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전설의 시작
명훈이가 들어가자 시끄럽던 교실이 잠시 고요해졌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아
서다.
‘응? 이 시대는 친구를 이렇게 반……길 리가 없잖아!
뭐야? 대체 무슨 일이 있는거냐고?’
나이는 괜히 먹은게 아니다.
그때, 선생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가 교탁을 손바닥으로
쳤다.
탕탕!
대충 20대 후반으로 보인다.
무태안경을 썼으며, 짧은 머리가 단정한 것이 인상적이
다.
선한 얼굴이 보기 좋았다.
그와의 첫 인상은 나쁜 편이 아니었다.
“자 조용히.”
다시 조용해진다.
별로 기분이 좋지 못하다.
이러다가 폭발할 것 같았다.
신경이 이곳저곳에 쓰이자 기의 흐름이 빨라졌다.
‘죽이자, 성질을 죽이자.’
참을 인(忍)자 셋이면…, 훗!
지금 성질을 죽이기에 한참 부족할 것 같다.
알고 있겠지만, 명훈 아니, 검황의 성질은 많이 더러웠
다.
그래서 백만 개 정도의 참을 인을 그렸다.
조금 참을 만 해졌다.
그때 앞에 있는 선생이 입을 열었다.
“명훈아, 몸은 괜찮니?”
“예, 선생님.”
“다행이구나. 많이 걱정했단다.”
“감사합니다.”
“그럼, 자리에 안거라. 곧 수업시작이란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자리가 어딘지….”
“아차, 부모님께 전화 받았었다.”
선생이 약간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걱정이 되신 부모님께서 명훈아가 기억을 잃었다
는 이야길 말해준 것 같았다.
그것을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이다.
“거기 4분단 뒤에서 세 번째 창가 쪽이다. 거기 앉거
라.”
명훈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곳에 갔다.
책가방을 의자에 걸었다.
그리고 한숨을 돌렸다.
왠지 모르게 짧은 시간 동안 많이 힘들었던 것이다.
선생은 출석부를 들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잠시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애들은 조용히 짝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대충 귀를 기울여 보니 대부분이 명훈 자신의 이야기였
다.
‘그런데 난 친구가 없나?’
텔레비전에서 보니 이럴 때 애들이 다가와서 말도 걸고
하던데.
‘흠….’
멀뚱히 앉아있으니 졸리다.
새벽까지 축기(畜氣)를 위해 운기(運氣)하느라 잠이 모자
란 탓이었다.
자연지기에 친화력을 높이기 위한 축기였기에 내력이 향
상됨을 크게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명훈은 알고 있었다.
친화력이 어느 지점에 도달하게 되면 물밀 듯 내력이 흘
러 들어오게 됨을 말이다.
그런데, 친화력이고 뭐고 졸리기 시작한다.
특히나 명훈의 자리는 햇살이 잘 통하는 위치다.
눈이 부셔서 커튼을 쳐놨지만, 그래도 빛은 뚫고 들어왔
다.
따끈따끈한게 몸이 노곤 거리게 만들어 줬다.
그때 아까 복도에서 만났던 산적하기 적당해 보였던 덩
어리가 다가왔다.
‘나한테 볼일이라도 있나?’
명훈은 생각했다.
학교 끝나고 보자고 하지 않았었나?
참으로 성질 급한 친구 같아 보였다.
“야, 명훈.”
“응?”
그 덩어리가 명훈을 부르는 소리에 졸린 명훈은 눈을 게
슴츠래하게 뜨고 녀석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녀석이 이를 악물고는 주먹을 들고 외쳤다.
“이 세끼가!”
드르륵.
탁!
“어어, 거기 뭐야?! 떠들지 말고 자리에 앉지 못해?!”
선생이 들어온 것이다.
“씨발.”
씹어 뱉듯이 내뱉은 말의 뜻은 몰랐다.
그래도 욕이라는 것을 느낌상 알 수 있었다.
때문에, 저 친구, 아니, 저 자식이 명훈 자신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흠….’
한참을 고민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처음 학교에 나온 날부터 사건을 만들 순 없지 않겠는
가.
수업은 한참 진행 중이었다.
뭐라고 하는지 중얼거리듯 혼자 떠드는 선생.
다른 녀석들은 모두 지들 할 짓 다하며 놀고 있었다.
하지만, 선생은 그런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다.
마치, ‘내 수업을 듣지 않으면서 대학에 갈 수 있을거라
생각하나?’라고 말하는 듯한 오라가 느껴졌다.
그럼 뭐하겠는가?
혼잣말 내뱉듯 중얼거리며 칠판에 빽빽이 글자를 써대기
만 하는 선생.
선생의 수업을 듣는 녀석들은 두세 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수업인가 교과서를 보니 국사란다.
그때 뒷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드르르륵.
선생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거기 능구렁이처럼 슬그머니 기어오는 녀석 앞으로 튀
어나왓!”
그러자 뒤에서 일어나더니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헤헤. 선생님. 늦잠을 자느라구….”
놀랍게도 여자애였다.
대충 172정도로 명훈정도 키에 예쁘장한 얼굴이다.
분홍입술이 도드라져 보이는 미인형이었다.
다만 약간 중성적으로 보이는 흠이 있었다.
그것도 나름대로 매력적이긴 했다.
선생은 짐작이라도 했다는 듯이 한마디 내뱉었다.
“그렇다고 다 큰 처녀가 그렇게 기어 다녀서 쓰겠나? 어
서 가서 자리에 앉아라.”
“히히, 죄송해요.”
그녀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명훈이의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명훈의 옆자리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명훈을 보고는 짐짓 놀란 표정
을 지었다.
“어? 명훈아. 몸은 다 나았냐?”
“누, 누구?”
당혹감에 명훈은 자신도 모르게 되물어 버렸다.
“얼래? 기억이라도 잊은 거야?”
명훈이가 잘 모르겠다는 듯 얼떨떨하게 바라봤다.
그녀의 표정이 희한하게 변했다.
“흠, 심각한데?”
그녀는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는 듯 보였다.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난 현민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잊지 말도록 해. 알겠
지?”
“어, …응.”
명훈의 어설픈 대답이 마음에 들은 건가?
씨익 웃으며 명훈의 등을 쌔게 두드렸다.
팡! 팡!
“윽.”
“여하튼 숫기 없는 것은 여전하구나. 그래도 이번엔 대
답이라도 하다니. 마음에 들었다. 하하하!”
그때 앞에서 선생의 목소리가 다시 날아왔다.
“시끄럽다! 현민이 이 녀석! 오자마자 잡담이냐?!”
“앗!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아~.”
“킥킥킥.”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아니 오히려
그 상황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곧 자리에 앉아서는 다시 명훈에게 수다를 떨기 시작했
다.
떠드는 것을 좋아하는 쾌활한 성격으로 보인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선생들의 험담이 태반이었다.
“어우, 저 선생 저질이야. 수업시간에 누가 떠들던 신경
도 쓰지 않고 혼자 중얼거리는 거. 변태라는 소문이야.”
이미 짐작은 했지만, 잠시 선생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말에 왠지 모르게 수긍하고 말았다.
“그런데 너 잘 지냈어? 많이 다쳤다고 들었는데, 그런데
내가 말이지….”
주절주절.
혼자 말하고 혼자 웃는 성격인가 보다.
신이 나서 말하다가 갑자기 혼자 낄낄거리며 명훈의 어
깨를 툭툭 쳐댔다.
첫인상과 같이 남자 같은 성격의 그녀였다.
그러고 보니 깨끗한 커트.
화장기 없는 시원한 얼굴.
이름까지도.
얼굴만 이쁘장하기만 한 여장취미의 사내자식이 아닌가,
하고 잠시 생각의 시간을 가진 명훈이었다.
그래도 기분이 신선했다.
등을 노리고 칼질 하는 녀석들은 많았지만 전생엔 누가
감히 명훈, 검황의 등을 칠 수 있었겠는가?
이해하기 힘든 포만감이 느껴졌다.
왠지 마음이 푸근해졌다.
‘이 감정, 마음에 드는 군.’
명훈이가 현민을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뭐, 뭐냐? 너 정신 한번 잃고 나더니 상당히 느끼해졌
다?”
그녀의 한마디에 명훈이 자신도 모르게 다시 고개를 돌
렸다.
‘서, 설마. 내가 저런 어린애한테….’
심장이 두근거렸다.
믿어지지 않았다.
명훈이가 고개를 숙이자 의소침해진 듯 보였었나 보다.
그녀가 다시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캬하하. 장난이야. 그래도 역시나 쑥맥은 쑥맥인가 보
다. 그러니 애들한테 맞고 다니지.”
“응?”
명훈이 굳었다.
그리곤, 순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움직임이 번개와 같았으리라.
그녀가 흠칫 놀라는 눈빛으로 명훈을 마주보았다.
‘내가? 맞아? 누구한테? 설마 명훈이 이 녀석 맞으면서
이곳에 다녔던 거야?’
명훈은 놀라서 그녀에게 물었다.
“뭐, 명훈이 이 녀석이 맞고 다녔다고?!”
명훈은 자신도 모르게 언성이 올라갔다.
잠시 교실이 잠잠해졌다.
모든 시선이 소리친 명훈에게 쏠렸다.
하지만, 정작 명훈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의 커다랗게 떠진 눈망울이 흔들렸다.
마치 ‘내가 왜 명훈이 녀석 따위에게 쫄은거지?’라는 듯
이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순간 마음속에서 살기라 흘러나왔다.
살기란 육체의 강함과 다른 것이다.
거의 200여년에 삶을 살며 만들어낸 살기.
일반인들이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몸 밖으로 분출 될 뻔했다.
명훈은 가까스로 갈무리했다.
현 육신의 전 주인이었던 명훈.
이 녀석이 어떤 생활을 하고 살았는지 약간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너 이 자식 수업시간에 뭐하는 짓이야! 수업을 듣기 싫
으면 안들으면 되지 왜 떠드냔 말이야!”
선생의 얼굴.
울그락 불그락 거린다.
화가 치밀어 올라 참지 못하는 듯 싶었다.
그렇다고 매를 들지는 못했다.
아마도 명훈이가 요양을 마치고 방금 돌아 온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듯 싶었다.
“이번만 넘어가 주마. 조용히 앉아있어!”
한참 한숨을 내쉬던 선생.
아직 분이 안 풀렸는지 교탁을 잡고 기대듯 섰다.
명훈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실수한 것을 깨달았다.
‘아차!’
살기를 갈무리하기 전에 약간 흘렸던가 보다.
명훈의 마음에 들던 여인.
현민의 얼굴이 경악에 질린 표정이다.
‘이거 실수했군. 어떻게 무마해야 할 텐데.’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지면 안된다.
주변에서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
다.
명훈은 진기를 손끝으로 모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현민이를 불렀다.
“현민아.”
아직도 넋이 나간 표정이다.
이름을 부르며 자연스럽게 어깨를 만질 수 있었다.
같은 분단의 애들이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평소의 명훈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라는 짜증이 샘솟는
그런 표정들이다.
여하튼, 명훈은 그런 것들을 무시하고 계획대로 진행했
다.
손끝의 진기를 괜히 모은 것은 아니다.
그녀의 몸 안에 부드럽게 흘려보내며 긴장된 마음을 풀
어주기 위해 운행시켰다.
아직 내력이 부족하기 때문인가?
약간 시간이 지나서야 효과가 나타났다.
파리했던 현민의 안색이 돌아오기 시작한 탓이다.
“휴….”
이제 정신이 돌아왔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아? 왜 그래?”
현민이 명훈을 희안하게 쳐다봤다.
한참을 바라보는데 되려 명훈이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무슨 일 있어?”
명훈이가 모르는 척 그녀에게 말을 꺼냈다.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참 고민하더니 뒤늦게 입을 열었다.
“네가 호랑이처럼 보였다면 믿어져?”
명훈이가 무슨 쌩뚱맞은 소리냐는 듯 바라보았다.
그제야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하듯 말을 꺼냈
다.
“그렇지…. 내가 헛 거를 본거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책상에 팔을 포개어 머리를 수그
렸다.
“괜찮아?”
명훈의 물음에 한참 대답이 없던 그녀.
갑자기 처음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명훈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무리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명훈 본인이 지니고 있는 살기는 보통사람의 심기에 무
리를 줄 정도란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자신이 진기로 몸을 다스려 주긴 했지만, 그것은 상처를
약간 보듬어 준거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응, 괜찮아. 내가 오늘 잠을 설쳤더니 헛 걸 봤나봐.”
“다행이다. 그런데 물어 볼게 있는데….”
“뭔데?”
“아니, 우선 내가 밝힐게 있어. 내가 사고가 있고 난 후
에 기억을 잃은 상태야.”
그녀의 표정이 단번에 굳어 버렸다.
혹시나 하고 있던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인지 많이 놀란 것 같
았다.
“그랬구나. 몰랐어. 난 네가 내 이름을 모른다고 한 게
장난이라 생각했거든.”
“이해해. 그런데, 난 내가 거의 죽을 뻔했었음에도 왜
죽을 뻔 했었는지를 알지 못해.”
그 순간 그녀의 얼굴에 갈망이 어림을 확인했다.
뭔가를 알고 있으리라.
명훈은 보체기 시작했다.
어차피 다른 애들에게 물어보려 했던 거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자신에게 친근하게 다가온 애한테 물
어보는 것이 빠를 거라 생각한 탓이다.
“혹시 나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게 없니?”
그녀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직도 갈피를 못 정한 것
같았다.
“괜찮아. 말해줘.”
“…….”
“부모님조차 나에게 숨기는 일이 뭔지 알고 싶어서 그
래.”
조금만 더 흔들면 입을 열 것 같다는 느낌이다.
잠시 후 입을 열었는데, 그녀가 나에게 해준 말은 충격
이상의 것이었다.
명훈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사이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분노 때문에 온몸의 근육이 심한경련을 일으킨 것이다.
“넌 우리학교 왕따였어. 특히 충원이라는 녀석하고 그
패거리가 너를 폭행하고 삥 뜯고 다닌다는 사실을 우리 학
교 학생이면 모두 알고 있어. 넌 그걸 참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한거고….”
그녀의 말을 간추리면 대충 이런 이야기였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필요 없었다.
이 정도만으로 충분했다.
명훈의 분노를 태울 명분은 말이다.
분노를 잠시 안으로 갈무리하며 하나 확실하게 할 것이
있어서 되물어 보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하나 물어볼게 있는데, 혹시 충원이라
는 녀석이 저기 2분단 맨 뒷줄에 앉아 있는 돼지새끼니?”
그녀가 명훈의 순한 얼굴에서 흘러나온 험악한 말투에
놀랐는지 다시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개자식. 방과 후에 보자고 했었나? 물론, 좋은 뜻은 아
닐 테지. 좋아. 방과 후는 너무 늦을 거 같으니 곧 내가
겪었던 것들을 모두 되돌려 주마.’
명훈은 자신도 모르게 이마에 주름을 잡았다.
그때 현민이가 의뭉스러운 말투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 정말 명훈이가 맞니?”
“응 맞아.”
의문이 가득한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해줬다.
“내가 아는 명훈이는 절대 이렇지 않은데….”
그녀가 말을 흐렸다.
명훈은 과거의 자신이 그녀의 눈에 어떻게 보였었는지를
알고 싶어졌다.
“내 성격은 어땠는데? 네가 알고 있던 나를 이야기해줄
래?”
그녀는 명훈에게 술술 이야기했다.
지금에야 생각해보니 명훈이 흘렸던 살기가 그녀의 심령
을 크게 건드린 듯싶었다.
약간의 최면상태에 빠진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왕따 당하던 명훈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해줄 이유가 없을 테니 말이다.
처음의 모습은 그냥 불쌍한 녀석이니 나라도 도움을 줘
야지의 마음이었다면, 지금의 모습은 명훈에게 놀라 심령
을 제압당했었기에 무의식중에 명훈이가 묻는 것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여하튼 그 덕분에 명훈은 그녀에게 많은 것을 주워들을
수 있었다.
학교에서 명훈이가 과거에 당했던 일들을 물어보았다.
그녀는 성실하게 아는 대로 말해줬다.
“고마워.”
“아냐. 그런데 나 피곤하다. 왜 이러지?”
명훈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유를 짐작했기 때문이다.
심령이 흔들렸는데 멀쩡하면 초인일 것이다.
부작용이 지금 나타나는 것 같았다.
“그래 좀 자라. 오늘 잠 못 잤다며.”
명훈이가 말하기 전에 이미 현민이는 잠에 빠졌다.
입안이 거칠어지며 씁쓸해졌다.
‘그랬구나. 녀석. 참지 못하고 자살을 한거구나. 죽어서
혼이 이탈한 명훈이 녀석 대신에 내 혼이 자리를 잡은거
고….’
검황은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육신의 원래 주인인 명훈
이 녀석에게 맹세했다.
‘널 위해서 네가 당했던 그대로 복수해주마.’
주먹을 쥐었다.
작고 단련이 안 된 주먹이 보인다.
이 주먹으로는 큰 파괴력을 낼 수 없다.
아직 불순물이 가득한 경락들.
기의 흐름역시 원활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교실에서는 무공을 익힌 사람이 보이
지 않는다.
충원이라는 녀석.
허장성세일 뿐이다.
몸만 클 뿐이지,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그런 녀석들이 세 명 네 명이 되면 지금 상태에
선 위험했다.
현제 검황은 이론만 빠삭할 뿐이다.
아무리 고강한 무공을 알고 있어도, 그것을 사용할 내력
은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 해도 보통 사람들보다 유리한 점은 분명 많았다.
내력의 분배를 통한 빠른 움직임과, 모든 사혈의 위치를
알고 있었기에 고통을 약간의 타격만으로도 고통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설마 명색이 검황이 당할리야 있겠는가?
고금제일인이란 이름.
방바닥에 뒹굴며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이 허약한 몸을 볼 때면 불안감이 없지 않아 있
다.
깨달음으로 내력을 올릴 수 있다?
뭐, 빈말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막힌 혈도를 타통 시켜
줄 정도의 내력은 필요했다.
처음이 힘들 뿐이지 한 경지만 넘어서면 현경의 경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넘어 설 수 있는 것이다.
다른 건 둘째 치고 이 몸뚱이를 쓸모 있게 변화 시켜야
하는데, 허약한 근골이나, 큰 발전을 기대조차 할 수 없는
반응신경을 내가 원하는 대로 되살리기 위해선 환골탈퇴가
필요했다.
‘최소 현경에 들어선 후에야 가능한데, 현경에나 올라
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어느 세월에 올린다냐….’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나 수업이 끝났다.
선생이 아무런 인사도 없이 교실 밖을 나가자 애들이 떠
들 썩 해졌다.
명훈은 깊은 명상에 빠져 있었기에 그 사실을 깨닫지 못
했다.
하지만 명상에서 눈을 뜰 수 밖에 없었다.
약간의 살기가 느껴진 탓이다.
분명 자신을 향한 것이리라.
평소 검황을 암살하려던 녀석들이 하두 많아서 자연적으
로 살기에 민감해져 버린 지 오래다.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충원이라는 돼지녀석이
명훈에게 다시 걸어오고 있었다.
아침에 명훈에게 위협 아닌 위협을 줬던 반장이라는 녀
석.
저편에서 멀뚱히 명훈을 보며 웃고 있었다.
자신은 상관이 없다는 모습인데, 검황은 성격상 저런 녀
석을 싫어한다.
황궁에 여자도 남자도 아닌 녀석들 같은 녀석.
입만 살아있는 녀석.
돈으로 뭐든 가능하다고 설치는 녀석.
뒤에서 꽁수나 치는 게 사내가 할 짓인가?
사내가 왜 사내인가?
두 주먹이 있기에 사내가 아닌가?
주먹으로 치고 박으며 자신의 것을 지키는 것이 사내가
아닌가.
남자는 주먹인 것이다.
그때 충원이 녀석이 육중한 몸을 쿵쿵거리며 달려왔다.
그리고는 앉아있는 명훈에게 날아차기를 하듯 앞발을 내
밀며 점프하는 것이었다.
‘허참.’
어설픈 공격이었지만, 난감했다.
책상과 책상이 좌우를 막고 있어서 피하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공중으로 신형을 띄우기에도 책상에 의자를 넣은 채로
앉아 있었기에 그것도 여의치 못한 상황이다.
경신술을 사용하고 싶어도 내력이 달리는 상황이라 경신
술을 펼치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방어를 했다.
퍽!
우당탕탕!
책상이 뒤집어지며 난 바닥을 구를 수 밖에 없었다.
“꺄아아악!”
여자애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와우!”
남자애새끼들의 함성도 들렸다.
난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허, 허….’
저런 녀석 따위에게 기습이나 당하고, 잠시 동안 검황의
자리를 자신이 잠자다가 얻었나 생각하게 되었다.
바닥을 뒹굴다가 자리에서 곧바로 일어났다.
다행인 것은 녀석이 바로 공격하지 않았다는 거.
낙법을 하긴 했는데, 책상 모서리에 옆구리를 찌였는지
상당히 욱신거렸다.
녀석의 몸집이 컷기 때문에 어설픈 공격이었음에도 파괴
력은 보통 이상이었다.
아니다.
검황은 명훈이 녀석이 너무나도 허약하기 때문이라고 생
각을 바꾸게 되었다.
찌였던 부위의 근육이 놀라서 경련이 일어나는 것이었
다.
기가 막혔다.
허약해도 정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 이죽거리며 충원이 입을 열었다.
“이 개자식아. 죽고 싶어? 누가 수업시간에 떠들래! 엉
?!”
꼭 공부 못하는 놈들이 저런거 따지더라구.
그건 과거나 현재나 다를바가 없는 것 같았다.
‘허허, 이놈 봐라? 누구한테 견자가 어쩌고저쩌고 떠드
는 거야? 그리고 누가 누굴 죽여?’
명훈은 돼지 녀석이 자신의 기막히게 해서 주화입마로
돌아가게 만들 작정이냥, 신이 나서 떠들어 대는 것을 한
참 멀그러니 바라보았다.
그러자 더 열 받은 표정을 지으며 주먹을 치켜들며 달려
왔다.
“이 새끼 너 같은 새끼는 방과 후까지 볼 필요 없어.”
그 말에 명훈은 자세를 잡고 피식 웃었다.
‘그거 하난 나와 같은 생각이군.’
그때 뒷문으로 눈에 익은 두 녀석이 들어왔다.
조금 전 복도에서 반장이란 새끼와 돼지 충원이 녀석이
랑 함께 명훈을 반갑게 둘러싸던 놈들이다.
“뭐야? 무슨 일이야?”
그 녀석들이 주변의 애들한테 묻자, 반 애들이 신난 표
정으로 대답해줬다.
“충원이랑 명훈이가 맞짱 떠.”
“뭐? 맞짱?”
“푸하하하! 일방적인 구타가 아니구?”
“킥킥킥킥.”
흠, 저 녀석들 중에 옳은 소리하는 놈도 있었다.
이것은 일방적인 구타가 될거다.
물론 애들이 상상하는 것과 반대로 명훈이 자신이 충원
이 녀석을 잡을 테지만 말이다.
충원이 녀석이 주딩이를 주절거리며 주먹을 휘둘러 왔
다.
“이 자식이. 한번 죽다 살아난 게 훈장이야? 또 죽여줄
까? 그럼 훈장이 두개 되겠군.”
충원이 녀석의 말에 주변에서 깔깔거린다.
불안한 눈이나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사람은 별로 없어보
였다.
‘이 자식 정말 학교를 어떻게 다닌거야?!’
열통 터졌다.
지금 내력만 어느 정도 축적되었다면 이반에 있는 모든
녀석들을 가볍게 밟아 줬으리라.
다시 주먹이 얼굴로 날아왔다.
명훈은 슬쩍 다리를 틀어 녀석의 주먹을 가소롭다는 표
정으로 가볍게 피해줬다.
‘느려. 느려.’
녀석이 성난 멧돼지처럼 씩씩거린다.
명훈도 같이 씩씩거려줬다.
놀리는 거라 생각했는지 다시 개자식이 어쩌고 하며 달
려들기 시작했다.
놀리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놀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내력을 전신에 흘려보냈다.
무작정 날아오는 주먹.
이제 웃기지도 않는다.
팔이 쭉 뻗어지는 순간 허리를 낮췄다.
녀석의 놀라는 얼굴이 보였다.
쭉 뻗은 팔꿈치 관절을 노렸다.
명훈은 주먹을 위로 올려치며 숙였던 몸을 일으켰다.
퍼억!
“끄어어어억!”
주변에 모든 녀석들이 놀라는 표정이었다.
뚝 하는 소리가 들린 것을 보니 뼈에 금이 갔음을 짐작
할 수 있었다.
녀석이 팔꿈치를 부여 잡는게 보였다.
명훈은 그대로 발끝을 왼쪽으로 틀어서 녀석의 턱을 가
볍게 날려줬다.
“케헥!”
녀석이 반대 책상으로 날아갔다.
우당탕탕!
아픈지 바닥에 자빠진 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웃음이 세어 나온다.
이정도 밖에 안 되는 녀석이 자신을 죽여 살려 했다는게
웃기게만 느껴졌다.
솔직히 이것도 살살 때린 것이다.
심하게 치면 턱이 나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적당히 힘을 풀어 갈긴 것이다.
이번 기회가 너무 빨리 사라지기 때문이다.
녀석은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아파서 고통스러운 표정과 당혹감에 놀란 표정이 있었는
데, 그 속에 아직 분노가 남아 있었다.
‘씨발 쪽팔려 죽겠네.’ 라고 써있는 것이 읽어질 정도였
다.
그래서 명훈이가 말해줬다.
“쪽팔려 죽겠네? 그럼 죽어야지. 킥킥.”
“이 개자식이. 운 좋게 한방 먹인 것 하나로 나를 놀
려?”
분노하면 통증이 완화된다.
녀석 역시 고통을 분노 속에 묻어버렸는지 거뜬하게 일
어나 몸을 던졌다.
명훈에겐 고마울 뿐이다.
조금 더 팔팔하게 있어주길 바랄 뿐이다.
그래야 조금 더 팰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충원이 패거리 녀석들이 나에게 달려왔다.
“너흰 뭐냐?”
명훈이의 물음에 녀석들은 피식거렸다.
“너 잡으러온 저승사자다 개새야.”
이미 저승사자를 직접 본 명훈으로서는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녀석 다 키는 고만고만 했다.
그래도 명훈이보다는 컸다.
하나는 빼빼마른 스타일이고, 하나는 건장한 스타일이라
고 할 수 있었다.
명훈은 이름을 아직 몰랐기에 녀석들에게 각각 뼈다구와
호구라 이름을 지어주었다.
호구란 무도에서 대련 할 때 방어구의 이름이다.
여하튼 그 사실을 녀석들이 알았다면 분통이 터졌으리
라.
“킥킥. 뼈다귀, 호구라. 난 참 작명쎈쓰가 뛰어나단 말이
야.”
스스로 만족하는 명훈이었다.
그때 뼈다귀가 발을 뻗어 날아 차기를 시도했다.
그래서 가볍게 피해준 후 녀석이 착지 했을 때 종아리를
강하게 걷어차 주었다.
팍!
“아악!”
녀석의 비명이 기분 좋게 흘러나왔다.
명훈으로서는 감상해 주고 싶었지만, 호구녀석이 의자를
들고 집어 던진 상태였기에 아쉬움을 접고 같이 의자를 들
어 호구녀석에게 던져줬다.
의자는 허공에서 서로 부딪힌 후 바닥에 널부러졌다.
“이 개자식이!”
녀석은 성급히 교실 뒤쪽의 청소도구함으로 달려가더니
걸레가 떨어진 마대자루를 들고 명훈 앞으로 달려왔다.
슬쩍 뼈다귀를 보았다.
아픈지 아직도 다리를 붙잡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녀석이 지금 아무리 자존심 세워서 일어나고 싶어도 고
통 때문에 한동안은 움직이지도 못할 것이다.
서야지 공격을 하지 않겠는가.
명훈은 적당히 자리를 잡고 돼지 충원이 녀석과 호구 녀
석을 견제했다.
호구가 먼저 마대자루를 휘둘렀다.
명훈은 의자를 하나 들어 마대자루 공격을 막고 그대로
의자를 녀석에게 던져줬다.
녀석은 그것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로 그때 교실의 앞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일갈을 질렀
다.
“이 자식들 지금 뭐하는 짓들이야! 충원이 명호, 성운이
이녀석들! 또 사고를 일으켜?!”
체육복을 입고 있는 건장한 사내다.
아마도 싸운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체육 선생일 것이
다.
그런데 상황이 약간 묘하게 흘러가는 것을 보고 고개를
꺄웃 거렸다.
아마도 이 녀석들이 사고를 쳤으면 상대방이 피해자가
될 것이 분명했는데, 이곳의 분위기가 약간 이상했던 것이
다.
여하튼 호구와 충원이 녀석은 체육선생을 보고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아유, 씨발….”
“뭐? 씨발? 충원이 이 새끼 지금 뭐라고 했어?!”
“아휴….”
충원이가 짧은 한숨을 내쉰다.
그때 명훈이가 체육선생을 담담하게 마주했다.
“아저씨는 잠시 저기 계시죠?”
“뭐, 뭐? 뭐라고 지껄였냐?!”
그때 명훈이의 얼굴을 처음 본 체육 선생.
“어라, 너 명훈이가 아니냐.”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애들 싸움이니 잠시만 피해
주시죠? 선생 어르신.”
교실이 싸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명훈의 정중한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체육 선생에게는 비꼬는 것처럼 들렸다.
그렇지 않아도 쌓여 있었다.
명훈이 녀석이 자살소동을 일으켜 휘둘린 탓이었다.
그런데 명훈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건드린 것이다.
결국 울분이 폭발했다.
“네 녀석 때문에 이 학교가, 얼마나 휘둘렸는지 알고 하
는 소리냐! 내가 그걸 무마하기 위해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몰라서 하는 소리야?! 이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체육 선생은 몽둥이를 휘두를 자세를 취하며 명훈에게
성큼 다가갔다.
이제 다 나아보였다.
물론 아직은 선생 스스로가 조심해야 할 기간이었지만,
분노로 눈이 뒤집힌 선생은 그런 사소한 것을 생각할 여력
이 부족했다.
그 순간만큼은 충원이 녀석과 호구 녀석이 움찔했다.
저 체육 선생, 아니, 발정난 개차반 새끼가 저렇게 화를
내면 자신들에게 좋은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체육선생이 분을 참지 못하고 명훈에게 몽둥일 휘둘렀
다.
그때, 명훈이가 체육선생의 몽둥일 피하고 그대로 팔꿈
치고 배때지를 쑤셔 박았다.
푸억!
북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체육 선생이 눈을 뒤집고 기절했다.
그것을 본 교실안의 학생들이 경악했다.
설마 선생을 팰 거라 누가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휴, 이제 시끄러운 게 사라졌군. 그럼 슬슬 다시 시작
해 볼까?”
선생을 때려눕힌 명훈이 태연하게 자세를 잡고 자신들을
바라보자 뭔가 이건 아닌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싸우지 않을 수도 없는 분위기였다.
명훈이 본격적으로 움직이자 충원과 호구는 당혹감을 표
출했다.
그렇지만, 충원은 자신들이 질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팔을 다친 것도 재수가 없어서지 결코 명훈에게 당해서
그런 아니라고 믿었다.
선생이 기절 한 것도 재수가 없어서 쓰러진거라 생각하
고 다시 생각을 다잡았다.
설마 만년 왕따이며, 자신들의 완벽한 밥인 명훈에게 자
신이 지겠는가?
만약에라도 진다면 쪽팔려서 학교엔 두 번 다시 나오지
도 못할 것이다.
호구 녀석이 마대자루를 명훈에게 던졌다.
명훈은 당연하다는 듯 가볍게 피해줬다.
교탁 앞으로 날아간 마대자루는 벽에 부딪히고 덩그랑거
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씨발 새끼. 넌 뒤졌어!”
호구 녀석이 책상 위를 버팀대 삼아 허공으로 박차고 올
랐다.
그리곤 명훈을 향해 다릴 휘둘었다.
명훈은 그런 호구 녀석에게 가볍게 의자를 던져줬다.
퍽!
콰당! 쿠당탕탕!
호구녀석은 뼈다귀녀석이 있는 자리로 날아가 그대로 바
닥에 자빠진 체 끙끙 앓기 시작했다.
뼈다귀 녀석도 충격이 상당한지 온몸을 부여잡은 체 신
음을 흘렸다.
그런 호구와 뼈다귀를 보며 명훈이 한마디 나직하게 내
뱉어줬다.
“큭큭. 너희들은 꼼짝 말고 잠시 기다려. 아직 너희들은
아니니까. 그리고 쥐새끼. 네 녀석도.”
교실 구석에서 애들과 같이 숨을 죽인 체 내 행동을 지
켜보는 반장에게 한 말이다.
반장은 흠칫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상당히 귀여워 보였다.
여기저기 어떻게 패줄까를 생각하며 넘쳐흐르는 기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명훈의 시선이 충원에게 돌아가는 순간 충원의 주먹이
날아오는 중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좀 맞아라!”
미꾸라지처럼 이리 쏙 저리 쏙 피하는 명훈을 보고 충원
은 열불이 날 지경이었다.
그때 명훈이 말했다.
“다 휘둘렀냐?”
“뭐?”
당혹감에 잠시 멈칫했는데, 어느 순간 눈앞에 명훈이 나
타나서는 충원이의 복부를 주먹으로 후벼쳤다.
선생에게 보여줬던 바로 그 기술이었다.
‘칠절환영보(七絶幻影步)라고 하는 기술이지.’
내력이 부족하여 펼쳐낸 모습.
명훈 자신이 평가하기엔 상당히 어설펐다.
그러나 이들에게 사용하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커…허어어어억….”
복부에 파고 들어간 것처럼 보일 정도의 강 펀치였다.
비명도 나오지 않을 정도의 고통을 느꼈다.
내장이 뒤집힌 느낌이다.
아니, 장이 터진 것 같았다.
“이제 시작이야 씹새야. 엄살피우지마.”
자연스럽게 욕을 내뱉는 명훈이.
그세 들었던 풍월을 내 뱉은 것이었다.
“자, 이건 너에게 맞았던 명훈이의 몫!”
말과 동시에 배를 움켜쥐고 있던 충원이의 안면을 손바
닥으로 후려쳤다.
쫘악!
“어어어억!”
“이건 너에게 삥 뜯겼던 명훈이의 몫!”
“악!”
이번에는 발로 정강이를 걷어 쳤다.
“이건 너에게 괴로움을 참다못해 자살을 시도한 명훈이
의 몫!”
“크헉!”
반대 정강이를 마저 까니 바닥에 나자빠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며 구타를 시작
했다.
“이건 너에게 밟혀죽은 개미의 몫. 이건 자다가 네가 실
수로 삼켜 죽은 파리의 몫. 이건 자던 네 뒤척임에 찌부
되어 죽은 바퀴벌레의 몫. 이건… 이건… 이건….”
한대 팰 때마다 이것 저것 나열하던 명훈.
결국엔,
“그냥 죽어라. 네 놈이 살아있는 게 가장 큰 죽을 죄다!
죽어라. 죽어!”
퍽! 퍽! 퍽!
“커허어어어어어억….”
아픈 곳이란 아픈 곳은 골라서 패기 시작했다.
특히 급소 주위를 공략하며 기절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야 조금 더 팰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내력도 배제했다.
죽이면 안됐기 때문이다.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괴롭힐 생각인데 이렇게 허탈하게
죽어서는 안됐기 때문이다.
“자, 이제 마무리로….”
“꺼어어어. 사, 사…려어줘어어…….”
명훈은 무슨 시답잖은 소리냐며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
줬다.
“그게 무슨 섭섭한 말이야. 그래도 마무리는 맞아야지.
안 그래? 아까 달려와서 잘도 걷어차더구만.”
“…미…미아안…. 케륵!”
녀석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
했다.
이미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녀석의 모습.
처량 맞다.
녀석이 이제는 입가에 거품까지 물기 시작한 것이 보인
다.
녀석의 얼굴에서 분노는 어느세 사라지고 없었다.
미친 듯이 맞다보니 어느 센가부터 분노가 있을 자리에
공포가 주인행세를 시작한 것이다.
충현은 무서웠다.
이렇게 맞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이다.
이러다 미쳐 버릴 것 같아 겁이 났다.
자신이 과거에 어째서 명훈이를 괴롭혔었는지 과거의 자
신을 만나 패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가 된지 오래였다.
“아, 아프로, 아…, 아 그러께에에….”
바람 빠지는 쉰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 명훈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기절도 못하게 팬 자신이 아닌가.
지금까지 얼마나 아팠을 까.
…의 문제로 가슴이 아픈 것이 아니다.
이제 더 이상 못 팰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시리도록 말이다.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았다.
“여하튼 마무리는 지어야지.”
“아…, 아무이…?”
“그래. 마무리. 아직 정신이 멀쩡한 것을 보니 한대 정
도는 더 맞아도 될 것 같네.”
녀석이 명훈의 한마디에 눈을 뒤집으로 하고 있었다.
극도의 공포감 때문이었다.
“이봐, 이럼 안돼. 네 죄 몫은 듣고 맞아야지. 설마 기절
했다고 안팰거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
녀석에게 반응이 없었다.
슬쩍 맥을 짚는 명훈.
“흠…. 뭐, 아직 정신을 안 잃었군. 일부러 잃은 척하다
니 비열한거 아냐?”
웃으며 하는 그 한마디에 교실 안에 있던 아이들이 경악
어린 표정을 지었다.
누구도 그런 명훈을 말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선생도 패서 기절시킨 녀석이다.
거기다가 무지막지한 실력을 본 상태였다.
그것도 모자라 사람을 개처럼 패는 모습까지 봤다.
누가 겁이 나서 말이나 걸 수 있겠는가?
솔직히 반애들 중에는 과거에 명훈이를 괴롭혔던 녀석들
이 태반이었다.
착한 명훈이만 당한 것도 사실이고, 그중 가장 악질적으
로 괴롭혔던 충원이다.
결코 말릴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때 충원이의 몸이 늘어진 것처럼 보였다.
“응? 진짜 기절했네. …아쉽군.”
그 한마디에 반 아이들 가슴에 차가운 바람이 스며든 듯
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명훈이의 차가운 목소리가
비수처럼 교실에 있는 아이들의 가슴에 꽂혔다.
“아, 그리고 너희들의 죄는 내가 알아보고 그대로 돌려
줄거다. 기대해라. 아직 몰라서 그냥 넘어가는거지, 결코
그냥 넘길 생각없다. 알아둬라.”
그렇게 등을 돌리는 명훈.
애들은 등교거부를 생각하고 있었다.
학교를 때려치면 때려쳤지 저렇게 개맞듯이 맞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바로 그때 다시 애들을 보는 명훈.
“아참, 이 말을 못했군. 혹시나 학교에 안나올 생각이면
더 각오해라. 학생기록부를 뒤져서라도 찾아가서 패줄테니
말이다. 알겠지?”
명훈이 방긋 웃는 모습에 애들은 꽁꽁 얼어 붙은체 생각
을 수정해야만 했다.
녀석을 피하는 방법은 해외로 이주하는 방법뿐이라고 말
이다.
그때 애들은 저 멀리서 아련하게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커지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