태커는 이렇게 탄생되었다.
나머지 유저들도 뭔가 사연을 지닌 것 같았지만 특별히 얘기하지는 않았다.
건 프리스트 이반.
폭탄 연금술사 융단폭격.
블레이드 위저드 로이드.
이들은 망한 파티의 주인공들이었다.
파티 채널에서의 대화로만 볼 땐 이반은 상당히 활발하고 쾌활한 이미지였고, 융단폭격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로이드는 말수는 많지 않았지만 살짝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는 유저 같아 보였다.
어쨌든 율은 드디어 블러드 우드 파티를 구했다.
비록 망한 파티였지만 그래도 파티가 생겼다는 것에 만족하는 율이었다.
그렇게 율이 들어오고 대략 30분 정도가 지날 때까지 3명의 유저가 파티에 들어왔었지만 모두 바로 나가고 말았다.
결국 망한 파티, 아니 정식 이름이 ‘비주류 모임’이었던 이 파티의 유저들은 상의 끝에 오늘은 일단 6명이서 블러드 우드의 1층을 공략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비록 율을 제외한 다른 파티원들이 모두 170대의 레벨을 지니고 있어서 1층 사냥은 별로 효율이 좋지 않았지만(검마노에선 레벨 차이가 30이상만 나지 않으면 동등한 권리로 파티 사냥을 할 수 있다) 어차피 율을 위해서라도 1층부터 차근차근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비주류 파티는 드디어 블러드 우드로의 출발이 결정되었다.
기다림에 익숙한 그들이었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기다리는 건 늘 지루하기만 했다.
그래서 출발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큰 기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블러드 우드의 10개 입구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입구를 통해 던전에 진입하기로 결정한 그들은,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고 있었기에 바로 출발할 수 있었다.
블러드 우드까지 가는 길은 비교적 안전했다.
사실상 목운해의 진짜 위험은 이 블러드 우드 너머부터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블러드 우드까지 가는 길은 워낙 많은 유저들이 왕래하는 곳이라 자연스럽게 몬스터들의 출현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유저가 영역을 넓힐수록 몬스터들의 영역은 줄어들었다.
아마도 설정상 뮤온이 이끌고 넘어온 ‘어둠의 군단’은 이계에서 넘어온 불멸의 영혼을 지닌 유저들에게 조금씩 정복당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어쨌든 그렇게 비주류 파티는 안전한 길을 통해 빠르게 블러드 우드의 최남단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른 분들은 평소대로 가고요. 율님은 쿨타임이 되는 대로 찬가 좀 팍팍 리필해 주세요.”
블러드 우드에 들어가기에 앞서 파티의 리더였던 다크불이 간단한 전략 설명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율을 그저 그런 평범한 음유시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그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음유시인은 거의 똑같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상일지도 몰랐다.
“음… 죄송한데… 저에게는 찬가가 하나도 없습니다.”
율은 찬가 3종 세트라고 불리는 그 세 가지 노래를 전부 배우지 않았다.
애초에 정식으로 직업 트레이너에게 스킬을 배우지 않은 율이었기에 그의 스킬은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것과 많이 달랐다.
특히, 1년(게임시간) 동안 여행을 다니며 그는 상당히 독특한 스킬 트리를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네, 네? 그, 그럼… 어떻게 버프를 하시려고…….”
“아~ 그 찬가들은 없지만 버프는 충분히 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음유시인의 가장 큰 장점인 찬가가 없으면…….”
다크불이 살짝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망한 파티라도 어느 정도 구색은 갖춰야 사냥이 가능했기에 버퍼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분명히 제 몫은 해드립니다.”
율은 다크불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음유시인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도 율이었다.
그나마 1년 동안 율은 어느 정도 음유시인의 한계를 벗어났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은 그의 직업… ‘영혼의 음유시인’이었다.
흔히 많은 전문가들이 음유시인의 가장 큰 문제점을 빈약한 ‘소울에너지’라고 말한다.
소울에너지는 일단 이능 능력치 1당 1의 에너지밖에 얻지 못했다.
포스와 스피릿은 이능 능력치와는 상관없이 에너지 총량이 무조건 고정되었지만, 소울과 가장 비슷한 마나와 같은 경우는 이능 능력치 1당 10의 마나 에너지를 얻게 되었다.
즉, 같은 능력치를 투자하더라도 마나 에너지가 훨씬 큰 에너지를 가진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음유시인의 스킬들이 마법사들의 스킬들보다 에너지 소모량이 10분의 1정도 되는 것도 아니었다.
대략 2배… 마법사들의 스킬은 음유시인들 스킬보다 대략 2배 정도 더 소모되었다.
즉, 에너지는 훨씬 적은데 소모량은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또한 마나 에너지나 소울에너지 모두 전투 중에는 회복되지 않고 전투가 끝나고 나서 조금씩 회복되는 게 똑같았지만, 워낙 총량이 많은 마나 에너지가 소울에너지보다 훨씬 빨리 회복되었다.
한마디로 단 한 가지도 좋을 게 없었다.
마나와 비교해도 이 정도인데 마나보다 더 효율이 좋다고 소문난 홀리파워(신성력)와 비교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간단하게 설명해 봐도 소울은 다른 네 가지 기운들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포스는 총량이 250밖에 되지 않았지만 대신 자신의 공격과 방어, 그리고 스킬 사용을 통해 꾸준히 회복시킬 수 있는 에너지였고, 스피릿은 총량이 150이었지만 정신 집중만 하면 언제라도 모두 금방 회복될 수 있었다.
즉, 이 두 이능 에너지는 컨트롤만 된다면 계속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마나는 기본적인 건 소울에너지와 똑같았지만 위에서 설명했듯이 총량에서 월등히 많아 훨씬 강력했다.
거기에 마법사들을 진짜 마법사답게 만들어 준다는 5클래스 마법 ‘마나 명상’(10초 동안 정신 집중을 하면 총 마나의 70% 회복, 정신 집중이 깨지면 마나 회복 중단, 재사용 대기시간 10분, 클래스 무관 마나를 사용하는 유저라면 레벨 200에 모두 익힐 수 있음)을 모두 기본적으로 익혔기 때문에 애초에 소울에너지를 마나와 비교하는 건 큰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면 홀리파워는 어떨까?
사실 홀리파워야말로 네 가지 이능 에너지 중 가장 효율이 좋은 힘이었다.
일단 이능 능력치 1당 5의 홀리파워 에너지가 올라가고, 거기에 추가로 지혜 능력치 1당 3의 홀리파워 에너지를 올려줬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홀리파워가 최고의 이능 에너지로 꼽히는 이유는, 전투 중에도 이능 능력치와 지혜 능력치를 합한 수치로 인한 복잡한 공식에 따라 계속해서 꾸준히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신의 축복’이라는 홀리파워를 기반으로 하는 모든 클래스가 익힐 수 있는 기본 스킬은 15초 동안 홀리파워 에너지 회복 속도를 10배로 증가시켜 줬다.
재사용 대기시간은 무려 5분.
레벨이 100만 되어도 배울 수 있는 기본 스킬 치고는 너무나 강력했다.
다른 힘들은 이러한데… 유독 소울만 암울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음유시인의 상향과 소울에너지 시스템의 전반적인 교체를 요구했지만 광학자 박성진은 절대 그 부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치 음유시인은 지금 그 자체로도 완벽하다는 것이 개발자의 입장이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다크불은 율의 말을 무조건 믿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율을 못 믿겠다고 파티에서 내보내는 건 분명 예의가 아니었다.
그리고 다크불은 왠지 자신 있게 얘기하는 율의 모습에서 묘한 믿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 율님만 믿겠습니다.”
다크불은 결국 율을 믿기로 결정했다.
그는 어차피 자신을 포함한 다른 파티원들도 완벽하지 못한 이들이었기에 율에게 완벽함을 요구하는 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율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자신의 직업을 연구하고 발전시켰던 율.
그렇기에 그는 분명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늘 똑같지만… 위험할 땐 강한이(강한남자)가 어그로(위협 수치)를 먹고 잠깐 버틸 테니, 이반 형이 곧바로 힐 넣어주세요.”
“OK~ 걱정마라. 나만 믿어.”
힐 자체가 굉장히 불안한 건 프리스트가 메인 힐러였기 때문에 간간히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런 위험한 상황을 넘기기 위해 강한남자는 ‘방어모드’를 최대한 연마해 놓은 상태였다.
연마한 방어모드는 방어력을 100% 회복시켜 주고 거기에 추가로 50%를 더 올려준다. 그리고 재사용 대기시간이 5분에서 3분으로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 폭격이는 제발 초반에 어그로 관리 좀 해라. 저번에도 어그로 튀는 바람에 망했다는 걸 잊지 마.”
“쩝, 알았어요. 조심할게요. 아… 난 진짜 근데 몰아치기 빼면 시첸데…….”
투덜거리며 입맛을 다시는 융단폭격.
확실히 정상적인 성격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자~ 이제 끝났네요. 뭐, 설명할 건 다했으니 바로 출발하죠. 어디 한 번 비주류의 힘을 보여주자고요!”
활기차게 얘기하는 다크불.
분명 그는 파티 리더에 적합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있기 때문에 이 비주류 파티가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파이팅!”
활기찬 목소리로 파이팅을 외치는 파티의 최고 연장자(31세) 이안.
“가자!”
덩달아 기운차게 외치는 다크불과 동갑(27세)인 강한남자.
융단폭격은 율과 동갑이었고, 로이드는 25세였다.
6명의 망한 클래스가 모인 비주류 파티.
그들의 블러드 우드 탐험은 지금부터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