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6장 쿠닉섬의 이방인 (57/82)

제6장 쿠닉섬의 이방인

“방금 전의 그거…….”

“…나 혼자 본 게 아니지?”

“꿈이 아니었어…….”

천휘와 미온의 뒤를 따라 지하 3층까지 내려온 명탐정과 김전일, 그리고 고비는 자신들의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저 수많은 멀록들이…….”

“1분도 채 되지 않아서…….”

“게다가 보스 몬스터는 옷깃도 스치지 못하고…….”

무려 200레벨을 넘어서는 푸른 점액 일족 멀록이다. 1학년 8반 전원이 함께했어도 무려 3시간에 걸쳐 1층을 통과하는 데 그쳤을 정도로 강한 녀석들이다.

그런데 그런 녀석들을 단 1분 만에 모조리 처치했다.

“아까 분명히 담탱이가 너희 형도 이겼다고 했었지?”

“어…….”

“사실일까?”

“…아마도.”

김전일은 머릿속으로 자신의 형과 천휘를 비교했다. 하지만 비교를 할 수조차 없었다. 자신의 형에게는 저 정도의 민첩함은 물론이고, 유기적인 공격도 불가능했다.

김전일은 천휘의 말이 사실임을 직감적으로 눈치 챌 수 있었다.

“믿을 수 없어. 어떻게 담탱이 저 정도로 고렙이 될 수 있는 거지? 게다가 그 옆에 있던 사람들은 또 뭐고?”

“…우리 형은 거의 매일 『오벨리스크』에서 살다시피 하는 게임 폐인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탱이에게 패했다니……. 아무래도 우리 담탱, 뭔가 비밀을 감추고 있어.”

세 사람이 제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야 천휘의 정체를 파악할 길이 없었다. 결국 세 사람은 1층 계단의 안전지대로 돌아가 이내 로그아웃할 수밖에 없었다.

* * *

“여기 가져왔습니다, 멀록 로드 그웬의 창.”

“오오! 정말이로군! 됐어! 이제는 됐어!”

[띠링! 퀘스트 ‘멀록 퇴치’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으로 100골드가 주어집니다.]

“우리 마을을 구해준 은인에게 고작 이 정도의 사례밖에 하지 못해서 미안하네. 보다시피 마을이 멀록들의 침입으로 황폐화되어 그렇다네.”

“괜찮습니다. 그보다 어선은…….”

천휘에게 100골드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100골드보다는 어선 한 척이었다.

“아, 어선 말인가? 이미 마을 어귀에 준비해놨네. 우리 마을 최고의 어부가 자네를 쿠닉섬으로 데려가줄 걸세.”

“하하!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천휘의 생각대로라면 페난 마을은 조만간 발전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것도 잘하면 대륙 남부 최대의 항구로 발돋움할 수도 있었다.

천휘는 미온과 함께 곧바로 마을 어귀의 해안가로 향했다. 그곳에는 조악한 선착장이 있었는데, 그곳에 마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어선 한 척이 정박해 있었다.

“어서 오시게. 난 이 배의 선장 칼이라고 하네.”

“반갑습니다. 천휘라고 합니다.”

“미온이에요.”

바닷사람이라 그런지 칼은 온몸에 잔근육이 실타래처럼 퍼져 있었다. 게다가 검게 그을린 구릿빛 피부는 새하얀 천휘의 피부와 대조되어 남성미를 물씬 풍겼다.

“쿠닉섬에 간다고?”

“그렇습니다. 그 섬에 볼일이 있어서요.”

“그런가? 알았네. 쿠닉섬으로 내 보내주지.”

“감사합니다. 되도록 빨리 갔으면 하는데.”

“걱정 말게나. 이래 봬도 페난 최고의 배일세. 모두 출항을 준비하라!”

“우오오오!”

선장 칼의 지시에 선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돛으로 움직이는 범선인 탓에 선원들이 돛을 활짝 펴기 위함이었다.

“닻을 올려라!”

이윽고 닻이 올라가며 배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돛이 바람을 받아 배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히 순풍이라 반나절 정도면 저 섬에 도착할 수 있겠어.”

“정말 다행이네요.”

선장 칼의 말에 천휘가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미온과 함께 선수(船首)로 걸어갔다.

“왠지 유람선 데이트를 하는 기분인데?”

“하하! 그런가? 확실히 바닷바람을 맞으니 기분은 좋은데?”

“그런데 저 섬에는 대체 무슨 볼일이야? 그보다 이런 배를 빌릴 필요도 없이 라프라스를 타고 가면 되잖아.”

“라프라스는 민물에서 태어난 마수야. 이런 염분이 가득한 바다에서는 제 실력을 발휘할 수가 없어. 바다 이동은 역시나 배지. 그걸 위해서 저 섬엘 가는 거고.”

“그걸 위해서?”

미온의 말에 천휘가 말없이 웃으며 쿠닉섬을 바라봤다. 그곳에 천휘가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자, 도착했네. 그리고 이걸 받게나.”

“이건…….”

“바닷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일종의 신호탄일세. 이 섬에서의 볼일을 마치거든 그 신호탄을 쏘아올리게. 그럼 다시 배를 몰아 이쪽으로 오겠네.”

“아, 이거 여러모로 폐를 끼치네요. 유용하게 쓰겠습니다.”

천휘와 미온을 태운 배가 이윽고 섬을 떠나 페난으로 돌아갔다.

“이제 그 유저를 찾아보실까? 아공간 오픈, 닌자거북 소환.”

스파아앗.

[충! 부르셨습니까?]

“그래. 레오나르도, 당장 이 섬을 수색해서 이방인의 흔적을 찾아.”

[찾아서 끌고 올까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그냥 위치만 파악해두면 돼. 괜한 분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으니까.”

[충!]

천휘의 명령을 받은 닌자거북들이 섬 곳곳으로 흩어졌다. 그들은 하나같이 은신과 수색에 능통한 닌자들이라, 채 30분도 되지 않아 다시 천휘와 미온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라파엘로의 말에 따르면, 저 언덕 위에 이방인의 거처가 마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좋아. 바로 그거야. 그곳으로 안내할 수 있겠지?”

[그렇긴 합니다만, 이 섬의 몬스터들이 제법 강력합니다. 모두 베면서 움직이려면 시간이 제법 소요될 듯합니다.]

“그래? 그럼 녀석들을 소환하면 되겠지. 아공간 오픈, 로렌 소환, 깜둥이 군단 소환!”

천휘는 로렌과 함께 다크 엘프 강시들을 모조리 소환했다.

무려 50에 달하는 다크 엘프 강시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일대에 어둠의 기운이 안개처럼 퍼져 나갔다.

[어라, 나는 그렇다 치고 이 녀석들은 왜 부른 거냐?]

“은밀하게 몬스터들을 처치하고 싶어서. 너 혼자 움직이면 시간이 걸리잖아. 로렌, 네가 녀석들을 지휘해서 주변의 몬스터들을 조용히 처치해줘. 아이템 챙기는 것도 잊지 말고.”

[은밀하게 처치하는 일이라면 우릴 따를 사람이 없지! 으하하하! 알겠다! 내 주인의 뜻에 따라주지!]

천휘의 지시에 로렌이 호탕하게 웃고는 이내 다크 엘프 강시들을 지휘해 숲으로 사라졌다. 녀석과 다크 엘프 강시들은 심령으로 연결되어 있어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지휘할 수 있었다.

“자, 이제 천천히 가보실까?”

“흐음, 역시 내가 대단한 애인을 뒀나? 너랑 같이 다니면 게임이 너무 편해져서 탈이야.”

“하하! 그래? 그렇다면 조만간 제대로 된 사냥 한번 하러 가자. 아마 이제껏 경함하지 못했던 사냥을 경험하게 될 거야.”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그런 게 있어. 레오나르도, 안내해.”

[충!]

쿠닉섬은 인간이 살지 않는 무인도였다. 제법 큰 규모의 숲이 섬 전체를 뒤덮고 있긴 했지만, 결정적으로 식수가 없고 붉은 수염 부족 놀들이 부락 단위로 살고 있어 인간들이 거주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이런 섬에서 혼자 살아가다니. 배짱이 두둑한 거야, 아님 멍청한 거야?”

상대는 NPC가 아닌 유저라고 했다.

유저라면 응당 게임의 많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퀘스트를 수행하며 레벨을 올리는 것이 당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이런 비좁고 위험한 섬에 갇혀 홀로 게임을 즐기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위인으로는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모종의 퀘스트를 수행 중일 수도 있지. 최근에 오시리스에 회자되고 있는 유명인 몰라?”

“유명인?”

최근 학교 업무가 바빠 게임하는 시간도 빠듯한 천휘였다. 당연히 오시리스를 돌아볼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그 유저의 아이디는 북극여우인데, 그 유저가 유명해진 이유는 간단해. 엄청난 노가다의 직업 퀘스트를 완료하고 히든 직업으로 전직한 탓이야.”

“히든 직업? 어떤 건데?”

천휘는 히든 직업에 대해 유독 관심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알고 있는 강자들은 대부분 히든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천휘 자신도 천 제국으로 따지자면 히든 직업에 해당하는 강시술사였지만, 아르니안 대륙의 히든 직업은 천 제국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대단한 것들이 많았다.

“북극여우의 직업은 설인(雪人)이야.”

“설인? 뭐야, 그 우스꽝스러운 이름의 직업은.”

“확실히 네 말대로 멋없는 이름이긴 하지만, 엄청난 직업인 것만은 확실해.”

미온의 말대로 오시리스에서 회자되고 있을 만큼의 유명인이라면 분명 좋은 직업일 것이다. 하지만 히든 직업을 지닌 유저들이 꽤나 많은 현재로서는 그저 히든 직업을 얻었다는 것만으로 유명해지기는 어려웠다.

“왜 엄청나다는 건데?”

“그 유저는 빙룡의 대지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어.”

“빙룡의 대지?”

임페리얼 길드가 수천 골드를 들여서 실패한 화신의 사막 원정에서 알 수 있듯 4대 금지는 말 그대로 죽음의 땅이나 다름없었다.

그중에서도 빙룡의 대지는 그 엄청난 추위를 유저들이 견딜 수가 없어 아직까지도 1퍼센트조차 개척되지 못한 금역이었다.

“빙룡의 대지가 유저들에게 어떤 페널티를 주고 있는지 알지?”

“상태 이상 ‘혹한’, ‘독감’은 물론이고, 조금만 지체했다가는 동사할 수도 있는 거 아냐?”

화신의 사막이 상태 이상 ‘더위’와 ‘고열’을 만들어낸다면, 빙룡의 대지는 정반대였다.

하지만 더위를 먹어도 수분만 잘 공급되면 사람이 죽지 않지만, 온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추위 속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즉, 빙룡의 대지는 그 엄청난 추위와 눈보라만으로도 유저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었다.

“맞아. 하지만 설인 북극여우는 그러한 상태 이상에 모두 면역이 있어. 게다가 더욱 놀라운 사실은, 추위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 주는 ‘이글루’라든지, 추운 설원을 200퍼센트의 이동속도로 달릴 수 있는 ‘개 썰매’ 등 추운 땅에서 유용한 스킬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거야.”

“그렇다는 소리는!”

“그래. 그에 의해 빙룡의 대지가 조금씩 개척되어가고 있어. 벌써 빙룡의 대지 초입에 위치한 마을을 발견한 상태야. 리버훌 성국과 바렌트 왕국 등 빙룡의 대지와 인접한 왕국의 길드들은 벌써부터 그 유저를 포섭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고.”

“흐음, 확실히 쓸모 있는 직업이긴 하네. 그런데 그 유저에 관해 갑자기 왜 말한 거야? 이 섬에 있는 유저와 무슨 상관인데.”

“상관이 있지. 그 유저 역시 설인으로 전직하기 위해 아르니안 대륙에서 최고로 높은 레베스트산에서 모종의 퀘스트를 수행했으니까.”

“만년설로 유명한 바로 그 산 말이야? 거기에서 무슨 퀘스트를 수행했는데?”

천휘의 물음에 미온이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만 요약해서 설명했다.

북극여우는 레베스트산에 거주지를 마련하고 현실 시간으로 100일을 버티는 퀘스트를 받게 되었다. 하루 접속 시간은 최소 5시간을 넘어야 하며, 레베스트산에서 서식하는 식물이나 동물들의 표본을 만들어야 하는 것도 퀘스트의 일부분이었다.

분명히 게임을 하는 입장에서는 고독하고 힘든 싸움이었다. 하지만 북극여우는 그것을 버텨 냈고, 정확히 101일째 되는 날 새로운 퀘스트를 받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레베스트산 정상을 등정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북극여우는 다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장장 25일에 거쳐 레베스트산을 등정했고, 마침내 그곳에서 ‘설인의 발자국’이라는 마법의 식물을 발견해 그것을 복용했다. 그것이 북극여우가 설인으로 전직할 수 있었던 과정이었다.

“설인은 히든 직업 중에서도 오직 단 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직업이라, 북극여우가 자신이 설인으로 전직할 수 있었던 과정을 공개했어.”

“네 말인즉, 이 섬에 거주하는 유저도 그와 같을 수 있다는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아닐 수도 있고.”

“흐음.”

미온의 말은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특별히 화술과 관련된 스킬을 익힌 것도 아니지만, 예전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천휘는 그녀의 말이라면 왠지 모르게 자신이 귀담아듣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찌 됐든 그를 만나보는 것이 중요하겠지.”

“맞아. 진실은 상대를 만나면 풀리게 될 거야.”

천휘와 미온은 더 이상 대화를 나누는 것이 무의미함을 깨달았다. 이미 상대가 있다는 언덕 언저리까지 도달한 상황이다.

천휘는 이내 주변에 몬스터가 없음을 깨닫고 로렌을 비롯한 다크 엘프 강시들을 모두 역소환했다.

‘괜히 상대를 긴장시킬 필요는 없지.’

아쉬운 것은 자신이었다. 상대로 하여금 자신을 경계하도록 만들 필요는 없는 것이다.

딱딱, 딱딱.

‘망치질 소리?’

언덕 위로 다가갈수록 일정하게 망치질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대장간을 지나는 것처럼 맑고 간결한 소리였다.

“흐읍!”

“세… 세상에!”

망치질 소리에 이끌려 언덕 위에 도착한 천휘와 미온은 그 위에 펼쳐진 놀라운 광경에 입을 쩍 벌렸다. 그곳에서는 마치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처럼 거대하기 짝이 없는 범선 한 척이 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요?”

두 사람이 내뱉은 비명 소리를 들었는지 범선의 갑판 위에서 망치를 내리치던 한 사내가 얼굴을 살짝 내밀며 물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진 마탑에서 언질을 받고 왔습니다만…….”

“오, 드디어 왔군. 잠시만 기다리시오.”

사내는 30대 중반가량 되어 보였고, 카멜에 버금가는 건장한 체구를 자랑했다. 특히 상체에 발달된 근육은 마치 보디빌더를 연상시킬 만큼 우락부락했다.

“반갑네. 테크토라고 하네. 나보다 나이가 어려 보이니 말 놔도 되겠지?”

“그럼요. 전 천휘라고 합니다.”

“전 미온이에요.”

“그야말로 선남선녀로구먼. 아무튼 잘 왔네. 잠시만 거기에서 기다리게. 오늘 중으로 이 선박을 완성해야 돼서 말이야.”

“기다릴 테니 천천히 일 보세요.”

“그래줄 텐가? 허허! 어린 친구가 성격이 좋구먼. 그럼 내 사양 않고 일함세.”

테크토는 다시 범선의 갑판 위로 올라가 조용히 망치질에 매진했다.

외로이 앉아 묵묵히 망치를 두드리는 그의 모습에 천휘와 미온은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법한 장인의 기세를 느낄 수가 있었다.

“혹시 생산 직업 중에 조선공도 있었나?”

“모르겠는데?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그런 직업은 없어.”

“흐음, 역시 저 사람도 히든 직업인 건가?”

『오벨리스크』에서의 생산 직업은 은근히 인기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생산 직업군이 제작하는 아이템들이 꽤나 가치가 대단한 것들이 많은 탓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은 대장장이와 재봉사였다.

하지만 대장장이라고 해서 모든 무기와 방어구를 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승급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숙련도가 필요한데, 그 때문에 오로지 한 분야의 무기나 방어구에만 매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생산 직업을 지닌 유저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이는 화염의 검신이라는 거창한 별명을 지닌 검극이라는 유저였다.

그 유저는 아이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로지 검 제작에만 매진한 대장장이였다. 특이한 것은, 그가 오로지 화염 속성의 부가 능력치를 주는 검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가 만든 검들은 대부분이 레어 그 이상이었고, 최근에는 유저 중 최초로 유니크 유저 메이드 검을 제작하고야 말았다.

그 검의 이름은 인페르노.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일반적인 유니크 검보다 월등한 공격력과 옵션을 지닌 검이었다. 그것이 바로 유저 메이드의 힘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생산 직업도 배를 제작할 수는 없어. 그것도 이렇게 거대한 선박은 더더욱!”

사실 조선공이라는 직업이 있을 수도 있었다. 아니, 이 거대한 대륙에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문제는 그 조선공들이 실력을 발휘할 기반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현재 아르니안 대륙의 바다는 서부의 게이건해와 이곳 남부의 피오르해 단 두 곳밖에 없었다. 북부는 빙룡의 대지가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고, 동부는 드래곤 산맥이 자리하고 있어 바다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게이건해는 둘째 치고라도 이곳 피오르해는 해양 몬스터들로 득실거리는 마의 해역이었다.

한마디로, 조선공들이 제작한 선박들이 활약할 여지가 없다는 소리였다.

“저 남자… 반드시 내 사람으로 끌어들여야겠어.”

천휘는 테크토의 가치를 단번에 알아봤다.

이제 남은 건 그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일만 남았다.

딱딱, 딱딱.

피슈웃.

“휴! 드디어 끝났군.”

[띠링! 새로운 선박을 제조하셨습니다. 이름을 정해주십시오.]

“이순신!”

[띠링! 선박 ‘이순신’의 주인이 테크토 님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선박 정보!”

이름:이순신

등급:A 내구력:1,000/1,000

세로돛:120 가로돛:220

조력:100 선회:10

대파:5 장갑:6

포문:80 창고:500

보조 돛:4 선수상:없음

특수 장비:없음 추가 장갑:없음

선측포:없음 선수포:없음 선미포:없음

“좋았어! 역시 대박이로군!”

이순신의 정보에 테크토는 아주 흡족한 미소와 함께 갑판에서 땅으로 내려왔다.

“호오, 제법 맛있는 냄새로군. 자네들이 잡아왔나?”

“끝나신 겁니까? 네, 저희가 저 아래 숲에서 잡아왔습니다.”

테크토가 선박 제조를 마치는 동안 천휘와 미온은 직접 숲으로 내려가 긴 송곳니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아왔다. 그리고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블랙헤드에게 선물 받은 식객 특유의 조미료로 간을 했다.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난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야. 게다가 이토록 감칠맛 나는 냄새라니. 이 섬에 들어서고 나서 처음 먹어보는 제대로 된 식사로군. 어서들 먹지.”

테크토는 외양만큼이나 성격이 호방했다. 천휘 역시 자신은 그렇지 않았지만, 테크토와 같은 남자다운 사내를 좋아했다.

“하아! 이거 이렇게 좋은 안주에 술이 없으니 입이 심심하구먼.”

“제가 그럴 줄 알고 맥주 한 병 준비해왔습니다. 소주를 준비했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아르니안 대륙에서는 소주를 팔지 않네요.”

“하하하! 그렇겠지. 아무튼 맥주라도 어딘가. 자자, 한잔들 하세나.”

천휘는 들고 있던 맥주를 따서 테크토에게 건넸다. 특별히 포션 병에 따로 맥주를 담아온 것이었다.

벌컥벌컥!

“캬아! 맛 한번 죽이는구먼.”

“그러게 말입니다.”

“게다가 저기 석양까지 보여요. 여기 정말 최고인데요?”

미온의 말처럼 서쪽 하늘에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저물어가는 해가 만들어내는 석양의 아름다움은 세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술맛을 좋게 만들어줬다.

“이제 어느 정도 배를 채웠으니,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내야겠지. 어디까지 듣고 왔나?”

“피오르해에 아직 개척되지 않은 미개척지가 있다는 말까지 듣고 왔습니다.”

“호오, 자네 생각보다 명성이 대단한 모양이야. 그 정도까지 알아내려면 진 마탑에서 쌓은 명성 수치가 엄청나겠어.”

“과찬이십니다.”

테크토의 말에 천휘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자네 말이 맞네. 내가 얼마 전, 이 해도를 따라 바다를 항해하던 중 거대한 섬들이 모여 있는 하나의 제도를 발견했네.”

“제도라면…….”

“총 열 개의 섬이 근방에 밀집해 있더군. 게다가 하나하나가 아르니안 대륙의 웬만한 영지 크기와 맞먹었어. 특히 중앙에 위치한 섬은 여느 왕국의 공작 영지와도 견줄 정도였네. 물론 다른 섬들도 크기가 조금씩 차이가 있고.”

테크토의 말에 천휘는 머릿속이 멍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의 영지 크기의 섬이라면, 정말 어느 정도의 크기일지 상상이 안 간 탓이었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섬 모두에 꽤나 많은 수의 NPC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야. 그 주변을 달포에 걸쳐 탐색한 결과이니 믿어도 될 걸세.”

“NPC들까지요?”

“그렇지.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말일세.”

꿀꺽.

천휘도 어느 정도 테크토가 말하려는 뒷이야기를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워낙 엄청난 이야기인 탓이었다.

“조만간 그 섬이 패치를 통해 유저들에게 공개될 거라는 것일세. 더불어 그곳을 유저들의 공성 지역으로 선포할 것이라는 것도 예상해볼 수 있네.”

“역시!”

천휘의 생각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미온은 그곳의 가치를 잘 모르겠다는 듯 테크토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죠? 공성 지역이 된다니…….”

“미온, 다른 가상현실 게임 안 해봤어?”

“응. 가상현실 게임은 이번이 처음이야.”

“아, 그래서 모르는구나. 잘 들어둬. 현재 아르니안 대륙의 길드들은 그저 한 지역의 사냥터만을 나눠가질 뿐이야. 그 말인즉, 길드가 차지할 수 있는 성이나 지역이 없다는 소리지. 공성 지역이라는 말은, 그 지역의 성을 길드가 차지할 수 있다는 소리야.”

천휘의 자세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미온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허허! 한마디로 이런 말일세. 그 섬들을 중심으로 유저들이 지배할 수 있는 땅이 생긴다는 거지.”

“아, 그렇게 되면 다른 NPC 영주들처럼 세금도 걷을 수 있고 그러겠네?”

“바로 그거지! 큰 영지를 차지하면 할수록 세금은 늘어날 테고, 찾아오는 유저들도 늘어나 엄청난 발전을 이루게 될 거야!”

천휘의 들뜬 말에 그제야 미온도 그 섬들의 가치를 알게 된 듯 흥분했다.

“그럼 그곳을 우리들도 차지할 수 있다는 소리잖아?”

“아직은 아냐. 그렇게 쉽게 영지를 차지할 순 없을 거야.”

“왜?”

“영지를 차지하면 자동적으로 공성이라는 걸 하게 돼. 만약 우리가 하나의 섬을 차지하고 있다면 수성을 해야 할 텐데, 그러기에 우리는 함께 수성을 해낼 만한 유저들이 없어. 고작해야 수십 명이 전부잖아.”

“흐음, 그도 그렇겠네.”

천휘의 설명에 미온이 실망한 눈치였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었다.

“그곳을 한번 구경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으로서는 무리네. 내가 가진 배라고는 이 이순신이 전부거든.”

“예전에 그곳을 가보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얼마 전에 해왕류 몬스터에게 배가 난파되었네. 물론 난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웬만한 해왕류 몬스터에게도 부서지지 않을 이 이순신을 만들게 된 거고.”

“아…….”

천휘는 테크토의 말에 석양의 붉은빛을 반사시키며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이순신을 바라봤다.

웬만한 4층 건물의 높이에, 길이는 50미터를 넘어 대략 70미터는 되어 보였다. 너비 역시 엄청나 거의 15미터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선박이었다.

“이걸 움직이려면 수백 명은 필요할 텐데…….”

“최소한 150명은 되어야 움직일 수 있네. 게다가 최소한의 선원들이 항해 스킬을 익혀야만 하지.”

“항해 스킬이라면…….”

“그런 스킬도 있어요?”

눈앞에서 테크토가 조선 스킬을 이용해 선박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일종의 생산 스킬로 치부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항해 스킬은 또 다른 문제였다. 만약 배를 운용하는 데 항해 스킬이 필요하다면, 그 섬에서의 공성 혹은 수성 전투를 펼치려면 반드시 익혀 둬야 할 스킬인 것이다.

“당연히 필요하네. 배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항해는 물론이고 조타나 포술, 파수는 기본적으로 익혀야 할 스킬들이네. 게다가 마의 해역이라고 불리는 바다인 만큼 해왕류 몬스터를 처치할 전투 능력도 필수적으로 갖춰야겠지.”

테크토의 설명에 천휘는 심각하게 고민을 거듭했다.

‘지금 당장 유저들을 끌어 모으는 것도 한계가 있다. 제법 실력 있는 유저들은 대부분 대형 길드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이지. 기껏 해봤자 수십 명 정도가 모을 수 있는 인원의 전부야. 그렇다는 이야기는…….’

“혹시 그 항해 스킬, 테크토 님께서 전수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전수? 흐음, 내 항해 스킬이 고급의 단계에 이르긴 했지만, 우리 세 명만으로는 이순신을 움직일 수 없다네.”

『오벨리스크』에서는 전수자만 있다면 NPC들도 스킬을 익힐 수 있다. 천휘가 보유하고 있는 수백 기의 강시들도 NPC라면 NPC.

천휘는 오베른을 소환했다.

“아공간 오픈, 오베른 소환!”

스파아앗.

“허억! 자… 자네! 저… 저 사람은 대체 뭔가!”

갑작스러운 오베른의 등장에 테크토가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제가 부리는 하수인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보다 어떻습니까? 항해 스킬을 전수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천휘의 물음에 그제야 테크토는 오베른을 유심히 관찰했다.

거대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포스. 게다가 등 뒤에 메고 있는 클레이모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오금을 저리게 만들 정도로 흉악해 보였다.

[무슨 일이지, 주인?]

갑자기 소환된 마당에 처음 보는 이방인이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자, 심기가 불편해진 듯 오베른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너희들에게 새로운 스킬을 익히게 하려고.”

[스킬? 그게 무슨 소리지? 지금의 내 무력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 이건가!]

“허업!”

스킬 전수가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 오베른에게 접근하던 테크토는 난데없이 전신을 따갑게 만드는 마나의 파동에 숨을 삼키며 천휘를 바라봤다.

“죄송합니다. 오베른! 당장 마나를 거두지 못해! 네 녀석의 무력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익혀야 할 스킬이 있어서 그런 거다!”

[결국은 내 무력을 의심해서 새로운 공격 스킬을 익히게 하려는 것 아니냐! 날 무시하는 것인가!]

“이런 쇠고집! 그런 게 아니라니까! 바다에서 필요한 항해 스킬을 익히려는 거다!”

[…항해?]

흥분한 오베른을 간신히 진정시킨 천휘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하고는 항해 스킬을 익혀야 할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확실히 저 거대한 선박을 움직이려면 한두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겠군.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주인?]

“그래. 그러니까 어떻게든 익혀 줘. 일단 너를 통해 다른 녀석들도 익힐 수 있는지 없는지 알아볼 거야.”

[알겠다. 수긍하지.]

간신히 오베른을 설득한 천휘는 이제 테크토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에 테크토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오베른에게로 다가갔다.

[띠링! 스킬 전수가 가능한 NPC입니다. 어떤 스킬을 전수하시겠습니까?]

“오, 다행히 되는군 그래. 바로 스킬을 전수해도 되겠는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요.”

“알겠네. 항해 스킬을 전수하겠다.”

[띠링! 테크토 님의 고급 항해 스킬의 전수가 시작되었습니다. 상대방의 지능이 낮은 관계로 5분 이상이 소요됩니다.]

오베른은 등급이 높은 천마강시임에도 지능이 상당히 낮았다. 그도 그럴 것이 숙련도가 가장 떨어졌을 때 제작되어 본래의 지능을 완벽하게 재생시키지 못한 탓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전수가 가능하다면, 다른 강시들도 노력만 기울이면 항해 스킬을 충분히 익힐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띠링! 항해 스킬 전수가 완료되었습니다.]

[천마강시 오베른이 항해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후우! 이제야 끝났군.”

“감사드립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혹시 모든 선원이 항해 스킬을 다 익혀야만 배를 움직일 수 있는 겁니까?”

오베른의 지능은 그나마 강시 중에서 나은 축이었다. 아예 지능이 없는 카이젠 사이클롭스 강시들도 있었다.

“꼭 그렇지만은 않네. 노를 저을 선원들이나, 갑판 위의 돛을 움직일 선원들은 항해 스킬이 필요 없지. 노를 젓는 것이야 따로 스킬이 필요한 게 아니라 노를 저을 힘만 있으면 되는 일이고, 돛을 움직이는 것 역시 어느 정도의 지식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니까 말이야.”

“아, 그렇습니까? 다행이네요.”

“응? 무슨 말이지? 뭐가 다행이라는 소리인가?”

테크토의 물음에 천휘가 득의양양한 미소와 함께 카이젠 사이클롭스 강시 한 구와 다크 엘프 강시 한 구를 소환했다.

“허억! 저… 저 몬스터는! 오우거보다도 강력하다는 지상 최강의 생명체 사이클롭스가 아닌가! 게다가 그 옆은… 엘프? 아니, 뭔가 이질적인데…….”

“놀라지 마십시오. 이 녀석들 역시 제 하수인이라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게다가 제겐 이 사이클롭스가 무려 백 기나 됩니다. 더불어 다크 엘프들 역시 수십 기나 되고요.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충분히 이순신을 움직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천휘의 설명에 테크토가 놀란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개인이 그 정도로 많은 소환수를 거느릴 수 있느냐고 묻는 듯했다. 그리고 이내 그것은 천휘의 정체에 대한 의심으로 발전했다.

“…자네, 정체가 뭔가? 보아하니, 이들은 소환수인 것 같은데, 일개 소환사가 이토록 많은 소환수를 거느릴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게다가 지능을 가지고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는 소환수라니……. 내 비록 지금은 이곳에서 배나 만들고 있는 조선공에 불과하지만, 『오벨리스크』에 대한 지식은 여느 유저들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네. 날 속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게.”

테크토로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의심이었다.

결국 천휘는 그에게 자신의 비밀을 조금 풀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를 아군으로 포섭할 계획이었다.

“죄송합니다. 제 정체에 대해서 미리 말씀드렸어야 하는 건데.”

“그런 빈말은 필요 없네.”

“하아!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일단 제 정체에 대해 알게 되신다고 하더라도 다른 이들에게 함구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천휘의 말을 냉랭하게 받아치던 테크토가 그의 진중한 눈빛을 바라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나이 가슴을 걸고 맹세하지.”

“감사합니다. 사실 전… 이 아르니안 대륙에서 처음 『오벨리스크』를 시작한 유저가 아닙니다.”

“헙! 그렇다면 설마?”

“네, 사실입니다. 저는 천 제국에서 건너온 유저입니다. 어떻게, 그리고 왜 드래곤 산맥을 넘었는지 묻지는 말아주십시오. 만약… 이후에 테크토 님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히 되었을 때, 그때 모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알겠네. 그렇게 하지. 그렇다면 천 제국에서의 자네의 직업은 무엇이었나? 내가 알기로는 천 제국에 소환사 직업은 없는 걸로 아는데 말이야.”

의외로 테크토는 『오벨리스크』에 대해 빠삭한 듯했다. 이렇게 외지에서 게임을 즐기면서도 『오벨리스크』 홈페이지인 오시리스 게시판을 충실하게 탐색했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제 직업은 강시술사입니다. 이곳의 네크로맨서와 비슷한 직업이지요.”

“아, 강시술사! 시체를 일으켜 하수인으로 만드는 바로 그 직업 말이군. 아, 이제야 이해가 가는구먼. 한데, 강시술사는 그렇게 소환을 거쳐 강시를 불러오지 못하지 않나? 내가 알기로는 강시를 담을 관이 있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아, 제법 많이 알고 계시네요. 사실 저는 아는 지인을 통해 오직 8서클의 대마도사만 가질 수 있다는 아공간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공간? 자네 정말 대단하구먼! 아공간을 가졌다는 이는 또 처음 보네.”

“하하! 과찬이십니다.”

어느덧 오해가 풀렸는지 테크토의 얼굴이 부드러워졌다. 천휘 역시 환한 얼굴로 그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네 혹시 손재주가 좋은 대장장이 강시들도 보유하고 있는가?”

“대장장이 강시요?”

“그래. 이왕 자네의 강시에 투자하게 된 것, 내 조선 스킬도 전수하고 싶어서 그러네. 왠지 모르게 자네와 함께 다니면 꽤나 즐거운 일들이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대장장이 강시라…….”

아직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천휘가 강시로 제작했던 녀석들은 대부분 공격에 특화된 녀석들이었다. 처음 제작했던 변강쇠나 파뱃이 그러했고, 오베른이나 카이젠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직은 없지만, 한번 고려해볼 문제이긴 하네요.”

“나 혼자서 배를 제작하려면 엄청난 기일이 소요된다네. 하지만 날 거들어줄 보조 조선공만 있다면 속도가 몇 배는 빨라질 걸세.”

“알겠습니다. 한번 알아봐야겠네요. 그보다 일단은 제 강시들에게 항해에 필요한 스킬들을 가르쳐 주시지 않으시렵니까? 이 녀석들로 하여금 이 이순신을 움직이게 하고 싶은데 말이죠.”

천휘의 말에 테크토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하네. 내 마침 항해와 관련된 많은 스킬을 보유하고 있으니, 걱정 말게나.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네.”

“문제라면…….”

“난 항해와 관련된 스킬은 대부분 보유하고 있지만, 스킬 전수를 할 수 있는 스킬은 고작해야 항해 스킬과 조타 스킬이 전부일세. 그 외 파수 스킬이나 포술 스킬 등은 없지. 이제껏 작은 규모의 배만 제작해 홀로 항해하다 보니 그리되었지. 하지만 파수 스킬이나 포술 스킬은 반드시 필요하네. 해왕류 몬스터의 존재를 파악하기 위해서 파수 스킬이 필요하고, 해왕류 몬스터와 어쩔 수 없이 부딪쳤을 때 처치하기 위해 포술 스킬이 필요하다네.”

테크토의 말처럼 그것은 제법 심각한 문제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해왕류 몬스터는 피오르해를 마의 해역이라 부르게 만든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흐음, 혹시 파수 스킬이나 포술 스킬을 전문적으로 익히고 가르쳐 주는 NPC는 없을까요?”

“내가 알기로 그런 NPC는 없네. 어쩌면…….”

“어쩌면?”

“그 제도가 유저들에게 공개되고 업데이트될 내용일 수도 있겠지.”

테크토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바다에서나 필요할 법한 파수 스킬이나 포술 스킬은 아직 공개되지 않아도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테크토 님께서는 이곳에서 제 강시들에게 항해 스킬과 조타 스킬을 익히게 해주세요. 더불어 카이젠 사이클롭스 강시들에게는 노 젓는 방법을 알려 주시고, 다크 엘프 강시들에게는 돛을 움직이고 조절하는 방법을 알려 주세요.”

“아, 그보다 자꾸 테크토 님, 테크토 님 하는데 그냥 형님이라고 부르게. 나도 자네를 천휘 아우라고 부름세.”

“저야 그러면 영광이지요.”

“쳇! 내게는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더니, 이제는 왕따까지 시키실 거예요? 저도 앞으로 테크토 오빠라고 부르겠어요.”

“허허! 나야 예쁜 여동생이 생기면 좋지.”

“하하하!”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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