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5장 서전 (76/82)

제5장 서전

파아앗!

“맹주!”

“왜 이제야 들어왔어, 이 자식아!”

천휘가 급히 집으로 돌아와 『오벨리스크』에 접속하자 이미 많은 이들이 마을 회관에 집결해 있었다.

“상황은?”

천휘가 다급하게 로빈에게 물었다.

“이미 드림 길드 측에서 두 척의 캐러벨과 다섯 척의 카락을 이끌고 용병 길드가 정착한 아르고 섬을 향해 닻을 올렸어.”

“녀석들, 서전을 어떻게든 승리로 장식하고 싶은 모양이야. 길드 인원 총 5백 명 정도인 드림 길드에서 이번 전쟁에 무려 250명이나 투입했어.”

“용병 길드는?”

“아르샤빈에게 연락이 온 바로는 대략 400명 정도를 전쟁에 투입할 수 있을 것 같다는데?”

숫자는 확실히 용병 길드가 많았다. 하지만 길드 전원이 최소한 250레벨은 넘어선 드림 길드와 달리 용병 길드는 수준이 다소 떨어졌다.

정보사단의 단장인 슈팅스타의 보고에 따르면 용병 길드의 평균 레벨은 200레벨. 그마저도 몇몇 A급 용병들의 레벨이 높아서 그렇지 대다수의 용병들 수준은 현격하게 떨어졌다.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미온과 눈송이에게 연락해서 빨리 용병 길드의 유저들을 데려오라고 하는 건데.”

미온과 눈송이는 부지런히 대륙과 세틀러 제도를 오가며 유저들을 이곳으로 데려왔다. 그 결과 룬 아일랜드에는 다른 섬보다 몇 배는 많은 인원이 들어차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워낙 숫자가 많아 길드의 4분의 3가량이 대륙에 남게 된 용병 길드를 위해 아르니안 대륙으로 떠난 상태였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동생. 미온 동생과 눈송이는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 라푼도 마찬가지고.”

“알고 있어요. 테크토 형님, 우리가 건조한 함선은 총 몇 척이죠?”

“카락급의 함선 열여덟 척과 캐러벨급의 함선 다섯 척. 그리고 알고 있다시피 갤리온급의 함선 이순신이 있지.”

얼마 전, 패치를 통해 각 함선에도 등급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함선의 등급은 총 다섯 단계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중 세 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갤리온급의 함선은 유일하게 룬 아일랜드에서만 건조에 성공했다.

그 모든 것이 조선 스킬이 고급 레벨에 도달한 테크토 덕분이었다.

그 외 가장 낮은 등급의 함선을 카락이라 불렀는데, 총 30명의 인원과 4개의 포문을 장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다수의 길드에서 주함으로 사용하는 캐러벨은 총 1백 명의 인원과 10개의 포문을 장착할 수 있는 중형 함선이었다.

마지막으로 유일한 갤리온급 함선인 이순신은 무려 5백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었고, 20개의 포문을 장착 가능했다. 그 엄청난 규모와 단단한 외장갑으로 인해 타 길드에서 이순신은 바다의 패왕이라고까지 불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순신을 출항시켜야겠어요. 그리고 캐러벨급의 함선 두 척과 카락급의 함선 열 척도 함께 움직여야겠어요. 포술을 익힌 유저는 몇 명이나 되지?”

“총 서른 명이다. 그중에서 꾸준히 포술을 익혀 중급에 이른 유저만 셋이야.”

로빈의 말에 천휘가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그들을 이번 해상 전투에 모두 투입해. 우리 르네상스 혈맹의 힘을 저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켜 줄 필요가 있겠어. 어쩌면 이번 전쟁은 임페리얼 길드와의 전초전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슈팅스타 님.”

“여기 있습니다, 맹주님.”

천휘의 부름에 슈팅스타가 대답했다.

“정보사단은 구아라 섬과 아제로스 섬의 동향을 살펴 주세요. 우리 혈맹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곳은 그 두 곳밖에 없으니까요.”

“그럴 줄 알고 이미 인원을 배치해뒀습니다. 하지만 확인한 바로는 저쪽에서도 우리 섬에 여러 명의 정보원들을 파견해 우리 동향을 살피고 있습니다. 처리해둘까요?”

“시간이 없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그들을 처리해주세요. 괜히 저들에게 우리의 움직임을 드러낼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렇게 하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슈팅스타가 어둠에 동화되며 사라졌다. 지난 몇 달간 슈팅스타는 어쌔신 중 최초로 400레벨에 오르며, 마음만 먹으면 누구도 그의 은신을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이 아낌없는 르네상스 혈맹의 지원 덕분이었다.

“나머지 단장 분들은 바로 이순신에 올라주세요.”

“그럼 룬 아일랜드는 어쩌려고, 동생?”

단장들이 나선다는 의미는 전투에 관련된 모든 사단을 동원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천휘의 말대로 전투가 가능한 모든 유저들을 동원하게 되면, 일시적으로 룬 아일랜드는 무주공산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에게는 악마의 수호신이 있지 않습니까.”

“오오!”

천휘의 말에 단장들이 모두 환호성을 내질렀다.

악마의 수호신이라는 말은 바로 생령강시로 재탄생한 악마 고담을 일컫는 것이었다.

그동안은 다른 길드의 눈을 피해 천휘가 아공간에 고이 간직해뒀었다. 녀석의 존재를 감췄던 것은 바로 지금과 같은 순간을 위함이었다.

“녀석이 섬을 수호해준다면 모든 유저들이 나선다고 해도 상관없겠지.”

“게다가 우리 르네상스 혈맹이 아니라 해도 이 섬을 지키기 위해 나설 유저들은 많으니까.”

카멜이 말한 이들은 다름 아닌 라푼을 타고 악마의 바다를 건너 이곳 룬 아일랜드에 정착한 유저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룬 아일랜드는 제2의 터전이었고, 르네상스 혈맹은 자신들을 위기에서 구해준 은인이었다. 그들은 르네상스 혈맹에게 있어 룬 아일랜드를 지킬 잔여 병력과 같았다.

“이 서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전쟁 체제에 돌입하도록 하겠습니다. 테크토 형님은 만약을 대비해 드워프 분들과 함께 칸을 지켜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강철 사슬 일족과 화염의 망치 일족은 어느새 르네상스 혈맹의 한 식구로 자리 잡았다. 그들은 칸과 샤이어를 건설하고는 아즈카 부족과 함께 아즈카 산에 머물며 광맥을 탐사하고 광물을 캐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평상시에는 아즈카 산에서 떠나지 않는 그들이었지만, 맹주인 천휘의 부탁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르네상스 혈맹을 도울 것이 분명했다.

“지금 당장 배를 띄우도록 하겠습니다. 목적지는 용병 길드가 있는 아르고 섬입니다!”

* * *

“포문을 열어라!”

“포문을 열어라!”

드림 길드의 마스터 베놈 헌터 도리아의 외침에 부길마 웨폰 브레이커 마곤이 소리쳤다. 그러자 드림 길드가 타고 있는 모든 함선의 포문이 열렸다.

“우리도 포문을 열어라!”

“포문을 열어라!”

그에 질세라 용병 길드의 마스터 아르샤빈도 함선의 포문을 열었다.

7척과 8척의 해상 전투.

용병 길드 쪽의 함선이 한 척 더 많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소유한 캐러벨급의 함선이 한 척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드림 길드에 비해 일주일 정도 늦게 세틀러 제도에 입성한 탓에 함선을 건조할 시간이 많이 부족했던 것이다.

쏴악! 쏴악!

서로가 서로를 향해 포신을 겨눈 채로 바다에는 때 아닌 적막이 흘렀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파도가 함선에 부딪히는 소리뿐이었다.

“쏴라!”

“쏴라!”

퍼엉!

퍼엉!

선공은 드림 길드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이 제작한 소형 대포들이 일제히 용병 길드의 함선을 향해 불을 뿜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용병 길드 측도 질 수 없다는 듯 소형 대포를 연방 쏴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조용했던 바다는 소형 대포의 폭음 앞에 몸살을 앓았다.

콰앙!

“끄아악!”

“마법사들은 방어 마법으로 배를 보호하라!”

소형 대포를 다루는 유저들의 포술이 아직 경지에 이르지 못했는지 서로를 향해 쏜 포탄은 아주 랜덤하게 날아갔다. 그나마 일주일 먼저 세틀러 제도에 정착해 조금이라도 빨리 포술을 익히기 시작한 드림 길드의 포탄이 더 정확했지만, 막상막하의 솜씨였다.

“우리 쪽 피해가 조금 더 큰 것 같군.”

“그렇습니다, 마스터.”

“흠… 역시 아직은 전쟁을 벌이기엔 무리였나.”

사실 이번 전쟁은 용병 길드가 원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계산된 드림 길드의 사전 공작에 의해 전쟁이 발발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사흘 전, 드림 길드의 카락 한 척이 해류를 타고 용병 길드의 근거지인 아르고 섬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들은 당당하게 아르고 섬의 해안에 배를 정박시킨 후 아르고 섬의 사냥터를 돌아다니며 몬스터를 사냥한 것은 물론이고, 용병 길드의 용병들을 처치하기까지 했다.

결국 분개한 용병왕 아르샤빈은 A급 용병들을 보내 그들을 처치했고, 카락 한 척까지 부숴버렸다.

뒤늦게 자신의 급한 성격을 탓하며 아르샤빈은 드림 길드 측에 이 사건의 전말을 말한 후 상당량의 골드를 화해의 뜻으로 보냈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베놈 헌터 도리아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유저들을 이끌고 함대를 구축해 아르고 섬으로 전진해온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르네상스 혈맹 측에서 보내온 캘버린 포 두 문을 사용하라. 목표는 적의 주함!”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측 유저들 중 캘버린 포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이가 없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캘버린 포를 다루기 위해서는 최소한 포술의 레벨이 초급 6레벨 정도는 되어야 했다. 하지만 용병 길드에서 가장 포술이 높은 이도 고작해야 초급 5레벨에 불과했다.

만약 일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캘버린 포는 함선 내부에서 폭발할 위험도 있었다.

“그까짓 위험쯤이야 기백으로 웃어넘길 수 있다! 우리는 진정한 사나이, 용병이니까!”

“오오!”

“우리는 사상 최강의 용병들이다!”

용병왕 아르샤빈의 외침에 용병들이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진정한 사나이들인 용병들의 함성이 내뿜는 기백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캘버린 포를 준비시켜라!”

용병왕 아르샤빈의 외침에 선수와 선미에서 소형 대포에 비해 몇 배는 거대한 캘버린 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찌나 거대한지 적진에서도 그 위용이 한눈에 보일 정도였다.

“저, 저 대포는 뭐야!”

“말도 안 돼! 저런 크기의 대포라니!”

캘버린 포를 한 번도 구경해보지 못한 드림 길드의 유저들은 저마다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모두 침착하라! 어차피 제아무리 대포가 좋아봐야 녀석들의 포술 실력으로는 함선에 닿지도 못한다! 조타수는 함선을 우회해 선수의 충각을 활용하라!”

겉으로는 침착하게 대응했지만, 도리아 역시 사뭇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이 보유한 소형 대포에 비해 몇 배는 큰 포신을 지닌 캘버린 포는 그만큼 위협적이었다.

도리아의 외침에 각 함선의 조타수들은 키를 움직여 함선을 우회시켰다. 그리고 상대의 함선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쏴라!”

갑작스러운 돌진에 아르샤빈은 목청이 터져라 외치고 또 외쳤다.

퍼엉! 퍼엉!

돌진해오는 상대의 함선을 막아내기 위해 각 함선의 포문이 재차 불을 뿜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가까워진 거리 탓인지 조금 전의 공격으로 두 척의 배가 침몰했다. 거기에 더해 도리아가 타고 있는 주함도 캘버린 포에 의해 거의 반파되는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나머지 함선은 여전히 아군을 향해 날카로운 선수의 충각을 들이밀었다.

“빌어먹을! 조타수는 키를 움직여 배를 우회하라!”

충각 공격을 피하고자 아르샤빈이 그제야 조타수에게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각 함선에 배치된 조타수의 조타 스킬 역시 수준이 떨어졌다. 그나마 아르샤빈이 타고 있는 주함의 조타수는 꽤나 수준이 뛰어났지만 그뿐이었다. 다른 함선은 돌진해오는 상대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충각에 배가 반파되는 피해를 입고 말았다.

“이익! 이대로 상대 함선으로 건너가 선상 전투를 펼쳐라! 녀석들을 반드시 제압하라!”

“와아아!”

이렇게 된 이상 용병 길드의 남은 선택은 선상 전투에서 적을 몰살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나마 전면전에는 자신이 있던 용병 길드의 유저들은 반파된 아군의 함선을 버리고 곧바로 드림 길드의 함선으로 건너갔다.

“됐다! 이제 남은 건 적의 주함뿐이다! 적의 주함에 있을 용병왕 아르샤빈을 처치하라!”

“와아아!”

하지만 드림 길드 역시 선상 전투에 자신이 있는 듯 호기롭게 함성을 내지르며 용병 길드의 유저들과 전면전을 벌였다.

* * *

“시작되었다고?”

“그래. 두 시간 전부터 바다에 폭음이 들리기 시작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후후, 내 생각대로 흘러가는군. 룬 아일랜드 쪽의 반응은?”

“그것이…….”

그랜저의 물음에 알무니아가 뒷말을 흐렸다. 아무래도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뭐가 잘못됐나?”

계속되는 그랜저의 물음에 알무니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우리 측 유저들과의 연락이 끊겼다. 아무래도 저쪽에서 손을 쓴 모양이야.”

“…약아빠진 자식.”

그랜저 역시 천휘와 마찬가지로 세틀러 제도에 존재하는 10개의 섬 모두에 첩자를 잠입시켰다. 그들은 길드 차원의 지원을 받는 어쌔신들로, 하나같이 300레벨을 넘어선 고수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르네상스 혈맹의 룬 아일랜드와 마제스티 길드의 구아라 섬에는 350레벨 이상의 초고렙 어쌔신들을 잠입시켰다. 그들의 수준을 감안한 안배였다.

그럼에도 단 몇 시간 만에 모든 어쌔신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말인즉, 그동안 자신 측 유저들의 위치를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 녀석이 어떤 수를 써놓았건 간에 이번 전쟁의 승자는 우리가 될 것이다. 알무니아, 당장 2함대에게 연락해 아르고 섬으로 배를 움직이라 일러. 그리고 3함대의 레만에게도 마찬가지 지시를 내리고.”

“전력을 총동원할 셈이냐?”

“녀석들을 상대하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 어차피 기호지세야. 드림 길드와 용병 길드 간의 전쟁은 전초전이나 마찬가지다. 결국에는 우리 임페리얼 길드와 르네상스 혈맹 간의 전쟁으로까지 불씨가 번지겠지.”

“마제스티 길드 쪽은 어떻게 할 거냐. 그쪽의 전력도 만만치 않아.”

알무니아의 말에 그랜저는 고심하는 눈초리로 말을 이었다.

“아렌, 그 녀석은 오래전부터 최강의 사내라 불리던 놈이다. 하지만 최강이라는 칭호를 천휘 그 자식에게 빼앗기고 말았지. 만약 우리가 르네상스 혈맹과 전쟁을 벌인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 녀석은 룬 아일랜드로 쳐들어갈 것이다. 그리되면 근거지를 잃은 룬 아일랜드는 당황하게 될 테고, 그들이 당황하는 틈을 타 우리는 어부지리를 취하면 되는 것이다. 슬며시 마제스티 길드 쪽에 정보를 흘려. 어떤 정보를 흘려야 하는지는 너도 알고 있겠지?”

“무서운 놈… 언제 거기까지.”

현 시국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그랜저의 말에 알무니아가 질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큭큭! 녀석을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려면 이 정도 암계는 필요 불가결하다. 인정하긴 싫지만 녀석이 지닌 힘은 너무 강대해. 아무리 멍청한 아렌 녀석일지라도 그 정도는 파악하고 있을 거다.”

“알았다. 손을 써두지.”

“그래. 이제 녀석을 끝없는 패배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일만 남았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반드시!”

“최후의 승리자는 우리 임페리얼이다!”

그랜저와 알무니아는 손을 꽉 잡으며 승리를 확신했다. 이 전쟁이 끝나면 자신들은 승리의 축배를 들고 있을 것임을…….

* * *

“그게 사실이야? 아르고 섬 쪽에서 해전이 벌어졌다는 게?”

“당연하지. 아무래도 얼마 전부터 회자되던 드림 길드와 용병 길드 간의 전쟁이 터진 모양이야. 이건 아르고 섬 바로 옆에 있는 고르돈 섬에 근거지를 마련한 내 친구에게 들은 건데, 아침부터 폭음이 터져 나오고 장난이 아닌가 봐. 친구가 속한 천공의 날개 길드에서도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 눈치야.”

“그 정도야? 이거 잘하면 일이 커질 수도 있겠는데?”

“그렇지. 어쩌면 각 길드들이 두 개, 혹은 세 개 정도의 세력으로 동맹을 맺고 사상 유례가 없는 대규모 길드전을 펼칠지도 모르는 일이고. 어서 그날이 왔으면 좋겠는데……. 몸이 근질근질하다니까.”

“큭큭! 나도 마찬가지야.”

컨퀘스트에 위치한 한 주점에서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던 두 사내는 이내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에게 오우거를 연상시킬 만큼 거대한 체구의 사내가 다가갔다.

“방금 그 소리 사실이오?”

“누… 구? 아, 혹시 거인 토르 님?”

“그렇소. 내가 토르요. 조금 전 댁들의 대화에 관심이 있어서 그러는데…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좀 알 수 있겠소?”

“아, 드림 길드와 용병 길드의 전쟁 말이오?”

“그렇소.”

거인 토르의 대답에 두 사내 중 더 호리호리한 체구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들은 그대로요. 아는 지인에게 아르고 섬 인근 해역에서 대규모 해전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소. 나머지는 그저 우리 둘의 추측일 뿐이고.”

“흠… 해전이 일어난 건 확실한 거요?”

“사실이오. 조금 전에 친구와 귓속말로 주고받은 내용이니까.”

“고맙소. 그럼 나는 이만.”

사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토르는 술값을 계산하고 주점을 나섰다. 그리고 그가 주점을 나서자 두 사내도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주점을 나섰다.

* * *

“그게 사실이오?”

“확실하오. 조금 전에 내 확인까지 하고 오는 길이오.”

아렌의 물음에 토르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허허!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로군.”

“무슨 의미죠, 신선 오라버니?”

뜻 모를 말을 흘리는 신선을 바라보며 데브라가 물었다.

“내가 알기로 용병 길드는 르네상스 혈맹과 인연이 깊은 곳이야. 그런 용병 길드가 드림 길드와 전쟁을 벌이고 있어. 길마, 단순히 세력을 놓고 따졌을 때 드림 길드가 강한가, 아니면 용병 길드가 강한가?”

“전쟁을 벌이면 십중팔구 용병 길드가 패할 것입니다. 드림 길드는 그만한 저력이 있는 길드이니까요.”

“허허! 역시 그렇군.”

계속 뜻 모를 이야기만 늘어놓는 신선을 보며 데브라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 세틀러 제도에서의 세력 판도는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르네상스 혈맹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지. 가장 먼저 이곳에 입성한 곳도 그곳이고, 유일하게 섬의 비밀을 알아낸 곳도 그곳이니 말이야. 허허! 참으로 무서운 사내야, 천휘라는 그 청년은.”

“쳇! 갑자기 그 여우같이 요악스러운 놈 칭찬은 왜 하는 겁니까?”

신선의 말에 거인 토르가 불만을 토로했다. 과거 화신의 사막에서 그에게 패배했던 것이 아직까지 쌓여 있는 모양이었다.

“허허! 자네는 여전히 성정이 불같구먼. 하나, 지금부터 내 말을 자른다면 벽력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할 것이야.”

찌지직!

어느새 신선의 어깨 위로 떠오른 번개의 정령 라이오너를 보며 거인 토르는 마른침을 삼켰다.

“상대는 여느 길드에 비해 최소 다섯 배의 힘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르네상스 혈맹이야. 그런 그들이 자신들과 인연이 있는 용병 길드가 전쟁에서 패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까?”

“무슨 말인지 알겠군요. 신선 님은 저들이 용병 길드를 도와 룬 아일랜드를 나설 것이라 판단하시는 것이로군요.”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드림 길드는 임페리얼 길드와 동맹 관계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요. 임페리얼 길드는 르네상스 혈맹에게 가장 적대적인 감정을 품고 있는 곳이니 어쩌면…….”

데브라의 말에 신선이 확신에 찬 얼굴로 입을 열었다.

“허허! 그 말이 사실이라면 역시나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닐 수 없군. 모르긴 몰라도 두 곳 모두 용병 길드와 드림 길드를 향해 지원 병력을 파견했을 것이네. 아마 그 규모는 지금껏 유례없던 대규모일 가능성이 크지. 두 곳 모두 상대 세력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말이야.”

신선의 대략적인 설명이 끝날 때까지 아렌은 잠자코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 후, 짧은 적막이 흐르고 아렌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신선 형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건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로서는 르네상스 혈맹과 임페리얼 길드의 힘을 꺾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이 아니라면 우리는 영원히 두 길드를 뛰어넘지 못할 것입니다. 데브라, 넌 지금 당장 접속해 있는 유저들을 컨퀘스트의 항구로 집합시켜. 토르, 당신은 함선을 집결시켜 주시오. 한시가 급하오.”

“그렇게 하지.”

데브라와 토르가 아렌의 지시를 이행하고자 회의실을 벗어났다.

“나머지 분들은 지금 당장 주함에 올라주십시오. 우리는 지금 아제로스 섬의 항구도시 카라얀을 공격할 것입니다. 서두르세요! 어서!”

아렌은 결국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하늘이 내려 준 최고의 기회!

아렌은 지금이 아니라면 르네상스 혈맹을 약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면 세틀러 제도의 세력 판도는 뒤바뀔 것이다. 주축 세력이었던 르네상스 혈맹과 임페리얼 길드는 이번 전쟁으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 것이고, 반면 아렌 자신이 이끄는 아제로스 길드는 이번 일을 계기로 크게 도약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비겁하다고 욕해도 좋다! 최강이라는 칭호만 다시 쟁취할 수 있다면!’

누가 봐도 비겁한 수법이었다. 그러나 아렌 자신은 그런 손가락질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았다.

주어진 상황에 최적화된 선택을 하는 것. 그것이 올바른 길이었다.

* * *

챙챙!

“죽어라! 트위스트 소드!”

“누가 할 소리! 너나 죽어! 플레임 너클!”

선상에서의 전투는 그야말로 백중지세였다. 전력상으로는 분명히 드림 길드가 앞섰지만, 용병 길드는 전력의 열세를 기백으로 메우며 선전하고 있었다.

“덤벼라! 도리아!”

“그렇지 않아도 그럴 참이었다! 데모닉 제너럴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내 진작부터 견식하고 싶었으니까!”

“지존 12인 중 한 사람이라는 호칭이 갖는 의미를 오늘 내 똑똑히 알려 주마! 하앗!”

용병왕 아르샤빈의 쌍검이 베놈 헌터 도리아를 향해 쇄도했다. 그러자 베놈 헌터 역시 작은 단검 한 자루를 꺼내 그의 공격을 막아갔다.

치이익-

“쿡쿡! 과연 베놈 헌터로군. 그저 스치기만 했을 뿐인데, 레어 갑옷이 타들어가다니 말이야.”

“네 녀석의 쌍검도 명불허전이다. 그 짧은 틈을 노리고 내 손등을 벨 줄이야.”

용병왕 아르샤빈은 물론이고, 베놈 헌터 도리아 역시 최근에 400레벨에 도달해 퍼펙트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섰다. 비록 아르샤빈이 5레벨 정도 더 높았지만, 고수들 간의 대결에서 그만큼의 차이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였다.

“다시 간다!”

“하아앗!”

아르샤빈과 도리아가 맞붙고 있는 사이, 드림 길드의 후위에서 엄청난 숫자의 함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나 숫자가 많은지 수평선 전체가 펄럭이는 깃발로 뒤덮일 정도였다.

“마, 마스터!”

카앙!

“무슨 일이야!”

아르샤빈이 도리아의 단검을 신경질적으로 쳐내며 소리쳤다.

“드림 길드의 지원군이!”

“지원군?”

외로운 늑대라 불리는 A급 용병 울프의 말에 아르샤빈이 놀란 눈으로 수평선 너머를 살폈다. 과연 그곳에는 익숙한 깃발의 함선 수십 척이 이쪽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이 약삭빠른 자식! 언제 임페리얼 길드를 끌어들인 것이냐!”

“전쟁이라는 건 단순히 힘만 세다고 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아르샤빈! 바로 이 머리를 써야 하지, 머리를!”

육지에서의 전투라면 용병들인 자신들이 질 리가 없겠지만, 해상에서의 전투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육지에서라면 저토록 엄청난 수의 상대 지원군을 보면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는 것이 묘수가 되었겠지만, 바다 위에서는 그마저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이렇게 마을을 함락당해야 하는 건가.’

처음 드림 길드와 해상 전투를 펼칠 때만 해도 어렵사리 건설한 자신들의 항구 마을 베론은 지킬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멀리 보이는 대규모 함대를 보고는 그런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최소 30척을 상회하는 대규모 전단!

순식간에 아르샤빈의 전의는 땅바닥까지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었다.

“마스터! 어찌할까요?”

“…….”

울프의 물음에 아르샤빈은 말없이 공허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런데 놀랍게도 울프의 눈빛에는 여전히 굶주린 늑대와도 같은 전의가 깃들어 있었다.

‘그래, 나는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 이대로 내가 무너진다면 나를 믿고 따라온 저 사내들은 어찌 되겠는가!’

굳은 결의가 담긴 울프의 표정에서 아르샤빈은 자신의 어깨에 수백에 달하는 용병들의 미래가 달려 있음을 깨달았다.

“어찌하긴 뭘 어째! 눈앞에 거슬리는 녀석들을 모두 처치하고, 저 녀석들까지 모조리 부숴버려야지!”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르샤빈의 지시에 울프는 감복한 듯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뒤로 돌아 바다가 떠나가라 소리쳤다.

“뭣들 하는 거야! 고작 이 정도로 진정한 용병이라 할 수 있겠어! 모조리 부숴버려!”

“우오오오!”

울프의 외침과 함께 드림 길드와 전투를 벌이던 용병들이 우렁차게 함성을 내질렀다.

진정한 사나이들의 함성.

그것이 드넓은 바다를 뒤흔들고 있었다.

* * *

“생각보다 용병 길드의 저력이 대단한가 보군. 그렇지 않으면 도리아 녀석이 우둔했던가.”

“내가 보기에는 후자 같은데? 용병 길드는 말 그대로 무식한 사내들의 집단이야. 그런 녀석들을 상대로 저토록 고전 중이라니.”

알무니아의 말에 그랜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용병 길드를 무시하지 마라. 저들의 저력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 레만 녀석에게 일러 제2함대로 하여금 드림 길드를 도우라고 해.”

“제1함대와 제3함대는?”

“녀석들의 근거지 베론을 무너트린다. 다시는 재기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부숴버리겠어.”

용병 길드는 다른 길드에 비해 자금력이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의 끈끈한 결속력은 대단했지만, 하나같이 하루 벌어 하루를 연명하던 용병들이다 보니 길드의 자금 사정이 좋아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만약 이번 전쟁으로 마을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마을을 지을 건축 자재를 다시 사들일 여력이 없는 용병 길드는 그대로 파산 지경에 이르고 말 것이다.

“제1함대와 제3함대는 우회하여 베론을 친다!”

“제2함대는 드림 길드를 도와라!”

“와아아!”

그랜저의 지시대로 철혈의 전사 레만이 이끄는 제2함대가 선상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드림 길드의 함선으로 다가갔다.

쿠웅!

“용병 길드 녀석들을 조져 버려!”

거칠게 함선을 가져다 댄 레만은 제2함대 소속의 유저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각 함선에 탑승하고 있던 30명의 유저들이 일제히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드림 길드의 함선 위로 뛰어들었다.

“으윽, 비열한 자식들!”

“비열은 개뿔!”

어느 정도 백중지세의 전투를 벌이던 용병 길드의 유저들은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순식간에 적의 숫자가 2배로 불어난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차디찬 시체가 되는 것뿐이었다.

“이 개자식들!”

주변의 동료들이 빠르게 죽어나가자 아르샤빈이 분노하며 쌍검에 오러 블레이드를 주입했다.

강렬하게 불타오르는 아르샤빈의 오러 블레이드에 도리아가 질린 표정으로 뒤로 물러났다.

“내가 도와주지!”

그러자 철혈의 전사 레만이 그를 지원했다. 지존 12인 중 한 사람인 용병왕 아르샤빈이니만큼 2 대 1의 대결도 결코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캉!

쿠웅!

“크윽!”

도리아의 재빠른 공격을 막아냄과 동시에 철혈의 전사 레만이 거대한 도끼를 횡으로 베어가며 용병왕 아르샤빈의 복부를 강타했다.

‘이제는 정말 끝인가.’

아무리 발악해도 수적 열세는 만회할 수 있을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일대일 대결에서도 쉽게 우위를 점하지 못했던 도리아이건만, 이제 그에 준하는 실력을 지닌 레만까지 합세하자 상황은 점차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스터! 스무 척의 함선이 베론을 향해 전진하고 있습니다!”

“뭐, 뭐라고?”

울프의 외침에 힘겹게 둘과 대치 중이던 아르샤빈의 고개가 절로 베론을 향해 돌아갔다. 과연 울프의 말대로 대략 20척의 함선이 베론을 향해 포문을 열고 포격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아악!

“커허억!”

“이거, 이거 우리가 너무 얕보인 모양이군. 우리를 앞에 두고도 한눈을 팔다니 말이야.”

“멍청한 자식. 큭큭!”

그 순간, 도리아의 단검이 아르샤빈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맹독이 발린 단검인지라 아르샤빈은 곧바로 끔찍한 고통에 저절로 비명을 토해냈다.

‘아직 무너질 수 없어! 베론을, 베론을 지켜야 해!’

베론에는 르네상스 혈맹에서 보내온 또 다른 캘버린 포 한 문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임시방편일 뿐, 그것만으로는 저들을 저지시킬 수 없는 노릇이었다.

퍼엉! 퍼엉!

그 순간, 고통에 신음하던 아르샤빈의 귓가에 대포의 폭음이 들려왔다.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베론을 향한 함포 사격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 저들은!”

“마, 말도 안 돼!”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실실 웃음을 쪼개도 시원찮을 도리아와 레만이 놀란 표정으로 폭음이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들의 반응을 확인하며 아르샤빈도 그쪽을 향해 힐끗 고개를 돌렸다.

“아아, 르네상스 혈맹의 깃발입니다! 르네상스 혈맹이 우리를 지원해주고 있어요!”

감격한 듯한 울프의 외침에 아르샤빈은 빠르게 레만과 도리아를 향해 쇄도했다. 그리고 쌍검을 좌우로 베어내어 둘의 가슴에 커다란 자상을 남겼다.

“이거, 이거 내가 너무 얕보인 모양이군. 날 앞에 두고도 한눈을 팔다니 말이야. 쿡쿡!”

조금 전, 도리아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며 아르샤빈은 득의에 찬 미소를 띠었다.

기다리던 지원군이 도착했다. 그것도 세틀러 제도를 뒤흔드는 최강의 지원군이!

그들의 존재를 확인한 아르샤빈과 용병 길드 유저들의 눈에 꺼져 가던 전의의 불꽃이 다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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