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3장 비밀 동맹 (44/82)

제3장 비밀 동맹

“대체 어떻게 돌려보낸 거제?”

“뭐가?”

거인 토르가 군말 없이 돌아가는 모습에 블랙헤드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가 보기에 거인 토르는 다혈질에 의리파 사내였는데, 아끼는 동생들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복수를 하지 않은 채 떠난 모습이 조금은 이상하게 보인 것이다.

“별거 없어.”

“근깨 그 별거가 뭔지 같이 알고 싶단깨.”

“나중에 네 식칼 잠깐 빌려 준다고 했다.”

“내 식칼을?”

천휘의 의외의 대답에 블랙헤드는 자신의 식칼인 지옥의 나락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본능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든 것이다.

“녀석이 거인 토르라는 명성을 떨침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우리를 습격한 이유는, 바로 자신이 최근에 좋아하고 있는 한 여인 때문이란다.”

“그 가시나가 나랑 무신 상관인디?”

“그 여인이 최근 『오벨리스크』를 시작했는데, 직업을 요리사로 선택했단다. 알다시피 요리사도 역시 좋은 식칼과 조리 기구가 있으면 조리 스킬의 숙련속도가 빨라지잖아. 때문에 그 식칼을 잠깐 빌려 주기로 한 거지.”

“이것은 내 것이랑깨!”

천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블랙헤드가 지옥의 나락을 끌어안고 그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졌다. 절대 내놓을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래,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너라면 발록의 심장을 서슴없이 내놓을 수 있겠냐?”

천휘의 말에 로빈도 블랙헤드의 편을 들어줬다. 다른 것도 아니고 요리사에게서 식칼을 빼앗는다는 것은 군인에게서 총을 뺏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일인 것이다.

“운남정을 누구 돈으로 세운 거지?”

“…….”

천휘의 물음에 블랙헤드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결국 돈을 빌려 줬으니 이제는 그 값어치를 하라는 소리였다.

“쳇, 내 참 더러워서! 빌려 준당깨!”

“후후. 고맙다, 친구야.”

결국 블랙헤드로부터 허락을 받은 천휘는 이내 눈을 빛내며 주변을 바라봤다. 거인 토르가 패퇴한 상황임에도 아직 주변에는 수많은 유저들이 떠나지 않고 자신들을 향해 탐욕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저들은 어쩔 거야, 동생?”

그런 천휘의 눈빛을 읽었는지 하린이 다가와 나지막하게 물었다. 모험가 직업을 가진 덕에 유난히 타인의 기척을 잘 읽는 그녀로서는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유저들이 못내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별것 있겠어요? 모조리 쓸어버리는 거지.”

“큭큭, 그래야 내 친구지. 야, 이 허섭스레기들아! 거기서 훔쳐보면 좋냐? 나설 용기도 없는 새끼들! 그냥 엄마 젖이나 더 물고 와, 새끼들아!”

“…….”

카멜이 나서서 주변의 유저들을 자극하는 말을 토해내자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확 변했다. 조금 전까지는 은밀하고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이었다면 이제는 명백한 살기가 느껴지고 있었던 것이다.

“저 자식 입 좀 꿰매고 있지 그랬어?”

“…미안하다.”

“헤헤, 나 잘했지?”

“…휴우.”

카멜의 도발에 결국 하나 둘 유저들이 은신을 풀고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로빈, 준비해라.”

“알았다.”

조금 전에는 거인 토르에 대한 예우로 마나 교란 마법진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토록 많은 숫자의 유저들이 한 번에 달려든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더욱이 천휘는 조금 전 거인 토르와의 대결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 로빈의 마나 교란 마법진 없이는 적들을 상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다 같이 녀석들을 처치하고, 유니크 식칼에 대한 처분은 후에 하죠. 보시다시피 힘깨나 쓰는 녀석들인 듯한데, 괜히 각개격파당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유저들 중 가장 늦게 모습을 드러낸 말라깽이 사내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얼굴을 가리는 후드에 전신을 휘감은 로브를 착용한 사내는 언뜻 보기에도 마법사 계열의 직업을 택한 듯했다.

“유니크 식칼에 대한 우선권은 녀석들의 목숨을 가장 많이 처치하는 자가 갖도록 하지. 불만 있나?”

“그게 낫겠군.”

“동감이다.”

말라깽이 사내의 말에 덧붙여 시종일관 무표정을 고수하고 있던 한 사내가 말했다. 그리고 다른 유저들은 그 사내의 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윽고 어느 정도 이야기를 맞추자 유저들이 주변으로 신형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제히 달려들어 천휘 일행을 처치할 모양이었다.

“자, 어느 정도 이야기가 끝난 듯한데, 우리 내기 하나 하도록 할까?”

“후후. 거인 토르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모르겠다만, 우리에게 그따위 감언이설은 통하지 않는다.”

천휘의 권유에 말라깽이 사내가 비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만일 너희가 우리를 이길 수 있다면 너희가 원하는 저 유니크 식칼 외에 유니크 아이템을 머릿수대로 하나씩 주도록 하지.”

“뭣이!”

천휘의 말에 접근하던 유저들이 깜짝 놀라며 그를 쳐다봤다.

이곳에 있는 유저들의 숫자는 물경 삼십을 넘어섰다. 그들 모두에게 유니크 아이템을 하나씩 나눠주겠다는 말은 최소한 30개의 유니크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

이곳에 모인 이들이 제아무리 고렙 유저들이라 할지라도 유니크 아이템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대단한 것이었다. 더욱이 그들 대부분이 아이템을 팔아 생활을 유지하는 다크 게이머들임에야 그 값어치는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믿지?”

“아, 내가 유니크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는 거? 뭐, 믿기 싫음 말고. 하지만 이것 하나만 알려 줄까? 내가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 모두가 최소한 유니크 이상의 아이템이라는 것 말이야.”

천휘의 말에 유저들은 믿기 힘들다는 눈초리로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몇몇 유저들은 그것이 진실인지 알기 위해 품 안에서 스크롤 하나를 집어 들었다.

“사실이라면 ‘엿보기’ 스크롤에 응해라.”

엿보기 스크롤은 상대의 능력치나 아이템의 옵션을 확인하는 마법 스크롤이었다. 하지만 이 스크롤은 상대의 동의가 있을 때에만 사용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럴 필요 없다. 내게 ‘관조’ 스크롤이 있다. 관조!”

관조 스크롤은 엿보기 스크롤의 상위 마법 스크롤로, 상대방의 동의 없이 상대방의 능력치나 아이템 옵션을 확인할 수 있는 고위 마법 스크롤이었다.

“헉! 이, 이럴 수가! 레전드 아이템이 다섯 개!”

“마, 말도 안 돼!”

“후후후.”

천휘에게 관조 스크롤을 사용한 유저는 놀란 토끼 눈으로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그의 외침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은 유저들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천휘를 바라봤다.

“어때, 이제 어느 정도 믿을 수 있겠지?”

“…당신들, 정체가 뭐야?”

천휘 일행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탓일까? 포커페이스 사내의 표정이 조금 굳어지며 물었다.

“후후, 그딴 건 알 필요 없어. 너희는 그냥 나와 내기를 하면 돼.”

“…….”

천휘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유저들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그들 역시 제법 명성을 떨치는 이들이건만, 마치 하수 취급하는 천휘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무슨 내기지?”

말라깽이 사내가 나서서 물었다. 그는 아무래도 외향과 달리 다혈질적인 성격을 지닌 듯했다.

“조금 전에 말했다시피 너희가 이기면 유니크 아이템을 주도록 하지.”

“그쪽이 이기면?”

“후후, 이번 원정에서 내가 원하는 순간 내 편을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블랙헤드로 인해 벌어진 사태를 멋지게 반전시키는 계책이었다. 그랜저를 최후의 순간에 물 먹이기 위해 동료들을 포섭하려는 생각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생각처럼 쉬울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일이었다.

“으하하하! 뭐라고?”

“저 자식, 알고 보니 개그맨이었잖아? 누가 누구의 편을 들어?”

천휘의 내기 제안을 들은 유저들은 하나같이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들이 웃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천휘와 일행은 의아한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왜 웃는 거지?”

금방이라도 파멸의 권능을 이용해 녀석들을 처치할 것 같은 살기가 피어올랐다. 자신의 말을 우습게 듣는 유저들에 대한 살기였다.

“네 녀석이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네놈도 임페리얼 길드가 이번에 뭔가 꿍꿍이를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그렇다면?”

말라깽이 사내의 물음에 천휘가 굳은 얼굴로 되물었다. 아무래도 돌아가는 상황이 자신의 의도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내 이름은 스크렐. 임페리얼 길드의 알무니아와 인연이 있는 정령사다. 나뿐만이 아니야. 이곳에 모인 대부분의 유저들이 임페리얼 길드의 주요 간부들과 연관이 있는 이들이지. 이제 우리가 웃는 이유를 조금 알겠지?”

“…그랬군.”

알고 보니 저들은 그랜저 녀석이 원정대에 심어놓으려 한 또 다른 적들이었다. 평소에는 그저 다른 유저들과 어울리다가 가장 중요한 순간 임페리얼 길드의 편에 서서 싸울 생각인 것이다.

“천휘야.”

“…역시 돈으로 안 되는 건 없는 건가?”

녀석들이 어떤 식으로 임페리얼 길드와 연관이 있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천휘는 어느 정도 저들과 임페리얼 길드의 관계를 알 것만 같았다.

“너희들, 용병이지?”

움찔.

천휘의 뜬금없는 물음에 스크렐을 비롯한 유저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개중에는 흠칫 놀라 어깨를 들썩이는 이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뻔하지. 그랜저 녀석이 이끄는 임페리얼 길드 녀석들은 오로지 무력과 금력으로 펜하르트 왕국의 각종 이권 사업을 독식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들과 인연이 있다면 당연히 금전적인 관계이겠지. 그렇다면 이 아르니안 대륙에서 금전적인 문제로 그들과 손을 잡고 움직일 만한 이들이 누가 있을까?”

“…제법 잔머리는 굴린다만, 우리가 용병이라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어. 우리도 정식 절차를 거쳐서 원정대에 합류하는 것이니까.”

“누가 뭐라고 했나?”

용병들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의뢰를 파기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만약 이번과 같이 비밀스럽게 이어지는 은밀한 의뢰라면 정체를 숨길 수도 있었다.

때문에 천휘는 그들을 바라보며 골치 아픈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웬만하면 좋게 말로 해서 저들을 회유하려 했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게 됐다.

그랜저가 저들을 금력으로 이번 원정에 끌어들였다면, 자신은 압도적인 무력을 바탕으로 저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야.”

흠칫.

천휘가 나지막하게 내뱉은 한마디를 듣지 못한 이들은 없었다. 그의 목소리에 담긴 짙은 분노와 살기를 느낀 탓이었다.

“돈 얼마 받았냐?”

“그, 그게 무슨 상관이지? 우리가 얼마를 받든 의뢰는 반드시 이행한다. 그게 우리를 지탱하는 율법이지.”

『오벨리스크』를 즐기는 유저들은 누구나 그랬다. 자신이 『오벨리스크』 내에서 누리고 있는 직업과 지위에 충실하고자 하는 열의.

대부분의 유저들은 그 열의를 지니고 있었고, 용병을 보조 직업으로 지니고 있는 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맡은바 의뢰를 무조건적으로 지키는 이들이었고, 지금 그들이 맡은 의뢰는 바로 임페리얼 길드로부터 받은 의뢰였다.

“게임 그만 할래, 아니면 그냥 살짝 명성 깎이고 말래? 선택해라.”

“…쿡, 이거 완전 미친놈이잖아?”

“크하하하! 진짜 저 자식 미쳤잖아? 지금 누가 누구보고 그러는 거야? 큭큭큭.”

“큭큭큭.”

천휘의 말에 용병 유저들은 비웃음을 금치 못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천휘를 제외한 모두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 순간, 천휘의 오른손이 하늘 높이 치켜 올려졌다.

“지금 내가 가리킨 놈은 죽는다.”

“뭐라고? 저 미친 자식이 자꾸 뭐라는 거야?”

“내버려 둬. 미친놈이 미친 소리 하는 거니까.”

천휘의 살기 충만한 말에도 용병 유저들은 그저 시시덕거릴 뿐이었다. 조금 후에 있을 일은 추호도 생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휘익.

천휘의 두 번째 손가락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말라깽이 사내를 가리켰다.

쐐애액.

푹.

“커헉!”

“뭐, 뭐야!”

“세, 세상에!”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채채챙.

천휘가 가리킨 말라깽이 사내의 미간에 갑작스레 화살이 하나 날아와 틀어박혔다. 어찌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지 용병 유저들은 미처 손쓸 겨를도 없이 그 자리에서 얼음장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분명히 말했지? 내가 가리킨 놈은 죽는다고. 어디 마음대로 움직여 봐. 바로 죽여줄 테니…….”

“…….”

“…….”

천휘가 웃으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매우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의 말을 듣지 못한 용병 유저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제법 농담을 잘하는군. 고작 그 정도로 쫄 것 같아? 내가 누군지 모르나 본데, 바로 바렌트 왕국 최강 길드인 드림 길드의 간부 플레… 커헉!”

드림 길드의 간부라는 사내는 자신의 이름을 채 내뱉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천휘의 손짓에 어김없이 날아든 화살이 조금 전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미간에 틀어박힌 것이다.

“허억!”

그렇게 또다시 한 유저가 목숨을 잃자 그제야 용병 유저들은 어느 정도 사태 파악을 한 듯 얼굴 가득 두려운 감정을 드러냈다.

고작 말 몇 마디를 나누는 사이에 300레벨을 넘어선 고렙 유저가 둘씩이나 목숨을 잃었다. 그것도 존재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에게서……. 그들로서는 당연히 두려움이 밀려들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죽고 싶다면 움직여.”

“…….”

“…….”

하지만 누구도 움직이는 이가 없었다. 심지어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유저들까지 숨을 죽이고 천휘를 쳐다볼 뿐이었다.

“좋아. 너희를 비롯한 주변의 녀석들도 모두 잘 들어. 난 너희가 그랜저 그 개자식한테 어떤 의뢰를 받았는지 알고 싶지 않아. 녀석이 의뢰한 것에 딱 두 배를 더 얹어주지. 의뢰를 파기해. 그리고 내 의뢰를 받아. 그러면 너희를 살려 주지.”

천휘의 말은 참으로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저들의 목숨이 자신의 손바닥 안에 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거 정말 미친놈이었군.”

“절대 무적의 미친놈이라고 해주면 좋겠군.”

“…미친놈.”

다른 유저들에 비해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는 포커페이스 사내의 도발에도 천휘는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이 정도만으로 저들이 자신의 말을 따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셋 셀 동안 기회를 주지. 그 안에 결정해라. 목숨을 잃지 않고 나를 따르겠다면 저쪽 바위 너머로 움직이고, 그 반대라면 그 자리에 서 있어라. 아 참! 한 가지 말 안 해준 것이 있군. 오늘 이 자리에서 한 번 죽인다고 해서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아까 말했듯이 나는 너희가 게임을 접을 때까지 찾아가서 몇 번이고 계속 죽일 테니까. 그것을 믿고 안 믿고는 너희들 문제다. 뭐, 조금 후에 있을 사태를 보면 무조건 믿게 되겠지만.”

천휘의 말에 유저들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다. 아무래도 된통 잘못 걸렸다는 표정들이었다.

그에 반해 천휘를 비롯한 일행의 눈빛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오히려 지금의 사태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특히 장난기가 많은 카멜과 블랙헤드는 누구보다 더욱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그만큼 그들은 천휘를 믿는 것이다.

웅성웅성.

천휘의 지시에 선뜻 답을 내리지 못하겠는지 용병 유저들이 하나 둘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의 화두는 당연히 천휘에게 그만한 실력이 있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쳇! 저따위 개소리를 나보고 믿으라고? 꺼져! 난 믿지 않아!”

“나도 마찬가지! 지금 이곳에 모인 숫자가 몇인데 고작 한두 명 죽었다고 물러서겠어?”

용병 유저들은 대부분 다소 급한 성정을 지니고 있었다. 일반 퀘스트에 비해 용병들의 의뢰는 힘들고 고된 면이 있는 탓에 실제 판타지 소설에 나온 용병들처럼 성격이 거칠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천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그 순간, 천휘의 입이 열렸다.

“하나.”

“…….”

“…….”

천휘가 드디어 숫자를 세기 시작하자 유저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몇몇 유저들은 갈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둘.”

“…젠장! 갈 사람은 가! 나 아레온은 여기 남겠어!”

천휘가 둘을 세자 아레온이라는 사내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소리쳤다. 그는 쌍검을 사용하는지 양손에 검신이 긴 롱 소드와 검면이 넓은 브로드 소드를 들고 번뜩이는 살기를 내비치고 있었다.

“쳇! 한 번 죽지 두 번 죽어? 나도 여기 남겠어!”

“나도!”

“저따위 미친놈, 한번 족쳐 보자고!”

아레온이라는 사내의 말에 자극을 받았는지 모든 유저들이 소리를 내지르며 병장기를 꺼내 보였다. 아무래도 모두 힘을 합쳐 천휘 일행에게 대항하려는 모양이었다.

“야, 이제 어쩔 거야?”

“그래용. 우리만으로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용? 저치들을 너무 몰아붙인 것 같은데용?”

로빈과 눈송이의 걱정스러운 듯한 물음에 천휘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확실히 저들이 처음처럼 뿔뿔이 흩어진 상태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똘똘 뭉친 상황에서는 자신들만으로 상대하기 곤란했다. 더욱이 저들이 자신들을 향해 피부가 따가울 만큼의 살기를 내비치고 있는 바에야…….

“너희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내 욕심 때문에 상황이 조금 우리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모두 물러나 있어. 나 혼자서 상대한다.”

“무시는 무슨, 확실히 이 정도 숫자라면 네 녀석의 그 악마들이 모습을 드러내야겠지. 하지만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전력에 보탬이 될 거다. 적어도 우리를 노리고 달려드는 녀석들만큼은 우리가 처리하겠다는 소리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래주면 나야 고맙고.”

천휘의 대답에 일행이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로빈과 눈송이를 중심으로 원형의 진을 구축했다. 행여나 있을 암습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시간 끌 것 뭐 있어? 당장 해치워버리자고!”

“흥, 저 미친 자식이 끝까지 우리를 무시하네! 혼자서 우리를 상대하겠다는 거야, 뭐야?”

“죽어버려!”

천휘의 행동이 눈에 거슬리는 듯 유저들이 일제히 천휘를 향해 달려들었다.

물경 삼십이 넘어가는 레벨 300 이상의 트리플 마스터들. 하나같이 『오벨리스크』를 즐기는 유저들 사이에서 위명을 떨치고 있는 절정의 강자들이었다.

“훗.”

하지만 그런 그들조차 천휘에게는 아무런 위협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천휘는 자신이 지닌 힘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이제부터 소환할 ‘그’에 대한 자신감이라고 봐야 옳았다.

“아공간 오픈. 카이젠, 오베른 소환!”

스파아앗.

천휘의 소환 명령에 그를 향해 달려드는 유저들 앞으로 장대한 체구의 오베른과 호리호리한 체구의 카이젠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얼굴엔 평상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짙은 살의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저것들은 또 뭐야?”

“뭐든 상관없어! 해치우면 그뿐이야!”

“하아앗! 죽어라!”

유저들의 각종 병장기가 오베른과 카이젠에게 쏟아졌다. 조금만 지체한다면 그들의 병장기에 오베른과 카이젠이 쓰러질 것만 같았다.

“모조리 죽여.”

[충!]

[알겠다!]

휘리릭.

천휘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오베른과 카이젠이 좌우로 신형을 옮겼다. 어찌나 빠른지 그들의 그림자가 아직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정도였다.

“뭐, 뭐야!”

“옆이다!”

콰아앙!

“커허억!”

“끄아아악!”

개중에 제법 눈썰미가 좋은 유저도 있었는지 한 유저가 오베른과 카이젠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오베른의 거대한 클레이모어는 그들이 막고 자시고 할 역량의 무기가 아니었다.

파쇄.

오베른의 클레이모어는 모든 것을 깨트리고 부술 뿐이었다.

“으아악! 내 눈!”

“커헉! 내 팔!”

그에 반해 카이젠은 간결하게 레이피어를 찌르고 휘두르며 유저들을 상대했다.

상대하는 이들이 이방인임을 깨달은 그는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하기 위해 눈이나 사지와 같은 시각적으로 효과가 큰 곳만을 골라 레이피어를 내지르고 있었다.

처참한 살육의 축제.

오베른과 카이젠은 무심하고 냉랭한 눈빛으로 거침없이 용병 유저들을 땅바닥에 쓰러트리고 있었다.

“저, 저 자식들…….”

“마, 말도 안 돼!”

멀리 수풀 사이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둠의 칼날 소속 어쌔신 하이렌과 카류는 떨리는 음성으로 나지막하게 소리쳤다.

그들 역시 거침없는 손속으로 의뢰를 수행하는 어둠의 살수들이었지만,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살육은 그것을 훨씬 상회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고 눈빛이 부들부들 떨렸다.

전신이 마치 몸살에라도 걸린 양 한시도 가만있질 않았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줄기줄기 흘러내렸다.

“어, 어떻게 하지?”

“뭘 어떡해? 당장 도망가야지.”

“그, 그래야겠지?”

“이 바보야, 정신 차려! 이대로 있다가는 우리도 개죽음을 면치 못할 거야! 당장 이 악마의 숲을 빠져나가야 돼! 그래야 저 악마들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어!”

떨리는 음성으로 두려움을 주체하지 못하는 하이렌을 독려하며 카류가 그를 붙잡고 재빨리 도망쳤다.

당장에라도 대륙 전역에 알려야 했다. 대륙에 악마가 나타났다고.

[주인, 잔챙이들 몇몇이 도망친다. 어떻게 할까?]

오베른과 카이젠이 펼치는 살육을 바라보던 천휘에게 영성으로 연결된 랄프 로렌의 음성이 들려왔다. 음성이라기보다는 마치 텔레파시처럼 영혼에서 영혼으로 연결되는 것이었다.

[몇이나 되지?]

[다섯 명 안팎이다.]

[당장 모두 생포해와. 녀석들에게도 확실히 언질을 해둬야겠어.]

[알았다.]

이윽고 영성의 연결이 끊어지고, 뒤쪽에서 무서운 속도로 숲을 가로지르는 어둠의 그림자가 느껴졌다.

살아생전의 능력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음양마령강시답게 녀석은 다크 엘프의 은신 능력을 십분 활용해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야, 빨리 달려!”

“빌어먹을! 우리가 언제부터 추격자가 아닌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만 거냐?”

하이렌과 카류는 어두운 숲 속을 전력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더 이상 은신을 지속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이 무시무시한 악마의 숲을 빠져나가고 싶을 뿐이었다.

[쿡쿡.]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랄프 로렌이었다.

이미 하이렌과 카류를 제외한 3명의 유저들은 모두 제압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앞선 이들보다 실력도 뛰어났고, 무엇보다 가장 외곽에 있었던 탓에 숲의 변두리까지 쫓아와야 했던 것이다.

“출구다!”

“빨리 뛰어! 느낌이 안 좋아!”

부리나케 튀는 와중에도 과연 유능한 어쌔신들답게 그들은 주변에서 느껴지는 끈적끈적한 기운에 반응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러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해서 그러한 기운에 대처할 만큼의 여력이 그들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

[멈춰라.]

“헉!”

끼이익.

숲의 출구를 채 몇 미터 남겨 두지 않고 전신에 검은 가죽 갑옷을 차려입은 랄프 로렌이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랄프 로렌은 자신을 보고 깜짝 놀라는 두 사람을 보며 왠지 모를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이거 은근히 중독성 있네. 심연의 밀림에서는 이렇게 토끼몰이하듯 상대를 잡을 수 없어서 그런가?’

심연의 밀림에서 살아가는 마수들은 절대 도망치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 몬스터들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마기에 노출되어 있는 그들은 절대적인 존재들이라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 밖은 달랐다. 자신이 절대자라도 되는 것처럼 상대가 자신을 두려워하고 도망치고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천성적인 사냥꾼인 랄프 로렌에게 있어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좋게 말할 때 나랑 같이 갈래, 아니면 거나하게 맞고 따라올래?]

“…….”

“…….”

마치 뒷골목 건달들처럼 거친 말투를 구사하는 랄프 로렌을 보며 하이렌과 카류는 서로 눈빛을 마주쳤다. 확실히 오랜 친구들답게 눈빛만으로도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한 그들이었다.

‘넌 왼쪽.’

‘넌 오른쪽.’

‘길드에서 보자.’

‘한 명이 붙잡혀도 반드시 튀어야 한다.’

‘먼저 붙잡힌 놈이 최대한 시간 끄는 거다.’

‘오케이.’

그렇게 서로의 의중을 확인한 두 사람은 이내 품 안에서 단검을 꺼내들었다. 단검에는 지독한 맹독이 묻어 있는지 코끝을 자극하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으하하하! 그래야지, 그래야지! 이방인들이 그 정도의 용기는 있어야지. 하지만… 그것이 만용이라는 걸 이내 깨닫게 해주지!]

휘익.

휘익.

랄프 로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이렌과 카류는 미리 정한 대로 좌우로 신형을 옮겼다. 은신 스킬마저 사용한 것인지 눈앞에서 그림자까지 숨기며 사라졌다.

[쿡쿡, 역시 사냥은 토끼몰이가 최고라는 고대의 명언은 사실이었어.]

랄프 로렌은 지금의 상황이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지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스르륵 어둠에 동화되고 있었다.

‘헉헉.’

숨이 턱 끝까지 치밀어 오르는데도 불구하고 하이렌은 결코 호흡을 내뱉지 않았다. 입이 아닌 코만으로 숨을 쉬는 탓에 점점 더 숨이 가빠져 왔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뒤에서 점점 옭죄어오는 미지의 정체.

그를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하이렌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뒤를 스멀거리며 쫓아오는 어둠의 정체가 바로 조금 전의 그 사내라는 것을.

[쿡쿡.]

“쳇!”

바로 귀 뒤에서 자신을 향한 비웃음이 들려왔다. 하이렌도 저런 웃음이 뭔지 알았다. 그 또한 지어본 것이었으니까. 그것은 바로 사냥감을 향한 사냥꾼의 웃음소리. 절대 헤어 나올 수 없는 덫에 걸린 사냥감을 잡아내는 사냥꾼.

지금 이 순간 하이렌은 사냥감이었고, 상대는 사냥꾼이었다.

휘리릭.

“크윽.”

[쿡쿡, 여기까지인가? 생각보단 질긴 놈이군.]

랄프 로렌의 손을 떠난 무형의 화살이 하이렌의 허벅지를 꿰뚫었다.

하이렌은 화살이 날아든다는 것을 알고 회피하려 했지만 악마의 활 힐프리거가 쏘아내는 화살은 피하려 한다고 피할 수 있을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내 친구는 어떻게 된 거냐?”

하이렌은 자신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도 카류를 신경 썼다. 실제 현실에서라면 그럴 수 없겠지만 게임 내에서는 그의 목숨을 신경 쓸 여유 정도는 있었다. 이곳은 가상현실이기에…….

[네 친구는 이미 확보해뒀지. 이제는 네 차례다, 토끼야. 크크.]

“토끼? 큭! 지금 날 한낱 토끼로 취급한다 이거지? 빌어먹을! 으아악!”

[쿡쿡.]

하이렌은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았다. 그의 단검이 달빛을 번뜩이며 로렌에게로 향했다.

로렌은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활을 사용하는 사냥꾼이었지만 그가 지닌 활은 평범하지 않았다. 악마의 활이라 불리는 힐프리거가 바로 그의 활이었다.

카앙.

“흡! 어떻게…….”

하이렌이 지닌 단검은 레어 등급의 단검이었다. 레어 등급에서도 공격력만큼은 유니크에 비견될 정도로 강력했다. 그런 그의 단검이 고작 활대에 가로막혔다.

[그 정도로 날 어쩌지는 못하지.]

휘익.

탁.

“커허억.”

악마의 활 힐프리거가 다시 한 번 불을 뿜었다. 거리가 가까운 것은 로렌에게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가 활시위를 당겼다 놓는 시간은 하이렌이 단검을 휘두르는 시간보다 빨랐으니까.

악마의 화살이 하이렌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회전의 묘리가 가미된 화살의 힘은 복부를 파고들어 그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 주었다.

결국 그는 정신을 잃어야 했다.

오베른과 카이젠의 움직임이 멈췄다.

전장이었던 회색 갈기 오크의 부락은 이미 초토화된 상태였고, 그곳에 발을 내딛고 있는 이들은 오직 천휘 일행뿐이었다.

“대단행. 정말 엄청나용.”

“그 말 그대로야. 내가 수많은 던전과 필드들을 돌아다니면서 정말 대륙을 위진시킨 보스 몬스터들을 많이 만나왔지만, 저 정도의 악마들은… 거의 없었어. 진짜 소름 끼칠 정도야.”

눈송이와 하린은 오베른과 카이젠의 무위를 직접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모든 것을 깨부수는 오베른의 강대한 무위는 말할 것도 없고, 마치 섬세한 여인을 보는 것처럼 간결하면서도 우아한 몸놀림으로 상대방을 유린하는 카이젠의 그것도 소름이 돋게 만들 정도였다.

휘이익.

탁. 탁. 탁. 탁. 탁.

“왔냐?”

[도착했다.]

카이젠과 오베른이 장내를 정리하기가 무섭게 랄프 로렌이 도망쳤던 5명의 유저를 모두 붙잡아왔다. 하나같이 두려움이 깃든 얼굴로 기절해 있었다.

“눈송이야.”

“넹, 오라버니.”

“저들을 물로 깨워주겠니? 얼음을 녹여서 저들의 얼굴 위에 물을 뿌릴 수 있겠지?”

“당연하지용. 기다려 보세용!”

천휘의 부탁에 눈송이가 아이스 필드를 장내에 시전했다. 그리고는 빠르게 얼음의 온도를 높여 물을 사방으로 촤악 흩뿌렸다.

“커헉. 어푸어푸!”

“캑캑캑.”

눈송이의 마법에 의해 용병 유저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너희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게임을 접고 싶은가, 아니면 내게 두 배의 웃돈을 받고 임페리얼 길드와의 의뢰를 파기할 텐가? 결정해라!”

유저들이 깨어나자마자 천휘가 살기를 풀풀 풍기며 소리쳤다. 이제 그를 미친놈으로 취급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는 진정한 강자였고, 그가 부리는 이들은 악마 그 자체였다.

“우리는 유저다. 우리가 여기서 목숨을 잃는다 해서 어찌 게임을 접게 할 수 있다는 거지? 우리는 부활할 수 있다, 언제든지!”

천휘의 말에 발악적으로 하이렌이 나서서 소리쳤다. 어둠의 칼날 길드에 소속된 그의 자부심은 무한했기에 이런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냉철하게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부리는 이들 중에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이들이 많지. 너희가 상대한 녀석들은 극소수일 뿐이야. 그중에는 너희의 부활 지정 장소를 일시적으로 변경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녀석도 있다.”

“말도 안 돼! 그런 일은 들어보지도 못했어!”

“믿고 안 믿고는 너희 마음이겠지. 정 궁금하면 한번 경험해보든가.”

“…….”

더 이상 천휘의 말을 믿지 않을 이가 뉘 있을까.

그는 이제껏 자신이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켰다. 이제 와서 그의 말을 부정한다는 것은 게임을 접을지에 대한 무모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네 말에 따르도록 하지.”

하이렌이 가장 먼저 나서서 입술을 질끈 깨물며 중얼거렸다.

그것을 계기로 모든 유저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천휘의 제안에 따랐다. 그들은 『오벨리스크』를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도박을 할 만큼 배포가 크지 못했다.

그렇게 천휘는 화신의 사막에서 운용할 수 있는 또 다른 세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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