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장 최강 담임과 아이들 (45/82)

제4장 최강 담임과 아이들

아침부터 결려 오는 어깨에 영완은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어깨를 주물렀다.

“후후, 역시 승차감 하나는 최고네.”

결리는 어깨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영완은 새로 산 차가 너무도 마음에 들어 그쯤은 우습게 넘길 수 있었다.

무려 4년이나 걸려서 산 차였다. 물론 36개월 할부로 샀지만 온몸을 편안하게 만드는 승차감이 그로 하여금 절로 미소 짓게 만들고 있었다.

“쳇, 결국 여기까지 와버렸나?”

영완은 이제 버스가 아닌 자가용으로 출근하게 되었지만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집에서 나서야 했다. 어떤 여인에 의한 강압 때문이었다.

“오늘은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잔소리 말고 타! 출근 시간에 올림픽대로 넘어오는 게 쉬운 줄 알아?”

“아침부터 왜 신경질이야!”

“큭.”

새벽 댓바람부터 온 마을 주민들을 깨우는 고성방가의 주인공은 미연이었다.

그녀는 최근에 영완을 마치 하인 부리듯 부리고 있었다. 출퇴근 시에 집에 데려다주는 것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시간을 내어 영화를 보면서 데이트까지 즐기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미연의 제안 때문이었다.

‘내가 보기에 희영이도 네가 신경 쓰이기는 하나 봐.’

‘내가 신경 쓰인다고?’

‘그래! 그러니까 이제부터 우리 연인처럼 행동하자.’

‘연인? 그건 또 뭔 소리야?’

‘그것이 아직도 널 신경 쓰고 있다면, 우리가 연인처럼 행동해서 그년의 심기를 거스르자는 말이야. 그러면 일종의 복수가 되지 않겠어? 그리고 너와 난 그년이 신경 쓰든 말든 학교에서 애정 행각을 벌이고. 어때, 내 생각이?’

미연의 계획에 따라 영완은 그날부터 미연과 연인 행세를 하고 다녔다. 신학기가 시작되는 시점이기에 학교 업무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긴 했지만, 두 사람은 지난 몇 주 동안 그녀가 보일 때마다 낯 뜨거운 애정 행각을 벌여 오고 있었다.

타악.

“출발해.”

“휴, 이 짓 이제 그만 하면 안 될까? 아니, 연인 행세는 학교 안에서만 해도 되잖아!”

“이 똘추야! 그 여시 같은 것이 그 정도로 속을 것 같아? 그 불여시를 속이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해! 잔소리 말고 내 말대로 해! 그보다 개학식부터 늦을 거야? 이러다 우리 둘 다 늦겠다!”

“헉! 벌써 시간이……. 안전벨트 매! 바로 출발한다!”

영완은 곧바로 차를 몰아 학교로 향했다. 하지만 출근 시간의 올림픽대로는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막히는 구간이었다.

때문에 결국 두 사람은 개학식에 10분가량 지각하고야 말았다.

끼이익.

철컥.

“야, 무슨 운전을 그따위로 해!”

“뛰기나 해! 개학식부터 교장 선생님께 찍히고 싶어?”

영완과 미연은 주차를 하자마자 아옹다옹 다투며 운동장으로 뛰어갔다.

“에, 다음 1학년 8반 담임선생님은 생물 담당 선생님이신 서영완 선생님이십니다. 서영완 선생님! 서영완 선생님 안 계십니까?”

영완과 미연이 부리나케 운동장으로 뛰어가자 교감 선생님이 영완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저 왔습니다!”

“큭큭큭.”

“뭐야, 저 꼰대?”

“8반은 좋겠다. 저런 어리바리가 담탱이라니.”

교감 선생님의 부름에 영완이 헐레벌떡 소리치자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그를 알지 못하는 1학년 신입생들이 킥킥대며 그를 비웃고 있었다.

“서 선생, 끝나고 나 좀 봅시다.”

“네에…….”

결국 교감 선생님이 쏘아붙이는 말에 영완은 풀이 죽은 소리로 대답하며 1학년 8반 앞으로 걸어갔다.

툭.

“잘해봐, 어리바리 담탱.”

“큭, 너 나중에 보자.”

자신의 어깨를 치며 비아냥거리는 미연을 보며 영완은 이를 부득 갈았다. 하지만 학생들이 보는 앞인지라 최대한 자중하며 태연한 얼굴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미 1학년 8반 학생들의 눈빛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에엑! 저번에 말씀하실 때 그런 사항은 없었지 않습니까?”

“아, 그렇게 됐네. 이사장님 특별 지시라서 말이야. 게다가 이번 우리 학교에 입학한 신입생 중에 문제아들이 많아 어쩔 수가 없었어. 자네가 이해하게.”

“교, 교감 선생님!”

드르륵.

탁.

교감 선생님이 교무실을 나섰지만 영완은 멍한 눈으로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그런 그가 딱해 보였는지 이국헌 선생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러니까 왜 저 녀석에게 찍혀서 이 고생이야?”

“그게 무슨 소립니까?”

뭔가를 알고 있다는 풍의 말에 영완이 눈빛을 빛내며 되물었다.

“이사장 특별 지시라잖아. 그럼 누가 사주한 거겠어?”

“이사장… 젠장! 또 저 녀석인가요?”

영완이 가리킨 곳에는 희영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시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이 선생이 급히 영완의 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말조심해. 자네가 저 녀석에게 얼마나 앙심을 품고 있는지 내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녀석의 비위를 거스를 필요는 없어. 누가 뭐라 해도 녀석은 이사장의 아들이니까 말이야. 내 말 명심하게.”

“…빌어먹을.”

이국헌 선생의 충고에 영완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를 삭였다.

그의 말이 옳았다. 이곳은 직장이다. 직장에서까지 복수심에 불타 있을 필요는 없었다. 아니, 설사 그런 마음이 든다고 해도 감추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비굴해 보인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괜한 복수심과 공명심에 녀석을 도발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현실에서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하게 있어야 했다. 복수는 『오벨리스크』에서 해도 충분했다.

‘두고 봐라! 이번 일, 반드시 복수해주마!’

영완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시영에게 향했다. 어찌나 강렬한지 흡사 레이저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그런 그의 눈빛을 느꼈음인지 시영이 희영과 대화를 나누다 말고 영완을 바라봤다.

“흐흐.”

“…….”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그 조롱 가득한 웃음에 영완은 어깨가 들썩였지만 필사적인 인내심으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지금은 무조건 참아야 할 때였다.

‘개! 자! 식!’

“문제아들과 이야기 나눠본 적 있어?”

“없어. 이전에는 그저 몸 사리는 데 급급해서 학교 일을 대충대충 했었거든. 그렇다고 수업에 충실하지 않았던 건 아냐. 수업과 관련된 부분은 자신 있다고!”

학생들과의 첫 대면을 위해 나선 복도에서 영완은 미연과 대화를 나눴다. 자신은 1학년 8반, 미연은 옆 반인 1학년 7반을 맡았기 때문이다.

“아이고, 그러세요, 서 선생님? 멍충아! 누가 지금 그런 거 물어봤어?”

“그럼 뭔데?”

미연의 물음에 영완이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되물었다.

“휴, 너 정말 교육학 이수하긴 한 거냐? 교사로서의 자질이 심히 걱정되네, 진짜.”

“내가 뭐가 어때서!”

미연의 핀잔에 영완이 격앙된 목소리로 되받아쳤다. 그 목소리가 살짝 컸는지 앞서 가던 다른 교사들이 뒤돌아 두 사람을 쳐다봤다.

“아하하.”

“오호호.”

동료 교사들의 시선에 영완과 미연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내 말 잘 들어. 교사와 학생 간에는 수업 외에도 많은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해. 그것은 외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내적인 것이 될 수도 있어.”

“야, 너보다는 내가 교사 생활을 더 오래…….”

“물론 교사로서의 경험도 중요하지. 하지만 너에게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어.”

“근본적인… 원인?”

뭔가 핵심을 찌르는 것 같은 미연의 말에 영완이 걸음을 멈추며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미연도 그런 그의 눈빛을 마주 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네 자신. 네 자신을 속이지 마. 가식적인 모습이 아닌 네 본연의 모습으로 아이들을 대해.”

“내 본연의 모습… 이라.”

“그럼 행운을 빌게.”

드르럭.

미연이 먼저 자신의 교실로 들어섰다. 하지만 영완은 그 자리에서 쉽게 발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말이 안겨 주는 묘한 여운 때문이었다.

“내 본연의 모습…….”

영완은 그렇게 그 자리에서 한참을 더 서 있다가 이내 천천히 자신의 교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의 눈에는 작은 불씨가 새록새록 피어나고 있었다.

드르륵.

탁.

뚜벅뚜벅.

교실 안은 예상외로 고요했다. 우려했던 짓궂은 장난도 없었다.

‘뭐야, 이거? 생각보다 문제아들이 아닌 거 아냐?’

어린 시절, 영완은 일본 드라마에 심취해 있었다. 그중에는 지금의 상황과 비슷한 학원물 드라마가 많았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의 문화가 다른 것처럼 학교 문화 역시 확연한 차이가 있어 교사가 되고 난 뒤 그때의 일본 드라마는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과 맞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보통의 경우였다.

보통 사립학교에서도 학생들의 인권을 위해 절대 문제아들을 한 반에 몰아넣지 않는다. 그것은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였으며, 일종의 금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영완의 적이 누구인가. 예슬 고등학교에서만큼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는 이사장의 아들이 아닌가.

그는 영완에 대한 분노로 인해 해서는 안 될 금기를 깨트리고 말았다. 만의 하나 이 사실을 학부모들이 알게 된다면 언론에서 난리가 날 만큼 위험 요소가 큰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영은 영완을 골탕 먹이려는 수단의 일환으로 이번 일을 기획했다. 그 역시 얼마나 영완을 싫어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여하튼 지금의 상황은 흡사 일본 드라마에 나온 것과 비슷한 양상이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문제아들이라고 해도 교칙을 위반할 수 없어 비교적 깔끔하게 교복을 입고 있다는 것과, 마치 관례처럼 해오던 짓궂은 장난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쉬울 수도?’

생각과 달리 아무런 장난이 없자 영완은 살짝 방심하며 교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한 출석부를 교탁 위에 올려놨다.

콰앙!

“허억!”

교탁 위에 둔탁한 출석부를 올려놓자마자 작은 폭음이 일었다. 영완은 너무 놀란 나머지 뒤로 엉덩방아를 찧어야 했다.

“쿡쿡쿡.”

“킥킥킥.”

‘빌어먹을. 어쩐지 잘 넘어간다 했다.’

그저 칠판지우개 던지기 따위의 가벼운 장난이 아니었다. 아이들 중 폭탄을 만질 줄 아는 녀석이 있는지 섬세하게 화약 조절을 해서 살짝 폭음이 일 정도로만 손을 써두었다.

‘장난이 아니잖아?’

탁탁.

아이들의 웃음소리에도 영완은 굴하지 않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레발칠 필요도 없고, 화를 낼 필요도 없었다.

‘네 본연의 모습으로 아이들을 대해.’

지금 이 순간, 영완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 미연이 했던 말이 맴돌고 있었다.

“난 서영완이라고 한다. 앞으로 너희와 1년을 함께하게 될 거야. 잘 부탁한다. 아, 그리고 누가 이런 장난질을 해놨는지 모르겠다만…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난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거든.”

나지막한 음성이었지만 그 안에 내포된 의미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평소 영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포스가 그의 눈빛과 음성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오벨리스크』에서의 천휘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아이들도 그런 영완의 포스를 느꼈음인지 다소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특히 맨 왼쪽 열에서 잠자리 안경을 쓴 범생 스타일의 남자 아이가 가장 눈에 띄게 당황했다.

‘강동국이라…….’

그런 변화를 놓칠 리 없는 영완이 얼른 아이의 얼굴과 출석부에 부착된 사진을 비교하며 그의 이름을 찾아냈다.

“일단 너희들 이름을 외우는 의미에서 출석을 부르도록 하마. 박충죄.”

“네.”

“정필고.”

“네.”

영완은 그렇게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외우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간 교사 생활을 하면서 는 것이 있다면, 바로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빠른 시간 내에 외우는 것이었다.

“…이지숙.”

“네.”

타악.

영완은 그렇게 마지막 학생의 출석을 부르고 나서 조용히 출석부를 덮었다. 그리고는 잠자리 안경의 동국을 지그시 바라봤다.

흠칫.

녀석은 영완의 눈빛에 깜짝 놀란 듯 몸을 흠칫했다. 아무래도 머리는 똑똑한데 겁이 많은 녀석인 듯했다.

“앞으로 반장을 뽑을 때까지 강동국이 임시 반장이다.”

“제, 제가 왜……?”

영완의 입에서 흘러나온 뜻밖의 말에 동국은 물론이고 모든 아이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영완을 쳐다봤다.

그런 아이들의 눈빛이 마음에 들었는지 영완이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냥. 그냥 동국이 네가 마음에 들어서. 일단 동국이 넌 점심시간에 나 좀 보자. 이상.”

영완은 할 말만을 마치고 곧바로 교실을 나가버렸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나서는 그.

정말 담임이 맞는지 의심이 갈 만큼 제멋대로인 그의 행동에 아이들은 그저 멀뚱한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어떻게 생각해?”

“뭐가?”

“우리 담탱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있는 것 같지?”

“전혀. 그냥 초장에 기선 제압하려는 속셈일 뿐이야.”

“흐음, 그런가?”

영완이 나서자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나누는 이야기의 화제는 단연 영완이었다.

처음에 폭죽으로 그를 놀래준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아이들이 생각한 그 후의 시나리오는 두 가지였다. 화를 내거나, 혹은 지레 겁을 집어먹거나.

하지만 영완은 전자도, 후자도 아니었다. 그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툴툴 털어내고 일어나 출석을 불렀고, 마치 미리 알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 폭죽을 만든 동국을 집어내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그를 반장으로 지목했다.

앞뒤가 딱딱 들어맞는 그의 행동은 보는 이로 하여금 왠지 모를 위화감이 깃들게 할 정도였다.

“아니, 여자의 직감으로 봤을 땐 울 담탱 뭔가 있어. 게다가 안경만 벗으면 꽤나 미남형이야.”

정호와 원석의 대화에 이랑이 끼어들었다.

세 사람은 중학교 시절부터 단짝처럼 지내오던 사이였다. 단짝인 만큼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킬 때도 늘 함께였고, 그 탓에 주변으로부터 문제아라는 낙인도 찍히게 되었다.

“이랑이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흐음.”

“이랑이 너까지 그렇게 말한다면야.”

평소 이랑의 직감과 육감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정호와 원석은 별다른 반발도 하지 않고 그저 그녀의 말에 수긍하고 있었다.

“그보다… 일단 우리 반부터 장악해야 되지 않겠어?”

이랑의 나지막한 말에 정호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중학 시절에도 다니던 학교를 비롯해 인근 3개 중학교를 모두 평정하던 그였다. 당연히 고등학교에 와서도 자신은 짱을 먹어야 했다.

“물론.”

“크크.”

“호호.”

“오늘 점심은 어땠어?”

“알잖아, 우리 학교 급식 괜찮은 거. 학부모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급식만큼은 제대로 만들고 있으니 말이야.”

“하기야 나도 어쩔 때는 집 밥보다 급식이 낫다고 생각할 때도 있어.”

점심을 먹은 영완과 미연은 자판기에서 커피를 빼내 후원 벤치로 향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 오늘 원정대 출발하지?”

“어, 오늘 저녁 8시야. 늦지 않게 서둘러.”

“알고 있어. 그런데 원정대에 남아 있으려면 계속 저녁 8시에 접속해야 하는데, 가능하겠어?”

“…….”

이유야 어찌 되었든 영완은 담임을 맡게 되었다. 담임을 맡게 된 이상 최소한 10시까지는 아이들의 야간 자율 학습을 위해 학교에 남아 있어야 했다.

물론 같은 학년 교사들끼리 돌아가며 하긴 하지만, 드넓은 화신의 사막에서 단 하루라도 원정에 빠지게 된다면 결국 낙오자가 되어 원정대에서 자연 탈퇴하게 될 터였다.

“이 선생님도 있고, 길어봐야 한 달 정도니까 어떻게든 버텨 봐야지. 정 안 되면…….”

“정 안 되면?”

영완에게는 최악의 순간에도 원정을 지속할 최후의 수단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혹시라도 사제들에게 이래저래 의심을 살 공산이 크기에 되도록 그 방법만큼은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게 있어. 아무튼 한 달 정도만 너도 고생해줘. 나중에 크게 한턱 쏠게.”

“한턱 가지고는 안 돼! 내가 원할 때마다 사줘야 돼.”

“또 강남의 값비싼 재즈 바 같은 데 가려는 거 아니지?”

“네 주머니 사정 뻔히 아는데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

“…넌 충분히 그러고도 남아.”

마치 친한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멀리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이국헌 선생의 부름에 의아한 눈초리로 대화를 멈췄다.

“서 선생! 서 선생!”

“무슨 일이시죠?”

“헉헉! 큰일 났어!”

“그러니까 무슨 일이냐고요?”

“자네 반 아이들이 옥상에서 대판 싸우고 있어. 개판도 그런 개판이 없을 정도야. 어서 가봐!”

“우리 반 아이들이요?”

이국헌 선생의 말에 영완은 마시던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던지며 빠르게 달려 나갔다.

그렇게 계단을 오르던 영완은 옥상 주변에서 장사진을 치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는 그들을 향해 호통을 내질렀다.

“구경났어! 당장 안 내려가?”

불같이 화내는 영완의 모습에 아이들이 하나 둘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하지만 여전히 호기심이 동하는지 4층 복도에서 옥상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기랄!”

그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 영완은 곧장 옥상으로 뛰어들었다.

퍼억.

쿠웅.

“커헉.”

“큭! 뭐야?”

옥상으로 들어서자마자 영완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남학생을 받아들었다. 자신의 기억으로는 상석이라는 이름의 남학생이었다.

“다 죽여 버려!”

“이런 개새끼들! 우리가 누군지 알아?”

학교 본관 옥상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피아 구분도 못한 채 그저 눈앞의 상대를 향해 주먹과 발을 휘두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심지어는 아무도 없는 허공에 눈을 감고 주먹을 휘두르는 녀석도 있었다.

“하아, 세상이 지랄 맞게 돌아간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설마 학교 옥상에서 패싸움을 벌일 줄이야.”

평범한 교사였다면 당장이라도 뛰어들어 녀석들을 뜯어말렸을 것이다.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교사는 학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직업이기에.

하지만 영완은 그러지 않았다.

피가 난무하는 난장판 속에서도 여유롭게 전신의 관절을 이완시켰다.

“어디 한번 해볼까?”

휘익.

퍼억.

“끄아악! 어떤 새끼가… 허억!”

“어떤 새끼긴, 네 담임이다! 일단 찌그러져 있어!”

눈앞에서 등을 보이는 녀석에게 거침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그 엄청난 충격에 녀석은 신음하며 뒤를 돌아봤고, 영완은 조소를 흘리며 녀석의 안면에 주먹을 내질렀다.

“세, 세상에!”

“단 두 방에 원석이를 눕혔어!”

영완의 신들린 움직임에 옥상 위를 살피던 학생들이 놀란 토끼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영완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다른 곳으로 신형을 옮겼다.

빠악!

“커헉!”

“담탱, 너 미쳤어? 어딜 끼어… 끄아악!”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들! 담탱? 담탱? 너희는 오늘 뒈졌다고 복창해라!”

그동안 학교 안에서 모범적인 모습만을 보여 온 영완이지만 오늘만큼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저 눈 가리고 아웅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모른 체하는 것이 몸을 보전하는 가장 빠른 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영완에게 있어 녀석들은 단순히 문제아들이 아니라 자신이 1년 동안 맡아서 지도해야 할 제자들이었다.

이제껏 몇 년 동안 여러 학생들을 가르쳐 왔지만 스스로 그들을 제자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저 학습 지도만 하는 것은 스승이라 할 수 없다는 가치관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담임을 맡은 이상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녀석들은 자신의 제자들이었다. 학습은 물론이고 생활면에서도 최선을 다해 이끌어줘야 할 제자들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영완은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난폭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끄아아악!”

상호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남학생이 영완의 발길질에 나가떨어졌다. 정강이 어림을 가격했으니 한동안 일어서지 못할 터였다.

“마, 말도 안 돼!”

“저 남자가 진짜 생물 쌤 맞아?”

“확실히 안경 꼰대가 맞긴 한데… 저렇게 싸움을 잘했었나, 저 꼰대가?”

마치 무협 영화의 한 장면처럼 민첩한 몸놀림으로 남학생들을 제압하는 영완을 보며 학생들은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더불어 자신들이 알고 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영완의 모습에 괴리감마저 느낄 정도였다.

“후우, 이제 어느 정도 진정이 된 건가?”

학생들이 뭐라 수군거리건 영완은 어느새 조용해진 옥상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끄윽.”

“커헉!”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것만큼 옥상은 조용하지 않았다. 영완의 주먹질에, 혹은 발길질에 채인 1학년 8반 남학생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신음을 흘리고 있는 탓이었다.

쿵쿵쿵.

“모두 내려가지 못해? 당장 내려가!”

“후후, 이제야 올라오는 건가?”

계단 쪽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영완은 주먹을 풀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이, 이럴 수가!”

“아, 아이들이!”

학생들을 물리고 옥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바로 이국헌 선생과 시영이었다.

두 사람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현장의 광경에 어리둥절한 눈초리로 천천히 영완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분명히 패싸움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서 선생?”

“아아, 저도 그렇게 듣고 올라왔었는데 알고 보니 그냥 아이들끼리 장난치고 있었던 거더라고요. 뭐, 꽤나 거친 장난이긴 했는데, 제가 잘 타일러서 그만 하라고 했으니 앞으로는 더 이상 안 할 겁니다. 제가 보증할게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지금 네 말이 가당키나 한 상황이냐? 딱 봐도 패싸움한 꼴인데, 뭐가 어쩌고 어째?”

분명히 영완의 말은 급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의 상황은 시영의 말대로 패싸움을 한 현장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옥상 여기저기에 어지럽게 흩어진 책상과 의자들하며, 심지어 옥상 바닥에는 드문드문 핏자국까지 보이고 있었다.

“아, 그래? 그럼 아이들한테 물어보면 될 거 아냐.”

“일을 벌인 장본인들의 말을 믿으라는 거냐?”

“정 못 미더우면 조금 전까지 옥상을 관전하고 있던 저 아이들에게 물으면 되겠네.”

시영의 물음에 영완은 계단에서 슬며시 고개를 내밀고 옥상을 쳐다보던 학생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 정말 저 아이들이라면 믿을 수 있겠네. 어이, 거기 너! 이름이 정욱이었던가? 이리 좀 와봐라, 어서.”

“저, 저요?”

“그럼 여기에 정욱이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이 둘이나 있냐? 어서 올라오지 못해!”

영완의 말에 이국헌 선생이 나서서 그가 가리킨 학생 한 명을 옥상으로 불러들였다.

시영도 사건의 진위를 가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싶어 이국헌 선생의 지시를 거스르지 않고 있었다.

‘네놈은 끝장이다! 감히 학교에서 패싸움을 조장해? 네놈이 이번 패싸움에 관여를 했건 안 했건 네놈은 파면이다!’

영완의 짐작처럼 그를 1학년 8반의 담임으로 배정시킨 배후에는 시영이 있었다. 영완으로 하여금 학교에 평지풍파를 일으킬 그들의 담임을 맡게 한다면 책임 전가나 그 외의 여러 사유로 그를 정당하게 파면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탓이었다.

영완을 바라보며 궁지에 몰린 생쥐를 연상하는 시영의 모습은 그야말로 고양이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터벅터벅.

“빨리 뛰어오지 못해?”

“네!”

타다닥.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정욱이 답답했는지 이국헌 선생이 언성을 높이자 정욱은 잔뜩 긴장한 채로 빠르게 뛰어왔다.

“너 이 옥상에서 벌어진 일을 처음부터 지켜봤지?”

“네.”

“좋아, 그럼 너한테 물으마. 대체 옥상에서 무슨 일이 있어났지?”

“그, 그게…….”

이국헌 선생의 물음에 정욱이 슬며시 영완을 쳐다봤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이질적인 눈빛을 느낀 탓이었다.

‘히익!’

자신을 바라보는 영완의 눈빛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이 위험한 것이었다. 어찌나 강렬한지 절로 온몸에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정욱아, 어디 아프냐?”

감기라도 걸린 사람처럼 갑자기 몸을 부들부들 떠는 그의 모습에 이국헌 선생이 걱정되는 듯 물었다.

“아, 아니요.”

“그럼 어서 말해봐라. 대체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저, 그게…….”

정욱은 영완의 눈빛을 떠올리며 그가 조금 전 이국헌 선생과 시영에게 말했던 그대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위험한 눈빛, 다시는 보고 싶지도 접하고 싶지도 않았다.

“1학년 8반 애, 애들은… 서, 서 선생님 말씀처럼 그저 자, 장난을 치고 있었을 뿐이에요.”

“뭐, 뭐라고?”

“마, 말도 안 되는!”

실상과는 전혀 다른 말을 내뱉는 정욱을 보며 시영이 분개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국헌 역시 의외인 듯 언성을 높였다.

“하하하, 역시나 내 말이 맞지? 자, 그럼 이제 우리 반 아이들은 교실로 돌려보내도 될까?”

“안 돼! 네놈이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다만 저 학생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어. 어이, 거기 너! 당장 이리 올라와봐! 어서!”

시영은 정욱의 말을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듯 계단에서 옥상을 쳐다보고 있던 다른 남학생을 불렀다.

그 학생 역시 처음에는 우물쭈물 나서지 못하더니 시영이 화난 표정으로 소리치자 이내 옥상으로 올라왔다.

“방금 정욱이 저 녀석이 한 말이 사실이냐?”

“그, 그게…….”

그 학생은 정욱과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옥상에서의 주먹질을 관전하고 있었다. 당연히 1학년 8반 아이들을 때려눕히던 영완의 몸놀림도 제대로 봤을 수밖에 없었다.

영완은 그런 그 학생을 눈웃음을 그리며 바라봤다. 옆에서 시영이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고 있는 탓이었다.

‘히, 히익!’

하지만 그런 그의 눈웃음은 남학생에게 더욱 큰 공포를 안겨 줬다. 소리장도(笑裏藏刀)라는 말처럼 그의 눈웃음에서 감춰진 칼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정욱이 말이 맞아요!”

발악하듯 내뱉는 남학생의 말에 시영의 얼굴이 다시 한 번 찌푸려졌다.

그다음 학생도, 그다음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모두 정욱과 똑같은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하아, 이제 내려가 봐도 되겠지? 그러니까 왜 남의 말을 믿지 못하는 건데? 나 내려간다. 이 선생님도 조금 있다 종례 시간에 봬요. 자, 다들 일어나! 교실로 돌아간다! 어서 일어나!”

“그, 그래.”

“…….”

영완이 자신의 반 학생들을 하나 둘 깨워 옥상을 내려갈 때까지 시영의 눈은 한시도 영완에게서 떠날 줄을 몰랐다. 그의 눈은 마치 발광이라도 하듯 레이저를 쏘아내며 영완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휘익.

쾅!

“이런 미친놈들! 개학 첫날부터 패싸움을 해? 그것도 학교에서!”

영완이 불같이 화를 토해내며 출석부를 교탁에 내리꽂았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아이들의 어깨가 들썩일 정도였다.

“…라고 하면 네놈들이 짱을 안 가리겠냐? 후후.”

하지만 이어지는 영완의 말과 웃음은 조금 전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아이들도 어리둥절한지 교실에 돌아와 계속 숙이고 있던 고개를 슬며시 들며 영완의 얼굴을 바라봤다.

“네놈들 중에서 어떤 녀석들이 제일 싸움 잘하냐? 한번 나와 봐라.”

일진 선배들이나 할 법한 영완의 말에 아이들은 더욱 혼란스러운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영완의 얼굴에선 진지함과는 거리가 먼 장난기만 잔뜩 묻어나오고 있었다.

“어라? 안 나와? 그럼 내가 대충 짱을 지목해도 되냐? 어차피 반장은 동국이로 정해졌으니 내가 지목하는 짱은 앞으로 우리 반의 분란을 책임지게 될 거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

영완의 물음에도 아이들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저 살짝 기분이 상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제가 짱이 되고 싶습니다.”

“오, 그래. 네 이름이 김정호였던가?”

“네.”

“흐음.”

영완은 조금 전 옥상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발길질을 처음으로 피해낸 이가 정호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좋아! 정호 널 일단 후보에 올려 두지. 그리고 또 짱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나?”

정호가 나서자 교실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아무래도 정황상 그가 1학년 8반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정호를…….”

스윽.

영완이 정호를 짱으로 지목하려는 찰나, 한 남학생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껏 조용히 사태를 관전하고 있던 녀석의 이름은 김용필. 떡 벌어진 어깨에 강인해 보이는 목 근육이 인상적인 남학생이었다.

“오, 그래, 용필이. 그럼 이제 다른 녀석은 없는 거겠지? 좋아. 그럼 내가 두 녀석 중의 한 녀석을 짱으로 선출해주지. 이번 주 토요일, 방과 후에 두 녀석은 잠시 나와 대면하고 귀가하도록. 이번 주는 내가 좀 바빠서 말이야. 아무튼 오후 수업 잘 듣고, 웬만하면 땡땡이는 치지 마라. 정규 수업은 듣고 땡땡이쳐.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럼 나 간다.”

드르륵.

영완이 교실에서 나서자 아이들은 황당하다는 듯 그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뭐야, 우리 담탱?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아무래도 어째 1년이 고달파질 것 같은 예감인데?”

“후우.”

“하아아.”

영완이 떠난 교실 안은 긴 한숨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아이들의 머릿속을 휘감고 있는 작은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이들과 영완의 첫 대면이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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