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3장 대형 길드의 정착 (74/82)

제3장 대형 길드의 정착

“보입니다! 전방에 섬이 보입니다!”

돛대의 정상에서 파수꾼 역할을 하던 사냥꾼 유저가 희열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오오! 드디어!”

“빌어먹을! 드디어 찾은 건가?”

섬이 보인다는 사냥꾼 유저의 외침에 피폐한 몰골의 유저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그들의 얼굴에 어느새 생기가 새록새록 돋아나고 있었다.

“그랜저!”

“나도 들었다! 전 함대에게 일러 노를 저으라고 해. 해가 지기 전에 섬에 정박해야 할 거다.”

“그래야겠지.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말이야.”

그랜저의 지시에 알무니아가 함장실을 나서며 유저들에게 하나하나 지시를 내렸다.

그랜저는 길드의 모든 자금력을 동원해 총 5척의 함선을 제작했다. 하나같이 2백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중형 함선으로, 이 5척을 제작하기 위해 그랜저는 그동안 모아놓은 길드 자금을 모조리 쏟아 부어야 했다.

게다가 먼 바다를 항해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해 항해에 필요한 스킬을 확보하는 것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했음에도 항해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바다의 포식자라 불리는 샤크맨의 습격은 빈번하게 일어났고, 간간이 나타나는 해왕류 몬스터들은 그랜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또한 식량과 식수의 확보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유저들의 원성도 감내해야 했다.

그렇게 무려 한 달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쓰디쓴 인고의 세월이 지나고 달콤한 수확의 계절이 드디어 도래한 것이다.

“배를 정박하라!”

* * *

덜컹!

“아렌!”

방문이 거칠게 열리며 검붉은 로브를 휘날리는 데브라가 안으로 들어섰다.

쿵!

“찾았어?”

데브라의 반응에 아렌이 반색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다로 내보낸 데빌들이 드디어 섬을 찾았어! 사령들이 모아온 정보를 따져 봤을 때 세틀러 제도가 확실해!”

“잘했어! 당장 신선 형님에게 알리고 요한과 토르, 그리고 브리튼도 이곳으로 데려와줘!”

“알았어.”

데브라가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제스티 길드의 주축 간부들인 지존 12인들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드디어 찾았다고?”

“네, 형님. 데브라의 데빌들이 섬을 찾았다고 합니다. 위치를 따져 보니 얼추 우리가 목표로 삼았던 세틀러 제도인 듯합니다.”

“으하하하! 마침내 이 지긋지긋한 바다 위 생활의 종착점이로군!”

“이로써 세 번째인가?”

한껏 들뜬 분위기가 빛의 외침 요한의 한마디에 확 가라앉았다.

“세 번째라……. 참으로 듣기 거북한 말이로군.”

“현실은 직시해야겠죠. 우리는 분명히 세 번째로 섬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세틀러 제도의 패권은 우리가 차지할 겁니다!”

아렌의 말에 모두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지난 수년간 지존의 위치에서 아르니안 대륙의 패권을 차지해왔던 그들이었다.

지존이라 불리는 그들은 단 한 번도 패배감을 맛보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가슴속에는 짙은 패배감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후에 활화산과 같이 폭발해 상대의 숨통을 끊어놓을 것이다.

* * *

그랜저의 임페리얼 길드를 시작으로 대형 길드들이 속속 세틀러 제도에 진입했다. 그들은 르네상스 혈맹과 마찬가지로 세틀러 제도 안으로 진입해 섬의 위치와 규모들을 확인했다.

그러는 와중에 르네상스 혈맹이 차지하고 있는 룬 아일랜드의 위치도 발견되었다.

“저곳인가?”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야.”

“후! 벌써 항구 마을까지 만들었군.”

“웬만한 대륙의 마을보다 규모가 커. 게다가 완벽한 요새화를 위해 석벽까지 만들고 있어.”

“흠.”

그랜저는 르네상스 혈맹의 맹주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밥버러지. 항구 마을 칸을 바라보는 그랜저의 표정이 사악하게 일그러졌다.

“알무니아, 저 마을 위로 깜짝 선물을 안겨 줘라.”

“그래도 상관없을까?”

“당연하지. 어차피 이곳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전장. 녀석들에게 인사를 해두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랜저의 말에 알무니아가 비릿한 미소를 띠며 선수로 걸어갔다. 그리고 마법 지팡이를 하늘로 추켜올리며 진언을 읊었다.

“태양의 염이여, 하늘을 부수고 땅을 꺼트리는 불의 비를 내릴지니! 파이어 레인(Fire Rain)!”

알무니아의 진언과 함께 하늘에서 거대한 화염구가 비처럼 칸 위로 쏟아졌다.

하나하나가 3서클 마법인 파이어볼의 위력을 담고 있는 불의 비!

만약 불의 비가 떨어진다면 칸은 삽시간에 불바다로 변하고 말 것이다.

“으하하하! 타올라라! 타올…….”

잠시 후 벌어질 참극을 예견한 듯 그랜저가 미리 광소를 터트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하늘에서 떨어지던 불의 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나의 막에 의해 모조리 소멸되고 있었다.

“이, 이럴 수가!”

“마, 말도 안 돼!”

그랜저는 물론이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다른 임페리얼 길드의 유저들도 함께 경악성을 내질렀다.

파이어 레인은 무려 7서클의 마법이다. 게다가 광역 마법인지라 제아무리 위대한 마법사라 해도 파이어 레인을 모두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알무니아가 펼친 파이어 레인은 소리 없이 소멸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마을에 있는 그 누구도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섬 전체에 펼쳐진 거대한 마나의 막!

그 놀라운 광경에 그랜저와 임페리얼 길드는 떡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뭐, 뭐지, 이 섬?”

마치 귀신에 홀린 듯 한 유저가 룬 아일랜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

순식간에 말이 없어진 임페리얼 길드의 유저들. 그들의 얼굴에 어느덧 짙은 패배감이 어렸다.

* * *

“오늘까지 총 몇 개의 길드가 들어선 거지?”

“모두 일곱 곳이야. 이제 남은 것은 정확히 두 개의 섬이지.”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단해. 어떻게 그렇게 빠른 시일 내에 배와 항해도까지 확보한 거지?”

“바보야, 이번 업데이트와 동시에 각 마을에 세틀러 제도와 관련된 여러 퀘스트가 풀려서 그런 거지.”

“흠… 그런가?”

로빈의 말처럼 세틀러 제도의 위치가 공개되면서 수많은 퀘스트들이 생겨났다. 이에 대형 길드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퀘스트를 해결하고 함선을 제작해 여기까지 도달한 것이다.

“테크토 형님, 샤이어의 건설은 어떻게 되어가죠?”

샤이어는 중앙 평원에 건설 중인 도시의 예비 이름이었다. 테크토가 이끄는 건설사단이 밤낮을 아껴 가며 샤이어 건설에 총력하고 있었다.

“최소한 3개월 이상은 걸릴 것 같다. 우리가 원하는 규모의 도시를 만들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지. 지금은 우리 르네상스 혈맹만 이 섬을 차지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대형 길드에 속하지 않은 유저들도 대거 유입될 테니까 말이야.”

“고생 좀 해주세요. 이 룬 아일랜드가 샤이어 최대의 섬이 되려면 샤이어의 건설은 필수 불가결하니까요.”

“알았다.”

아직도 아르니안 대륙에는 수많은 유저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형 길드처럼 거대한 함선을 만들 수 있는 자금력이 되지 않아 여전히 바울과 모나크, 페난 세 곳의 마을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각 길드들의 동향을 살펴야겠군.”

“정보는 곧 힘이니까요. 카멜, 저번에 부탁한 어쌔신 유저들의 실력은 파악해봤어?”

“네가 부탁해서 알아보기는 했다만 그다지 쓸 만한 인물들이 없던데?”

천휘의 물음에 카멜이 부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단 한 명의 실력자도 없단 거야?”

“그렇지는 않은데, 몇 명 빼고는 다들 200레벨 초반에 머물러 있어.”

“그 몇 명이 어떤 이들인데?”

“어쌔신 중 가장 뛰어난 유저는 우리 전투사단에 적을 두고 있는 슈팅스타라는 유저야. 놀라지 마라. 그의 레벨은 무려 375야.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전투 능력이야. 암살을 주로 하는 어쌔신임에도 웬만한 고레벨 전사들보다 월등한 전투력을 보여 주고 있어.”

“호오!”

카멜의 말에 모두가 흥미로운 얼굴로 경청했다.

“그리고 또 주목할 만한 유저는 에펠이라는 여성 유저야. 그녀의 레벨은 300대 초반인데, 현실에서 경찰대학을 다니고 있는 수재라고 하더라. 몸놀림이 좋은 것은 물론이고, 여성 유저답지 않게 배짱도 두둑해.”

“나머지는?”

“그리고 그나마 쓸 만한 유저라면 꽃남꽃녀사단에 적을 두고 있는 솔비, 담비, 고비라는 여성 유저들? 그 아이들도 300레벨을 훌쩍 넘겼는데, 제법 실력이 뛰어나.”

“삼비 자매? 큭큭! 그렇단 말이지.”

카멜이 마지막에 설명한 이들은 다름 아닌 자신의 제자들이었다. 천휘는 그녀들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내가 한번 만나볼게. 아, 그리고 이번에 다시 페난 마을로 돌아갈 유저를 선발해야 하는데… 누가 갈래?”

“페난 마을은 왜?”

“이곳에 필요한 물품들도 구입해야 하고, 더불어 아직 이곳으로 오지 못한 유저들도 데려와야 하잖아. 내가 보기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수다나 떠는 미온과 눈송이가 갔으면 하는데. 어때?”

천휘의 말에 미온과 눈송이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우리가 언제 수다나 떨었다고 그래?”

“맞아용! 우리도 나름대로 혈맹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고용!”

“알아. 아는데, 그래도 너희 둘이 페난 마을로 가줘야겠어.”

“대체 왜!”

계속되는 천휘의 말에 미온이 뿔난 목소리로 물었다.

“그나마 인지도가 높은 너희 둘이 가야 유저들을 데려오기 쉬울 것 아냐. 나머지 단장들은 솔직히 너희 둘만큼의 인지도가 없잖아. 안 그래?”

“흠… 그런가?”

“확실히 언니랑 저랑 인기가 많긴 하잖아용.”

두 사람의 반응에 거의 반쯤 넘어왔다고 생각한 천휘는 뒤이어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다.

“무엇보다 남성 유저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는 너희 둘만큼 적임자도 없지. 우리 혈맹 최고의 미녀들이니까.”

“역시 그렇지?”

“천휘 오빠 말대로 우리가 가야겠네용, 언니.”

‘큭큭!’

그렇게 두 사람을 완벽히 꼬여 낸 천휘는 회의를 마치고 카멜과 함께 그가 언급했던 어쌔신들을 만나기 위해 마을 회관을 나섰다.

“저 남자야?”

“그래. 네가 보기에도 발군의 실력이지?”

“그러게.”

전투사단은 평원의 몬스터 잔당을 퇴치하기 위해 오늘도 사냥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은 그들대로 레벨을 올릴 수 있어 좋고, 혈맹은 혈맹대로 골칫거리인 몬스터들을 처치할 수 있어 서로의 이해타산이 잘 들어맞았다.

“슈팅스타 님.”

“아, 카멜 님.”

카멜이 부르자 막 진흙 리자드맨을 처치한 슈팅스타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맹주가 슈팅스타 님을 좀 뵙자네요.”

“이거 영광인데요? 맹주님께서 절 뵙자고 하다니.”

“안녕하세요. 이제야 인사를 하게 되네요. 천휘라고 합니다.”

“슈팅스타입니다.”

서로 통성명을 한 후 천휘는 곧바로 이번 일에 대한 것을 설명했다.

“슈팅스타 님도 알다시피 이번에 여러 대형 길드가 이곳 세틀러 제도에 정착했습니다. 아마도 조만간 세틀러 제도의 패권을 놓고 굵직굵직한 전투가 일어나리라 봅니다.”

“그거 흥미진진한 이야기군요.”

“하하하! 과연 믿음직스럽네요. 하지만 우리 르네상스 혈맹이 제아무리 최초로 이곳 세틀러 제도에 정착했다고는 해도 기본적인 전투력에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는 본래 소규모 친목 길드들의 규합이 아니겠습니까?”

“맹주님 말씀이 맞지요. 저 역시 아는 친구를 따라 혈맹에 가입하게 되었으니까요.”

슈팅스타의 말에 천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때문에 우리 혈맹이 저들과의 패권 다툼에서 우위에 서려면 무엇보다 정보가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들이 어떤 식으로 섬을 개척해나가는지, 혹은 저들의 힘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등 여러 정보를 알고 있다면 우리 혈맹이 충분히 이 세틀러 제도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다고 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저 역시 맹주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비록 친목 길드에서 출발했다고는 하나, 지난 두 달여 동안 우리 르네상스 혈맹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습니다. 대륙의 어떤 마을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항구 마을 칸을 건설했으며, 악마 고담 레이드에서 당당히 승리했습니다. 더불어 우리 전투사단과 마법사단, 그 외 모든 사단에 속한 유저들의 수준도 괄목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맹주님의 말씀처럼 저들에 대한 정보만 확실하다면 우리는 패하지 않을 겁니다.”

생각보다 슈팅스타는 제법 식견이 넓은 유저인 듯했다. 거기에 더해 레벨도 높고 무력도 발군! 더 두고 볼 것도 없이 정보 총수의 적임자는 이 사람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 일을 맡아주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이번 일이라면…….”

“정보에 대한 모든 권한을 슈팅스타 님께 일임하겠습니다. 그 외에도 몇몇 분들과 제 휘하의 날랜 강시들을 보내드릴 테니, 암중으로 활약할 정보사단을 구성해주세요. 단장 직은 슈팅스타 님께 드리겠습니다.”

“흠… 정보사단이라…….”

천휘의 말에 슈팅스타가 잠시 고심하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암중에서 활약한다는 대목에서 걸리는 모양이었다.

“원하신다면 혈맹 차원에서 활동비를 드리겠습니다. 차후에 새로운 던전을 발견하게 된다면 우선적으로 정보사단에게 레벨 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도 해드리겠고요. 또한 제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 중 일부를 내놓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이번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군요. 잘 알았습니다. 그럼 맹주님의 말을 따르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닌자거북이!”

파아앗!

슈팅스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천휘는 곧바로 자신의 주변을 호위하는 닌자거북들을 불렀다.

“헉! 이들은?”

닌자거북의 등장에 놀란 듯 슈팅스타의 두 눈이 커졌다. 섀도우 어쌔신의 상위 직업인 다크 섀도우로 전직한 그조차도 닌자거북의 은신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암중으로 저를 호위하는 녀석들입니다. 당연히 강시들이죠. 이들의 수장은 저 녀석, 레오나르도입니다. 다른 녀석들과 달리 지성도 지니고 있으니 꽤나 쓸 만하실 겁니다.”

“…하하! 과연 맹주님이시네요. 이런 강시들이라니.”

슈팅스타는 진정 감복한 눈빛으로 천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는 약간의 두려움마저 엿보였다.

“그리고 다크 엘프 강시 스무 명도 슈팅스타 님의 휘하에 맡기겠습니다. 다른 유저 분들과 함께 그들을 잘 활용해 타 길드의 정보를 모아주십시오.”

“그렇게 하지요.”

이로써 르네상스 혈맹이 할 수 있는 준비는 모두 마쳤다. 이제 남은 것은 자신들에게로 돌아올 적들의 화살을 어떻게 막아내느냐 하는 것이었다.

‘건드리지 마라. 난 그저 조용히 『오벨리스크』를 즐기고 싶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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