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명훈 학교정벌하다
교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자
신을 위한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을 떨쳐 보낼 수가 없었
다.
“자 조용히 착석. 너희 둘은 환자를 교실 뒤에 던져 놓
도록 해. 구급요원들이 실어가기 편하도록.”
명훈의 손가락으로 지적받은 두 녀석.
두말없이 명훈의 말대로 충원의 발과 다리를 잡고 질질
끌며 교실 뒤쪽으로 끌고 갔다.
명훈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구급대원들이 들이 닥쳤고, 충원이를 실었다.
하지만, 교실에 있는 사람 중 어느 하나도 미동하지 않
았다.
명훈이만 그런 충원이를 향해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그때 구급대원중 한사람이 입을 열었다.
“이거 완전히 떡이 됐군.”
“이게 어쩌다가 이토록…. 살아 날 수나 있을까?”
혼잣말들이었지만, 이곳 교실에 있는 사람 중 그 말을
듣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수가 온몸을 찌르는 듯한 짜릿함만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때 명훈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어떤 깡패같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들어와서 제 ‘친.구
충.원’이를 마구 팼어요. 우리는 겁이 나서 꼼짝도 못하고
지켜 볼 수밖에 없었어요. 충원아, 어서 일어나. 충원아!”
명훈이의 애절한 목소리 때문일까?
기절하고 있던 충원이가 경기를 일으켰다.
그러자 구급대원이 입을 열었다.
“이거 심각하군! 어서 옮기세.”
“충원아 꼭 정신 차리고 살아서 돌아와. 아직 나에게 줄
게 남았잖아. 엉엉.”
충원이의 경기가 더욱 심해지자 구급대원들은 그의 몸을
꽁꽁 묶어서 구급차에 실고 다급한 모습으로 떠났다.
바로 그 순간 교실 안 창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명
훈.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씨익.
그 순간 모두들 깨달았다.
자신들은 조금 전 본 것을 보지 못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과 들은 것 역시 듣지 않은 것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모두들 명훈을 바라보았다.
명훈이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들을 마주했다.
“수업해야지. 책상 줄도 맞추도록 하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애들은 자신의 책상을 알아서 맞춘
후 자리에 착석했다.
“거기랑 거기, 그리고… 너.”
명훈의 손짓에 한 녀석이 의문스런 표정으로 자신을 가
리켰다.
그러자 명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까지 셋 말야.”
“우린… 왜?”
세 녀석이 쩔쩔매자 명훈은 환히 웃어주며 긴장을 풀어
줬다.
“저기 앞에 주무시는 선생님을 엎고 양호실에 눕혀는 놔
야지. 저런 곳에 주무시게 놔둘 수는 없잖아. 안 그래?”
녀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선생을 엎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아직 정리가 안 된 것이 두개 더 있었다.
바로 뼈다귀와 호구였다.
녀석들은 명훈을 경악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도 믿을 수 없다고 그들은 말했다.
눈으로….
그래서 명훈은 손가락으로 그들의 눈을 가볍게 찔러줬
다.
콕!
“으악!”
“크악!”
뼈다귀와 호구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눈을 부여잡고 이리저리 뒹굴기 시작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은 참으로 볼만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명훈의 행동을 본 같은 반 친구들은
전혀 그것이 볼만하게 보이지 않았다.
자신들이 저렇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저들의 모습이 미래의 자신들처럼 보였다.
한없이 서글픈 그들이었다.
여하튼 명훈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뼈다귀와 호구를 바
라보고 있었다.
이미 그들은 전의를 상실해 있었기에, 명훈이 무슨 행동
을 하던 나댈 수가 없었다.
실려가기전의 충원이를 봤기 때문이다.
이 믿기지 않는 현실을 부인하고 싶었다.
왕따 명훈이가 죽었다 살아나더니 괴물이 되서 나타난
것을 꿈이라고 부정하고 싶었다.
그것도 개꿈이라고 말이다.
“뭔 잡생각들을 하고 있어? 너희도 실려 갈래?”
“아냐. 아냐. 전혀 아니야!”
뼈다귀와 호구가 고개를 미친 듯이 가로 저었다.
조금이라도 가로 젓는 속도가 늦어지면 죽기라도 하는지
목이 부러지진 않을 까 싶을 정도로 흔들어댔다.
그렇게 무자비하게 패는 것을 직접 목격한 그들이다.
자신들도 그렇게 맞을 각오를 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자신들은 맞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꼬봉이 됐으면 됐지 충원이와 같이 개처럼 맞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꼬봉?’
뼈다귀와 호구, 아니, 명호와 성운이은 동시에 같은 생
각을 할 수 있었다.
뼈다귀와 호구, 아니, 명호와 성운이는 동시에 같은 생
각을 할 수 있었다.
‘그렇지 저 녀석이 다른 녀석들에게 우리가 괴롭힌 것을
물어본다고 했는데, 그 전에 꼬봉이 되면 설마 자기 밑으
로 들어간 애를 패겠어?’
명호와 성운이는 자신의 생각이 타당성 있다고 생각했
다.
그러나 그들은 예상도 못했다.
그런 생각이 사실은 전혀 타당성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과거 명훈이었다면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전생에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치를 떨게
한 더러운 성격의 검황이다.
그것은 가족들도 예외는 없었다.
검황의 자식 중 거시기 달고 태어난 아이 중에 혹사이상
의 고문을 받지 않은 자가 없었으니 말이다.
감히, 명호 따위들이 감당할 만한 성격이 아닌 것이었
다.
하지만, 명호와 성운은 그런 중요한 ‘중심 포인트’를 알
지 못했다.
절벽에 떨어지는 사람처럼.
물에 빠져죽는 사람처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뿐이다.
그래서 버둥거렸다.
쪽팔림?
개나 갔다 줘라.
개처럼 맞아 죽는데 쪽팔림이 문제겠는가?
명호와 성운이는 손이 발이 되고 다시 손이 될 정도로
싹싹 빌었다.
“명훈아. 제발 때리진 말아줘. 제발…. 네가 하라는 대로
다 할께. 하다못해 꼬봉이라도 될 테니 제발 때리진 말아
라? 응? 안될까?”
성운이의 선수에 명호는 발등에 불이 떨어짐을 느꼈다.
그래서 더욱 안정치 못한 모습으로 다급하게 입을 열었
다.
“명훈아. 제발…. 이번 한번만 봐줘. 네가 시키는 건 뭐
든지 할게. 네 가방이라도 들고 등하교 할까? 여자라도 소
개 시켜줘? 말만해 다 해줄게. 제발 패지만 말아줘….”
성운이는 명호가 하는 말을 듣고 이를 갈았다.
‘개새끼. 감히 한술 더 떠? 오냐. 두고보자!’
“명호의 말은 물론이고 난 네가 죽으라면 죽을테니 제발
충원이처럼 패진 말아줘! 사람으로 태어나서 충원이, 아니,
개처럼 맞아 죽고 싶진 않아. 제발 부탁이야!”
명훈이는 그런 그들을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시끄러!”
그리곤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줬다.
퍽! 퍽!
“켁!”
“어흑!”
각자의 개성에 맞는 비명.
“뭘 잘했다고 어디서 꽥꽥 소리지르고 지랄이야. 지랄
이! 뒈지고 싶어?!”
“아! 아냐! 아냐!”
물론 죽고 싶지 않다.
특히 충원이처럼 맞다가 죽고 싶진 않았다.
미친 듯이 고개를 가로저어 부정하는 것이 살길이라 생
각했다.
조금 전에 휘둘렀던 것 보다 빠르게 돌렸다.
휙휙!
바람소리가 날 정도니 얼마나 돌려대는지 눈감아도 알
정도였다.
명훈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교실의 모든 애들은 그런 명훈과 명호, 성훈을 바라보면
서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들 대신의 본보기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 녀석들이 아니면 이중 누가 끌려 나가 저 짓을 하고
있었을 지는 하늘만 알거다.
그때 명훈이 입을 열었다.
“좋아. 그래 꼬봉으로 받아 주지.”
그 말에 모두가 놀랐고 선운이와 명호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이 불행의 서곡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
상하지 못했다.
차후, 그냥 패고 인연을 끊어줘 라고 외치게 될 것이라
곤 더욱더 예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다른 반애들 까지 목격한 목격담은 교내 이곳저곳에 퍼
지기 시작했다.
죽었다 살아난 녀석이 자신을 괴롭혔던 녀석들을 반쯤
죽였다는 믿지 못할 소문이었다.
물론 선생들의 귀에도 그 소문이 들어가긴 했지만, 선생
들은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믿지도 않을 뿐더러, 한 달 전 자살소동으로 매스컴 탔
던 것이 피곤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선생 중 유일한 증인인 체육선생.
잘 자고 일어나서 자신이 어째서 양호실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배가 미친 듯이 아픈 것만 알 뿐이었다.
강한 타격감에 이지를 상실했다.
결국 필름이 끊어지듯 9반 교실에서 싸움을 목격했던
사실을 잊어버리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다행이기도 했지만, 서글퍼 보이기도 했다.
몇몇 선생들 중 다분히 게쉬타포 같은 정신질환자에 가
까운 성향을 지닌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실을 밝히겠다고 설쳐보았다.
9반 애들을 닦달하기도 했고, 벌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알아 낼 수가 없었다.
하나같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한 모습이다.
결국 포기하고 나가는 모습에 9반 아이들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명훈의 무지막지한 모습을 곁에서 목격한 그들이다.
묵언의 약속을 깰 정도로 간덩이가 부은 녀석은 이반에
아무도 없었다.
사뭇 능청스럽기까지 한 애들의 연기력에 가만히 지켜보
던 명훈은 혀를 찰 정도였다.
그리고 연기한 본인들마저 자신의 연기력에 깜짝 놀라기
까지 했다.
이렇게 술술 거짓말이 흘러 나 올 수 있을 것이라고 누
가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역시나 자신들의 목숨이 걸린 일이다보니 알아서 기는
애들이었다.
그래서 명훈은 다시 한번 깨달았다.
‘말 안 듣는 녀석에겐 주먹이 최고.’
백날 말해봐야 소귀에 경 읽기 아니겠는가.
말 안 듣는 동물들은 그냥 한번 가볍게 밟아주면 알아서
긴다.
동물들도 그런데 사람은 어떻겠는가?
종종 요령을 피는 녀석들이 있긴 있다.
그런 녀석은 적당히 골라서 본보기로 패주면 잘한다.
특히 팰 때 요령이 있다.
적당히 패면 더 말을 안 듣고 오기가 생겨 기어오르기
십상이다.
그런 녀석들은 항상 눈에 띄인다.
한번 날을 잡고 팰 때 확실하게 패야 한다.
오기나 분노 따윈 생각도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야 공포가 뼈 속까지 사무쳐서 나중에 만나더라도
알아서 기기 때문이다.
이것은 명훈이가 196년 동안 살며 배운 삶의 지혜라 할
수 있었다.
검황이 문파를 새울 때 써먹은 방법으로, 죽기 전까지도
효용성이 지속되었다.
특히나 특이한 점은 잘 대해준 녀석들은 근근히 기어오
르는 반면, 검황에게 많이 맞은 녀석 일수록 이상하게도
충성심이 남달랐다는 점이다.
때문에 명훈은 주먹의 효율성을 남들보다 높게 샀다.
명훈은 특히 말 많은 녀석들을 싫어했다.
좋은 주먹 놔두고 왜 말하느냐 이거였다.
학교가 끝나기 전이다.
하교 할 때까지 옆에서 잠들고 있던 현민.
그녀는 아무리 심령이 흔들렸다 하더라도 너무 하다 싶
을 정도로 잠만 잤다.
그렇게 소란스럽고 시끄러웠는데도 미동 없이 자더니 집
에 갈 시간이 되니 칼 같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암, 잘 잤다.”
“하하, 일어났어?”
명훈조차 질린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희게 웃으며 대답했다.
“흐흐, 오랜 만에 단잠을 잤어. 그런데, 지금 몇 시지?”
능청맞은 그녀의 웃음소리는 허울 없이 다가왔다.
명훈도 같이 흐흐 하며 맞 웃음을 쳐주다가 그녀의 물음
에 입을 열었다.
“이제 종례시간이야. 그만 정신 차려.”
명훈의 말에 왠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웅~.”
“킥킥. 머리가 그게 뭐냐? 정돈 좀해라.”
“심해?”
“응.”
현민이 얼굴을 한번 팔로 훑더니 머리를 한번 만지고 하
품을 하며 말했다.
“하암, 너무 잘 잤나? 학교가 끝나니 아쉬운데?”
명훈이 씁쓸하게 웃었다.
현민이는 마치 학교에 자기 위해 오는 것처럼 행동을 했
던 것이다.
그제야 현민은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는지 주변을 두리
번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왜 이래?”
“분위기가 어떤데?”
“아니 애들이 잡담 떠는 애들도 없고, 군기가 확 잡혀
있는게…. 마치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난 것 같잖아.”
현민의 한마디에 몇몇 애들이 움찔거렸다.
애들 역시 지금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나 두려움에 숨쉬기도 곤란했고, 악마로 변한 명훈
에게 꼬투리 잡히지 않기 위해 찍소리도 못하고 있던 참이
었다.
그런데 현민이가 그걸 건드린 거다.
금세 자다가 일어났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모습을 보이는
현민이었지만, 애들에게는 그러한 현민이 무모하게만 보일
뿐이고, 더욱 이상하게 보여 질 정도였다.
“아냐. 아무 일 없었어.”
“그래? 그런가? 그런데 충원이 녀석은 벌써 땡땡이 쳤
나?”
“응?”
“아니, 땡땡이 깔꺼면 같이 까지 의리 없이 혼자 사라져
서…. 히히.”
멋쩍게 웃는 현민이다.
여하튼 그녀의 말에 명훈이는 기가 막혔다.
이 현민이라는 아이가 보통 강적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애구, 나도 그냥 가야겠다.”
책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현민을 보고 명훈이
입을 열었다.
“이제 종롄데 그냥 가려구?”
“야, 내가 언제 그런거 따진거 있냐? 그건 그렇고 너 보
기 좋다. 평소에도 좀 그래라. 내가 말 좀 해보라고 할 때
는 들은 척도 안하더니. 킥킥. 짜식. 다 컸구나?”
그녀는 혼자 할말 다하며 명훈이의 등을 쌔게 두드렸다.
명훈이는 그녀의 속사포 같은 말에 대꾸조차 할 수 없었
다.
“아! 그러고 보니 나 꿈속에서 네가 붕붕 날아다니는 거
봤다? 보니까 애들은 구석에서 쫄구 있고, 넌 충원이 녀석
을 신나게 밟더라? 킥킥. 존니 웃겼어. 킥킥.”
현민이의 말에 애들이 경직 되었다.
현민이는 그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쏘아댔
다.
“뭐, 현실에선 그럴 리가 없겠지만, 여하튼 네가 싸우는
모습 보기엔 나쁘지 않았다. 힘내 짜샤. 당하지만 말고. 이
누님께서 학교에 나오면 막아주긴 하지만, 항상 나오는 건
아니잖냐. 알아서 잘 하라구. 알겠어?”
현민이의 말에 명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녀의 맑은 눈을 보니 자연히 끄덕여 진 것을 말이다.
“여하튼 난 이만 간다. 담탱이 한테 말 좀 잘 해줘. 네
말이면 껌뻑 죽잖냐. 그럼 수고해.”
현민이는 그 말을 남기고 바람같이 사라졌다.
‘허참, 당돌한 계집일세.’
명훈이는 속으로 성격 좋은 당찬 계집이라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가니 부모님들이 발을 동동 굴리며 명훈이를
반기셨다.
명훈이는 왠지 모를 행복감이 가슴에 뻑 차오른다.
“어디 다친 곳은 없구? 애들은 안 괴롭히디?”
어머니의 걱정 어린 말은 끈덕지게 이어졌지만, 부모님
이라는 생소함은 명훈에게 기쁨이하가 될 수 없었다.
한참을 다독이고 안심을 시켜 드린 후 명훈은 자신의 방
에 들어갔다.
“휴….”
이제야 살 것 같다는 생각에 한숨을 내 쉬었다.
학교 첫날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알 사람들은 알겠지만, 빈말이 아니라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조금 전 충원이 녀석과 싸우던 때를 생각했다.
“그때 순간 내력이 끊어지다니. 임기응변으로 피해서 반
격하긴 했지만….”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상황이었다.
전생에는 항상 호흡하듯 피가 흐르듯 자연스럽게 운기
되던 기운들이었다.
설마 한순간에 사라질 거라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그로인해 충원이와의 싸움에서 자칫하면 질뻔했다.
녀석의 주먹이 둔하긴 했지만, 명훈의 약골 같은 몸으로
받아내기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검황의 눈으로 보기에도 제자를 삼는다면 명훈이보다 충
원이 녀석을 삼고 싶을 정도였다.
충원이 녀석은 잘만 키우면 외공으로 대성할 것이라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질 정도였다.
물론 성격은 쉽게 고치기 힘들 테지만, 매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여하튼 그로인해 현세에서는 예상하며 두근거렸던 것과
다르게 실망스럽게도 무공이 과거처럼 흔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충원이 정도의 재질을 썩혀둘 정도니 말 다한 것이다.
과거라면 재수가 없어도 삼류문파에서도 무공을 익혔을
텐데….
앞으로 무한히 괴롭힐 용의가 있는 충원이였지만, 근골
만은 아까워 보였다.
뭐, 근골이 뛰어나니 앞으로 신나게 팬다 해도 쉽게 죽
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편해지는 명훈이
었다.
“내력이 너무 부족해. 이런 약골을 조금 움직이려면 내
력이 더 필요해.”
명훈으로서는 정말이지 심각한 문제였다.
바로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 세상엔 정말 무공이 사라진 것은 아닐까?’
상상만으로도 허탈한 한숨이 흘러나온다.
“모르겠다. 여하튼 내기를 크게 형성하는데 몰입해야
지.”
불안한 마음을 숨기고 운기를 시작했다.
‘속성법으로 내력을 키워야겠어.’
오늘 보니 더 위험한 일이 생겨날 것 같았다.
지금의 상태로 멀뚱히 있다간 맞아죽기 십상일 것 같다
는 불길한 예감이 명훈의 마음을 부추겼다.
그리고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내기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내력을 빨리 형성하는 속성법을 시도하는데
크게 부족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는 아직도 어딘가에서 기인
이사가 숨어서 무공을 연마하고 있으리라는 미련을 저버리
진 못했기 때문이다.
“어머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다녀 오거라.”
명훈의 어머니는 아직도 걱정이 태산 같다.
쾌활해 진 것 같긴 한데, 어제도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
자마자 방안에서 뭘 하는지 하루 종일 나오지도 않았기 때
문이다.
혹시나 어제도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온 것은 아닐
까 하고 생각해 보았을 정도였다.
전학을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사정상 이곳에서 이사하
기도 힘든 형편이었다.
그렇다고 명훈이 혼자 살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다시
그 학교로 보내긴 했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설마 명훈이가 애들을 패고 왔을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
지 못하는 어머니였다.
드르르륵!
명훈이가 교실에 들어서자 떠들썩하던 교실이 숙연해졌
다.
싸늘한 냉기가 한바퀴 돈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반응이 그러했지만 정작 명훈이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
는 중이었다.
전생에서도 자신이 회의실에만 나타나면 이런 현상이 펼
쳐졌기 때문에 익숙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런 익숙하다 못해 친숙한 기운이 달
갑지 않게 느껴졌다.
뭔가 무시당하는 느낌이랄까?
우당탕!
명훈이가 안으로 들어서자 이곳저곳에 분포되어 있던 애
들이 다급하면서도 질서정연하게 자신의 자리에 찾아가 앉
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명훈은 그러한 사실에 대해서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고 눈을 감을 뿐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조용한 분위기하나는 마음에 드는
명훈이었다.
‘아직도 현민이는 안 왔나보군.’
책가방이 없는 것을 보니 아직도 오지 않은게 확실해 보
였다.
명훈은 그녀에 관련된 것이 의외로 신경이 쓰였다.
애들은 여전히 숨소리조차 나지 않게 조용히 앉아 침묵
을 지켰다.
명훈이 이렇게 하라고 시킨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들이
과거에 명훈에게 한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했던가?
지금 애들의 상황이 바로 그 꼴이었다.
쾅!
뒷문이 거칠게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명훈이 슬쩍 고개를 돌리는 찰나 거칠게 들어온 누군가
가 목청껏 외쳤다.
“2학년 9반 박명훈이 누구야? 어떤 새끼야?!”
갑자기 교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명훈은 자신의 이름을 부른 사람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
랐다.
어제 자신에게 개처럼 맞았던 충원이가 뒷문에 서서 애
들을 둘러보고 있던 탓이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최소 3주는 요양해야 될 정도였다.
그런데 멀쩡히 서서 자신을 찾고 있다.
명훈은 혼란스러워 졌다.
잠시 어제를 회상했다.
그러자 자신에게 신명나도록 맞는 충원이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열심히 때렸을 때의 타격감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렇다면 어제 일이 꿈은 아니란 말인데….
자신의 볼을 살짝 꼬집는 명훈.
‘아야! 쓰읍~.’
자신이 생각에도 너무 과하게 꼬집었다.
볼에 불이 나는 기분이다.
여하튼 꿈은 아니란 것은 확실해졌다.
그렇다면 저기 뒤에 서있는 덩어리는 누구란 말인가?
‘복제인간 충원이 투(2)’일리는 없지 않은가?
바로 그때 그 ‘복제인가 충원이 투’로 보이는 녀석이 명
훈의 모든 의문을 풀어주었다.
“내 동생을 떡으로 만든 그 새끼 나오란 말이야!”
‘형제였군.’
명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꼬라지를 보니 복수해주겠다고 온 모양이다.
그렇다면 받아줘야 한다는 것이 명훈의 생각이었다.
아직 몸이 다 안 풀렸다 생각하고 있던 와중이었기에 기
분이 몹시 좋아졌다.
어제 급격한 기의 사용으로 덕을 봤기 때문이다.
기의 통로가 팽창하며 넓어진 것이다.
그런데 저 녀석이 충원이 형이란다.
더 기쁘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 했다.
그렇다면 저 녀석도 충원이와 다를 바 하나 없는 녀석이
라는 결론이 나기 때문이다.
애들이나 괴롭히고 다니는 찌질이들과 진배없다는 말이
다.
그것은 정신 개조가 필요한 녀석이란 말과 동일했다.
그렇지 않아도 뭔가 많이 부족하다 생각했는데, 이런 호
박이 넝쿨 체 굴러들어 올 거라고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어제의 짧은 싸움만으로도 명훈은 깨달았다.
아무리 후러배라 하여도 실전이 최고라는 것을 말이다.
그 순간 명훈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이것을 계기로 전국 10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왕따 친구
들을 대신하여 내가 직접 처벌을 내리겠다.’
시답잖은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한참동안 잡다한 생각을 마친 명훈.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애들은 아직까지도 명훈이가 누군지 알려줘야 할지 말아
야 할지 결정을 못 내리고 허둥거리고 있었던 차였다.
그런데, 명훈이가 직접 일어나는 모습을 보니 안도의 한
숨이 흘러나왔다.
될 수 있으면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고래싸움에 새우가 끼어들어봤자 등 밖에 더 터지겠는
가?
한참 서로 마주 노려보던 중 명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명훈이다. 넌 뭐냐?”
그러자 녀석이 못생긴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
충원이 녀석과 판박이마냥 똑같이 생긴 모습이 몹시 날
불쾌하게 만들었다.
“네가 내 동생을 떡으로 만든 명훈이냐?”
‘보통 자신의 동생이 당했을 때 떡이란 단어를 쓰던가?’
뭐 어찌되든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짧은 한숨을 내쉰 명훈이 대답했다.
“어제 나에게 달려들던 너와 똑같이 생긴 멧돼지 한 마
리를 말하는 거라면 사실이라 말해주마. 어제 떡갈비 재료
로 만들려고 살짝 다져줬지.”
“이 개자식이 지금 나랑 장난하나! 따라 나와. 교실에서
죽고 싶지 않으면….”
명훈은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이번에도 교실에서 난동 부려봤자 좋을 것이 하나도 없
음을 생각한 탓이다.
학교 본 건물 뒤쪽에는 창고와 넉넉한 넓이의 공터가 있
었다.
충원이 형, 충열이는 바로 그곳으로 명훈을 끌고 갔다.
그곳에는 많은 녀석들이 건들거리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
었다.
‘하나, 둘…. 여덞이라…. 조금 빡세겠군.’
그 녀석들은 모두 충열이와 어울리는 양아치들이었다.
충열이는 이 학교의 짱이다.
충열의 싸움 실력과 맷집은 이미 인근 학교까지 소문이
자자할 정도다.
벌써부터 조폭들이 충열의 싸움실력에 눈독을 들이고 스
카웃 제의를 할 정도라고 하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
가?
출처가 불확실한 뜬 소문이긴 했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그만큼 한 실력 한다는 말일 터이다.
충원이는 충열이의 빽을 믿고 학교를 다녔던 것이다.
그래서 왠만한 사건이라면 아무도 상종하지 않았다.
선생들조차 말이다.
그러나, ‘또라이 개쉬타포’라 불리는 도덕선생과 어제 명
훈에게 맞고 기절한 ‘발정난 개차반’으로 불리는 체육선생
은 달랐다.
그들을 유일하게 견제하는 제대로 된 선생이라 할 수 있
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설치는 충원이나 충열이라 해도 그들 앞에서는
한수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충원이 나름대로 싸움을 잘하는 편이여서 자신의
능력으로 2학년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여하튼 명훈이는 이런 상황이 몹시 달가웠다.
특히나 충열이가 맷집이 좋다는 말을 들었다면 더욱 기
뻐했을 것이다.
보기만 해도 듬직해 보는 몸집을 보며 어제 못 풀었던
울분을 마저 풀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 정도 덩치라면 충분해 보였다.
스트레스를 풀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명훈은 슬쩍 운기를 시도했다.
따스한 기운이 온몸 구석구석을 훑으며 퍼져나갔다.
몸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상쾌한 기분이 온몸을 휩쓸었다.
자세를 가볍게 하고 충열이 녀석을 도발했다.
“덤벼봐 돼지새꺄.”
녀석의 코에서 콧김이 나온 것처럼 보인 것은 착시현상
만은 아닌 것 같았다.
녀석이 주먹을 곧게 뻗으며 명훈의 안면을 노렸다.
‘허, 싸움의 기본이 되어 있구만.’
명훈, 아니, 검황도 청년시절에는 뒷골목에서 주먹 패
놀이도 해보았다.
아무것도 몰랐을 어린 시절의 치기어린 행동이었지만,
그때도 이미 그 동내를 휘어잡았던 검황이다.
그때 나이가 15살이었다.
슬쩍 과거를 떠올렸던 명훈.
왠지 그립다는 생각이 물신 들었다.
‘추억이라는 건가?’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명훈의 그런 웃음을 본 충열.
비웃음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열불이 뻗쳐올랐다.
요리조리 피하는 명훈이 요령을 부리며 미꾸라지처럼 잘
도 피한다며 더욱더 열이 받았다.
더군다나 뒤에는 자신의 패거리 애들이 있지 않던가.
쪽팔렸다.
이런 애새끼 하나 잡지 못하는 자신이 말이다.
“이 세끼 한대만 맞아라.”
이를 악물며 내뱉는 목소리에 명훈이 피식거리며 입을
열었다.
“싫다. 너 같으면 맞겠냐?”
“이, 이익!”
충열이는 자신의 어금니를 악물고 주먹을 있는 힘껏 휘
둘렀다.
왼쪽 다리에 축을 주고 상체를 비틀며 후리는 완벽한 펀
치였다.
명훈이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로 체계가 잡힌 주먹이었
다.
어디서 운동을 하는 녀석 같았다.
하지만 그것에 맞아줄 생각이 전혀 없는 명훈.
가볍게 허리를 숙여 주먹을 피하고, 몸을 숙인 상태에서
그대로 뛰어 올라 공중제비를 돌며 왼발에 힘을 주고 강하
게 턱을 걷어 차주었다.
일명 오버헤드킥이나 썸머쏠트킥이라 명명된 기술이었
다.
퍽!
“커흑!”
약간 스치긴 했지만, 적당한 타격감이 왔다.
하지만, 충열이는 자신의 턱을 한번 흔들 뿐이었다.
크게 상한 것 같아보이진 않았다.
명훈으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번 한방으로 기선을 제압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뒤에서 구경하는 녀석들이 언제 자신에게 덤빌지 알 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회심의 일격을 놓친 명훈은 조용히 녀석의 눈을 바라보
았다.
“…….”
“이 새끼가 감히 잔재주를 부려?!”
충열이는 쿵쿵거리며 명훈에게 달려들었다.
보기에 우스워 보일 정도로 둔해 보이는 몸이었다.
하지만, 덩치가 있어서 둔해 보일 뿐이지 사실 스피드는
빠른 편이었다.
점혈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쓰러트린 후 미친 듯이 패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력이 부족하여 넘길 수 밖에 없었다.
혈도를 봉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내력을 주입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지금 명훈에겐 그 정도까지 사용할 만큼 내력이 있지 못
했다.
하지만, 점혈 형식의 공격은 사용 할 수 있었다.
혈도는 곧 급소다.
급소의 모든 위치를 꾀고 있는 명훈.
최악의 공격법을 사용하고자 마음을 먹고 측은한 표정으
로 충열을 바라보았다.
만약 충열이 혼자였다면 이 공격법은 결코 사용하지 않
았을 것이다.
저 뒤의 녀석들마저 상대해야 할 것 같았기에, 내력을
아끼기 위한 최후의 절초를 공개했다.
그것은 자신이 전생에 거리를 누비던 바로 그 시절 깨우
친 공격법이었다.
모두가 자신에게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던 그 공격
법.
극렬(極烈)! 남탈권(男脫拳)!
유치한 이름 그대로다.
남자의 굴레를 벗는다라는 이름의 권법인 것이다.
유치하여 우스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한다.
검황이 무공을 모를 당시 이 권법 하나로 뒷골목을 평정
하였으니 말 다한 것이다.
설마 내가 이것까지 써야 한단 말인가 하는 침울한 표정
으로 주먹을 움켜쥔 명훈.
미안한 감정에 눈물마저 흐를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자신의 공격을 하나도 빠짐없이 흘리는 명훈
에게 열 받았던 충열이 소리쳤다.
“이 개새끼들아! 웃지만 말고 저 새끼 좀 잡아봐!”
뒤에서 버티고 구경하던 애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
다.
다급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하오문(下午門) 비기(秘技) 다중남탈권(多衆男
脫券)을 선보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은 비기 중에 비기로서 검황이 어떤 늙은 거지에게
주먹밥 한 개와 교환한 보법을 익힌 후 깨우친 비기였다.
늙은 거지에게 배운 운신술은 어설프긴 했지만, 내력이
적어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기술이었기에 과거 하오문파
를 정벌할 때 톡톡한 효과를 가져다주었던 기술로서, 지금
은 그 위험성을 검증받아 무림에서조차 봉인되어버린 금지
된 필살기(必殺伎)였다.
그것을 지금 펼치려 한 것이다.
솔직히 명훈도 정공법으로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 주지 않았다.
자신의 비열함에 분노하면서도 명훈은 주저치 않고 자신
의 주먹에 기를 모았다.
그 사이에 애들이 명훈의 주변을 둘러싸서 운신할 방향
을 모두 막아버렸다.
충열이는 야비한 웃음을 흘리며 명훈에게 한걸음씩 다가
왔다.
어디 그 미꾸라지 같은 움직임으로 또 피해보라는 비웃
음이 담겨 있는 얼굴을 보니, 아직 앞날이 창창한 녀석들
이기에 3할까지만 사용하려 했던 다중남탈권을 5할 이상
으로 끌어올리게 되었다.
끌어올린 명훈은 침울해 졌다.
‘고자가 되어도 원망들 하지 말아라.’
한줄기 눈물이 흘렀음인가?
눈가에서 뭔가가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순간 명훈의 모습이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
였다.
“뭐, 뭐야? 이자식이 어디로 사라진거야?”
충열이 녀석들이 허둥거리며 사라진 명훈을 찾았다.
그러나 그것을 시작으로 녀석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
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꺼어어어어억!”
몇 놈은 이미 기절을 했고, 약간 정신력이 강한 몇 놈은
눈을 까뒤집고 바닥을 때구르르 굴렀다.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다면 녀석들 모두가 어떤 특정부위
를 움켜쥐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사라졌던 명훈이 그 자리에 바람처럼 나타났다.
그 순간 사라졌던 명훈이 그 자리에 바람처럼 나타났다.
주먹에서 왠지 찌릉내가 날 것 같은 기분이다.
명훈은 조금 전에 느꼈던 물컹이던 불쾌한 느낌이 지워
지지 않음을 깨달았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녀석의 옷에 비비기 시작한 것은 이
이후였다.
“아, 기분 참 찝찌름하네….”
그때 창가 쪽 모여서 싸움을 구경하던 애들이 눈에 들어
왔다.
모두가 놀란 표정이다.
아직도 상황 판단이 덜 됐는지 무슨 일이 있었냐고 서로
되물었지만, 명확한 답을 내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 눈에도 명훈이 사라졌다 나타나자 하나같이 나자빠
진 것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하튼 명훈은 자신의 싸움을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가볍
게 손을 흔들어 줬다.
그러자 여자애들의 비명소리가 찢어질 듯 들려왔다.
어떤 애들 중에선 하물며 ‘오빠~’라는 소리까지 들려왔
다.
반응이 마음에 드는 명훈이었다.
여하튼 이제 시작을 해야 했다.
처절한 스트레스 해소를 말이다.
명훈은 끙끙 앓고 있는 충열의 몸을 발로 툭툭 찼다.
“야, 엄살 그만 피워.”
엄살의 문제가 아니었지만, 분노한 충열은 고통을 견뎌
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힘줄이 곤두선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이, 개…자시익….”
“뭐라구? 잘 안 들려. 다시 말해봐~.”
명훈의 도발에 충열은 다시 입을 열려 했으나 명훈의 시
선과 행동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아대! 아대에!”
너무 성급하게 입을 열었더니 발음이 새어 나왔지만, 충
열은 생각의 겨를이 없었다.
저 괴물 같은 녀석이 같은 사내면서 치사하게 그곳을 공
격했던 것도 모자란 지 자신의 거시기를 바라보며 발을 슬
쩍 치켜 올리고 있던 것이다.
말실수하면 바로 차주겠다는 완벽한 협박이었다.
“왜? 마저 말하라니까.”
말하고 싶어도 고통 때문에 바로 말이 안나오자 답답한
충열은 눈물을 흘렸다.
정말 서글프게 울었다.
명훈은 그런 충열을 보고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
다.
어째서인지 마구 분노가 치미는 것이 우는 모습을 그칠
때까지 패주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오른 탓이다.
그래서 두말없이 까줬다.
“허어업!”
녀석의 눈이 흰자위만 보였다.
“살살 깠어. 엄살 좀 그만 부려.”
녀석의 전신이 입대신 꿈틀거리며 대답했다.
엄살이 아니라고 말이다.
“짜식. 약한 척 하기는…. 내가 거기서 느껴지는 통증을
다 낳게 해줄게 좋아?”
이게 무슨 소린가?
어떻게 그 끔찍한 통증을 완화 시킬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충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흡조차 쉬기 힘들 정도의 고통.
그 고통 때문에 반쯤 정신이 나간 충열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떻게 통증을 완화 시켜주냐가 관건이데 말이야. 내가
이런 방법을 하나 알고 있지. 이열치열이라는 단어 알아?”
“아라…끄응.”
“말이 짧긴 하지만, 좋아. 이해가 빠르니 넘어가 주지.”
순간 충열은 뭔가 끔찍한 불안감에 휩싸여 버렸다.
자신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크게 실수한 것 같은 기분이
었다.
명훈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그 불안감은 커져갔
고, 어떤 한마디가 흘러나오자 충열의 눈이 형용할 수 없
을 정도로 커졌다.
“반응이 좋군. 그래, 다시 말해줘? 이번에는 잘 들어야
해 알겠지?”
“아냐, 아냐….”
안됀다고 자신이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고통과
공포가 겸비된 다급함에 말이 헛 나오는 충열이었다.
그러나 명훈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의 성의를 무시하
지 말라는 의사표시를 보여줬다.
“아냐. 괜찮아. 그정도 수고도 못해주고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겠니?”
‘누가 친구야?!’
라고 얼굴이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가볍게 묵살해준 명훈은 말을 이었다.
“여하튼 이열치열은 더위를 열로 맞서는 거잖아? 내가
말했던 이통치통이란 통증을 다른 곳에 줌으로 그곳의 통
증을 잊게해주는 방법이지. 물론 그러한 효과를 내기 위해
서는 그곳에서 느껴지는 통증보다 강력한 통증이 다른 곳
에서 느껴져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 그래도 효과는 만점이
라구.”
바닥에 쓰러져서 그 말을 듣는 녀석들의 안색이 파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기절하여 저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애들이
부럽기까지 했다.
“제바, …바알!”
“알았어. 보채지마. 그럼 합의도 했고, 이제 슬슬 시작할
께.”
순간 충열은 명훈의 눈이 빛을 품는 듯한 착시현상을 목
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