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 담소광 학교가다 (3/6)

2. 담소광 학교가다 

이명훈. 아니, 담소광. 

암울한 감정이 물밀 듯 몰려왔다. 

정신이 멍했다. 

자신이 죽었었다는 것도 믿기가 어려운 판국이었다. 

하물며 다른 사람의 몸 안에 들어왔다니.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었다. 

상황을 다시 회상하여 보자. 

부모로 보이는 남녀가 다가왔다. 

그리고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이는 열 여덞이고, 이름은 이명훈이란다. 

이게 무슨 개소리냐고 하늘을 향해 외치고 싶었다. 

처음 정신을 차렸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듯 행동했다. 

사실, 아무것도 몰랐다. 

멀뚱히 두리번거렸다. 

그게 이상해 보였나 보다. 

솔직히 이상한 행동을 한 것은 사실이다. 

곁에 있던 사내와 여인이 등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하얀 옷을 입고 있는 새치가 가득한 중년인이 

근엄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의사님.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사내가 말하자, 

“기억상실인 것 같군요.” 

“아이고, 명운이 이 녀석아!” 

낮선 여인이었지만, 자신의 가슴에 안겨 통곡 하는 모습

을 보자 어째서인지 코끝이 찡했다. 

그때 사내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다시 기억을 찾을 수는 없는 건가요?” 

“조금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이번 주가 고비라고 생각 

되는 군요. 그러나 기억을 찾지 못할 수도 있으니 마음을 

다잡고 계십시오.” 

여인의 눈가에 물기가 자옥하게 깔렸다. 

담소광의 가슴이 미어진다. 

담소광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믿기지 않는 상황을 정리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동경(銅鏡). 동경 좀….” 

다른 세상의 말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듣고 이해하

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그것도 모자란지 자신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타국어가 흘

러나왔지만, 담소광은 크게 인지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을 하듯 했기 때문이다. 

“동경? …거울말이냐?” 

아버지로 보이는 사내가 눈치 빠르게 담소광의 말을 이

해하곤 거울을 가져다주었다. 

정신에 문제가 있으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

다. 

거울을 보고야 정말 자신 다른 사람의 몸으로 들어왔다

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자 허망함에 한숨만 흘러나왔다. 

완성되어진 자신의 완벽한 육체에 대한 그리움만 몽실몽

실 피어날 뿐이었다. 

그러나 이왕 이렇게 된 것 어쩔 수 없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거 수긍하고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은 것

이다. 

참으로 단념이 빠른 검황이었다. 

지랄 같이 단순한 성격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솔직히 담소광은 과거부터 귀찮은 것을 싫어했다. 

자신이 쫓던 색마 녀석도 쫓다가 귀찮아서 포기한 일화

는 뜬 소문이 아닌 사실이었던 것이다. 

담소광의 수하들이 그 사실을 무마하기 위해 얼마나 동

분서주 했는지 안 봐도 삼천리다. 

2. 담소광 학교가다 

담소광은 운기를 해보고자 살며시 눈을 감았다. 

텅 빈 단전만이 허허하게 느껴질 뿐이다.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 줘도 써먹지 못할 몸. 

자신의 몸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갑갑함에 한숨을 흘렸

다. 

그러나 자신이 누군가? 

검황이었다. 

검황 담소광이었다. 

감히 넘볼 자가 없었던, 유일무이한 경지에 오른 생사경

의 고수였다. 

이미 모든 깨달음과 무리가 자신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

다. 

늦어도 3년이면 자신의 모든 무리를 소화하여 최소 자

신이 죽기 전에 이뤘던 경지의 1할을 되찾을 수 있을 것

이다. 

담소광은 자신이 있었다. 

정신이 정리가 되고 앞으로 할 일을 정해놓자 뭔가가 머

릿속으로 치받아 올라왔다. 

‘그런데 내가 이 알 수 없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말을 

하는 거지?’ 

혹시나 해서 자신이 알고 있던 중원의 말을 떠올려보자 

막힘이 없었다. 

‘설마, 이 소년의 몸에 들어오면서 생긴 현상일까? 그러

고 보니 이 알 수 없는 지식들은 뭐지? 말도 없이 달려가

는 마차라. 상자에서 사람이 나오고…. 뭐, 곧 알게 되겠

지. 여하튼 이 기억에 의하면 내가 학교라는 곳에 가야겠

군.’ 

조금 더 기억을 끌어내자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낯설지

만은 않았던 남여가 이 소년의 부모라는 것 또한 알게 되

었다. 

잠시 여러 가지 필요한 기억을 더듬어 알아 낼 수 있었

다. 

담소광, 아니 이명훈인 된 검황. 

천천히 자신의 부모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문을 열었다. 

“…어머니, 아버지.” 

자신의 부러진 다리에 팔에 붙어있는 기부스를 바라보며 

훌쩍이던 어머니는 명훈이의 한마디에 번개같이 시선을 돌

렸다. 

설마, 설마 하는 눈빛이다. 

이명훈은 민망한 기분이 들이 시선을 잠시 내렸다. 

그러나 곧 시선을 올리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눈을 한번

씩 바라봐 주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명훈의 손을 부여잡으며 울부짖으셨다. 

“이, 이 녀석아!” 

“흑흑.” 

“아버지…. 어머니….” 

명훈은 그 낮선 이름을 한번씩 되뇌었다. 

갑자기 가슴이 멍울진다. 

자신이 담소광이었을 때, 부모의 얼굴도 모르던 고아였

다. 

악착같이 삶에 힘겨워 고생하여 결국 그 자리에 올랐다. 

자신의 약간은 파탄적인 성격. 

그 이유 때문이라며 위안 삼았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낮선 그 이름. 

부모님. 

명훈의 가슴이 따스해 지는 것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다짐했다. 

자신의 부모가 된 이 두 남자와 여자에게 결코 비탄의 

눈물을 흘리게 하지 않겠노라고…. 

명훈은 일주일동안 병실에서 꼼짝달싹하지 못했다. 

첫 날 부모를 돌려보낸 명훈. 

명상에 잠긴 체 한줄기의 기를 찾아내기 위해 심혈을 기

울였다. 

그러나 그 한줄기의 기운이 안 잡혔다. 

“젠장. 무슨 놈의 기가 이토록 메말라 있단 말인가?” 

기가 찼다. 

자연의 기라는 것을 느끼기 조차 힘들었다. 

주위에 ‘희박하다’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 한줄기만 잡아내면 다음은 수월 할 터인데…. 

한번 잡기만 하면 주변에 상응하면 기를 흡수 할 수 있

기 때문이다. 

속성법도 있었다. 

그러나 위험성이 컷다. 

솔직히 안달할 지경은 아니지 않은가? 

시간은 차고도 넘칠 정도로 많았다. 

이제 겨우 열여덟 살이라지 않은가? 

허약하긴 했지만, 그것을 고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차분히 정도를 밟다보면 해결 될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조바심 나던 것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명훈은 검황 담소광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잠이

라는 것을 경험했다. 

참으로 깊고 깊은 꿀 같이 달콤한 단잠이었다.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난 명훈. 

어머니께 부탁해서 창을 활짝 열고 찬 공기를 한 몸에 

받았다. 

역시나 새벽의 공기는 자연의 기운을 적당히 포용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이 정도의 기운이라면….” 

명훈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눈을 감아 경혼심법을 운용했다. 

경혼심법(倞混心法). 

담소광이 만든 하나의 심법으로, 자연의 기를 응축하여 

몸에 속독으로 쌓는 효용을 지니고 있다. 

조금 더 자연 친화적인 기운을 느끼도록 도움을 준다. 

때문에 보통의 심법에 비해 빠른 진전이 있는 것이다. 

삼십분 정도 흘렀다. 

날숨을 하는 순간이다. 

따스한 기운이 단전에 들어선 것을 느꼈다.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항문을 봉하며, 호흡

을 멈추었다. 

일종의 편법이다. 

기운을 이처럼 가둬서 몸에 친화력을 높이는 방법. 

“후우….” 

조였던 항문과 기공을 펼쳐서 몸에서 나가기 위해 발광

하는 기운을 풀어주었다. 

스스스스. 

간지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처음의 성공은 다음이라는 단어에 수월하다라는 

문장을 붙여 주었다. 

따스하게 단전에 차들어 간 기(氣)를 단전 안에서 운행

하며 단전을 율동적으로 변화시켜나갔다. 

세상은 박자다. 

심장박동을 시작으로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이라는 박자 

안에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스무스(smooth)하게. 

모든 것은 시간이라는 박자(拍子)의 제약을 받는다. 

그 박자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의 성질이 변화

한다. 

심법이란 그 박자를 활용하도록 도와주는 것에 불과하

다. 

어떻게 박자를 운용하느냐는 개인의 능력인 것이다. 

박자가 시작 되는 순간 기의 흐름은 강이고 다른 박자가 

시작되기 전은 약이라 할 수 있다. 

명훈은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 강약의 박자에서 강이 시작 되어질 때, 같은 양의 기

라해도 기의 밀집력에서 크게 차이를 보였다. 

이것은 자신이 생사경(生死境)에 넘어가며 깨달은 깨달

음이었다. 

그 밀집력의 힘을 이용한다면 조금 더 빠른 진전(進展)

을 보일 수 있으리라. 

그 상태로 기를 단전에 끌어 모았다. 

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기가 느껴진다. 

일주일이 경과하고 나서의 상태였다.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이론 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빠른 진행이 아닌가? 

이런 상황으로 진도가 나간다면 3년으로 예상했던 소화

경(小化境)의 경지(境地)를 2년, 아니 1년으로 앞당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예상되었다. 

거기에 생각이 머물자 가슴이 뛰었다. 

몸이 많이 굳어 있었다. 

혈관에 불순물도 많았다. 

기도는 사용되지 않아 막혀 있기도 했다. 

명훈은 조바심 내지 않았다. 

그것을 타통(打通) 시킬 수 있는 편법을 생각해 내었기 

때문이다. 

막힌 기도와 불순물등이 뭉쳐있는 곳에 내력을 집중하여 

급가속을 시도한 것이다. 

고오오오! 

자칫 혈관(血管)과 기도(氣道)를 다칠 수 있는 위험한 방

법이었다. 

하지만, 명훈의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집중력은 그것

을 가능하게 했다. 

그런 식으로 전신에 자리 잡고 있는 부정한 사기(邪氣)

를 몰아내고 선기(鮮氣)를 충당하였다. 

전신에 선기를 체우기란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자주 사용

되고, 완전히 죽어버린 곳을 살리기 위해 부분적으로 진기

를 집중시켰다. 

죽어버린 곳에는 부정한 사기가 깃들 위험성이 있기 때

문이다. 

진기의 끝없는 운기가 효과를 발휘한 것일까? 

천치 4개월에 달한 중상이 보름도 안 되어 완치되었다. 

부러진 뼈가 완전히 붙었고, 타박상과 깊은 상흔은 흉조

차 남지 않고 매끈하게 사라졌다. 

의사의 경악에 가까운 표정은 참으로 볼만했다. 

“의사 경력 29년 동안 이런 현상은 처음입니다.” 

“안 좋은 건가요?” 

“아뇨. 완치가 되었습니다. 어디하나 나무라지 않군요. 

이 상태로 퇴원을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내일 퇴원 수속

을 밟으십시오.” 

“정말 감사합니다.” 

부모의 말에 의사가 나직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정확한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으니 일주일 마나 진찰을 받으러 병원으로 나

와 주셔야 합니다.” 

부모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뻐했지만, 어딘지 불안한 

심정을 감추지는 못했다. 

몸이 완치되었다고 안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심적으로 다친 상처가 있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요양하는 셈 집안에 가두었다. 

부모들은 명훈이 어딘가로 나가고 싶어 하는 것을 알았

지만, 허락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간간히 이른 새벽에 약수를 뜨러나가거나 산책을 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명훈은 그 정도로 만족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부모님들께서 말하기 꺼려

한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부모에게 걱정을 주고 싶지 않았다. 

부모라는 것이 이렇게 따뜻한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자신도 부모의 입장이었지만, 과거 자식들에게 호랑이라

고 불릴 정도였다. 

솔직히 사랑스럽긴 했지만, 어떻게 감정을 표현해야 할

줄 몰랐었다고 변명하고 싶다. 

자신의 실수로 상처를 입으면 어찌할까 걱정된 탓에 엄

하게만 키운 것이다. 

여하튼 약간이나마 따스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명훈. 

많은 것을 배웠다. 

그동안 기운은 충실하게 모았다. 

많이 탁해진 기운이 많았으나, 새벽에 인근 산에는 적당

한 기운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저도 이제 학교에 가야 하지 않을까요?” 

명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흠칫 놀라며, 들고 있던 약수통을 내렸

다. 

그리곤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여기 앉아 보거라.”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치는 아버지. 

명훈은 조심스럽게 그 자리에 앉았다. 

“학교에 …가고 싶으냐?” 

목소리에 힘이 없다.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다른 곳을 주시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

다. 

어째서인지 면목 없어서 자식을 바라보지 못하겠다는 모

습이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사정이 있다는 것을 명훈은 눈

치 차릴 수 있었다. 

‘내가, 아니 이 본 육신의 주인이 죽기 전에 무슨 사고

가 있었나 보군.’ 

명훈은 검황이었던 전생에 게을렀을 뿐이지 눈치가 빨랐

다. 

아버지의 체격은 외소한 편이었다. 

하지만, 명훈의 앞에서는 당당한 모습만을 보여주고자 

노력 하셨다. 

표현은 하지 않으셨지만, 자신의 왜소한 덩치에 상당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계신 듯 했다. 

명훈은 자신의 몸을 슬쩍 돌아보았다. 

빈약함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운동을 한번이라도 했는지 의심스러운 가느다란 팔과 다

리. 심맥도 부정확하였고, 근력의 양도 적었다. 

운동이란 것과 거리가 먼 대표적인 모습이다. 

아버지는 그런 명훈의 몸이 자신의 탓이냥 한숨을 내쉬

었다. 

그리고 깊은 생각을 했다. 

‘명훈이는 자신이 학교에서 당한 일을 아직도 기억 못하

나 보군.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명훈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기억을 읽고나서 총기가 흐르는 맑은 두 눈으로 변했다. 

대부분은 기억했지만, 부분적인 기억상실이라는 의사의 

말. 

아마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무의식이 봉인 한 것 

같다고 말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결론을 내린 아버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래. 허락하마. 그러나 바로는 아니다. 다음주까지 요

양해라. 그리고 그때 생각을 마저 듣고 허락해주마.” 

“아버지!” 

명훈은 뛸 듯 기뻤다. 

지금 이 세상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많았다. 

모두 기억할 수는 있지만, 직접 눈으로 보며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기억속에서 말하는 친구라는 것도 사궈보고 싶었

다. 

과거 전생의 쓸쓸함을 잊고 새 삶을 살고 싶었다. 

명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아버지.” 

아버지가 가볍게 미소를 띠우셨다. 

나이에 비하지 않아 상당한 동안인 아버지. 

결코 명훈과 비교해서 크게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았다. 

유순하게 생긴 명훈. 

명훈은 그런 아버지의 외모를 빼다 박았다. 

아버지는 걱정스러웠다. 

소극적인 성격이었던 명훈이 변한 것은 좋았다. 

그러나 다시 학교를 나감으로 과거의 소극적인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면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결국 한마디를 더 내 뱉었다. 

“학교에 가서 힘든 일이 있거든 이 아빠에게 바로 말해

야 한다. 알겠지?” 

굳은 다짐이 섞인 말투다. 

명훈은 이런류의 말은 결코 그냥 넘어 갈 수 없다는 것

을 잘 알고 있었다. 

어째서인지는 잘 몰랐다. 

허나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얼굴에 완전한 안심이 그려지진 않았다. 

아직도 불안한 그림이 얼굴에 남아 있다. 

명훈이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걱정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 수 있는 나이예요,” 

그제야 안색이 약간 돌아옴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명훈이 슬쩍 미소를 흘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모든 것은 변했다. 

하지만, 무림에 있을 때 올려다보았던 하늘. 

자신의 머리위에 고스라니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부모님과 짧은 대화. 

명훈의 대답은 확고했다. 

“걱정마세요. 제 몸은 제가 지킬 수 있어요.” 

아직도 뭔가를 숨기는 부모님. 

자신이 어째서 죽어가고 있었는지. 

진실은 알 수 없었다. 

빠른 눈치 덕분에 학교와 관련된 뭔가를 느끼긴 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거라.” 

등 뒤에서 들리는 부모님의 목소리 속에 담긴 걱정. 

깨끗하게 씻어 주리라 마음먹었다. 

학교라는 곳에 가면서 많은 잡념이 떠올랐다. 

처음으로 혼자 있게 된 탓이다. 

홀가분함이 준 선물이리라. 

처음으로 나온 익숙치 못한 길. 

낮선 풍경. 

모든 사물을 남아있는 기억 덕에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었지만, 명훈은 솔직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도 운명이라고 봐야 하는가? 

저승을 목격한 자신이기에 운명론에 대해 짧은 생각을 

해보았다. 

자신은 돌발적이라 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미 정해진 

것이라면? 

소름이 돋는다. 

예전부터 생각했긴 해봤다. 

허나, 이토록 가슴에 와 닿기는 처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상에는 어떤 고인들이 존재할까? 

그런 생각은 흥분으로 명훈을 뒤덮었다. 

자신이 나름대로 이 세상을 알아본 결과. 

자신의 전생(前生)은 이곳에서 천여 년 전의 세상임을 

알게 되었다. 

중원을 지금은 중국이라 부름도 알았다. 

명훈 자신이 있는 이곳은 지금 한국이란다. 

과거 자신들이 동이(東夷)라 불렀던 곳. 

그렇다면 자신은 정말 먼 미래로 왔단 말이다. 

두근거린다. 

미래라니. 

그 말은 그만큼 무공이 발전했다는 말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운명이니 뭐니는 기억에서 지워졌다. 

생사경을 넘어선 고수. 

그때는 자신하나 뿐이었다. 

전무후무의 경지라 불리던 생사경. 

하지만, 자신은 알 수 있었다. 

생사경 위의 경지가 있음을 말이다. 

생사경의 경지에 올라서야 알게 된 아득한 그 경지. 

자신이 아련히 떠올리던 그 경지. 

자연경이라 스스로 이름붙인 경지. 

두근거림을 주체 할 수 없다. 

정말로 1000여년이 지난 것이 확실하다면, 그 자연경에 

도달한 자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이 봐온 사람들을 보고 실망하긴 했다. 

하지만, 무공을 익히지 않은 평민들이라는 생각에 희망

을 걸어 보았다. 

과거나 미래나 도인이라는 작자들. 

깊은 산중에 은거랍시고 삽질하며 겉멋이나 부릴 것이란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어느덧 무의식중에 학교라는 곳에 도착했다. 

학교에 다가가면 갈수록 와글거리는 애들이 보였다. 

참 귀여워 보인다. 

여자들의 허벅지가 드러난 치마를 보고 참으로 미래사회

는 좋은 곳임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과거 무림에서 무릎위로 올라오는 치마를 상상해 본적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뜩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아, 나도 애였지?’ 

명훈은 혼자 하던 생각에 멋쩍음을 느꼈다. 

슬쩍 머리를 긁적였다. 

‘2학년 9반 이라고 했던가?’ 

학교에 들어서서 교문 앞을 지나자 사람들의 시선이 느

껴졌다. 

아직 둔감한 몸이지만, 느껴질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아, 내가 아팠던 것을 알았기 때문인 것 같…. 흠…. 아

닌 것 같군. 이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꺼림칙한 기운은 

뭐지?’ 

교문을 지나는 동안 명훈에겐 그 기분이 지속 되었다. 

고개를 꺄웃거리며, 교실을 찾아 한참 안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명훈의 기분이 드러워졌다. 

내기를 슬쩍 운기하여 몸의 감각을 살렸다. 

그 순간 뒤통수에 강한 타격감을 느꼈다. 

퍼억! 

“컥!” 

눈물이 ‘핑’하고 돌 정도로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뭐, 뭐야?’ 

기가 막혔다. 

‘태어나서 설마 이 담소광…. 아니지, 지금은 명훈이지. 

여하튼 본좌가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할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명훈은 기가 막혔다. 

분노가 이글거리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명훈보다 키가 큰 애새끼가 희쭉거리며 서있었

다. 

‘헐, 거구로군.’ 

녀석은 상당히 컸다. 

대충 6척(尺) 2촌(寸)… 아니, 186정도의 키였다. 

‘옷 입은 것을 보니 본좌와 같은 나이인 약관을 막 넘어

섰을 텐데…. 놀랍군. 과거였다면 산적질하기 딱 좋은 체

구로군.’ 

잡생각이 머릿속에 파고들었다. 

그 덕에 분노가 약간 수그러지고 놀람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과거에서는 보기 힘든 거구였던 탓이다. 

주변을 보니 어느 세 껄렁거리는 녀석들이 나타나 명훈

을 보며 웃어댄다. 

반가움이 묻어 있는 얼굴이었지만, 명훈으로서는 왠지 

거림칙하게 느껴졌다. 

무의식중에 그 속의 비웃음을 느낀 탓이다. 

의식 중에 느꼈다면 죽었으리라. 

‘명훈의 친구인가? 그런데 이 녀석들 왜 이렇게 재수 없

는 쌍 판을 하고 있지?’ 

본 육신의 주인 명훈의 친구로 보이는 거구. 

하지만, 녀석이 이죽거리는 모습을 보니 쌍판을 갈겨주

고 싶은 충동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러나 참았다. 

사건을 만들어서 좋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 였다. 

정말 성질 많이 죽었다. 

과거였다면 저런 녀석은 이미 친구가 뭐냐? 

말이고 뭐고 없다. 

패고 봤을 테니 말이다. 

허나, 세상은 변해 있었다. 

때문에 친구끼리라면 어느 정도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결국 명훈은 같이 피식 웃어줬다. 

그러자 녀석이 입을 열었다. 

“어쭈, 이 자식이 실실 쪼개네? 좋아?” 

“킥킥킥.” 

주변에 명훈을 둘러싸고 반겨주는(?) 녀석들이 웃는다. 

명훈은 뭔소린지 몰라서 꺄웃거렸다. 

녀석들이 웃기에 반가워서 그러는가했다. 

명훈 역시 반갑다는 의사를 표하기 위해 더욱 환하게 웃

어주었다. 

그 와중에 계속 거구 녀석이 했던 말을 생각했다. 

‘뭔소리야? 쪼개긴 뭘 쪼개? 설마 인사말인가?’ 

결국 명훈도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말을 받아 주었

다. 

“하하. 이 자식 너도 쪼갰구나. 좋다. 녀석아. 하하!” 

갑자기 거구 녀석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주변에 건들거리던 녀석이 미친 듯이 웃어대기 시작했

다. 

명훈은 자신이 뭔가를 실수 한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더욱 환하게 빛날 정도로 

웃어줬다. 

이상하다. 

뭔가 분위기가 더욱더 요상하게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웃으면 웃을수록 그런 느낌은 강해졌다. 

그런 느낌이 왜 생기는가를 이해하기위해 머리를 굴리는 

순간이었다. 

녀석들이 성큼 명훈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명훈이 설마하며 고개를 꺄웃거렸다. 

‘설마 시비 거는 건가?’ 

그렇게 느낀 순간 멀리서 한 사내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

왔다. 

“이 녀석들. 어서 교실에 안 들어가고 뭐하는 거냐!” 

그러자 돌변하듯 화기애애해진 분위기. 

거구 옆에 있던 얍실하게 웃고 있던 녀석이 명훈의 목에 

어깨동무를 하더니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웃으니 약간 반반하게 보였다. 

보기에 좋은 미소다. 

참고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도덕선생님 안녕하세요.” 

“9반 반장이군. 거기서 뭐하고 있나? 빨리 안 들어가

고.” 

“아니, 이 녀석이 학교에 나와서 반가워서 인사하고 있

던 중이예요.” 

그 도덕선생이라는 작자가 사각안경을 치켜 올리며 명훈

을 보았다. 

알아보는 듯한 눈치다. 

그는 약간 놀란 얼굴로 명훈에게 말을 걸어왔다. 

“명훈이군. 몸은 괜찮으냐?” 

“네. 특별히 아픈 곳은 없네요.” 

명훈이가 대답을 마치자마자 놀란 표정을 지우더니, 무

슨 이유에선지 인상을 구겼다. 

나름대로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이미 명훈 나름대로 생각을 하기에 시간은 충분했다. 

‘뭔가 나에게 안 좋은 감정이 있나보군.’ 

“그래. 인사 끝났으면 어서 들어가라. 조회시간 시작한

지 한참 됐다.” 

그러자 명훈의 목에 어깨동무 하고 있던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선생님. 지금 들어가겠습니다.” 

도덕 선생이란 녀석은 다시 한번 헛기침을 하며 우리와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어떤 교실에 들어갔다. 

명훈과 일행들은 그것을 마저 보았다. 

명훈이가 교실에 들어가려하자 그 반장인지 뭔지라는 녀

석이 팔에 힘을 준 탓에 꼼짝 못했기 때문이다. 

뭐, 피한다면 피할 수 있었지만, 조금 전에 반가움을 표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명훈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처음은 약간 이상하긴 했지만, 선생 앞에서 보여준 녀석

들의 반가운 목소리. 

명훈이가 오해한 듯싶어서 멀뚱히 기다려줬다. 

뭔가를 마저 말하고 싶어 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잠시 시간 내는 것 정도야 뭐가 어렵겠는가? 

멀뚱히 있는데, 선생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반장 녀석이 

명훈에게 이를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이 새끼. 정말 존니 웃긴 새끼네.” 

‘흠. 내가 과거에 뭇 여인들에게 웃기다는 소릴 많이 들

었었지.’ 

스스로의 만족감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그러나 녀석들은 그것이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생각한 

모양인가 보다. 

“이제야 눈 깔아서 어쩌자고. 여하튼 방과 후에 보자.” 

뭔가 위압적으로 말하는 것 같았지만, 내 눈에는 귀여워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눈을 깔아?’ 

이해 불가능한 말이었다. 

하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끝나고 만나서 뭔가를 하자는 것을 말이다. 

그것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환영식을 해주려는 것인

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 이상을 생각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설마 이토록 어린 애들이 나쁜 생각으로 이럴 거라 생각

도 못한 탓이다. 

여하튼 그 말을 끝으로 녀석들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교

실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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