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3장 사제지정 (54/82)

제3장 사제지정

아르니안 대륙 최강의 왕국인 중부 라그혼 왕국 수도인 이그나혼은 상시 지나가는 유저들로 북적거렸다.

수많은 『오벨리스크』의 도시 중에서도 가장 많은 유저들이 거점으로 삼고 있는 도시답게 이그나혼에는 무려 5만이 넘는 유저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젠장! 이 녀석들 왜 이렇게 안 와?”

“담임이면 담임답게 좀 느긋하게 기다릴 수 없어? 아직 약속 시간 좀 남았어.”

“쳇! 녀석들이 빠져 가지고 담임 무서운 줄 몰라요.”

발 디딜 틈도 없이 유저들이 오고 가는 이그나혼 중앙 광장에 천휘와 미온이 나란히 서 있었다. 두 사람은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연방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어? 저기 너네 반 애들 아냐?”

“너 자꾸 그렇게 반말할래? 하늘같은 서방한테 너가 뭐냐, 너가!”

미온의 ‘너’라는 말이 거슬렸는지 천휘가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모습이 귀여운지 미온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하늘같은 서방은 무슨. 아무튼 맞지?”

“어, 맞는 것 같아. 아무튼 애들 앞에서 너라고만 해봐. 확 잡아먹어버릴까 보다.”

“헉! 어떻게 여자 친구 앞에서 그렇게 야한 말을!”

“야하긴. 우리 나이를 생각해봐. 이제 곧 내년이면 서른이거든?”

“서른이건 마흔이건 그런 말은 앞으로 삼갔으면 좋겠어. 난 순진하니까!”

“…어련하시겠어요.”

그렇게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멀리서 백의의 로브를 착용한 앳된 소녀가 다가왔다.

“혹시… 담임 쌤?”

“오, 잘 찾아왔네? 해주 맞지?”

“네! 저 해주예요. 아이디는 라푼젤이고요.”

1학년 8반에서도 몇 안 되는 모범생 중 한 명이 해주였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녀가 어린 시절 세계 수학 올림피아드 대회에 나가서 대상을 거머쥔 천재라는 데 있었다.

어떻게 해서 그런 천재가 8반과 같은 문제아 반에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그녀는 현재 영완의 문제아 제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마법사인가 보네?”

“네, 4서클 흑마법사예요.”

“흑마법사? 백의의 로브를 착용하고?”

“흑마법사라고 꼭 검은 로브만 입으란 법 있나요. 자기 취향에 따라 입는 법이지.”

“…그건 그렇지만.”

흑마법사들이 검은 로브를 즐겨 입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검은 로브에는 흑마법사에 유리한 옵션이 달려 있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반면, 라푼젤이 착용한 것처럼 새하얀 로브, 혹은 다양한 색상의 로브에는 일반적인 원소 마법과 관련한 옵션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원소 마법으로 분류되는 일반 마법사와 흑마법사를 구분하는, 일종의 척도나 마찬가지였다.

“역시 뭘 좀 아는구나? 요즘 패션 트렌드는 당연히 흰색이지!”

“누구… 앗! 혹시 영어 선생님?”

처음부터 천휘 옆에 서 있던 미온이었지만, 현실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라푼젤은 이제야 그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래. 여기서는 미온이라 불리지만 말이야.”

“아, 안녕하세요. 그런데 어떻게 두 분이 같이…….”

“애들 다 오면 말해줄게. 일단 같이 애들 기다리자.”

“네.”

라푼젤이 도착하고부터 아이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정호와 원석이가 합류하면서 1학년 8반 32명 전원이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오, 너희들까지 오다니, 제법인걸?”

정호와 원석, 『오벨리스크』에서 앞문과 뒷문이라는 아이디를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의 등장에 천휘가 의외라는 듯 말했다.

“안 오면 일주일 내내 여자 화장실 청소 시킬 거면서.”

“권력의 횡포.”

“큭큭! 좋아! 다들 모였으니 먼저 밥이나 먹자. 다들 따라와.”

천휘는 아이들과 함께 중앙 광장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운남정으로 향했다. 아이들 중에서도 운남정의 명성을 아는 이들이 꽤 되는 듯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천휘를 바라봤다.

“선생님.”

“왜?”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여기 이그나혼에서도 비싸기로 소문난 식당인데.”

한 학생의 걱정 어린 말에 천휘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선생님이 너희들에게 이 정도도 사지 못할까 봐? 걱정 말고 어서 들어가자. 할 이야기들이 많아.”

염려 말라는 영완의 말에도 아이들의 눈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현실에서 그가 선생이라고 해서 꼭 게임에서까지 돈이 많다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운남정은 고렙 유저들이 즐겨 찾는 이그나혼의 명소가 아니었던가.

아이들은 걱정 어린 표정으로 영완의 뒤를 따랐다.

차라락.

“어서 오십시오. 어라? 천휘 님.”

“아, 파르툼, 오랜만이네요.”

“그러게요. 식사하러 오신 겁니까?”

“네. 자리 있나요? 한 서른 명 정도 데려왔는데.”

“없어도 천휘 님 부탁이면 만들어드려야죠. 어이, 거기 알바생! 여기 이분들 모시고 3층 VIP 룸으로 안내해드려.”

파르툼은 운남정의 지배인이었다. 본래는 블랙헤드의 동네 아는 형이었는데, 이렇듯 블랙헤드의 부탁으로 운남정의 대소사를 도맡아 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절 따라오세요.”

“감사합니다. 조만간 블랙 녀석이랑 셋이서 술이나 한잔해요.”

“그야 이를 말인가요. 저야 영광이죠. 아무튼 좋은 시간 되세요.”

천휘 일행은 이내 파르툼이 소개한 알바생의 안내로 3층 VIP 룸으로 향했다. 족히 50명은 앉을 수 있는 거대하고도 화려한 객실 풍경에 안으로 들어서는 아이들의 두 눈이 토끼 눈처럼 변했다.

“감사합니다. 여기 팁이에요.”

“뭘 이런 걸 다. 정성과 사랑으로 모시겠습니다. 메뉴는 어떻게 하실지…….”

“이미 주방장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아마 알아서 가져다주실 거예요.”

“아, 그럼 저는 이만.”

알바생에게 1실버를 팁으로 준 천휘는 미온과 함께 마지막으로 객실 안으로 들어섰다.

“다들 그렇게 멍하니 서 있지만 말고 어서 자리에 앉아라.”

“네!”

천휘의 지시에 아이들이 현실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자리에 착석했다. 그들의 눈은 어느새 무한 존경의 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뭐냐, 그 표정들은?”

그런 아이들의 눈빛이 부담되었는지 천휘가 못마땅한 듯 물었다.

“존경합니다, 선생님!”

“어떻게 운남정의 지배인과 아는 사이신지!”

“다시 봤습니다, 선생님!”

“하아?”

“후훗! 아이들이 담임선생님의 인맥에 좀 놀란 눈치인데?”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에 미온이 가벼운 우스갯소리를 건넸다.

“그보다 지금 그 모습, 안경 벗으신 거예요? 생각보다 멋지신데요?”

“너도 그 생각했어? 내가 봐도 그런 것 같아. 저 정도면 10점 만점에 9점 정도는 되지 않냐?”

“흐음, 키가 좀 작은 게 흠이긴 하지만, 저 정도 페이스라면… 8.5점!”

게다가 더욱 가관인 것은 여자 아이들이었다. 마치 천휘의 얼굴을 보석 감정하듯 점수를 매기고 있는 그녀들의 작태에 천휘는 어이가 없다는 듯 당황한 얼굴로 쳐다봤다.

“후훗! 역시 만만히 볼 아이들은 아니야.”

“…하아! 담임이 이렇게 힘든 거였다니…….”

요새 아이들이 당돌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제자들은 그 정도가 너무도 심했다. 초딩들을 데려다놔도 이렇게 부잡스럽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며 천휘는 가만히 탁자를 두드렸다.

탁탁탁.

“자, 조용! 이제부터 나 이외에 입을 여는 녀석들은 당장 이 방에서 내보낼 테니, 알아서들 해!”

“…….”

천휘의 한마디에 아이들은 금방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그에게 집중했다.

“내가 바쁜 주말에 너희들을 보고자 한 것은, 담임으로서 너희들과 조금이라도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함이다. 너희들이 보다시피 선생님은 이 게임을 오래 해서 제법 인맥도 있고 레벨도 높아. 그러니 너희들이 레벨이 그리 높지 않다 하더라도 내가 도와줄 수 있단 말이지. 그래도 각자 소개를 하긴 해야겠지? 한 명씩 일어서서 아이디와 레벨, 그리고 직업을 말해봐. 반장, 너부터!”

“저, 저요? 네…….”

천휘의 지목에 반장 동국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아이디는 파라오. 레벨은 273이고 직업은 사령술사(死靈術士)예요.”

“사령술사? 그런 직업도 있었나?”

처음 듣는 직업명에 천휘는 생소한 듯 되물었다.

“흑마법사에서 전직할 수 있는 직업인데, 말 그대로 유령을 부리는 마법사예요. 흑마법사의 마법 중에서도 악령 소환 마법에 특화된 직업이죠.”

“호오! 제법 유니크한 직업을 가졌구나! 다음!”

아무래도 방과 후에 공부는 않고 게임만 했는지 동국이, 파라오는 레벨이 무척이나 높았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주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천휘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제 아이디는 로스팜이고, 레벨은…….”

동국을 제외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대부분 레벨이 낮고 직업도 겨우 1차 전직을 한 상태였다.

평균 레벨 120.

그 정도면 이제 갓 초보티를 벗은 중수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고등학생이다 보니 시간의 제약이 많은 모양이었다.

“다음!”

이제 남은 이들이라고는 이랑이와 그녀의 패거리들, 그리고 용필과 정호를 비롯한 그의 패거리들이 전부였다.

“저희는 아이디와 레벨이 비슷하니, 동시에 말할게요.”

“그러든지.”

이랑과 상미, 그리고 경애 세 사람은 함께 일어섰다. 세 사람 모두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가죽 갑옷을 착용하고 허리춤에는 짧은 검신의 단검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솔비.”

“담비.”

“고비예요.”

“…솔비, 담비는 이해가 가는데, 고비는 뭐냐.”

“우리 맘이에요!”

천휘의 말에 고비라는 아이디를 지닌 이랑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그 표독스러운 눈빛에 말 못할 사연이 있다는 걸 깨달은 천휘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우린 셋 다 레벨 250이 넘은 어쌔신이에요. 전 어쌔신 중에서도 독에 특화된 포이즌 어쌔신이고.”

“전 은신에 특화된 쉐도우 어쌔신이에요.”

“그리고 전…….”

“말 안 해도 알겠다. 넌 투척에 특화된…….”

“아니거든요!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보라고요!”

어쌔신을 마스터하면 총 3가지 부류로 전직을 할 수 있게 된다. 솔비가 택한 포이즌 어쌔신과 담비가 택한 쉐도우 어쌔신, 그리고 영완이 설명하려는 쓰로우 어쌔신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런 천휘의 예상과는 달리 고비의 직업은 쓰로우 어쌔신이 아닌 다른 직업인 모양이었다.

“에헴! 저는 어쌔신 직업군에서도 히든 직업인 블러드 어쌔신이에요. 말 그대로 피와 관련된 스킬을 사용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헛!”

고비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설명하다 말고 손가락 끝에서 붉은 핏방울을 분출했다.

붉은 핏방울은 이내 허공 위로 떠오르더니, 가늘고 긴 바늘의 형상으로 변모해 천휘에게로 날아갔다.

휘익.

카앙.

스르륵.

“헉!”

천휘에게로 날아오는 피의 바늘은 천장에서 떨어져 내린 닌자거북의 수장 레오나르도가 단검으로 쳐냈다. 그리고는 나머지 닌자거북 셋은 어느새 고비의 목젖에 날카로운 단검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그만! 모두 물러나라.”

[명을 받듭니다.]

스르륵.

“…….”

천휘의 명령에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닌자거북들.

아이들은 찰나간에 일어난 놀라운 광경에 모두 할 말을 잃고 천휘와 고비를 번갈아 쳐다봤다.

“내 수하들이야. 걱정 마라. 너희들을 어쩌진 않을 거야. 그보다 이랑이, 아니 고비 네 직업인 블러드 어쌔신의 스킬은 그게 전부냐?”

“이게 전부일 리가 있겠어요! 이보다 훨씬 뛰어난 스킬도 많다고요!”

“그래? 생각보다 『오벨리스크』를 열심히 했나 본데? 좋았어. 그럼 다음!”

천휘의 말에 고비 패거리가 자리에 앉고 정호 패거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희 역시 아이디가 비슷합니다.”

“알아서들 해.”

좀 전의 고비 패거리처럼 비슷하게 아이디를 지어냈는지 정호와 원석이 서로를 쳐다보며 소리쳤다.

“우리는…….”

“명탐정!”

“코난이에요!”

“…….”

“푸하하하! 명탐정 코난이래! 푸하하하!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름을 그딴 식으로! 으하하하!”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추리만화를 광적으로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작은 몸으로 악과 맞서 싸우는 명탐정 코난을 좋아했고, 고심 끝에 아이디를 그렇게 지은 것이다.

“…쳇.”

“이럴 줄 알았어.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짓지 말자고 했잖아!”

“헉! 세상에!”

천휘가 명탐정 코난이라는 말에 폭소를 터트리고 있을 때, 용필이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난 김전일인데!”

“…….”

“푸하하하! 김전일! 그럼 너희는 탐정 시리즈인 거냐? 큭큭큭! 하하하!”

김전일 역시 예전에 유명했던 추리만화 중 하나였다. 김전일과 코난은 둘 다 어린 소년이 탐정 역할을 맡아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었다.

그렇듯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세 사람은 자신들의 아이디를 비웃는 천휘를 살기 어린 눈초리로 쳐다보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만 웃어. 애들이 상처 받잖아.”

“상처는 무슨. 큭큭큭! 아, 간만에 제대로 웃었네. 고맙다, 너희들. 간만에 웃었더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야. 큭큭큭!”

“쳇! 우리 레벨을 듣고서도 웃을 수 있는지 보죠. 제 레벨은 317.”

“전 308이에요.”

“어라? 나도 레벨 300 넘었는데. 전 328이에요.”

“오호라, 그럼 너희 셋이 우리 반에서 가장 레벨이 높은 축에 들겠는데? 너희 셋 직업은?”

“전 팔라딘을 2차 전직해서 지금은 크루세이더예요. 주 무기는 이 대검이에요. 이래 봬도 레어 검이라고요.”

“전 사냥꾼을 2차 전직해서 지금은 크레이지 헌터예요.”

“저는 좀 특이한데. 곰 드루이드예요.”

“드루이드?”

드루이드는 분명 히든 직업은 아니지만, 『오벨리스크』 유저들에게 외면받는 직업 중 하나였다.

특성상 스탯 분포가 마법사와 비슷했지만, 공격 마법이나 회복 마법 어느 한쪽으로 특화되지 못한 탓에 드루이드는 매우 어중간한 직업이었다.

그런 드루이드를 300레벨이 넘도록 키운 것도 용하지만, 2차 전직을 곰 드루이드로 했다는 것은 더욱 신기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드루이드를 택한 대부분의 유저들이 곰 드루이드가 아닌 공격속도와 이동속도가 빠른 표범 드루이드를 선택하기 때문이었다.

여러 가지 효용 폭이 넓고 가능성이 풍부한 표범 드루이드와는 달리 곰 드루이드는 공격속도와 이동속도가 일반 전사보다도 느렸고, 그나마 나은 체력 역시 전사보다는 떨어졌다.

한마디로, 공격은 물론이거니와 방어 역시 보통에 지나지 않아 드루이드 유저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받는 직업이 되고 만 것이다.

“그거 거의 사장된 직업 아냐?”

“곰 드루이드를 300레벨까지 키우다니. 무식한 거야, 우직한 거야?”

용필, 아니 김전일의 말에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모두 조용!”

“…….”

순식간에 시끄러워진 객실을 조용히 시킨 천휘는 이내 김전일을 향해 물었다.

“그냥 평범한 곰 드루이드는 아닌 것 같은데?”

김전일의 성격은 천휘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체격이나 인상은 험악하지만, 녀석은 순수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우직한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사교성이 부족해 현실에서도 친구가 거의 없었다.

그런 그가 게임에서라고 친구를 사귀었을 리가 만무했다.

한마디로 오직 자신의 힘으로만 레벨을 올렸을 가능성이 높았고, 천휘는 그렇게 확신했다.

문제는, 솔로잉으로 300레벨을 상회하는 경험치를 쌓을 만큼 곰 드루이드는 강하지 못하다는 데 있었다. 공격에도, 방어에도 특화되지 못한 곰 드루이드의 솔로잉은 분명 한계가 있었다.

“드루이드는 전직을 하기 전에 변신할 수 있는 야수의 영혼을 찾아야 합니다. 전 야수의 영혼 중에서도 리버훌 왕국 북부 황혼의 언덕에서 서식하고 있던 흰곰 크누트의 영혼입니다. 녀석은 추정 레벨 400의 괴물 곰이었죠.”

“뭐야! 그런 곰이 있어? 그런데 그런 엄청난 녀석을 네가 잡았다고?”

“제가 혼자 잡은 건 아니고, 친형의 도움을 받아서 간신히 처치했습니다.”

“친형이 누군데?”

“거인 토르요.”

김전일은 심드렁하게 대답했지만, 그의 말이 끼친 파장은 작지 않았다.

“토르?”

“헉! 지존 12인 중 한 사람인 거인 토르가 용필이네 형이었어?”

“짱인데?”

아이들도 지존 12인에 관해 잘 알고 있는지 김전일을 마치 연예인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 김전일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명탐정과 코난 역시 초롱초롱한 눈빛은 마찬가지였다.

“토르라면 나도 안면이 있지. 다음에 한번 보자 그래.”

“저희 형을 아십니까?”

“알다마다. 내가 이전에 선물도 줬는걸. 천휘라고 하면 알 거다. 애인이랑은 잘되어가는지 모르겠네.”

“나름 잘 사귀고 있습니다. 그 얼굴로 참 용하기도 하죠.”

“큭큭! 역시 동생이라 그를 잘 알고 있네.”

친숙한 두 사람의 대화에 아이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거인 토르의 동생이라는 김전일과, 거인 토르를 친구처럼 대하는 천휘까지. 마치 별세계와 같은 둘의 대화에 아이들은 입을 다물고 그저 이들을 쳐다볼 뿐이었다.

드르륵.

천휘와 김전일의 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객실 문이 열렸다. 이곳 운남정의 주인인 블랙헤드였다.

“왔으믄 연락허지 않고 뭐 해싸냐?”

“그렇게 됐다. 이 시간에 잘도 접속해 있네?”

“이번 주말에 휴가 받았당깨. 지난 남부 원정 땜시 집안일을 못 도와서 아부지가 지랄지랄을 한당깨. 야들은 누구여?”

“내 제자들. 함께 사냥이나 해볼까 하고 모아봤다.”

천휘의 말에 블랙헤드가 호기심에 찬 눈으로 객실을 훑어봤다. 투박하게 생긴 블랙헤드의 눈빛에 아이들이 살짝 긴장하는 눈치였다.

“워매, 그라냐? 다들 똘망똘망하게 잘생겼구먼. 내 얼릉 가서 아랫것들헌티 맛나게 음식허라고 시켜 놓으마.”

“그래주면 고맙고. 아, 다음 주 주말은 확실하게 비워둬라. 무슨 소리인지 알지?”

“알고 있당깨. 그때 보드라고.”

드르륵, 탁.

블랙헤드가 나가자 명탐정 녀석이 물었다.

“누구예요?”

“내 친구.”

“아니, 그거 말고…….”

“아, 이 식당 주인이야. 이름은 블랙헤드. 꽤 유명하지 않나?”

천휘의 대수롭지 않은 말에 아이들이 경악하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헉! 그렇다면 저 사람이!”

“화신의 사막 원정에서 활약했다는!”

“바로 그 식객?”

“후훗.”

화신의 사막 원정을 통해 천휘를 비롯한 일행은 모두 『오벨리스크』에서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다.

일행 중 가장 먼저 유명세를 떨친 건 다름 아닌 카멜이었다. 협곡에서 바위 일족 고블린을 상대로 펼친 그의 무위는 원정대 유저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었다.

또 유명세를 떨친 유저는 바로 식객, 블랙헤드였다. 원정대 유저 중 그의 음식을 맛보지 않은 이가 없었고, 그의 음식으로 목숨을 부지한 이들은 정말 부지기수였다. 게다가 전투에서 보여 준 놀라운 칼질까지.

블랙헤드는 어느덧 요리사 계열 유저 중 최고의 유명인으로 등극했고, 운남정이 그가 운영하는 식당이라는 사실이 입소문이 나서 운남정은 라그혼 왕국을 넘어 아르니안 대륙 전역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형국이었다.

또한 블랙헤드와 함께 유저들에게 떡과 기력 회복 물약을 나눠준 미온 역시 인기인으로 발돋움했다.

그녀의 별명은 생명의 여신.

그녀의 밝은 웃음으로 인해 명을 부지한 유저들이 붙여 준 별명이었다.

마지막으로, 눈송이가 천휘 일행 중 최고의 인기인이 되어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그레이트 웜을 고대 마법 하쿠나 마타타 단 한 번으로 처치한 탓이었다.

당시 원정대의 유저 수백 명이 그레이트 웜의 공격에 목숨을 잃었고, 그 거대한 몸짓에 무릎 꿇은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얼음 마녀.

그렇게 유저들은 얼음 마녀를 빙계 마법을 익힌 유저 중 최고로 꼽고 있었다.

“대단해요, 선생님!”

“어떻게 저토록 유명한 유저랑!”

학교에서만 해도 영완을 같잖게 보던 녀석들의 눈에 어느새 존경의 염이 가득 담겨 있었다.

천휘는 그런 녀석들의 속셈이 무엇인지 훤히 꿰뚫어보며 사악하게 미소를 지었다.

“내가 또 하나 비밀을 알려 줄까?”

“그게 뭔데요?”

천휘의 말에 아이들의 눈빛이 번뜩였다. 아직도 뭔가 감추는 것이 있다는 투의 말 때문이었다.

“그전에 오늘 너희들을 이렇게 만나고자 한 이유를 일러주마. 네 녀석들이 중학 시절을 어떤 식으로 보냈는지 내 대충 들어 알고 있다. 정호, 아니 명탐정 네 녀석은 인근 중학교에서 최고의 주먹으로 불렸다지? 툭 하면 패싸움을 벌이고 말이야.”

“…갑자기 그건.”

“그리고 동국이 너는 가출을 밥 먹듯이 해서 하마터면 졸업을 못할 뻔했고, 용필이 너 이 자식은 유도를 하다가 선배를 피떡을 만들었고 말이야. 나머지 녀석들도 그에 준하는 문제 행동을 한 건 두말할 필요도 없고.”

“쳇! 그렇게 인식시켜 주지 않아도 우리가 문제아란 건 알고 있다고요.”

과거를 들춰내는 천휘의 말에 아이들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그를 쳐다봤다.

그런 아이들의 눈빛이 거북하지도 않은지 천휘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너희들이 이전에 무슨 행동을 했건 난 중요하지 않아. 지금의 너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만 중요할 뿐이다. 남들이 너희를 어떤 식으로 폄하하든, 오직 나만이 너희들을 평가할 수 있다. 난 너희들의 담임이니까! 하지만 너희들은 아직 날 믿지 못하겠지. 때문에 난 오늘 너희들과 이곳 『오벨리스크』에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가려 한다.”

“새로운…….”

“…추억.”

“쳇! 저딴 입에 발린 소리 따윈 믿지 않아.”

“그런 식으로 우리를 달래려 하는 선생이 한둘이었는지 알아요? 웃기는 소리 하지 마요! 선생은 다 똑같아! 믿음? 추억? 그딴 게 다 무슨 소용인데!”

천휘의 말에 아이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며 분노했다. 특히 평소에는 얌전하던 재훈이 녀석은 철천지원수를 대하듯 막말을 퍼부었다.

“아리엘, 가자!”

“으… 응.”

키가 190에 달하는 재훈은 여자 친구인 아리엘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곧바로 객실을 나서려는 찰나, 천휘가 벼락같이 달려들어 방문 앞을 가로막았다.

“재훈아, 아니 여긴 『오벨리스크』니 미켈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화를 가라앉히고 자리에 앉아라. 그렇지 않을 시에는…….”

“그렇지 않을 시에는?”

“무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천휘의 말에 미켈의 눈에 붉은 핏기가 어렸다.

그의 직업은 광전사. 흉성이 가득한 붉은 눈동자는 광전사의 직업 스킬 흉안(凶眼)을 활성화시켰다는 의미였다.

“…….”

“…….”

금방이라도 좁은 방 안에서 전투가 벌어질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

그러나 둘 사이를 파고드는 한 여인 때문에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가 있었다.

“그만 해!”

아리엘이 미켈을 뒤로 밀치며 그의 앞을 막아섰다.

“선생님.”

“왜 그러지?”

아리엘의 등장에 천휘는 한결 부드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희 상처가 많아요. 중딩 시절부터 선생님들은 우리가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의심부터 했고, 심지어 학교 밖에서 일만 터지면 우리부터 족쳤어요. 그런 저희보고 무작정 선생님을 믿으라는 건 무리예요.”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도 보통의 선생님들과 다를 바가 없어. 하지만 아까 말했듯 남의 말만 듣고 너희를 평가하진 않아. 내 스스로 너희를 보고 판단하겠다. 너희가 내게 어떤 모습을 보여 주는지에 따라 너희를 대하는 내 태도도 달라질 거다. 미켈.”

“…네.”

천휘의 부름에 미켈이 고개를 숙인 채 땅바닥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네 녀석이 과거에 어떤 녀석이었는지 난 알고 싶지도 않다. 설사 네 녀석이 소년원을 갔다 왔다 해도 난 관여치 않아. 다른 녀석들도 잘 들어라. 너희들도 너희들의 눈으로 날 평가해라! 그렇다면 나 역시 너희들을 현재의 모습으로만 평가해주지! 무작정 개기는 녀석들은… 화장실 청소를 일주일이 아닌 한 달, 아니 한 학기 동안 시켜 버리겠다!”

“풉!”

“큭!”

진지했던 분위기를 한 번에 깨버리는 천휘의 말에 아이들이 기어코 웃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미켈도 예외는 아닌지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그려졌다.

“다들 그렇게 알고 자리에 앉아라! 오늘 이 자리는 내가 쏜다!”

“…왠지 불길해.”

“…너도 그러냐? 나도 등골이 오싹한 게 뭔가 낌새가 수상해.”

어느새 아이들은 천휘의 내심을 읽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만큼 천휘가 학교에서 보여 준 모습이 한결같았다는 소리였다.

학교에서 그가 보여 주는 모습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남자 아이들을 때려눕히는 현란한 격투 실력은 물론이고,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아이들을 사로잡는 카리스마까지.

하지만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천휘가 겉과 속이 사뭇 다른 인물이라는 것을. 겉으로는 웃고 있으면서 속으로 어떤 꿍꿍이를 숨기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그래서 아이들은 곧이곧대로 천휘를 믿을 수는 없었다. 지금처럼 선의를 베풀 때는 더욱 그랬다.

이윽고 객실로 휘황찬란한 음식들이 들어왔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어둡기 짝이 없었다.

“와아아! 선생님, 이거 완전 맛있습니다!”

“하하하! 많이 먹어라, 김전일!”

…물론 예외도 있었다.

운남정에서 최후의 만찬을 즐긴 천휘와 미온, 그리고 아이들은 곧바로 마탑으로 향했다. 천휘가 미리 계획해둔 사냥터로 이동하기 위함이었다.

끼익.

“이제야 오는 거냐? 미온도 오랜만이네?”

“오랜만이야.”

“그렇게 됐다. 애들 밥 좀 먹이느라고. 준비는 다 됐냐?”

“네놈 때문에 탑주한테 알랑방귀를 뀌어야겠냐? 마탑으로 안 돌아간다고 몇 번을 말해!”

“이번 한 번만 봐주라. 그쪽으로 빠르게 이동하려면 진 마탑의 이동 마법진을 사용해야 하는데 어떡하냐?”

능글맞은 웃음을 짓는 천휘를 보며 로빈이 짜증난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아, 잔소리 말고 빨리 따라오기나 해. 네놈 일 도와주고 나 곧바로 떠나야 돼. 그렇지 않으면 탑주에게 코 꿰여서 마탑을 이어야 할지도 몰라.”

“알았다. 아, 일단 애들 인사부터 받아라. 애들아, 선생님 친구 분이시다. 인사들 해.”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이들은 천휘의 친구라는 마법사가 아르니안 대륙 최고 권위를 가진 진 마탑의 후계자라는 걸 눈치 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마탑의 탑주 자리를 거부하는 듯했지만, 분명히 엄청난 실력의 마법사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것은 그가 착용하고 있는 장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저거 하나에 수백만 골드는 족히 한다는 화이트 드래곤의 세트 맞지?”

“맞아. 그런데 저거 착용 제한이 7서클 아니었어? 그럼 저 사람이 7서클 마도사?”

“마탑의 후계자라잖아! 그 정도는 당연하겠지!”

아이들은 서로 쑥덕거리며 로빈에 대한 평가를 마쳤다. 그들의 눈에 로빈은 말 그대로 황금 알을 낳는 거위였다. 친해지면 황금이 막 쏟아질 것만 같은 노다지.

아이들은 로빈에게 한껏 환한 웃음을 보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야야야, 내가 너희들 속셈 모를 줄 알고? 다들 그 어색한 미소나 좀 거두지?”

“…쳇.”

“담임이 되어가지고 제자 잘되는 꼴을 못 봐요.”

“명탐정, 코난, 죽기 싫으면 입 닫아라.”

“…….”

“…….”

단 한마디로 아이들을 제압한 천휘를 보며 로빈이 빙긋 웃었다.

“은근히 선생티가 나네?”

“그냥 다 그런 거지. 아무튼 어서 움직이자. 주말이라고는 해도 애들은 애들이라 게임 오래 못해.”

“알았다. 자, 모두들 따라와요.”

천휘의 재촉에 로빈은 곧바로 장거리 매스 텔레포트 마법진이 그려진 층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장거리 텔레포트 마법진은 진 마탑의 5층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제한 인원 100명을 한 번에 텔레포트시킬 수 있는 대륙 최고의 마법진이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곳으로 정말 가볼 거냐?”

“확실해. 일은 거기에서 터질 거다. 너희들이 모두 각자 일로 바쁘니, 애들이라도 동원하는 수밖에. 이번 일은 아이들의 마음도 잡고 그곳에 터전도 마련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다.”

마탑의 5층으로 향하며 천휘와 로빈은 귓속말로 대화를 나눴다. 다행히 아이들은 진 마탑 곳곳에 마련된 화려한 장식품들에 정신이 쏠려 있어서 둘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

“자, 여기예요. 모두 안으로 들어가세요.”

로빈의 안내로 도착한 5층에는 이미 여러 명의 마법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5서클의 마법사들로서, 로빈의 부탁을 받고 마법진을 활성화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텔레포트 마법으로 다른 장소로 이동하게 된다. 혹시 텔레포트 마법진을 처음 이용하는 사람?”

“저요!”

“저도 처음이에요!”

“쳇! 이런 부르주아의 산실을 저희들이 어떻게 타봐요!”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하는 일은 꽤나 고렙들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텔레포트 마법을 이용하려면 킬로미터당 1실버에 해당하는 이용료를 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겨우 초짜티를 벗은 아이들의 레벨로는 텔레포트 마법을 이용해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였다.

“헤헷! 나는 토르 형 따라 몇 번 타봤는데.”

…물론 여기에도 예외는 있었다.

“텔레포트 마법은 순간적으로 게임과의 괴리감을 느낄 수가 있다. 이는 처음 가상현실 게임을 접했을 때의 괴리감과 비슷한 면이 있지. 그러니 잠깐 눈을 감고 호흡을 멈춘다면 그러한 괴리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로빈, 부탁한다.”

“알았다.”

천휘의 부탁에 로빈이 마법사들을 일일이 체크하며 마법진 구동을 준비했다.

“선생님! 아까부터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뭐냐, 고비.”

“대체, 우리 어디로 가는 건가요?”

고비의 물음에 아이들이 귀를 쫑긋 세우며 천휘의 입을 주목했다. 그들 모두가 묻고 싶었던 물음이었다. 일언반구도 없이 자신들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천휘인 만큼 아이들의 불안감은 무척이나 컸다.

“후후! 그저 바닷가라고만 알아둬라.”

“바닷가요?”

아르니안 대륙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은 리버훌 왕국과 맞닿은 서해뿐이었다. 펜하르트 왕국이나 테오른 왕국과 인접한 피오르해는 워낙 강력한 해양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탓에 웬만한 실력을 지닌 유저가 아니고서는 가기 힘들었다.

그로 인해 4대 금지에는 속하지 않지만, 피오르해 역시 유저들이 두려워하는 공포의 바다가 되고 말았다.

그것은 아르니안 대륙의 NPC들 역시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피오르해를 죽음의 바다라 명명하고 있었다.

“설마… 피오르해는 아니겠죠?”

반장 파라오의 질문에 아이들이 긴장한 채 천휘를 바라봤다. 몇몇 여자 아이들은 양손을 맞잡으며 기도하는 자세를 취할 정도였다.

“으흐흐.”

이윽고 아이들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하기라도 하듯 천휘의 입에서 괴기스러운 웃음이 흘러나왔다.

“서… 선생님!”

“마… 말도 안 돼!”

“당장 빠져나가야…….”

“매스 텔레포트!”

개죽음을 당하기 싫은 아이들 몇몇이 마법진에서 빠져나가고자 몸을 움직였지만, 이미 장거리 매스 텔레포트 마법진이 구동되고야 말았다.

진 마탑 5층을 새하얗게 뒤덮은 마나의 향연.

천휘와 미온, 그리고 1학년 8반 아이들은 어느새 수백 킬로미터의 거리를 격하고 피오르해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안 돼에에에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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