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에필로그 (81/82)

에필로그

“지금 뭐 하는 거야! 네가 그러니까 재수 없다는 소릴 듣는 거야, 이 자식아!”

“누가 누구보고 재수 없대? 네 상판이 더 재수 없어!”

웨딩숍은 보통 결혼을 앞둔 신랑과 신부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아야 하는 곳이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신랑의 입이 귀에 걸리도록 만들고, 턱시도를 차려입은 신랑의 모습 역시 신부의 눈에는 너무도 멋져 그저 미소만 품게 만든다.

그런 곳이 웨딩숍이건만…….

“저- 저기…….”

“아, 무슨 일이시죠?”

“서영완 씨 신부님께서 드레스를 다 입으셨거든요.”

“그래요? 알겠습니다. 야, 너 좀 있다 보자.”

“네 면상 따윈 안 볼 거니까 네 마음대로 해라.”

으드득.

당장이라도 패주고 싶을 만큼 짜증나게 구는 시영을 뒤로한 채 영완은 희영이 들어선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이제 공개해도 될까요?”

“네. 어서 보고 싶네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영과 티격태격하던 영완의 눈빛이 변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미연의 모습이 너무나 기대되는 눈치였다.

사르륵.

드레스 룸을 가리고 있던 커튼이 좌우로 갈라지며 짧은 미니 웨딩드레스를 입고 수줍게 선 미연의 모습이 보였다.

“와아.”

짧은 탄성.

그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천상의 선녀가 강림한 듯 아름다운 미연을 바라보고 있자니 저절로 그녀를 안고 싶을 정도였다.

“이상해?”

“전혀. 아주 예뻐.”

“고마워.”

평소에는 선머슴같이 행동하는 그녀였지만, 웨딩드레스를 입은 자신의 모습이 쑥스러운지 수줍게 대답했다.

“그보다 요새 살쪘나? 뱃살이…….”

“나가 죽어버려!”

사르륵.

“큭큭.”

수줍은 미연의 모습을 보며 왠지 장난이 치고 싶어져 영완은 농담을 걸었다. 그런 그의 농담에 미연은 얼굴이 붉어지며 소리를 질렀다.

“예뻐. 아주 많이.”

드레스 룸의 커튼이 다시 닫히자 영완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진심으로 그녀는 아름다웠다.

자신과 같은 남자가 데려가기 아까울 정도로.

영완의 얼굴에 어느새 행복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다 끝났냐?”

“그쪽도.”

“그래.”

“…….”

“…….”

가벼운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은 마치 토라진 아이들처럼 서로 등을 지며 섰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오늘의 주인공인 미연과 희영이 차례차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또 이러고 있는 거야?”

“그러게. 진짜 남자들이 쪼잔하게.”

“누가 쪼잔하대? 날 이 자식이랑 동급으로 취급하지 말란 말이야!”

희영의 말에 발끈한 시영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이 자식이 진짜! 한판 붙어볼래?”

“나와! 오늘 내가 뜨거운 맛… 커헉.”

시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희영이 그의 복부를 주먹으로 가격했다. 얼마 전 미연에게서 전수받은 정권 지르기였다.

“왜 매번 싸우려고만 드는 거야! 진짜 이럴래? 죽고 싶어?”

“크윽, 아- 아니.”

그녀의 주먹이 꽤 아팠던지 시영은 신음 소리를 흘리며 손사래를 쳤다. 그녀의 주먹이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있으니 꼼짝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식, 꼴좋… 끄아악!”

조금 전 시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비명을 내지르며 영완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희영에게 정권 지르기를 전수해줄 정도로 미연은 정권 지르기에 일가견이 있었다. 어린 시절 그녀를 경호하던 경호원에게 호신술로 배워둔 정권 지르기였다.

“철 좀 드세요. 네?”

“크윽, 그렇다고 이렇게 세게 때릴 것까지야.”

“한 번 더?”

“죄송합니다, 마님.”

주먹을 슬며시 들어올리는 미연을 향해 영완은 얼른 허리를 넙죽넙죽 구부리며 돌쇠 행세를 했다.

“좋았어! 오늘은 웨딩드레스도 봤으니까 술이나 한잔하는 거야!”

“나도 좋아!”

“술?”

“…안 되는데.”

술을 마시자는 미연과 희영의 말에 영완과 시영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뭐야, 그 표정들은?”

“저기 그게…….”

“저기 그게, 뭐!”

“오늘 내가 중요한…….”

“그러니까 그 중요한 게 뭐냐고!”

미연의 다그침에 영완은 슬며시 시영을 바라봤다.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눈빛이었다.

“그게, 저… 우리 대학 시절 함께했던 동아리 동기들과 한잔하기로 했거든요, 이 선생님.”

“하아? 지금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는 거예요?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두 분이서 곱게 한자리에서 술을 드시겠다?”

“대학 동기 누군데? 나한테 말해봐!”

두 사람의 격한 반응에 시영의 이마에 삐질 식은땀이 흘렀다. 결국 시영은 다시 영완을 바라보며 구원 요청 신호를 보냈다.

“그러니까 명철이라고…….”

“명철이라면 재작년에 호주로 이민 갔는데?”

“아- 아니다. 그럼 국종이…….”

“…국종이는 지금 제주도에 있는 여행사에 다니고.”

“…….”

“…….”

모든 걸 꿰뚫어 보고 있는 희영을 보며 시영과 영완은 할 말을 잃고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뻔하지, 뭐. 어차피 우리 눈을 피해 『오벨리스크』를 할 작정이었겠지.”

“아무튼 꼼수들은. 둘 다 따라와.”

“…네.”

“…휴.”

결혼을 앞둔 처량한 총각들.

그들의 결혼 생활은 안 봐도 비디오였다.

“자리에 앉아.”

“응. 너도.”

언제 그렇게 친해졌는지 최근에 미연과 희영은 늘 붙어 다녔다. 그것은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학기를 시작으로 다시 학교로 복직하게 된 희영은 틈틈이 학교를 들르며 미연의 말 상대를 해주고 있었다.

“…….”

“…….”

그에 반해 영완과 시영은 여전히 서로 만나기만 해도 으르렁거렸다. 예전에는 마주치기도 싫어 서로 피해 다녔건만 이제는 피하지도 않고 만나서 늘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너희 둘! 진짜 이럴래? 우리랑 같이 있는데 그렇게 죽을상을 해야겠어?”

“…누가 죽을상이래. 난 그냥 평소와 같아.”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그런 말 해봤자 안 믿기거든?”

미연의 핀잔에 영완은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 위에 놓인 물 잔을 입에 가져갔다.

“주문하시겠습니까?”

“희영아, 우리 소주 마실까?”

“그래, 좋아.”

“그럼 여기 소주 두 병이랑 닭발 하나 주세요. 소주는 이슬이로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주문을 마친 둘은 곧바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아주 소소한 이야기이건만 둘은 뭐가 좋은지 연방 웃고 떠들었다.

“너희도 그 퀘스트 받았다매?”

“무슨 퀘스트?”

미연과 희영이 담소를 나누는 동안 영완과 시영도 조용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대륙의 원흉.”

“역시. 너희도 그거 받았구나.”

르네상스 혈맹이 세틀러 제도에 들어선 지 벌써 6개월에 가까워졌다. 그와 동시에 대륙의 원흉이라는 메인 퀘스트의 시작일도 가까워지고 있었다.

“사실은 우리가 가장 먼저 받은 거지. 그래서 어쩔 거냐? 상대는 드래곤이야. 그것도 분위기를 봐서는 에이션트급일 텐데.”

“우리뿐 아니라 세틀러 제도의 모든 길드가 이 퀘스트를 받았어. 하지만 다 자기들 발전하느라 바빠서 이 퀘스트에 대해 신경 쓰지 못하고 있지.”

“너희 길드와 우리 길드의 힘만으로 가능하겠냐?”

“불가능하지. 에이션트급 드래곤이면 추정 레벨이 1,000레벨 정도 될 텐데.”

“역시…….”

솔직히 말해서 승산은 1할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것도 그나마 르네상스 혈맹과 임페리얼 길드가 힘을 합한다는 전제하에 세운 승률이었다.

최소한 승률이 5할은 되어야만 녀석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5의 승률을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모든 길드에게 알려서 아무래도 힘을 모아야 할 것 같다. 그 방법밖에는 없어.”

시영의 말에 영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와 동맹 맺은 곳이 얼마나 되지?”

“드림 길드를 포함해서 세 곳이야. 너희는?”

“우린 용병 길드를 포함해 두 곳. 그럼 나머지 세 곳에만 연락을 취하면 되는 건가?”

“나머지 두 곳은 문제없는데…….”

뒷말을 흐리는 시영을 보며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영완도 눈치 챘다.

“마제스티 길드라면 우리 쪽 유저들이 치를 떨어서 말이야. 게다가 그들도 아마 우리와 힘을 합하려 하지 않을 거고. 그쪽 애들은 쓸데없이 자존심만 세서.”

“우리도 마찬가지야. 특히 강시 녀석들의 반감이 세. 어차피 그 자식들이야 내가 발로 밟아주면 되지만. 어쨌든 그들도 무조건 함께 힘을 합해야 해. 그들까지 합류한다면 최소한 5할에서 6할까지는 승산이 늘어나니까.”

그렇게 조용히 『오벨리스크』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던 둘은 자신들의 어깨에 올리는 가녀린 손의 감촉을 느끼며 흠칫했다.

“무슨 이야기 했어?”

“하하하, 그냥 학교 이야기.”

“호오, 그래? 요새는 학교에 강시도 있나 보지?”

“얼핏 마제스티라는 말도 들렸던 것 같지 않아?”

“살려 줘!”

“나도!”

사악한 미소를 짓는 미연과 희영을 보며 둘은 본능적으로 손을 싹싹 빌었다. 그런 그 둘을 보며 미연과 희영은 희미한 미소를 그렸다.

“됐어. 어서 술이나 받아.”

“시영아, 너도.”

쪼르르.

“…….”

“…….”

술잔을 받고도 영완과 시영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또 어떤 식의 잔소리를 들을지 걱정되어 알아서 조용히 있었던 것이다.

“너희, 그렇게 『오벨리스크』가 좋아?”

“…응?”

“늘 만나면 티격태격하는 놈들이 『오벨리스크』 얘기만 나오면 딱 달라붙어서 이야기를 나누니. 아무튼 참 신기한 자식들이야. 그렇지, 희영아?”

“누가 아니래. 에휴, 어쩌다 저런 남자랑 결혼하게 됐는지. 어쩔 때 보면 나보다 『오벨리스크』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니까.”

미연과 희영의 말에 영완과 시영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더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런 거 아냐. 『오벨리스크』보다 미연이 네가 훨씬…….”

“네가 날 사랑하는 건 알아. 하지만 분명히 『오벨리스크』도 좋아하지. 매일 그것에 대한 생각만 할 만큼.”

“…….”

“우리도 물론 『오벨리스크』를 좋아해.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도 좋고, 그곳에서 할 수 있는 모험도 전율이 일 만큼 짜릿한 것도 사실이야.”

미연의 말이 이어질수록 영완의 얼굴은 더욱 굳어져 갔다. 그것은 시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희영이 잠자코 있었지만 그녀 역시 미연과 같은 심정이리라.

“그래도 난 역시 여자야. 희영이도 마찬가지고. 너와 함께 단둘이 있고 싶어. 단둘이 영화도 보고 단둘이 저녁도 해먹고. 그런 평범한 걸 하고 싶단 말이야.”

“…….”

“난… 네가 『오벨리스크』를 그만뒀으면 좋겠어.”

“…….”

미연의 진심이 담긴 말에 영완은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가에 맺히는 눈물. 그 눈물을 영완이 손을 뻗어 닦아주었다. 그러면서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만둘게. 너를 위해서.”

『오벨리스크』를 그만둔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리고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영완은 이것이 옳은 선택이라 믿었다. 그녀의 말처럼 자신도 그녀와 단둘이 있고 싶고 단둘이 영화도 보고 싶었다.

이제껏 결혼이라는 것을 그저 두 사람의 결합이라고 생각했건만 그것이 아니었다.

결혼이란,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며 하나의 운명공동체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첫걸음으로 영완은 『오벨리스크』를 끊기로 마음먹었다.

* * *

“다른 길드들은?”

“칸을 통해 속속 들어오고 있어.”

“…….”

로빈의 말에 천휘는 멀리 내려다보이는 확 트인 바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쩔 거야? 정말 『오벨리스크』를 그만둘 거냐?”

“…미안하다.”

“…휴, 별수 없지. 제수씨가 그렇게 완강하게 구는 데에야…….”

“…….”

천휘는 오직 카멜과 로빈에게만 자신이 『오벨리스크』를 그만둔다는 것을 알렸다. 당장 대륙의 원흉을 해치워야 하는 판에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이번 일만 끝나면 내가 다 말할게. 그때까지는 비밀이다.”

“네 마음대로 해라.”

로빈이 공간 이동 마법으로 사라지자 루니아 산에 천휘 홀로 남았다. 이제 이곳에서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의 눈빛은 너무나 애틋해졌다.

[대륙의 원흉 에이션트 드래곤 카리야스가 나타났습니다.]

세틀러 제도 상공에 거대한 동체를 자랑하는 에이션트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늘의 빛깔이 금색인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골드 드래곤인 모양이었다.

[어리석은 인간들아, 감히 내게 대적하려 드느냐!]

웅웅 울리는 카리야스의 말에 유저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그를 쳐다봤다.

[너희는 이 대륙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 너희의 존재는 이 대륙을 점점 악의 구렁텅이로 몰고 갈 뿐이다. 고로, 오늘 너희는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크워어엉.

[띠링! 카리야스의 포효로 5분간 공격 속도와 이동 속도가 50% 저하됩니다.]

[띠링! 카리야스의 포효로 30초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드래곤의 포효!

드래곤 피어라고도 불리는 그것이 세틀러 제도 전역을 강타했다. 그와 동시에 풍선이 떠 있듯 가만히 하늘에 박혀 있던 카리야스의 동체가 천천히 세틀러 제도 상공을 주유하기 시작했다.

[쿠오오오!]

그리고는 녀석의 입에서 황금빛 숨결이 뿜어져 나왔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파멸의 숨결.

그 파멸의 숨결이 세틀러 제도 중심에 위치한 케이타 섬에 떨어졌다.

콰아아앙!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버리는 케이타 섬.

다행히 아직까지도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섬이라 인명 피해는 거의 없었다.

[무지한 인간들이 내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한곳에 모여 있구나.]

룬 아일랜드에 수천에 달하는 유저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 카리야스는 그쪽을 향해 천천히 날아갔다. 그리고는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파멸의 숨결을 준비했다.

[끝이다! 쿠오오오!]

카리야스의 숨결이 룬 아일랜드 도시 샤이어 위로 떨어졌다. 자칫하다가는 수천에 달하는 유저들이 한 번에 몰살할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유저들의 눈빛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녀석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다.

콰아앙!

룬 아일랜드 전역을 뒤흔드는 엄청난 폭음.

하지만 놀랍게도 유저들은 그 누구도 목숨을 잃지 않았다.

[이- 이게 무슨!]

오히려 놀란 것은 대륙의 원흉이라 불리는 에이션트 드래곤 카리야스였다. 자신의 브레스를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은 것이다.

녀석의 브레스는 마법 저항력이 뛰어난 악마 고담이 몸을 날려 온몸으로 막아낸 것이었다. 녀석이 아니었다면 브레스를 상쇄시키기는커녕, 그저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 분명했다.

“로즈란!”

30초가 지나며 이제 드래곤의 포효로 인한 페널티는 모두 사라졌다. 천휘의 강렬한 외침에 대기하고 있던 로즈란이 로빈을 비롯한 르네상스 혈맹 소속 마법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마법을 시전했다.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파괴의 파편이여, 공간을 뛰어넘어 그 파괴의 힘을 이 땅에 완벽하게 재림할지이니. 메테오 스웜!]

로즈란의 캐스팅이 끝나자 그녀 주변으로 막대한 마나가 모여들었다. 로빈이 주변에 그려 낸 마나 응집 마법진과 마나 증폭 마법진이 빛을 발한 것이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운석이 이곳을 향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 이것은?]

갑자기 해가 사라지고 자신의 머리 위로 어둠이 내려앉자 카리야스가 살짝 동요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머리 위로 운석이 하나 둘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콰앙!

[끄아아악!]

거대한 카리야스의 동체 위로 우주에서 떨어져 내리는 운석이 틀어박혔다. 그 운석 몇 개만으로도 룬 아일랜드 정도의 섬은 산산조각이 날 만큼 강력했다.

그런 운석들을 카리야스는 한꺼번에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추락한다!”

“녀석을 밟아!”

샤이어의 바로 앞에 위치한 평원으로 떨어지는 카리야스를 향해 모든 유저들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레벨이 높고 낮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대륙을 암흑으로 물들인 장본인을 제 손으로 처단한다는 의미에서 모든 유저들이 한데 힘을 모아 녀석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감히, 이 몸에게!]

하지만 역시 에이션트 드래곤인지 녀석은 메테오 스웜에 당하고도 거대한 동체를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빨리 천휘가 손을 썼다.

“소환 라푼!”

쿠웅!

[크아아악!]

카리야스의 거대한 동체가 초라해 보일 만큼 거대한 라푼의 동체. 그 무게만도 수천만 톤 이상인 라푼이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며 내리깔자 카리야스는 다시 비명과 함께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다시 이어지는 유저들의 총공세!

새로운 지존들로 불리는 10인의 유저들도 그에 합심해서 카리야스를 처단했다.

[띠링! 에이션트 드래곤 카리야스를 처치하셨습니다.]

[띠링! 메인 퀘스트 ‘대륙의 원흉’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띠링! 대륙을 지배하던 몬스터들의 힘이 50% 저하됩니다.]

모든 유저들에게 들려오는 알림 소리.

자신들이 에이션트 드래곤을 처치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지 유저들은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지만, 이내 한 명이 소리치자 모두 함께 환호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우와아아!”

“처치했어, 처치했다고! 우리가 우리 손으로 드래곤을 잡았어!”

“우오오오! 나는 드래곤 슬레이어다!”

모든 유저가 기쁨에 날뛰고 있을 때 단 두 사람, 천휘와 그랜저만큼은 그 기쁨을 공유하지 못했다.

* * *

“와아, 마시자고!”

“마셔!”

카리야스를 처치하고 난 그날 저녁.

모든 유저들이 샤이어 앞의 평원에 모여 축하 파티를 열었다. 오늘만큼은 어떠한 이해득실도 따지지 않고 순수하게 『오벨리스크』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모여 술자리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한 잔 합시다!”

“좋지!”

들뜬 표정의 천휘가 건배 제의를 하자 주변의 유저들이 모두 술잔을 들었다.

“다들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던 이 퀘스트를 수행했습니다. 이제 남은 건 다시 대륙으로 돌아가는 것뿐. 돌아가서 감히 대륙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린 몬스터들을 소탕하고 예전의 모습을 되찾게 해야지 않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물론이지!”

“『오벨리스크』의 창창한 미래를 위해 건배!”

“건배!”

모든 유저들이 술잔을 비우자 천휘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한껏 들떠 있었던 것과 달리 그의 표정은 너무도 어두웠다.

그는 그렇게 조용히 샤이어로 향했다.

“후우.”

세틀러 제도 최고의 도시로 급부상한 샤이어의 밤은 무척이나 한산했다. 모든 유저들이 술자리를 가지기 위해 도시를 나섰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

천휘는 샤이어를 자신의 두 눈에 담으며 천천히 도시 안을 걸었다. 그러다가 샤이어의 중앙에 위치한 길드 건물에 도착했다.

마치 인도의 타지마할 궁처럼 거대한 원형 돔으로 만들어진 이 길드 건물은 드워프들이 특별히 신경 써서 지어준 것이었다.

저벅저벅.

그렇게 마지막으로 길드 건물을 눈에 담은 천휘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텅 빈 공간.

천휘는 홀로 계단을 올라 3층에 위치한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화르륵.

“응?”

집무실 문을 열자 어두웠던 실내가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로빈과 카멜이 와락 천휘를 껴안았다.

“너- 너희, 언제?”

“자식. 네가 올 곳이 여기밖에 더 있냐? 네 녀석이 청승맞게 도시 안을 돌아다니는 동안 우리는 이 안으로 와서 기다리고 있었지.”

“큭큭, 그랬냐?”

카멜의 말에 천휘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카멜 말대로 자신이 마지막으로 올 곳은 이곳밖에 없었다.

“수고했다, 천휘야.”

“감사합니다, 형님. 형님이 없으셨다면 이렇게까지 해내지도 못했을 거예요.”

테크토의 인사에 천휘가 목메는 목소리로 감사의 뜻을 표현했다.

“천휘 동생, 수고했어.”

“오빠, 수고했어용.”

“감사해요, 누님. 고맙다, 송이야.”

하린에 이어 눈송이도 있었다. 그녀들은 환한 미소로 천휘와 포옹했다.

“잘 가랑깨! 다시 돌아오믄 죽여 블랑깨!”

“큭큭, 그래. 잘 있어라. 너도 조만간 좋은 소식 들려주고.”

“쪼매만 기다리랑깨.”

천휘는 블랙헤드와도 깊은 포옹을 나눴다. 그 역시 자신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인연이었다.

“잘 가라.”

“제수씨 잘 챙겨 주고.”

“그래.”

로빈과 카멜은 담담하게 천휘를 보냈다. 둘의 무덤덤한 모습에서 천휘는 무한한 슬픔을 느끼며 그 역시 담담하게 대답했다.

“고마웠습니다.”

이별.

늘 그렇듯 인연이란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을 낳는다.

영완은 이제 천휘라는 이름을 잊을 것이다.

잊고 살아가야 한다.

그걸 알면서도… 영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저 갈게요.”

차앗.

[띠링! 접속을 종료하시겠습니까?]

- 마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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