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권 - 제1장 몬스터 소탕 (72/82)

제1장 몬스터 소탕

르네상스 혈맹이 룬 아일랜드에 정착한 지도 벌써 한 달이 흘렀다.

혈맹이 처음 근거지로 삼았던 항구 마을은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 이제는 제법 마을의 형태를 온전히 갖춰가고 있었다. 게다가 이제 항구 마을에는 칸(Khan)이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붙었다.

하지만 아직도 룬 아일랜드 중앙에 위치한 평원 공략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워낙 많은 몬스터들이 평원을 점령하고 있는 탓에 유저들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소탕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이대로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 천휘는 명품사단과 건설사단을 제외한 모든 혈맹의 전력을 한데 집결시켰다.

“오늘은 여러분께 미리 공고를 드린 대로 섬 중앙의 평원을 점령하고 있는 몬스터들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을 해볼까 합니다. 이제까지의 산발적인 소탕 작전이 아닌, 우리 르네상스 혈맹의 전력을 쏟아 부어야 하는 만큼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허리까지 굽히며 부탁하는 천휘의 모습에 유저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당연히 참여해야지!”

“드디어 맹주의 진정한 힘을 볼 수 있겠어!”

이미 천휘는 『오벨리스크』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유명 인사가 되었다.

최강의 사내 아렌을 꺾은 진정한 최강의 사내. 게다가 세틀러 제도를 발견한 르네상스 혈맹의 맹주.

이제 막 『오벨리스크』를 시작하는 초보 유저라 할지라도 천휘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그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천휘는 단장들과 함께 회의실로 들어섰다. 유저들에게는 따로 한 시간 후에 작전이 시작될 것임을 알렸다.

“너에 대한 기대가 큰데?”

옆에 서 있던 카멜의 비아냥거림에 천휘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큰일이야.”

“뭐가 큰일인데?”

“룬 아일랜드의 몬스터들은 강해. 개중에는 500레벨이 넘는 준보스급도 있어. 우리는 그런 녀석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뒷말을 흐리는 천휘를 보고 카멜과 로빈이 웃으며 말했다.

“너 설마 유저들이 네게 의존할까 봐 그러는 거냐?”

“에이, 설마. 명석한 우리의 맹주님께서 그런 저질스러운 생각을 하시겠어?”

“뭐야, 그 말의 의미는?”

속을 살살 긁는 카멜과 로빈의 말에 천휘는 살짝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바보야, 저들은 네 힘에 의존하려는 천덕꾸러기들이 아니야. 모두들 자신의 힘에 절대적인 자신감과 믿음이 있을 정도로 강해.”

“우리 르네상스 혈맹에는 그런 나약한 마음을 품고 있는 유저는 단 한 명도 없어. 저들은 모험을 즐길 줄 알고, 위기를 극복할 줄 아는 진정한 게이머들이야. 저들이 네게 열광하는 건 그저 너의 진정한 무력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하고 싶은 것뿐이야.”

“막상 전투가 시작되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거야. 그게 우리 르네상스 혈맹의 정신이기도 하니까.”

“…너희.”

카멜과 로빈의 말에 천휘는 자신의 생각이 옳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자신이 세웠던 계획의 전면 수정이 이뤄져야 할 것 같았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유저들 간의 불협화음이야.”

“불협화음이요?”

갑작스러운 하린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잊었어? 우리는 길드가 아니라 혈맹이야. 각자의 생각과 의견이 다른 혈맹이라고. 이번에 대규모 몬스터 소탕을 위해 유저들의 직업군을 고려, 열 명씩 소규모 부대를 만들었지. 즉, 이건 득이 될 수도 있지만 실이 될 수도 있어.”

“흠… 그런가?”

하린의 말이 옳은 것도 같았지만 왠지 모르게 반발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옳지 못한지 집어낼 수는 없었다.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은데?”

“테크토 형님?”

하린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던 여느 단장들에 비해 테크토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그녀의 생각을 반박했다.

“무슨 소리죠?”

“확실히 맹주가 생각해낸 방법은 아주 효과적이야. 더욱이 이번 일을 통해 하린 당신이 말했던 불협화음이 사라지고 진정한 화합이 일어나게 될 거야.”

“무슨 근거로 그렇게 자신하죠?”

말도 안 되는 억측이라는 듯 하린이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맹주가 선택한 방식은 과거 몽고 제국의 군사 편제지. 단장들을 백인장이라고 한다면, 그들과 친분이 있고 리더십이 뛰어난 유저들을 십인장이라고 볼 수 있겠지.”

“그게 뭐가 어떻다는 거죠?”

“몽고 제국은 수십, 아니 수백의 서로 다른 부족들이 결합해 만든 대제국이지. 우리처럼 고작해야 열 개가량의 소모임이 만든 혈맹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이야기야. 그들은 하린 당신이 말한 불협화음을 이 군사 편제로 해소시켰어. 그리고 부족 전체의 화합을 이끌어냈지. 비록 우리는 그들처럼 치열하지도 강하지도 않지만, 충분히 만족할 만한 승리를 연출해낼 수 있을 거야.”

“…….”

테크토의 말에 하린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는 앞에서 화를 토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디 두고 보죠.”

“얼마든지.”

갑자기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는 두 사람을 보며 천휘를 비롯한 단장들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결국 하린이 자리를 떴고, 눈송이와 미온이 그녀를 따라나섰다.

“내가 뭐 잘못했나?”

“꼭 그런 건 아니지만…….”

하린은 자존심이 강했다. 항상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때만은 언제나 진지하고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하지만 테크토는 그런 그녀의 성정을 잘 알지 못하고 무작정 그녀의 의견에 반박을 하고 나선 것이었다.

“뭐, 내가 달래볼게.”

“그래, 너밖에 없다. 카멜, 당장 가봐.”

“그래.”

카멜까지 나서자 회의실의 분위기는 더욱 싸늘해졌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테크토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하아…….”

유저들 간의 불협화음은 둘째 치고 일단 일행 간의 불협화음이 더욱 신경 쓰이는 천휘였다.

* * *

“일렬로 정렬!”

카멜의 커다란 외침에 유저들이 칸 외곽 지역에서 각 부대별로 정렬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서로 어색한 사이인지라 서먹서먹했지만, 그렇다고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린 누님은…….”

“저기 계시잖아.”

“…….”

조금 전 일로 여전히 마음이 상했는지 하린은 단장으로서가 아닌, 일반 유저들처럼 여러 유저들의 틈에 끼어 정렬해 있었다.

“이참에 우리도 일반 유저들과 함께 몬스터 소탕 작전을 치르는 건 어때? 어차피 맹주의 능력이라면 모든 유저들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건 일도 아니지 않나?”

테크토의 말에 단장들이 그거 재밌겠다는 듯 미소를 띠었다.

“나쁘지 않네. 이번 기회에 우리도 여러 유저들과 친해질 계기도 되겠고.”

“어떤 유저들은 우리가 그저 천휘 오라버니와 친해서 단장이 된 줄 안다니까용. 이참에 우리 힘을 보여 줘용.”

천휘와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단장들의 실력은 단연 발군이다. 하지만 실력이 뛰어난 유저 몇몇이 천휘의 실력은 의심하지 않지만, 눈송이와 미온 등의 실력을 의심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거 좋겠당깨. 우리 힘을 보여 주드라고.”

“블랙, 넌 명품사단 단장이잖아. 이번 소탕 작전에서 명품사단은 빠졌잖아.”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블랙헤드의 말에 천휘가 골치가 아픈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 그래야 한디… 우리 사단의 유저 대부분이 이미 저 대열에 합류해 있당깨. 우리도 몬스터를 사냥하고 싶당깨.”

“흠… 그래?”

블랙헤드의 말에 천휘가 유저들이 정렬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과연 그의 말이 맞는지 익히 알고 있는 유저들이 그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별수 없지. 난 그냥 저들을 배려하고자 그랬던 것뿐이니까.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 우리도 모두 유저들과 함께할까?”

“우리라니, 당연히 천휘 넌 제외지.”

“뭐야? 그런 게 어디 있어?”

로빈의 말에 천휘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바보야, 넌 맹주야. 제아무리 이곳이 가상의 공간이라고는 해도 수장은 수장답게 행동해야 해.”

“그래. 그냥 넌 파뱃을 타고 하늘에서 전체적인 조율이나 해. 아니면 강시들을 데리고 초대형 몬스터나 사냥하시든가.”

“…….”

단장들의 말에 천휘의 표정이 처량하게 변했다. 하지만 모두는 그에게서 시선을 외면한 채 유저들이 정렬해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과 합류했다.

“…매정한 것들.”

유저들 틈으로 사라진 단장들을 확인한 천휘는 이내 풀 죽은 얼굴이 아닌, 자못 위엄 있는 얼굴로 유저들에게 소리쳤다.

“룬 아일랜드의 몬스터 소탕!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아!”

새로운 체제를 도입해 시작된 몬스터 소탕은 조금 지지부진했다. 손을 맞춰보지 못한 유저들과 함께하는 전투는 제아무리 많은 전투 경험을 가진 유저들이라도 쉽게 적응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그러나 개중에는 처음 손발을 맞추면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당연히 단장들이 포함된 부대로, 천휘와 함께 겪었던 수많은 경험들이 지금 이 순간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모두 힘내세요! 고지가 눈앞입니다! 저 늪지대만 정복하면 휴식을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유저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격전지에서 한발 물러나 천휘가 유저들을 독려했다. 거대한 체구의 와이번 위에서 오연히 서서 허공을 날아다니는 그의 모습은 유저들에게 있어 선망의 대상이었다.

“역시 맹주 오빠는 멋진 것 같지?”

“그러게. 게다가 얼굴도 잘생겼잖아.”

“험험! 전투 중 대화는 금물이랑깨.”

“아, 죄송해요.”

천휘를 칭찬하는 모습에 뿔이 났는지 블랙헤드가 헛기침을 하며 두 여성 유저를 다그쳤다. 그러자 그녀들도 자신들의 실책을 깨달았는지 재빨리 전투에 합류했다.

‘쳇! 어째서 죄다 저 녀석만 좋아하는지 모르겄당깨. 솔직히 얼굴은 내가 좀 더 나은디.’

천휘의 주변에 여자들이 계속 꼬이는 반면, 블랙헤드 자신의 주변에는 오로지 우락부락한 남자들뿐이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천휘를 바라보는 블랙헤드의 눈빛이 표독스럽게 빛났다.

“꺄악!”

“꺄아악!”

“헙!”

전방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블랙헤드가 쏜살같이 앞으로 내달렸다.

“워매! 진흙 리자드맨이네잉.”

언제 나타났는지 진흙 리자드맨 열댓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유저들도 실력이 꽤 좋았지만 진흙 리자드맨의 레벨은 310. 숫자도 많아 유저들로서는 고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늘 다지기!”

조금 전 천휘를 칭찬했던 여성 유저들을 돕고자 블랙헤드가 그녀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진흙 리자드맨을 막아섰다. 그리고 연이어 지옥의 나락이 춤을 추며 녀석들을 뒤로 밀쳐 냈다.

“괜찮당가?”

“아, 네. 고맙습니다.”

“여기는 나헌티 맡기고 물러나랑깨. 그쪽 칼을 든 아가씨는 나를 도와주고잉.”

“네, 그럴게요.”

두 여자에게 지시를 내린 블랙헤드는 곧바로 크게 소리쳤다.

“일단 대형을 갖추랑깨! 이러코롬 싸우다가는 모두 전멸이여!”

“이 녀석들의 공격이 계속돼서 몸을 내뺄 수가 없소!”

블랙헤드의 지시에 한 남성 유저가 대답했다. 나이가 제법 많은 그 남성 유저는 무려 3마리의 진흙 리자드맨을 상대로 분전하고 있었다.

“내가 모두 끌어 모을랑깨 알아서들 뒤로 피하쇼잉!”

블랙헤드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지한 눈빛으로 지옥의 나락을 고쳐 쥐었다. 그리고는 전장을 살피더니 이내 진흙 리자드맨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식초 뿌리기!”

“큭!”

“이게 무슨 냄새야?”

“어디서 땀에 전 겨드랑이 냄새가!”

블랙헤드가 스킬을 시전하자 여러 곳에서 유저들이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블랙헤드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장을 이리저리 누비며 진흙 리자드맨을 유인했다.

케에엑!

급기야 다른 유저들을 상대하던 진흙 리자드맨들까지 괴로운 듯 소리를 내지르며 블랙헤드를 뒤쫓았다. 그 수만 무려 열셋.

모든 진흙 리자드맨을 끌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블랙헤드를 보며 유저들이 넋 나간 표정을 지었다.

“모두 대형을 갖추랑깨요!”

블랙헤드의 외침에 유저들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대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유저들이 어느 정도 대형을 갖추자 블랙헤드가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신형을 뒤로 돌렸다.

“이 자슥들, 내가 니그들이 무서워서 도망친 줄 알았당가? 아죠 박살을 내줄꾸마! 천둥 회 뜨기!”

블랙헤드의 신형이 갑작스레 유저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귀를 두드리는 뇌명(雷鳴)이 터져 나오며 진흙 리자드맨들이 사방으로 떨어져 나갔다.

“저, 저럴 수가!”

“하, 한 방에!”

유저들로 하여금 진형을 갖추라고 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블랙헤드의 무력은 실로 대단했다.

과연 저들이 늪지대의 학살자 진흙 리자드맨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무기력하게 쓰러진 것이다.

“뭣들 한당가요? 싸게싸게 움직여서 녀석들을 처치하랑깨요!”

블랙헤드의 말에 유저들이 삼삼오오 나뉘어 쓰러진 진흙 리자드맨을 찾아가 명줄을 끊어냈다. 얼마나 손쉬운지 유저들은 이내 긴장을 풀고 이야기까지 나누며 걸음을 옮길 정도였다.

“저 사람… 은근 멋지지 않아?”

“누구? 명품사단 단장 말이야?”

“그래, 저 사람.”

쟈넷의 물음에 바이올렛이 조금 심드렁하게 되물었다.

“확실히 단장 직을 맡을 정도로 강한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맹주님이 더 멋있지. 얼굴도 훨씬 잘생겼고.”

“그런가…….”

“앗! 쟈넷! 조심해!”

“꺄아악!”

두 사람이 방심하고 있는 사이, 그새 상처를 회복했는지 누워 있던 진흙 리자드맨이 벌떡 일어서며 쟈넷을 공격했다.

그녀는 전사 직업을 가진 친구 바이올렛과 달리 물리 방어력이 현저하게 낮은 사제. 때문에 진흙 리자드맨의 강맹한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낸다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비키랑깨요! 감자 깎기!”

하지만 언제 달려왔는지 블랙헤드의 요상한 식칼이 쟈넷의 전면을 가로막았다.

“마늘 다지기!”

그리고는 맹렬하게 회전하는 지옥의 나락.

순식간에 진흙 리자드맨이 다진 마늘처럼 다져지고 말았다.

“아따! 눈을 어따 파냥깨요.”

“죄, 죄송해요.”

“조심허쇼잉. 아직 전투가 끝난 것이 아닝깨.”

“그럴게요.”

쟈넷을 구한 블랙헤드는 지체 없이 다른 곳으로 신형을 날렸다. 쟈넷의 경우처럼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진흙 리자드맨이 기습을 할 수도 있기에 자신이 직접 나서서 녀석들을 처치하려는 심산이었다.

“휴! 이 녀석이 마지막이죠잉? 모두들 수고하셨당깨요. 이쯤에서 한 번 쉬었다 갈 것잉깨 이리로 다들 모이쇼잉.”

마지막 진흙 리자드맨을 손수 처치한 블랙헤드는 유저들을 자신의 주변으로 불러 모았다.

“모두들 허기지시죠잉. 앞으로도 계속 싸워야 승깨 제가 솜씨 좀 발휘할게요잉.”

“와아아! 드디어 운남정 주방장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건가?”

“이거 벌써부터 기대되는데?”

블랙헤드가 모닥불을 지피고 그 위에 물을 담은 냄비를 얹었다. 그리고 편평한 바위를 골라 도마 대용으로 활용하며 음식을 하기 시작했다.

“운남정이면 그 이그나혼에 있다는 최고의 식당 아냐?”

“아마 그럴걸? 그럼 그 식당을 저 사람이 운영했다는 거야?”

“흠… 그런가 보네.”

쟈넷과 바이올렛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블랙헤드를 바라보았다. 특히 쟈넷의 표정에서는 묘한 기대감마저 엿보였다.

“자, 다들 시식해보랑깨요. 칸 인근 바다에서 잡은 곰보 숭어로 만든 수프잉깨 맛이 괜찮을 것잉깨.”

블랙헤드의 말에 유저들이 앞 다투어 그에게서 수프를 받아갔다. 그렇지 않아도 수프에서 흘러나오는 구수한 향에 유저들은 입 안에 군침이 한가득 고여 있었다.

“자, 여기 있당깨요.”

“감사해요.”

마지막으로 쟈넷에게 수프를 떠준 블랙헤드는 자신도 수프를 챙겨 자리를 잡았다.

“와! 이거 죽인다!”

“세상에! 이런 맛이 있다니!”

“맛도 맛이지만, 이런 엄청난 효과는 뭐야! 최대 생명력과 마나를 무려 20퍼센트나 올려 주잖아?”

곰보 숭어 수프의 맛과 효능에 유저들의 두 눈이 함지박처럼 커졌다. 아르니안 대륙에서 이곳 룬 아일랜드로 향하는 항해에서도 블랙헤드의 요리를 맛볼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는 최대한 식량을 아끼기 위해 블랙헤드가 조미료나 음식 재료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이미 룬 아일랜드에서의 생활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고, 동물이나 생선이 많아 식량 걱정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맛나당깨 다행이네요잉. 그래도 많이 먹으면 탈 낭깨 그것만 드시랑깨요.”

유저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블랙헤드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멋져.”

“응? 뭐라고?”

“저 사람, 멋지다고.”

조금 전 그가 보인 환한 미소에 쟈넷의 양 볼이 붉어졌다. 그리고 무심결에 내뱉은 한마디에 그녀의 본심이 드러났다.

그렇게 블랙헤드에게도 봄날은 찾아왔다.

* * *

“모두 모이셨죠?”

“우오오오!”

몬스터 소탕을 시작하고 정확히 일주일 만에 르네상스 혈맹 전원이 평원의 끝자락에 집결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지난 일주일간 여러분들의 전투를 지켜보며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여러분은 진정 『오벨리스크』의 새로운 시대를 열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계시다는 걸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평원의 지배자를 잡아 이 섬의 주인이 우리라는 것을 각인시켜 줍시다!”

“와아아아!”

다른 유저들이 평원을 정리하고 있을 때, 천휘는 평원을 샅샅이 헤집고 다니며 평원의 주인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아즈카 마을에서 평원의 주인과 연관된 퀘스트를 찾아냈다.

[띠링! 퀘스트 ‘악마의 틈새’가 발동되었습니다.]

룬 아일랜드의 중앙 하멜 대평원에는 먼 옛날 대마법사 룬이 봉인한 악마 고담이 살고 있다.

악마 고담의 힘은 워낙 강력해 대마법사 룬조차도 겨우 봉인하는 것에 그쳤을 정도다.

하지만 천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대마법사 룬이 펼쳐 놓은 봉인의 결계가 미약해져 악마 고담이 부활의 나래를 꿈꾸며 힘을 비축하고 있다.

악마 고담의 부활은 곧 파멸의 재앙!

악마 고담을 처치해 그의 부활을 저지하라!

난이도:A

제한:아즈카 부족과의 우호

보상:대마법사 룬의 수정구

무려 A급의 고난이도 퀘스트.

대마법사인 룬조차 봉인하는 것에 그쳤을 정도로 악마 고담의 힘은 엄청났다.

하지만 천휘에게는 수백 명의 아군이 있었다. 바로 르네상스 혈맹의 유저들이었다.

“우리의 상대는 바로 이 평원의 심연에 봉인되어 있는 악마 고담! 제가 조금 전 공유했던 퀘스트를 살피시면 아시겠지만, 녀석은 대마법사 룬조차도 봉인하는 것에 그쳤을 정도로 엄청난 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굽니까! 바로 이 땅 룬 아일랜드의 주인입니다. 우리의 발아래 그러한 위험 요소를 남겨 둘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힘을 모은다면 상대가 설사 마신이라 할지라도 상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연하지!”

“악마는 개뿔! 녀석이 악마면 나는 마신이다!”

“이 정도 인원이라면 드래곤도 잡을 수 있다고!”

천휘의 말에 유저들이 강렬한 투지를 내비치며 소리를 내질렀다. 그것은 곧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제가 먼저 그곳을 가본 바로는 레벨 350의 지옥불의 정령과 레벨 370의 지옥불의 마수가 녀석의 주변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간간이 레벨 400의 지옥불의 마녀도 보였습니다.”

“…….”

과연 A급 난이도의 퀘스트인지 녀석의 주변을 보호하고 있는 몬스터들의 수준이 예사롭지 않았다.

르네상스 혈맹의 유저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레벨. 자연스럽게 유저들의 자신감이 바닥까지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었다.

“모두 기운 내세요! 맹주님이 저렇게 말씀하시는 건 그곳을 이미 탐사하셨다는 말씀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맹주님?”

대부분의 유저가 낙심하고 있는 가운데 블랙헤드의 곁에 서 있던 바이올렛이 크게 소리쳤다. 그녀의 외침에 모든 유저들이 천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하하! 말이 그렇게 되나요? 물론 어느 정도까지는 저 혼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확실히 대륙의 어떤 던전보다도 수준이 높더군요. 그러나 여러분이 염려하시는 것만큼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이제껏 여러분이 보여 주신 능력이라면 충분히 정복 가능하다고 봅니다.”

천휘의 말에 유저들이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굳었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인원 구성은 이전처럼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약간의 변화를 주겠습니다. 단장 분들과 몇몇 유저 분들만 따로 하나의 파티를 만들어 레벨 400의 지옥불의 마녀만 상대하도록 할 것입니다.”

천휘의 말에 유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원에서의 활약으로 단장들의 힘이 자신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지옥불의 마녀를 상대해준다면, 다른 유저들은 한결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이 수월해질 것이다.

“자, 그럼 르네상스 혈맹 최초의 레이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오오오!”

천휘의 안내로 르네상스 혈맹의 유저들은 악마의 틈새로 들어섰다.

평원 끝자락에 위치한 악마의 틈새는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가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협곡이었다. 그로 인해 유저들은 미리 천휘가 준비한 밧줄을 타고 낭떠러지를 천천히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여기가 악마의 틈새야?”

“으윽! 이 찝찝한 기운은 뭐냥깨.”

천휘와 함께 파뱃을 타고 먼저 절벽의 바닥에 도착한 단장들은 절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검은 안개에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일전에 말했던 지저 세계에도 이러한 검은 안개가 펼쳐져 있지. 일종의 마기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마기라……. 확실히 상대가 악마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네.”

“너희가 평원에서 고생하는 동안 난 카이젠과 오베른을 대동하고 이 안을 탐사했어. 덕분에 레벨이 올라 드디어 레벨 400을 달성했다.”

“헐! 언제 그렇게 레벨을 올린 거야?”

천휘의 말에 모두가 반색하며 축하의 말을 건넸다.

“수고했다. 그럼 이로써 세 번째 퍼펙트 마스터(Perfect Master)가 탄생한 건가?”

“자식, 아무튼 혼자 멋있는 건 다 하려 한다니까.”

“큭큭!”

퍼펙트 마스터란 레벨 400을 달성한 유저들을 일컫는 유저들 간의 칭호다. 아르니안 대륙에서 400레벨을 달성한 유저는 아렌과 그랜저뿐일 정도로 400레벨을 달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단순히 몬스터를 사냥해 경험치를 쌓는 것뿐 아니라 스킬 레벨과 명성, 혹은 악명이 일정 수치에 올라야만 가능한 것이 퍼펙트 마스터다.

천휘 역시 현실 시간으로 무려 3개월간 399레벨에 머물러 있었을 정도로 레벨 400의 벽은 높고 험난했다.

“아무튼 레벨 400이 되면서 자신감이 붙어 악마 고담과 한판 벌였는데…….”

“한판 벌였는데?”

천휘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인 것이다.

“결과는 완패야. 괜히 A등급의 퀘스트가 아니더라고.”

“카이젠과 오베른이 도와줬을 거 아냐. 그런데도 패했단 말이야?”

카이젠과 오베른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익히 알고 있는 단장들로서는 쉬이 믿기 힘든 말이었다.

로빈의 물음에 천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그 정도로 녀석이 강할 줄은 몰랐어. 녀석의 추정 레벨은 700 정도야.”

“헉! 700레벨!”

천휘의 말에 단장들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그도 그럴 것이 700레벨의 몬스터는 구경조차 못해봤을 정도로 까마득한 수준이었다.

“저번에 이벤트로 나왔던 웜급 드래곤의 레벨이 몇이었지?”

“아마 750이었을걸용?”

“…….”

“…….”

하린의 물음에 눈송이가 대답했다. 그리고는 기나긴 침묵이 이어졌다.

드래곤에 맞먹는 레벨이라니. 제아무리 숫자가 많다 하더라도 그런 녀석과 상대하는 것은 절대 무리였다.

“걱정하는 부분이 어떤 것인 줄 잘 알아.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 저번처럼 쉽게 당하지만은 않을 거야. 아즈카 부족의 족장인 아카르에게 이걸 받아왔으니까.”

“그게 뭔데?”

“대마법사 룬의 봉인 토템.”

“에?”

천휘가 꺼낸 것은 길이 1미터 정도의 기이한 문양이 새겨진 토템이었다. 주술사들이 사용하는 토템이 30센티미터 정도인 것을 감안한다면 꽤나 커다란 토템이었다.

“대마법사 룬이 남긴 토템이야. 그는 마법뿐 아니라 주술에도 능통했던 것 같아. 아무튼 이 봉인 토템을 악마 고담이 위치한 방 안의 정해진 위치에 세워놓는다면 봉인의 힘은 더욱 강해질 거야. 그렇다면 녀석의 힘은 약화될 테고, 우린 그 틈을 노려 녀석을 잡는 거지.”

“가능할까?”

“시도는 해봐야지.”

무려 700레벨의 악마를 이 작은 토템으로 약화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녀석은 르네상스 혈맹이 룬 아일랜드를 완벽하게 장악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었기에 반드시 처치해야만 했다.

게다가 천휘의 계산으로는 이 섬의 비밀과 연관된 열쇠를 녀석이 쥐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저기 유저들이 온다. 모두들 입조심해. 그리고 너희는 마녀를 상대해주고. 참고로 말하자면 마녀 하나를 상대하는 데 카이젠과 로즈란이 합공을 펼쳤다.”

“…….”

한껏 기가 죽은 단장들의 표정을 바라보는 천휘의 얼굴에 오랜만에 사악한 미소가 깃들었다.

콰아앙!

“가슴을 집중 공략합시다! 녀석의 약점은 심장 어림에 있는 핵이에요!”

“엘레멘탈 소드!”

“아이스 랜스!”

각기 10명씩 파티를 이룬 유저들은 악마의 틈새를 공략해나가기 시작했다. 유저들의 레벨이 대부분 300의 고지에 올라 있었고, 레벨 350을 상회한 유저들도 각 파티에 꼭 한 명씩은 끼어 있어 지옥불의 정령이나 지옥불의 마수를 상대로도 우위를 점하며 천천히 이동해나갔다.

문제는 지옥불의 마녀를 상대하는 단장들이었다. 르네상스 혈맹 최고의 무력을 지닌 그들로서도 지옥불의 마녀는 상대하기 버거울 만큼 강했다.

“저년이 또 채찍 휘두른당깨!”

“빌어먹을! 저 채찍 좀 어떻게 해봐!”

지옥불의 마녀는 기본적으로 흑마법을 구사했다. 게다가 클래스도 높은지 고위 마법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단장들을 농락했다. 그로 인해 카멜과 블랙헤드가 악착같이 따라붙어 공격을 시도했지만, 갑자기 빼든 채찍으로 인해 커다란 피해만 입고 뒤로 물러나야 했다.

“비켜 봐! 내가 상대할게!”

카멜과 블랙헤드가 고전을 면치 못하자 미온이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레벨은 카멜과 블랙헤드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지만, 온몸을 천휘가 선물해준 유니크 이상의 아이템으로 도배한 상태였기에 자신만만하게 앞으로 나선 것이다.

“여자의 힘은 수다! 노찌롱!”

[띠링! 10분간 공격력과 방어력이 10% 상승합니다.]

[띠링! 10분간 공격 속도가 30% 상승합니다.]

“오뉴월의 서리!”

[띠링! 10분간 마법 저항력이 50% 상승합니다.]

“여자의 눈물!”

[띠링! 10분간 모든 스탯이 1.5배 상승합니다.]

미온은 지옥불의 마녀를 노려보며 자기 자신에게 축복 마법을 걸었다.

이름은 우스꽝스러웠지만 그 효과만은 무시 못 할 만큼 대단했다. 특히 천휘가 지닌 보조 스킬인 파멸의 휘장에 맞먹는 여자의 눈물은 미온의 전투력을 급상승시켜 줬다.

“언니와 눈송이는 날 엄호해줘!”

“알았어!”

“그럴게용!”

하린과 눈송이에게 도움을 청한 미온은 곧바로 지옥불의 마녀에게 돌진했다. 과연 몽크답게 그 움직임이 날랜 다람쥐처럼 표홀했다.

휘리릭-

미온의 접근을 방해하기 위해 지옥불의 마녀가 채찍을 휘둘렀다. 그녀의 채찍에는 지옥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어 스치기만 해도 지속적인 화염 데미지를 입게 된다.

“하앗!”

하지만 이미 카멜과 블랙헤드가 당하는 모습을 보며 어떤 궤적으로 채찍이 날아올지 예측하고 있던 미온은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채찍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순식간에 좁아진 둘 간의 거리. 하지만 지옥불의 마녀에게는 채찍 말고도 강력한 흑마법이 있었다.

“어둠의 불꽃!”

지옥불의 마녀 주변으로 검붉은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미온의 접근이 위협적이었는지 불의 장벽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미온에게는 천휘가 선물한 레드 드레이크의 허리띠가 있었다.

“이까짓 것쯤이야!”

미온은 어둠의 불꽃을 맨몸으로 뚫고 불의 장벽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순식간에 생명력이 3분의 1이나 떨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날쌘 고양이의 발톱!”

지옥불의 마녀 코앞까지 당도한 미온은 손톱을 치켜세우며 마녀의 얼굴을 할퀴었다.

흡사 고양이가 할퀸 듯 선명하게 드러난 손톱자국.

하지만 미온의 공격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날쌘 고양이의 이빨!”

미온은 ‘날쌘 고양이의 울음’이라는 레어 스킬 트리를 익혔다. 총 3가지의 스킬로 구성된 이 스킬 트리는 본래 몽크가 아닌 어쌔신들이 주로 익히는 스킬이었는데, 우연히 하린이 이 스킬북을 구해 미온에게 선물한 것이다.

미온은 이 스킬을 습득하고부터 부쩍 근접 공격에 대한 자신감이 늘었다. 사실 이제껏 뒤에서 회복 마법이나 걸어주던 것은 그녀의 성미와는 맞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듯 앞으로 나서서 표독스러운 고양이처럼 상대를 할퀴는 것이 더욱 그녀다웠다.

“아이스 포그!”

미온과 지옥불의 마녀가 한데 어우러져 전투를 벌이는 전장에 눈송이가 마법을 전개했다. 그것은 상대방의 이동 속도를 50퍼센트 저하시키는 아이스 포그 마법이었다.

“저렇게 되면 미온이 불리하지 않을까?”

노심초사 미온의 전투를 지켜보던 카멜이 로빈에게 물었다.

“상대가 마녀라 분명히 마법 저항력이 높을 텐데.”

마법 계열의 직업은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높았다. 한마디로 지옥불의 마녀는 몽크인 미온에 비해 마법 저항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호호! 동생들은 미온에 대해서 너무 모르네?”

“네? 저희가 뭘 모른다는 거예요, 누님?”

“미온의 손가락과 귀를 봐.”

“손가락과 귀?”

하린의 말에 로빈과 카멜은 미온의 손가락과 귀를 바라보았다. 10개의 손가락 모두에 반지가 끼어 있었고, 귀에도 영롱한 빛을 띠는 귀걸이가 한 쌍 걸려 있었다.

“저 반지들, 그동안 천휘가 모아놓은 레어 이상의 반지들이야. 하나같이 마법 저항력과 신성력을 높여 주는 것들이지. 미온의 마법 저항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 저항력이 가장 떨어지는 암흑 저항력만 해도 무려 60퍼센트야. 가장 높은 얼음 저항력은 무려 90퍼센트고. 이만하면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겠지?”

“…….”

“…….”

하린의 설명을 들은 로빈과 카멜은 놀란 눈으로 미온을 바라보았다. 과연 그녀는 아이스 포그에 둘러싸인 상태에서도 평소와 다름없는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에 반해 지옥불의 마녀는 무척 굼뜬 움직임이었다.

“날쌘 고양이의 발톱!”

결국 미온의 공격에 지옥불의 마녀가 더 이상 버텨 내지 못하고 바닥에 몸을 뉘었다.

너무나 일방적인 전투.

미온은 어느새 한 사람의 몫을 충분히 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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