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광학자(狂學者)
2100년 12월 31일.
모두가 22세기의 시작인 2101년을 기다리며 설렜던 그때.
한 남자가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드는 발표를 했다.
‘완벽한 가상현실’의 실현.
만약 이 발표를 다른 사람이 했다면 모든 이들은 그를 비웃었을 것이다.
이미 10년 전 모든 과학자들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확언했던 ‘완벽한 가상현실’.
물론 감각슈트를 이용한 가상현실은 훨씬 오래전부터 상용화되어 세상 이곳저곳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뇌파를 직접적으로 조작해 이 세상과 똑같이 느끼고 생활할 수 있는 완벽한 가상현실을 만드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 완벽한 가상현실을 한 남자가 만들어냈다고 선언했다.
그 남자의 이름은 박성진.
이 시대 최고의 과학자이자 또 최악의 과학자라 불리는 남자.
위대한 과학자이자 미친 과학자라고도 불리는 그가 이루어 놓은 업적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과학자는 딱 두 분류로 구분하였는데, 그 분류는 바로 박성진과 박성진이 아닌 과학자였다.
그 정도로 그는 뛰어난 능력을 지님과 동시에 엄청난 광기도 지니고 있었다.
일명 광학자(狂學者)라고도 불리는 박성진.
그런 그가 ‘완벽한 가상현실’을 만들었다고 선언했으니… 그 파장은 당연히 클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모두가 반신반의했다.
설마 아무리 박성진이라 할지라도 절대 ‘완벽한 가상현실’을 만들었을 리 없다는 부류와, 박성진이라면 그리고 그가 10년의 세월을 투자했다면 충분히 ‘완벽한 가상현실’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부류가 팽팽히 맞섰다.
하지만 결론은 아무도 낼 수 없었다.
단지 2101년 1월 14일… 박성진이 자신이 만든 그 ‘완벽한 가상현실’을 공개하기로 한 그 날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보름… 그 보름을 전 세계 사람들이 기다렸다.
이미 상용화된 가상현실은 사실 가상현실이라 부르기도 힘들었다.
가상으로 만든 것은 맞았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먼 세상.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현실과 구분하기가 힘든 진짜 가상현실을 늘 꿈꿔왔었다.
심지어 각 국가의 정부들과 여러 다국적 기업들도 이번 공개를 기다렸다.
어떤 분야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가상현실 기술이었기에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관심을 가득 받으며 보름이란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드디어 2101년 1월 14일이 되었다.
그러자 광학자 박성진은 약속대로 그가 만든 ‘완벽한 가상현실’을 공개했다.
그것은 놀랍게도 간단한 시스템이 아니었다.
하나의 거대한… 아니 거대하다고 말하기도 힘들 정도로 엄청난 세상이었다.
‘검과 마법의 노래’
광학자 박성진이 밝힌 이 세상의 이름이었다.
정확하게 현존하는 지구와 똑같은 크기의 또 다른 세상.
가상현실 게임.
그 누구도 ‘완벽한 가상현실’이 가상현실 게임으로 공개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었다.
지금까지 감각슈트를 이용해 전신의 감각을 자극하고 여러 개의 특수센서로 움직임을 읽어 모션을 결정했던 허접한 가상현실로는 절대 게임을 만들 수 없었다.
하다못해 간단한 캐치볼 같은 것도 모션 딜레이 때문에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런데 광학자는 아예 ‘완벽한 가상현실’을 만들고, 그걸 이용해 새로운 환상의 세계까지 만들었다.
정말 광학자다운 발상이었고 시도였다.
더 놀라운 건 이 가상현실을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게 간단한 헬멧(Helmet)형 장비뿐이라는 점이었다.
그것 하나로 모든 감각을 느낄 수 있었고, 모든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었다.
2101년 1월 14일, 광학자 박성진은 총 100개의 접속 헬멧을 직접 제작해 시범단으로 뽑힌 100명의 관계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직접 접속해보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100명의 시범단은 당연히 빠르게 접속을 시도했고… 그들은 그렇게 몇 시간이 넘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박성진은 직접 시범단의 접속을 강제로 끊고 그들을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그 뒤의 상황은 말 그대로 경악이었다.
100명의 시범단이 동시에 내뱉은 말은, 다시 접속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단 몇 시간의 플레이로 완벽하게 가상현실에 빠져버린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보다 우선 ‘검과 마법의 노래’를 좀 더 경험해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박성진은 더 이상의 접속을 허락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대략 한 달 후… 정확히 2101년 2월 9일에 ‘검과 마법의 노래’를 세상에 공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직접 설계하고 제작까지 한 이 헬멧을 어떤 기업이라도 자유롭게 생산하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설계도는 아예 ‘검과 마법의 노래’ 공식 하이퍼넷 사이트에 공개해 놓겠다고 했다.
단, 그 헬멧의 판매가격은 자신이 지정한 일정 수준을 절대 넘을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광학자 박성진이 원한 건 단 한 가지뿐이었다.
‘검과 마법의 노래’의 부흥.
그것을 위해 그는 모든 권리를 내놓았다.
심지어 접속을 위한 계정비도 최초의 완벽한 가상현실 게임이라는 타이틀을 단 게임치고는 매우 저렴했다.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이 경악스러운 발표에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의 공개… 그 공개를 끝으로 광학자 박성진은 더 이상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모든 법적 처리를 대한민국의 작은 퍼블리싱 게임 업체인 ‘판타지아’에 맡기고 다시 사라졌다.
덕분에 사람들은 ‘검과 마법의 노래’의 메인 서버가 어디에 있는지… 심지어 어떤 경로를 통해 서버에 접속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단지, 광학자의 엄청난 기술력을 통해 모든 해킹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대단한 규모의 서버 기술을 적용시켜 단 하나의 통합서버를 운용하고 있다는 것만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물론 기다리는 이들에겐 하루하루가 지겨운 시간이었겠지만… 어쨌든 2101년 2월 9일은 금방 찾아왔다.
드디어 시작된 ‘검과 마법의 노래’의 정식 서비스.
그때부터 이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변화했다.
어떤 이들은 2101년 2월 9일은 인류가 새롭게 다시 태어난 날이라고 말했다.
불과 넉 달 만에 동시 접속자가 1억을 넘었다.
총 접속자 수는 무려 10억.
엄청난 관심에 이은 대단한 접속자 수치였다.
현실과 전혀 다른 시간 개념이 적용되는 ‘검과 마법의 노래’는 게임이지만 더 이상 게임이 아니게 되었다.
하루는 단지 24시간뿐이었지만 ‘검과 마법의 노래’의 세상에선 무려 72시간이었다.
세 배로 늘어난 시간.
때문에 사람들은 아예 모든 일을 ‘검과 마법의 노래’에서 처리하려고 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검과 마법의 노래’의 비중은 높아져만 갔고, 어떤 이들은 기본적으로 강제되는 휴식시간(하루에 8시간)인 최소의 휴식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검과 마법의 노래’의 세상에서 보내기도 했다.
덕분에 큰 사회문제까지 야기하게 된 ‘검과 마법의 노래’.
하지만 ‘검과 마법의 노래’의 서비스는 절대 멈추지 않았다.
물론 이대로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에서 간간히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의견은 절대 다수의 의견에 의해 완전히 묵살되었다.
또한 ‘검과 마법의 노래’는 현실과 어느 정도 연동이 되는 시스템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기업들은 아예 ‘검과 마법의 노래’ 속에 회사지부를 건설하고 그곳에서 업무를 처리하기까지 했다.
기업뿐만이 아니었다.
다양한 종류의 것들이 ‘검과 마법의 노래’ 안으로 흡수되었다.
대륙은 엄청나게 넓었고, 그 안에선 언어의 장벽마저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은 진정한 글로벌 세상이었다.
딱 5년.
이것은 ‘검과 마법의 노래’가 모든 세상을 장악하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동시 접속자 4억, 총 접속자 16억.
결국 그렇게 가상현실을 넘어 현실의 일부가 되어버린 ‘검과 마법의 노래’.
5년이 지난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삶을 동시에 살고 있었다.
실제로 현실에서의 삶과 ‘검과 마법의 노래’ 속의 삶.
사람들에겐 두 가지 삶 모두가 중요했다.
더 놀라운 건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검과 마법의 노래’의 세상은 겨우 30% 정도밖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유저들의 힘으로 대륙을 개척하는 시스템이라서 공개되는 속도는 매우 불규칙했다.
‘검과 마법의 노래’의 메인 AI라고 알려진 ‘유토피아’는 그 속도에 맞춰 유저들에게 걸려 있는 제한을 하나씩 풀어주었고, 그 결과 현재 세 번의 대형 업데이트가 이루어져 있었다.
2101년 2월 9일에 제일 처음 공개된 ‘검과 마법의 노래’ 파트1 <영혼의 귀환>을 시작으로, 2년 후 ‘검과 마법의 노래’ 파트2 <개척시대>가 업데이트되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 ‘검과 마법의 노래’ 파트3 <반격>이 업데이트되었다.
게임 설정을 바탕으로 얘기하자면 영혼의 귀환은 아주 오래전 대륙을 떠났던 수많은 영혼들이 다시 대륙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했다.
즉, 신규 유저의 유입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업데이트인 개척시대에서는 그전까지 레벨 한계치였던 100이 200으로 바뀌면서 수많은 유저들이 본격적인 개척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상 현재 공개된 30% 지역이 모두 그 업데이트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다음으로 1년 전 이루어졌던 세 번째 업데이트 반격은, 아주 힘차게 대륙 전역으로 뻗어나가던 유저들의 뒤통수를 제대로 치는 업데이트였다.
레벨 한계는 200에서 겨우 250으로 늘어났을 뿐인데, 오히려 몬스터들은 전보다 두 배 이상 강해졌다.
덕분에 유저들은 꽤 고생을 하게 되었고, 아직까지도 몬스터들과 치열한 전투를 치르며 개척시대에 확보한 영토를 지켜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놀랍게도 현실에서의 뉴스로 중계까지 되었다.
세상의 모든 콘텐츠를 흡수한 ‘검과 마법의 노래’.
그렇기에 그것은 세상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