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악마의 수호신
뎅뎅뎅!
“마제스티 길드가 쳐들어왔다!”
“빌어먹을, 하필 이런 때에! 모두 항구에 배치된 소형 대포로 향하세요! 녀석들이 항구로 진입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랜저와 알무니아를 대신해 카라얀을 수비하고 있던 칼룬이 소리쳤다. 부길마임에도 모험가 직업을 가지고 있는 탓에 해전에 참가하지 못하고 카라얀의 수비를 맡고 있었던 것이다.
“칼룬 님, 저들이 빠르게 항구로 진입합니다!”
“젠장! 모두 포문을 여세요! 목표는 선두의 캐러벨급 함선입니다!”
칼룬의 지휘 아래 유저들이 다급하게 포문을 열고는 빠르게 포탄을 장착했다.
“비겁한 마제스티 자식들! 우리 길드가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였나?”
무려 20척에 가까운 함선들을 바라보며 칼룬이 입술을 깨물었다. 저 정도 함선이면 자신들이 제아무리 발악한다 해도 수비는 무리였다.
하지만 이대로 꼬리를 말고 마을이 파괴되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유저들 역시 칼룬과 마찬가지 생각인 듯 모두 비장한 얼굴이었다.
“반드시 지켜 내야 합니다! 이곳이 뚫리면 마을은 저들의 더러운 발아래 떨어지고 말 겁니다! 우리가 지켜 내야 합니다!”
칼룬의 발악 같은 외침에 유저들이 으스러지게 주먹을 쥐며 전방을 주시했다.
“조준, 발사!”
펑! 펑!
카라얀에 배치된 소형 대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그러나 마제스티 길드가 20척에 가까운 함선을 동원한 것에 비해 카라얀에 배치된 소형 대포는 턱없이 부족했다. 고작해야 6문의 소형 대포.
마제스티 길드는 카락급 함선 한 척만 침몰하는 작은 피해를 입으며 카라얀을 함락시켰다.
철저한 파괴!
마제스티 길드는 단 2시간 만에 카라얀을 함락하고, 모든 건물을 완벽하게 파괴시킨 뒤에 다시 그들의 함선에 올랐다. 그들의 뱃머리는 이제 룬 아일랜드로 향하고 있었다.
* * *
세틀러 제도에서의 대규모 해전은 이내 『오벨리스크』를 즐기는 많은 유저들의 귀에 들어갔다.
그들은 임페리얼 길드가 최강 르네상스 혈맹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것에 대해 놀랐고, 더불어 임페리얼 길드의 엄청난 전력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러나 유저들을 가장 놀라게 한 사실은 바로 마제스티 길드의 행보였다.
그들은 르네상스 혈맹과 임페리얼 길드가 아르고 섬 근해에서 해전을 벌이는 동안 틈을 노려 임페리얼 길드가 근거지로 삼는 아제로스 섬을 점령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복이 아닌 파괴였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곧바로 아르고 섬의 항구 베론으로 쳐들어가려던 임페리얼 길드의 함대는 황급히 아제로스 섬으로 귀환했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
마제스티 길드는 어느새 아제로스 섬을 빠져나가 르네상스 혈맹의 근거지 룬 아일랜드로 향했다.
“대기 병력은?”
“기껏해야 생산직 유저들뿐이야. 나머지는 르네상스 혈맹에 속하지도 않은 오합지졸들뿐이고.”
“허허, 과연 우리 예상대로로군.”
데브라의 말에 신선이 허허로운 웃음을 지으며 눈빛을 번뜩였다.
“아제로스 섬과는 차원이 다른 곳이네. 하나, 우리 역시 그만한 준비는 되어 있지.”
“신선 님 말이 맞습니다. 으하하하! 드디어 그 여우 같은 자식에게 화신의 사막에서의 복수를 할 수 있겠어!”
“시간이 없소. 어서 포격 명령을 내리시오.”
“…….”
토르와 요한의 재촉에도 아렌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알 수 없는 불안감.
아제로스 섬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자꾸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시간 없어. 이러는 와중에도 르네상스 혈맹의 전력이 돌아오고 있을 거야.”
“데브라 님 말이 맞소. 임페리얼 길드가 아제로스 섬으로 귀환했으니, 르네상스 혈맹도 아르고 섬에서 나와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오.”
데브라와 요한의 말대로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 아니었다. 그만큼 르네상스 혈맹의 주 전력이 지닌 힘은 압도적이었다.
“당장 포격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칸의 항구에는 드워프들이 건설한 단단한 외벽이 있습니다. 우리의 소형 대포로는 주어진 시간 안에 그 외벽을 완벽하게 부수는 것은 무리입니다. 때문에 포격으로는 외벽의 중앙에 위치한 석문을 부수는 데 집중하고, 석문이 부서지면 일제히 상륙해 우리가 직접 움직여 칸을 파괴할 것입니다.”
아렌의 말에 부길마들이 선실을 나서 각자의 함선으로 이동했다.
“포격하라!”
펑! 펑!
데브라의 마법에 의해 모습을 감추고 있던 함선들이 일제히 포격을 시작했다.
어두운 밤이었고, 데브라가 부리는 사령들이 공간을 왜곡한 탓에 르네상스 혈맹에서는 대응하는 것이 느려진 것이다.
쾅! 쾅!
“마제스티 길드의 함선이다! 모두 외벽에 위치한 캘버린 포로 이동하시오!”
마을을 뒤흔드는 폭음에 테크토가 놀란 얼굴로 밖으로 나오며 드워프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에 공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강철 사슬 일족과 화염의 망치 일족 드워프들이 외벽 내부에 위치한 캘버린 포로 이동했다.
“포격하라!”
소형 대포들이 계속해서 외벽의 석문을 두드리는 동안 드워프들도 캘버린 포의 포문을 열었다.
퍼엉! 퍼엉!
콰앙! 콰앙!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크아악!”
“이, 이런 위력이라니!”
외벽에 위치한 열 문의 캘버린 포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력에 마제스티 길드의 유저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정교한 포격은 물론이고, 그 위력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카락급 함선은 포격 2방에 침몰할 지경이었고, 캐러벨급의 함선도 위태위태했다.
“빌어먹을! 포격을 중지하고 항구로 돌격하라!”
더 이상의 포격은 의미가 없었다. 소형 대포로는 외벽을 무너트릴 수도 없었고, 반대로 상대 포격에 노출된 상태로는 전멸을 면하기 어려웠다.
강행 돌파.
아렌이 유일하게 내릴 수 있는 전법은 그것뿐이었다.
“녀석들이 포격을 중지했다, 테크토.”
외벽에 위치한 관제탑에서 추이를 살피던 강철 사슬 일족의 족장 아칸의 말에 테크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녀석들의 전력을 줄여야 합니다. 드워프 여러분께 계속해서 포격을 해주시라고 전해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드워프 일족의 포술은 단연 최고였다. 특히 강철 사슬 일족의 드워프들은 모두 고급을 바라보는 포술을 익히고 있었다. 그들이 캘버린 포를 활용해 포격을 하면 포탄의 위력은 무려 30퍼센트나 증가할 정도였다.
[나도 도울게.]
“그래줄 텐가?”
[호호! 주인님이 당신을 잘 도와야 한다고 했으니까.]
천휘의 명에 의해 칸을 지키고 있던 로즈란은 이내 외벽 위로 올라갔다. 그녀의 곁에는 오베른과 카이젠이 함께하고 있었다.
[한 번에 쓸어버릴까?]
강렬한 폭음이 지속되는 전장.
로즈란의 물음은 어울리지 않게도 너무나 부드러웠다.
[그럴 수는 없지. 우리도 간만에 몸 좀 풀어야 하니까 적당히 해둬.]
[본래 전장에서는 적의 예봉을 꺾으라고 했다. 그러니 가장 선두에서 돌진하고 있는 저 함선만 부수는 선에서 그만둬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주인이 아끼는 저 마을이 전장이 되고 말 텐데… 괜찮겠어?]
어느새 외벽 위로 올라온 로렌의 말에 강시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무래도 외벽 너머로 들어서지 못하게 해야겠군.]
[잘못하면 오랜만에 그 피리 소리를 들어야 할지도 몰라.]
[…그것만은 나도 사양한다고!]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피리 소리를 떠올리며 세 음양마령강시는 전의에 불타올랐다.
[왜 갑자기 불타는 거지?]
[넌 몰라도 돼!]
아무것도 모르는 오베른의 물음에 발악하듯 소리친 셋은 각자 최고의 마법과 스킬을 준비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무조건 저들이 외벽을 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포문은 로렌이 열었다.
[데몬 스트라이크(Demon Strike)!]
악마의 활 힐프리거에 악마의 힘이 깃들었다.
주변의 공기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지독한 살기.
로렌은 그 살기를 화염의 망치 일족 최고의 장인인 김리에게 의뢰해 제작한 오리하르콘 화살에 담았다.
우르릉!
마치 번개가 치듯 오리하르콘제 화살이 바다 위를 갈랐다. 목표는 선두의 캐러벨급 함선. 그 함선에는 빛의 외침이라 불리는 『오벨리스크』 최고의 사제 요한과 거인 토르가 있었다.
“헉! 저게 뭐야!”
“토르! 당신이 막아!”
“저런 걸 무슨 수로 막아!”
뱃머리에서 자신들의 함선을 향해 날아오는 악마의 화살을 바라보며 요한과 토르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대로 놔뒀다간 함선에 거대한 구멍이 뚫릴 판이었다.
“빌어먹을! 타앗!”
결국 거인 토르가 뱃머리에서 날아올랐다. 그리고 코앞까지 다가온 악마의 화살을 향해 자신의 무기인 레전드 망치 묠니르를 휘둘렀다.
“거인의 태동!”
콰아앙!
악마의 화살과 거인 토르의 공격이 충돌하자 상상을 초월하는 폭음이 터져 나왔다.
“토르!”
“크윽!”
과연 지존 12인답게 거인 토르는 목숨을 부지했다. 그러나 폭발의 여운이 지독한지 그는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바다에 둥둥 떠다녔다.
[이번엔 내 차례다! 라그나 인페르노(Ragna Inferno)!]
악마의 화살이 막힌 것을 본 카이젠이 곧바로 학살자의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에서 모든 것을 불태울 지옥의 업화가 솟구치며 전방으로 날아갔다.
“이번엔 불이냐! 빌어먹을!”
흡사 헬파이어를 연상시키는 지옥의 업화에 요한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주던 거인 토르도 무너진 마당에, 자신이 저 지옥의 업화를 막아내지 못하면 자신이 승선해 있는 캐러벨급 함선은 침몰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거룩한 희생!”
요한은 결국 최후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목숨과 신성력을 일시에 개방해 캐러벨급을 보호한 것이다.
콰아앙!
또다시 바다를 뒤흔드는 폭발이 일었다. 그러나 요한의 거룩한 희생으로 인해 함선은 무사했다.
[이런 무능력한 남자들! 다 비켜!]
로렌에 이어 카이젠까지 공격에 실패하자 로즈란이 표독스럽게 소리쳤다.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파괴의 파편이여, 차원의 경계를 넘어 세상에 현신할지니! 메테오 스트라이크!]
그녀의 캐스팅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공에 먹구름이 끼며 달빛을 모두 가렸다.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어둠. 그 어둠을 가르며 하늘이 열렸다.
“저, 저건 뭐야!”
“우, 운석?”
“피해!”
우주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내는 운석을 보며 마제스티 길드의 유저들이 공황 상태에 빠졌다. 정확히 어느 지점이 목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은 대략 그 운석이 자신들의 머리 위로 떨어질 것임을 알고 있었다.
“허허, 그야말로 신의 힘이로군. 운석을 불러올 수 있을 줄이야.”
신선은 운석을 바라보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직감적으로 저 운석을 막지 못하면 마제스티 길드는 전멸을 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마법사들은 운석을 향해 마법을 펼치세요!”
다급한 아렌의 말에 마법사들이 곧바로 자신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운석을 향해 마법을 난사했다. 하지만 그 어떤 마법도 운석의 추락을 저지하지 못했다.
“젠장!”
결국 아렌은 욕지거리를 터트렸다. 그가 보기에 저 운석은 도저히 사람이 막을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데브라조차 실패한 이상 저 운석을 막을 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으드득!
“허허! 아렌, 저 운석은 내게 맡기게나.”
분노에 이를 갈고 있는 아렌을 보며 신선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혀, 형님!”
신선이 요한처럼 자신을 희생하려 한다는 사실을 눈치 챈 아렌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저것을 막아주겠네. 단, 반드시 저 마을을 함락시키게나. 자, 시간이 없네. 그 손을 치우게.”
“크윽!”
신선의 어깨에서 손을 뗀 아렌은 치욕스러운 표정으로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마스터가 되어서 지금 이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도 치욕스러웠다.
그런 아렌을 아랑곳하지 않고 신선은 번개의 정령 라이오너를 소환했다.
“뇌전의 소용돌이!”
신선의 외침에 번개의 정령 라이오너가 그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그의 신형이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이내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는 운석을 향해 돌진했다.
“형님!”
운석을 향해 돌진하는 신선을 보며 아렌이 미안한 마음을 담아 소리쳤다. 그러자 길드의 다른 유저들도 신선의 이름을 외쳤다.
“신선 님!”
콰아앙!
전력을 다한 신선의 신형이 운석과 부딪쳤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운석.
그러나 운석의 궤도는 이제 마제스티 길드가 아닌 먼 바다로 향하고 있었다.
쾅!
쏴아아!
“모두 뱃전을 붙잡아! 파도가 밀려온다!”
운석이 바다에 떨어짐과 동시에 큰 파도가 일었다. 어찌나 큰지 해일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거대한 파도가 마제스티 길드의 함선을 두드렸다.
“으아악!”
뱃전을 붙잡으라는 몇몇 유저들의 외침에도 꽤나 많은 숫자의 유저들이 바다로 떨어져 내렸다. 그만큼 파도는 거대하고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초월적인 힘을 지닌 유저들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재앙.
마제스티 길드의 가장 큰 적은 바로 그것이었다.
[쳇! 생각보다 이방인들이 강한데?]
[그러게. 내 메테오 스트라이크까지 막아낼 줄은 몰랐어.]
어울리지 않게 로즈란과 카이젠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파도에 휩쓸리고 있는 함선들을 바라보았다. 자신들의 공격을 이방인이 막아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어느새 이방인들의 힘은 자신들을 위협할 정도로 강해진 것이다.
[그런 얼굴 할 것 없다. 어차피 이런 일은 예견되었던 것이니까. 우리의 주인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오베른의 말처럼 천휘는 이미 자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아니, 어쩌면 더 강할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천휘는 강했고, 놀라운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어차피 그래봐야 승리하는 것은 우리다! 그런 표정 지을 것 없어! 우리의 공격은 겨우 한 번 막혔을 뿐이다! 저들은 우리를 이기지 못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로렌 역시 심기가 불편한 얼굴이었다. 이제껏 그 누구도 막지 못했던 자신의 화살을 이방인들이 막아낸 것이 충격은 충격인 모양이었다.
[지금이 기회다! 파도에 휩쓸려 저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사이 공격을 퍼부어 저들이 외벽을 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네 말이 맞다! 승기는 우리에게 있어!]
[모조리 부숴주지!]
오베른의 말이 시발점이 되어 파도에 흔들리는 마제스티 길드의 함선을 향해 강시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하나같이 강맹한 위력의 공격.
하지만 마제스티 길드는 명실상부 최강의 유저들이 모인 길드였다.
“또다시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미 예측하고 있던 바다. 녀석들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지! 당장 조타수들에게 일러 무슨 수를 써서라도 파도를 헤치고 외벽을 향하라고 해! 데브라! 넌 나와 같이 선두의 함선으로 향한다!”
“알았어!”
아렌은 곧바로 데브라와 함께 요한과 토르가 승선해 있던 캐러벨급 함선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미 강시들의 무차별 공격에 그 함선은 원형을 유지하기가 힘들 정도로 충격을 입은 뒤였다.
“코르도 님, 키는 움직이는 겁니까?”
아렌이 조타수 유저에게 물었다. 손상되었다고는 하나, 앞으로 나아갈 수만 있다면 배를 버릴 필요는 없었다. 더구나 이것은 길드에서도 3척밖에 없는 캐러벨급 함선이었다.
“아직 움직일 수 있습니다.”
“다른 건 무시하고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녀석들의 공격은 제가 막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어느새 바다는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 그저 폭발에 의한 해일이었으니 금세 잠잠해진 것이다.
“데브라!”
“드디어 그동안의 성과를 보여 줄 때가 온 거야!”
“잔말 말고 시작하자!”
아렌과 데브라가 짤막한 잡담을 나누는 사이에도 함선을 향해 악마의 화살과 용 형상의 공격이 쏟아졌다. 이제 더 이상 공격을 허용하면 자신들이 서 있는 함선은 그대로 바다 밑바닥으로 침몰할지도 모른다.
“야수 변신, 붉은 곰!”
“사령 변신, 임프!”
아렌은 붉은빛에 휩싸인 물경 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곰으로 변신했다. 반면, 데브라는 채 1미터도 되지 않는 작은 소악마로 변신했다.
“쿠오오오!”
함선을 향한 공격을 막기 위해 붉은 곰으로 변한 아렌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포효하며 오베른이 펼친 드래곤 스크류를 온몸으로 받아냈다.
“케케케!”
소악마 임프로 변한 데브라는 악마의 화살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손바닥에서 검은색의 그물을 펼쳐 내어 악마의 화살을 옭아매고는 속도를 줄게 만들었다. 데브라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악마의 화살을 향해 손을 가져가 완벽하게 화살을 소멸시켜 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강시들이 눈에 불을 켜고 계속해서 공격을 날렸지만, 엄청난 생명력과 방어력을 자랑하는 붉은 곰 아렌과 악마의 마법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임프 데브라에 의해 모두 가로막히고 말았다.
그렇게 되기를 수차례. 마제스티 길드의 함선은 결국 항구에 배를 대고 말았다.
“모두 상륙하라!”
어느새 붉은 곰에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아렌이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조금 전의 변신으로 인해 기력이 쇠했는지 그 자신은 데브라와 함께 갑판 위에 머물렀다.
“으하하하! 이번에야말로 내 진가를 발휘할 때다! 얘들아, 우리의 힘을 보여 주자!”
“우오오오!”
아렌과 데브라의 활약으로 힘을 비축했던 거인 토르는 자신을 따르는 장대한 체구의 전사 유저들과 함께 외벽을 향해 나아갔다.
“거인의 태동!”
콰앙!
그의 레전드 망치 묠니르가 엄청난 파공성과 함께 마을로 들어서는 외벽의 석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드워프들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석문은 너무도 단단했다.
“이익! 이 정도로 끝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앗!”
석문이 부서지지 않자 거인 토르와 함께 거대한 양손둔기를 들고 있는 전사 유저들이 석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쾅! 쾅!
마치 폭발이 이는 듯 폭음이 연이어 터지며 석문을 장식했다. 그들의 강맹한 공격에 석문은 신음하고 있었다.
[석문이 무너지면 끝장이야.]
[모든 강시들을 총동원해야겠어.]
[로즈란, 지금 당장 야산으로 가서 강쇠와 돌쇠들을 모조리 데려와. 로렌, 너는 다크 엘프 강시들을 전부 데려오고.]
[알았다. 금방 다녀오지.]
[여기는 나와 오베른이 맡고 있겠다.]
카이젠의 지시에 로즈란과 로렌이 굳은 얼굴로 사라졌다. 로즈란은 블링크 마법을 연이어 전개하며 칸 뒤쪽에 위치한 야산으로 향했고, 로렌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움직이며 다크 엘프 강시들이 있는 아즈카 마을로 향했다.
[우리 둘이서 저들을 상대할 수 있겠나.]
언제나 물러섬이 없이 앞만 보며 달리던 오베른이었지만, 끊임없이 몰려드는 마제스티 길드의 유저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석문을 두드리는 장대한 체구의 전사들은 물론이고, 후방에서 다가오는 다른 유저들 역시 그 능력이 범상치 않았다.
무엇보다 배 위에서 이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야수와도 같은 사내의 실력은 자신조차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우리를 이길 수 있는 분은 오직 주인님뿐이시다! 그걸 잊지 마라!]
오베른의 약한 소리에도 카이젠의 눈빛은 변함이 없었다.
자신의 무력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
카이젠에게는 그것이 있었다.
[여차하면 저 악마를 깨우면 된다.]
[악마라…….]
카이젠의 말에 오베른이 외벽 뒤쪽을 바라보았다. 석문 바로 뒤쪽에는 마치 석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는 악마 고담이 서 있었다.
거대한 체구와 탄탄한 근육, 그리고 등 뒤에서 펄럭이는 붉은색 휘장까지.
확실히 카이젠의 말처럼 저 녀석이 있는 한 마을은 안전했다.
[저 악마 따위는 나설 필요도 없지. 우리만으로 해결한다!]
잠시나마 두려운 기색을 보인 것이 무안한지 오베른이 호기롭게 소리쳤다. 그 모습에 카이젠도 슬며시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검에 손을 가져갔다.
[한번 날뛰어볼까?]
[쿡쿡! 누가 더 많은 이방인을 처치하는지 내기다. 진 사람이 주인과 대련하는 거다.]
[그거 좋지! 하앗!]
카이젠이 한발 먼저 외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의 목표는 외벽을 두드리고 있는 거인 토르였다.
이에 질세라 오베른도 그 뒤를 따랐다. 그는 카이젠과 달리 거인 토르가 아닌, 후방에서 마법을 준비하고 있는 마법사들에게로 향했다.
콰앙!
“크윽! 웬 놈… 네 녀석은!”
갑작스러운 살기에 토르는 간신히 묠니르를 들어 카이젠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확인한 뒤 낯빛이 흙빛으로 변했다.
“네 녀석은 천휘 그 자식을 따르는…….”
토르는 카이젠을 알고 있었다. 과거 화신의 사막 원정에서 천휘와 강제적인 동맹을 맺으면서 본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검술이 얼마나 뛰어난지도 알았다.
“잘 만났다, 이놈!”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지금의 자신은 과거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퍼펙트 마스터의 경지에도 오른 상태고, 무엇보다 거인의 힘을 훨씬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었다.
“모두 이 녀석에게서 떨어져!”
“하지만!”
“너희가 당해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너희는 지금처럼 계속 석문을 두드려! 이 녀석은 내가 맡는다!”
거인 토르의 강경한 말에 전사 유저들이 이를 악물고 돌아서며 다시 석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석문은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며 부서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것이 뜻대로 될까?]
“네 상대는 나다! 하앗!”
토르는 카이젠의 발목을 붙잡기 위해 별다른 스킬도 전개하지 않고 쉴 새 없이 묠니르를 휘둘렀다. 마치 후퇴를 모르는 장갑차처럼 그의 공격은 무식하기 짝이 없었다.
[그 정도로 내 발목을 잡을 수 있겠나?]
카이젠은 토르의 공격을 손쉽게 피해내며 곧바로 석문 앞으로 쇄도했다.
[라그나 블레이드(Ragna Blade)!]
학살자의 검에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파멸의 기운이 어렸다. 카이젠은 학살자의 검을 전사들을 향해 휘둘렀다.
“끄아악!”
“커허억!”
단숨에 2명의 전사를 베어버린 카이젠은 바로 옆의 전사를 향해 다시 검을 휘둘렀다.
까앙!
“이런 비겁한 새끼! 나랑 붙으란 말이다!”
그러나 어느새 다가온 거인 토르에 의해 학살자의 검이 막히고 말았다.
[목청 큰 오우거 새끼가 거슬리는군.]
“모, 목청 큰 오우거? 이런 씨바닥이!”
카이젠의 도발에 토르가 분개하며 달려들었다. 성난 멧돼지처럼 달려드는 토르를 보며 카이젠은 표홀하게 신형을 날려 그를 상대하지 않고 다른 전사들을 베어 넘겼다.
“이런 날다람쥐 같은 새끼! 나랑 붙지 못해!”
[후후, 오우거 자식이 말이 많군.]
분명히 토르는 강했다. 어쩌면 오베른과 맞먹는 수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근력에 한한 것일 뿐이다. 전반적인 움직임이나 무기를 다루는 능력은 카이젠은 물론이고, 오베른보다도 떨어졌다.
그럼에도 카이젠은 그를 농락하며 철저하게 상대적으로 약한 유저들만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물론 그들 역시 일반적인 유저들보다는 강했지만, 라그나 블레이드까지 검에 두른 카이젠의 공격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카이젠은 10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절반에 달하는 전사들을 처치했다.
“젠장! 모두 석문을 그만 두드리고 진형을 갖춰서 이 자식을 상대해!”
카이젠의 신출귀몰한 움직임에 혀를 내두른 토르는 석문을 포기했다. 그가 판단하기에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전멸이었다. 어떻게든 피해를 줄여야 했고,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석문을 포기한 것이다.
[후후, 이제야 오우거 자식의 머리가 돌아가는군.]
카이젠이 토르를 피한 것은 결국 녀석들의 머릿수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저렇듯 진형을 갖춰버리면 그것은 더 이상 불가능했다. 이제는 이들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토르를 처치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를 향한 카이젠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파이어 랜스!”
“윈드 커터!”
쾅!
스사앗!
다들 뛰어난 마법사들답게 오베른의 쇄도에도 침착하게 대응했다. 빠르게 펼칠 수 있는 저서클의 마법을 오베른에게 난사하며 거리를 벌릴 시간을 번 것이다.
[하압!]
그러나 오베른은 단지 기합만으로 그들의 마법을 튕겨 냈다. 본래는 기합이 아닌 마나를 활용한 방어였지만, 워낙 짧은 순간 일어난 일이라 마법사들은 그가 정말 기합으로 마법을 튕겨 냈다고 판단했다.
“기, 기합만으로?”
마법을 튕겨 내는 것을 목격한 마법사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끄아악!”
“커헉!”
“크윽!”
“모두 정신 차려요! 마법이 안 된다면 물리적인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마법을 펼칩시다!”
거대한 클레이모어로 단숨에 3명의 마법사를 뭉개버린 오베른이 다시 사냥감을 찾아 주변의 마법사를 향해 쇄도했다.
그러나 그 상대는 일반적인 마법사가 아닌 소환사였다. 게다가 드물게도 마계의 마수를 소환할 수 있는 마수 소환사였다.
“마수 소환, 다크 타란튤라!”
치이익-
마수 소환사에 의해 소환된 다크 타란튤라는 그 몸통만도 3미터가 넘을 만큼 거대했다. 게다가 다리 역시 어찌나 길고 두꺼운지 언뜻 봐도 1미터는 넘어 보였다.
[으히익! 거미?]
다크 타란튤라를 보자마자 오베른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드래곤도 무서워하지 않는 그가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거미였다. 과거 그가 흑마법사에게 붙잡혔던 이유도 바로 이 거미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거미!]
오베른은 다크 타란튤라에게서 멀어지며 다른 곳의 마법사를 향해 움직였다. 마음 같아서는 단숨에 다크 타란튤라를 베어내고 마수 소환사를 처치하고 싶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 마음만 그런 것뿐이었다.
치익-
오베른이 움직이자 다크 타란튤라도 그를 따라갔다. 자신을 소환한 마수 소환사의 명령은 오베른의 척살. 녀석은 맹독의 독침을 오베른을 향해 발사했다.
팅! 팅!
녀석이 쏘아낸 독침은 오베른이 착용하고 있는 풀 플레이트 갑옷에 튕겨졌다. 하지만 오베른의 시선을 뺏기에는 충분했다.
“익스플로전(Explosion)!”
“콜 라이트닝(Call Lightning)!”
오베른이 잠깐 멈칫하는 사이 마법사들이 자신들이 시전할 수 있는 최강의 대인 마법들을 펼쳤다.
주변을 폐허로 만들어버릴 정도의 강력한 화염 폭발과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벼락. 그 외에도 거대한 얼음 기둥이 땅바닥에서 솟구쳤고,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이 오베른을 덮쳤다.
[크윽!]
연달아 폭음이 들리며 오베른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다른 강시들과 달리 키메라 상태에서 강시화가 된 탓에 고통을 느낄 수가 있었다.
“더 몰아붙여! 파이어 붐(Fire Boom)!”
“콘 오브 아이스(Corn Of Ice)!”
“다크 핸드(Dark Hand)!”
자신들의 마법이 효과가 있자 마법사들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다시 마법을 난사했다.
하나같이 공격력이 대단한 마법들.
제아무리 오베른이라 하더라도 더 이상 마법에 의한 피해를 입으면 무너질지도 모른다.
[드래고닉 파워!]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마법들을 보며 오베른이 드래곤의 힘을 끌어올렸다.
그의 전신에서 나타나는 드래곤의 형상.
드래곤의 형상은 마치 먹이를 먹듯 오베른을 향한 마법들을 모두 상쇄시켰다.
[드래곤 슬레이어(Dragon Slayer)!]
오베른의 클레이모어에서 무형무색의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치며 주변의 마법사들을 향해 반월의 형태로 뻗어나갔다.
“크아악!”
“컥!”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마법사 일곱이 목숨을 잃었다. 그 처참한 광경에도 마법사들은 우왕좌왕하지 않고 다크 타란튤라를 소환한 마수 소환사 곁으로 이동했다.
직감적으로 오베른이 다크 타란튤라를 껄끄러워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빌어먹을…….]
마법사들의 행태에 오베른이 이마를 찌푸렸다. 다크 타란튤라를 단숨에 베어버리고 싶었지만, 자신의 클레이모어에 녀석의 체액이 묻는 것마저도 싫었다.
“모두 잘해주셨습니다!”
“마스터!”
오베른이 그렇게 우물쭈물하는 사이, 배 위에서 휴식을 취하던 아렌과 데브라가 흉흉한 눈빛을 발산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네놈이 이들의 수괴인가?]
아렌의 등장에 오베른이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그러는 네놈은 천휘 그 자식이 만든 강시이겠군.”
[…꽤나 위험한 놈이군. 그런 것까지 알고 있다니.]
“천휘 그 자식이 드래곤 산맥을 넘어온 강시술사라는 것 말인가? 후후, 그 정도는 이미 예전에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
천휘의 명성이 하늘을 찌르면서 그의 과거에 관해 많은 것이 밝혀졌다.
아르니안 대륙의 지존 12인과 같이 엄청난 유명세를 떨쳤던 삼존의 1인이라는 사실은 물론이고, 그가 강시를 제작하는 고루문의 문주라는 것도 익히 알려졌다. 더불어 그가 무림의 공적이 되어 드래곤 산맥을 넘어왔다는 사실마저도 아렌은 알고 있었다.
[…살려 둬서는 안 될 놈이로군.]
아렌의 비아냥거림에 오베른은 짙은 살기를 발산하며 클레이모어를 고쳐 쥐었다.
금방이라도 클레이모어를 출수할 기세.
아렌 역시 양손에 날카로운 클로를 교차하며 그의 공격을 대비했다.
[오베른!]
막 아렌에게 쇄도하려던 오베른은 뒤에서 들려오는 부름에 움직임을 멈췄다.
[우리의 목적을 잊었나!]
[…그렇군.]
카이젠의 말에 오베른이 잠시 고민하더니 아렌에게서 등을 돌리며 석문 근처로 향했다.
“저 녀석들이 힘을 합치면 곤란해져. 모두들 저 두 녀석이 힘을 합하지 못하도록 하세요!”
아렌의 지시에 전사 유저들이 오베른의 앞을 가로막았다. 더불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마법사들은 슬로우 마법이나 바인드 마법 등의 이동 제한 마법을 오베른에게 시전하며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빌어먹을!]
각종 마법으로 인해 움직임이 제한되자 오베른의 입에서 처음으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만큼 저들의 마법이 거추장스럽다는 의미였다.
“마법사 분들은 계속해서 슬로우 마법을 걸어주세요! 녀석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전사들이 맡습니다!”
계속되는 지시에 마법사들은 아낌없이 슬로우 마법을 난사했다. 슬로우 마법이 저서클 마법이라 마나 소모가 적은 탓이었다.
“하앗! 쇼크 웨이브(Shock Wave)!”
“파워 글레이브(Power Glaive)!”
느려진 오베른을 향해 전사들이 공격을 퍼부었다. 하나같이 자신들이 펼칠 수 있는 최강의 스킬들.
제아무리 오베른이 풀 플레이트 갑옷을 입었다 해도 그것을 감당하기란 어려워 보였다.
[앱솔루트 실드(Absolute Shield)!]
까앙!
전사들의 스킬이 오베른에게 닿기 직전 그의 주변으로 절대의 보호막이 펼쳐졌다.
방어 마법 중 단연 최고라 일컬어지는 앱솔루트 실드.
드디어 기다리던 로즈란이 강쇠와 돌쇠들을 데리고 귀환한 것이다.
[모두 쓸어버려!]
음메에에!
크워어어!
로즈란의 외침에 강쇠와 돌쇠들이 전사들을 향해 돌진했다. 1백에 달하는 그들의 등장에 전사들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으하하하! 나도 왔다고! 거적때기를 걸치고 있는 녀석들을 향해 발사!]
로즈란에 이어 로렌도 돌아왔다. 그가 이끌고 온 강시들은 바로 다크 엘프 강시들. 1백에 달하는 돌쇠들에 비해 겨우 스물밖에 되지 않는 숫자였지만, 그들이 쏘는 화살은 마법사들에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으드득!
“아렌, 철수해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숫자에서는 앞서고 있던 전황이 이제는 역전되고 말았다. 마제스티 길드의 전사들은 강쇠와 돌쇠들에게 현격하게 밀리는 형국이었고, 마법사들은 쉴 새 없이 날아드는 치명적인 화살에 하나 둘 목숨을 잃고 있었다.
“이제 와서 돌아갈 수는 없어! 르네상스 혈맹의 항구를 부수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임페리얼 길드와 전쟁을 벌이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이러한 여력이 남아 있다니. 아렌의 입장에서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데브라, 나를 지원해라! 저 두 놈만 처치하면 나머지는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처치하면 돼!”
“알았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번 해보자!”
전사들과 마법사들의 발이 묶인 이상 이제 남은 것은 아렌과 데브라뿐이었다.
데브라는 자신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사령들로 하여금 다크 엘프 강시들의 화살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도록 만들었다.
“네 상대는 나다!”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다!]
한결 여유가 생긴 오베른은 지체 없이 아렌의 도발에 응했다. 그것은 카이젠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거인 토르를 피하지 않고 무기를 맞부딪쳤다.
* * *
치열한 접전!
어느 한쪽도 쉽게 무너지지 않으며 접전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강쇠와 돌쇠의 패퇴.
처음에는 압도적인 숫자와 타고난 신력을 이용해 전사들을 밀어붙였지만, 전사들이 대형을 갖추고 스킬을 활용하자 그들은 곧바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강쇠가 홀로 분전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전사들의 합공에 무너지고 말았다.
거기에 더해 다크 엘프 강시들의 화살도 더 이상 마법사들을 쓰러트릴 수 없었다. 마나가 담긴 화살임에도 마법사들이 중첩해서 형성한 방어 마법을 뚫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젠 어떻게 하지?]
외벽 위에서 전황을 살피던 로즈란이 걱정스러운 음성으로 로렌에게 물었다. 가장 명석한 그녀답게 제일 먼저 상황이 썩 좋지 않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대로라면 저 전사들이 석문을 부수고 마을로 향하게 될 것이다. 그리되면 제아무리 우리가 강하다 하더라도 마을이 부서지는 것은 막을 수가 없을 거야.]
[그건 안 돼! 으윽! 벌써부터 피리 소리가 귓가에 웅웅거려.]
[네 말대로 그건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 주인이 준 피리 가지고 있지?]
로렌의 물음에 로즈란이 굳은 얼굴로 로브 안에서 작은 피리 하나를 꺼냈다.
[악마를 깨우자는 말이지, 지금?]
[최대한 피해를 줄여야 하니까. 되도록 우리 선에서 일을 해결하고 싶었는데 말이야.]
[이번 일만 끝나면 농땡이 피우지 말고 수련해야겠어. 주인님도 아닌 이방인들 따위에게 이토록 고전할 줄이야.]
[세월은 빠르게 흘러가는 법이니까. 아무튼 악마를 깨워! 나는 저 무식한 칼쟁이들에게 이 사실을 알릴 테니.]
외벽 너머로 몸을 날리는 로렌을 보며 로즈란도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휴! 주인님은 어쩌다 이런 괴물을 만드셔서.]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악마 고담을 바라보며 로즈란은 고개를 내저었다.
천휘가 만든 이 강시는 자신들이 보기에도 아찔할 정도로 대단했다. 생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어찌나 피부가 단단한지 오베른의 오러 블레이드에도 고작해야 생채기만 날 정도였다.
로즈란 자신의 마법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전력을 다해 펼친 헬파이어에도 눈앞의 괴물은 그저 살짝 그을리기만 할 정도로 마법 저항력이 대단했다.
말 그대로 괴물.
더 이상 다른 말로 표현할 길이 없는 녀석이었다.
[이런 녀석을 깨우는 것 자체가 죄악이지만…….]
로즈란은 떨리는 손으로 피리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피리를 물고는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삐이익!
[꺄아악!]
뇌까지 전해지는 강렬한 고통.
로즈란은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악마 고담을 깨우는 것을 주저했던 이유는 그 피리가 바로 만드라고라의 비명이었기 때문이다.
[명령은?]
악마 고담이 무료한 얼굴로 로즈란을 바라보았다. 천휘는 일부러 녀석에게 이성을 거의 남겨 두지 않았다. 감당할 수조차 없는 녀석에게 이성을 남겨 두었다가는 무슨 일을 감행할지 두려웠던 것이다.
지옥의 유황불을 지배했던 악마 고담은 그렇게 천휘의 꼭두각시로 전락했다.
[쳇! 저 너머에 가면 가슴에 푸른 사자를 표식으로 삼는 이들이 있어. 그들을 모조리 처치해.]
푸른 사자는 마제스티 길드의 문양이었다. 마제스티 길원 모두가 그 문양을 가슴에 표식으로 삼고 있었다.
[접수.]
로즈란으로부터 명령을 받은 악마 고담이 외벽으로 향했다. 여차하면 외벽을 박살낼 태세.
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던 테크토의 빠른 지시로 최악의 사태는 면할 수가 있었다.
“모두 석문을 여세요!”
테크토의 명령에 함께 악마 고담을 바라보던 드워프들이 빠르게 석문의 개폐 장치를 작동시켰다. 그에 마치 현실의 자동문처럼 석문이 천천히 좌우로 갈라졌다.
“문이 열렸다!”
“우아아아! 문 안으로 들어가 마을을 점령하자!”
너무도 굳건하게 자신들의 공격을 버텨 내던 석문이 기어코 열리자 마제스티 길드 소속의 유저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몇몇 간부급 유저들을 뒤따라 석문 너머로 달려갔다.
“저 거대한 건 뭐지?”
어두운 밤인지라 석문 너머에 서 있는 악마 고담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렴풋이 거대한 실루엣만이 비칠 뿐이었다.
“그냥 석상이겠지. 봐. 움직이지도 않잖아.”
“정말이네. 쳇! 괜히 겁먹었잖아?”
거대한 실루엣이 마음에 걸렸지만, 유저들은 드디어 마을을 점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발을 움직였다.
휘리릭!
“커헉!”
“뭐,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마치 뱀이 휘감는 소리가 들리며 선두에서 내달리던 유저 한 명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뒤이어 전방에서 검붉은 불꽃이 피어오르며 사라진 동료의 처참한 모습이 드러났다.
“서, 석상이?”
“움직여?”
“골렘의 일종인가?”
악마 고담을 골렘으로 여긴 유저들은 불타는 채찍에 휘감겨 목숨을 잃은 동료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타올랐다. 대부분 400레벨에 근접한 고수들답게 골렘을 어떻게 처치해야 하는지도 익히 알고 있었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골렘을 처치하려면 핵을 찾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골렘은 목 언저리에 위치하니 일단은 그 부분부터 공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렌과 토르, 데브라를 제외하고는 그나마 가장 명성이 높은 샤칸이라는 유저가 지시를 내렸다. 그는 2자루의 짧은 단창을 즐겨 쓰는 유저로, 유저들 사이에서는 킹코브라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2자루 단창의 움직임이 흡사 코브라와 같다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샤칸은 2자루 단창을 양손에 거머쥐고 악마 고담을 향해 쇄도했다. 힘보다는 민첩함을 중시 여기는 타입인지 그의 움직임은 어쌔신처럼 재빨랐다.
“코브라 트위…….”
샤칸의 단창이 채 출수되기도 전에 지옥불의 채찍이 그가 있던 자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지옥의 유황불이 담긴 채찍은 그뿐 아니라 뒤를 따르고 있던 유저들을 전부 휘감았다.
전멸.
그 압도적인 힘 앞에 석문으로 들어섰던 마제스티 길드의 모든 유저가 목숨을 잃었다.
“어찌 이런 일이!”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본 아렌은 경악했다. 그것은 토르나 데브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존 12인이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실력을 지닌 그들이지만, 조금 전 악마 고담이 선보인 힘은 말 그대로 악마의 힘이었다.
저항 불가.
끝없는 투지로 칭송받았던 아렌마저도 힘이 쭉 빠지게 만들 만큼 악마 고담은 두려운 존재였다.
[어딜 보는 것인가! 드래곤 스크류!]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오베른의 클레이모어가 불을 뿜었다. 그것은 카이젠 역시 다르지 않았다.
마제스티 길드의 주축이라 할 수 있는 아렌과 토르의 죽음.
마지막 남은 데브라는 동원할 수 있는 사령들을 총동원해서 항전했지만, 결국 로렌이 쏘아낸 데몬 이터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