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 목운해 (17/95)

3. 목운해

도리안들의 마을엔 신기한 물건이 많았다.

인간들과의 교류가 전혀 없었던 그들은 숲속의 비밀 공간에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재미있는 게 그들은 인간들처럼 골드로 물건들을 거래하지 않았다.

모든 거래는 물물교환으로 이루어졌다.

덕분에 율은 졸지에 가상 가방을 다 뒤져서 도리안들에게 필요할 만한 물건이 뭐가 있는지 찾게 되었다.

특히, 율은 도리안들의 물건들 중 ‘멜로디 박스(Box)’라는 재미있는 물건을 꼭 가지고 싶었다.

이것은 쉽게 설명하면 음유시인용 마법 스크롤 같은 것이었다.

물론 스크롤처럼 쉽게 구할 순 없는 것이었다.

율조차 처음 본 물건일 정도니 얼마나 희귀한 것인지 대충 알 수 있을 것이다.

율은 무조건 이것을 최대한 많이 구해 스스로 연구해보고 싶었다.

멜로디 박스에 노래를 저장하면 그 노래는 1~5회까지 들을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멜로디 박스를 이용하면 마치 음유시인이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각종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음유시인이 직접 부른 것에 비해 약 60~80% 정도의 효과만 얻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소울에너지가 전혀 들지 않고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꽤 쓸 만한 물건이었다.

마법사들이 마법 스크롤로 엄청난 돈을 벌고 있는 것처럼 음유시인도 이 멜로디 박스를 이용하면 굉장한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더라도 율은 일단 멜로디 박스라는 것 자체에 강한 호기심이 생긴 상태였다.

하지만 문제는 율에게 도리안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물건이 없다는 것이었다.

율이 가진 것들은 죄다 유저들이나 사용할 물건들이었고, 사냥을 통해 얻었던 여러 종류의 전리품은 이미 마을에서 모두 처분한 상태였다.

“마시면 생명력이 회복되는 마법의 물약인데…….”

그냥 하급 회복 물약을 꺼내 놓고 대충 그럴듯하게 포장하려는 율.

하지만 도리안들은 결코 바보가 아니었다.

“하급 회복 물약 따윈 인간들이나 쓰는 거다. 우리는 달빛의 힘을 이용해 스스로 치료한다.”

“…….”

“밤에도 스스로 빛나는 신비한 구슬…….”

“라이트 마법이 총 34회 충전되어 있는 구슬은 밤이 되면 잘 보지 못하는 이들한테나 필요한 거다.”

“중독되었을 때 마시는 범용 해독제…….”

“필요 없다.”

“미확인 아이템을 확인하는 감정마법이 걸려 있는…….”

“필요 없다.”

“가죽을 벗길 때 유용한 날카로운 단검…….”

“필요 없다.”

율은 계속해서 가방에 있는 물건을 꺼내들고 어떻게 해서라도 멜로디 박스와 교환할 물건을 찾았으나 도리안에겐 전부 필요 없는 것들뿐이었다.

‘하아… 이제 남은 건… 요리 재료뿐이군.’

교환할 수 있는 물건은 전부 다 꺼내보았지만 모두 꽝이었다.

‘요리 재료라도… 아! 아예 요리를 해볼까?’

1년(게임시간)의 여행은 율의 요리 솜씨를 더욱 발전시켰다.

물론 그래봤자 아직도 익스퍼트 경지였지만, 주방에서 조리법대로 배웠던 정석 요리가 아닌 야생의 재료만을 이용해 만드는 야생 요리의 능력이 대폭 상승했다.

당연히 율의 가상 가방 안에 남아 있는 요리 재료들도 그런 야생에서 얻은 재료들이었다.

‘늑대 뒷다리랑… 야채들이 조금 있는 정도인가?’

전부 자연에서 얻은 것들이라 싱싱하긴 정말 싱싱했다.

물론 주방에서처럼 온갖 재료가 풍부하게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맛을 내는데 한계가 있긴 했다.

하지만 율은 이미 야생의 재료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요리를 만드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하지만 주식이 과일인 도리안들이 좋아할 만한 요리가 있을까?’

도리안들의 주식은 과일이었다.

물론 과일만 먹는 종족은 아니었지만 거의 입맛이 과일에 맞춰진 도리안들에게 자신의 음식이 어필이 될지 의문이 들었다.

‘…아니다. 오히려 과일을 주식으로 했기 때문에 색다른 맛에 약할 수도 있다.’

가능성이 아예 없을 것 같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들에게 거부감이 들지 않으면서도 확실하게 그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요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늑대고기와 뼈로 국물을 낸다. 그리고 각종 싱싱한 야채들로 샤브샤브를 만든다. 일명 야채 샤브샤브!’

당연히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는 요리였다.

보통의 샤브샤브 요리는 이미 조리법도 알고 있었고 숙련도도 꽤 올라가 있었지만, 온갖 야생의 재료들을 넣어 만드는 잡탕 야채 샤브샤브는 첫 도전이었다.

하지만 도리안들에게 육식(肉食)을 권하는 건 영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야채 고유의 맛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야채 샤브샤브가 최고라고 판단했다.

‘고기 육수라는 건 말 안 하는 게 낫겠지.’

평생 한 번도 육식을 해보지 않았을 도리안들.

그런 그들에게 늑대고기로 우려낸 육수는 색다른 맛을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그 육수에 넣어 먹는 각종 야채들은 충분히 그들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처음으로 맛을 보기에도 큰 거부감이 없을 게 분명했다.

촤르륵!

율은 곧장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동용 만능요리도구 상자를 꺼냈다.

아예 즉석에서 요리를 만들어내 도리안들의 관심을 끌 생각이었다.

‘일단 몰래 늑대고기를 손질하고…….’

채챙!

만능요리도구 상자에서 손질이 꽤 잘된 요리용 칼(3호)을 꺼내든 율.

그는 곧장 가상 가방 안에 있던 늑대고기를 꺼내 재빨리 몸으로 도마를 가리고 칼을 들고 있던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파파팟!

현란한 움직임.

만약 이게 검술이었다면, 대상은 수천 개의 상처를 입었을 정도로 빠르고 정확한 칼질이었다.

이것이 단순한 칼질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었다.

스킬명 ‘섬전난도(閃電亂刀) 손질’

무려 A랭크의 요리스킬 중 하나였다.

고기의 진한 맛을 우러나오게 하는 최고의 기술로, 늑대고기를 빠르게 손질한 율은 그러면서 동시에 곧장 만능요리도구에 장착되어 있던 이동식 화로(火爐)를 작동시켰다.

한 손으로 늑대고기 손질을 마무리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 육수를 우려낼 준비를 하는 율.

이것이야말로 요리사의 궁극 스킬들 중 하나인 ‘쌍수법(雙手法)’이었다.

AA랭크의 높은 랭크를 자랑하는 이 스킬은, 율도 아직 완벽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고난위도 스킬이었다.

참고로 이 스킬을 완벽하게 사용하는 전주비빔밥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른손과 왼손으로 각기 다른 두 가지 요리를 똑같은 맛과 속도로 완성시킬 수 있었다.

어쨌든 그런 고난위도 스킬까지 사용하며 요리에 전력을 쏟는 율.

그의 두 눈빛에선 꼭 멜로디 박스를 얻겠다는 집념 같은 게 느껴졌다.

‘육수를 진하게 내기 위해선 나만의 필살 양념이 필요하다.’

촤아악!

율은 만능요리도구 상자의 오른쪽 손잡이를 강하게 당기며 오른발로 그 손잡이를 따라 나온 몇 개의 양념 통들을 공중으로 쳐올렸다.

‘소금, 후추, 마늘 그리고 특제 야생 양념!’

파파팟!

하늘로 치솟은 네 개의 양념 통을 정확하게 가격하는 오른손.

그러자 양념 통에 들어 있던 각기 다른 네 가지 양념이 육수가 끓고 있는 커다란 솥 안으로 쏟아졌다.

물론 그 양은 율이 정확하게 의도한 만큼씩이었다.

마치 묘기라도 하듯 현란한 모습으로 요리를 계속하는 율. 계획된 퍼포먼스라도 되는 건가?

율이 화려하게 요리하는 모습에 하나둘 도리안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좋아! 1단계 성공.’

1단계인 시각효과에서 어느 정도 도리안들을 끌어들였다. 그럼 이제 곧바로 2단계로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화력을 최대로!’

화르륵!

율은 화로의 화력을 최대로 올리며 육수의 진한 맛을 한순간에 끌어올렸다.

원래대로라면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서 우려내야 좋은 맛이 나는 게 육수였다.

하지만 율은 그것을 검마노의 요리스킬의 힘으로 커버했다.

섬전난무 손질과 쾌속요리(B+랭크) 스킬을 이용해 최대한 빨리 육수 맛을 끌어낸 율.

그는 속전속결로 도리안들을 유혹할 생각이었다.

스으으~

시각으로 기선을 제압하고 후각으로 완벽하게 집중하게 만든다.

그게 바로 율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 계획에 결정적으로 필요한, 그윽한 육수의 향기가 도리안 마을 전체로 퍼져나갔다.

생전 처음인 향기를 맡고 마을 광장으로 하나둘 몰려나오는 도리안들.

율은 자신의 계획이 거의 반 이상 성공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제 마지막 대미(大尾)는 야채 투하!’

파파팟!

율이 순간 가방 안으로 양손을 넣었다 뺐다.

그와 동시에 허공으로 비산되는 싱싱한 각종 야채들.

도리안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싱싱함이 느껴지던 그 야채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퐁, 퐁, 퐁…….

빠르게 솥으로 투하되는 야채들… 야채 샤브샤브는 그렇게 완성되었다.

‘완벽해!’

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충분히 만족스러워했다.

띠링, 독특한 야생의 요리를 완성시켰습니다.

띠링,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명성이 5올랐습니다.

띠링, 야생의 맛이 있는 그대로 담겨 있는 이 요리는 각양각색의 맛을 지니고 있습니다.

띠링, C+랭크 요리 ‘무작위 야생 샤브샤브’를 완성시켰습니다.

띠링, 무작위 야생 샤브샤브는 그 맛과 효과가 무작위로 결정됩니다.

띠링, 요리 숙련도가 0.002오릅니다.

띠링, 섬전난도 스킬 숙련도가 0.007오릅니다.

띠링, 쌍수법 스킬 숙련도가 0.005오릅니다.

띠링, 새롭게 만든 요리의 조리법을 공개할 경우 추가 명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

……

‘음… 무작위라니…….’

비록 남는 재료를 마구 넣은 잔반 샤브샤브라지만 이런 무작위 요리가 나올 줄은 몰랐다.

‘이걸 도리안들이 좋아할까?’

일단 정성을 다해 만들긴 했는데, 그 맛과 효과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는 않았다.

이미 도리안들은 모여들 대로 모여든 상황.

여기서 자칫 이 요리를 도리안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할 경우, 애써 올린 친밀도만 떨어질 수도 있었다.

‘에이~ 모르겠다.’

어차피 지금 이 상태에서 도리안들에게 요리를 맛보게 하지 않는 것도 그 결과가 별로 좋지 않을 게 분명했기 때문에 일단 만들어놓은 요리는 시식하게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자~ 다들 오셔서 한번 맛보세요.”

친절하게 작은 그릇에 아주 조금씩 국물과 야채를 덜어놓으며 외치는 율.

그는 자신의 야생 요리 솜씨를 믿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원한 것은 이들이 맛보지 못한 색다름이었어.’

율은 애써 좋은 쪽으로 해석했다.

과연 그의 해석이 옳았는지는 서서히 맛을 보기 위해 다가오는 도리안들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 *

“휴~ 이제 없습니다.”

바닥까지 박박 긁어서 마지막 도리안에게 넘겨준 후 텅 빈 솥을 남은 도리안들에게 보여주는 율.

“만월의 달빛을 수정에 모아서 만든 ‘치료하는 달빛’이다. 교환하자!”

“아침이슬을 모아 만든 술이다. 이거랑 교환하자.”

“숲에서 가장 맛있는 과일이다. 이거랑 교환하자.”

수많은 도리안들은 자신이 가진 물건을 율에게 내밀며 다짜고짜 율이 만든 샤브샤브와 교환하자고 말했다.

“진짜 이제 더 이상 요리를 만들 재료도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치료하는 달빛’은 1초에 2%씩 총 60%의 체력을 30초 만에 회복하게 해주는 좋은 소모성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가지고 싶었지만… 진짜 더 이상 샤브샤브를 만들 수 없었다.

율이 만든 ‘무작위 야생 샤브샤브’는 정말 대성공을 거두었다.

도리안들에게 정말 다양한 맛을 경험하게 해준 ‘무작위 야생 샤브샤브’는 한순간에 도리안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물론 가끔 너무나 파격적인 맛과 효과에 정신을 못 차리거나 뒤로 바로 넘어가는 도리안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그것조차 좋아했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색다른 맛.

특히, 한번 요리를 맛본 도리안일수록 더욱 신나게 교환 신청을 했다.

과연 율의 생각대로 과일만 먹고 살아온 도리안들에겐 정말 파격적인 맛이었고, 호기심이 많은 종족답게 그 파격적인 맛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어쩌면 이 일로 인해 도리안들의 식성이 조금 바뀔지도 모를 정도로 그들은 샤브샤브를 꽤 많이 좋아했다.

첫 번째로 만들었던 샤브샤브가 불과 몇 분 만에 바닥났다.

결국 율은 남은 재료를 사용해 다시 한 번 ‘무작위 야생 샤브샤브’를 만들었으나 그것 역시 몇 분 만에 바닥이 나고 말았다.

이젠 재료도 없었고 자신이 얻을 물건들도 충분히 얻은 율은 남은 도리안들에게 몇 번이고 사과하며 간신히 그들을 돌려보낼 수 있었다.

어쨌든 이번 거래를 통해 율이 얻은 물건들은 상당히 많았다.

멜로디 박스 7개, 치료하는 달빛 2개, 이슬주(酒) 7병, 도리안 과일주스 11병, 별빛과자 3개, 각종 과일 21개.

도리안의 물물교환은 모두가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에겐 멜로디 박스 1개나 과일 1개나 똑같은 1개의 물건일 뿐이었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법.

율은 도리안들이 어떤 물건을 내놓든지 자신의 샤브샤브 한 그릇을 내주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애초에 도리안들과 물물교환을 할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하지만 율은 수많은 과일들을 손에 들고도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었다.

어차피 얻고 싶었던 멜로디 박스는 7개나 얻었고, 거기에… 또 하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물건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한 도리안이 숲에서 주운 물건이라며 내민 열쇠 하나.

흙먼지가 잔뜩 묻고 상당히 낡아보이던 그 열쇠는 감정 결과 놀라운 물건이었다.

던전 블러드 우드(Blood Wood)의 비밀 열쇠[레어(Rare)]<퀘스트 시작 아이템>

: 도리안들은 숲속에서 신기한 물건을 간혹 주워오곤 한다. 물론… 그들은 그런 물건들에 애착 따위를 갖지는 않는다. 목운해에 존재하는 거대한 나무 블러드 우드. 그곳엔 아무도 모르는 숨겨진 방이 있다. 당신이 그 방을 찾을 수만 있다면 이 열쇠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능력 : ????

특이사항 : 비밀의 방을 찾게 되면 한 가지 퀘스트를 얻을 수 있음.

레벨제한 : 없음.

무려 레어 등급의 퀘스트 시작 아이템.

보통 레어 등급의 퀘스트 시작 아이템을 얻으면 보상도 레어급 이상의 보상을 받는다. 재수가 좋으면 유니크급을 얻을 수도 있었다.

매직 등급의 퀘스트 시작 아이템들이 고액에 거래되는 까닭은 재수가 좋으면 그 퀘스트로 레어 등급의 아이템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등급이 높을수록 퀘스트의 난이도는 올라가지만 일단 보상이 좋은 쪽을 선호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유저들의 본능이었다.

도리안들과의 거래를 통해 생각지도 못한 아이템을 얻은 율.

처음엔 그저 멜로디 박스 몇 개와 현자 아플란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쩌다보니 상당한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당연히 아플란에 대한 정보도 이미 얻은 상태였다.

‘목운해 너머에 있는 땅 끝 마을의 촌장이 현자 아플란의 시종이었단 말이지…….’

도리안들은 하나같이 땅 끝 마을의 촌장이 아플란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얘기했다.

결국 아플란을 찾으려면 목운해를 돌파해 땅 끝 마을까지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근데… 목운해가…….’

하지만 말은 쉬워도 목운해를 돌파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 율은 아직 레벨이 150도 되지 못한 중급 유저였다.

목운해를 돌파하는 유저들은 대부분 200레벨을 넘거나 200레벨 수준의 상급 유저들이었다.

중급 유저들은 사실상 목운해를 넘어 땅 끝 마을까지 갈 일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목운해를 돌파하는 파티에 중급 유저를 끼워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방법은 내가 직접 파티를 만들거나 레벨을 좀 더 올리는 것뿐인가?”

첫 번째 방법은 아무리 율이 그동안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무리가 있었다.

예전보다는 훨씬 좋아졌지만 아직도 율은 사람들과 친해지는 걸 잘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선 괜히 과묵해지고 딱딱해지는 율.

아직도 율은 사교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꽤 먼 전형적인 아웃사이더였다.

오죽하면 1년(게임시간) 동안 여행하며 파티 사냥을 한 횟수가 열 번쯤밖에 되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율도 스스로 좀 더 사람들하고 가까워지는 연습을 하기 위해 나름 노력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게 한순간에 쉽게 바뀔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그저 노력만 계속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차피 이 열쇠도 얻었고… 블러드 우드도 상당히 좋은 사냥터라고 소문나 있으니 이 기회에 좀 더 파티 사냥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해봐야겠다.’

블러드 우드는 목운해에 있는 거대한 A+급 던전이었다.

목운해 중간쯤에 위치한 이 던전은 하나의 거대한 나무였다.

이 붉은색의 거대한 나무는 들어가는 통로만 10군데였고 그 안의 존재하는 층이 총 30개였다.

지상으로 20층.

지하로 10층.

한 층의 면적이 거의 어지간한 대형 도시의 크기보다 더 클 정도였으니, 이 붉은색 나무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될 것이다.

거의 밖에서 볼 땐 하나의 커다란 산처럼 보이는 블러드 우드.

죽음의 대륙 중앙에 있다는 전설의 세계수(직접 그곳에 가본 사람은 없음)를 제외하면 지오 대륙에서 가장 큰 나무가 블러드 우드였다.

블러드 우드는 레벨 150부터 250까지 다양한 종류의 유저들이 찾는 곳이었다.

최상층인 지상 17~20층, 그리고 지하 9~10층은 아직도 제대로 공략이 안 된 미지의 지역이었고, 지상 14~16층과 지하 7~8층은 250의 만 레벨 유저들이 사냥을 하는 곳이었다.

율과 같은 150레벨의 중급 유저들은 주로 지상 1층과 2층, 그리고 지하 1층에서 사냥을 했는데… 그나마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던전이라 어설픈 유저들은 파티에도 껴주지 않기로 유명했다.

“…이거 어째 파티 구하기가 쉽지 않겠네.”

검마노의 모든 유저가 인정하는, 파티 구하기가 제일 힘든 클래스인 음유시인이 직업인 율.

극단적으로 파티를 구하고자 한다면 ‘영웅들의 서사시’를 이용하면 되긴 하지만… 이미 1년의 여행을 통해 ‘영웅들의 서사시’가 만능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율이었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음유시인 본연의 능력을 더 개발하려는 중이었다.

물론 ‘영웅들의 서사시’ 또한 자신이 가진 능력인 것은 분명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개발해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율에겐 오로지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다른 음유시인과는 다른 율.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유저들은 그걸 전혀 알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적운성.

도리안 마을에서 모든 볼일을 끝낸 율은 곧장 적운성으로 복귀했다.

사실 과일만 먹던 종족에게 고기를 우려낸 육수를 먹였다는 것이 좀 찔려서 황급히 빠져나온 경향도 있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도 특별히 도리안들과의 친밀도가 떨어지지는 않은 걸로 봐서 큰 문제는 없는 듯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블러드 우드로 가는 파티는 거의 대부분 적운성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동료를 구하는 게 제일 좋았다.

율은 적운성으로 복귀해 간단히 정비를 하곤 곧장 유저들이 파티를 구하는 장소인 중앙광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목운해는 다양한 사냥터가 존재하는 곳이었기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파티를 구하고 있었다.

율은 일단 필터링 기능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블러드 우드에 관련된 파티들이 쉽게 구별될 수 있도록 설정했다.

블러드 우드를 가는 파티는 상당히 많았다. 거의 100여 개는 되는 듯한 관련 외치기들.

율은 차근차근 그 외침들을 살피며 자신이 갈 만한 파티를 찾아보았다.

아무래도 음유시인은 파티에서 버퍼(각종 이로운 주문으로 아군의 여러 능력을 상승시켜 주는 직업) 쪽에 가까웠기 때문에 인첸터나 기타 특수한 신관류 직업들과 경쟁할 수밖에 없었다.

“레벨 150이상 인첸터 유저님(마검사도 환영) 구해요~”

“레벨 170~200정도 되시는 보조 신관 구해요! 쩌는 마법 딜러분도 구해요~!”

“블우(상) 10층 가실 능력 좀 되시는 탱커님 오세요!”

“블우(하) 4층 가실 인첸터 계열 유저님 구해요. 어설픈 양산형 마검사 트리 타신 유저님들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블우 끝장 파티 가실 만 레벨 유저님들 모십니다. 현재 쩌는 탱커랑 힐러 대기 중이요.”

“블우 1~2층 공략하실 중급 유저분들 오세요. 실력 있는 힐러님 환영합니다.”

……

……

수많은 외침들.

그 중 율이 갈 만한 파티도 여기저기 눈에 보였다.

율은 그나마 가능성이 가장 많아 보이는 순서대로 하나씩 귓속말을 넣어보았다.

[인첸터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음유시인…….]

[음유시인은 좀 힘들겠네요.]

[버퍼로 파티 참여 되나요?]

[정확한 레벨하고 직업 좀 알려주세요.]

[148레벨의 음유시인입니다.]

[아, 죄송해요. 좀 확실하게 파티를 구성하는 중이라…….]

[버퍼 역할로 충분한 음유…….]

[음유시인은 안 구해요.]

[음유시인인데 자리…….]

[죄송합니다.]

……

……

21번의 귓속말.

그리고 21번의 거절.

율은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파티 구하기가 힘들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었다.

이제 더 이상 율이 갈 만한 파티는 보이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이 고레벨 유저를 구하거나 음유시인이 대체하기 힘든 직업을 구하고 있었다.

‘하아… 이거 계속 여기서 기다려야 하나?’

금방 구할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주야장천 파티를 구하고 싶지도 않았다.

벌써 한 시간이 넘게 여기서 귓속말을 넣고 있던 율이었기 때문에 더욱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미치겠군.”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리는 율.

그런데 바로 그때, 율의 눈에 들어온 약간 요상한 외침이 하나 있었으니…….

“직업 불문… 레벨 150~180의 유저님 모십니다. 일단 오셔서 블우 몇 층을 갈지 상의해요. 오셨다가 바로 나가시는 분들은 차라리 오지 말아주세요.”

직업 불문?

맨 뒤의 말이 좀 걸렸지만 지금 율은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일단 귓속말을 넣어보자.’

파티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이게 바로 음유시인이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율의 가장 큰 슬픔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